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아래의 책들이 50% off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노엄 촘스키의 책을 알라딘에서 50% off 하여 내놓은 것을 보고 떠오르는 바가 있어 바로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이 점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ㅠ.ㅠ

 

 

누구는 '노암'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노엄'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놈'이라고도 한다...'노암'이든 '노엄'이든 '놈'이든 뭐 다 같은 사람을 말한다. 바로 '촘스키'~다.  그는 본디 언어학자이다. '변형생성문법'이라나.. 하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분야의 창시자라고 한다. 유한한 개수의 규칙에 따라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나...뭐 알 수 없는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촘스키는 언어학이라는 분야를 전공하는 다수의 학자들이 생각하던 그런 방향과는 전혀 딴 판으로 생각한 최초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평소 언어 행위는 창조의 행위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 만분의 일 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어서인지 그 '놈'이라는 그분이 괜히 가깝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그 '놈'은 나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하튼 그 '놈' 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즉 언어라는 인간 정신의 창조적 측면을 통해 인간적 자유와 창조적 사유 및 행동을 인간의 본질로 간주해버린 독특한 '놈'이다. 좀 더 나아가자면 외부의 간섭행위 즉 인간(자신)을 압박해오는 환경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친 격이라고나 할까...그런 사유를 한 뒤부터 그 '놈'은 점점 미쿡이라는 나라에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그 뿐이 아니다. 그 '놈'은 유턔계이면서도 유태인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가차없는 맹공을 퍼부었다. 유태인들이 그 얼마나 똘똘뭉치는 집단이던가...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놈'이 그런 짖을 하다니...결국 그 '놈'은 유태계라는 테두리에서 당연 쫒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놈'은 이를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강한 신념을 버릴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수많은 저서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한 때, 그러니까...대한민국의 서점가를 그 '놈'이 강타하던 그 때의 일이다. 지금의 상황은 잘 알지 못하겠지만 당시의 그 '놈'은 대단한 '놈'이었다. 그 '놈'의 저서를 읽지 않은 놈은 말 그대로 놈이 되는 것이었다. 대화에 낄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어떤 친구가 말끝마다 '촘스키, 촘스키'하는 바람에  또 다른 한 친구가 '촘스키'란 시키가 도대체 '어떤시키'여?? 하고 불평을 토로했다. 그 옆에 있던 내가 대답해주었다. 그 '놈'시키 '아주 대단한 시키'여~!!! 라고...

 

이 책은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라는 타이틀로 대단한 시키인 그 '놈'이 그동안 기고했거나 말언한 내용들을 싹 쓸어다가 묶어 놓은 것이다. 물론 이 후에도 그의 저술은 여전히 출간되고 있는 중이다. 벌써 그 '놈'의 나이가 낼 모레 90인데도 말이다. 이 세권의 책이라면 촘스키에 대해서 상당한 정보를 얻고 공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한마디로 그 '놈'시키의 저서를 읽지 않으면 뭐 대화에 끼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촘스키의 저서들은 이른 바 유식한 체를 하기를 좋아하는 식자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 '놈'시키의 책을 읽는 행위는 자신의 지적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고 생각들 했던 모양이다. 심지에 일단의 동호회에서는 '촘스키'란 단어가 수천 번도 더 올라 왔을 것이다. 촘스키의 사상으로 무장을? 하고 덤벼들면 아직 촘스키를 모르는 넘들은 쪽도 못쓰고 결국 퇴장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노엄 촘스키...정말 대단한 스키~

 

그러다 보니 서점가에서도 촘스키의 저서들을 활발하게 출간하기 시작했다. 촘스키의 사상이 대한민국의 강역을 강타한 것이다. 마치 지난 몇 년간 '정의란 무엇인가'를 국내에서 출간한 후로 마이클 샌덜이 급 부상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이클 샌덜은 저술이라는 강력한 힘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수많은 수강생들 앞에서 멋드러지게 뽐을 내면서 강연을 하고 돌아갔고, TV에서도 그의 강연을 시리즈로 방영하는 열풍을 일으켰다. 지금도 그의 저서를 잘 팔리고 있는 중이다. 하도 샌덜 샌덜하길래 나도 하나 사서 신었다. 그리고 리뷰도 적었다 ㅠ.ㅠ 

 

푸코와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들이 과연 안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매우 흥미로운 책임에 틀림이 없다.

