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역사의 현장 방문기 (2)


이번 대전행 당시 선생님께서는 중요한 가르침을 2가지 주셨다. 한 가지는 행동으로, 다른 한 가지는 말씀으로...


 차를 타고 점심 식사를 하러가면서 지나치게 된 곳은 바로 우암사적공원 이었다. 선생님을 만나면 늘 우리 역사의 정취가 느껴지는 사적지를 방문하는 것은 필수 코스이다. 심지에 역사적 인물들이 잠들어있는 산소를 방문하기도 한다. 목적은 지리공부이다. 사적지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수 없이 많은 교훈을 가르치는 장소이다. 그것도 침묵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침묵의 외침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온다.


 ‘선생님, 오늘은 저 곳을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마침 나도 들를 일이 한 가지 있다네’ 하셨다. 누군가에게 한 가지 말실수를 한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헉~ 선생님께서 말 실 수를 다 하시다니... 속으로 이거 참 흥미로운 일이로구나 싶었다. 그런 일은 직접 목격하지 못한 상황이라 자못 궁금했던 것이다. 선생님의 말실수를 흥미로워 하다니...흠...이게 뭔가가 잘못된 상황이 아니던가... 그동안 보아온 선생님께서는 결코 말실수를 하실 분이 아니다. 그런데 말실수를 하셨다 하신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동구의 충정로에 있는 우암 사적공원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그 곳에서 안내를 담당 하고 계시는 분께서 꾸벅~ 인사를 하며 선생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잘 아시는 분이세요?’ 하고 여쭈었더니, ‘아니라네, 그러나 지난 번에 내가 한 가지를 잘 못 알려 준 것이 있다네’ 하셨다. 그리하여 선생님께서는 그 분과 말실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나는 우암사적공원 내의 자료실(유물관)을 둘러보았다.

 

 



송시열의 생원시 과거시험지:

송시열이 생원시의 과거시험지를 제출했다. 시제는 ‘한 번 음이었다 한 번 양이었다 하는 것을 道라 한다 - 一陰一陽之謂道’였다. 이는 주역에 담겨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송시열의 답안이 당시의 시권형식에 맞지 않아 모든 시관(試官)들이 탈락시켜버렸다. 컴퓨터로 채점하는 방식이 아니었던지라 일말의 여지는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 같았으면 빵점 처리되는 그런 시험지가 아니던가.. 바로 이때 그 이름도 유명한 최명길께서 송시열의 시권을 보고 장치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여겨 합격자의 명단에 포함시켰는데 덜컥 장원이 되고 말았다.

 

 

최명길선생이 누구던가... 백사 이항복의 문인으로 광해군을 폐위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핵심인물 중 한사람이었으며 지리학에는 물론 일기(日氣)를 파악하는 일에도 매우 능하여 쿠데타의 시기를 결정하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특이 한 점은 반정세력들의 공통된 특징이 친명배금 혹은 지조 재은등의 명문을 내세워 명나라의 황제를 아버지 모시듯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인데 이 양반은 어찌된 일인지 양명학에도 조예가 깊어 말 그대로하자면 사문난적이나 다름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조선의 임금들은 신권에 밀려 왕권을 제대로 행사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왕권을 제대로 사용한 임금이 있다면 유일하게 세종의 아버지 태종일 것이다. 요즘 한창 인기를 구가하는 안방 드라마 ‘해품달’에서도 왕은 거의 힘을 쓰지 못하는 왕으로 등장한다. 왕권이 신하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꼴이 된 것은 특히 인조반정을 기점으로 더욱 악화된다.


최명길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주화파의 핵심인물이다. 굴욕적인 삼전도의 항복문서를 직접 작성했고 이에 분개한 주전파 김상헌은 이 문서를 두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그러자 최명길은 그 찢어발겨진 항복문서를 주섬주섬 집어들었고 퍼즐조각 맞추듯이 이어 붙였다는 내용은 실록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 더 쉬운 일일 수가 있다. 병자호란의 치욕이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김상헌을 필두로 삼학사들은 죽으면 죽었지 항복은 절대로 불가하며 모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아가 싸우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심지어 김상헌은 남한산성의 자기 거처에서 직접 목을 매어 자살을 기도했다. 가인들이 이를 알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김상헌은 그 때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죽기는 쉽고 살아남기는 어려운 일이니라...


