내 고향의 유월은 붉디 붉은 꽃양귀비가 피어오르고 오디와 자두 살구 등이 익어가는 싱그러운 계절이지만, 또한 유월은 잊혀지지 않는 아픔을 간직한 달이기도 하다.


옆 집 아저씨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두고 6.25 에 참전하셨다. 얼마 후 옆 집은 어르신께서 북한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행여나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산자락에 가려 보일락 말락하는 집 아저씨는 사단에서 유일한 생존자라고들 했다. 전투에 참가했던 일만명의 병사 중 유일한 생존자라는 뜻이다. 그 진실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포화속에서 셀 수도 없는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멀리 보이는 또다른 집에는 북한에서 홀홀 단신으로 남하하여 살고 있던 아저씨가 계셨다. 그렇게 홀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나이 차이가 많아 서로 대화를 주고 받을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전후 사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알고보니 다른 분들도 그 사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분은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북쪽의 어디가 그분의 고향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홀로 모든 것을 끌어않고 살다가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약골이라 군 면제를 받아도 시원치 않은듯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는 누구처럼 부동시도 아니고 간이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또 허리 디스크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저질 건강에 운이 나뿐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나도 번듯한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면제 받았을지도 모른다. 면제 병명은 약골!! 한미한 농사꾼의 아들인 나는 흑석동 현충원에서 군 복무를 했다. 현충원에는 셀수도 없는 비석들이 서있다.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의 넋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 분들의 희생을 댓가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서울시가 700억을 써야한다면 돌덩어리가 아니라 유공자분들을 위해 써야하지 않겠는가? 


국립 묘지는 국가 행사 또는 외국의 정상들이 꼭 들르는 곳으로, 정문 한켠에는 이렇게 써있다.


'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름다워야할 대한민국의 5월은 잔인한 역사의 달이자 민주 항쟁의 달이다. 6월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비극의 달이자 호국의 달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죽이고 서로의 것을 파괴했으니 말이다. 살아 남은 자들은 죽을 때까지 그 아픔을 끌어않고 살아가야 했다.




군 수색대 소대장으로 백암산 비무장지대 GP(감시초소)에서 군 복무를 하던 작사가 한명희는 어느 날 양지녁 산모퉁이에서  돌무덤을 하나를 발견한다. 이름모를 국군이 사망한 자리였고, 나무로된 비목(碑木)위에 철모가 올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잊지 못하던 한명희는 어느 날 나라를 위해 이름 없이 산화한 무명 용사를 기리는 한편의 시를 남긴다. 그 시에 장일남 선생이 곡을 입혀 가곡 비목이 탄생했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초연(硝煙)은 말 그대로 화약 연기를 뜻한다. 화약 연기가 앞을 가리던 백암산 전투는 뺏기고 빼앗기를 반복하며 치열한 고지전이 있었던 전투라고 한다. 중공군과의 끝없는 전투 끝에 국군은 결국 백암 고지를 탈환한다. 그러나 그 희생은 너무나도 컷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국군의 희생을 치러야했다. 지금도 이름 모를 영령들의 유해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름 모를 용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이웃 집 어르신도 그중 한 분이시다. 이제라도 그 용사를 아버지라 불러줄, 다 자란 아들의 품으로 돌아 오시기를 기원해본다.




[[[ 알라딘 중고 가게에서 구입한 음반이다. 알라딘 품질 판정 가이드 '최상'이라고 써있어서 상태가 좋은가보구나 하고 구매했다. 그런데 받아보니, 오 이런~!!!! SS(미개봉)였다!!! NM(Near Mint, 중고 최고등급)라해도 감사할 일인데, 친애하고 경애하는 박세원님의 음반을 미개봉으로 구입하다니!!! 


정녕 아름다운 우리의 가곡을 담은 음반들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마음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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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02 2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목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중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부를 때에도 뭔가 가슴 찡한 감동이 있었죠.

