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의 인간관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교양총서 2
윤호진 지음 / 경인문화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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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절지최(朝鮮氣節之最) 조남명을 알고싶은 마음에 남명학 관련 출판물들을 하나 둘 씩 읽어가는 즐거움을 그 무엇에 비견할 수 있을까... 남명에 관한 책을 읽을 수록 왜 그는 朝鮮氣節之最로 일컬어지는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현대의 보다 많은 독자들이 남명을 읽고 배웠으면 하는 바램이 커갈 뿐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남명의 인간관계를 통하여 우리가 남명을 배울 수 있도록 해준다. 모두 6장으로 나누어 가족과의 관계, 벗과의 관계, 임금 및 권위와의 관계, 제자와의 관계, 당대 학자들과의 관계를 조명하고있다.  

이중 가장 인삼적이면서도 독자인 나에게 큰 일깨움을 주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가족과의 관계였다. 조남명은 '마음을 밝히는 것이 경이요, 바깥으로 결단하는 것이 의'라고 가르쳤으며 몸소 실행해 옮긴 분이었다. 그런 조남명의 가족관은 우리가 예 성현들의 가르침에서 알고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새삼 효가 무엇인지를 새로이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남명에 따르면 효란 몸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부모에게 육체적인 안락을 제공하기보다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라고 하셨다. 이는 우리도 흔히 알고 있는 효의 의미일 것이다.  

조남명은 부부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일깨움을 준다. 부부는 상하의 관계가 아니라 상경의 관계라는 것이다. 요즘은 남녀평등에 관한 대중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 있기는 하지만 조남명께서 말씀하신 상경의 의미는 상실되어 있는 듯하다. 상경이란 서로 공경한다는 뜻이다. 상경은 배우자를 마치 손님을 대하듯 서로 존대하면서도 상보적이고 상생의 의미를 가진다. 음과 양, 건과 곤은 상하의 개념이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라고 풀이하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있는 조선 시대의 남존여비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오히려 배우자에게 예를 다하여 대하라는 의미심장한 뜻을 가지고 있는 부부의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상경의 관계라면 과연 우리의 현실처럼 부부가 서로 이별하는 이혼율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서로 존중하며 조심하는 마음이 없이 서로를 대한 결과 이와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비록 약 500년 전의 남명 조식선생께서 가르치고 실행한 상경하는 부부관계의 덕목이 간절할 뿐이다.  

두번 째 장은 벗과의 관계이다. 남명이 생각하는 벗의 개념을 현대인들이 배우고 실천한다면 아마도 우리들의 사회는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남명은 사람을 사귐에있어 신분과 같은 외적인 면 보다는 마음과 행동을 보고 방정한 벗을 시귀었다. 남명의 성격과 학문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의표가 고결하고 마음이 통하는 벗을 벗으로 사귀었다. 마음이 바른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동주 성제원, 청송 성수침, 대곡 성운, 황강 이희안등이 그러했다. 독자는 여기서 남명의 우도友道를 배울 수 있다. 정녕 마음으로 사귄 친구와의 우정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는다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마고우 수어지교 혹은 막역지우하는 말을 알고있다. 그러나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말에서는 한동안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과연 그 친구를 위해서 나의 목숨도 기꺼이 내 놓을 수 있을지를.. 남명의 벗은 바로 문경지교刎頸之交였던 것이다. 이해에 휩쓸려 제대로된 우도를 실현하고 있지 못하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소리없는 일침을 하고 있다. 남명의 우도를 소중히 간직하여 따를 일이다...

남명은 몇차례 벼슬을 제수받았지만 출사하지 않았다. 회재 이언적등은 남명의 고매함과 학문적 깊이 그리고 그의 인품등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그리하여 국가과 백성을 위해 초야에 뭍혀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하여 천거를 하게된다. 그러나 단성 현감으로 임명되자 남명은 소위 '을사사직소' 혹은 '단성현감사직소'라고 불리는 상소문을 올린다. 이 상소문에서 남명의 날카롭고도 냉철한 지적은 명종년에 조선을 4년동안 떠들썩하게 만든다. 심지어 신교神交라 자칭하던 퇴계마저도 남명을 비판하고 나섰으니 나머지의 관료들이야 오죽했으랴.. 