 

여하튼 노엄 촘스키는 붐명히 일대를 풍미한 정신 세계를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당대에 그토록 대한민국의 식자층들에게 강력함 임팩트를 날렸다는 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높은 기상과 정신은 대단히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그의 저서들을 읽어본다면 그 이유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왼 쪽의 책은 촘스키가 겂도 없이 미쿡의 진면목을 한마디로 완전히 까발긴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촘스키의 저서라면 매우 조직직이며 섬세한 미국의 구조적 실태를 간파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특히 언론 플레이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

 

오늘 쪽의 책은 제목 그대로이다. 흔히 촘스키는 지식인이라고 한다. 그는 지식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그리고 자신의 소신대로 일생을 살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지식인들에게 그 '놈'시키는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의 생각을 빌어 과연 지식인은 어떤 책무를 자져야 하는지 분명하고 인상적으로 상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노엄 촘스키의 저서들은 수없이 많다. 어느 책을 골라야 할지 머리가 지근거릴 지경이다. 다양한 그의 저서들의 리뷰등을 찬찬히 살핀다면 자신이 원하는 알맞은 책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은 없어보인다. 촘스키는 사실 홀대 받아도 좋은 그런 '놈'스키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그 '놈'스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번의 페이페에는 그 '놈'스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을 살펴볼 생각이다...양 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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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반 값으로 건지는 책들

 

아직 읽지 않았거나 읽을 계획을 가진 분들이라면 알라딘에서 행사하는 이달의 반 값의 책 중에는 정말 건질 만한 책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물론 이미 읽은 책 중에서 아주 유익했다고 여기는 몇 권을 간단하게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물론 연식은 좀 되었다 손 치더라도...사실은 50% off의 대우를 받기에는 정말 아까운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아까운 책들이 꾸준히 읽히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352쪽의 책으로 50% off 하여 7500백냥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출간했던 장지글러가 훨씬 더 많은 정보와 내용을 추가하여 공들여 보완한 책이다. 한 때 세계는 왜 굶주리는가 라는 책이 탐욕의 시대보다 더 잘나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책의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은 아닌가...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세계의 경제가 움직이고 빈곤한 나라들이 왜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지에 대한 작동원리를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다.

 

 

 

  

  328쪽 분량으로 51% off 하여 5880냥

 

워낙 잘 알려진 책이므로 잘 아시겠지만 장하준의 저서이다. 탐욕의 시대와 잘 짝을 이루는 책이며 세계 경제의 작동원리 역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만약 경제에 관심이 없으셨던 분이라 하더라도 탐욕의 시대와 더불어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은 후에는 현대 경제의 진정한 작동원리인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꼭 신자유주의에 관한 책을 제값주고 사지 않아도 말이다...  

 

 

 

 

280쪽 분량으로 50% off 하여 6000냥

 

콘서트 시리즈가 한창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과학 콘서트가 공전의 대박을 쳤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정말 과학 콘서트는 대단히 좋은 책이라는 강렬한 느낌을 아직도 지울 수 없다. 다음으로 강열한 인상을 준 책이 바로 철학콘서트이다. 철학이 재미없다고 생각해왔다면...그리고 앞으로도 철학은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라도 생각해왔다면...이 책을 한 번 만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철학이 좋아지기 시작할 학률은...반반 ㅠ,ㅠ

철학서를 좋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황광우의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고 말씀 드릴 밖에는....

 

 

 

 

364쪽 분량으로 50% off 하여 6000냥

 

솔직히 개인적으로 카네기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그럴만한 개인적 이유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최근 몇 년간 자기 개발서들이 헤아릴 수 없이 쏟아져 나온 것이 사실이다. 서점에서 여러권의 개벌서들을 잡고 읽어보았지만 과연 그 자기 개발서 들 중에 쓸만한 책이 몇권이던가...대부분 책장사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오늘도 자기 개발서가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개발서는 딱 한 권이면 족하다...바로 이 책이다.