차트랑 2026-06-02 23:08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픈 역사인데 그 아픔이 여전히 남아있는듯 합니다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요일,
좋은 휴일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보통, 출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이 더 바쁜 것은 설마 저만 그런 것이 아닐테지요... 차라리 출근하는 평일이 더 쉬운 분들이 또 계시리라 믿으며....
여하튼, 어제 부처님께서 오신 덕분에 오늘 모처럼 하루는 쉬어볼까 합니다. 휴식은 온 종일 음악과 책을 번갈아 곁에 두는 것으로. 


오랫 만에 악성 베토벤께서 남긴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의 두 연주를 번갈아 들으며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삼천포지만, 고전 음악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시간에 있다. 너무 길다. 대중성에 시간은 거대한 벽과도 같다. 애호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사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결코 긴 편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소 40분은 써야한다. 이것은 알라딘하며 고전 음악 포스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늘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면서...



[[[ 사진 출처 ㅡ 위 사진은 별점 비교를 위해 동호회 '고클래식' 의 '명곡감상 비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매우 유익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음반의 별점은 고전 음악의 어느 절정 고수께서 표시한 내용입니다. 그 고수께서는 당시 지메르만의 연주에 별점을 4개 주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별을 하나 더 살짝 얹었을지도 모릅니다.]]] 




1. 피아노 제르킨(Rudlof Serkin), 지휘 부르노 발터 (Bruno Walter), 뉴욕필(New York Philharmonic)  1941


뚜껑을 열어 걸면, 하루 종일 돌리게 되는 연주들이 있다. 내게는 위 연주가 그들에 속하는 연주인듯 하다.  좋은 연주라는 말은 무척 진부한 표현이겠고, 제르킨의 연주는 때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각각 왼 손과 오른 손을 따로 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 둘은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하다. 다른 음반에서는 이런 느낌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이 효과는 제르킨의 피아노가 주는 느낌일까 베토벤이 곡에 불어넣은 효과일까. 어느 쪽이든 제르킨은 정녕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다.



놀라운 것은 최소한 1940년 이전에 만들어진 피아노의 음이 이토록 좋단 말인가?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당시의 녹음 기술이 모노인 점을 감안 할때, 피아노 제작 능력과 제르킨의 연주 능력 모두에게 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피아노는 단연 돗보이는데, 이는 협연의 질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음질만을 평가한 것이다. 이는 또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당시 녹음의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점을 참고하여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어째거나 제르킨의 연주에 협연하는 부르노 발터는 자신이 왜 거장인지를 이 음반에서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녹음 조건을 뺀다면 관현악은 협연으로서, 연주 자체로서 흠결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협연은 탄탄하고 짱짱하며 일사 분란하다. 피아노와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다. 청자에게 피아노와 협연은 둘이지만 하나라는 일체감을 선사한다. 최고 난이도에 조절된 기품있는 연주이고 리허설 과정은 또 어땠을지,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Concerto' 는 바로 이런 것, 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구현해낸 연주가 바로 제르킨과 발터의 것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연주는 오성(五星)의 빛나는 견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




2. 피아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빈필(Wiener Philharmoniker) 1989


[[[ 사실 서로를 꼭 쳐다볼 필요는 없지만 연주 중 지메르만은 종종 번스타인을 바라본다. 노장에 대한 경의일 것으로 생각한다. 지메르만은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형님의 협연이 너무나도 좋구나... 라고. 연주가 끝나고 번스타인은 지메르만을 한동안 포옹한다. 끌어안고 놔주질 않는다. 연주의 만족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지메르만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  


거의 대부분 존재하는 연주들이 매우 훌륭하지만 기호도에 따른 또 다른, 눈에 띄는 음반이 하나 더 있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이다. 물론 박하우스(Wilhelm Backhaus)와 슈미트 이세르슈테트(Hans Schumidt Isserstedt)의 1956년 연주는 왜 언급을 안하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박하우스 선생의 2악장은 내가 원하는 템포보다 빨라서 탈락^^ (팬들께는 죄소옹~)



