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사주정설
백영관 지음 / 명문당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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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에는 한글로 풀이해준 책들이 많다. 보기에 아주 편하게 편집되어있어서 기초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다. 사주정설은 오래전 사용하던 내려쓰기에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읽어가도록 구성되어있다.    

이러한 방법에 익숙치 않는 사람들은 불편할 것같다. 반대로 오히려 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물론 소수이겠지만... 사주정설은 매우 밀도있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꼭 필요한 내용들만으로 책을 엮은 관계로 도움이 매우 큰 학습서이다. 추명을 공부한다면 한 두 권으로 일을 마무리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순서는 다르겠지만 여러가지 더 공부해야할 책들이 많다.  

이책에서는 이런 부분을 취하고, 저 책에서는 저런 부분을 취하면 된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공부를 하다보면 잘 알것이다. 이에 알맞게 각각의 책에서 필요한 내용을 취하면 되는 것이다. 사주정설은 그렇게 취해야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매우 큰 도움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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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실전사주 108제 - 단번에 말문이 확 트이는
김동환 지음 / 학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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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부를 할 수록 용신을 판단하는 일이 수월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된다. 일주의 강약을 판단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강약과 용신의 판단은 추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용신과 강약의 오판은 조후법, 억부법, 통관법에대한 오류를 낳게된다. 이는 추명의 오판을 낳고 결국 전체적인 개인의 추명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오판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사항일 것이다.  

실전 108제는 마치 수험서와 같다는 생각이든다. 주어진 천간과 지지로 일주의 강약과 용신을 잡아보고 대세운을 연결시켜 스스로 판단해보는 예제를 준다. 물론 자신이 스스로 판단한 내용들이 적절한지를 대조해볼 수 있다. 하나의 예제가 가지는 명을 초년부터 말년까지의 변화도 추정해보고 적절한 추명을 했는지도 확인 할 수 있다.  

스스로 공부하기에는 정말 좋은 교재이다. 오행과 음양을 깨우치고, 육신과 형충파해와 합을 파악하려 노력하는 학도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공부해가면서 형충파해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기도한다. 조후법, 억부법, 통관법을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학도들의 학습에 정말 큰 도움이 되어주는 108제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큰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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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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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시리즈 중에서 가장 콘서트다운 구성을 가진 책이 과학콘서트인 듯하다. 교향곡의 4악장 형식을 사용하여 악장별로 1 Vivace molto 2 Andante 3  Grave non tanto  4 poco a poco Allegro 의 형식을 가진다. 마치 한곡의 교향곡을 연상하게하는 책의 구성이 흥미롭고 기지가 넘친다. 저자의 글솜씨 또한 채치 만점이다.  저자의 책이 왜 교향곡의 형식을 빌었는지는 잭슨 폴록과 서태지의 머리안에 존재하는 프랙탈, 그리고 바흐의 음악, 심장 박동의 불규칙성등과의 연계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글의 내용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어 독자는 이에 매우 흡족해하며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마치 하나의 교향곡을 읽는 느낌이 들 것이다. 철학 콘서트나 경제학 콘서트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들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프랙탈을 소재로 글을 전개해간 2악장은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고 저자의 의도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프랙탈을 감지할 수 있다.  

1악장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O.J 심슨의 재판에서 변호사들이 보여준 통계의 기만술이었다.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내 중에서 자신을 때린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경우는 천 명 중의 하나, 0.1%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 따라서 O.J심슨이 아내의 살인범이라는 가능성에는 단서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그의 변호사들이 제기한 주장이며 통계를 이용한 기만술이었다는 점이다. 통계에 무지하면 그렇게 당하게된다.  

그러나 저자는 '매맞던 아내가 죽었을 때 그녀를 평소에 때리던 남편이 범인일 확율을 계산해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확률은 80%이다. 따라서 심슨이 범인일 가능성의 충분한 단서가 된다'이다. 우리는 위에서 보여주는 실질적인 예처럼 통계의 수치로 우리는 오판을 할 수 있으며 판단할 때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확률과 통계에 밝아야 하는 이유이다. 

