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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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숨을 멈춘다... 작가와 함께 호흡하기 위하여...


작가의 필력에 힘이 넘친다. 힘있는 문체는 그 안에 극도의 섬세함을 내포하고있어 역시 현미경으로 미세한 심리를 잡아낸 듯한 강렬한 인상을 주고있다. 놀랍도록 압축력있는 필체, 작가는 고독을 그렇게 밀도있는 언어로 대신한다. 더불어 작가의 압력이 너무 강렬하여 흐르는 물과 시간 마저 멈추어버리는 듯 하다. 그리하여 때로는 지루함을 느끼게하기도 한다. 300여 쪽의 길지 않은 소설인데도 말이다. 그점이 이 책의 커다란 단점으로 느껴진다. 밀도있는 언어들이 주는 무게감이 너무 커, 독자을 압박해 온다. 독자에게는 심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작가의 고밀도 압박, 작가는 수준 높은 독자를 원하고 있다...

작가는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많지 않은 등장 인물들의 고독과 역겨움, 절망, 죽음등을 철저히 한쪽 측면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이는 다분이 작가의 의도적인 접근 방향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한 줄 한 줄의 묘사는 그 압력이 높아, 읽는 속도를 현저히 저하시킬 정도였다. 작가가 그 얼마나 고뇌를 거듭했는지를 방증해주는 고밀도의 언어들...작가의 언어들은 마치 물고기들이 바다의 수면위로 그 지느러미를 요동치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퍼덕이며 격렬히 몸을 틀고 있다. 그렇게 저자는 수준 높은 독자를 원하고 있다.. 

작가의 색체가 아주 강한 이 소설은 소현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커다란 틀 속에서 순간 순간 순간의 심리적 편린들을 잘 잡아내고 있다. 글을 구성해가는 사건들은 사실상 큰 것이지만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니 그 크기가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작가의 정밀성에 현혹되어 그 규모를 인지하기도 전에 벌써 작가의 숲속으로 빠져든다. 커다란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작가의 솜씨에 나는 그렇게 휘말려 버렸던 것이다....큰 사건을 작게 축소시켜 그토록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다니... 작가의 의도적 축소는 미세한 정밀성과 일맥 상통한다. 이성을 잃지 않고 카메라로 현장을 녹화 해내는 듯한 작가의 터치....놀라울 뿐이다. 작가는 애초에 커다란 그림을 그리려던 것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시도였을 것이다. 아마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하여 작가를 잘 알지 못하는 탓도 있으려니... 더불어 김훈의 냄새를 지울 수 없는 이유일까...    

 작가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등장 인물의 절제된 행동과 표정, 그리고 침묵을 통하여 긴장된 심리 상태를 극도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보여준다. 인물은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침묵하는 인물들의 언어속에는 절제가 담겨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추측, 이해, 공포, 두려움, 역겨움, 그리움, 비애, 절망, 고독이 뼛속깊이 각인되어 있다.  한마디로 놀라운 작가이다...    



피로감이 밀려온다... 

 작가의 전개는 치밀하다. 혹여, 독자에게 그들의 심리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로 작가는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한다.... 아...작가는 대단한 욕심꾸러기이다.. 마치 자신의 필력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질식시키는 듯한 강한 느낌이 행여 독자의 심리를 오그라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읽는 동안 만감이 교차한다. 사실은 작가의 필체로 인해 내가 그렇게 오그라들었던 것이다... 독서를 하는 중간에 많은 피로감을 느꼈다... 작가는 독자에게 읽어갈 수록 머리를 짖 누르는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이지만 결코 단숨에 읽어갈 수가 없는 이유이다... 만약 단숨에 읽어갔다면 작가의 의도를 몰랐거나 작품을 모르거나...

 활주로가 너무 길다...

제목이 소현인 점을 생각하면 소현을 등장시키는 도입부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기만하다. 340쪽 중 거의 100여 쪽을 도입부에서 소모하고 있다. 도입부란 비행기를 이륙시키는 활주로와 같은 것인데 작가의 활주로은 너무 멀기만하다. 이 비행기를 언제 띄우려는 것일까.....읽는 내내 생각했다...그만큼 작가의 고독은 처절한 것이었을까... 활주로가 길어 소설이 지루해진다... 
 밀도있는 언어들이 주는 장단점을 모두 잘 느낄 수 있게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소현이라는 인물이 주는 수많은 주변을 가차없이 정리해버렸다. 심지어 세자빈 강빈까지도 말이다. 강빈이 없는 소현을 상상 할 수 있을까... 그런 강빈을 작가는 무대에서 온전히 제거해버렸다. 위험한 선택은 아니였을까... 내게는 외줄을 타는 듯한 위태로움이 전해온다... 그래도 작가의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왠지 성공적으로 보인다... 
 