1악장 ㅡ 초반, 피아노 도입에서 지메르만의 손가락이 아직은 살짝 덜풀린듯한 음을 낸다. 그러나 곧 그의 손가락에 신기(神氣)가 들어간다. 베토벤께서 주제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시해준다. 피아노가 물러가면, 번스타인과 빈필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확인시켜 준다. 백발의 할아버지인데 번스타인 어르신 너무 귀여우심. 피아노가 호른과 독대하는 1악장의 끝 부분은 정녕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 Musikverein Wien 1989년 실황이다. 늘 아쉬웠던 점은 화질이었다. 마스터링(mastering)을 다시한 깔끔한 영상이 새롭게 올라와 있다.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가장 특징적이고 눈에 띄는 순간, 아니, 귀가 번쩍 뜨이는 순간은 1, 3악장에서 현악기 파트와의 협조력이 빛나는 순간이다. 피아노와 현의 피치카토(Pizzicato 줄여서 Pizz.)가 여백을 채우며 서로 들고나는 순간이 진정 예술의 극치이다. 튕기듯 휘어져 서로 달라붙는다. 경(經)과 위(緯)가 함께 비단을 짠다. 탄력있고 눈부신 비단을 완성했다. 입으면 사람의 체형에 맞게 움직여주는 원단이 있다. 이들의 연주는 바로 그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다른 연주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악기들이 서로 이를 물고 들며 나는 순간, 이처럼 긴밀하고 품위있으며 쫀득한 연주를 완성하는 음반은 이뿐인가 하노라. 어찌 오성의 빛나는 견장을 마다할 것인가.



2 악장ㅡ 흔히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라고들 한다. 깊은 슬픔, 이루 말할 수 없는  회한, 한없는 포근함, 부드러운 따듯함. 상처와 치유, 이 모든 것들을 버무려낸 것일까. 슬픔과 기쁨을 구별할 수가 없다. 동시에 전해오기 때문이다. 정녕 아름답다... 2악장 역시 최고로 눈이 부신 연주이다. 


3악장 ㅡ 곡의 마무리면서 연주의 끝이기도 하다. 그 감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3악장은 감상 평을 남긴 애호가들이 이미 모두 말을 다했다. 당당하며 완벽하다. 2악장의 유곡(幽谷)에 깃든 불사조가 죽음의 재에서 부활하듯 재탄생하며 일어선다. (지메르만) 이것이 나의 피아노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협연을 듣기 전에는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가 주는 아쉬움을 발견할 수 없다. 그만큼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는 훌륭하고 빼어나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를 들은 후에 베토벤의 황제는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이 기준이된다. 물론 음악은 기호이므로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사실 나는 모든 연주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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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5-25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임윤찬이 연주한 것을 들은 후론 그것만 듣고 있네요.
누가 연주를 했든, 하던 일 멈추고 듣게 되는 곡이지요.

차트랑 2026-05-25 12: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저도 임윤찬, 홍석원, 광주 심포니, 2022, DG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두분께서 명연를 남기셨지요?
말씀해주신대로 어느 분의 연주이든 정말 좋은 곡입니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 인줄은 짐작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씀을 들으니
더욱 반갑습니다 hnine님
좋은 휴일 되십시요~!












마힐 2026-05-25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사는 곳은 오늘 비가 옵니다. 차트랑님의 멋진 글 속에 베토벤의 피아노 소리가 저절로 보이는 경지를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 신기할 따름입니다. ^^ 비오는 날, 차트랑님의 좋은 글, 좋은 음악 소개 감사 드립니다.

차트랑 2026-05-25 16:5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마힐님,
평소 써주신 좋은 글 잘 읽고있어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비가 내리는 날,
베토벤 피협5번의 또랑 또랑한 스타인웨이 소리가
더 또렷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비가 내리면 2악장은 정녕 최고의 분위기를 낼듯 싶습니다.
좋은 오후 되십시요 마힐님~!!

