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반양장)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 / 예경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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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곰브리치를....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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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진의 동양화 읽는법  

 그림은 메시지를 읽어내는 일이다. 즉,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는 '독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점을 무시할 때 그림과는 영원히 친교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조용진의 동양화 읽는 법은 동양화가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공식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모든 동양화가 상징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징성을 이해하는 것은 동양화 이해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나처럼 잘 모르지만 앞으로 동양화에 관심을 가져볼 계획이라면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들을 알차게 소개하고 있다. 

우측의 그림은 우리의 민화도로 임금의 물고기라고 하는 쏘가리이다. 쏘가리의 한자음은 '궐어'이다. '궐'은 임금이 살고있는 '궁궐'과 통하는 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민화에서처럼 두마리 이상의 궐어를 그린다면 어떻게 될까...반역죄이다. 아마도 이 민화를 그린 사람이 조선시대의 민초라면 궐어는 한마리만 그려야 하며 두마리부터는 역모죄로 몰려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조용진이 설명하는 그림에 대한 한가지 예를 차용하여 작성한 내용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흥미 진진한 그림읽기가 펼쳐진다. 물론 그림의 메시지 안에는 화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화가의 마음을 느끼고 공감하려한다면 반드시 알아야할 것이 가득하다.. 

 

파리스의 심판 

 이 그림은 그 이름도 유명한 루벤스가 그린 것으로 '파리스의 심판'이다. 흔히 '파리스의 사과'로도 잘 알려져있다.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화가는 매우 많아서 같은 주제를 가진 다른 그림들을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리스신화를 읽어본 초등학생들도 잘 알고있을 '파리스의 사과'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펠리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 잔치에 여신 '에리스'는 초대를 받지 못했다. 그녀가 초대를 받지 못한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녀는 불화의 여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에서 불화의 여신이라니...그러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이에 단단히 화가났다. 나를 초대하지 않다나...앙심을 품은 에리스는 이에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써있는 황금 사과를 연회장에 던져놓고 사라진다. 과연 어느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되어 황금 사과를 차지하느냐하는 것은 내노라하는 여신들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문제이기도했다. 많은 여신들이 경쟁을 한 끝에 마침내 지혜의 여신 아테나, 미의 여신 비너스,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결선에 올라와 있었다. 이제 신의 왕좌에 있는 제우스의 심판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우스는 영리했다. 여자들을 자극해봐야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고 판단한 제우스는 당시 트로이의 왕자였던 '파리스'에게 이 짐을 떠 넘겼다.  

 이제 결선의 순간이 욌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부와 권력을 약속했고, 아테나는 지혜와 모든 전쟁의 승리를, 비너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여자를 선택했다. 비너스의 약속을 믿노라 말하며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비너스는 보답으로 스파르타의 메넬라우스왕의 여자인 '헬레네'를 점지해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파리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줄이야.... 영화 트로이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파리스의 선택이 그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었는지를... 이럴 땐 제우스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 트로이는 스파르타의 연합군과 전쟁을 치루게 되고, 하지 않아도 될 전쟁을 벌여 결국 트로이를 멸망에 이르게하면서 자신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름다운 여인을 얻는 대신 질투의 화신 헤라와 전쟁의 신 아테나에게 굴욕감을 준 댓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 그림은 바로 파리스가 심판을 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이 주는 교훈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서양화 읽는 법

그러나 이 그림의 화가와 그림의 배경이 되고 있는 신화의 내용을 아는 것 외에도 관객의 입장에서 알고있어야 중요한 한가지가 더 있다.  바로 '독화'이다.  

