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당도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조선의 유학자였다. 성리학을 통해 배운 학문이 곧 여유당의 학문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조선을 지배 해온 성리학자적 면모들과는 또 다른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관과 할 수 없는 분이 여유당이기도 하다. 이는 여유당의 생애가 주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흔히 경세치용 학파를 유형원, 이익과 더불어 정약용을 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학자이면서도 그들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걷고자 했던 사람이 여유당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은 대중을 지배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국시로서 매우 성공적인 역사를 가진 학문이라 하겠다. 조선은 사농공상의 계층을 뚜렷하게 구분하고자 했고 그에 수반하는 노비라는 특수한 계층을 가지고 있었다. 중세의 서양에서도 노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 국가의 노비가 대중의 40%에 육박하는 비율의 나라는 거의 없었다. 특히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의 노비인구가 자치하는 비율은 50%를 웃도는 지경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업의 나라 조선, 그리고 노비

 

 국가의 재정을 전적으로 농업에 의존하다시피 한 조선은 노비라는 특수한 계층을 필연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신라와 고려가 회회인(아라비아인)들과 무역을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간단하게 조선의 노비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비는 남종을 뜻하는 노와 여종을 뜻하는 비를 일컫는 말이다. 노비의 형태도 무착 다양했는데 '관노비'와 '사노비'가 있었다. 관노비는 대궐이나 관아에서 일하는 노비이고, 사노비는 양반집에서 일하는 노비을 일컫는다. 사노비는 ‘솔거노비'라 부르는 신역 노비와 의거노비, 납공노비가 있었다. 신역노비는 상전의 집에서 거주하며 노동을 제공하는 노비로 청지기, 상노, 안잠자기, 상지기, 식모, 찬모등을 뜻한다. 의거노비는 상전과 따로 살면서 토지를 경작해주는 노비이고, 납공노비는 상전의 집에서 살거나 일을 해주지는 않지만 매년 정해진 액수의 물품을 바치는 노비의 형태이다.

 

1398년 태조 때 노비의 가격은 무명 150필 정도였고, 말(馬)로 교환하자면 노비 셋을 주어야 말 한 마리를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노비의 가격이 폭락하여 노비 10명을 주어야 말 한 마리와 바꾸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명나라 군사가 두 달의 월급을 저축하면 조선의 노비 1명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그러하던 노비의 가격이 동학농민운동이 전개되던 조선 말기에는 노비 5명과 미모의 여성 노비 한사람을 주면 소 한 마리와 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사람'이라하고 말은 짐승이기에 '마리, 혹은 필'라고 하는 것인데.... 시대가 그랬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의 노비가 18세기에는 전 인구의 40%에 육박했다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노비의 비율이 50%에 달했다고도 주장하기도 라는데, 조선 실록에 서얼 차별의 강력한 주장에 앞장선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 퇴계 이황의 가문이 가지고 있던 노예의 수는 367명이었고 전답을 합치면 요즘의 기준으로 34만 평이었다. 노비와 전답의 규모를 생각하면 대단한 부호였음을 알 수 있는 수치라 하겠다. 요즘으로 치면 트랙터가 여러대 필요할만한 규모의 부농가였던 셈이다. '안빈'이라는 말이 왜 허공의 메아리로 들리는 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사농공상이라는 뚜렷한 계층구조와 엄청난 인구비율의 노비는 주로 농산물에 의해 국가의 재정을 조달했던 조선의 경제시스템에서는 불가피한 구조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지배계층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무역과 상공업을 장려할 수 없었던 성리학의 이념은 조선을 주로 토지에서 산출되는 잉여가치를 국가 재정에 편입시킬 수밖에 없는 철저한 농업 국가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성리학은 상공업을 군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가르쳤고 이를 천시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오죽했으면 엽전을 ‘좌전’이라고 했을까... ‘좌전’이란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취급하는 돈' 이라는 뜻으로 왼손은 우리 조선에서 홀대를 받았던 손이다. 

 

 

흔히 선비라 일컫는 조선의 지배세력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을 위해 대신 노동을 해줄 인구(노비와 소작농)가 필요했고 국가의 재정을 조달 하는데 다수의 대중들을 지배하여 동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여 조선은 엄격한 신분구조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조선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뚜렷하게 구별된 사회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구조의 국가에서 대중에 대한 사랑(애민)을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중에게 복지정책을 펼쳐야 대중들의 삶이 더 편안하겠지만, 조선의 계급구조와 경제구조는 조선에 그럴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조선시대를 살아온 대중들의 애환과 고달픔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제도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여유당은 이러한 조선 성리학의 이념 하에서 여타의 기득권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조선 성리학의 이단아'라 할 수 있다. 그런 여유당은 목민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목민심서(牧民心書)’라는 책을 저술하게 된다. 성리학의 이단아라 할 만한 여유당에게 목민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목민에 관하여...

 

우리는 여유당의 저서인 ‘목민심서’라는 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이 목민심서를 직접 읽지는 않지만 그 존재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다..

목민심서(牧民心書):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이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 48권 16책. 필사본. 부임(赴任)·율기(律己 : 자기 자신을 다스림)·봉공(奉公)·애민(愛民)·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진황(賑荒)·해관(解官 : 관원을 면직함)의 12편으로 나누었다.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편제되어 있다. 부패의 극에 달한 조선 후기 지방의 사회 상태와 정치의 실제를 민생 문제 및 수령의 본무(本務)와 결부시켜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명저이다.