잉크냄새 2026-05-25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클래식은 제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입니다.
팝과 통기타 선율 정도가 당신이라 부를 수 있군요. ㅎㅎ

차트랑 2026-05-26 06:4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밍크냄새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사실 취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저는 소설에 취향이 없었거든요.
무협지가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요.
무협지로 알라딘 하는 분을 아직 못봤습니다.

이제 소설을 읽어볼까 생각중이고,
나름 계획을 세웠답니다.
현재 목록의 책들을 마치고나면
출발~ 도스도옙스키 !! 이런 계획입니다.

취향도 가변하는 것이니
언젠가는 고전음악이 좋아질지 모르는 일인듯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러시아 문단을 바라보면, 커다란 봉우리가 하나 서있다. 그 봉우리의 이름은 '톨스토이'이다. 그 봉우리 뒤로 안개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큰 산으로 이어져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산맥이 있다. 바로 도스도옙스키 산맥이다. ㅡ앙드레 지드



사실 내게 도스도옙스키는 접근하기에 결코 쉬운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을 읽기에는 나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 깊은 산중으로, 아니 그 커다란, 잘 보이지도 않는 산맥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이고, 나는 분명 중간에 지쳐 쓰러져 버릴것이다. 이렇듯 나로서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소설들이 특히 도스도옙스키의 것들이다.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이 아니어도 나는 모든 소설들이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은 물론 대부분의 소설들과 서먹하고도 소원한 관계를 지금껏 잘 유지해왔다. 



탐험은 본디 미지의 것이고, 그 무엇과 조우할지 모르는 아찔한 기대감, 혹은 심장을 조여오는 쫄깃한 긴장감을 즐기는 특성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발견은 어마어마한 덤이다. 때로는 그 뜻밖의 덤이 탐험가의 인생을 엉뚱한 곳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질 지도 모르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탐험은 단지 에베레스트를 오르내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발견이 기다리고 있고, 미지성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다. 그 조우는 결코 단순한 노동의 댓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탐험은 스스로 해야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해 그 깊고 어둑한 곳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자신이 없는 험난한 길을 떠날 땐 내비게이션, 뭐 이런 심산이다. 도덕경은 이런 곳을 '玄현'이라고 했다. 有와 無가 혼재하여 구분할 수 없고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경지가 바로 현(玄)인 것이다. 이런 현(玄)이 산(山)에 중첩되어 있으면 이를 유(幽)라고 한다. 유(幽)는 현보다 한 길 쯤 더 들어간다. 그리하여 유(幽)에는 삶과 죽음이 깃들어있게 된다. 유택(幽宅)은 그리하여 망자(亡者)가 머무는 거처이다. 내게 도스도옙스키로 가는 길은 '유곡幽谷'에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곡幽谷'은 생명을 거두어 들이는 곳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품어 태동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정녕 신비로운 곳이 아니겠는가...



[[[ 도스도옙스키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신 분들 중에는, 1) 책이 겁나 두꺼워서  2)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3) 도스도옙스키가 뭐 대순가? 등의 이유가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이 책,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를 읽어본다면 도스도옙스키의 그 어떤 소설 하나는 꼭 읽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나는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세 종류는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뛰어넘는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 읽기 전에는 결코 시들지 않을 전투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는 도스도옙스키 낚시꾼이다. 이 책을 읽고도 낚이지 않는 자, 없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