 위 그림의 맨 왼쪽 여성은 그 뒤에 방패와 갑옷을 벗어놓았고, 가운데 여성은 귀금속 장식과 더불어 어린아이가 딸려있다. 오른 쪽의 여인은 모피코트를 걸치고 있으며 공작새의 깃털도 보인다. 이쯤하면 저 여성들 각각의 신분을 알아볼 수 있는 시점이다. 방패와 갑옷은 당연히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의 것일 것이고, 가운데 여성은 미의 여신 비너스 일것이다. 비너스는 그 아들 큐피드와 늘 함께다닌다. 그녀가 치장한 보석들은 그녀가 역시 미의 여신임을 방증하고 있다. 다른 그림에서는 사과를 들고있는 여신이 비너스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오른 쪽의 여신은 이제 '헤라'일수 밖에 없다. 공작새의 깃털은 헤라를 상징하고 있다. 모피 코트 역시 제우스의 아내로서 그녀의 지위를 상징하는 상징물인 것이다. 사과를 들고있는 사람은 보나마나 파리스일 것이다. 심판자이기도 하거니와 루벤스는 파리스를 양치기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앞의 개는 양을 치는데 도움을 주는 개(dog)인 것이다. 모자를 쓴 인물은 제우스신의 젼령인 헤르메스일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은 이미 승자가 누구인지 결정하기 바로 직전의 그림이라는 점을 알수가 있다. 물론 이는 서양화 읽는법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의 한 예이다. 지물이 상징하는 의미를 읽어내는 독화가 그림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데 그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우쳐 주는 좋은 도서이다.   

'그림 보는 만큼 안다'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수고 있는 도서이다. 특히 그림과의 만남과도 같은 책이다. 여러 가지 옛 그림; 심사정의 '선유도'.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 김두량의 '월야산수도', 신윤복의 '풍속화첩' '아이 업은 여인', 사시상춘' , 채용신의 '운낭자상', 윤두서의 '자화상', 작자미상의 '송시열의 초상' 등등...아주아주 흥미로운 그림들을 만나게 한다. 그 과정에서 그 흥미로움의 매력은 정녕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림에 관심을 가진 독자를 흠뻑 취해 그림 속에서 노닐도록 장을 주선하는 편안하고도 즐거운 자리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한다면 바로 이 책을 적절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다고 하겠다. 읽는 동안 어느 사이엔가 독자는 더 깊은 그림 속으로 들어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된다. 필독서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세계 명화 비밀 시리즈..

 

 

 

 

 

 

                                                         

신화상징                     성서상징

그림이 가지고 있는 독화의 기본적인 상징성을 일고나면 다음 단계로 적합한 책들이 있다. 바로 위의 세가지 일 것이다. 서양의 그림들이 주는 특성을 매우 잘 전달해주고 있는 이 책들은 그 그림에 대한 독자의 안목을 훨썬 더 높여줄 것이다.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가치는 돈으로 살 수없는 그 무엇을 우리에게 준다. 상징물 이외의 그림 속에 스며든 사상과 철학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그림에는 자구적인 사상이 깔려있다. 이 사상의 이해와 상징물의 결합은 한층 더 깊은 그름의 이해로 가는 길이라고 본다.

 왜 피카소를 그림을 이렇게 그렸고, 뭉크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되었는지...피카소와 뭉크의 머리와 가슴속에는 그 어떤 생각과 심정이 담겨있었는지를 읽어내는 코드를 공부하게 해주는 책이 바로 "세계 명화의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책은 그림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다루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림은 그 안에 살아있는 역사를 담고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음악도 마찬가지이지만 역사와 함께하지 않는 그림은 거의 없으며 그렇지 않은 그림은 생명력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그림을 단순한 그림으로만 이해하려 했던 나 자신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그러하다. 

성서 상징은 비록 기독교를 신앙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가치를 몇 배로 보상 받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서양의 문화는 기독교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가 없으며 역사 또한 기독교를 제외하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림에도 역시 기독교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그 성서의 상징성을 이하하게 된다면 독자의 안목이 훨씬 더 높아져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동양화 속으로...

 한국의 그림이 그 얼마나 심오하고 흥미로우며 자랑스러운지는 오주석과 관련한 도서들을 읽는 것으로 깨우침이 많다. 독자에게 정녕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긍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인물이 바로 오주석이다. 일생을 김홍도로 살아가고 싶었던 오주석...그의 저서들은 한국의 미술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한국의 정체성을 더욱 빛나게 해줄 수 있는 그의 생각과 한국 미술계에 끼친 공로만으로도 못다이룬 일들이 많겠지만 그러기에 더욱 빛나는 인물일 것이다.  
 

