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파워플하고 가슴을 뜨겁고도 시원하게 해주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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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4-1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파워플하고 가슴 뜨겁고도 시원하게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냥 '뜨겁게'만 이라면 이들의 눈빛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지 않을까요?^^


차트랑 2012-04-1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상물을 보니 빼놓을 수 없겠는걸요^^
피아졸라의 탕고는 이 봄에 참 여럿 감동시키는 곡입니다.
잘 보고 잘 들었습니다.
눈빛의 언어로 말을 주고 받는 저 두사람에게서
일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요
박수~~
 

 몇일 전 부터 전국민의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인 알약과 V3 Lite가 영 작동을 하지 않는다. 시스템 과부하 상태인가...

이렇게 별 생각 못하고 았다가...언뜻 이거바라...뭔가가 있군~ 이렇게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몇일 전 업무를 시작하면서이다. 시스템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있을 뿐 아닐라 심지어 인터넷의 화면들이 일부 깨진 상태로 모니터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러스인지, 악성코드인지 그런거에 걸린거 같으다. 그런데 이번 현상은 좀 특이했다. 알약도, V3도 도대체가 실행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 보안 프로그램과 바이러스 혹은 악성코드와의 관계를 아직 의심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인지라 알약을 다시 다운 받아 설치하고...V3로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상태는 전과 동일하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방화벽은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된 상태라고 겁을 준다. 참 내원...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싶다. 그리하여 상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보고한 내용을 검색하다가는  헛 수고만하고 시간만 빼앗겨 버렸다. 다시 알약으로 돌아가 커서를 작동시킬 수 있는 모든 곳을 죄다 눌러봤다. 드디어 찾고있던 증상과 처방에 대한 결과물을 얻었다. ‘시스템 후킹을 통해 알약 실행을 방해하는 악성코드’가 바로 이것이었다. 시스템 후킹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알약 실행을 방해하는 악성코드가 있다는 결론이다. 하여 전용 백신을 다운로드 실행한 결과 알약이 잘 작동하고 있는 상태이다.


참 내원... 백신 프로그램을 무력화 시키는 그런 악성코드도 다 있나보군...살다보니 별 경험을 다한다 싶다.


엄한 시간을 빼앗기고 스트레스 받으며 고생한 생각을 하니 과거 처음 컴퓨터를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바이러스 먹고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내다버린 컴퓨터가 생각났다. 당시엔 컴퓨터의 매커니즘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바이러스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하는 편이 옳다. 여하튼 당시에는 첨단 컴퓨터였고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다시 구입을 하게 된 것은 바이러스에 대처를 하지 못한 탓이다. 하긴 운전 할 줄 안다고 자동차를 수리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걸 치료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는 것이 문제였다. 구입한 컴퓨터는 486DX2라는 기종이었다. 가격도 만만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처음 만난 건 대학을 다니던 때이다. 강의의 한 과목은 그 성격이 좀 독특했다. 소논문을 학생들 각자 작성하여 제출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자료를 제출 한뒤 이걸 다시 한 시간 동안의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두 시간이 묶여있는 강의 였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 이것이 대학교의 방식이어야해..라는 생각이 든다. 소논문 강의를 마친 학생은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물론 미리 소논문의 주제를 밝히고 사전에 자료를 제출한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강단에 서있는 학생 하나를 죽쑤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학점은 학생들을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가게 했다.


문제는 교수님께서 소논문을 컴퓨터의 워드작업으로 제출하라는 요구였다. 당시 대학생들이라도 공과대학생들도 제대로 개인 컴퓨터를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성능이 대단히 탁월한 것이었냐...아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처참한 성능을 가진 것들이다. 3.8.6. 이었으니 말이다. 요즘 말하는 386세대를 지칭하는 그런 말이 아니다. 순전 컴퓨터의 성능을 말하는 표현이다. 그럴 당시 386이라는 컴퓨터가 어떤 것이었냐 하면... 1989년 미국에서 출시한 386은 본체만 800만원을 훨씬 호가했다. 모니터와 마우스등 주변기기들을 포함하면 그 가격은 더 올라간다.


386의 성능을 보면 가관이 아니다.

CPU 20Mhz, Memory 2MB, 256 컬러의 비디오카드

지금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가...이걸 컴퓨터라고 했으니 말이다 ㅠ.ㅠ.