도스도옙스키의 '죄와 벌'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경애하는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쓰시던 사랑방이 비게되었다. 나는 고입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으므로 공부방으로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방의 사용권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매사가 그러하듯 명분이 서느냐 이다. 그럴싸한 명분 앞에 뜻을 수월하게 관철시킬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방의 사용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방 안에 있던 책들도 나의 것이 되었다. 사랑방에는 깡촌에서는 믿기 어려운 도서 목록들이 있었다. 셱스피어 전집, 죄와 벌, 신곡, 데카메론, 펄 벅의 대지 등등의 책들이 그것이다. 윤초시네 시골과 버금가는 곳 이었으므로 주변 수십리를 모두 찾아도 이런 목록을 가진 집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이기는 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책은 데카메론이었다. 약간은 선정적이며 성인들의 에로틱한 모습을 살짝 살짝 보여줬는데, 이는 중학생인 나에게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나는 고입 공부를 제껴두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모두 읽었다. 완독의 힘은 다음 스토리에서 또 나올지도 모르는 기대감, 데카메론이 주는 야릇한 그 선정성에 있었다. 그리고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이해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냥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일 뿐.



그 귀한 '셱스피어 전집'과 '죄와벌' '데카메론'등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촌 구석에 있게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애하는 조부님께는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친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경애하는 작은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당숙께서는 도회지로 나가 사셨다. 그리고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그 일자리 중 하나가 고전을 방문 판매하는 일 이었다. 당연히 큰댁인 우리집에도 찾아 왔다. 말 하나마나 할아버지께서는 조카가 권하는 책을 모조리 들이셨다. 다양한 고전들은 물론 태권도 교본, 절권도 교본, 합기도 교본, 편지쓰는 법, 전예해행초서 쓰는 법 등등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책들을 들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으로 무술을  배우는 것은 무협지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한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완독의 힘이 되어준 것이 무엇이었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끝까지 읽어냈다는 자긍심이다.) 경애하는 나의 의가 좋았던 조부님 형제께서는 분명 부처님 곁에 가 계실 것이다.




중학생인 나에게 죄와 벌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초장부터 사람을 죽이는 장면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해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게 존재 했지만, 살인이라는 단어는 내게 있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람을 죽였다!! 마음이 벌렁거렸다. 그리고는 또 사람을 죽였다!!! 결국 나는 죄와 벌을 손에서 놓고 말았다. 아... 나의 이 소심하고 심약함이여!!!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 더 대범했거나, 조금 더 머리가 좋아 '죄와 벌'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를 알아봤다거나,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졌더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죄와 벌'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는 조용히 말하길, "그 소설을 끝내는 읽어야 하리라" 라고 조언을 했더라면 상황은 꽤나 달라져 있을듯 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행운이 영 따라주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만난 소설이 하필 '파리대왕'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오만은 죄이자 벌이다. 나는 파리대왕을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 '인간의 야만성은 지극히 본능적인 것일 수 있다. 저 어린 학생들의 야만성을 보라. 나이가 들어야만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사람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그 어떤 상태로 타락을 하든, 어른들이 있어 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야만성과 타락, 폭력, 인간성 상실, 욕망, 그 잔인한 전쟁으로부터 그들을 과연 누가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파리대왕'의 어린 학생들을 통해 저자가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판단했고, 나름의 해석에 아주 만족해하며 자뻑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이 독후감은 나의 것이기에 저자가 의도했던 것 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해석은 독자의 것이라는 오만이 또 작동한 것이다. 


나의 우쭐함도, 오만도, 그리고 나의 선택도 알고보면 내가 지금껏 받아온 '죄'이며 '벌' 이였다. 나의 독후감이 나를 벌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설을 홀대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 건방은 나를 늘 곤란하게 했다. 그나마 때로는 이 건방이 보이지 않도록 뒤로 숨기려하지만 곧 들키고 만다. 건방과 오만은 도스도옙스키에 따르면 일종의 죄이자 벌이다. 건방과 오만은 신성함을 소홀히 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성함을 잃는 것은 죄이다. 신성함을 잃는 순간 살인 이라는 벌이 시작되듯 말이다. 

그렇게 양극단의 경험들은 나를 서서히 소설과 더 멀어지게 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서히 소설을 향해 시선을 주기시작했다. 책의 두께!! 한 손으로 들면 버거울것만 같은 두께의 소설들의 사진을 알라딘 서재에서 만나면서 였다. 나는 책의 두께에 매료되기도하고 기가 죽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민스러운 일이다. 과연 어떤 소설부터 두께감을 갖기 시작해야할까....