목민(牧民)라는 말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인가...

 

제나라의 학술과 사상의 보고라도 일컫는 管子(관자)라는 책에는 牧民篇(목민편)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牧民篇에는 “곳간이 가득 차 있어야 백성들이 예절을 안다(倉廩實則知禮節 창름실즉지예절).”이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관자 역시 목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자는 공자보다 140년 먼저 세상에 태어난 인물로 제나라를 최초의 패국으로 이끈 명재상이었으며 그 이름이 드높다. 사실상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관자는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우상이었다고 한다. 목민이라는 말은 그렇게 관자에서 출발하여 조선이 개국하면서 목민이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사용한다. 조선은 지방을 다스리는 수령을 목민관이라 했고 최초 임기를 30개월로 정한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었다. (능력이 모자라 고려시대에도 목민이라는 말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찾아낼 수가 없었음) 이렇게  하여 목민(牧民)이라는 말은 여유당의 저술한 책의 이름에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여유당의 목민(牧民)은 관중의 그것과 같지 않다...


여유당과 관중이 민(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특히 民에 대한 복지정책을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점에서는 더더욱 일치하는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민의 경제력을 매우 중시했다는 점은 2500년 전의 관중이나 200여 년 전의 여유당이나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는 실학파인 여유당을 ‘경세치용학파’라고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중이 민을 중시하고 경제 복지정책을 중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여유당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관중 역시 시대적 상황을 피해 갈 수 없는 사상가였다. 춘추전국 시대라는 불확실성의 정세는 대륙의 모든 민을 물론이고 지배세력들을 늘 불안에 떨게 했다. 전쟁은 일상이 되었고 약자는 강자에게 철저하게 빼앗기고 도륙 당하던 시대였다. 오직 승자만이 생존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지적 힘을 중심으로 산재하던 군주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바로 패자가 되겠다는 염원 뿐이 었다. 공자가 그토록 신봉하던 테제, ‘극기복례’가 전혀 먹혀들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강력한 힘을 필요로 했던 군주들에게 공자의 복례는 패국을 이루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하여 공자는 14년이라는 세월을 떠돌았지만 아깝게 세월만 죽인 채 허무하게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관중이 재상으로 있던 제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관중은 여타의 군주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민(民)을 패국으로 가는 키워드라고 생각했다. 즉, 경제력과 군사력의 사실상 근거가 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연한 생각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으로 보아 민을 패국의 원동력으로 바라본 것은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었던 것이다.


하여 관중은 민의 힘을 이용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관중은 민을 조직적으로 움직임으로서 경제적, 군사적으로 그 힘을 극대화하여 패국을 이루는데 활용하기 위해 민이 필요로하는 것(need)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중의 삶이 요구하는 조건을 들어줌으로서 자발적인 복종과 충성을 얻어내자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민에게 복지정책을 펼쳐야 민을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개념이 바로 관중의 목민(牧民)이었다.


이렇게 패국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민을 활용하는 방법론적 정책으로서의 목민의 개념이 관중의 것이라면 여유당의 그것은 백성을 이용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여유당은 근본적으로 애민의 정신에 입각한 순수한 사유의 사상가였던 것이다. 여유당은 암행어사로 나갔을 때 백성들의 처절한 아픔을 목도했다. 그들의 애환을 몸소 체험했으며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민과 고락을 함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인물이었다. 암행어사로 나갔다고 다 여유당과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유당은 애초에 가엾은 한 사람의 민을 연민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여유당의 경세치용은 백성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던 안타까운 마음이 배어있었다. 여유당의 저술 ‘경세유표’는 당시 빈부 격차의 심화 정도가 심각하다는 점, 백성들의 삶이 너무나 굶주리고 고단하다는 점, 관료들의 학정이 극에 달했다는 점,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토지의 개혁은 물론 사회, 정치, 경제의 전반적인 문제들 개혁하자고 주장했다. 이를 저술로 남겼는데 관중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유를 하고 있었음을 방증해준다 하겠다.


물론 두 인물의 시대적 상황이 같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차이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역사는 그야말로 역사이다.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이면서도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또한 역사인 것이다. 더구나 이토록 순수한 의미의 민을 위한 사유는 조선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조선 중기 대미수공법을 창안했던 율곡 이이와 목숨을 걸고 대동법을 강력하게 펼친 잠곡 김육, 그리고 골수 유학에서 벗어나 진정한 위민을 주장했던 백호 윤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여유당은 성호 이익과 반계 유형원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 하겠다. 결국 조선의 진정한 위민 정신은 후기에 이르러서야 입으로만이 아닌 실질적 주장을 했던 것이다. 이는 시기적으로 조선이 성리학을 국시로 선포하며 개국한 후 400년 이상 흐른 뒤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단아, 공산당 여유당

 

이렇게 쓰고 보니 공산당과 여유당이 무슨 당처럼 들리지만 영어의 당(party)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유당의 생각을 살펴보면 그는 분명 공산주의자인 셈이다. 여유당은 특히 토지제도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백성을 굶주리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여전제와 정전제라는 새로운 방식의 토지제도를 생각해냈다. 여전제는 한 마을에서 공동으로 농사를 지어 똑같이 배분하는 방식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판단하여 보완 장치로 정전제를 통하여 땅을 똑같이 정확하게 나누어 경작하고 공동 관리하는 부분을 두어 세금으로 내자는 주장이었다. 이는 당시의 성리학적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의 주장이었다. 지배 체제를 뒤흔드는, 사회 전반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 충격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여전제는 특히 공동농장의 형태가 아니던가... 여전제에 대한 생각은 이미 여유당께서 공산당에서나 가능한 제도를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어쩌면 세계 최초의 공산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과연 이러한 여유당의 위험한 발상과 주장을 집권 세력들은 가만히 두고만 볼 것인가??


