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음악의 대 선배님이자 진정한 고수(클래식 태권도 9단)께서 임미정은 동명 이인이라는 정보를 주셨습니다. 피아니스트 임미정씨가 두 분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저는 같은 분이라 생각을 했죠. 그리하여 동영상 속의 연주자 임미정과 알라딘 상품 음반의 임미정을 같은 인물로 오인했던 것입니다. 이에 잘못된 정보를 드린 점 이 글을 이미 읽으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종달새를 연주하신 임미정님의 음반을 검색해보니 한 장의 CD가 있네요. 그 음반으로 대체함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 쓴 글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늘 반성하고 싶으니까요. 그나저나 대선배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했을지 끔찍하군요. 고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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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공이 당구대 위를 흐르는 모습을 보면 그의 구력을 알 수 있고, 그림을 보면 그의 필력을 알 수 있다. 음악은 청각을 통해 감지하는 순간, 그의 내력을 알 수가 있다. 아래는 참새가 어느 방앗간을 지나다가 알게된 피아노 연주이다. 먼저, 이 자리를 빌어, 그 방앗간 주인께 감사드립니다.




[[[ 러씨아 고전 음악의 대부 '글린카'의 곡, '종달새'이다. 원래는 가곡이었으나 '발라키레프' 라는 음악가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다고 한다. 비교 차원에서 다양한 연주가들의 종달새를 들어봤다. 러씨아의 거장 미하일 플레트네프, 대한민국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러씨아의 예브게니 키씬, 전설의 라두 루푸, 그냥 믿고 듣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외에도.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러나? 임미정의 연주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      



<<<< 어느 분께서 피아니스트 임미정씨의 음악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임미정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임미정을 검색해 봤다. 내가 임미정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하고 보니 재즈 피아니스트로 더 알려진 인물이었다. 변명이지만 재즈에는 약한지라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듯 싶다. 직접 곡을 쓰고 연주를 한다. 만능이시네...하면서 임미정의 연주곡을 들어봤다. >>>>  


<<<<안의 내용은 고로 저의 오류가 되겠습니다. 역시 하수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제 스스로를 보면 영락없습니다. 엉성하면서도 엉터리거든요. 고수께서 알려주시지 않으셨다면 저는 영영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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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로는 연주를 표현해 낼 길이 없다.

세상은 언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것들이 주를 이룬다.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것들을 언어로 표현하려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순수함을 잃고 만다. 그러나 인간은 누군가에게 그 감동을 전달하고 싶어하고,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혹여 예술은 아닐런지...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며 태어나는 것이 음악 혹은 미술은 아닐까...


인간은 '언어'라는 소통 수단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은 애초부터 예술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냥, 저절로,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표현해내다 보니 예술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고, 또 예술론이나 미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이지만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임미정의 피아노를 들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나아가, 음악을 말하는 능력이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얼마나 또렷한 종달새던가! 이 종달새는 참종달새다! 임미정의 손가락을 따라 열 마리의 종달새가 흑백 건반 위를 날며 노래한다. 바쁜 길을 가던 사람을 멈춰세우는 임미정의 종달새는 하염 없이 영롱하다.' 라이브라는데, 완벽한 터치를 구현해낸다. 임미정의 종달새를 한번만 듣는 사람은 없을 듯 싶다... 이제는 다 커버린, 대한민국의 귀염둥이 였던, 키씬이 연주한 종달새보다 더 좋다.


하수의 변 - 
알라딘에서 음악을 게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듯 합니다. 고수는 본디 말이 없는 법이지요. 보통 달관의 경지에 오르면 조용히 지켜만 볼 뿐, 말이 없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고수들은 이러하지만, 어정쩡한 하수들은 말이 있습니다. 태권도 2단 짜리가 어디가서 곧잘 얻어터지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의 저 처럼 말이지요. 저와는 달리 태권도 9단은 결코 싸우지 않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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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4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태권도 2단으로 인해 태권도 문외한도 태권도를 접하게 되지요. ㅎㅎ

차트랑 2026-03-14 20:47   좋아요 0 | URL

어정쩡한 태권도가 어디가서 얻어 터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잉크냄새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태권도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는 바가 있군요.
다행이지 뭡니까요~^^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2026-03-18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26-03-18 22:08   좋아요 1 | URL
아....이럴수가....!!
제가 임미정씨를 전혀 아는 바가 없어 동명이인을 몰라봤습니다 ㅠ