그러나 오직 사관만은 남명의 마음을 알아주고있다. 군신의 예를 모른다 칭하기에 앞서 정녕 군과 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있는 진정한 조선의 선비였던 것이다. 시대는 관료들이 부패할대로 부패하여 백성들에게 학정을 일삼던 때이다. 임꺽정이 살던 시대였으니 관리들의 학정은 이미 짐작할만하지 않겠는가... 남명의 목숨을 건 상소에도 불구하고 조정에서는 백성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숙종대에 이르러 장길산이 등장했던 것이었다. 남명의 군과 백성을 위한 애절하고도 날카로운 상소를 가벼이 대하지만 않았더라도 조선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명에게 군에 대한 신의 관계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군을 사모하는 마음은 군으로 하여금 현군이 되도록 고언하고 백성을 밝히기를 죽음으로 호소하는 것이었다. 과연 퇴계는 남명의 이러한 행위를 타박하고고 마음이 편안했을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렇듯 남명은 학문에서 뿐 아니라 다양한 관계에서도 우리에게 커다른 교훈을 아끼지 않고있다. 현대의 우리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교훈을 주고있는 조남명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우리들의 삶속에서 실현할 수 있다면 현대의 각박한 삶을 결코 탓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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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과 퇴계사이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교양총서 12
정우락 지음 / 경인문화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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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氣節之最의 百年神交, 千里神交 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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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과 퇴계사이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교양총서 12
정우락 지음 / 경인문화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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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를 일컬을 때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홈모하는 마음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신교(神交)라 칭하면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주저없이 진솔한 마음을 전했고, 이는 때로 의견의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흔히 남명학파와 퇴계학파라는 양대 산맥의 학문을 일궈낸 두 인물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에게는 대립각을 형성했던 학문과 사상의 두 거두로 각인되어 있는 듯 하다. 

퇴계는 남명을 일컬어 노장에 병든 사람이라며 성리학적 비순수성에대한 질타를 했고, 남명는 퇴계를 향해 성리고담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빠져버린 비현실적 학문이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남명은 나라에 도가 시행되면 마땅히 나아가 자신의 학문으로 경륜을 펴고, 도가 시행되지 않을 때 초야에 물러나 스스로를 연마하고 닦는 것이 선비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이는 남명의 관점에서 보아 과거에 올라 청요직을 지냈던 퇴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는 사상적 배경이 된다. 한 편 퇴계의 입장에서 남명이 임금에게 올린 무진봉사는 너무 직선적이며 격하다는 점을 들어 남명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남명의 무진봉사는 당대 현실 정치의 문제점을 따뜸하게 지적함은 물론 방납제에대한 비판을 상당한 날카로움을 가진 글이었던 것이다. 퇴계는 이에 "뜻은 곧으며 말은 부드러워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충분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남명과 퇴계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남명에게 학문은 현실적으로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반영이 되어야 하는 수단이었던 반면 퇴계의 학문은 순수한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측면이 강했던 것이다. 물론 성리학이 가르치는 정치의 덕목을 관리들이 잘 따라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기반으로 사용했더라면 문제가 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현실은 초절 기개를 가진 선비만이 목숨을 걸고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리들은 부패했고 특히 방납제도의 가혹함은 백성이 스스로 고을을 떠나 화적떼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르곤 했던 것이다.      

남명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한계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에 군왕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놓게되고 이는 퇴계에게는 신하로서의 무례함을 지적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었다. 학자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조선 최고의 두 선비가 이처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그 배경을 이 책은 아주 잘 논술해주고 있다.  

 16세기는 성리학이 고도록 발전해가던 시기였다. 남명은 사물을 보면서 세상을 살피고자했고, 퇴계는 사물을 보면서 이념을 살피고자했다. 즉, 남명의 학문은 세상과 관계해야하는 반면, 퇴계의 학문은 그 순수성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를 원심력과 구심력의 차이라고 말한다. 학문을 널리 활용하고자 했던 남명과 학문을 안으로 향하게하여 이치를 궁구하면서 스스로를 갈고 닦는 정신적 완성의 단계로 생각했던 학문에대한 견해의 차점을 말하는 것이다.  

