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 댓글을 보는 것은 난생 처음이지 싶다. 처음 치고는 그 센스가 너무나도 기똥차서 기록해둔다. 아, 물론 요즘 같이 추운 혹한의 겨울 날에 마포에 가서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진이 어쩌다가 내게 얻어걸린 것 뿐이고, 지금쯤이면 이래저래 전국민 다수가 이미 접해본 사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게까지 올 정도면 말 다했지 뭔가. 


그나저나
이 사진을 올리면 욕을 얼마나 얻어먹을까 하고 국힘 최근 지지율을 검색해봤다. 지지율이 곧 내게 날아오는 욕설 혹은 돌팔매 지수와 정비례 할테니 말이다. 12월 29일, 리얼미터가 지지율을 발표했다. 국힘의 지지율은 35.7%라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기사). 반면, 같은 날짜에 발표된 여론조사의 다른 결과가 눈에 띈다. 엠브레인 퍼블릭, 케이스탯 리서치, 코리아 리서치, 한국 리서치가 발표한 정당 지지율은 국힘 20% 라고 발표했다. 이 엄청난 지지율의 차이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여하튼 명사장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 작자는 여론 조사 조작의 달인이라고 한다. 여론 조사 결과를 맘대로 수차례 조작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명사장이라는 자는 자신이 조작한 자료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제공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불리했던 지지율을 뒤엎고 누군가가 경선에서 이겼다는 소문이 파다 했다. 그 후로 나는 여론 조사를 조작해 사기를 치는 자가 명사장 혼자이겠나 싶어서 여론조사도 이제는 믿을게 못되는구나 생각했다. 앞으로도 크게 믿을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이토록 큰 격차를 보여주는 지지율 조사 발표라니!!! 





어째거나 믿든 안믿든 언론 발표 대로라면 국힘의 지지율이 과거에 비하면 많이도 하락했지 싶다. (국힘 지지자들은 그럴 것이다. 햐~ 그걸 믿냐? 이런 여지를 남긴 여론 조사 기관들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힘 지지율 빠진 비율이 고스란히 민주당으로 간 것도 아닌듯하다. 어째거나 혹여라도 이 글을 클릭하는 알라딘 하시는 분들의 최소 20%~35% 이상이 내게 쌍 욕을 시전 할 것은 불보듯 뻔 하다. 지금 장난하냐? 이러면서 말이다.


예상되는 바가지로 쎈 욕설들은,

1. 아침 댓바람부터 차트랑 e-shecki 이거 뭐야, 재수없게!!

2. 아니, 차트랑, 아침부터 처 돌았나!!

3. 차트랑, 이런 mi-췬!!!

4. 아니 이거! 아침부터 빡이 치네 진짜~!! 
(어떤 분의 글 제목, '빡이 친다' 에서 착안)


[[ 알라딘에서 이렇게 욕설을써도 되는가? 절대 안된다. 다만 스토리 전개상 어쩔 수  없을 뿐 ㅠ 욕설은 삶의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므로 더 이상은 생략한다. ]]


어째거나 이 글을 보고 내게 욕을 쎄게 하는 사람들이 최소 20%는 넘는다는 등식이 성립하겠다. 내게 짱돌을 집어던지는 사람의 비율이라해도 마찬가지. 뭐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내게 한다 해도 그건 그들의 자유이니 존중한다. 그러니 욕을 많이들 해주시라. 입에 담지 못할 욕은 본인에게 도파민을 작동시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것이니 썩 괜찮은 카타르시스 욕설 보시(布施)가 아니겠는가.




[[ 걸을 때 듣는 노래인데 요즘 최고로 잘나가는 곡 이라고 한다. 앞으로 알라딘에서 욕설과는 good goodbye  할것이다. 그런데...  시작하는 가사는 분명 김소월 진달래꽃 삘이 나는데 계속 듣다보면 마치 남친을 등 떠밀어 내며 이제 나좀 자유롭게 내버려줄래? 내게서 좀 나가 떨어져줘!! 땅을 치고 후회할 일같은 건 생각지도마!!  가사와는 정 반대 삘이 나는 노래다. ]]


정말 나쁜 놈은 욕할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들 한다. 진짜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째거나 나는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되는 놈 쯤은 되는, 아주 약간의, 진짜로 약간의, 욕을 해줄 가치가 그나마 있는 놈이라고 생각하겠다.