이상적인 사회로 노자는 소국과민을 주장했고, 그 이름도 아름다운 존 스튜어트 밀과 성스러운 토머스 모어도 여유당과 같은 이단아였다. 또한 플라톤은 현대에 고전으로 일컫는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공동생활의 견해를 피력했지만 이는 단지 국가를 통치하는 철인들에 제한된 생각이었으므로 보편적인 사회적 제도로 적용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대적 개념으로 볼 때, 여유당은 독창적인 공산의 개념을 제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

스승인 벤담의 공리주의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 노력했고 그에 걸맞는 성과를 내 놓았다. 밀은 단순한 행복에 집착했던 스승 벤담의 사유마저 움직였다. 말년에 벤담은 밀의 민주주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밀은 인간다운 품위를 가진 질적 행복을 사유했다. 밀을 ‘질적 공리주의자’라고 칭하는 이유이다. 밀은 또한 당시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남녀평등을 강력하게 부르짖었고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제안을 하여 영국을 경악케 했다. 또한 노동자 계층의 권리와 평등을 당당하게 주장했는데 이는 그의 저서 ‘자유론’이 민주주의의 입문서라고 평가받는 이유이다. 그의 주장은 영국의 지배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발언이었다. '밀' 역시 여유당처럼 이단아였던 것이다.

 

 


토머스 모어

그야말로 새하얀 눈보다 더 순결한 인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토머스 모어'이다. 에라스무스는 그를 지상 최고의 인문주의자라 했다. 시대는 1500년, 당시 플랑드르의 모직공업이 잘 되어가자 양모의 가격이 폭등했다. 영국의 귀족들은 밀밭을 초지로 바꾸어 양 떼를 키우기 시작했다. 대대로 그 땅에서 생계를 유지해오던 농민들을 몰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말해 영주에게 노동과 생산물을 바치며 살아오던 공동체를 양모를 생산하기 위하여 추방했던 것이다. 흔히 ‘엔클로저 운동’이라는 바로 그것이다. 터전을 잃은 농민들은 부랑자기 되었다. 헨리 8세의 통치하에 사형당한 부랑자는 7만 2000명이라고 한다. 그 이름도 유명한 엘리자베스는 해마다 300여명의 절도범을 교수대위에 올렸다. 토머스 모어는 이렇게 외쳤다, “절도범을 죽일 것이 아니라 절도범을 양산하는 원인 제공자들을 사형에 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모어는 절도범이 영국의 경제 시스템의 결과물임을 지적했던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하는 요인이 따로 있다. 바로 ‘양’이다. 예전에는 얌전하고 유순하며 조금씩 먹던 양들이 이제는 사람까지 먹어치우고 있다.” 모어는 농민들을 추방하는 것은 바로 영국의 귀족임을 지적했다. 교회도 왕도 모두 공범이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개인의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떠넘기지 않고 사회적 문제에서 찾으려 했다. 결국 모어는 이단아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아...아름답고 지극히 아름다운 토머스 모어여.... 여유당은 토지, 경제, 시회 제도의 개혁을 부르짖으며 모어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철인

플라톤은 사회의 구성원을 타고난 능력에 따라 철저하게 분류했다. 플라톤은 각자 직분에 맞는 일에 충실히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자의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夫夫子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는 인간이 수신을 통하여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반면 플라톤은 인간의 자질이 태어나면서 이미 결정되므로 그들의 삶도 그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점에서 차이는 있다. 한마디로 선천적 신분의 분류를 철저하게 했던 사람이다. 또한 그는 국가를 철인이 통치해야 하는데 그 철인들은 사유재산을 가져서도 안되고 가족을 가져서도 안된다. 다만 우생학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많이 양산하기 위해서 심지어 부인들을 철인들이 서로 공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더욱 충격적인 플라톤의 생각은 장애를 가진 사람과 허약한 사람은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게조차 했다는 사실이다. 정말 이성의 이데아야 말로 자비란 없는 것이던가... 화이트 헤드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플라톤이 서구의 사상에 끼친 영향력을 감지할만한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여유당은 사실상 조선을 지배해온 유학자들에게는 지극히 위험한 인물이자 사상범이었다. 여유당에게는 대 선배인 백호 윤휴가 사사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득권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은 모두 사문난적이었고 처단의 대상이었다. 윤휴 역시 기득권에 감히 도전장을 내민 반항아였던 것이다. 윤휴는 민을 보살피는 다양한 제도의 개혁을 죽는 그 순간까지, 사약을 마시는 그 순간까지 부르짖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머스 모어처럼 말이다.