최명길의 입장은 김상헌의 생각과는 달랐다. 최명길의 입장은 대략 이러하다. ‘나라고 항복하고 싶은 줄 아느냐, 모두 나가 싸운다 치자, 그까짖 내 목숨하나가 뭐 그리 대수겠냐, 나도 죽고 니들도 모두 장렬히 싸우다 죽었다 치자, 그럼 백성들은 어찌 할 것이냐, 저 불쌍한 백성들의 목숨은 도대체 어찌할 것이냔 말이다. 우리가 바보 천치 펴서 이 지경에 이르렀고 나라의 꼴이 요 모양 이꼴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죄다 우리의 책임이 아니더냐, 우리가 죽은 뒤 조선 강역의 불쌍한 저 백성들의 얼굴을 도대체 무슨 낮짝으로 바라볼 것이냔 말이다. 니들은 나가 싸우다 죽자하는데 나가 싸워봤자 질거 니들도 빤히 알고 있는 일이 아니더냐, 그럼 이 나라의 백성들의 아픔을 누가 달래줄 것이냔 말이다. 저 불쌍한 백성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단 말이더냐, 죄가 있다면 바로 나의 죄이고 너의 죄가 아니더냐, 그러니 우선 나라를 보존하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어야 후일이라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죽기는 쉽고 살아 남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때문이니라.... ’


그렇게 최명길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항복 문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여 결국 주화파가 쪽수로 엄청나게 밀리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강화를 체결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주전파는 충신이요 주화파는 배신자이고 역적이다. 인조 쿠데타에 가담했고 권력을 잡은 조선의 지배층들은 절대로 그 누구도 주화파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한 번 주화파이면 영원한 그 치욕을 대물림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충신이면 대대로 충신의 가문이 되는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조선의 선비들은 사실상 화친을 주장하고 싶어도 그릴 수가 없었다. 화친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화친을 주장하는 그 순간, 자신과 그 후예들은 영원한 역적이자 배신자가 될 것임이 뻔했다. 그리하여 조선의 강역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 강화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표면적으로 내세울 수가 없는 딜레마에 빠졌던 것이 조선의 지배 세력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척화를 주장하기보다 화친을 주장하는 일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든 정치적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죽기는 쉽고 살아남기는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김상헌을 필두로 척화를 주장하면서 화친을 주장하는 역적 모리배들의 목을 따서 효수하자고 외치던 인물들에게 솔직한 심정을 묻는다면 최명길에게 무한한 감사를 했을 것이 틀림없다. 후세가 있다면 찾아가 일일이 인터뷰를 해볼 일이다.  최명길은 이렇게하여 조선의 모든 선비들이 한꺼번에 날려 보내는 빗발치는 비난의 화살받이를 자청하게 되는 것이다. 최명길은 당시 지배세력들의 모든 짐을 그렇게 혼자 지고 간 인물이다. 최명길의 경우가 바로 죽기는 쉽고 살아남기는 어려운 경우였다. 그 후 역사는 최명길을 나라를 팔아먹은 소인배라 했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는 조선에 척화의 주동자를 색출하여 보내달라 요구했다. 이 때 김상헌은 당당히 척화의 핵심인물로 자처하고 나섰어야 한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상헌은 되려 삼학사라는 엉뚱한 인물들을 자신을 대신하여 보냈다. 평양의 서윤 홍익한, 교리 윤집 그리고 오달제가 바로 이들이다.

  서윤이라는 직책은 한양부와 평양부 소속의 종 4품 관직이고 교리는 정 5품 혹은 종5품에 해당하는 관직이었다. 요즘 공무원으로 치자면 행정고시와 외무고시등에 해당하는 4-5급 공무원인 것이다. 어떻게 척화의 핵심인물들이 4품과 5품의 하관직에 있던 인물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겠는가? 김상헌은 자신을 대신하여 애꿎은 하급 관료들을 척화의 리더들이라는 딱지를 붙여 등을 떠민격이나 다름이 없다.