책을 읽어보니 사람들이 욕설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욕설을 내뱉으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재밋는 사실은, 욕설은 그 사회 환경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것이다. 저질 지수가 높은 욕설을 사용하는 사회일 수록 생활 환경이 그만큼 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조선의 욕설보다 더 거칠고 저질스런 욕설을 들어보지 못했다. 미국식 욕설을 대다수가 알고 있지만 어디 우리의 욕설과 비교가 될만 하던가? 욕설로 치면 조선 땅의 욕설이 세계 1등하리라 생각하는 바이다. 욕설 대회를 열어봐야만 알수 있는게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조선의 욕설만 동원해도 가뿐히 금메달 감이니 말이다. 한글이라는 우리 언어가 지극히 아름다운 만큼, 욕설도 정말 극도로 저질스럽다.



조선의 그 험악한 욕설로 판단하건대 조선땅에서 살던 백성들의 삶은 때로 지옥보다 더 나빴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조선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터질듯 빡이 치는 이유도 그것이다.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욕설 시전하며 읽은 기억이 있다. 조선 후기사와 근 현대사는 차마 눈 뜨고 읽을 수 없는 대목들이 허다하다. 그러니 백성들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왔겠는가? 조선 백성들의 지극히 고단해던 삶을 생각만해도 빡이 치네 아놔~!

 

[[ 제 3부 수심에 쌓여, 에는 '애절양'이라는 시가 실려있다. '애절양'은 어느 조선 백성의 너무나도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마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단적으로 빡이 치는, 당시 있었던 사실을 정다산이 시로 쓴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후기 조선은 나라가 아니었다... 백성들의 피를 뽑아 먹는 흡혈귀와 다를 바가 없는 구조적 시스템의 사회었으니 말이다 ]]  
  


그러니 내게 쎈 욕설을 한다면 그 삶이 그만큼 퍽퍽할 것이라 여기며 그 욕설을 달게 받으며 이해할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욕설을 하고 싶은 분은 댓글로 마구 욕을 해주셔도 좋다. 조용히 넘어갈 자신 있으니 말이다. 단, 국힘의 유료 권리 당원 되시는 분들에게만 욕설을 허용하겠다. 진정한 지지자라면 권리 당원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정치 참여 국민인 국힘의 권리 당원되시는 분들은 차트랑에게 욕설을 퍼부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행여, 나는 평소 진보당 지지자인데 이번 만 살짝 국힘지지자 될래요 하고 욕하고 도망가시면 안되시겠다.


어째거나
이런 기회는 이번 딱 한번 뿐이다. 엉뚱한 때에 댓글로 욕설을 하면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말이다. 그럼 이 책을 읽어는 봤냐? 물론 읽어봤다. 지금 쯤이면 어떤 집 아궁이에서 불쏘시개로 불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읽고 나서 분리수거 했으니까!  근데 하... 이 책과 관련한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분리수거 하기 전에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걸 급 후회가 밀려온다. 하여간 일이란 어찌될지 알 수 가 없다 진짜!


여하튼
욕설을 이해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기꺼이 추천드린다. 욕설에 관한한 최고의 책이니 말이다.


차트랑 e-she-bul 느 mi,  처 돌았나, 추천할걸 추천해라 차트랑!!
추천할게 없어 욕설을 추천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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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예수님 탄생!!!


요한 세바스찬 바흐 선생께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드셨다.

선생께서는 일요일을 뺀 6일 간의 축일을 기념하여 6곡의 오라토리오를 만들었는데

어마어마한 대작인지라 전체를 모조리 듣다가는 코를 골며 잠에 빠질 수도 있다.

(총 연주 시간 2시간 30분 이상)


하나 마나한 이야기겠지만,

예수님의 탄생 축일을 기념하는 음악인지라 

바흐 선생께서는 경쾌 상쾌하고 미래 지향적인 느낌을 음악에 심어 놓았기에

매우 희망적 필링으로 가득한 것이 이 오라토리오의 득징이다.




더불어 경건한 필링을 청자에게 가득 채워준다.

들으면 왠지 괜히 기분이 막 좋아진다.


찌든 때를 벗겨내는 듯한 이 느낌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상쾌함 그리고 경건함

바흐 선생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만한 음악이 없다.