 이렇게 조선의 언론은 확실하게 통제되고 있었는데 마치 현대의 강력한 검열제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걸려들면 목숨을 앗아버리던 조선에서 여유당은 자신의 저술 ‘논어고금주’를 통하여 주희의 집주와 달리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한 태클을 걸었다. ‘중용강의보’라는 저술 역시 이와 마찬가지의 성격을 지닌 저술이라고 하는데 번역이 아직 되지 않은 이유는 짐작이 간다(하지 않는 것이다). 주희보다 훨씬 더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으며 교주 주희와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장구에 대해서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당시 집권세력이던 노론 측에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여유당은 그렇게 사유의 방식에 있어서나 애민의 방식에 있어서 철저한 유학의 이단아 였던 셈이다.

 


 그런 만큼 그의 고초는 컸다. 목숨이 위태로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토머스 모어의 목숨을 기어이 뻬앗았아야 했던 영국의 귀족들 처럼, 조선에서도 여유당의 강력한 스폰서나 다름없던 정조가 급서하자 그의 형제와 동료들은 가차없이 제거되었다. 여유당을 비롯한 그 일당들은 조선의 귀족들에게는 용서할 수 업는 일망 타진의 대상이자, 이단아였던 것이다.

 공자의 드높은 학문을 계승하고 유학을 국시로 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공자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행합일의 양명학이 그리운 이유도 그것이다. 이덕일의 최근 저술인 '내인생의 논어 그사람 공자'라는 책을 읽어보면 공자를 그토록 높이 떠받들며 신의 경지에까지 지극히 모시던 공자님의 말씀을 조선의 선비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다고 저자는 개탄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공자를 너무 아름답게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절반밖에 읽지 못해 단정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여하튼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여유당은 그나마 운이 좋았던지 유배를 반복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덕분에 여유당의 수많은 저술들을 통해서 여유당이 그 얼마나 순수한 정신으로 애민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유당도 노비제의 폐지를 적극 반대한 인물 중 하나였다. 사회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이것을 여유당의 허물이라고 한다면 허물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대상황을 감안할 때 여유당보다 지극히 애민을 가슴속에 간직한 인물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12-05-1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숨에 읽어내려왔네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가들의 말이 지금 우리 사회에 딱 들어맞는, 꼭 필요한 말들인것 같습니다.

차트랑 2012-05-14 23:54   좋아요 0 | URL
사상가가 왜 사상가인지 말해주는 좋은 생각들이 많은 듯 합니다.
말씀해주신대로 꼭 필요한 말들이지만
필요한 만큼 바르게 쓰이지 않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공감합니다 잉크냄새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2-05-17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유학자이나 다른 길을 걷고자 했던 사람,

심리 검사에서요, 세상의 긍정적이고 밝고 낙관적인 면만 보고 불쾌한 면은 부인하거나 억압하는 순진성이라는 특징이 있던데, 제가 거기에 딱 걸렸어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는거죠. 그런데, 사회주의의 중심 이론이 바로 그런거잖아요, 일종의 이상주의적인. 그리고 플라톤이나 토마스 모어나 여유당께서 말씀하신 것도 그런거잖아요... 이왕이면 선함을 믿고 인간의 힘을 믿고, 그래야만 저렇게 공평한 세상을 희망하고 주장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혹시.. 제가 영 엉뚱한 부분에 핀트를 맞추고 있는거라면,
제 머리가 현재 너무 멍해서 그렇다고 미리 핑계를 대려고 합니다.
너무 좋은 페이퍼,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2012-05-18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5-18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께서 말씀해주신대로
플라톤, 토마스모어 글고 여유당의 주장들은
이상주의적 측면이 강하답니다.
그래서 위 페이퍼에서 제가 쓴대로
토마스모어를 새하얀 눈보다 더 순결한 분이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답니다.

기존의 소프트웨어를 포맷하는 작입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실현이 어렵다는 것이죠 ㅠ.ㅠ

결국 마녀고양이님께서 스트라이크를 치셔서
모든 핀을 모두 다 쓰러트리셨답니다^^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마녀고양이님~
 

과거에도 페이퍼로 작성한 적이 있는 아래의 연주를 오늘도 이렇게 페이퍼로 쓰는 것은 그리모와 예르비에게서 느끼는 '경지에 다다름' 때문이다. 지금 이시간에도 지구의 그 어디에선가는 연주가 행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DVD 혹은 Blu-Ray등의 포맷으로 출시되고 있는 연주들을 헤아일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 내게 수도(修道)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연주는 흔하지 않다. 때로 몰아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연주들은 흔히 찾아 볼 수 있지만 이는 수도의 경지와는 또 다른 측면의 것이다.

 

동양에는 수도(修道)라는 말과 구도(求道)라는 말이 있다. 구도란 佛法의 용어로 道를 '탐구한다'거나 '구한다'는 말이므로 수도와는 구별되는 용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라는 말을 사용할까 한다.

