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성형 지음 / 까치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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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출판계는 인물에 대한 많은 수의 어린이 도서들을 출간하고 있다. 그 중에는 어린이용 세계위인전기가 있는데 이 인물 전기의 전집에 실리는 인물들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위인'이라는 말은 '위대한 사람' 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존경할만 한'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고 어린이들이 그 인물됨을 보고 배우는 롤 모델 로서의 매우 긍정적이며 좋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한마디로 훌륭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위인으로 설정한 인물들을 보면 뜻밖의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예를 들어 위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콜럼버스' 가 대표적인 예이고, 알렉산더, 엘리자베스 1세등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콜럼버스의 일대기는 만화로도 수없이 츨간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콜럼버스의 정체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의 손목을 잘라내면서 금과 은이 어디에 있는지 대라고 말한 장본인이며, 수없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도 모자라 노예 무역을 했다는 사실은 알게되는 순간 우리의 어린이들이 받을 정신적 충격을 상상해보시라... 

알렉산더는 타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넘쳐 타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셀수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그 수는 일일이 셀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린이들이 롤모델로 생각해오던 그 위대한 인물의 배신감에서 오는 공허함을 무엇으로 달래 줄 수 있을까... 정복으로 말하자면 차라리 징기즈칸과 그 후예들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보다 2배 이상, 알렉산더보다 8배의 땅을 정복하며 가장 잔인한 드라마를 썼던 그들 단연 금메달감 일 것이다. 알렉산더는 게임도 되지 않는 드넓은 아시아와 유럽을 초토화 시켰던 그들이 아니던가... 유럽인들은 아직도 징기즈칸과 그들의 후예라면 공포에 사로잡힐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을 중심축으로 역사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 왔고 무비판적인 수용은 역사에 대한 왜곡 현상을 만들어냈다. 승자의 입장에서 쓴 역사서는 유럽인들에게 유리하도록 기술되었고 그 결과 세계의 문화와 문명은 유럽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지금도 그러하노라고 말하고 있다.

셰계사란 인간과 사물이 움직이는 시간적 공간적 영역이다. 어느 한쪽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으로 흘러들어가는 현상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 역사의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완력이 강했던 유럽중심의 기술은 없던 역사를 발명해내기도 했고 존재했던 역사를 증발시켜버리기도 했다. 게다가 세계의 역사는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기여한 대부분의 사실들을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무분별하게 출간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어린이용 위인전기에 콜럼버스와 알렉산더가 등장하는 이유 

진실을 알고보면 절대로 롤모델로서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는 인물들이 우리나라의 위인 전기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는 역사 인식에 밝지 않은 점을 이용한 얄팍한 상술이 숨어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국민들의 역사인식은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서구적 사관 중심이므로 콜럼버스가 정말로 위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아직도 TV에서 콜럼버스의 모험심을 이용한 광고물들 공중파로 싫어 보낼까... 저자들이 이점을 알아차리고 모른척 유명한 인물들을 분별없이 끼워넣는 상업적 의도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역사의 진실이야 어떻든 간에...  

둘째로는 어린이용 도서를 저술하는 저자들의 역사인식이 부족한 탓을 것이다. 어쩌면 실제로 콜럼버스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린이용 도서들의 대부분은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저술되기보다는 어린이용 도서 집필자들에 의하여 기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그러한 판단의 근거이다. 남북미 대륙의 7천만 인구 중 90%에 달하는 원주민들이 발견을 했다고 주장하는 서구인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거나 백인들의 질병에 의하여 사망했다.  

그들의 역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지워졌고 왜곡되어있는 실정이다. 이런 서구인들의 무자비한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과연 컬럼버스나 그와 유사한 인물들을 위인전기에 포함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도서 집필자들의 역사인식의 무지함이 무분별한 출판물을 내놓게 된 원일일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독자의 역사인식을 새롭게 해줄 수 있는 역사적 사료들을 아주 잘 제시해주고 있다. 그토록 서구인들의 입을 달콤하게 해주었던 설탕은 흑인 노예무역과 노예들의 피가 배인 달콤함이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으로 그토록 수많은 원주민들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앗아간 서구인들의 맨얼굴을 다시 한 번 더 쳐다보게 될 것이다. 