이런 느낌은 종교와 무관하며, 종교로 인식해도 전혀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

음악의 힘은 본디 이런 것이니....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흐 선생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이른 나이부터 들으며 자란다면 

선한 어른, 밝은 어른, 긍정적인 어른,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의 거룩함과 함께....

 




[[ 대작이니 만큼 J S Bach Christmas Oratorio BWV 248 Part 1 로 대신함 ]]



예수님의 탄신일을 시작으로 6일간 연주되던 이 음악은 

종교와 관계없이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행여 기분을 전환하고 싶은 분이라면 일청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효과는 매우 다양하고 긍정적이어서

그 어떤 기분 모드에 있던 간에 죄다 커버할 수 있는 만능곡이지 싶다. 


오늘은 예수님 오신 날, 

모두 마음을 가벼이하시고 즐거운 날이 되시길....



추신 : 하... 음반 소개를 깜박했다.


 지휘 :  John Eliot Gardiner 

 English Baroque Soloists

 The Monteverdi Choir

 레이블 DG

 2024







 지휘 : Philippe Herreweghe

  Collegium Vocale 

 레이블 ERATO

 2011


존 엘리엇 가디너와 필립 헤레베헤는 종교음악으로는 최고의 반열에 있는 지휘자들이다.

다른 아주 좋은 음반들이 많이 있지만 이 두 음반이라면 더한 욕심을 내지 않아도 좋다.


만약 바흐 선생께서 몸소 두 분의 연주를 듣는다면 스스로 감탄할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저렇게 좋은 곡을 만들었단 말야!! 

혹은, 내가 만든 곡이 저렇게 좋은 곡이었단 말야!! 하고 말이다.

바흐 선생 스스로 만든 곡이지만 자신의 결과에 겁나게 만족해 하리리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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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5-12-2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창이 경쾌하게 느껴집니다.
메리크리스마스 되세요. 차트랑님.^^

차트랑 2025-12-25 11:55   좋아요 1 | URL
친정(親政)하시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나리자님~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매년 12월이 오면 가장 많이 듣는 음악 중 하나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경쾌한 합창이 마음을 가볍게하는듯 합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요 모나리자님~


 
삼명통회
박일우 엮음 / 명문당 / 1978년 12월
평점 :
품절



사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책인지라 서평을 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책이 삼명통회(三命通會)였다. 그러나 알라딘 동지 여러분들의 견해에 힘입어 그만 일을 저르게 되었다.


먼저, 고전 중의 고전인 삼명통회 서평을 '태클을 중심으로' 쓰게된 점을 심히 유감으로 여기며, 삼명통회 지지자분들께는 삼가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일천한 자가 서평을 쓴답시고 삼명통회에 생채기를 내려하다니, 이런 상황에 딱 들어 맞는 명언이 떠오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구나!!!!


삼명통회는 명리 3대 고전으로 평가 받고 있는 자평진전, 적천수, 궁통보감과 더불어 업계에서 확실한 권위를 가지는 책으로 알고 있다. 그 명성과 권위로 보아 계속 출간이 되어야 마땅한 도서인데 품절 상태가 계속되는 점은 왠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 덕분에 나는 중고를 구입해야 했는데 중고가가 후덜덜 했다. 10만 원을 가뿐이 넘겼다. 보이는 대로 몇 권을 구입했는데 모두 때를 못만났지 싶다.)


어째거나
품절 도서이기는 하지만 그 명성이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는데도 리뷰가 전혀 없는 도서라는 점도 특이하다 하겠다. 박일우 삼명통회는 100자평 차트랑이 유일하다. 그동안 간이 부은 자가 없었다는 뜻일까.... 어쩔 수 없이, 고수들은 '알라딘을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어째거나
간명(看命)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간명을 업으로 하는 분들께서 하나하나 캐물으면 나로서는 답할 능력이 없다. 그저 명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一人으로서, 읽고 후기를 남기는 것일 뿐이니 나의 무지를 너무 나무라지 않기 바란다. 본디 고수들은 강호에 들더라도 조용히 자신을 숨기는 법이고, 하수들이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 날 뛰는 법이다. 이치가 그러하니 명리 하수의 깊지 못하면서도 좁은 안목에 너른 양해를 더불어 부탁드린다.