 오주석은 동양사학으로 출발하여 조선의 미술사학에 있어 혁신적인 발견을 일궈낸 장본인이다. 그는 시대의 정신이 어떻게 조선의 회화에 투영되어 있는지와 당시의 회화에 학문과 정신이 표현된 비밀들을 풀어냈다. 회화에 무슨 비밀이 숨어있는가 의구심이 들만도 하겠지만 오주석이 회화속에 담긴 코드풀이를 들어보면 정녕 비밀의 문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인문학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홍도의 '선상 관매도',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 임금의 뒤에 치는 '일월오봉병',  윤두서의 '진단타려도'등에는 비밀과도 같은 코드들이 숨어있다. 아마 오주석의 저술들을 읽어보신 분들은 그 감동적인 결과물로 인해 오주석이 왜 한국 미술사학의 보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진경시대는 일생을 한국 미술을 연구하며 보내다가 안타까운 나이에 타계한 오주석선생의 역작이다. 오주석의 생각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물론 기성세대들에게도 커다란 깨우침을 주기에 충분하다. 오주석의 정체성은 청소년들에게도 큰 감동을 줄 수 있을것이다. 청소년기는 자아의 성장기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노도의 시기이므로 올바른 정체성을 갖추도록 하는 일은 기성 세대의 몫일 것이다. 자녀의 교육은 부모의 정체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에 오주석은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 감동의 도가니 속에서 한국의 예술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정말 유익한 도서들이다..  그러나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주의사항: 진경시대의 공저자이자 박물관장인 최완수의 글은 역사를 너무 왜곡시키는 외골수인지라 크게 유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의 가치를 가장 많이 떨어트리는 사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사적인 판단이다. 전체적으로 유익한 책이지만 사관을 조심하여 읽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막다른 골목에 서서 딜레마에 빠져버린 것은 관찰자인가 예술가들인가...

이렇게 나름대로 그림의 상징성을 이해하고 그 배경이 되는 사상을 이해하려면 좀더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가서는 갑자기 미로속을 헤매는 듯한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지금껏 공부한 것이 만사 헛된 것이었는가...하는 자괴감에 빠져 버리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럴 때 꼭 과정을 거쳐야 하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진중권님의 미학 오딧세이이다.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는 그렇게 미로속을 헤매다가 만난 결정적인 탈출구를 나에게 제공해주었다. 마치 낙소스 섬의 미로속에 갖혀있다가 아리아드네의 재치있는 실로인하여 그 탈출구를 발견한 느낌이 비로 이런 느낌일 것이다. 

어느 순간 난해해지는 그림의 상징세계를 만나게된다. 짐작하시겠지만 현대미술에서 만나는 난해함이 그것이다. 과거의 미술사에서 현대의 미술로 내려오면서 수많은 유파들이 오고갔다. 이제는 거의 모든 미술적인 가치들이 세상에 드러난 시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은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오던 나와 같은 관찰자가 아니라 현대 예술가들 스스로의 딜레마에 봉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미술적 사고의 고갈이라는 딜레마에 빠져버린 예술가 자신들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 이름도 유명한 달리, 마그리트, 작금으로는 앤디워홀이 그 장본인들이다. 한마디로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마그리트...본격적인 술래잡기가 시작된 것이다. 남과 다르고 싶은 갈망돠 욕구가 더해져 이들의 예술은 이해불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꼭꼭 숨기려는 듯하다. 아니 징신 세계의 고갈을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른다. 대중들이 쉽게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대신 혼자만의 세계속으로 파고들어가 이곳까지 관객들이 찾아와주기를 갈망하는 듯한 조금은 이율배반적인 딜레마를 뒤집어 쓴 예술가들의 모습... 이것이 관찰자인 우리들을 한없는 미로속을 헤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처럼 보이던 현대 예술은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를 만나면서 실마리를 찾게된다. 아리아드네...진중권을 통하여 우리는 바로 아리아드네를 만난 것이다. 예술을 이해하는 필독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를 독파하고 나면 서서히 겁을 상실하게된다. 마치 미로속을 벗어난 테세우스가 그얼마나 간덩어리가 부었을지..짐작이 간다...간이 부은 관찰자는 다음과 같은 도서들에 도전하게 되어있다. 도전 할수록 유익하고 흥미로운 미술의 세계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간이 부은 사람들이 더욱 흥미롭게 탐독하는 관련 서책들... 

 

 

 

 

 

 

 

 

 

 

 

 

 

 

  

 

 

  

 

 

  

 

 

 

 

 

  

 

그 어느 책을 선택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들이다... 세한도는 정녕 감동적인 책이리라... 

 

더욱 깊이 들어갈 차례... 

동양의 미술을 이정도 공부했으면 이제는 서양의 미술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 차례이다. 