 

동양의 수도(修道)라는 용어와 상응하는 서양의 용어를 찾기란 용이한 것이 아닌 듯 하다. 물론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마땅한 하나의 용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도'라는 말은 명사로 인식될 수 있는 용어이지만 '도를 닦는다'는 의미로 보아 결코 명사라고만 주장 할 수도 없는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중에는 명사이면서도 명사가 아닌 것들이 흔하다. '자연'이라는 말도 명사이지만 명사가 아니기도 하다. 그 뜻을 풀어보면 '스스로 그러하다'이기 때문이다. 

 

서양에는 수련(training)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즉, '그 능력을 고양시켜 끌어 올린다'는 말 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Training을 다른 표현으로는 풀어본다면 '단련, 훈련' 정도가 될 것이다. 피아노를 잘 치기위해서는 그러한 수련, 단련, 훈련 또는 연습(exercise)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복적인 연습은 어느 한 분야의 경지로 끌어 올리는데 필수적인 과정일 수 밖에 없다. 수많은 형태의 운동은 물론 학교 공부도 일종의 연습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수도(修道)라는 의미가 함의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수련, 단련의 의미와는 확연히 다른 용어이다. 물론 우리들에게 수신(修身)이라는 용어는 매우 익숙하다. 이 수신이라는 말도 수도라는 말에서 사용하는 수(修)를 쓴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렇다면 수(修)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아마도 이 修라는 말이 '닦는다'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사용하는 修는 '닦는다, 잘 가다듬어 고친다'는 뜻이다.

 

여기서 더불어 한가지 기어해두어야 할 것은 '닦는다'는 말의 의미이다. 즉, 修는 운동의 능력이나 피아노를 치는 등과 같이 후천적인 능력을 강화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동양에서는 자연의 상태를 완벽한 상태로 보았다. 자연의 섭리라는 그 이치를 완벽한 것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완벽함을 회복하기 위해서 '더러워지고 어긋나고 치우친 것들 닦아내고 바로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바로 수(修)이다. 그러므로 修를 행하는 길이 곧 修道인 것이다.

 

하여 동양에서는 '수련'이란 '원래대로 되돌아감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수련 혹은 수도의 과정이란 '자기 정화'의 작업이므로 그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보태어 크게 확장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오면서 잘못된 것들을 닦아내는 과정'인 것이다. 그 무엇인가를 얻는 과정이 아니라 그 무엇인가를 버리는 과정이 수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의 과정을 바르게 거치면 어떻게 될까...물론 나는 수도를 한 사람이 아니라 알 수는 없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아집, 자신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지라 한다. 한마디로 수련이란 무너지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는 곧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가 아닐까..생각한다.  내게 그런 깨달음의 경지를 느끼게하는 연주가 바로 그리모와 예르비의 이 연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 보고 또 볼수밖에는...

 

 

 

 

 

 

 

그리모의 특별수업은 자서전적 출간물이지만 일대기를 다룬 책이 아니다. 예술인으로서 느끼는 그 어떤 '벽',  혹은 '한계'에 다다르면서 스스로 마주하는 딜레마를 극복하는 과정이 담긴 책이다. 그리모 역시 피아노를 치는 예술가로서 그들이 느끼는 딜레마와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이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그리모 역시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 수업이라 한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특별한 것이며 타자 개개인들에게 그 스스로의 것들은 모두 특별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것이어서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타자의 것이므로 특별하다고 전하는 그리모는 참으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저마다 특별한 일상이 있고 고뇌가 있고, 즉 삶이 있다. 그 삶에서 그리모는 어떤 것을 깨닫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리모의 깨달음은 우리 모두에게도 아주 필요한 깨달음이라는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더불어 과연 그리모가 저렇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제는 알 것도 같다...그리모의 연주는 修를 보여주는 연주라고 느끼는 이유이다...그 얼마나 정갈하고도 그야말로 성스러운 연주인가... 나는 그리모와 예르비의 연주에서 늘 성스러움을 느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1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련이란 본래 자기 안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해나가는 것이군요.
보태고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능력이 내재돼 있는 걸까요?
우리를 둘러싼 편견 사회적 요구 상처 등등을 걷어내면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자유로운 재능이 펼쳐지겠지요?

차트랑 2012-05-1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은 저도 잘 모른답니다 ㅠ.ㅠ
인간이 분명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요^^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이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답니다^^
이것이말로 말씀해주신 재능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고요.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을 데려가는 人 님~
 

'다산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었으니 리뷰를 써도 되겠다 싶어서 쓰려고 하니 워낙 널리 알려진 분이라 고민고민하다가....차라리 페이퍼로 작성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렇다면 제목은 또 뭘로하나...갈수록 태산이다... 막상 페이퍼를 써놓고 보니 더 고민스럽다...그러다가 결국은 '호와 당호'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그러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런 페이퍼가 되고 말았다. ㅠ.ㅠ

 

 

 

'다산'이라는 호로 널리 알려진 정약용선생님은 국민의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다산'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다산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더 붙이는 것을 보면... 더불어 독자로서 '다산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우리나라의 대다수 국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도 하다. 그만큼 '다산선생님'의 일생은 국민과 떨어질 수 없는 생애를 사셨기 때문이다. 