그 후 1992년 성능이 훨씬 월등한 486이 시장에 나왔다. 그 성능은 386에 비하면 빛나는 능력을 가진 컴이었다. 사양을 보면

CPU 66Mhz, Memory 150MB


과연 386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첨단 컴이다. 물론 가격도 386이 출시되던 당시보다 현저하게 저렴한 가격이다. 거의 2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에 입수가 가능한 가격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사양의 486도 정말 지금 생각하면 한숨 나오는 실력을 가진 컴이 아닐 수 없다.


그 뒤를 이은 컴퓨터가 아마도 팬티엄일 것이다. 역시 486보다 훨씬 성능면에서 강력했다. 그러던 퍼스널 컴퓨터의 성능은 기하급수적인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486DX2로 한글 2.0 버전이나 2.1버전을 사용해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하늘소, 천리안이라는 말은 이제 잊혀진 듯 하지만 당시엔 첨단 통신수단이었다. 컴퓨터는 마이크로칩의 밀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주장한 한국의 ‘황의 법칙’은 그 무어의 법칙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한 이야기까지 하게되었다...

바이러스 이거...없는 세상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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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향한 것은 아니다. 동료와 함께 동해에 한 번 가보자는 이야기를 나눈지 여러해...밥 한 번 먹자는 말을 이행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 처럼, 어디 한 번 가보자는 말치고 뜻대로 이행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저 막연하게 '그래, 한 번 가보자...' 이건 사실 약속의 성격을 지닌 말 같지는 않다. 그저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마음이 그렇다는 것일 뿐....하여 밥 한 번 함께하자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저 사람이 밥 한 번 사려나...그런 기대감을 가지는 이는 드물지 싶다.

 

이번의 동해 여행도 그러하다. 모처럼 시간이 날 때면 어디론가 떠나곤 하는 방랑자의 그 모습처럼 한 번 쯤 나도 그렇게 훌쩍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 중 하나인가보다. 서머싯 모엄은 그리하여 '달과 6펜스'라는 책을 내놓게 된 것은 아닐까... 모엄은 인간의 저 깊은 곳, 인간의 육체 안에서 전해져 전해져 내려오는 그 혈액속에는 그 조상들이 떠나왔던 그 이름 모를 곳, 알 수 없는 곳에 대한 향수(nostalgia)를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고 했다. 그 어디론가 향하고 싶은 갈망을 그는 격세유전(Atavism)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스트릭랜드였다.

 

인간은 누구나 스트릭랜드가 되고 싶어하는 갈망을 가진 존재인가...한없는 자유에 대한 갈망, 그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구를 인간은 짖 누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나로서는 알수 없는 질문이지만 우연히 들르게 되는 그 어느 곳을 되려 편안하게 느끼며 안주하고 픈 소망이 울렁인다. 서머싯 모엄은 인간의 이런 욕구를 달과 6펜스를 통하여 보여주고자 한 듯 하다.

 

 

경부선을 따라 가다가 어느 방향으론가 빠져나갔다. 한 참을 달리다보니 안동을 지나는데 군자마을이라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오천 한마을에는 군자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강 '정구'선생께서 하신 말씀에서 군자마을이라는 이름이 셩겼다고 한다. 참 좋은 곳에 자리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양반들은 모두 퇴계의 문인들이라고 한다.

 

조금을 더 지나니 경상북도 봉화군이란다. 청량산을 지나고 있다는 팻말이 보인다. 이름이 참 좋다. 청량산...청량산은 퇴계 이황선생께서 수도를하고 공부를 하신 곳이라 한다. 군자마을과 무관한 산은 아닌 듯 하다. 그 기절이 출중하고 기품이 있으며 영기가 가득 어린 영산임에 틀림이 없다. 과연 이러한 곳에서 살면서도 그 어느 곳 에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그런 의문이 생긴다. 나라면 그 청량산에서 살고프다....

 

사실 여행기를 쓰는 이유는 군자마을도 아니요, 청량산도 아니다. 청량산을 지나 무작정 또 길을 따라가니 불영계곡을 지나고, 결국 울진이라는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울진은 작은 마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읍내를 관통하게되는데 갑자기 커다란 인물의 사진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름아닌 기호 7번 박혜령 후보였다.