 

  

 

 

 

 

 

 

곰브리치                             진중권                          W.H 잰슨 

곰브리치와 잰슨의 서양미술사는 그 어느 책들보다도 호평을 받고있는 서양미술사들이다. 두사람의 저술을 빼놓고는 우리나라에서도 서양미술사를 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지도가 높은 만큼 널리 읽히고 있으며  흔히들 필독서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책들이니만큼 눈여겨 봐둘 필요가 있다. 진중권의 미술사는 저자가 진중권이 아니던가..진중권의 책은 그냥 사서 읽으면 된다. 진중권이 쓴 책은 따로 생각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신뢰를 준다.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다 진중권은... 

이상으로 동서양의 미술을 공부하는 대략적인 노선을 따라봤다. 물론 이 방법이 최선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방법에는 각자의 방식이 있고 그 즐거움이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이는 그동안 미술에 관심을 가진 한 사람의 관찰자로서 그림을 이해하고 싶은 열망으로 서적들을 탐독한 결과이고 이러한 질서를 잡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게되었고, 행여나 미술에 관심이 있지만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페이퍼를 이용하여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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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커다란 흐름을 이해하는데 장하준의 저서들은 매우 유익한 도서들이다. 특히, 신진국들과 개발도상국 혹은 후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국가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이해를 돕고있다.  

장하준의 글을 한 번 읽게되면 그가 쓴 다른 저서들을 읽게 마련이다. 그의 글은 명쾌하고 분명한 근거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그 목적을 성취하는데 언제나 성공하고 있다. 게다가 전체적인 세계 경제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도록 해준다. 한국 경제의 위치와 상황 그리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 그 허와 실을 파악하려는 분들에게 촘스키나 장 지글러의 저서들을 뛰어 넘는 분석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 인들'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국방부의 금서목록에 블랙리스트로 올라있는 책이다. 최근 G20 정상회의가 코엑스에서 열렸다. G20 정상회의의 목적은 하나다. 세계의 부국들이(한국은 부국측에 끼는 것은 아니다) 돈이라는 힘을 바탕으로 부유하지 않는 나라들과의 금융과 무역을 통제해보겠다는 의도를 가진 일종의 모의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G20의 생각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으며 그들이 그토록 원하고 있는 자유무역이 뜻하는 바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을것이다.   

1961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82달러, 당시 가나의 1인당 소득은 179달러였다. 다시말해서 지난 60년대 당시 가나는 한국보다 두배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였었는데, 지금은 그토록 빈곤과 기아 그리고 질병에 고통받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밑빠진 독이라 부르던 악조건에서, 한국은 스스로의 힘을 꾸준히 길러온 데 반해, 가나는 정체를 지속해왔다. 어쩌면 더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답이 이 안에 있다.  

한국은 전쟁을 거치며 제조시설의 절반, 철도의 75%이상 파괴된 상태였다. 그런 한국과 가나의 현대 경제적 상황은 거꾸로된 상태이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 대목은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고 파악한다면 정답은 얻는 일은 힘들일 필요가 없다. 이 책은 그렇게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어떻게 하여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의 세계 경제 시스템이라면 앞으로도 계속하여 그들은 굶주림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더욱 주린배를 욺켜쥐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갈 것이다. 부국들은 이미 정상에 올라서있고 그들이 타고 올랐던 사다리를 걷어차버렸기 때문이다. 뒤따라 올라올 수도 있었던 힘없는 국가들을 사다리에서 떨어트려 죽게 만든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피력하고 있는 장하준의 글들을 훨씬 더 뒷바침하고 있는 이 책은 사다리를 절 반 이상 올라와 있는 상태에서 아둥바둥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사다리에서 떨어져버린 국가들의 자화상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한국 경제를 말한다

  이 두권의 책은 장하준 교수가 한국의 경제에 대하여 저술한 내용으로 한국 경제는 과연 어떻게하여 60년대의 빈곤에서 벗어났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느쪽 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 발전시기에 절대로 신지유주의의 경제 체제를 도입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은 물론 가나를 비롯하여 아프리키의 대부분 나라들, 그리고 현재의 남미의 다수 국가들은 식민 지배하에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식민 지배하에 있던 나라치고 잘된 나라가 없다. 빈국이 아닌 나라가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밀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예외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국민소득 2만불로 강국들의 그것에는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이지만 말이다.  (OECD 국가들의 절반에 미치는 국민소득이라니...그저 놀라울 뿐이다) 여하튼 한국의 경제가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것은 맞지만 과거 가난에 찌든 나라로서 국제기구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에 나서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연 한국은 어떻게하여 그토록 혹독한 시련속에서도 현재의 경제력을 일궈왔는가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더불어 한국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연스럽게 제시하는 방식의 글들이다. 이 책을 일독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경제의 현주소에 대한 밝은 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개혁의 덫