 

 

독자로서 나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 '다산'이라는 호칭 보다는 '여유당'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개인 경우가 많았다. 아호가 있고, 자가 있고, 호가 있고, 당호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 예로 '추사'선생님의 당호는 '완당'이다. 그래서 추사 혹은 완당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곤 한다. 그런데 호가 여러개인 분들도 있었다. 완당선생님의 경우는 예당(禮堂)·시암(詩庵)·노과(老果)·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 호가 100여개에 달했다고 한다. 호가 워낙 많은 분이다보니 백호당 (百號堂) 이라고 불리기가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 완당 선생님의 호는 더합 101개인가?? 어떤 이는 완당의 호가 500개도 더 넘었다고 하니, 정말 호가 많았던 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음은 세한도를 읽으면서 나의 독서 노트에 기록해둔 추사선생님의 호칭에 대한 설명이다..


 

자와 호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모가 어른들이 지어주는 이름을 아명이라 한다. 성인이 되면 관례를 올릴 때 지어준다는 의미로 관명(冠名)이라고 하는데 보통 그사람의 이름이 된다. 김정희의 정희가 관명인지는 확인 할 길이 없다.

 또한 자字라는 것이 있다. 이 또한 이름과 유사한 형태인데, 친구들은 보통 이 字로 서로를 부른다. 字나 號는 보통 스승님이나 덕망있는 어른들이 지어준다. 그 사람이 성인이 되어 지침이 될 수 있는 의미를 이름에 담는 것이다. 추사의 경우 자가 원춘(元春)인데, 元 도 봄을 상징하고 있으므로 결국 원춘은 봄의 의미가 담겨있다.

 號는 또다른 의미를 담고있는 별명과 비슷한 것이지만 별명보다는 고급스러운 의미이다. 김정희의 號는 秋史인데 秋자는 字가되는 春자와 짝을 이룬다. 그의 자호에는 春秋 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春秋는 歷史를 의미한다. 추사의 자호로 이런 해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秋史와

추사는 별호이고 완당은 당호이기 때문에 약간 사용이 다를 수 있다. 阮堂書 라고 하면 완당이 썼다는 의미도 되고, 완당에서 썼다는 의미도 된다. 완당은 당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秋史書라는 말은 추사가 썼다는 의미만 담고 있다.

 또 완당의 경우 阮堂老人처럼 다른 글자를 붙여 쓰기도 하고 阮老라고 줄여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사는 다른 늘 단독으로 사용된다. 추사의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주로 추사라 했고, 추사의 제자들이나 후학들은 완당이라는 당호를 사용했다. 직접 부르기 보다는 ‘완당에 거처하는 분’ 이란 의미와 함께 존경의 의미가 담겨있다. 추사는 제자들이나 후학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일로 여길 수가 있어 ‘완당에 거처 하는 분’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여 개인적으로는 호를 부르기보다는 당호인 '여유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약용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유당은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는 우리 역사의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유당께서 워낙 국민들에게 유익한 책들을 저술한 것도 그렇지만 현대에 와서 여유당에 대한 저술들도 상대적으로 적인 편은 아니며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온 인물이기때문이다.

 

'다산의 마음'은 여유당의 마음을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 여유당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산문집이기 때문이다. 마치 알라디너들이 자신의 생각을 페이퍼 작성하여 업로드하듯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 혹은 주변의 사건들을 매개로 쓴 글인 것이다.

 

그리고 세한도와 완당평전, 이 두 권의 책은 우리가 완당을 우리의 선조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긍심을 심어줄 수있는 세계적인 업적을 남겼지만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뿐더러 사실은 우리들도 잘 알고있지 못하다는 커다란 아쉬움을 주는 책이다. 우리의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를 강력하게 지적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들의 훌륭한 선조들이 수없이 많건만 제대로 알고 졸업시키는 교과내용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만하다.

 

 물론 외국의 학문과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점은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의 것 뿐 아니라 타자의 것들도 배워 알고있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남의 것을 배운들, 제대로 소화가 될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결코 몰라서는 안될 우리 선조들, 그들의 훌륭한 정신과 문화가 참으로 유익한데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있고, 그 아쉬움을 달릴 길이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2-05-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유당 이라는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면 그 뜻을 떠나서 말에서 들리는 대로 여유가 와닿는 것 같아 참 좋아요

차트랑 2012-05-06 00:16   좋아요 0 | URL
옳으신 말씀입니다.
항상 조심하는, 여유하라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럴려면 여유도 좀 가지고 있어야 할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2-05-0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게,
우리 선조에 대한 지식이 미약한 정도를 넘어서고 있답니다.
변명같지만 내내 IT를 하다가, 이제는 심리학 공부를 하는데 모두 기원은 외국이네요.

어쩐지 저는 뿌리도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즐거운 한주되셔요.