세계의 문화와 문명이 유럽에서 출발하여 전세계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는 서구인들은 그들 조상이 숨기고 은폐시켰으며 왜곡시킨 역사를 그대로 인식한 결과이거나, 알고는 있지만 조상들의 잔인하고도 무지했으며 처참했던 역사를 외면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너무나도 비인간적이었고 무자비했던 조상들의 죄를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대한 인식은 반드시 연대감으로 나타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콜럼버스가 한반도에 도착하는 일이 발생했더라면 우리의 땅이 신대륙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말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노라고...그리고 우리를 인디오라고 불렀을 것이고 금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며 우리 조상들의 손목을 잘라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래도 콜럼버스를 위대한 모험심을 발휘한 위인이라고 부를 것인가... 

 이책을 통하여 많은 한국의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사관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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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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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정의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정의를 논하는 일은 정의로운 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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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을 생각하면 보통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과 서부부터 강력한 타건으로 비평가들을 놀라게했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등이 떠오른다. 아, 물론 대학생들이라면 단연 라흐마니노프를 호명할 것이다. 리스트라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더해서 20여분의 1악장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는 연주도 있다. 이는 간단한 단상으로 살펴보고 싶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중의 1악장이 그러하다. 또한 나머지 2, 3악장 역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기 어렵도록 청자를 서로잡는 연주의 연속이다.  

이른바, '황제'라는 닉네임을 후세에 갖게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아마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피아노 협주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고전음악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그 주선율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매우 많으리라 짐작한다. 

 [폴리니_칼 뵘_빈필_DG 2002 : 과연 누가 이 음반에 흠집을 낼수 있으랴. 다만 나는 폴리니의 또랑거리는 연주가 마음에 든다고 밖에는... 흠집을 잡으려거든 길을 걸을 땐 늘 주의를 요망한다. 어디서 돌팔매가 날아올지도 모르니...그러나 내게는 최고는 아니다...휙~ 돌~]   

  

애초에 베토벤이 그의 피아노 협주곡 5번에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워낙 곡의 품위와 연주가 들려주는 장엄함 혹은 세련됨 등등 여타의 모든 요인들이 만들어 낸 느낌이 마치 '황제'의 그것과 같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런 닉네임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피아노 협주곡 5번을 1770년 생인 베토벤이 1809에 작곡했다고 하니 그의 나이 39세였다.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작곡생활을 하게되는데, 당시의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의 무력 앞에 힘을 쓰지 못하던 시기였다.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후 스스로 황제가되어 절대 권력을 잡고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던 시기였던 것이다. 수많은 음악가들이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음악활동을 하고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베토벤이 이 곡을 완성한 시기는 베토벤보다 24세가 많았던 모차르트가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지 18년째가 되는 해이고, 1797년 생인 귀염둥이 슈베르트가 12살의 나이로 빈의 궁정 예배당에서 어린이로서 합창단원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이다. (슈베르트는 베토벤보다 27세 아래였다. 그러나 슈베르트를 어린아이로 보면 절대 안되신다. 슈베르트는 13세에 이미 작곡을 시작하고 16세에 교향곡을 썼으며 18세에는 이르러서는 엄청난 수의 가곡을 쓴 고전파의 마지막 주자였다.)   

닉네임으로 보건데 1악장은 아마도 정녕 '황제'다운 기품이 배어있는 듯 하다. 어쩌면 베토벤은 일필에 악장을 끝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토록 힘있고 탄력적이며 우아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매끄러운 악장을 전달하고 있기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한다. 또 아니면 어떠랴... 대략 20분 정도의 1악장을 듣는 이가 전혀 20분으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매끄러운 곡이다. 현악과 관악의 상호 교감은 뚜렷하고 피아노는 또 피아노대로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각 악기들의 호응은 완연한 일체감을 주도록 되어있어 처음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대표곡이다. 아마도 단박에 매료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것이다.