매니아를 원하고 있는가.... 
 작가는 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인물을 대신하여 밀도를 택했다. 작가의 의도된 밀도는 독자로하여금 자신과 함께 밀착하여 호흡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절대적인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 이 동질감은 어떤 독자를 사로잡기도 할 것이다. 고독의 순간 순간들을 마치 카메라로 찍어내는 듯한 세심함은 독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아니 작가는 독자의 몰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의 독자는 작가의 그러한 요구를 들어주게 될 것이다. 내가 피로를 느꼈던 이유는 바로 이점 때문이다. 더불어 짖은 농도는 어떤 독자에게는 정글의 빼곡한 처녀림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 부담으로 다가 올 수도 있다고 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매니아를 원하고 있는 것인가....이 작품에서 느낀 인상이다... 작가는 거듭 성공하려는가...아니면 그 반대일까...  

작가는 노련한 투수가 되고 싶어한다.
실록과는 달리 대부분의 역사관련 도서들은 소현 세자를 총명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진취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서양의 화포나, 자명종, 천문기기와 같은 서양 과학 문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시 북경에 와있던 아담 샬(Adam Schall)과도 교섭을 한 인물이었다. 소현 세자는 조선과 청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심양의 고관들과 친분을 맺었고, 외교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이에 강빈의 도움이 컸다고 되어있다. 일상적 경비와 교제에 필요한 물자들을 본국에서 부담하는 일도 잦았는데 이는 선조에게 사치와 낭비로 비춰졌다고 한다.  
 

소현은 보국하기 위해서는 청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반면 봉림은 볼모의 기간동안 분노와 증오, 아집을 가슴에 담고 돌아온다. 봉림과는 달리 소현은 시기적으로 치욕적적이긴 했지만 이때야말로 서구 문물과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대처해야 할 때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봉림과의 이러한 생각 차이는 소현이야말로 조선이 국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현을 선조는 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었고,  전복구이 사건으로 강빈을 죽였다. 소현의 죽음은 독살설이 유력하다. 의원 이형익은 소현이 죽기 3개월 전에 특채된 인물이다. 당시에도 세자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한 신하들이 이형익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 날렸다.  인조실록의 기록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세자의 시신은 진흑(짖은 흑색)으로 변해있었으며, 일곱 혈에서 출혈하고 있어 독약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검은 천으로 세자의 얼굴 반을 덮어 옆에서 보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다. 낮빛은 중독된 사람과 같아았는데 외부에서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시신이 까맣게 변하거나 출혈이 발생하는 것은 조선 시대 사약을 먹고 죽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더우기 왕이나 세자가 죽으면 시의는 잘못이 있든 없든 처벌을 받는 것이 관례였지만 인조는 시종일관 이형익을 비호하였다. 이로인해 소현의 죽음에는 배후에 바로 그 아비가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빌미를 역사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작가는 온전히 배제하여 실록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작가야 말로 참으로 뜨겁고도 절제력을 지닌 인물이 아닌가... 엄청난 폭발력을 지닐 수있는 상황들을 저토록 가차 없이 도려내다니...작가는 자신이 의도한 정확한 곳에 볼을 꼿아내는 교묘하고도 노련한 투수와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아니 그런 투수가 되고 싶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첫 역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물론 더욱 성장할 것이다. 소현은 분명 작가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걸음이 되어주리라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애초에 커다란 그림을 그리려던 의도가 아니었기에 소품으로서 그 성과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시도가 무척 고무적인 소설이다. 작가의 후속 작품이 주는 방향에 따라 그 성장 여부와 작사의 성향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가치를 높이 평가 받는다. 던지는 공이 투수가 의도하는 대로 컨트롤이 되기 때문에 승리 투수의 요건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원하는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제구력이 좋은 투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여러가지 점에서 작품을 꼬집을 수있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본다. 여러모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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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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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술을 세계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기여한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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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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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저서를 하나만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질 것이다. 내가 우리의 그림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의 그림이 주는 감동은 자신을 돌아보고 한국인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리라... 