 

 

 

 

 238쪽 분량 50% off 하여 4900냥

 

촘스키가 한 물 간 것인지...아니면 촘스키를 아는 세대들이 나이가 든 탓인지...어쩌면 책을 많이 내놔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여하튼 촘스키도 홀대를 받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다.

젊은이들에게 강력 추천해주고 싶은 작가가 촘스키이다. 뜨거운 피를 가진 젊은이들에게 그 어느 작가 보다 강력한 임팩트를 선사할 것이다. 한 때 촘스키를 모르면 바보취급을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촘스키의 책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화두가 되었고 그의 주장은 그렇게 인용되었었다...그러나 여전히 그는 살아있다...

 

 

 

326쪽 분량의 50% off 하여 7500냥

 

우리는 아프리카를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빈곤하고...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게된다. 또한 왜 아프리카가 그토록 빈곤을 지속해야 하는지도 잘 알 수 있다.

 1961년 한국의 GNP 80불, 가나의 GNP는 160불. 가나는 우리보다 60년대 당시 2배 더 잘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가나인들이 우리를 만났더라면 우리에게 빈곤한 나라라고 말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런 가나가 과연 왜 지금의 가나가 되었단 말인가...그 해답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이 잘못한 탓이 아니다...결코....

 

 

물론 이외에도 좋은 책들이 있을 것이지만 미처 읽어보지 않은 책들이기에 언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위의 책들은 인상 깊게 읽은 책들이고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다.  참고로 개인적인 사견으로 평가한 책들이라는 점을 참고하시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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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에는 평소 선생님으로, 인생의 스승님으로 존경하는 한 분이 계시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생님이라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흔히 말하는 진유(眞儒)란 바로 선생님을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워낙 훌륭한 인품을 지니신 선생님인데다가 유학자로서의 고매함뿐 아니라 역사, 의술, 보학, 지리학에서의 깊이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분이다. 기절을 지닌 선비는 조선에서만 찾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닌 듯 하다. 선생님의 기절 또한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이런 분이 또 계실까...

 

 그러나 선생님께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 스스로의 함자는 언제나 하상봉(何相逢)이시다... 이번에 방문했던 곳에서 일하는 분께서 선생님을 다시 만난 기쁨도 기쁨이려니와 아쉬움을 달래려는지 헤어지면서 선생님의 함자가 정말로 하상봉이시냐고 묻는 바람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저 껄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분에게도 하상봉이라 일러두셨던 모양이다.

 

 

 

 

 

 

 

 

 대전은 조선의 역사와 관련한 유적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대전은 고려 때 망이 망소의 난(1176년)의 중심지역이기에 일찍이 역사의 유래가 깊은 곳이다. 또한 역사적 사건들이 매우 치열했던 인조조때부터 숙종조까지 우리 역사와 관련된 인물들이 있는 곳이 대전이다. 인조반정이 있은 후부터 숙종조까지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방문해보기로는 대전만한 곳이 또 없다.


大田의 본래 지명은 태전(太田)이었다고 한다. 태전이라는 말에는 드넓은 벌이라는 의미와 콩을 많이 심었던 고로 콩밭이라는 의미도 함께 들어가 있다고 한다. 콩밭 역시 太田이라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말로 한밭을 뜻하는 太田을 大田으로 개명했다는 것이다. 개명을 한 주범은 바로 이등박문이라고 한다. 대전은 원래의 지명과 관련한 ‘한밭’을 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공공기관 및 장소들이 많은데 한밭 초중고, 대학교는 물론 한밭도서관을 비롯 한밭 식당까지 그 범위다 다양하다. 혹시나 우리의 옛 이름인 태전을 태전에게 돌려주는 것은 어떨지...하는 생각도 든다.