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
자세히 살펴보고 수정하도록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태권도 2단짜리가
스트리트 파이터들에게 코피지고 다닌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우리 나라의 가곡(歌曲)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전통 가곡이다. 검색해보니, 1872년 박효관과 안민영이 대원군의 후원을 받아 가곡원류(歌曲原流)를 편찬했다고 써있다. 박효관은 가객(歌客) 즉, 가수였다고 한다. 국립 국악원 소장본을 기준하면, 가곡원류(歌曲原流)에는 약 865수의 시조 작품이 실려있다고 한다. 이 시조들을 가사로하여 전통 국악의 연주와 함께 불렀던 것이다. 주로 냥반들이 즐겼는데 이를 정가(正歌) 라고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이를 가객(歌客) 이라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이를 율객(律客) 혹은 금객(琴客)이라 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 성악 가곡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다.



두 번째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들어온 가곡이다. 일제는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서방과 시기적으로 빠른 교류를 한 탓에 서양 문화를 우리보다 빠르게 받아들였다. 가곡도 그 중 하나이다. 독일은 슈베르트라는 걸출한 인물 덕분에 가곡의 꽃을 피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독일 가곡을 리트(Lied)라고 하는데, 이를 일제가 흡수하여 가르쳤다. 당시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홍난파는 일제로 건너가 일본의 대학에서 음악을 수학 했다. 재능이 뛰어났던 홍난파는 도쿄 교항악단 제 1 바이올린 단원을 거치기도 했다. 그의 혈족들은 음악에 큰 재능을 보였다고 써있다. 



[[[ 팽재유 선생이 부른 봄처녀, 팽재유 선생의 봄처녀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아래에 적습니다 ]]]


 

그는 귀국하여 교수 및 강사로 활동했고 대한민국의 슈베르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홍난파는 가곡을 아주 많이 썼는데 그가 김형준의 詩에 곡을 붙인 것은 1920년라고 한다. 그리하여 근현대의 우리 가곡이 태어났고, 그렇게 '봉선화'는 한국 가곡의 효시가 되었다.



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안익태, 김동진, 현제명등과 함께 '친일 인명사전'에 올라있는 홍난파, 그리하여 애증을 함께 가진 이름 홍난파, 그는 성불사의 밤, 고향생각, 고향의 봄등 가곡은 물론 수도 없는 동요를 써냈다.

또한 아주 많은 이은상의 시에 곡을 입혔는데 대표적인 곡이 바로 '봄처녀'이다. 봄처녀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라 시조이다 (이은상의 가고파에는 김동진이 곡을 입혔다). 이은상의 시조가 마음에 들었던지 홍난파가 스스로 곡을 붙였다고 한다.



홍난파의 '봄처녀'를 부른 성악가들이 아주 많다. 심지어 외국인들도 봄처녀를 불렀다. 봄처녀는 확실히 아름답기가 빼어난 곡이다. 그러므로 아주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개인적인 선택은 봄처녀의 빠르기에 있다. 악보로 본다면 봄처녀의 빠르기는 왈츠의 3/4 박 (tempo di valse)이다. 그러나 시대 배경을 담는다면 이보다는 호흡이 좀더 길어도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흡을 길게 가진 봄처녀, 테너 팽재유 선생이 부른 봄처녀를 가장 선호한다.



팽재유 선생를 선택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팽재유는 봄처녀에서 벨칸토(Bel Canto)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봄처녀를 부르는 팽재유는 벨칸토의 정수라 할만하다. 단연 으뜸이다. 벨칸토는 반드시 레가토(Legato ㅡ저ㆍ고음을 넘나들며 음을 끊어짐 없이 부드럽게 연결하는 발성)가 뒤따라야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양한 봄처녀 중, 팽재유 선생이 벨칸토를 가장 잘 표현해낸 성악가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홍혜경과 그리운 금강산을 함께 부르며 보여주는 벨칸토의 정석. 플라시도 도밍고도 울고갈, 아름답고 정녕 우아한 미성으로 청자를 사로잡는 이가 팽재유이다.



사적으로 봄이 오는 이즘부터 한동안 가장 많이 듣는 우리의 가곡이 바로 봄처녀이다. 혹여 알라딘에 봄처녀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팽재유 선생의 성악으로 들어보심은 어떠실런지....