 OECD와 G20들이 외치는 금융과 자유무역의 실체를 보여주는 책이다. 중국이 왜 그토록 미국과 잦은 의견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지 이 책을 읽는다면 꿰뚫을 수 있다. 개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바로 경제의 종속을 의미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들이 현재의 빈국들이다. 그들이 과연 선진국과 어떤 약속(개혁)들을 했는지 보시라...그리고 그들의 달콤한 유혹 혹은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개혁을 단행했던 국가들을 보시라...그 개혁이 가져다주는 참담함과 결과들은 차마 글로 다 말할 수 없음이다...한 번 걸려들면 다시는 일어설 수가 없는 구조를 가진 경제 메커니즘은 빈국들에게서 앞으로도 희망을 등불을 찾아 볼 수 없는 이유이다..언젠가는 나아지겠지...생각 하겠디만...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 구조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너무나도 참담하여 조금이나마 빈국들의 아이들에게 보내 후원하려는 마음도 맥이빠져 버릴 지경이다...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부어대는 꼴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그토록 빈국들의 상태가 나쁜 것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답은 '그렇다'이다. 아니 앞으로 더욱 나빠질 일밖에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빈국들이 국제기구로부터 원조금 명목으로 지원받고 있는 금액은 300억 달러이다. 엄청남 금액을 매년 지원해주고 있노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열배인 3000억달러의 부채를 떠안고 있으며 매년 부국들에게 갚아야할 이자는 지원받고 있는 금액보더 훨씬 더 큰 금액이다. 지원금으로 들어오는 돈은 한푼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토해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과연 그들이 지원해주는 이유는 그들을 돕고싶어서인가 아니면 그렇게라도 돕지 않으면 빼낼 돈줄이 말라버리기 때문인가...또 정답은 안타깝게도 후자이다. 약소국들에게 철회시킨 관세는 그들의 돈줄이며 국가를 일으킬 수 있는 자금줄이 되어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철폐당한 빈국들이 과연 어디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seed money를 확보할 것인가...생산성이 낮고 갚아야 할 돈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벌어서 고스란히 부국들의 입에 털어주고나면.... 그들의 손에는 남아있어야 할  잉여가치가 없다. 이제 세계는 다시 발전을 해야한다. 어떻게 발전을 해야 하는 것일까...신 자유주의의 기치를 넘어선, 진정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그들을 맞이해줄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되 찾아을 수 있는, 그들에게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아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경제 발전을 저자는 요구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24가지 그리고 국가의 역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가장 최근에 출판된 장하준의 저서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비단 23가지가 전부는 아니다. 저자는 그 중 그들이 말하지 않은 가장  핵심적은 23가지의 가면을 벗겨내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 이렇게하여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빈국들에게 저렇게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자신들은 성장기에 절대로 입어본적이 없는 신자유주의의 황금 옷을 입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거나 과거 선진국들의 경제정책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실체를 찾아내야만 살길을 택할 수가 있을 것이다. 허나 그들이 파놓은 덫은 빠져나갈 수 없는 큰 함정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지.  

 

                                          국가의 역할  

이러한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에서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1980년대 이후로 급진적 신 자유주의는 국제 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 무역기구와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등을 통하여 한국은 물론 특히 개발도상을 상대로 자신들의 개혁을 강요해왔으며 지금도 그 강요는 집요하도록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이들의 압력에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이미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상태이다.   

 한국 또한 구제금융을 거치면서 상당부분 그들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했다. 97년 구제금융 당시 IMF는 국가 예산을 100조원을 넘길 수 없다는 조항마저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는 97년 구제 금융을 기점으로 한국도 신 자유주의 노선에 합류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 후로 한국의 수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고, 내수 시장과의 불균형이 더욱 벌어졌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기업의 투자를 축소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저투자, 저성장, 고용불안이라는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국가들이 경험했던 그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투자의 축소와 저성장 그리고 고용의 불안이 커지면서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계약직 노동시장의 원리이다.  이에 국가가 해야할 역할들이 있다. 이 책은 한국 뿐만이나라 발전을 요구하고 있는 모든 세계의 국가들에게 해당되는 국가 운영지침서와 마찬가지이다. 
  