남명은 학문의 실천을 중시했고 퇴계는 부단한 토론이 학문의 생명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본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남명은 못마땅했을 것이다. 남명은 가장 중요한 것은 유교적 이념의 현실적 적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점에 관해서 남명은 퇴계를 비판하게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해주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수없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두 선비가 학문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전혀 다른 것은 아니었다. 두 선비 모두 '존천리 거인욕'이라는 선비로서 지향하는 바는 같았으며 본연지성으로 돌아가려했다는 점에서 일맥 상통하는 사상적 공통 분모를 가진다. 그 점에 관한한 서로에 대한 신뢰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서로의 학문적 깊이나 군자로서의 높은 기개와 이상에 대한 존경심을 서로는 잃지 않았던 것이다. 퇴계가 남명에게 그토록 간곡하게 출사하도록 권유하는 편지를 보낸던 사실은 이를 방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남명의 인품과 학문의 깊이라면 조선의 관리로서 국왕의 정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실제로 남명이 출사하여 관직을 받았더라면 그 어느 관료보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백성을 위한 정치를 피력했으리라. 이러한 남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언제나 퇴계는 물러나 처사로 자칭하며 은거해있는 남명의 재능을 안타까워했다. 국익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당대의 최고 선비가 썩고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두사람의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남명은 퇴계를 일러 백년신우百年神交라 했고 퇴계는 남명을 친리신우千里神交라 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고 서로를 비록 만난 적은 없었지만 벗으로서 인정했다는 뜻이다. 두사람의 생각은 비록 달랐지만 서로 정신적 사귐을 소중히했던 것이다. 퇴계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남명은 '이제 나도 가야할 때가 되었구나'하며 백년신우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의 말처럼 남명도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를 무작정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따라 따끔한 지적을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인품과 학문을 고스란히 존경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요즘의 우리가 관계하고 있는 친구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를 느끼게한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은 비록 생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어떤 벗보다도 서로를 흠모했을 일이다. 생각이 다르다하여 무조건 상대를 이기려하고 억누르려하며 인격을 모독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 근래 정치인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고상함이 전해진다.   

한가지 첨언하지만 두 선비가 모두 사망한 후 남명학파와 퇴계학파는 정인홍이라는 남명의 제자로인하여 서로 대립각을 무섭게 세우기 시작한다. 전후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난 후라면 그럴 이유는 없어보이지만 당시의 각 제자들은 국정의 권력과 맞물려있는 상황에서 서로 대립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정인홍에 대한 오해가 풀려 그 후계들이 서로 화합하고 연구를 함께하는 건전한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선조들의 깊은 학파적 갈등을 극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로 인식되곤 한다.  

두 거두의 학맥을 공동연구한다거나 저술활동을 함께하는 분위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국민 화합의 장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계보를 이른 사람들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아 읽으면서 소리내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남명과 퇴계라는 조선 최고의 선비들에 관련한 설화들이 정말로 흥미롭다. 이는  민중들의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두 인물들에대한 투영일 것이다. 과연 민중들은 두 인물을 어떻게 의식속에 투영시키고 있는지 직접 읽어본다면 이 책을 읽는 재미가 훨씬 더 경쾌하고 마음을 훈훈하게 할 것이다. 우리의 정녕 아름다웠던 선비들에대한 연구가 더룩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을담아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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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과 그의 벗들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교양총서 8
강정화 지음 / 경인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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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과 그의 벗들을 통하여 현대인들에게 벗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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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과 그의 벗들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교양총서 8
강정화 지음 / 경인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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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선비, 남명.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절을 보냈고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최고의 기절로 여겨졌던 남명 조식과 그의 벗들을 소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지만 조선 최고의 선비였던 남명과 그의 벗들을 통하여 우리는 현대의 벗에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 이 책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남명의 벗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 심족당 김대유, 청송 성수침, 대곡 성운, 동고 이준경, 일재 이항, 토정 이지함 정도 일 것이다.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명선생님과 벗으로 지냈던 조선의 다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들과 남명이 어떤 사귐을 했는지 알 수있다. 