 [박하우스_빈필  : 사실 별도의 소개가 필요하지 않은 음반이다. 박하우스가 황제의 연주에서 가지는 위치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실례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박하우스의 연주를 단연 으뜸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애호가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아니다. 우선은 2악장의 연주 속도가 내게는 너무 빠르게 전해오고, 전체적 연주의 느낌이 통일성이 있고 유려하여 듣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기지만 악기들 상호간의 디테일한 섬세함을 기대하는 나에게는 만족스런 연주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맥락이 핵심인 박하우스의 연주는 황제에서 빠질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폴리니-칼뵘반과 더불어 필수 소장반] 

 2 악장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곡이 또 어디에 있을까...과연 베토벤이 작곡한 음악이 맞단 말인가...의심이 들지모르겠지만 분명 베토벤의 곡이 맞다. 고집불통에 성질더러운 인간으로 알려져있는 베토벤의 음악을 숭고하고 세상에서 아름답고 애수를 품은 곡이라 말하려는가...곡을 들어본다면 이 곡을 써준 베토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악장은 듣는 모든 이의 시름을 어루만진다. 때로는 청자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연약하면서도 아름답다. 마치 손으로 건드리면 다칠 것만 같은 가려리고 푸르른 음악이 온 몸을 감싸게된다. 이런 아늑하고도 솜털같은 포근함은 애수라는 상대적인 감성을 자극하면서 우리를 스스로 딜레마에 빠트린다. 가녀림에 대한 연민과, 애수의 슬픔과 따사로움의 아늑함과 맑은 세상의 공기를 보여준다. 마치 상처를 어루만져 주어야 할 것 같은 2악장을 듣고 있노라면 불현듯 베토벤이 나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무슨 딜레마란 말인가. 온갖 해물이 섞인 짬뽕도 아니고...여하튼 2악장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너무 버거운 일이다 내게는... 

그렇게 꿈처럼 2악장이 끝나갈 무렵.... 뜻밖에 전혀 공백이 없는 상태로 3악장으로 넘어간다. 베토벤은 그렇게 2악장에서 3악장으로 쉼없이 넘어가도록 곡을 붙여버린다. 그러나 쉼이 없다고 해서 악장이 구별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렷한 연주로 분리되어있다. 이런 형태은 베토벤 이후로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그 전에도.... 

미켈란젤리_첼리비다케: [ 오늘 쪽의 두 연주자를 기억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지휘의 구도자인 첼리비타케와 피아노의 구도자인 미켈란젤리가 만나 음악의 구도자라 칭하고 싶은 베토벤을 협연하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들의 연주는 음악으로서의 가치 뿐만아니라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구도에 이르는 하나의 방법을 재현해 놓은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한다. 어쩌면 그들은 연주하는 그 순간 구도자였을 지도 모른다. 

음질은 좀 떨어진다. 그런 점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토스카니니의 연주로 듣는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그들의 연주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쉼없이 바로 넘어가는 3악장은 Rondo의 주제를 연주해가면서 협주곡의 절정을 이룬다. 피아니스트는 장 3도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찝어주어야 곡이 빛을 발하며 살아날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Rondo는 시원스럽고도 악기들이 가진 기운을 쭉쭉~내 뿜어주어야 할 것이다. 모든 악기들의 명징성이 뚜렷 할 수록 곡은 청자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피아노는 역동적이면서도 구김이 없어야하고 오케스트라는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일사 분란한 연주로 피아노를 살려주어야 할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악보의 치밀함을 구현해내어야 할 것이다. 협연은 피아노의 감정을 살려주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수해야 한다. 그렇게 피아노와 협연은 완벽한 마무리를 해내야 한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런 연주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이정도에서 애호가들은 이미 눈치를 챘을 것이다. 바로 짐머만과 번스타인이 그 주인공들이다.      

Krystian Zimerman_Leonard Bernstein 의 영상물과 음반

 [짐머만의 피아노와 번스타인의 협연은 완벽함 그 자체이다. 그들이 베토벤을 의도한 그대로 가장 훌륭한 연주를 해냈다. 자켓의 뒷편으로 보이는 연주자들의 표정을 보시라...번스타인의 만족한 표정과 짐머만의 의연한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곡을 가장 아름답고 멋지게 연주해냈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둣 하다. 베토벤이 살아있다면 그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대들이 나의 곡을 연주 해주었노라...라고... 베토벤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해낸 연주라고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왠지 그랬을 것만 같다... 이 둘은 이 연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이 두사람의 연주를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조화롭고, 이토록 모든 악기들이 피아노와 협연의 개성들을 모두 살려낸 연주를 또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으랴...왼쪽의 DVD는 완벽한 황제의 연주를 우리의 눈으로 확인하도록 해준다.] 