장하준의 글들을 시리즈로 읽어가는 동안 한국의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의 흐름을 확연하게 이해하게된다. 현재의 세계경제 패러다임은 분명히 변화해야 한다.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아는, 인류의 덕목을 아는 존재로서 말이다. 인간에게는 인문학이라는 것이 있다. 인문학에는 아름다운 윤리학이 있고 그 덕목이 있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발전일 수는 없다. 그 과학이 모든 인류의 평화에 기여해야 하며 모든 인류는 먹을 것과 기본적인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인간이 동물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할 때이다. 

장하준의 위 책만으로도 앞으로 인류가 살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장하준만의 주장이 전부는 아니다. 장하준의 주장이 그 얼마나 타당하고 적절한 것인가를 다시금 증명해주는 도서들이 즐비하다. 그 중 몇가지로 촘스키와 장지글러의 도서들을 소개한다...  

장지글러의 저서들...

 

 

 

 

 

 

 

아마 읽어보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장하준의 소리가 정녕 입바른 소리임을 증명해주는 장지글러의 소리들이다...장지글러는 장하준과 마찬가지로 세계 경제의 구조적 패러다임을 우리들에게 보고하고 있다. 그렇다. 전문가들은 비 전문가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고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가 직면해있는 현실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장지글러의 저서들을 읽노라면 눈물없이 읽을 이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슬프고 비극적인 연애 소설도 아닌 이 책들이 독자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도록 할 것이다... 슬픈 현실이여...누가 이들을 보살필 것인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장하준, 장지글러와 노엄 촘스키와 같이 슬픈 현실을 보고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노엄 촘스의 저서들...

 

 

 

 

 

 

 

 

 

 

 

 

 

 

촘스키는 권력의 힘을 잘 조명해주고 있다, 그 권력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도 명료한 증거자료와 더불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힘의 논리는 무자비하다. 자신이 가진  힘을 나보다 못한 힘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써야한다는 교육은 교육 현장 그 이외의 그 어느곳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 교실에서의 가르침과 교실 밖의 현실은 그렇게 서로 충돌한다. 왜 이런 충돌을 깨달으며 교욕받은 자들은 당황해 해야 하는가..그 이유를 깨닫도록 해준다. 과연 누가 그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을 어떤 방식으로 쓰고있는지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 스스로도 모른채 당하지 않기위해서...그리고 그 힘을 정의를 위해서 쓰기위해서 이다.  

이런 점에서 위의 저서들은 독자의 서가에 꼿혀있어야 한다... 세계의 힘이 움직이는 공식을 백일하에 보여주고 있는 책들이다. 분명 이는 권력을 가진 국가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사실 들이기도 할 것이다. 힘이란 과연 어떠한것인가...'큰 힘을 가진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영화에서나 나불거리는 수식어구란 말인가...너무나도 이기적이며 가식적이고 기만적인 힘의 원리를 이들은 우리에게 고발하고 있다... 이 책들을 서가에 두고 읽어야 하는 마지막 이유가 있다. 이 태풍의 한 가운데에 장하준과 장지글러와 촘스키가 고독하고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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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가장 아름답게 수놓는 녹턴...  

우리는 야상곡으로 알려진 '녹턴'이라는 장르의 피아노를 매우 좋아한다. 밤의 차분하고도 적막의 흐름속에서 고독한 자의 심금을 울리는 녹턴은 언제 들어도 아련하고 가슴깊이 파고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야상의 심상을 아름다운 선율로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흔히 '녹턴'하면 대부분 쇼팡을 떠올릴 것이다.  녹턴은 곧 쇼팡이라는 공식처럼 아름다운 피아노로 청자를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턴을 조금 더 알고보면 낭만주의자 쇼팡에게 깊은 감동을 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일랜드 출신의 '존필드'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존필드라는 분은 녹턴을 창안해냈다. 존필드는 녹턴의 창시자인 것이다. 