편저자 박일우 선생이 서론(緖論)에서 말하길, "인간의 운명에는 별(星)과도 같이 정(定)한 궤도가 있다. 별이 저녘이면 나타나 새벽이면 사라지는 것은 궤도를 걷고 있다는 증거이다. 운명(運命)도 행(行)함에 있어 그와 같은데 자연의 섭리가 행(行)하는 것을 운명이라 한다." 라고 썼다.


명리에서 쓰는 만세력은 태양의 운동 궤도와 일치하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태양의 이 궤도를 황도(黃道)라 이름하고 12궁으로 나누었다. 이를 황도 12궁, 즉 Zodiac 이라고 칭하고 그 별자리들은 Zodiac Sign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의 원조라 할수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들은 이 황도와 12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만세력은 알고보면 고대의 수메르인들에게도 관련이 깊은 력(歷)인 것이다. 박일우 선생이 뜻하는 그 궤도란, 황도 12궁의 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궤도는 1년 12개월이라는 주기, 명리의 12지지, 하루 24 시간을 2시간 단위로 나눈 것과 일치한다. 또한 이 궤도는 다름아닌 인간에게도 적용된다고 박일우 선생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진실 여부는 각자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삼명통회의 저술 시기는 명대(明代) 1578년 이라고 한다. 저자 만민영은 제 1장 '원조화론(原造化論)'에서 삼명통회가 성리학적 관점을 배경으로 한 저술임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원조화론 1~2절(節)은 '주자(朱子) 가로되~ ' 로 시작하는 문단의 연속이다. 본서의 바탕은 주자학으로 변태한 성리학의 관점임을 밝힌 저술이라는 것을 명시했다.



[[ 서평이 무척 지루한 스토리인듯 하여 노래 한곡 들으시기를... ]] 


강의 좀 한다는 분들은 입버릇처럼 '삼명통회에서 말하기를... 혹은 삼명통회는...' 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이는 삼명통회의 권위를 빌어보겠다는 의도가 담긴 3인칭 화법이다. 1인칭 복수형이나 3인칭 화법은 권위를 내세워 '쓸데없이 태클 걸고 들어오지마!!'라는 강한 의도적 화법이니 말이다. 삼명통회가 명리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략 이러하다. 삼명통회를 인용하는데 과연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우기, 입문자나 초심자들이 삼명통회를 읽어 봤을리 만무하니 말이다.


막상 삼명통회를 읽어보니, 과연 '삼명통회에서 말하기를...' 로 시작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명통회는  결코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책이 아니기때문에 누군가가 태클을 걸어올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진다는 뜻이다. 삼명통회는 수차례 읽고 또 읽어 그 뜻의 허실을 과연 파악할 수 있어야할 것이라는 사적인 견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신뢰와 의심을 동시에 던져주는 삼명통회는 전문서의 오묘한 느낌을 동반한다.


이 느낌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아마도 삼명통회가 전달하는 명리의 이론 자체가 아니라 쉽게 공감하기 여려운 몇몇 예시 명조들의 난해함이 연유로구나 싶다. 명쾌한 명조들을 예시하고 있는 적천수(天髓)에 비하면 삼명통회가 제시해주는 명조들의 자체 난이도는 까다롭다는 것이 사적인 견해이다. 고로 이 자리를 빌어 삼명통회는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점도 명리의 하수로서 언급할 수 밖에 없다.


만민영께서 사례로 제시하는 다수의 명조들은 쉽게 말해 난이도가 높다. 흔히 말하는 용신(用神)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경지를 요하고 있다는 것이 사적인 견해이다. 더구나 현대의 실전 명리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納音五行(납음오행)으로의 접근은 낯설기만하다. 고로 삼명통회가 제시하는 명조들의 허실을 파악하기 위해 어느 수준의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會殺印化(회살인화), 時殺歸庫(시살귀고), 棄命從殺(기명종살)등, 대략적인 이론들은 여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들이지만 사적으로 설명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아 머리가 아픈 사례를 만나기도 하는데 제 3장 육친론의 122쪽이 그러하다.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명조는 아래와 같다.



[[ 핸드폰으로 보니, 명조를 읽을 수가 없어 사진으로 수정합니다 ]]


설명하기를 "財官(재관)이 雙美(쌍미)하고 二丙으로 身이 旺(왕)하니,"(p. 122) 라고 써있다.

申月 丙申時에 태어난 丙子를 "身이 旺하다"라고 한 부분에서는 사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다. 제 아무리 丙火가 둘이라 하더라도  깔고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다. 丙火가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봐도 내게는 身弱(신약)으로만 보이니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다.