추신: 

[[[ 뜻밖에도 최불암 선생의 부고를 접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행복한 연기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인생을 스캔들을 없이 깔끔하게 살다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근데, 가짜 뉴스 였습니다 ㅠㅠ 아놔~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심리가 너무나도 궁금하자 진짜!! ]]]

 





[[ 최근 알라딘 중고가게에서 구입한 음반이다. 상태가 NM이라고 써있었다. 믿고 구매했다. 상품을 받아보고 정직한 판매자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마음에 든다. 그나저나 팽재유 선생의 사인이 있는 음반을 내놓은 이 덕분에 사인반을 얻었다. LP는 시디와의 음질 차이는 확연하다. LP로 듣다가 CD로 들으면 금속성 소리가 들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적응할 때까지 힘들다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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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2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곡하면 주로 유럽의 클래식 가곡만 생각했는데 우리ㅏ라의 전통 음악에도 가곡(국악)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네요.
그리고 최불암 배우님 별세를 말씀하셔서 급하게 포털을 찾아보니 부고 기사는 없더군요.몸이 안좋아 전화 연락도 안받으시고 TV방송도 안하신다는 뉴스 기사를 뜨는데 부고 기사가 안 난 걸 보면 아며 요즘 AI로 만드는 가짜 기사에 속으신거 같아요.

차트랑 2026-03-12 17:4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심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ㅠ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원

좋은 하루 되십시요 카스피님~

니르바나 2026-03-1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팽재유 테너의 노래를 다 듣게 됩니다.
젊은 시절 테너 팽재유 선생 인물이 정말 좋으셨네요.
옛부터 전해지던 인물평인 신언서판이 훌륭하신 분 같습니다.

가곡이야기를 하셔서 몇마디 덧붙이자면,
이렇게 아름다운 가곡들을 일부러 찾아 듣지 않으면 방송에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전에는 봄 가을이면 유명 성악가들이 한데 모여 가곡의 밤 연주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서
심지어 음대교수가 아닌 MBC 차인태 아나운서도 객원으로 참여하던 가곡연주회가 있었고,
KBS나 MBC 방송국에서는 뉴스 전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매일 내 마음의 가곡 식으로 방송한 적도 있었지요.
그만큼 한국가곡이 우리 문화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지불식중 가곡이 사라졌는데 그 사실을
나중에 임웅균 교수가 방송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알았습니다.
전국에 있는 음악대학에서 가곡 과목이 폐지되어 가곡 부를 일이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때 쯤 해서 정기 가곡연주회도 사라졌고 더 이상 작곡가들의 신작 가곡 발표회 소식도 들을 수 없었지요.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한국가곡과 독일가곡 심지어 미국 민요등이 아직도 아련한데
왜 그 좋은 노래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청소년들은 노년이 되어서도 K- POP을 흥얼거릴까 싶기도 하구요.
(절대로 K- POP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해없으시길)
팽재유 테너의 봄처녀를 들으니 아쉬운 마음에 댓글로 적어봅니다.

차트랑 2026-03-16 16:25   좋아요 1 | URL
오...이런...!
우리 가곡이 대학에서 푸대접을 받아 사장되다시피 하는군요!
어쩐지 가곡들은 중고 매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우리 가곡을 독일과 이태리 가곡 못지않게 아주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합니다.
니르바나님께서 방송반에서 틀어주시던
엄정행은 대중 가수만큼 인기가 있었지요.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목소리던가요...

그런데 우리 가곡의 현실을 알고나니 마음이 몹시 아프군요.
저라도 늘 가까이 해야겠습니다 ㅠ

늘 궁금했던 이유를 알게되니 수긍은 가지만
아주 서운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네요...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
좋은 오후 되십시요~


 


중ㆍ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지만 대부분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 중 하나에 음악 용어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잘 기억하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생활 속에서 멀어지면 기억 속에서도 대부분 멀어지기 마련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아다지오(adagio)는 이탈리아어 음악 용어이다. 검색해보니 아다지오는 '천천히 걷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안단테(Andante) 보다는 느리고, 라르고(Largo) 보다는 약간 빠른 템포라고 써있다. 물론 들어보면 바로 이거구나 싶다. 

이 용어는 발레에서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주 우아하게 움직이는 동작이나 춤을 뜻하는 발레 용어가 아다지오인 것이다. 음악에서의 아다지오도 정말 정말 아름답고 우아하다. 한마디로 환.타.스.틱.하게 우아하고 판.타.스.틱.하게 아름답다. 아다지오는 각종 협주곡의 2악장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한다. 그래서 아다지오라고 하면 으레 협주곡 2악장이구나 생각한다. 