 

이러한 김상헌의 조처는 세자와 왕자마저도 끌려가는 마당에 자신의 목숨을 아끼려했다는 누명을 벗을 방법이 없다. 최명길의 화친서를 손으로 찢으면서 반대했던 인물이 떳떳하게 '내가 바로 척화의 우두머리요' 하고  나서지 못하고 겨우 관직이 4-5품인 사람들을 대리로 보내 그 책임을 떠넘겼으니..... 아...차라리 나가서 싸우다 죽느니만 못했다...김상헌의 형인 김상용은 강화도에서 청군에 맞서 저항하다가 화약을 터트려 적군을 하나라도 더 죽이고 스스로 자진했다는 말이 전해온다. 형만한 아우 없는가...김상헌은 척화의 핵심이었으면서도 대리자를 내세워 애꿎은 삼학사 세 사람의 목숨을 잃게했다. 그러한 김상헌을 후대는 목숨을 걸고 그 개기를 끝가지 지킨 선비라 창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이상한 평가는 조선의 선비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한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청으로 끌려간 조선 백성들을 되찾는데 치루었던 몸값을 100냥으로 끌어 올린 인물 영의정 '김류'

 

김상헌의 이러한 행적을 떠올리려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사건이 또 하나 떠오른다. 이조판서, 좌의정, 도제찰사를 거쳐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로 '김류'라는 사람이 있다. 치욕의 병자호란 후 다들 아시다시피 청은 조선에서 세자와 왕자, 척화 주동인물등은 물론 수십만의 백성들을 노예로 끌고갔다. 노예로 가족을 잃은 조선의 백성들은 끌려간 자신의 백성들을 되찾을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하여 청나라 사람들에게 경우에 따라서는 50냥에서 60냥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고 가족들을 되찾아 오는 경우가 있었다. 정묘호란 당시의 몸값은 10냥이었는데,  병자호란으로 몸값도 5-5배가 치솟은 것이다.

 

왕세자마저 끌려가는 마당에 전쟁당시 도체찰사였고 후에 영의정이 된 김류도 식구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청으로 끌려갈 사람을 물색하다가 바로 자신의 애첩의 딸을 보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간의 몸값을 주면 가족을 되찾아 온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를 환속금이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역관 정명수에게 자신의 애첩의 딸을 되찾고 싶으니 1000냥을 주겠노라고 말했다. 당시 1000냥은 어마어마한 거금으로 쌀 200석에 해당하는 가치를 가진 돈이었다.  

 이 김류라 조선의 아무 생각없던 영의정 때문에 환속금인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게된다. 아...이제는 가족을 되찾고 싶어도 그 길이 묘연하기만하다. 백성들에게 이 엄청난 거금은 꿈속에서도 만져보지 못할 금액이 아니던가... 그나마 가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근근하게 돈을 모아왔던 백성들의 절망과 실의에 찬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아무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마치 최근의 전세값을 따라기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현대인들이 전세값을 혹은 집값의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느끼는 비애를 조선의 백성들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조선의 영의정이었던 김류라는 한 인물 덕분에 말이다...김류라는 사람의 인물됨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이런 소인배가 한 국가의 최고직을 두루 역임했다니...반정의 역사가 아니고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런가...실로 안타깝고 그저 통탄할 일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하여 조선의 선비들인 지배세력들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그리고 분명히 하자는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저자 계승범인 것이다. 계승법은 이 책에서 명료하지 못한 선비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당대를 지배했던 객관적인 이념을 통해 선비들의 행적을 파악함과 그들의 언행이 해당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분석하고 동시에 이 선비들이 후대인 우리들에게 끼친 역사적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후에야 그 선비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저자의 이러한 평가 기준은 막연하게 일단의 사건들만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단순한 시각을, 보다 넓고 심도으며 바르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독자들에게 감식안을 주는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계승범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라는 책이 역시 널리 읽혀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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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내일 아침에 들을까 하고 보첼리의 음악을 하나 금새 올리고 자려했는데...