또한,
130쪽에 제시한 명조는 아래와 같다.



설명하기를, '水火旣濟格(수화기제격)인 故(고)로 貴命이라고 한다" 라고 썼다. 이 명조는 종(從)하지 못하는 신약(身弱)으로 좋은 운(運)을 만나지 못한다면 결코 貴命이라 할 수 없어 보인다. 이 예시 또한 납득할 수 없다.
물론 나는 초학이므로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처지인 것은 틀림이 없다. 고로 비슷한 초학자들이 살피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이 또한 명리를 업으로 삼지 않는 아마추어의 사적인 견해가 그렇다는 것이니 이 또한 너른 양해를 구한다.


240 쪽에서 제시한 다음의 명조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책에는 "고요상서(高燿尙書)"의 명조 이며, "官界 一品의 命이다" 라고 설명했다.



갑무경(甲戊庚) 삼기(三奇)를 이루었다 하나, 위는 분명 군주를 산산히 부서트리는 명조라 하겠다.
과연 어느 주군이 이 신하를 가까이 두려할 것인가. 설사 벼슬을 했다 한들(관료의 사주로 보이지 않지만) 변방에서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삼명통회의  一品, 즉 장관급 사주라는 설명을 마주하니 일천한 者로서 이유를 되 물을 수도 없어 무척 당황스럽다. 그래서 이렇게 나와 같이 일천한 者를 두고 뭇 사람들이 말하기를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을 것이다.


삼명통회 (2) 는 언제 쓸지 기약이 없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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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2-24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리학 책은 일반인도 알기쉽게 풀이한 몇권을 제외하고는 접하기도 쉅지 않거니와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지요.요즘 사람들은 한자가 많은 명리학 책보다는 그림이 많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쉬운 타로관련 책을 더 많이 볼겁니다.

차트랑 2025-12-24 17:04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카스피님.
게다가 삼명통회는 한자도 한자지만 글 쓰기가 아래로 되어있어
읽기가 친숙치 않았습니다.
명문당에서 출간한 고전 대부분이 아래로 내려 쓰기입니다 ㅠ

타로는 동양의 육효나 육임등과 비슷한 분야인듯 싶습니다만
저는 아직 접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이해가 쉽다니 관심이 가네요^^





야클 2025-12-2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토일주인데 병오대운(인성)에 병오년이 다가와서 그런지 일은 안하고 한없이 게을러지고 책만 사게되네요. 다 읽지도 못하면서. 삼명통회라니… 부럽습니다. ^^

차트랑 2025-12-25 11:46   좋아요 1 | URL
오~ 자신의 일주를 알고계신 분이 있으시군요~!
뜻밖입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병오년에 좋은 일이 있으시 바랍니다!!
 


요즘 뜻밖에도 관심을 사로잡는 일이 생겨 정신줄을 그쪽에 놓고있다. 바로 업무보고이다. 리허설 없는 대한민국의 업무보고 현장을 전국민이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무협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는, 마치 넷플릭스 무협 영화 일일 연속극을 보는 듯 흥미롭다. 특히, 해병대 사령관은 해병대 1, 2사단의 작전 지휘권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카타르시스를 일으켰다. 
그나저나 감기가 올까 말까 주저 주저하는듯 한 이 느낌, 태도가 불분명한 이 느낌, 정말 별로다 ㅠ 



이른 나이에, 아주 어린 나이에 특정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 예체능, 과학, 수학 등 분야가 제한된 것 같지는 않다. 날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는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영재 혹은 천재라고 부른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가, 아니면 누가 말 했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쯤에서 떠오르는 문구가 하나 있다.그것은 '이승에서 배우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것이다' 이다. 그런데 어느 분의 글을 통해 다름아닌 소동파가 한 말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니, 그럼 나는 어쩌란 말인가? 저승에가서 배워오기라도 하란 말인가?



헝가리의 저명한 음악가, 철학자, 교육자인 '코다이' 선생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제부터 준비해야 할까요? 코다이 선생이 답했다,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부터 준비해야 하오!'라고. 이 역시 소동파와 견해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어쩐지 나는 안되더라니.....