[[[ 라두 루푸의 연주를 링크하고 싶었지만 실황 영상이 없다. 차선으로 영상이 있는 연주로는 단연 최고요 으뜸인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 와 파보 예르비(Paavo Jarvi)의 협연이 있다. 아다지오다!  아... 베토벤이여!!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이 곡 때문은 아닙니다만 어찌하면 곡을 이토록 아름답게 쓸 수가 있단 말입니까....!! 들리지 않는 귀를 하고서 이렇듯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곡을 어찌 써 낼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 연주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경건하며 성스럽고 성스럽다.  그리하여 사적인 생각으로는 '베토벤은 이런 연주를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실황을 이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다. 이 영상을 남겨준 그리모와 예르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



얼마 전, 라두 루푸(Radu Lupu)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음반 사진을 보게되었다. 내게있어 이런 조우는 사실 깜짝 놀라운 수준이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함께하는 순간이다.

라두 루푸 선생은 1945년에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2022년 불록(不祿)하셨다. 그는 70년대 콩쿠르 헌터였다. 라두 루푸의 특성은 음악의 내면화에 있다. 그의 내밀한 성격탓인지는 모르겠다. 글렌 굴드가 자신의 연주를 만들어가는 스타일의 연주자 였다면, 라두 루푸는 곡 안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었다.



다시 말해, 글렌 굴드에게 작곡가는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였다면 라두 루푸는 작곡가와 무언의 소통을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굴드는 자신을 더 드러내고 싶어했고, 라두 루푸는 자신 보다 곡을 더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런 라두 루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글렌 굴드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또 다른 이유로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굴드 팬님들의 눈치를 아니 볼 수 없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굴드를 언급할 때는 살얼음 판 위를 걷듯 조심 해야한다. 굴드의 팬들은 거의 카르텔이고 엄중하니까) 



그리하여 라두 루푸의 연주는 음악가에게도 감명을 준다. 라두 루푸는 기교로 말하지 않는다. 화려하게 치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자신 스스로 음악 안으로 들어간다. 청중들을 끌고서 말이다. 청중들도 함께 그 음악 속으로 빠져든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통해 음악 본연의 영혼과 청중들의 영혼을 마주한다. 아.... 라두 루푸여....!



그러나 아쉽게도 라두 루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시디를 찾아낼 수가 없다. 15분씩 나누어 2회에 걸쳐서 찾아봤으나 허사였고, 눈이 아프고 두통이 와서 도중에 그만 뒀다. 대체 엇다 둔거지!!! 아놔~! 요즘은 시디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아니다. 온라인과 이어폰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디는 찬밥이고 막 굴러다닌다. 그 결과 각자 시디들의 주소를 잊은지 오래인 것이다. 이제 찬밥인가... 그러나 꿩대신 닭이라고 내게는 같은 곡으로 가장 매력적인 짐머만과 번스타인을 찾아냈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작곡 시기는 1809년이다. 베토벤의 나이 40세였다. 20대 후반부터 청력에 이상이 왔고 40대 중반의 청력은 완전 상실되었다. 40세의 청력은 피아노의 진동으로 작곡을 해야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런 아다지오를 창조해낸 것이다. 베토벤은 악성이다!



[[ 시디는 스크래치에 너무나 민감하다. 시디에 때가 뭍어도 함부로 닦아 낼 수가 없다. ]]]



아래는 동호회 'go 클래식'으로, 16만명이 모여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전음악 동호회이다. 연주 정보는 물론 음반, 음악가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연주에 대한 평가를 알고 싶다면 단연 이곳이다. 고전음악의 입문자부터 최고수까지 죄다 모여있는 유일한 곳이 아닐까 싶다. 혹여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곳에서 정보를 찾아 참고할 수가 있다. 입문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물론 음반을 판매하는 곳은 아니다. 음반 구매는 알라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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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0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래식은 문외한이지만 음악 빠르기의 클래식 용어를 노래에 맞춰 불러 외우던 기억은 나네요.
라르고 아다지오 안단테 모데라토......산토끼 노래에 맞춰서 말이죠.

차트랑 2026-03-11 07:5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시어 정말 고맙습니다.

생각해보니,
잉크냄새님께서는 훌륭하신 음악선생님을 만나셨군요.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을 하시는걸 보니 말입니다.