그리고 19금 페이퍼를 쓸 생각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늘 이런식이다...

 

사실은 오늘 오후에 역사 유적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시디에 우연히 딤기게된 보첼리의 노래를 듣게되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한곡 듣고 일을 시작해야지...하고 얼른 페이퍼를 끝낼 생각이었다. 쿨하게 말이다...그런데 페이퍼질을 하다보니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쿨하게 원래 포스팅하려던 보첼리의 노래를...

 

 

 MAI PIU' COSI LONTANO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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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첼리는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매우 높은 가수이고 워낙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지만 'O Mare E Tu'는 특히 매력적인 노래인 듯 하다. 이 곡의 리듬을 특히 관심있게 들어볼만 한데 그 독특함이 상당하다. 'O Mare E Tu'의 은근하고도 수려한 음악적 형상은 한 번 들으면 묘하게도 끌림이 있다. 아무래도 Dulce Pontes가 참여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보첼리의 명성은 잘 알려져 있다손 치더라도 폰테스라는 가수는 파두에 아직 관심을 갖지 못한 경우라면 낮선 인물일 수도 있다. 다음의 노래는 파두의 특이하면서도 매력적인 창법과 쭉~ 뻗어내는 보첼리의 시원한 창법을 감상하실 수가 있다. 매우 완성도가 높은 곡이라 평하고 싶다. 

 

다음 곡의 우리말 의미는 'Mare 바다 그리고 Tu 당신'이다. 이 곡은 나폴리의 민요라고 한다.

 

 

 

   미성년자는 이 영상물을 클릭하지 마시요~

  심지어 보첼리마저도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른답니다~

 

 

SOGNO(우리말로는 '쏘뇨'라고 표기함)라는 타이틀로 국내에 보첼리를 알리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고 매우 완성도가 높은 음반이다. SOGNO는 '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마치 음반의 표지에서도 보챌리는 꿈을 꾸듯이 눈을 감고 있다. 그러나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다시피 어린 시절 축구를 하다가 그만 눈을 다쳐 실명하였고 그 후로는 눈을 감게되었다고 한다. SOGNO는 보챌리가 남긴 음반 중 최고반이랄 수 있다.

 

그는 분명 클래식을 배웠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연유로 무대에서 연기를 하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보통 클래식의 성악가는 오페라라는 무대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 다음 솔로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파바로티도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이었다.

 

그러나 보첼리는 오페라의 무대에 설 수가 없다. 하여 오페라 무대를 통하지 않는 크로스오버, 흔히 팝페라라는 장르를 구축하게된다. '클래식과 비클래식의 장르를 넘나든다는 의미의 크로스오버는 요즘 '팝페라'라고 흔히 명명된다. 크로스오버를 확고한 팝페라라는 장르로 구축한 인물은 단연 '사라브라이트만'일 것이다. 그녀는 본디 뮤지컬의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려 한다. 음악 공부에 매진 한 끝에 그녀는 결국 크로스오버를 팝페라라는 고유의 장르로 끌어 올렸다.

 

크로스 오버와 팝페라라는 말은 같은 말이지만 의미하는 바는 사뭇 다르다. 크로스오버라는 말을 사용할 당시인 20여년 전 만 하더라도 단지 넘나든다는 의미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라브라이트만이 이러한 불학실성의 의미를 팝페라라는 확실성과 소속의식을 가진 장르로 올려놓았던 것이다. 사라브라이트만은 그러므로 하나의 장르를 완성한 인물인 것이다. '처음'이라는 것은 늘 있어온 것이지만 그 '처음'을 누가 하느냐가 관건인 것은 그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 이다..