 

 

 

 

 

 

차를 세우고 바로 한방 찍었다. 그녀가 내세운 공약 3가지가 큰 글씨로 써있다. 그 중 2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노후 핵발전소 페쇄법안 추진  

2) 탈핵및 에너지정책 기본법제정

 

내게는 참으로 씸플하면서도 강인하게 다가오는 공약이다. 이런 공약이라면 나는 나의 소중한 한 표를 그녀에게 드릴 것이다. 이보다 지역 구 민을 위한, 아니 국민을 위한, 전 세계인을 위한 공약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표를 얻지 못한 듯 하다. 그녀는 이번 선거에서 탈락했으니 말이다. 울진 원자력 발전소는 1990년 준공했다고 한다. 물론 덕분에 상당량의 전기를 필요한 곳에 공급해온 것은 사실이다.

 

녹색당으로 출마한 박혜령 후보는 참 미련한 후보인가보다. 노후 핵발전소 페쇄법안 추진,  탈핵및 에너지정책 기본법제정을 공약하면 표를 줄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떨어질 수 밖에...

그러나.......

  알라디너의 어느 분이 스스로를 정치 혐오자라고 말 하듯이 나 역시 정치 혐오자이다. 그런데 이 미련한 녹색당의 공약은 나로하여금 정치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이처럼 당장의 이익과 표를 무시한 채 당당하게 내건 공약은 정말 그 순간 나의 심금을 울리는 힘을 가진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녕 국민을 위한 사람은 저렇게 국민도 알아주지 않는 공약을 내 걸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박혜령 후보가 저 미련한 공약들을 다음 선거에 다시 들고 나와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표가 모자란다면 이사를 해서라도 한표를 드리고 싶은 것은 그녀의  저 미련함 때문이다. 나는 그 미련한 박혜령 후보에게 나의 뜨거운 사랑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역구 민들은 원전의 문제점을 기타의 문제점보다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늘 목전에 두고 있는 생계의 문제가 그 무엇보다 더 절실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박혜령 후보가 탈락한 것이 서글픈 것이 아니다. 그녀가 탈락 할 수 밖에 없는 국민들의 의식이 더 서글플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뭔가를 너무 모르고 있다....참 슬픈 일이다...

 

분명 원전의 문제점은 충분한 인식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는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그 이상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물론 그 피해는 일본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들은 일본의 지진에 의한 원전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상 지진에 의한 원전의 피해 실태는 대한민국인 우리도 그 정도를 잘 알 수 없고, 일본인들 당사자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원전이 가지는 심각성을 대다수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국민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원전에 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보니 그 심각성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

 

가장 기본적인 원자력발전에 대한 기사를 대수능 교재에서 만났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원자력 에너지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정에너지, 혹은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잘못 포장되어 있다. 대다수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략 18개월마다 연료봉을 교체해야  한다. 연료봉은 NP-237이라 불리는 매우 유독한 방사성 물질을 가지고 있다. 매년 연료봉 하나 당  2층버스 100대분의 폐기물을 발생시킨다. 이 폐기물을 어디엔가는 꽁꽁 저장해야 한다. 반감기(방사성 원소의 원자수가 최초의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2백만년 이상이다.

 

그 어느 폐기물보다 무서운 폐기물이지만 늘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토록 안전하다고 말하는 핵발전의 대형 사고가 바로 옆에서 터지는 것을 목격하고도 우리에게는 저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다. 한 번 발생한 핵발전의 문제는 수습이 불가능하다. 그 피해는 전국적일 뿐 아니라 대를이어 그 영향력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과학자 처럼 사고하기'라는 책이 있다. 과학자들은 독자들에게 말한다. 과학적 소양이 그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우리가 원자력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원자력의 문제점을 들고 나온 후보를 탈락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원자력의 무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무서움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국민들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박혜령 후보를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선거법에 저촉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그녀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후보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저극 지지한다.  

 

(녹색당 당원이냐고 물어볼지도 몰라 추신한다. 나는 녹색당 당원이 아니다. 벌써부터 4년 후의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4년 후에는 반드시 녹색당의 후보들이 당선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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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04-2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거 끝나고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에 빠져있느라,
이 글을 뒤늦게 읽었습니다.
박혜령 후보의 사진을 보니 새삼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그의 선거운동에 참여해본 동료들이 그가 울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자기만 우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죄다 울려버리는 재주가 있다구요.

녹색당은 비록 득표율 2%를 채우지 못해 등록취소되었지만,
녹색당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다가올 지방선거를 위해 다시 일어나서 걸어야겠지요.
멘붕은 이제 그만 극복해야겠습니다.

아참, 차트랑공님의 지지발언 정말 고맙습니다!