저의 음악선생님은 파마머리를 한 남자셨는데
회상해보니 무서웠던 기억을 남겨주셨네요.
회초리를 쓰셨거든요.
음악 시간이 무서웠어요 ㅠ

음악 시간이 기다려지고 가슴설레는 시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많이 아쉬워지네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니르바나 2026-03-12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차트랑님,
처음으로 차트랑님 서재에 댓글로 인사드립니다.^^

라두 루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연주를 좋아하시는군요.
요즘 세상이 음원, 스트리밍의 시대라 씨디를 푸대접을 하지만 이 분야 전문가의 이야기로는
씨디를 직접 헤드폰으로 들어보면 음질이 훨씬 낫다고 하더군요.

저도 학창시절에는 비싼 오디오와 LP음반 가격 때문에 제대로 된 클래식 음악을 듣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클래식 입문은 지금부터 24년 전에 알라딘 온라인 서점과 거래를 트고 알게 된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하던 매너리스트 등 여러분의 클래식매니아들 덕분입니다.
이 분들이 소개해주는 음반과 더불어 알라딘에서도 적극적으로 클래식 명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고가의 LP대신 저렴한 CD가 진입장벽을 낮춰 주웠구요.
여러모로 저의 클래식 입문을 도와주신 알라딘 서재지기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그때 알게 된 대한민국 최대의 클래식 동호 커뮤니티 Go! 클래식, 일명 고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클이 음반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지만 저의 경우 수적으로는 최대로 많이 구매한 곳도 고클이었습니다.
고클 신품 장터가 그곳입니다.
지금은 판매자들이 몇분 없지만 그 시절에는 메이저 판매자(?)가 몇분 계셔서 많은 전집 음반들을 판매하셨지요.
알라딘에서 구할 수 없는 음반들도 그렇게 해서 여럿 만났습니다.

차트랑님이 적어주신 대로 짐작해보면
대한민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는 인구는 20만명 쯤 되지 않을까 추산해봅니다.
물론 저의 좁은 소견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3-12 17:2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니르바나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전 음악을 접하신지 24년이면 어마어마한 공력을 가지신 분이시로군요!!
그리고 고클래식동호회 회원을 여기서 뵙다니, 더욱 반갑습니다.
사실은 니르바나님의 서재에서 풍월당과 당주의 이름
그리고 국내 말러 전문가의 이름등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해외 유명 연주단체의 단원들도 들렀다 가는 곳이 풍월당인데
위 사실들 만으로도 니르바나님은 고전음악에 관한한 평범한 분은 아니시지요~

음반구매는 주로 풍월당을 이용했고
(알라딘, 미안~)
고클에서는 해외 공구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정말 좋은 다수의 음반들(특히 전집)을 고클 해외 공구를 통해 얻은듯 합니다.
(알라딘에는 알리고 싶지않은 사실입니다만 ^^)

대한민국 고전음악 애호 인구가 20만명 정도로 추산이 되는군요.
계산기를 써보니 0.5 % 미만의 비율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너무 적은듯요 ㅠ
교육환경의 영향일까요...

그나저나 고전음악의 대 선배님을 이곳에서 뵙게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니르바나님!!!

대단치는 않겠습니다만 음악관련 포스팅 있을때
또 와주세요~~~^^

편안한 오후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먼저 저의 사과문은 엄숙하고 진지한 마음 자세로 임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댓글은
첫째, 영면에 드신 국밥집 할머니께 예우를 망각한 행위였습니다.


둘째, 고인께는 애도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본인의 슬픈 마음을 글로 쓰신 잉크냄새님께 큰 마음의 상처를 드렸습니다. 


 셋째, 잉크냄새님의 글을 애정하시어 찾아주신 알라디너분들께 저의 황당무계한 댓글로 충격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당황하셨습니까.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한 번의 상처가 생기면 치유하기까지는 딱지가 앉아야 하고 치유되어 상처가 아문다 한들 그 흉터는 남습니다. 그 흉터를 마주할때마다 옛 상처는 늘 다시 소환이 되겠지요. 저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 몸에는 25cm의 수술 자국이 남아 있지만 늘 가려져있어 쉽게 잊습니다. 그보다 작은 것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새겨진 흉터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있습니다.


생전에 비록 허물이 있는 삶을 살았다해도 세상을 등진 망자에게는 애도하며 명복을 비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국밥을 지으시며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삶을 살다 가신 분께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할머님, 부디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영면에 드시옵소서...


잉크냄새님은 제가 처음 알라딘에 오게 된 때부터 저를 늘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저의 문체가 조신하지 못하여 건방지고 방자한 때에도 아낌 없는 성원을 해주셨지요. 마음 속으로 늘 깊이 감사드리고 있었고 변함없는 일관성에 경의를 드렸으며 깊이 존경해왔습니다.  