 

그렇게 사라브라이트만이 새로운 영역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사라브라이트만에게 백만 대군과도 같은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안드레아 보첼리이다.  이 둘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힘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협동의 힘은 세계의 음악사를 구축하게 된다. 바로 파페라라는 장르를 활짝 연 것이다. 이 두 사람은 공연 때마다 세계적인 인물의 가수들과 협연을 하거나 게스트로 초대를 했다. 나아가 클래식 계의 거장들과도 함께 공연하기에 이르른다. 이제 클래식계에서도 팝페라라는 영역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업적은 국내에도 바로 영향을 끼친다. 국내의 팝페라 가수들이 그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국내의 몇몇 팝페라 가수들은 사라브라이트만과 보첼리의 노력에 힘 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이상한 쪽으로 흘렀다. 사실은 FADO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O Mare e Tu를 보첼리와 함께부른 Pontes의 창법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데....Pontes는 파두를 부르는 가수이다. 창법이 독특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FADO는 폴투갈의 민요라고 한다. 이탈리아에는 칸초네가 있고, 프랑스에는 샹쏭이 있다. 이와 같은 식으로 폴투갈에는 파두가 있는 그런식이다.

 

FADO는 그 창법이 매우 독특하다. 위에서 폰테스가 노래하는 창법을 생각하시면 된다. FADO의 시작은 대항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넘의 대항해시대는 참 여러가지 짖을 했다. 폴투갈의 남자들이 식민지를 털러 나가는 바람에 수도 리스본에는 남자들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죄다 해외로나가서 나쁜짖들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때문이다. 여자들의 가슴에는 남자들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그만 한이 맺히고 말았다. 돈벌어 돌아오겠다던 남편들이 죽어서 돌아오질 않나, 죽어서라도 돌아오면 그나마 다행이건만, 어떤 남편들은 아예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남아있던 여성들의 가슴에 남게된 것이라도는 기다림, 술픔, 죽음 등등 비애 그 자체였다. 꼭 그런 비애를 담아야만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아픔이 있은 후에는 작품이 나오던 예술이 나오던 음악이 나오던...뭔가는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대 항해시대의 리스본에서는  FADO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파두의 음악적 형상이 평범할 리가 없다. 그리하여 파두는 그들의 기다림을, 좌절을, 또는 희망을 또는 죽음을...이 오묘한 모든 시대적 감정들을 담아내게 된 것이다. 마치 우리 '창'의 '득음'은 맺힌 '한'이 없이는 이루어 낼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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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아래의 책들이 50% off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노엄 촘스키의 책을 알라딘에서 50% off 하여 내놓은 것을 보고 떠오르는 바가 있어 바로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이 점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ㅠ.ㅠ

 

 

누구는 '노암'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노엄'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놈'이라고도 한다...'노암'이든 '노엄'이든 '놈'이든 뭐 다 같은 사람을 말한다. 바로 '촘스키'~다.  그는 본디 언어학자이다. '변형생성문법'이라나.. 하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분야의 창시자라고 한다. 유한한 개수의 규칙에 따라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나...뭐 알 수 없는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촘스키는 언어학이라는 분야를 전공하는 다수의 학자들이 생각하던 그런 방향과는 전혀 딴 판으로 생각한 최초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평소 언어 행위는 창조의 행위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 만분의 일 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어서인지 그 '놈'이라는 그분이 괜히 가깝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그 '놈'은 나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하튼 그 '놈' 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즉 언어라는 인간 정신의 창조적 측면을 통해 인간적 자유와 창조적 사유 및 행동을 인간의 본질로 간주해버린 독특한 '놈'이다. 좀 더 나아가자면 외부의 간섭행위 즉 인간(자신)을 압박해오는 환경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친 격이라고나 할까...그런 사유를 한 뒤부터 그 '놈'은 점점 미쿡이라는 나라에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그 뿐이 아니다. 그 '놈'은 유턔계이면서도 유태인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가차없는 맹공을 퍼부었다. 유태인들이 그 얼마나 똘똘뭉치는 집단이던가...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놈'이 그런 짖을 하다니...결국 그 '놈'은 유태계라는 테두리에서 당연 쫒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놈'은 이를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강한 신념을 버릴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수많은 저서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한 때, 그러니까...대한민국의 서점가를 그 '놈'이 강타하던 그 때의 일이다. 지금의 상황은 잘 알지 못하겠지만 당시의 그 '놈'은 대단한 '놈'이었다. 그 '놈'의 저서를 읽지 않은 놈은 말 그대로 놈이 되는 것이었다. 대화에 낄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어떤 친구가 말끝마다 '촘스키, 촘스키'하는 바람에  또 다른 한 친구가 '촘스키'란 시키가 도대체 '어떤시키'여?? 하고 불평을 토로했다. 그 옆에 있던 내가 대답해주었다. 그 '놈'시키 '아주 대단한 시키'여~!!! 라고...