 일제가 우리의 지명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바꾼 곳은 한 두 곳이 아니다. 그 중 한 예가 충청남도의 태안에 자리잡은 안면도(安眠島)이다. 현재 안면도(安眠島)라는 지명도 본디 안민도(安民島) 였다. 즉 민(民)을 평안하게(安) 하는 섬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편안하다는 뜻의 안(安)자를 잠자다는 뜻의 면(眠)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백성을 편안케 하는 섬이 졸지에 꾸벅 꾸벅 졸거나 아니면 잠만 쿨쿨자는 그런 섬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섬의 이름까지 개명을 하다니...정말 지독한 넘들이다. 그런데 희안한 사실은 그 곳 주민들은 아직도 그들 스스로 ‘안민도’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대전에는 또한 우리 문화와 관련한 지명으로 ‘문화동’이라는 동을 가지고 있다. 문화유적이 아주 많은 곳이 대전이라는 의미이겠다. 문화동에는 한밭 도서관이 있는데 최근 대출순위를 살펴보니 Who? 시리즈가 1위(who? 힐러리 클린턴)에 랭크되어 있고 또한 같은 시리즈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 학생들 역시 호기심이 많다. 호기심은 자기 발전의 원동력... 그런데.. 대전 어른신들도 책을 잘 안 읽으시나보다 ... 랭크된 책 대부분 학생용이다. 이 책을 읽은 학생들은 여학생들일까...ㅠ.ㅠ

 


대전에 사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대전 광역시 대덕구에는 송촌동(宋村同)이라는 마을이 있다. 온통 은진송(恩津宋)씨의 본 고장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다. 오죽했으면 송촌초등학교 송촌중학교 송촌고등학교가 다 있을까... 그러니까 이 곳의 지명이 바로 宋村인 것이다. 동(同) 이름의 宋자는 바로 恩津宋씨의

宋자를 딴 것이다. 대전에서 宋氏 집안이 행사하는 강력한 파워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물론 학자로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 많다. 취금헌(醉琴軒) 박팽년, 탄옹(炭翁) 권시, 백호(白湖) 윤휴등은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역사의 인물들이다.

 

특히 대전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구가했던 기호학파(畿湖學派)는 성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 크다. 권시의 손자이고 송시열의 외손인 권이진은 유형원의 실학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유명하고 충신 박팽년이나 백호 윤휴등은 바로 진유(眞儒)이다.) 은진송씨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인물로는 그 이름도 유명한 우암 송시열선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3,000번이나 등장한다고 하니 말 다했다. 또한 동춘당 송준길선생도 있다. 역사 학자들은 당시 조선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 이 두 사람을 양송(兩宋)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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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1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님은 뼈대있는 가문의 후손 맞아요.
진유의 뜻이 뭔지 저 같이 평범한 집 규수는 알길이 없습니다.
하상봉도 진짜 존경하신다는 스승님의 존함인 줄 알았잖아요.
암튼 존경하는 스승이 계시다는 건 복인 것 같아요.
저는 공부를 게을리했더니 그다지 존경할만한 선생님은 못 뵌 것 같습니다.ㅠㅠ

차트랑 2012-03-10 17:08   좋아요 0 | URL
어이구...무슨 말씀을요..
요즘 뼈대 뭐 그런 말을 하는 시대는 아닌뎅^^
그리고,
하상봉의 뜻을 이미 간파하고 계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쩌십니까요^^

스스로 공부를 게을리하셨다는 말씀은
엄살이 좀 심하신 것입니다..
공부를 게을리해가지고서는 그렇게 수준있는 글을
쓸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스텔라님 글 읽으면
제가 다 바짝 쫄거든요~!!!
글발이 장난 아니시면서 ㅠ.ㅠ
 

노래를 참 잘부르는 뉴요커가 하나 있다. 2001년 데뷔앨범을 내놓은 이 후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듯 하다.

 

 

 

 

 

 

 

 

 

 

같은 음반이지만 좌측은 라이센스반 우측은 수입반이다. 조쉬그로반의 음반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데뷰반이다. 라이센스반과 수입반의 음질 차이가 있냐 없냐로 설왕설래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아왔다. 고전음악의 음반들로 수없이 경험한 바이지만 조쉬그로반의 두 음반을 비교 청취해본 결과 라이센스반과 수입반의 음질 차이는 확연하다.