  이 외에도 빼어난 연주들이 매우 많다. 그만큼 연주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는 곡이라는 뜻일 것이다. 꼭 이 곡을 완벽하게 연주 해내야만 좋은 연주는 아니다. 연주자 자신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피아노와 협연자들의 상호 노력은 이에 못지 않은 아름다운 완성도를 가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애호가들의 취향과 선호도가 서로 달라 입맞이 제각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음악에 하나의 고정된 틀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해석과 연주의 차이는 제각각 좋은 점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런 특징들을 가진 매우 좋은 연주들이 수없이 많으나 다음의 몇가지만 열거해본다.  

   

 

 

  

 

 

1.앙세르메이                              2.제르킨                              3. 아쉬케나지  

1. 앙세르메이의 지휘는 베토벤의 교향곡 연주로도 그 이름이 드높을 뿐더러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지휘자 중 하나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 9번이 커플링되어있어 앙세르메이의 9번에 대한 해석도 감상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2. 제르킨과 번스타인의 협연을 애호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들의 빼어난 수연을 아직도 제르킨의 거침없이 뿜어대는 연주를 번스타인은 무리없이 서포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뜨거운 연주를 원하고 폭풍같은 느낌을 받고 싶은 사람은 제르킨과 번스타인으로 감상 할 수 있을 것이다. 3. 아쉬케나지를 좋아하는 애호가들도 매우 많다. 

신호도에 따라 다음의 음반들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것이다. 

 

  

 

 

 

위 모두 절대로 후회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음반들이라 생각한다. 모두 그 나름대로의 연주로 첮자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루빈시타인을 애써 거론 할 필요는 없다. 20세기 여성 피아니스트의 전설로 남아있는 유디나는 창조적인 예술가요 따듯한 가슴을 가진 휴머니스트였다.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애호가는 없을 것이다. 아쉬케나지는 지휘와 연주를 모두 그 이름이 높다. 아쉬케나지의 라흐마니 노프를 들어보신 분이라면 분명 그의 팬이되고야 말것이다.  

 에밀 길레스_권터 반트: 이 둘의 연주를 빼놓으려니 아무래도 서운한 감이 몰려온다. 길레스의 러시아적 타건은 역사에 족적을 남긴 연주일 것이다. 길레스의 강인한 타건에 흠뻑 매료된 팬들이 매우 많은 것으로 알고있다. 어디 강인함 뿐이련가. 2악장의 영롱한 터치는 듣는 사람을 충분히 놀라게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과연 길레스라는 감동과 함께...여러가지 측면에서 호연으로 생략할 수 없는 음 반 중 하나일 것이다. 권터 반트가 슈베르트 교향곡 미완성에서 보여주는 연주를 들어보신 분들은 또 이내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지휘자임에 틀림이 없다.    

  미켈란젤리-줄리니이 두사람이 호흡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줄리니 역시 지휘에 관한한 그 어느 지휘자 못지 않은 철학을 지닌 사람이다. 미켈란젤리를 구도자라고 말 할 수 있다면 줄리니 역시 그에 걸맞는 구도자일 것이다. 카라얀보다 적은 연주를 남겼지만 결코 카라얀보다 덜 해서가 아니었다. 보다 철저하고 보다 심오한 심연을 꿰뚫어내는 줄리니의 연주는 그 어느 음반 하나도 소홀함이 없는 대 지휘자이다. 정명훈의 스승으로 이탈리아의 지휘 계보를 이어받은 줄리니는 그 어마어마한 선배들의 이름을 더욱 빛내주는 정통 계보임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지휘자보다 진중하며 배려깊은 분으로 정녕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적인 지휘자이다. 