블로그의 힘은 확실히 영향력이 있다. 게시된 사진 중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두터웠다. 게시해준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는 무려 4권,  2988쪽, 무게 3.89kg. 너무 두껍고 기가 죽는다. 도스도옙스키의 '백치'는 상ㆍ하를 합하면 1,000 쪽이 넘었다. 역시 나의 기를 눌러 놓는다.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죄와 벌'을 손에서 내려놓던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지금껏 죄를 지었다. 행여 내게도 시베리아로부터 부활의 시간이 찾아 오려는가...



국립공원 앞에 산 전체 조망도를 보여주는 안내판이 있다. 나도 그걸 보고 가야겠다. 도스토옙스키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안개에 가려진 산맥이라하니,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 이다.


스포에 해당하는 이 책은 미지 탐험의 짜릿함과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무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겠지 싶다. 물론 도스도옙스키의 매니아들이나 소설 매니아들은 나의 이런 절차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중학생 때의 소심함을 벗어났으니 이제 도스토옙스키에게 천천히 다가가려한다. 가다보면 앞서간 이들이 못보고 간 무엇인가가 하나 쯤은 내게 나타나지 않겠는가. 학부때 셱스피어에 관한 논문을 쓰고 박사가 된 사람들이 100여명이 넘는다는 말을 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속으로 '미쳤다',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이라도 되나, 파고 파도 또 파낼 것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셱스피어도 그정도인데 하물면 산맥인 도스도옙스키 선생이야 말해 뮛하겠는가. 그 깊고 깊은 산맥, 첩첩 산중, 안개에 가려 보이지않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유곡(幽谷), 그 산맥속으로.. (Go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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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22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너무 두껍고 또 너무 어렵고, 도스도옙스키 선생뿐 아니라 대부분의 고전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이유인 것 같네요.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의 이름만 외워 읽은 척 했던 철 없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래도 삼국지 빼고 아직까지 이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주인공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5-23 07:05   좋아요 0 | URL
라스꼴리니코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시다니 저보다 훨씬 더 대단하십니다 잉크냄새님,
저는 입 안에서 발음음이 안되서 혀가 꼬이네요 아놔~

삼국지보다 어려운 소설은 쫄려서 못 읽었습니다 ㅠ.
저는 영웅문이 최고의 소설인줄 알고 있었으니 원~

이제 천천히... 조금씩... 유(幽)의 연속인 산맥에
저의 지저분한 족적을 살짝, 티안나게 남겨볼까 합니다!
대단한 결심입지요, 암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그레이스 2026-05-25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책이 있었네요, 번역일기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
차트랑님의 도전 응원합니다.

차트랑 2026-05-25 17:07   좋아요 1 | URL
제가 위에서 언급한 겁나게 두꺼운 책들
전쟁과 평화,
그리고 백치는 그레이스님의 서재에서봤습니다.
제가 얼마나 쫄렸겠습니까 ㅠ

그런데 최근 도스도옙스키 번역일기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레이스님은 읽지 않으셔도 될듯합니다만
제게는 내비게이션이다, 싶습니다.

내비게이션 따라 살금살금 걸어들어가 보려구요^^
아차 싶으면 도망칠지도 모르지만
그레이스님을 본 받아보겠습니다!!

응원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
(응원받으면 도망을 못치는데 큰일이네요 ^^)


 
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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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 어느 교수가 말했다. 셱스피어를 연구하여 학위를 받은 학자들이 100 명도 넘는다, 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 낸걸 또 파내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셱스피어는 탄광이고, 도스도옙스키는 끝없이 빛나는 금광 산맥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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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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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런 번역가와 이런 번역이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번역史의 전범((典範)을 제시한 번역가에는 깊은 경의를!!! 그리고 도스도옙스키 선생의 소설들에게는,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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