 

10년이 넘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그동안 여러장의 음반을 발매해왔지는 데뷰앨범을 능가하는 음반은 없다고 생각한다. 데뷰반이 최고반이라니...그만큼 데뷰반에 신경을 쓴 탓일까...음반에 실린 곡들이 한결 같이 메인곡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다. 수록곡 모두가 한결같이 좋은 음반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랄수 밖에...조쉬그로반은 실제로 그런 음반을 내놓았다. 그것도 데뷰를 하면서...데뷰반은 영원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매우 좋은 음반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반을 출시하자마지 미국에서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대박을 터트리는 바람에 바로 콘서트반을 디비디로 내놓았다. 라이브 실력이 워낙 출중한 덕분에 녹음실의 음반이나 별 차이가 없다. 여하튼 대단한 친구다. 데뷰곡들로 가득 차있다...

 

 이친구는 이탈리아 어 로도 도래를 불렀는데 Gira Con me 가 그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어는 발음하기가 매우 쉽다. 같은 언어의 모체를 두고있는 프랑스어와는 전연 딴판이다. 프랑스어를 한 학기 수강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영어의 발음과 프랑스어의 발음이 헷갈리는 것이 아주 대책이 없다. 오죽했으면 교수님께서 '자네 요즘 뭐하고 다니길래 전공도 잊어버리나??'  전공 강의 시간에 영어를 프랑스어로 말해버렸던 것이다. 이런.... 강의가 끝나고 친구와  함께 걸어가면서, '미치겠다~!!' 했더니... 교수님께서 요즘 말로 '고래~??'하시는 것이 아닌가...때마침 교수님도 연구실로 돌아가고 계셨던 것이다. 우아~ 진짜 미쵸...

 

그렇게 나를 헷갈리게 한 것이 바로 프랑스어 였다. 그러다가 겨우 프랑스어 발음에 익숙해지려니 그만 학기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어를 발음하는데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발음 자체가 매우 쉬워서 따라부르기가 아주 좋다. 아래 두번 째 영상물의 Gira Con Me를 보시면 아실 것이다.  조쉬 이친구가 발음을 또 얼마나 또박또박 잘 대주는지 모른다. 가수는 이래야되 ㅠ.ㅠ

 

 

 

 

2008년 크리스마스에 내놓은 음반이다. 

이 외에도 무지막지하게 음반을 내놓았다. 뻥을 좀 보태서 모두 담기에는 페이퍼가 모자랄 지경...

크리스마스가 되면 때를 놓칠세라 웬만한 가수들이 음반을 내놓는다. 과일 장사만 추석과 설에 대목을 보는 것이 아니다. 가수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바로 대목 장사의 타이밍이다. 

 

그러다보니 대목 장사보는 것의 품질치고 질 좋은 게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애들 장난하듯이 음반을 기획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건 좀 아닌데....

 백화점으로 말하면 일종의 기획상품이기 때문에 열과 성을 다해 품질을 높일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백화점을 이용하는 고객들 역시 기획상품이려니...하고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다. 또 크리스마스가 지나버리면 다시 듣기까지 다음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야 한다. 조쉬의 이 음반도 기획인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품질이 매우 우수하다. 왜냐...음반의 준비를 잘한 것이다. 또한 이 친구의 노래 자체가 퀄러티가 높다. 그래 맞다. 조쉬는 흔히 말하는 퀄러티가 있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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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2-03-0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신듯... 저는 전혀 모르는 세계입니다.
그저 부러워할 뿐이죠.