차트랑 2012-04-2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의 댓글은 감은빛님의 서재에 남겼습니다~
찾아주셔서 고납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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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4-09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아요.
이언길런 보니까, April생각나네요.
타미 볼린의 Savannah Woman도 떠오르구요~.



차트랑 2012-04-09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아침부터 강렬하게 흐드러지는 음악을 포스팅해서
쩜 걱정을 했는데 양철나무꾼님께서 저의 염려를 불식시켜주셨습니다^
그저 '전설'이라고 밖에는...

타미불린 또한 전설^^
지글거리는 엘피로 듣던 사바나 우먼의 정취는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ㅠ.ㅠ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stella.K 2012-04-0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면 팝송이 싫어지던데 대신 클래식이 좋아지더군요.
차트님의 팝송 사랑은 여전하신가 봅니다.
가끔 예전에 듣던 음악 들으면 옛 생각도 나면서 지금들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제가 요즘 인기있는 팝이 뭔지 모르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겠죠?ㅋㅋ

차트랑 2012-04-10 00:23   좋아요 0 | URL
장르를 가리지는 않는 편이구요
몰라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4-0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제대로 한방 듣네요! ^^

차트랑 2012-04-10 00:24   좋아요 0 | URL
아침에 저도 한방씩 듣고 업무를 시작한답니다^^
 
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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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권에서 강신주는 1권을 읽은 독자에게 기대 그 이상의, 보다 훨씬 더 많은 제자백가의 그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저자가 단단히 마음먹은 것 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래, 관중과 공자에 관하여 이 정도의 것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저자는 이 저서에서 관중과 공자에 관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들을 토해낸다. 어쩌면 많은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자가 이러한 생각을 글로 출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왜냐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공자 이전에 민중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제나라를 패국으로 만든 관자의 통찰력을 높이 평가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공자의 수고스러움이 안쓰럽게 느껴지며 때로는 시대가 소망하지 않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관직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천하를 주유하는 초라한 공자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공자가 누구던가...조선을 500여 년간 지배해온 이념의 창시자가 아니던가. 조선의 중심 이념에는 공자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조선은 공자를 모신 사당에 문묘 18현을 배향하기까지 그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싸움을 해왔던가... 공자 없는 조선은 상상 할 수 없으며 공자가 곧 조선을 지탱해온 힘이었다는 것을 과연 어느 누가 부정할 것인가. 공자의 힘은 조선의 국왕보다도 더 컸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 등장하는 왕들이 신하들에게 쩔쩔매는 장면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우리 역사가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자는 관자 앞에서 너무나 초췌한 모습 그 자체 일 수밖에 없으니 저자는 그 얼마나 고민스러웠으랴. 저자는 이 저술을 통하여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공자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깨버린다. 이처럼 공자가 대중 앞에 벌거벗은 몸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공자 관련 서적들은 공자를 보기 좋은 포장지로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것을 드디어 들켜버린 셈이다. 공자의 위상에 큰 손상일 입힌 저자 강신주에게 돌팔매질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 분명하다. 공자는 그들에게 왕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기에...


저자는 그렇게 강보에 꽁꽁 싸맸던 공자의 껍질들을 하나 씩 벗겨내어 마침내 그 본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포장하지 않은 공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쩌면 골수 유학자들에게는 심히 불쾌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조선이었다면 저자가 그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은 제로 퍼센트인 것이다. 독자들에게 공자를 관자보다 훨씬 못 미치는 인물로 각인시킬 수도 있는 저술에 분노했을 것이며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감추고 싶었던 유학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노출 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자신들의 지배 이념을 그토록 통렬하게 드러내다니…….



관중과 공자가 선택한 키워드의 차이점


관중과 공자는 시대적인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관중은 자신의 힘으로 그 어떤 나라이든 패국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공자는 주례를 바탕으로 나라를 바로 세워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관중은 환공이 이끄는 제나라를 패국으로 만들기 위해 전례 없는 생각을 해낸다. 바로 민중의 중요성 인식이 그것이다. 반면 공자는 관자보다 독자들에게 훨씬 더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관중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주(周)나라의 예(禮)를 회복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겠다는 일념, 즉 지극히 보수적인 경향을 보여준 것이다. 정치에 관한한 대 선배인 관자의 엄청난 성공 사례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관중을 벤치마킹하지 않고 정 반대의 길을 택한 셈이다.