어째거나,
어린 영재나 천재가 아니면서도 니체가 말한 '위대한 일은 놀이처럼, 또는 자신을 위해서 하루 2/3를 쓰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그는 하루 온 종일을 자신을 위해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 생계를 위해 고군 분투하던 중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곧바로, 주저없이 그 길로 들어섰다. 그 이름은 '현마에!' 바로 김현철이라는 이름의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존중을 받을 만 한, 어쩌면 니체가 언급한 위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니체가 말하는 그 '위대한 일'을 해냈고 그 일을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는 개그맨이었고 여전히 개그맨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개그의 일환으로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순전히 개그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일이 그에게 겁나게 재미져버렸다. '재미로 시작했으니 재밋었것지~ !!  숙제였어봐라, 개뿔 재미졌겠나?'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 치환은 지양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하다. 왜냐면 지휘봉을 잡는 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없어도 될것만 같은 사람 지휘자이다. 나 스스로도 지휘자가 왜 필요한건데? 라고 생각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단코 사실이 아니다.





지휘자는 음악, 아니 악보를 연구하고 해석하여, 악보가 주는 메시지를 확보해야한다. 이를 위해 역사 및 음악가를 알아야한다. 음악가가 처한 시대적 상황 그리고 음악가가 처했던 사적인 상황등을 알아야 한다. 음악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연구하고 찾아내어 분석 및 해석을 마쳐야 한다. 심지어 음악가의 애정사는 물론 가족사 마저도 알아야 한다. 이런 요소들이 전제되어야 일차적인 지휘의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휘자는 모든 악기를 알아야 하며, 수많은 페이지의 악보를 모조리 암기해야 할 때도 있고, 모든 단원들의 연주는 물론 몸짓 하나까지도 지휘(conduct) 하여 청중들에게 그 결과물을 고스란히 전도(conduct) 해야 한다. 지휘자를 conductor 라 칭하는 이유이다. 포디움 위에 올라 한 번의 지휘를 하기까지 거쳐야할 과정들은 객관의 눈에 포착되지 않지만 인고의 과정을 요한다.


과정이 이러하다보니 누가 지휘봉을 잡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색채가 다양하게 표현 된다. 일이 이러하므로 음악 애호가들은 지휘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반응 지수가 큰 편이다. 곡과 지휘자 그리고 연주 단체 중 애호가들이 우선하는 사항은 단연 곡과 지휘자이다. 연주 단체는 그 다음이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누가 지휘했느냐가 가장 먼저이고 어느 단체가 연주했느냐는 후순위인 것이다. 그만큼 음악을 연주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휘자인 것이다.


처음에 개그로 시작한 현마에는 점점 그 안으로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즐거움이 함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이 전부는 단연코 아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현마에는 공부하고 익히며 연구했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말이다. 그가 인내한 것들이 어느정도인지 나는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바이올린을 들고 세상에 나선 어떤 사람이 인고의 과정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으로 대신해본다.


[[ 김빛날윤미의 이 손을 보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이 핑 돌아서 말이다.... ]]






현마에는 그렇게 10 수년을 수련했고 자신을 갈고 닦았다. 그리고 드디어 한 연주 단체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놀랍지 아니한가! 음악 전공의 연주자로 일생을 살아가던 정명훈 선생도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 따로 수업을 받아야했다. 대한민국 음악 애호가라면 모를 수 없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선생이 바로 정마에의 스승이니 말이다. 이 사실을 또한 모르는 애호가도 거의 없을 것이다. 지휘란 하고싶다고 그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댓가를, 아니 그에 알맞는 댓가를 내놓아야 비로소 지휘봉을 들 수 있는 것이다.


인고와 즐거움은 늘 함께하는 동반자이다. 즐거움이 앞서가면 인고가 뒤를 따르고, 인고가 앞질러가면 즐거움이 그 뒤를 따르니 말이다. 그리하여 니체는 결국 Amor Fati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하는 바이다. 이는 물론 지극히 사적인 견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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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발레리나의 발 사진만큼이나 가슴 찡한 사진이네요.

차트랑 2025-12-19 00:15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ㅠ

영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다는 어느 분도 떠오르는군요.

호시우행 2025-12-19 0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도전에 나선 김현철 씨 앞 날을 응원하게 됩니다.

차트랑 2025-12-19 10:10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의 고마운 마음을 김현철씨는 모르실테니
대신하여 제가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호시우행님!
 