차트랑 2012-05-07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고, 무슨말씀을요 마녀고양이님...
저도 마찬가지 입장인지라
저 스스로 자성하는 의미를 가진 글이라고 생각해주십시요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2012-05-07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7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2-05-07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와 호와, 당호...이런 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재미있지만,
알라딘 서재의 닉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차트랑공'님은요...전혀 미루어 짐작할 수 없다는~--;

2012-05-08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앙콜을 10번도 더 받아주는 키씬,

아르헤리치의 자애로운 눈길에 끄덕도 하지 않는 간큰 키씬,

저렇게 젊은 나이에 카라얀을 협연자로... 간이 부은 키씬

 

쟁쟁한 러시아 선배들을 닮았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2-05-0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음악을 감상하네요

2012-05-04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2-05-05 09:52   좋아요 0 | URL
깜짝 놀랐어요 어디가 아프셔서 입원하신 거여요? 괜찮으신가요?
아프신데 답장을 무슨
저는 알라딘에 오랜 동안 마음을 두고 있어서 항상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답을 안 달아주셨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 않아요.
그나저나 빨리 쾌차하셔야지요

2012-05-06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틈틈히 시간이 나는 대로 짭은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다. 사실은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 선생님을 찾아 뵙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서재에 짧은 여행기를 써보하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선생님과의 추억을 기록하는 버릇에서 온 것이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좋은 말씀을 기록장에 기록하여두고는 수시로 펼쳐보는 것이 버릇이 된 것이다.

 

 

내게는 정확하게 말하지만 스승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에 스승님이라는 말보다는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므로 선생님이라고 쓰는 것이다. 선생님은 모두 세분이 계시는데, 가까이에는 대전에 계시고, 멀게는 지리산의 깊은 산중에 두분이 계신다.

 

대전의 선생님께는 세달에 두번 정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으며, 지리산 깊은 산중에 계신 선생님께는 일년에 서너차례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는다. 지리산의 깊은 산중에는 전화기를 사용할 수 없어 처음에는 불편한 감이 있지만 10수년을 거치면서 오히려 좋구나..싶다. 지리산의 스승님은 춘추가 높으신 분과 이제 막 24의 젊은 스승님 두 분이 계신다. 춘추가 높은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를 페이퍼에 쓰기는 송구하므로 24세의 젊은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는 이 글과 관련하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다...

 

 

 

 

 

春氣櫮花 (춘기악화) 봄기운이 꽃을 활짝 피우게 하니
人人各基 (인인각기) 사람들도 저마다
開花心中 (개화심중) 마음에 꽃을 피우는 구나...


비록 24세의 젊은 나이지만 주역의 이치와 시전의 내용을 제자에게 가르치시니 나에게는 그 어느 스승님 못지않게 큰 분이시다. 그러나 한학이 가진 이치를 잘 모르는 제자가 아직 어리석어 그 뜻을 제로 받들 줄 모르니 가히 불초할 따름이다...

 

주역은 周나라의 易으로 자연 혹은 우주의 섭리를 담고있는 책이라고 한다. 때로는 점괘를 알아보는 용도로도 쓰이지만 지혜를 구하는 책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한다. 자연의 섭리대로라면 바로 봄의 기운이 모든 생명에게 그 기운을 주고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자연의 생물들은 스스로 그 시기를 알고 행한다.

 

자연의 이치를 설명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지만,  저렇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이쁘고 화사한 꽃을 피우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흔히 자연스럽다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바꾸어본다면 '스스로 그러하다' 는 뜻이겠다. 흔히 '순리'라고도 한다. 이는 '이치를 따른다'는 뜻일 것이다. 그 이치는 바로 자연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겠다...

 

자연의 섭리에는 잘못된 것이라고는 없다...

 

여하튼 그 24세의 나의 스승님과 함께 외출을 했는데 길을 걷다가 저 꽃들을 만났다. 참으로 봄의 기운이란 신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매년 바라보는 꽃이건만...하여 스승님께 '봄기운이 꽃을 활짝 피우게 하니, 사람들도 저마나 마음에 꽃을 피우는구나...'라는 말을 한자로 번역해달라고 청했더니, 스승께서는 ' 春氣櫮花  人人各基   開花心中' 이라고 그자리에서 말씀해주셨다.

 

바로 수첩에 말씀을 적었다. 그래서 수첩은 나의 필수품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 좋은 말씀과 가르침을 받을 지 알수가 없는  것이다..봄의 나날들은 세상에 생기를 주고, 그 생기를 받은 만물은 스스로를 움직여 제각기 해야할 일들을 한다. 과실나무는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한다. 산 속의 동물들은 또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이 하도록 되어있는 일들을 자연의 이치를 말없이 온몸으로  행하니, 그 자연스러움 속에 잘못된 것이라고는 없다.

 

지연의 식물과 산과 바다의 동물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 동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우리 사람들도 그러하다. 저마다 해야할 일이 있고 그에 알맞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인생일 것이다. 저마다 나무들이 다른 꽃을 피우듯이 사람들도 저마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이치는 자연의 섭리를 벗어 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움은 어떤 것일까...

 

 

물이 흐르다 그치는 곳...法

 

한자에는 법(法)이라는 말이있다...물(水)이 그친다(去)는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법대로하자는 말은 왠지 상당히 부담스럽게만 들린다. 인정 사정 안봐주겠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의 의미대로 해석하자면 '법대로하자'는 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법을 택하자, 즉 순리대로 하자는 뜻인데 말이다..그 法이라는 말이 인간을 돕는 역할로 자리잡기 보다는 인간을 구속하는 말로 인식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물을 흔히 자연의 순리에 비견하는 경우가 있다. 도가의 '상선약수'가 대표적인 말일 것이다. 물은 절대로 거꾸로 오르는 법이 없다. 아래로 흐르다가는 장애물이 나타나면 빙 돌아서 흐르고, 경사가 급하면 폭포수가되어 아래로 떨어진다. 그 어느 경우라도 절대로 물은 다투는 일이 없다. 이를 부쟁이라고 한다. 그러다가는 깊은 곳을 만나면, 그 물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만나면 그 물은 비로소 그치게 된다.. 물론 그만큼 만이다. 그렇게 물이 정지하여 그치는 그곳,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자연스러움을 거치고 거쳐 정지하는 곳...바로 法인 것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물의 법칙