  

사실 관중과 공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패국을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을 어느 곳에 두느냐이다. 관중은 패국의 열쇠를 민(民)에게서 발견한 반면 공자는 흔히 인(人)이자 백성(百姓)에게서 찾으려 했다는 점이다. 2권을 읽기 전에 1권을 읽는 것이 바른 순서임에 틀림이 없는 것은 인민(人民)이라는 용어에 대한 올바른 개념의 이해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인민(人民), 백성(百姓), 군자君子, 소인小人 의 용어 인식

 

요즘이야 인민, 백성이 모두 같은 일반인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주나라 시절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주나라의 인(人)은 경대부등 지배세력을 가리키는 말로 공자가 말하는 군자에 해당한다. 백성(百姓)이라는 용어 역시 당시에 성을 가진 경대부등의 지배세력을 뜻하는 용어였다. 人의 상대적 용어인 민(民)은 전쟁에 져 주나라에 끌려온 노예로서 한 쪽 눈을 찔러 보이지 않도록 했고 노동력에 동원되거나 필요에 따라 제사의 희생물이었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군자(君子)의 상대적 용어인 소인(小人)은 피 지배세력을 뜻하는 말이다.

 人과 民이라는 말을 사용하다보니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라고 하던데 혹시나 춘주 전국시대의 인민이 가지는 의미를 행여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덜컥 인다.

 

위의 용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관중은 피지배 세력인民을 패국으로 가는 키워드라고 생각했고 공자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民을 다스리는 지배세력인 人을 키워드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관중은 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성의를 보여준다. 물론 꿍꿍이는 제나라를 패국으로 이끌기 위한 사전 포석이지만 말이다. 백성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관중은 현대의 복지정책으로 민중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한 셈이다. 민중이 국가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만 국가에 충성하는 존재라는 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백제의 민중이냐 신라의 민중이냐가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가족과 더불어 굶주리지 않고 인생을 노력 한 대로 살아갈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국가가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상황에서 민중의 나라가 신라인가 백제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 않은가. 관중이 민중을 그토록 보살피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 춘추 전국시대, 즉 피지배 세력은 인명으로서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던 시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관중은 이러한 민중의 심리를 잘 파악했고 민중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힘썼으며 결국 패국을 이루었다.


관중이 당대의 정치력으로 저 거칠고도 사납기만 하던 춘추 진국시대에 제나라를 최초로 패국으로 이끈 그의 생각보다 사실 내게 더 관심이 가는 인물이 공자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저자가 공자를 포장한 껍데기들을 홀홀히 털어내어서가 아니다. 정이 정호 형제와 송대의 주희를 거쳐 조선에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 공자는 과연 당대에 어떤 사유로 인생을 보냈는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정리한 중용을 읽고 논어와 맹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지고한 정신세계는 과연 어떤 근원에서 발원하였기에 조선의 민중들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는가...나는 이것이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조선 선비의 자제들이 태어나 5세에 천자문을 깨우치고 나면 흔히 동양의 고전이라 이름하는 동몽선습, 사자소학, 명심보감을 달달 암송한 후,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거쳐 역경 시경 서경을 기본으로 익혔는데 이를 4서 3경이라 했다. 조선 선비의 자제는 4서 3경 외에 다양한 경전들을 읽고 암송했으며 시서화(詩書畵)에 능해야 했다. 그래서 각 고을마다 성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던 것이다.


물론 과거를 보아야 했으며 과거 시험은 동양의 고전에서 출제했다. 하여 과거를 치루는 선비의 자제들은 주희가 해독한 주석까지도 달달 암기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주희는 공자를 능가하는 교주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입식 교육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듯 조선의 정치적 이념의 발원지인 공자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人과 民이라는 용어의 개념정리가 안된 탓에 상당히 오해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어떤 오해야 하면 공자가 말하는 애인(愛人)이란 사실인 즉 민중을 제외한 경대부(사대부)를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공자의 애인(愛人)을 마치 요즘의 민중을 뜻한다 생각하고 공자가 참 일반인들을 무던히도 사랑했구나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仁의 대상은 일반인인 대중을 제외한, 조선으로 치면 농공상(農工商)을 제외한 사(士)들 만을 칭하는 매우 제한적인 용어이며 지극히 정치적인 용어인 것이다. 현대로 말하면 정치인들과 관료들 그리고 많은 재력을 가진 기업인들인 것이다. 민중 곧 대중은 공자의 愛와 仁에서 열외자였던 것이다. 공자는 더욱이 민중이 문자를 알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말이 아닌가? 그렇다. 바로 조선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려하자 이를 극렬히 반대하던 조선의 선비들이 그러했다. 공자의 그러한 생각은 중국의 정이 정호형제와 주희를 통해 조선에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한 공자의 이론은 사실상 강력한 패국을 꿈꾸는 군주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왜냐면 공자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배세력들은 실상 군주들에게는 언제든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틈만 보이면 스스로 군주가 되겠다고 덤비며 하룻밤 사이에 아군이 적군으로 돌변하던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기였으니 복례를 외쳐대는 공자의 말이 먹혀들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14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정치를 해보겠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녔던 것이다.