나의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목사님과 신부님을 구별하지 못하셨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께서는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학교도 다니셨다.  휴전이 되기 몇 달 전에 군입대를 하여 하사관으로 제대하기까지 진주, 포항, 서울등을 오가며 6년을 근무를 했다. 또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분도 아니었다. 더우기 일생을 통해 감여(輿)를 공부하셨고, 책 읽기를 좋아하여 늘 책을 가까이 하셨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때 정비석의 삼국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런 분께서 유독 목사님과 신부님을 구별하지 못하셨던 것이다. 아주 상세하고도 자세한 설명을 여러 차례 드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늘 목사님과 신부님을 구별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 그렇게 찾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품에 금강경을 넣어드리고 이런 저런 아버지에 관한 상념에 젖어 있을 때, 한 가지 생각이 스치듯 떠올랐다.
 


'어쩌면 아버지께 목사님과 신부님은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겠구나. 같은 성직자시니 애써 구별할 필요가 없는 그런 분들 말이다!' 나의 합리화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아니 가능성이 높은 발상이다.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방법 중 하나를 생각해낸 것일 수도 있다. 


조상님들께서는 대대로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고 사셨다. 과거에는 다들 그랬다. 반면 나의 가족들은 모두 성당에 나가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세례명을 받았다. 아버지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나의 식구들은 모두 절에 가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가까운 봉은사에 가서 행사를 구경하기도 하고, 고향을 오가는 길에 수덕사에도 곧잘 들렀다. 아이듵은 아빠가 가는 곳은 당연히 가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절과 성당은 같은 곳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일까...


아버지께서도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이다. 평소 아버지께서는 개신교이든 천주교이든 모두 하나라고 생각하셨다. 구별지을 필요가 없으며 불교도 다를 것이 없다고 평소 생각하셨다는 것을 그만 그 아들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목사님과 신부님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기독교와 천주교는 아주 많이 다르며 어쩌면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는 분도 계실 것이라 믿는다. 이 또한 존중하는 바이다.    


최근 성심당을 소개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갑자기, 없던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성심은, 大學에서 따온 이름인가?

大學에는 8조목 이라는 것이 있다. 아주 잘 알려져 있어 성심당 못지 않은 인지도를 가진 8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濟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이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내용은 아니다. 성심당이 만든 빵은 맛있다고 소문이라도 났지만 8조목은 수신(修身)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백성들을 차별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와 야합한 8조목이 아닌, 순수한 대학 본연의,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8조목 본연의 함의를 존중한다.


어째거나,

8조목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 중, 격물과 치지만 얻으면 인성에 문제를 일으킨다. 성의와 정심이 뒤 따르는 이유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아가며 수신을 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교의 가르침으로 접근하면 인간의 삶은 돈수(頓修)가 아니라 점수(漸修)인 것이다. 성심당은 이 8조목 중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의 두 글자를 취해 성심(誠心)이라고 이름했나 보구나 싶었고 '이름 참 잘 지었군. 글을 읽은 냥반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정말 그런지 인터넷을 검색했다. 속으로 내 생각이 맞겠지...했는데!!  허걱~!! 나의 추측은 완전 틀린 것이었다. 전혀 전혀 다른 이름이었다. 알고 보니, 성심당의 창업주는 카돌릭 신자였다. 성심당은 誠心堂이 아니라 聖心堂이었던 것이다. 聖心堂의 聖心은 '성스럽고 거룩한 마음 을 뜻한다' 고 써있다. 심지어 이 이름은 창업주가 노점상으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사용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다.

비로소 나는 성심당이 유명해진 이유를 제대로 알게된 듯했다. 빵 하나를 구울 때도 성심(聖心)으로 굽겠다는 뜻이며, 그 빵을 나눌 때도 성심으로 나누겠다는 거룩한 뜻을 가진 이름이었던 것이다.


물론
聖心堂을 誠心堂이라고 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모든 행함에 자신의 마음을 극진히 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기독교의 가르침도 불교의 가르침도 유가의 가르침도 모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말 그런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어느 목사님이나 신부님께서 내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요!!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이 모두의 가르침이 하나로 관통하는 것이라면 애써 목사님과 신부님을 구별할 필요가 과연 있겠는가?




[[ 성심당의 고향이 대전이라고 하니, 대전이 낳은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음악가의 연주를 소개한다. 플룻을 잡은이가 바로 대전이 낳은 최나경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플릇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전에는 플룻을 듣지 않았는데, 이제는 듣는다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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