그런 분께 저는 지난 저녁, 큰 실망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속이 상하셨습니까 잉크냄새님. 저의  큰 잘못에 마음 깊이 사과드립니다. 저의 잘못을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주십시요.
 

그리고 잉크냄새님의 서재를 찾아주시어 글을 읽으시다가 저의 당황스러운 댓글에 충격을 드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잉크냄새님께서는 저의 체면을 생각하시어 저의 댓글을 지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잘못이 저의 오독에서 비롯된 것이니 마음쓰지 말라는 글을 주셨습니다. 잉크냄새님께는 정말로 고맙습니다. 제가 가지지 못한 한없이 너른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이에 깊이 존경과 경의를 드립니다.


그러나 사실 오독이 아닙니다. 저는 잉크냄새님이 쓰신 글의 처음 내용만 읽었던 것입니다. 조금 더 읽었더라면 결코 그런 잘못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 정말로 죄송합니다 잉크냄새님.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는 잉크냄새님께 변명을 따로 드리겠습니다.


잘못에 대한 비난은 비난하는 사람이 원할 때까지 지속되어도 좋습니다. 비난은 일종의 권리입니다. 그 비난을 다 받지 않은 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열개의 돌맹이를 맞아야 마땅한 자가 너른 마음을 가진 분 덕분에 두개의 돌맹이를 맞는 것은 사실 부당한 일입니다. 글을 지워주심으로 비난의 무게는 덜었습니다. 불구하고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도 마음이 무거운 것은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의 뜻과 사과의 뜻은 신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빠른 사과문을 드릴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저는 오후 1시 시작하여 밤 10시에 종료하고 10시 30분에 문을 닫습니다. 태어나기를 약골인데다가, 늘 사선에서 서성였고 저승사자와 동반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하여 귀가하면 시체처럼 잠에 들지요. 이러한 저의 처지를 감안하시어 늦어진 사과문에 대해서는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잉크냄새님께는 별도로 저의 변명을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변명처럼 구차한 것은 없습니다.
잘 알면서도 애써 변명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제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저의 변명을 들으시면 잉크냄새님의 상처가 분명 더 작아질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영면에 드신 할머님과 잉크냄새님 그리고 저의 댓글을 보시고 충격을 받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이 사과드립니다.


저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뜻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10일간 글을 게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읽은 후의 좋아요는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글을 끝까지 읽지 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10일 후에는 어제의 제 잘못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간단한 글을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과는 끝없이 드려야 하는 것이 맞지만 글로 드리는 사과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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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27 13: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의 처음 부분만 읽고 다 읽지 않은 상태로 단 댓글이라 돌아가신 분께 쾌유를 빈다는 댓글을 남기게 된 단순한 실수일 뿐입니다. 그걸 모욕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습니다. 상처 입을 상황도 절대 아닙니다. 사과하고 사과 받을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편하게 모월 모일에 이런 해프닝도 있었구나 하고 허허 웃고 넘겨도 될 일입니다.
항상 좋은 이웃으로 남길 바랄 뿐입니다.

차트랑 2026-02-27 16:23   좋아요 2 | URL
너를 마음으로 양해하시니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잉크냄새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잉크냄새님의 입장으로 그 상황을 바라봤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게 알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잉크냄새님의 너른 마음으로
저를 두둔해주시니
잉크냄새님께 깊은 사의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최근 판타스틱한 독일 가곡을 게시해보겠다는 전언을 어느 분께 드린 바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 가곡도 아주 좋아하여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러나 내게나 판타스틱한 것이지 다른 분들께는 재미없고 밋밋한 가곡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독일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장 좋아하는 성악가 3인의 노래를 올려볼까 한다. 그 3인은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 제라르 수제(Gerard Souzay),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이다. (작곡가는 베토벤과 슈베르트로 한정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정합'은 타로부터의 신뢰와 믿음 그리고 자신으로부터의 용기와 바른 행동의 원천이 된다. 평소 누군가가 하는 말의 내용보다는 일관성있는 그 행위를 중시하며 그에 경의를 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로 내적 부정합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내적 부정합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시시때때로 그 말이 바뀐다. 즉, 주어진 상황이 변하면 말의 내용도 따라 바뀌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말이 진심인지 전혀 알길이 없는 것이다. 결코 믿을 수 있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그리하여 정합성을 유지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하지만 나의 머리와 가슴에 부정합을 일으키게하는 두 사람이 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베토벤과 슈베르트이다. 이 위대한 두 인물을 알게 된 후로, 나는 A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시집은 B에게 가는 여인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되었다. 이는 분명 내적 부정합이지만 말이다. 나도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니 이해를 하는 것이겠지 싶다.