차트랑 2012-03-07 21:19   좋아요 0 | URL
칭찬해을 해주시니 기분은 좋은데요
사실은...
조예가 깊다기보다는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낭만인생님은 심리학, 교육학,
더군다나 동양의 고전에도 조예가 깊으시잖아요
이보다 더 부러운 일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사실 중용의 장구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은 조선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흔히 선비라 일컫는 조선의 엘리트들은 유학을 백성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활용했고 고전을 해석하는 방식은 宋代 주희의 그것을 표본으로 하고 이에 한 치의 어긋남이 있는 해석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윤휴는 중용의 장구를 새롭게 다듬었고 그 해석을 주희의 그것과는 다르게 시도했었다. 윤휴는 중용장구보록서(中庸章句補錄序)와 중용대학후설(中庸大學後說) 등의 저술을 남겼고 이는 윤휴 빛나는 최고의 업적 중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주희의 해석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였던 송시열은 그런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갔고 이는 결국 조선 최고의 유학자 중 한사람인 윤휴가 사사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극단적인 예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조선 당대의 풍토가 그러했던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었고 주희의 해석을 따르지 않는 자는 철저하게 매장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조선이었다. 같은 시가 중국에서조차 한물간 주희의 학문을 그토록 열열히 신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유학이 조선의 지배 이념이었기 때문이었다. 주희의 학문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권력이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기득권을 가진 집권세력에게는 참을 수 없는 권력과 재산의 손실을 의미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백성을 지배하고 왕을 견제하는 주요 무기로 사용했던 조선의 집권세력들의 유학은 실상 절름발이 학문이었으며 현대인들에게는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겠으나 유학의 순수성은 그 폐해만으로 평가 할 수는 절대로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동양 고전의 가르침을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것이 후학들이 해야 할 책무임을 저자 김용옥선생이 강조하는 것이다. 더불어 중용의 해설을 시도한 김용옥선생이 중용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경전이라고 평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중용을 좀 읽었다고 리뷰를 작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교(敎)의 참된 뜻의 깨달음을 줌과 동시에 배움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는 대목에서는 비단 배우는 사람에게 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향하는 중용의 가르침이 또한 지극히 간곡하고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배우는 자세 또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를 가르치는 장구 중 한 구절을 리뷰로 대신하고 싶다.



배우는 사람의 자세: 대학과 중용의 가르침 비교


大學에서 발전의 과정을 전하고 있는 8조목은 매우 유명한 문구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이다. 

이 말을 어른이 아닌 현대의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로 재해석한다면 ‘격물치지-공부를 열심히하여 이치를 깨닫고, 성의정심-매사에 정성을 하다며 마음을 똑바로 쓰고, 수신제가-몸과 마음을 잘 가다듬으며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면, 치국평천하-나라에 쓰일 훌륭한 재목이 될 수 있다.’ 정도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해석은 학생들에게 맞는 버전으로 해석한 것이지 원래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이러한 발전의 단계라고 여기는 대학의 8조목과 견줄 수 있는 중용의 장구는 23장이다. 대학의 8조목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른데 그 뜻을 살펴보면 어떤 느낌의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주희의 대학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선비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문구가 친민(親民)이냐 신(新民)이냐이다. 원래는 친민이었던 것을 정자(程子)가 신민으로 바꾸었고 주희가 이를 알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주장이다. 친민과 신민의 차이는 뜻하는 바가 매우커서 신민으로 이해할 때 백성들은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정치이념에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 곳은 다름아닌 조선이었다. 신민이라는 말은 무지한 백성을 가르친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는데 곧 글을 모르는 조선의 대다수를 형성하고 있던 백성들은 수신의 자격을 갖지 못하며 결국 치(治)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글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드는데 일조한 글자가 바로 신민이다.   

 

 

 

중용의 23장은 다음과 같다.

其次致曲

기차치곡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箸, 箸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곡능유성,  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唯天下至誠 爲能化.

 유천하지성 위능화


다음으로 힘써야 할 것은 치곡(致曲)이다. 치곡(致曲)은 아주 작은 모든 사물에 이르기까지 곡진(曲盡)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간곡(懇曲)하다’는 표현에 낮설지 않다. 여기서 간(懇)이라는 말은 ‘정성을 다하여 마음 쓰고 노력을 다한다’는 뜻으로 성(誠)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치곡(致曲)은 바로 ‘정성을 다하여 노력하는 마음이 모든 곳에 이르도록 힘쓴다’는 뜻이 되겠다. 아마도 대학의 성의(誠意)라는 말은 중용의 曲과 같은 말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점은 대학의 가르침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대학은 성의 정심에 이어 수신제가(修身齊家)라는 강력한 의무를 지운다. 조선에서 수신(修身)이라는 말은 매우 엄격하면서도 강력한 무기였다.