 

 아미달라 여왕이 다스리는 나부 행성에 살고 있는 존재는 육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부행성의 물 속에는 건간족이 살고있다. 지상족과 수중족인 건간족은 역사적으로 서로 사이가 좀 나빴던 것 같다. 아미달라 여왕이 위기에 처한 나부의 행성을 수호하고자 건간족의 통치자를 만나 협력 방어에 나서자는 제안한다. 그러나 건간족의 대표는 처음에는 이를 거절한다. 유리한 공동 방어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애를 먹는 것을 보면...

 

여기서 주목해도 좋은 대목은 건간족에 투영된 물(水)의 상징성이다. 水의 이치를 자연의 섭리라고 볼때,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사진: 방어태세에 나선 건간족

 


이들의 전투 대형은 전형적으로 방어를 목적으로 한다. 공격적인 전투를 펼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매우 독특한 그들 만의 방어막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항해 돌진하는 전투 대형을 유지해야하고,  따라서 일사분란하면서도 침투와 후퇴가 신속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선봉부대라는 특수 임부를 띈 특공대를 필요로 한다. 적을 교란시키면서 적의 날카로운 예봉을 무력화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 흔히 만나는 중세식 전투 장면은 동양의 그것 과는 달리 드넓은 야전장, 일련의 응집된 군대끼리 정면 충돌하는 장면을 흔히 만나기는 한다. 그러나 건간족이 위의 사진에서 처럼  전형적인 중세식 충돌 전투대형을 짜고 있는 것은 중세식 전투 형태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전투시 가질 수 밖에 없는 특징인 방어적 전투형태이기 때문이다. 


건잔족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방어막이 있다. 그것은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그 방어막이 물의 원리를 가진 방어막 이기때문이다. 그 방어막을 벗어나면 자신들의 전투력으로는 상대방에게 쉽게 제압당하기 때문에 일련의 중세식 전투대형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는 공격형 전투대형이 아니라 전적으로 수비형이다. 게다가 상대는 우주의 제왕을 꿈꾸며 상상할 수도 없는 강력한 화력과 전투력을 지닌 드로이드 군대가 아니던가...

 

건간족의 방어막은 그들이 수중에 존재하는 종족인 만큼, 투명한 물의 성질을 상징하는 방어막이다. 그리하여 제 아무리 강력한 화포를 쏘아댄들 끄덕도 하지 않는다. 공격적으로 강타하는 힘이 강력하면 강력할 수록 방어막은 더욱 강한 힘으로 이를 되받아친다. 그 되받아치는 탄성력은 공격해오는 힘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그러니 그 어떤 힘을 가진 공격력도 물의 원리로 적절하게 물리쳐 낼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 어떤 공격도 죄다 물리칠 수 있는 이 방어막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 방어막의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용히...부드럽게...그리고 천천히 방어막을 통과하면 그 방어막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대방의 그 미약한 힘을 방어해내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 강자에게는 한 없이 강력한 힘을 보여줄 수 있지만 약자에게는 한 없이 약한 것이 건간족인 것이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잔인한 그런 건간족이 절대로 아니다. 진정한 힘은 그 부드러움에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방어막이 바로 건간족의 것이다. 도가의 능유제강(能柔制强)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방어막은 지극히 물이 가지는 특성과 이치를 반영한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은 무겁고도 커다란 철갑선을 띄울 수 있지만 우리들의 작은 발 하나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 속에 담그게 한다.  물론 감독이 이러한 상징적 표현을 의도한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건간족의 방어막이 가지는 특성을 보면서 물의 본성, 즉 자연의 이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행위는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여지가 많은 것 같다.

 

더불어 물의 이치는 法이라는 말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법은 어쩌면 물의 이치요 만물이 살아가는 이치인지도 모른다. 이점을 노자는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여하튼 봄이다. 모든 생물이 춘기를 얻고 자신이 해야할 일은 준비하는 봄이다. 그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조화로움 속에서 진정 우주의 이치이며 자연의 섭리이고 물의 본성을 들여다 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2-05-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읽다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일단 감탄사부터 터졌네요.
'법대로 하자'가 그런 의미였군요. 순리대로 하자, 이치대로 하자, 흐르는대로 하자.
자연스러움 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음미하는 중입니다.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를요.

건간족 이야기를 읽으며,
부러지는 강함과 휘어지는 약함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변화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조용히 다가오는 말없는 파장 같습니다. ^^

차트랑 2012-05-0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보잘 것 없는 글에 감탄을 해주시고...ㅠ.ㅠ
저의 글을 늘 좋게만 봐주셔서
저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건간족의 훌륭한 용사 중에는 '자자'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저는 그 '자자'가 참 좋더라구요.
엉성한 캐릭터이지만...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때로는 자신을 많이 낮추는 캐릭터입니다.

'자자'에게서 저는 많이 배워야 할 듯 합니다ㅠ.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