     존오코너        

 녹턴의 창시자라는 점 만이 존필드가 존중받을 유일한 이유는 결코아니다. 그의 녹턴을 들어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오죽했으면 존오코너는 존필드의 녹턴으로 일생을 사시는 분 중 한 분이 되었을까...존 오코너의 연주를 들어보신 분은 과연 그 이유를 아실 만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피아노의 시인이라 칭할만큼 존 오코너는 깊은 내적 표현을 건반으로 드러내는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베토벤 해석의 1인자로 손색 없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존필드의 대가는 존 오코너 외에 한 분이 더 있다. 음반을 연주한 분으로 오우르크이다.  오우르크는 존필드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부심으로 녹턴을 연주하는 분이다. '존필드의 녹턴에 관한한 오직 한 사람 바로 나'이다...이러한 자부심은 오쩌면 오만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연주를 들어보신 분이라면 수긍할 것이다. 존필드가 살아있다면 오우르크에게 경의를 표할지도 모른다. 존필드의 녹턴은 오우르크에 의하여 새롭게 세상에 재탄생 하게된다.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오우르크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오우르크   

             쇼팡의 녹턴...

 쇼팡은 존필드의 녹턴을 듣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존필드의 녹턴에 경도 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쇼팡이 작곡한 녹턴의 시작부분을 들어보시면 바로 아실 것이다. 존필드의 오마주를 느낄 수 있다... 자신에게 그 얼마나 감동적인 곡이었기에 쇼팡은 자신의 곡에서 존필드의 오마주를 보여주는 것일까...쇼팡의 존필드에 대한 감동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흔히들 쇼팡의 녹턴 첫 부분에서 보여주는 존필드의 음영을 존필드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쇼팡이 누구이던가. 비록 존필드의 작곡에 경도되었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쇼팡은 자신의 녹턴에서 존필드의 그림자를 충분히 지우고도 남음이 있는 작곡가가 아니던가. 피아노라면 쇼팡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피아노 작품의 거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쇼팡의 작품에서 볼수 있는 존필드의 그림자를 오마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해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쇼팡은 존필드의 음영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녹턴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쇼팡을 조르주상드가 과연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그녀의 쇼팡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세기의 염문을 뿌리며 유럽을 뒤흔들었지만 그들의 공감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의 음반들은 가장 애호받는 쇼팡의 녹턴들이다. 물론 이외에도 많고 좋은 연주들이 있다. 그러나 지면상 모두 소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몇종류만 선택할 수 밖에는 없다.  

                                                                                                                     

  

 

 

 

  

루빈시타인                          페라이어                       아라우

  어떤 이는 가장 마음에드는 1순위에 올려놓고도 남음이 있을 만한 연주를 루빈시타인으로 꼽을 수도있다. 이 음반 저 음반 녹턴을 찾에 헤매다가는 결국 루빈시타인으로 되돌아 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니 기교파로 세상에 알려진 루빈시타인의 피아니즘은 빼놓을 수 없는 연주임에 반박할 이 드물 것이다. 기교파였던 이유로 루빈시타인이 한창 젊었던 시절의 연주와 나이가들어 세월이 더욱 내면을 성숙시킨 후의 연주는 많이 다르지만 그 어느 것이 더 좋은 연주라고 따지기는 어려운 면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루빈시타인의 연주는 나이와 관련없이 모두 빼어난 연주이기 때문이다. 

페라이어를 빠트리면 서운해 할 팬들이 많다. 페라이어 역시 쇼팽의 연주에서 확고한 팬들을 가지고 있다. 워낙 지명도가 있는 분이므로 쇼팽의 연주에서 큰 우위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아라우의 연주를 듣지 않고 쇼팽의 녹턴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라우의 연주 역시 그냥 믿고 구입하는 팬들을 확보할 정도로 연주의 신뢰도를 가진 분이다. '녹턴하면 아라우죠'라고 말하는 수많은 팬을 가진 아라우... 쇼팽 왈츠의 연주에서도 아라우를 빼놓을 수 없다. 정녕 아름다운 연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라우....   

     

 

 

 

 

      

   김대진                              폴리니                         프랑수와

우리나라의 김대진님도 녹턴의 연주를 남겼다. 현재 한국 종합예술학교의 교수로 있는 김대진님은 줄리어드 음대를 나와 클리브랜드 국제 콩쿠르 1위를 따낸 실력파 피아니스트이다. 존필드의 녹턴을 음반으로 내기도했던 김교수는 존필드는 담백한 아름다움이 있는 반면 쇼팡은 화음진행이나 선율진행 등 너무도 세련되게 내면의 정경을 그려냈다고 토로했다.