결국 공자가 자신의 신념이 세상에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노나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는 그동안 자신을 믿어주던 제자들마저 상당히 떠나가버리는 이탈 현상이 생긴 후였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켜냈다. 이탈 현상을 막기위해 유학의 본질을 교조적으로 탈바꿈하는데 공자는 극적으로 성공을 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공자의 유학은 종교적인 차원에 다다르게 되어 조선에까지 상륙한다.


공자의 생각은 춘추전국시대의 패국을 꿈꾸는 군주들에게 어필하지는 못했지만 공자는 현재까지 유학의 발원지로 인정받고 있으며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조선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공자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낸 사람의 주장임이 강신주라는 걸출한 사람의 분석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현대의 정치이념에 드리워진 관중과 공자의 생각


현대의 정치사에도 관중과 공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정치인들의 이전투구 양상은 사실상 대중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들이 강하다. 그나마 관중의 생각은 현대의 정치 시스템에도 잘 들어맞는다. 곤궁한 대중들을 위해 관중이 노력했던 것처럼 정부도 국민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대중의 지지를 얻어 패국을 이루려 했던 관중의 뜻과 일맥상통한다.

 공자 역시 자신의 생각으로 새로운 정치 질서를 창출하고자 했고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의 사유도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다. 공자에게 모여든 수많은 제자들도 공자라는 인물을 통해 출사하여 명성을 얻고 귀족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적인 판단과 목적을 가지고 공자의 문하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사유는 그의 시대가 요구하는 사유방식이 아니었고 현대의 정치 시스템에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 지배자와 피지배가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사유 방식의 정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분모를 가지는 부분이다.



발견, 아나키스트 강신주님


이 책을 읽으며 매우 인상 깊었던 요인은 꼭 관중과 공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 강신주의 사유가 빛나는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을 저술하기위해서 그가 연구해온 뜨거운 정렬과 그 성과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빛나는 대목은 이 책을 통하여 저자 강신주님은 자신의 신념인 무정부주의를 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절절하게 말이다. 이는 놀라운 발견이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그동안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읽어온 독자로서 이처럼 무정부주의임을 피력한 저술가가 몇이나 되던가...아마도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 싶다. 번역서는 물론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관중이 제나라를 패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강신주는 자신의 무정부주의를 피력하고 있다. 관중의 정치력이 빛나는 것은 민중을 패자로 가는 키워드로 사유했다는 점이고 민중을 위한 정치를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저자 강신주는 관중의 정치력을 날카롭게 꿰뚫어본다. 이 책이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대목은 관중의 정치력이나 공자의 진정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드러내는 대목이 아니다. 바로 관중의 정치력을 통해 투사시킨 자신의 신념, 바로 그것이다.


국가란 패자로 나서기 위해 국민의 협조가 필요하다. 말이 협조이지 자발적인 복종의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다. 강제력보다는 물론 대단히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자발적 복종에서 발견해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국가라는 강력한 시스템이 내미는 손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자발적 복종은 강제된 복종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통찰력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강자가 보내는 러브콜은 약자가 스스로 강자가 되려는 노력을 망각하게 한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가기위해서 시행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민중에게는 그들이 처해진 삶의 조건에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제공하여 자발적 참여와 복종을 유도해내는 것이다.

국가의 군주는 땅에서 자라는 풀로 소나 양을 키우는 목동과도 같은 존재이다. 군주는 충분한 먹이를 제공한다. 이럴 경우 소나 양은 주인을 잘 따르면 먹을 것을 충분히 얻는다는 신뢰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가축의 주인은 필요에 따라 그 가축을 자신들의 먹을거리로 삼거나 거래의 도구로 미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국가가 민중을 가장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방식은 민중들이 자신이 지배당하고나 그러한 방식으로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할 때 가능한 일이다. 목동처럼 말이다. 관중의 정치 철학이 현대의 모든 국가, 특히 복지 정책을 통하여 체제의 안정을 영속화하는 작동의 원리인 국가주의 이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통찰한 강신주의 사유가 빛나는 대목이다.