 

병자호란은 당시 조선의 강역를 한마디로 쑥대밭을 만든 사건이었다. 조선의 세자였던 소현과 왕자였던 봉림 그리고 척화를 주장했던 대표 인물들을 비롯 약 60만 명에 달하는 조선 사람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이는 조선의 자존심에 엄청난 수치와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청에서 돌아와 왕위를 물려받은 효종은 이를 부드득 갈면서 북벌을 천명했고 이를 강력하게 추친 코자 했다. 그러나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론은 효종에게 북벌의 덕목으로 수신(修身)을 강조하면서 효종의 손발을 묶어놓았던 것이다. 선비들은 조선의 왕에게 조차 수신이라는 말로 그 뜻을 뭉개버릴 정도였다. 그러니 글자를 모르던 일반인들에게 수신제가란 과연 가당키나 한 말이던가... 수신제가(修身齊家)라는 말은 이렇게 조선의 백성들에게 넘을 수 없는 신분의 건널 수 없는 선 그어준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중용에서는 수신이라는 말로 이어 놓은 것이 아니라 곡능유성(曲能有誠)이라는 말로 잊고 있다. 지극히 곡진하면 성(誠)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말하면 誠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곡진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면 성(誠)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인 것이다.

다음은 성즉형(誠則形) 이다. 모양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정성을 다하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형체로 구체화된다. 현대적으로는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멋진 모습을 갖게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은 형즉저(形則箸)이다.

간곡하며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면 그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말, 즉 저(箸)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상대방이 성심을 가지고 언행을 하는 것인지는 금방 드러나게 마련이다. 왜냐면 그 사람의 언행은 바른 마음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사과나 감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마음으로 곡진한 마음으로 감사 또는 사과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그 눈빛과 태도를 보면 드러나게 마련 아니던가... 그러니 형즉저(形則箸)인 것이다.

  

이어지는 단계는 저(箸)하면 명(明)한다 즉 箸則明이다. 곡진한 마음을 다한 구체적인 개인과 사물의 형태가 드러나면 밝아지기(明) 시작한다. 좋은 일, 보람 있는 일을 한 사람의 얼굴에 밝아 보이는 이치와 같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반대로 나쁜 짖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밝을 리가 없다. 마음이 어두우면 얼굴도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밝은 얼굴이 그 얼마나 좋은 기운을 가진 얼굴이던지....


 명(明)하면 동(動)한다 즉 明則動이다. 말하자면 밝은 모습으로 매사에 임하고 친교를 나누는 사람들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모이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좋은 사람 좋은 것 주변에는 좋은 사람과 좋은 것들이 모이는 이치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도 이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들이 모이면 무엇인가 좋은 쪽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동(動)이다.

 

이렇게 動하면 변(變)하게 된다.  동즉변(動則變)인 것이다. 움직이는 힘은 변하게 마련이다. 간곡한 마음과 성실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꾀한다면 아니 될 일이 없다. 사람의 일이란 그런 것이다. 그것이 바로 變이다.


마지막으로  變則化이다. 變과 化는 그 뜻하는 바가 다르고 한다. 變은 외형적인 변모를 뜻하고 化란 형질의 바뀜이다. 變을 이루어 내면 비로소 化에 이르게 된다. 化를 이루고나면 현재의 나는 이전까지의 내가 아닌 것이다. 나는 온전하게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된다. 보다 더 훌륭하고 보다 더 인간적이며 보다 더 멋진 사람, 化를 이루어 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 즉 化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天下至誠, 오직 천하에 성(誠)만이 있을 뿐이다. 唯天下至誠 爲能化


인간이 이루어내는 化는 자신을 새롭고 훌륭한 한 인간으로서 키워낼 수 있다는 뜻이 되고 나아가 세상을 새롭게 바꾸어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루어 낸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분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루어 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化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化를 이루어 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曲, 誠이 아니면 불가능 하다는 뜻을 가르치는 고전이 바로 중용인 것이다. 그것이 공부이든 인격이든 무엇이든 간에 지극한 정성에서 출발한다고 말하는 중용의 가르침은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大學에서 가르치는 修身齊家와는 전혀 다른 말씀이다. 오직 천하의 至誠만이 化를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매사에 마음을 다하여 지극하고 곡진한 정성을 들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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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2-04-1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글이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저의 조잡한 리뷰가 부끄러워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