사적으로는 베토벤에게 가장 큰 경의를 표하며 음악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영예를 드린다. 그러나 나의 애정은 슈베르트에게 가있다. 이성적으로는 베토벤에게 시집을 가야 합당하지만 가슴으로는 슈베르트를 향하고 있는 이 부정합의 이중성, 스스로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ㅠ. 물론 바흐나 모자르트 또는 쇼팽을, 아니면 다른 작곡가를 음악사 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놓는다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니 말이다.



베토벤은 악성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28세에 이미 그의 귀는 그 능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귀 경화증을 앓고있었던 것이다. 그의 위대한 작품들 대부분은 그의 청력에 문제가 생긴 이후에 쓴 곡들이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그가 서른이 된 이후에 썼다. 그의 출현과 업적은 서양 음악사의 획을 그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서양 음악사는 베토벤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바로크의 뒷 문을 걸어 잠갔고 고전파의 새로운 문을 열어 살았으며, 낭만주의로 가는 창을 열어준 장본인이었다. 나아가 음악의 대중화는 베토벤으로부터 시작했고 후대 음악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베토벤은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아주 잘 어울리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 분덜리히가 부른  베토벤의 아델라이데 입니다. 아주 많은, 셀수도 없이 많은 성악가들이 같은 노래를 불렀지만 가장 사랑하는 버전은 분덜리히 버전입니다. 분덜리히를 편애하기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아델라이데 만큼은 이안 보스트리지도 분덜리히에게는 안됩니다 . 아델라이데는 분덜리히에게서 정녕 판타스틱한 예술이 됩니다.]]]



1797년생 슈베르트에게 1770년생인 베토벤은 아버지뻘이나 다름이 없었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베토벤이 빈에 와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베토벤이 슈베르트의 재능을 알아보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베토벤이 세상을 등지기 겨우 1개월 전에서야 슈베르트의 가곡에 담긴 비상한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슈베르트는 너무나도 수줍음을 타는 성격의 인물이었다. 베토벤을 한없이 존경했고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찾아가 인사를 드릴 용기를 감히 내지 못했다.  서로 지척에 거주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베토벤이 슈베르트의 재능을 좀더 일찍 알아봤더라면 두 사람의 만남을 그만큼 일찍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러질 못했다.

베토벤이 많이 아파서 자리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문병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냥 가면 될 것을 이 용기 없고 수줍음을 심하게 타는 슈베르트는 신들러의 안내를 받아야 했다. (하... 답답해 슈베르트 형, 진짜~)



자신을 문병온 슈베르트의 얼굴을 보며 베토벤은 그에게, '자네가 슈베르트인가... 자네를 만나고 싶었네. 좀더 일찍 찾아오지 그랬나. 자네의 악보들을 봤다네. 자네는 틀림없이 최고의 작곡가가 될걸세' 라고 말했다.
(그러게 진즉에 좀 찾아가잖구~!! 우물 쭈물하다가 둘이서 알콩달콩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그렇게 놓쳤다 ㅠ)




두 사람의 너무나도 아쉬운 만남이 있던 1주일 후, 베토벤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베토벤의  장례식이 있던 날 광장에는 2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8명의 악장들이 그의 관을 들었다. 훔멜도 그 중에 있었다. 그리고 슈베르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며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횃불을 들고 행렬의 맨 앞에 섰다. 체르니도 함께했다. 그리고 너무나 안타깝게도 슈베르트는 1년 뒤 세상을 등졌다. 그의 나이 비로소 홀로 선다는 이립, 31살이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나이이던가... 슈베르트의 죽음은 나를 정말 슬프게한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





[[[ 제라르 수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슈베르트를 가장 잘 전달하는 듯 하다 ]]]



그리고 생전에 그토록 존경했지만 제대로된 만남을 해본 적이 없는 베토벤 바로 옆에 나란히 누워있다. 서로를 이웃하여 있으니 이제 두 사람은 살아서 서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끝없이 나누고 있을 것이다. 



서양 음악사를 관통하여 다루고 있는 '음악의 유산'은 모두 11권으로 되어있다. 각 권의 전체 크기는 매우 큰 편으로 가로 23cm 세로 30cm 이다. 쪽 수는 약 200 쪽이다. 어찌보면 각 권은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4권은 오로지 베토벤과 슈베르트 만을 다루고 있다. 이 두 사람이 가지는 음악의 역사를 그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었는지 알 수 있게하는 대목이라 본다. 음악에 관한한 나는 내적 부정합을 극복하지 못한 자로서 결코 믿을만 한 사람이 아니다. 사랑하는 슈베르트여, 안녕!!