 

이 책은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라는 타이틀로 대단한 시키인 그 '놈'이 그동안 기고했거나 말언한 내용들을 싹 쓸어다가 묶어 놓은 것이다. 물론 이 후에도 그의 저술은 여전히 출간되고 있는 중이다. 벌써 그 '놈'의 나이가 낼 모레 90인데도 말이다. 이 세권의 책이라면 촘스키에 대해서 상당한 정보를 얻고 공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한마디로 그 '놈'시키의 저서를 읽지 않으면 뭐 대화에 끼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촘스키의 저서들은 이른 바 유식한 체를 하기를 좋아하는 식자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 '놈'시키의 책을 읽는 행위는 자신의 지적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고 생각들 했던 모양이다. 심지에 일단의 동호회에서는 '촘스키'란 단어가 수천 번도 더 올라 왔을 것이다. 촘스키의 사상으로 무장을? 하고 덤벼들면 아직 촘스키를 모르는 넘들은 쪽도 못쓰고 결국 퇴장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노엄 촘스키...정말 대단한 스키~

 

그러다 보니 서점가에서도 촘스키의 저서들을 활발하게 출간하기 시작했다. 촘스키의 사상이 대한민국의 강역을 강타한 것이다. 마치 지난 몇 년간 '정의란 무엇인가'를 국내에서 출간한 후로 마이클 샌덜이 급 부상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이클 샌덜은 저술이라는 강력한 힘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수많은 수강생들 앞에서 멋드러지게 뽐을 내면서 강연을 하고 돌아갔고, TV에서도 그의 강연을 시리즈로 방영하는 열풍을 일으켰다. 지금도 그의 저서를 잘 팔리고 있는 중이다. 하도 샌덜 샌덜하길래 나도 하나 사서 신었다. 그리고 리뷰도 적었다 ㅠ.ㅠ 

 

푸코와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들이 과연 안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매우 흥미로운 책임에 틀림이 없다.

 

여하튼 노엄 촘스키는 붐명히 일대를 풍미한 정신 세계를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당대에 그토록 대한민국의 식자층들에게 강력함 임팩트를 날렸다는 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높은 기상과 정신은 대단히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그의 저서들을 읽어본다면 그 이유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왼 쪽의 책은 촘스키가 겂도 없이 미쿡의 진면목을 한마디로 완전히 까발긴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촘스키의 저서라면 매우 조직직이며 섬세한 미국의 구조적 실태를 간파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특히 언론 플레이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

 

오늘 쪽의 책은 제목 그대로이다. 흔히 촘스키는 지식인이라고 한다. 그는 지식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그리고 자신의 소신대로 일생을 살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지식인들에게 그 '놈'시키는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의 생각을 빌어 과연 지식인은 어떤 책무를 자져야 하는지 분명하고 인상적으로 상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노엄 촘스키의 저서들은 수없이 많다. 어느 책을 골라야 할지 머리가 지근거릴 지경이다. 다양한 그의 저서들의 리뷰등을 찬찬히 살핀다면 자신이 원하는 알맞은 책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은 없어보인다. 촘스키는 사실 홀대 받아도 좋은 그런 '놈'스키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그 '놈'스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번의 페이페에는 그 '놈'스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을 살펴볼 생각이다...양 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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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반 값으로 건지는 책들

 