 한가지 덧 붙이자면 애청반은 곧 명반이다 라는 공식은 아니라고 본다. 각 음반에는 곡 자체의 이야기 뿐 아니라 연주 자체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연주가의 이야기가 가미된다면 그 어느 음반을 사랑하기에 충분한 요인들을 갖추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꼭 명반이 아니어도 애호가 나름대로 애착이 가는 음반들은 서로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굳이 연주에 점수를 매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두 각자의 기호와 사연이 다르니 애청반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이 음반은 이런 점에서 애호하고 저음 반은 저런 점에서 애청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외에도 좋은 음반들이 수없이 많으나 지면상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제르킨과 발터의 음반도 소개하고 싶었으나 알라딘에서 그 이미지를 찾지 못해 서운하기 이를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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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태인
김종빈 지음 / 효형출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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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의 유일한 선민, 유태인에 대한 미시적 개괄서로 유익한 일독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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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핵, 유태인
김종빈 지음 / 효형출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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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상대성을 논외로 할 수 없듯이 유태인에 대한 관점도 그와 다를 바는 없다고 본다. 이 책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갈등의 몸통과 다름이 없었던 유태인의 개괄적인 역사를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가진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유대인 시작과 과거 유대인 고난의 역사를 조명하며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니고 있었던 중심적 사고와 현재 유태인들과의 개연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저자가 의도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하는 글의 핵심적 흐름으로 볼 때 그 목적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의도대로 유태인에 대한 미시적 개괄서라 볼 수 있는 도서이다. 

아랍권과 유태인의 갈등은 미국의 무역센터에 대한 테러의 보이지 않는 원인이 되었다. 이는 유태인이 왜 갈등의 핵심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예일 뿐이다.  나아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어쩌면 미국에게는 물론 전세계의 가장 골치아프도록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4,000년 전 유일신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안하여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역사는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유태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장자인 이스마엘은 몸종출신의 서자였으므로 쫒겨나 아랍의 조상이되고, 둘째 아들이었지만 이삭은 정실 부인의 아들이므로 적자로서 이스라엘의 후계가 된다. 마치 조선의 적자와 서자의 불평등한 관계식이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그렇게 시작된 이스라엘과 아랍의 분리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 갈등의 씨앗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마 아브라함도, 모세도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태인의 전통적 종교의 특성은 독특하기 이를데 없다. 유태인 그들만의 '유일신의 선민'이라는 종교적 터전은 이슬람교과 유대교라는 일란성 쌍둥이를 생산했고 그들은 현재 흰 이를 드러내며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다. 과연 그들 유일신의 뜻이 이런 것일까...작금의 상황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이다.. 

여하튼, 유대인은 그 후로 수없는 고난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이집트로 이주하여 400년의 세월을 타향살이를 해야했고, 모세를 만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즉 유일신께서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40여년에 걸쳐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금 로마에게 터전을 강탈당하고 디아스포라의 힘겹고도 인고의 세월을 또다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팔아먹었고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이유로 천대를 받으며 전 유럽에 흩어져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반유대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헸던 홀로코스트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딱지는 그들에게 가혹한 시련의 길을 걷도록했다. 디아스포라의 시기에 그토록 처절한 차별 대우를 받게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유일신 사상과 유대인의 상술이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전유럽과 아메리카까지 뿔뿔이 훝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주 특기인 눈부신 상술을 발휘했는데 이것이 유럽의 반 유대인 정서의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는 20세기에 들어 다시금 그들의 유일신께서 약속해준 땅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이게된 동력은 바로 그들이 유일신이었으리라...그들에게는 토라와 탈무드가 있었다. 유대인의 정체성은 토라와 탈무드를 근거로하므로 이 둘은 그들의 정체성과 다름이 없다. 그들의 유일신은 그들에게 고통도 주었고 다시금 뭉치도록하는 원동력을 주기도했다. 그 결과 21세기의 세계는 어느 분야 하나 유태인의 영향력하에 없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전 세계에 가장 많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가장 응집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태인...노벨상의 2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토록 수난의 연속이었던 역사속에서 되 살아나 지금은 세계 갈등의 핵이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다. 고통을 받았으면 남의 고통도 이해할만 하지 않을까...이는 두번 째 강력한 의문이다... 