반면 인문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원초적 불평등을 인식하고 있다. 강신주가 그러하다. 목축은 동물을 학대하는 가장 잔혹한 방법이라 말한다. 인간에 의해 길러지는 동물은 근본적인 자유를 박탈당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살육당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목축은 좋은 때를 기다려 살육을 잠지 뒤로 미루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이를 착각한다. 당장 죽이지도 않고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하지 있지 않은가…….때가 되면 자신을 사육하는 인간이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 때 가축은 인간에게 은혜로운 존재로 둔갑하는 것이다.


진정한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가축의 야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집요한 목축행위로 인하여 가축은 예정된 파괴의 길을 갈 수 밖에는 없다. 이것이 목민의 발상인 것이다. 피지배층은 그렇게 길들여져 필요할 때마다 약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축은 목동이 자신을 돌보아주며 보호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사실상 그러한 가축에 감정 이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훈육에 길들여지지 않으려 거부하는 자는 제거의 대상이다. 결국 길들여지는 자 만이 살아남는 법이다. 민중의 삶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 회의하는 강신 주는 이 저술을 통하여 아나키스트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가 지배 체제로 편입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공자의 제자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현상들이다. 목축의 대상이 아니라 목동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하는 지배욕을 공자와 그 제자들은 은밀하게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신분 상승의 욕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의 학문 속에서는 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나면 허락된 자유는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철회될 수 있음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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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4-04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의 자발적 복종은 더 잔인하다는 말이 왠지 더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제주 강정 마을에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국책사업,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니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 속에서 자발적 복종의 단면을 보게 됩니다.

차트랑 2012-04-05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int님의 리뷰 덕분에
저도 이 책을 읽게되었습니다.
이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국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수 있는 매우 뜻 깊은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의 서제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인트님

2012-04-05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2-04-09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 님은 이쪽으로 좀 독특하신 것 같아요.
좀 좋아하기 힘든, 알튀세르 이론을 좋아하셔서 메일 아이디를 알튀세르@로 사용하신다는 분이기도 하죠.
제자백가에서도, 관중에게 자신을 투사하시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차트랑 2012-04-0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철학의 탈주를 우선 읽어보아야 할 듯 합니다 ㅠ.ㅠ
푸코, 들뢰즈, 라캉, 데리다 그리고 알튀세르...
이런~ ㅠ.ㅠ
특히, 비철학적 철학을 요주의해야 할 것 만 같다는...
정말 마음에 안드는 프로이트와
마음에 쏙~드는 맑스를 통과하는 골치아픈 동굴탐험^^도 병행.
역시 마음에 안드는 헤겔선수도 끼워드려야...
스노볼이 따로 없군요 ㅠ.ㅠ

서양철학은 정말 머리를 지근거리게 한단 말씀이에요ㅋ
그러나 흥미를 결코 잃지않게 한다는 강점도 있습죠 ㅠ.ㅠ

그나저나 투사능력이 탁월한 강신주님~^^
이분 역시 요주의 인물이시라는...

양철나무꾼님께서 방문해주신 결과 이거 이거...
읽을거리 엄청 던져주시는걸요^^
고미숙선수가 들뢰즈를 언급할때면
멀쩡하던 머리가 갑자기 빙빙@@~

한동안 아짤아찔한 현기증을 경험하게 되나봅니다..
이런걸 두고 베리굿~ 현상이라고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마녀고양이 2012-04-0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였습니다.....
한줄마다 생각에 잠기게 하고, 강신주님을 만날 생각이 없던 저에게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자발적으로(!) 들게하시는 리뷰였답니다. 실은 중간 부분에 백제 민중이나 신라 민중이나~에서부터 아, 그렇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나키스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차트랑 2012-04-10 00:2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께서 좋은 리뷰라고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ㅠ.ㅠ

저도 강신주덕분에 아나키스트 관련 서적을 뒤지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뒤질 것도 없이 강신주께서 열거해준 저자를 찾으면 되는 일입니다만^^
제게 강신주께서 새로운 관심 분야를 알려준 것 같아서
매우 만족스러운 저술가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강신주라는 사람의 책을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