아직 읽지 않았거나 읽을 계획을 가진 분들이라면 알라딘에서 행사하는 이달의 반 값의 책 중에는 정말 건질 만한 책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물론 이미 읽은 책 중에서 아주 유익했다고 여기는 몇 권을 간단하게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물론 연식은 좀 되었다 손 치더라도...사실은 50% off의 대우를 받기에는 정말 아까운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아까운 책들이 꾸준히 읽히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352쪽의 책으로 50% off 하여 7500백냥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출간했던 장지글러가 훨씬 더 많은 정보와 내용을 추가하여 공들여 보완한 책이다. 한 때 세계는 왜 굶주리는가 라는 책이 탐욕의 시대보다 더 잘나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책의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은 아닌가...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세계의 경제가 움직이고 빈곤한 나라들이 왜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지에 대한 작동원리를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다.

 

 

 

  

  328쪽 분량으로 51% off 하여 5880냥

 

워낙 잘 알려진 책이므로 잘 아시겠지만 장하준의 저서이다. 탐욕의 시대와 잘 짝을 이루는 책이며 세계 경제의 작동원리 역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만약 경제에 관심이 없으셨던 분이라 하더라도 탐욕의 시대와 더불어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은 후에는 현대 경제의 진정한 작동원리인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꼭 신자유주의에 관한 책을 제값주고 사지 않아도 말이다...  

 

 

 

 

280쪽 분량으로 50% off 하여 6000냥

 

콘서트 시리즈가 한창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과학 콘서트가 공전의 대박을 쳤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정말 과학 콘서트는 대단히 좋은 책이라는 강렬한 느낌을 아직도 지울 수 없다. 다음으로 강열한 인상을 준 책이 바로 철학콘서트이다. 철학이 재미없다고 생각해왔다면...그리고 앞으로도 철학은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라도 생각해왔다면...이 책을 한 번 만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철학이 좋아지기 시작할 학률은...반반 ㅠ,ㅠ

철학서를 좋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황광우의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고 말씀 드릴 밖에는....

 

 

 

 

364쪽 분량으로 50% off 하여 6000냥

 

솔직히 개인적으로 카네기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그럴만한 개인적 이유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최근 몇 년간 자기 개발서들이 헤아릴 수 없이 쏟아져 나온 것이 사실이다. 서점에서 여러권의 개벌서들을 잡고 읽어보았지만 과연 그 자기 개발서 들 중에 쓸만한 책이 몇권이던가...대부분 책장사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오늘도 자기 개발서가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개발서는 딱 한 권이면 족하다...바로 이 책이다.

 

 

 

 

 238쪽 분량 50% off 하여 4900냥

 

촘스키가 한 물 간 것인지...아니면 촘스키를 아는 세대들이 나이가 든 탓인지...어쩌면 책을 많이 내놔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여하튼 촘스키도 홀대를 받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다.

젊은이들에게 강력 추천해주고 싶은 작가가 촘스키이다. 뜨거운 피를 가진 젊은이들에게 그 어느 작가 보다 강력한 임팩트를 선사할 것이다. 한 때 촘스키를 모르면 바보취급을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촘스키의 책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화두가 되었고 그의 주장은 그렇게 인용되었었다...그러나 여전히 그는 살아있다...

 

 

 

326쪽 분량의 50% off 하여 7500냥

 

우리는 아프리카를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빈곤하고...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게된다. 또한 왜 아프리카가 그토록 빈곤을 지속해야 하는지도 잘 알 수 있다.

 1961년 한국의 GNP 80불, 가나의 GNP는 160불. 가나는 우리보다 60년대 당시 2배 더 잘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가나인들이 우리를 만났더라면 우리에게 빈곤한 나라라고 말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런 가나가 과연 왜 지금의 가나가 되었단 말인가...그 해답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이 잘못한 탓이 아니다...결코....

 

 

물론 이외에도 좋은 책들이 있을 것이지만 미처 읽어보지 않은 책들이기에 언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위의 책들은 인상 깊게 읽은 책들이고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다.  참고로 개인적인 사견으로 평가한 책들이라는 점을 참고하시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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