이 책을 읽고 느낀 두 가지가 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잘못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있다.  우선 잘 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이다.  그렇다. 그동안 나는 사랑에 국경이 없다고들 하는 것 처럼 예술에도 국경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오주석이 경험한 한국 예술에 대한 이해로부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국경이 있는 예술이다. 그렇다고 국수주의적인 사고를 더욱 공고히 하며 한국의 예술의 우수성을 외치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예술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오주석의 책을 읽고 난 후의 생각은 전혀 그 반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술의 담벼락은 세상에서 가장 높다.' 라고... 예술은 평생 예술로 밥을 먹고 살아가는 전문가이든 아니든 간에 너무나 높고도 보이지 않는 벽을 가지고 있다...그 벽을 허무는 과정은 문화 상대주의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 밖에는 없다는 깨달음이다. 문화적 상대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 한, 그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며 예술전문가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 한 가지 절실히 느끼긴 것은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다.. 정답은 '예술의 가치는 자국민의 의식속에 있다.' 이다. 이는 또다른 발견이나 다름이 없을정도로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던 뜻밖의 소득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우리의 문화의 깊은 생각을 미처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해려 하지 않았다는 뜻과도 같다. 제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해도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하지 않는다면 결국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자신의 생활 터전에 대한 정신세계의 무지는 스스로의 문화에 대한 무지이며 이는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게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모나리자의 황금비율에 대해서 많은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모나리자의 얼굴과 나머지 상반신과의 비율은 1: 1.618 이고, 모나리자의 얼굴의 위치는 전체적으로 1:1618의 비율이며, 코의 좌우 비율도, 입의 비율도, 안면의 비율도, 왼쪽 턱이 있는 부분의 비율도....모두 전체적인 그림의 틀과 인체의 관계속에서 모두 1:1618 의 비율을 가진 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나리자는 신비스러운 미소를 우리에게 주며, 보는 사람으로하여금 편안함을 준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모나리자만의 것은 아니다. 그리스 시대의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도 이와 같은 미학적 비율에의하여 건축되었다.  

이러한 미학적 기준은 서양의 논리학과 이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서양의 수학자들마저도 감탄하도록 만들었던 그들의 미학은 현대에 이르러 아이팟 혹은 신용카드에도 적용이 되고 있다.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나 아이팟의 비율, 그 비율이 바로  바로 황금비율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이해는 서양의 예술에 투영된 미적 가치를 사고하는 바탕이 된다. 더불어 서양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예술에 대한 가치를 더욱 높이 부여할 수 있는 근간이된다. 그러므로 세계인들의 예술에 대한 평가도 그에 걸맞도록 고양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예술적 가치의 도미노현상인가...

그러나 우리 예술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지도는 매우 저조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문화의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만 제대로 알아봐주면 되지...라는 생각은 반대다) 이러한 이유에는 우리도 큰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우리 문화에 대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인들의 시선도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예술은 역사와 사상에 근간을 두고있다. 고려의 탱화와 석가탑들이 예이며, 조선의 그림들이 그 좋은 예이다.

또한 그림을 그리던 사람은 '화공'만이 아니었다. 이름난 한국의 선비들은 물론 민화를 그렸던 이름없는 민초들이 있었고, 그들의 그림은 한국의 사상을 고스런히 담아내고 있다. 우리만의 것, 우리만의 문화를 그림에는 물론 '(도)자기'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우리에게 우리들의 선조들이 그렸던 그림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다. 그림 뒤에 숨어있는 비가시적 가치는 가시적인 그림에 투영된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림은 숨을 멈추게된다. 즉, 우리의 그림들은 생명을 더이상 이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어야 할 몫은 바로 그들의 후예인 우리들의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가 숨을 쉬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의 손길을, 우리의 마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예술들이 많다.  

그저 우리가 알아봐주기만 하면 우리들의 문화는 비로소 그 숨을 들이 쉴 것이다. 우리의 자녀를 우리가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 아이를 소중하게 여겨줄 것인가...우리의 예술도 이치가 같다. 우리의 것을 우리가 사랑해주어야 세계인들도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럴려면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좀해야 하지 않을까....ㅠㅠ  

최근 한국의 여러가지 문화재들이 세계의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국의 문화가 점점 더 세계인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반가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세계인들이 우리의 것을 인정 해준다 한들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런 점에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우리에게 우리 것을 알아봐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정녕 잘해주고 있다. 현재는 고인이된 오주석선생께서 작고하기까지 심혈을기울여준 노력은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님을 안다.  또한 한국의 많은 분들께서 오주석이 해낸 일을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정말로 오주석은 큰 일을 해낸 분이다.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노력에 깊이 깊이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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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노닐다 - 오주석의 독화수필
오주석 지음,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 엮음 / 솔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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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오주석... 그의 노력은 주옥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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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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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는 한국인을 이토록 매료시켜놓고는 한국사에서 왜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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