남명은 일생에 한 번도 직접 만나지 않은 벗을 가지고 있었다. 퇴계 이황이 대표적 인물이다. 비록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편지를 주고 받으며 정신적인 벗으로서 사귀었다. 서로의 학문을 흠모하고 그리워하며 일생을 교우로 지냈던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요즘 같으면 교통이 편리해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가서 만나련만...물론 그런 연유는 '남명과 퇴계사이' 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평생 두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서로를 흠모하며 일생을 벗으로 사귀며 편지를 주고 받은 인물도 있으니 바로 동주 성제원이다. 그들은 첫 만남에서 몇 날을 함께 보낸뒤 헤어짐이 너무 아쉬워 눈물로 이별을 하며 이듬해 추석에 해인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단 한 번의 만남을 가진 친구와 다음해 추석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는 점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억수로 퍼붓는 추운 추석 날에 해인사에 도착하니 저기 만나기로 약속한 벗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여기를 바라보며 웃으며 서있다... 이렇게하여 남명 조식과 동제 성제원의 두 번 째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 얼마나 반갑고 기뻤으랴...그들은 재회하여 그 후 그들은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다음해 동주 성제원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소문으로는 이미 약속장소로 출발 하기 전에 병이 들어있는 상태였고, 친인척들이 만류하였지만 약속을 지키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하여 만류에도 불구하고 약속 장소로 떠났다고 전해진다. 동주 성제원이 인생의 느즈막히 알게된 친구를 그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일 설로는 악해진 체력으로 추운 추석날 비를 많이 맞은 것이 병의 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렇다면 죽음을 무릎쓰고 친구를 만나러 비가 내려 병을 키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두 사람이 남긴 만남은 후세에 영원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남명이 벗들과 어떻게 교우를 했는지 잘 나타내주는 책이다. 더불어 벗으로서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벗이 벼슬에 연연해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이여겨 냉철한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퇴계 이황이 남명에게 출사할 것을 간곡히 권하는 편지를 보내오자 오히려 퇴계 이황에게 벼슬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다. 남명의 일침 때문은 아니겠지만 퇴계는 수많은 벼슬을 마다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잠시 관직에 있다가 그만 두곤한다. 그리하여 개울가로 물러가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일생을 보냈다. 그리하여 퇴계였던 것이다. 

비록 벗이라하나 필요할 때는 일침을 가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남명 조식, 현대적인 표현을 빌자면 그의 이름은 차갑고 냉철한 이성적 사고의 인물이였던 듯 싶다.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시대가 올바로 서지 않았음을 한탄하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왕의 수차례에 걸친 관직 수여에도 불구하고 병을 핑계로 고사하곤 했다. 그러한 성품과 학자적 기질은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던 것이다. 행여 벗들 중 권력의 중심에 서있으려는 욕구를 보이는 친구에게는 가차없이 질책했다.  

현대의 교우는 남명의 시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친구네집이 좀 가난하다고해서 사귀지 말라고 한다던지, 공부를 못한다고 사귀지 말라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 요즘 우리들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그런 친구를 사귀어서 득이 될게 없다는 것이 부모님들의 판단이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친구관을 형성하게되고 이는 대물림된다. 세대를 거듭할 수록 벗의 진정한 뜻을 사라지고 급기야는 벗 없는 일생을 살아가게 되고 만다. 정녕 진정한 벗 하나도 있는 인생은 성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른다. 일생을 진정한 벗 하나 없이 살아간다면...그 얼마나 삭막하고 건조한 인생이겠는가... 

이 책은 좋은 벗의 사귐이란 어떤 것인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벗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벗은 신분이나 나이, 빈부, 직책등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스승도 문인도 벗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벗은 모든 외적인 형식을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다만 그 사람의 덕을 벗삼아 사귀는 것이다. 진정한 벗을 배울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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