다음으로 폴리니는 개성이 매우 강한 연주가이다. 개인적으로는 폴리니의 쇼팡 연주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폴리니 특유의 개성이 표현해내는 건조함은 이성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 느낌이들기 때문이다. 금속성 연주라면 어느정도 근접한 표현일지...여하튼 애호가는 무지 애호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왜냐 ,그는 폴리니니까^ 

프랑수와는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녹턴 연주가일 것이다. 색체감이 강한 프랑스와는 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곤하는 연주가이다. 청중을 자신의 연주로 끌어들이는 인력을 가진 매력적인 연주를 해낸다. 한 번 팬이되면 죽을때까지 그의 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연주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과연 어떻게 연주하길래...^

    

 

 

 

 

    

  마리아 조앙 피레스            예브게니 키씬~               이반 모라벡

녹턴의 부드러움과 낭만적인 서정성을 생각하면 여성의 연주자를 떠올릴만도 하다. 여성의 그 섬세한 감수성이라면 충분히 다수의 애호가들을 몰고 다닐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녹턴을 연주한 음반에 대한 선호도는 여성연주가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쇼팽 연주는 무척 환영할만한 일이다.  

피레스의 연주는 현대적 감성을 살린 연주라고 호평을 받고있다. 물론 여성인 관계로 그 셈세함을 논한다면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피레스의 연주는 이미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에서 감명 을 크게 먹은 바 있어 그녀의 연주라면 무조건 믿는 편이다. 나이가들면서 훨씬 더 사색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피레스는 폴투갈의 연인이나 마찬가지이다. 폴투갈이 자랑하는 그들의 연인 페레스가 들려주는 연주는 빼놓을 수 없는 감성과 깊은 사색의 길로 안내한다. 

예브네브 키씬~ 이 친구는 두말할 나위없는 러시아의 타건을 자랑한다. 러시아의 거장 에밀 길레스나 리히테르를 사랑하시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면밀한 악보에 대한 분석을 마친 후 이를 피아노로 표현해 내려 노력하는 러시아인들의 연주는 때로는 거친 사자들의 향연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들의 피아노는 가슴보다는 머리로 듣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연주에 익숙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의 연주가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나면 키씬의 서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빛을 발견하기 전에 리히테르나 키씬의 연주에 몰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마치 깊고 깊은 광산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내는 작업과도 같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나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주는 연주가가 있으니 바로 이반 모라벡이다. 어떤 이는 모락벡의 연주를 들어 이랗게 표현했다.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있다" 라고.. 그렇다. 이반 모라벡이 녹턴을 연주하기 전과 그 이후의 녹턴은 확연히 다르다. 녹턴의 감상에 획을 그은 연주임을 느낄 수 있는 연주이다. 마치 녹턴의 역사에 한 획을 긋듯이 그는 작품을 구현해내고 있다. 이는 감상자의 눈과 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연주이다. 믿어지지 않는 연주...나는 모라벡의 연주를 그렇게 칭하고 싶다. 믿을 수 없는 연주를 들려주는 사람이라고..... 음반을 들어보지 않고는 사실상 이야기할 수가 없는 연주이다...이반 모라벡...그의 연주를 한번 들을 수 있다면 세상에 여한이 없을 지도 모른다.... 

다음은 미처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훌륭한 연주인 녹턴들이다...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연주를 들려준 다음의 음반들을 또한 소개한다... 

  

 

 

 

 

 

윤디리                          아쉬케나지                            치콜리니  

   

 

 

 

 

 

 

디누 리파티                         호로비츠                     요우라 궐라  

윤디리의 팬들도 무척 많을 것이다. 아쉬케나지는 또 어떤가. 치콜리니의 연주에 반하면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디누 리파티와 호로비츠 그리고 궐라여사의 연주을 어느 팬들이 잊을 수 있을까. 궐라 여사를 잊지 못하는 팬들이 아직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다. 특히 디누 리파티의 쇼팽연주는 브장송 고별연주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슬프고 애석하게 한적이 있다. 그의 불멸의 연주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음악의 애호란 세상을 그리고 인생을 알아가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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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혼쾌하게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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