표는 베토벤에게 드리지만 마음은 슈베르트에가 가있는 이 나의 내적 부정합을 다시 발생하게 하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이안 보스트리지와 분덜리히이다. 표는 이안 보스트리지에게 드리지만 나의 사랑은 온전히 분덜리히 형께 드린다. 분덜리히 형님이 부른 슈만 '시인의 사랑'은 가곡의 새로운 표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 이안 보스트리지의 성대를 통해 나오는 독일어는 예술이 된다 ]]]



분덜리히는 전 세계의 비극을 불러온 대공황의 시대 1930년에 태어났다. 나치가 정권을 잡자 분딀리히의 아버지는 직장을 잃었다. 끝내 취업이 되지않자 분덜리히의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분덜리히의 당시 나이 다섯살, 1935년의 일 이었다. 분덜리히는 굶기를 밥먹듯이 했다.

힘든 삶을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노래로 인정받았다. 다른 프로 성악가들에게 발성법을 가르쳤다. 카라얀이 분장실로 찾아와 전속하자고 애원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전설의 그 카.라.얀.이 분.덜.리.히.에게 까였다. 물론 분덜리히께서 너무나 일정이 바빠 어쩔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그는 성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덕분에 그는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믿어주는 아내와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다. 이제 그에게 충분히 행복해도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출연하기로 계약을 하고 떠나기 전에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질 예정이었다. 아내와는 전화로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던 그가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그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의식 불명이었다. 1966년 그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의 나이 향년 35세였다.
그의 노래를 들을때마다 나는 눈물이 흐른다. 분덜리히여 안녕....!





[[[ 최근 어느 분의 서재에 방문했다가 읽으시는 책의 두께에 압도되어 껌뻑 죽고 말았다. 엄메 기죽어~!!  하는 심정 말이다. 그런데 그 두께 좋은 책에 껌뻑 죽으면서도 기분은 아주 좋아진다. 그런데 어느 날, 중고 서점에 들렀다가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서 얼른 들여온 이 책, 음악의 유산을 구입한 후 가장 먼저 책장을 열어본 것은 4권 베토벤과 슈베르트 였다. 그런데 뜻 밖에도 그 안에서 A4용지 2장이 반 접혀서 끼워져 있었다. 그걸 펼쳐보는 순간... 그만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베토벤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가족사, 음악사를 모조리 정리한 페이퍼였다. 전 주인은 진정한 베토벤의 마니아였던 것이다. 나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런 마니아 말이다. 나는 그만 책의 전 주인에게 껌뻑 죽고 말았다. 음메 기죽어~!! ]]]




[[[ 음악의 유산 전 주인이 책 속에 남겨둔 페이퍼, 아... 도대체 베토벤을 얼마나 좋아하는거지??? 어느 알라디너가 읽는 책의 두께에 껌벅 죽듯이 이 페이퍼에 그만 다시 껌뻑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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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6-02-24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곡에 대해서 잘 모르는 문외한이 읽어도 재미있는 글! 운동 마치고 와서 읽으니 더 즐겁게 읽히는 것도 같아요. 올려놓으신 클립은 천천히 들어보도록 할게요. 슈베르트과 베토벤이 만난 이야기는 영화 속 한 장면인걸요.

차트랑 2026-02-24 16: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수이님,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전음악은 대중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불구하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십시요 수이님~

추신ㅡ 아, 운동을 하신다니 부럽습니다.
저는 워낙 약골이고 늘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이라
등산이나 운동하시는 분들이 가장 부럽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수이님~

잉크냄새 2026-02-24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재들은 다들 단명하는군요. 삼십대로 기억하는 누군가의 죽음은 39세의 체게바라였는데 오늘 또 두 분이나 삼십대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ㅠㅠ

차트랑 2026-02-24 19: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슈베르트가 그렇게 일찍 세상을 등진 것이 저는 너무나도 안타깝더군요.
그의 가곡을 들을때마다 안타까움과 슬픔이 찾아옵니다.
아미타불....

좋은 저녁되십시요 잉크냄새님~

추신ㅡ 체게바라가 향년 39세였군요.
의의 업적에 비하면 뜻밖이로군요 ㅠ

2026-02-26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26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