이책이 주는 정보는 여기까지이다. 전반적으로 유대인이 어떤 과정의 역사를 통하여 기사회생했는가와 그 기사회생의 기저가 되는 전통 종교적 신념과 토라, 그리고 탈무드는 유일신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가지로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각의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을 편협되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줄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별은 4개를 쏜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는 남아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유대인들이 이제는 대부분을 차지해버린 땅인 팔레스타인은 어떤 땅이고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이다. 작금의 가장 현실적인 국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 팔레스타인 땅이기 때문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나라를 건국한 팔레스타인은 수시로 주인이 바뀌던 곳이다. 기원 전의 주인을 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기원 후의 주인에 대해 논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기원전 15세기 : 이집트의 유태인에 대한 학대에 고통을 받 던 중,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도망친 모세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유대인 이주시킨다 (약속받은 땅이라서..) 

BC 997년 : 다윗왕이 유대인 국가 성립하다 

BC 세기 : 유대인 국가는 외세침략 받고 뿔뿔이 흩어진다

AD 70년 : 유대인 제1차 유대전쟁 로마에 패하여 예루살렘 정복당하고 전 유럽으로 또 다시 흩어진다 

AD 637년 : 아랍인들은 로마를 격파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지배한다

AD 16세기-20세기 : 오스만 제국이 통치를 한다  

1차 세계대전 : 영국이 통치를 한다  

19세기 말 : 전 유럽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약속받은 땅을 찾기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드레프쉬 사건을 알면 그들이 뭉친 계기를 알게된다.  그리고 당시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87.5%가 팔레스타인 소유였고 유대인은 6.6%를 소유하고 있었다.

1978년 : 이스라엘 건국, 팔레스타인과 땅 빼앗기 전쟁, 그 후 수차례 팔레스타인과 전쟁을 치루어 땅을 넓혀간다.

현재 :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79%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을 통해 점령한 상태이고  팔레스타인 인구의 75%가 폭탄이 머리위로 떨어지거나 수많은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자 피난을 떠나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응은 자신이 차별대우 받으며 살았던 지역에 스스로 설치했던 게토의 장벽을 쳐 팔레스타인을 고립시키고, 팔레스타인의 재산의 무조건 몰수하거나 파괴한다. 팔레스타인의 무장인은 무조건 사살하고 요인은 암살한다. PLO 죄수들은 가급적 영원히 감금하고 되도록 팔레스타인 땅에서 그들을 몰아낸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쳐 놓은 케토라는 장막 안에 갖혀살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땅을 다 내놓을 때까지 팔레스타인을 죽이거나 압박하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유대인의 파워는 너무나 막강하여 정의롭지 못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조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오히려 지원하는 셈이되어버렸다. 유대인의  힘을 주지시켜주는 상황의 전개이다. 유대인이 믿고있는 유일신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동을 지원해주고 있는 뒷배가되는 셈이다. 신의 이름으로 그들은 팔레스타인을 더욱 조여가고 있다. 신이 약속하신 그들의 땅을 팔레스타인들이 모두 토해낼때까지... 

 약간의 신문 기사를 인용하면 

땅을 놓고 벌어지는 양측의 대립은 끊임없는 인적.물적 희생을 가져오고 있다. 양측 발표를 더하면 2000년 9월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 이후 모두 3천4백44명이 죽었다. 고향을 되찾았다는 유대인과 고향을 빼앗겼다는 팔레스타인인들 간에는 지금 '장벽'을 놓고 극도의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2004-07-01- 중앙일보  

이스라엘군은 2008년 12월 27일 가자지구를 기습 침공해 22일 동안 팔레스타인인 1400여 명을 숨지게 했다. 이스라엘군이 2일 가자지구의 남부 라파 지역에서 주행 중이던 차량을 공중 공격해 팔레스타인인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 동아일보 

유대인들은 유일신이며 천지만물의 창조자인 야훼을 신봉하면서, 스스로 신의 선민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태인이 아닌 국가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왜 그들의 유일신 야훼는 전 세계의 당을 모두 다 유대인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혹은 팔레스타인들에게 직접 죽음을 내려 멸하지 않으시고 왜 유태인들이 스스로 신성함을 더럽히며 살인을 하도록 부추기는가...이는 나의 마지막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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