정말 놀랍고도 재미있는 읽을 거리는 심슨의 재판이 아니라 바로 2악장에서 등장하는 잭슨 폴록의 이야기와 프랙탈이다.  저자는 연계되는 다른 내용들의 글 속에서도 일련의 상호 규칙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부분 때문에 이 책은 빛을 발하는게 아닌가 싶다.  잭슨 폴록의 예술을 프랙탈로 설명을 해주다니...무척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다. 잭슨 폴록, 어느 기사에서 잭슨 폴록의 예술과 유니크한 시선을 즐기고 싶어하는 부자들의 합작품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어 흥미롭게 읽게되었다. 그의 예술에서 프랙탈을 발견하는 연구를 했고 이를 증명했다는 내용이다. 잭슨 폴록의 예술이 '카오스 시스템이 공간적인 분포를 이룰 때 보이는 가장 중요한 현상'을 포착했다니...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렇다면 잭슨 폴록은 카오스에서 우주적 자연의 리듬을 무의식적으로 포착했고 이런 미친 짖을 의도적으로 한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이들은 잭슨 폴록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할 수 밖에는 없다. 잭슨 폴록이 아니라 유치원의 어린 아이들이 그어대는 크레용의 낙서 속에서도 과학자들은 1.2 -1.3차원의 프랙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결론은 1악장에서 읽은 '어리섞은 통계학'을 바탕으로 내리게된 결론이다. 젝슨 폴록의 작품에서 프랙탈을 발견한 것을 통계로 분석했을 때와 어린 아이들이 크레용으로 생각없이 그어대는 카오스속에서 프랙탈을 발견할 확률은 같다. 그러므로 잭슨 폴록과 유치원의 어린 아이들의 프랙탈은 같은 것이다. 좀 억지스러운 결론일지 모르겠지만 부인하고 싶다면 과학자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의 마구잡이 그림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서태지의 머리에는 프랙탈이 산다'이다. 이 책의 저자가 악장 속에 숨겨운 진실이 있다. 바로 잭슨 폴록의 프랙탈과 서태지의 프랙탈이다. 폴록은 프랙탈을 의도했는가? 아니다. 서태지의 헤어 디자이너는 프랙탈을 의도 했는가? '그렇다'이다. 아프리카의 생활속에서는 의도된 프랙탈이 존재한다. 자, 결론은 하나다. 잭슨 폴록의 프랙탈과, 유치원 어린이들의 크레파스 낙서 그리고 서태지의 머리에서도 프랙탈이 존재한다. 프랙탈이 무엇인가? 성질이 다른 프랙탈이라도 있단 말인가?  

 젝슨 폴록, 유치원 어린이, 서태지,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는 프랙탈이 존재한다. 잭슨 폴록이 그 프랙탈을 깨닫지 못하고 예술사의 궤적을 바꾸었놓았지만 이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을 마치 잭슨 폴록에게만 있는 것처럼 과장한 결과이다. 잭슨 폴록의 예술 작품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것이고, 유치원 어린이들의 낙서는 연구하지 않았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바흐의 음악은 일련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고,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음악들은 1/f라는 공식에 근접한다. 즉, 자연의 패턴을 음악으로 변환하여 작곡을 한다. 그 음악이 1/f에 가까워질소록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음악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잭슨 폴록의 미술에 감동하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중들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1/f 에 가장 근접한 음악에 대중들이 호감을 가질 확률은 80%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설명한 80/20이론에 따르면 그러하다. 그러나 과연 잭슨 폴록에게 80%의 대중들이 호감을 가지느냐하면 절대로 아니다. 이는 과학 콘서트의 내용들을 분석하고 연계하여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잭슨 폴록의 미술이 프랙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카오스의 프랙탈 이론으로 덮어 씌우는 것은 과장이며 의도된 상술과 미술계의 허풍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학 콘서트가 정말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거리들이 있고 그에 알맞는 사고의 다리를 놓아주고 있다. 중고생들이  과학 콘서트를 읽으면서 이러한 발견을 해낸다면 그 얼마나 즐거운 일아 아니겠는가. 독서의 즐거움은 이러한 발견과 사고의 즐거움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비록 청소년용이기는 하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마찬가지로 즐거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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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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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과학과 우주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는 단연 최고의 도서이다.  은하계에 관한 상세한 지식 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우주의 움직임도 이 책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의 은하는 옆으로 긴 타원형의 나선형 은하인데 그 길이는 10만 광년이고 그 중심부의 폭은 1.5만 광년짜리 은하이다.  

우리 은하는 태양과 같은 별들을 약 200,000,000,000 (2천억)개 가지고 있다. 캐산라는 만화영화를 보면 꼭 안드로메다 군단이 지구에 쳐들어 온다. 캐산이 모두 물리치기는 하지만 말이다. 만화가는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은하가 안드로메다 은하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보다 3배 정도 더 크다. 그러므로 별의 개수도 600,000,000,000(6천억)개이다. 우리의 은하보다 그 인력이 3배이상 크므로 우리의 은하는 안드로메다 은하쪽으로 끌려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흡수 합병될 것이다. 그러나 충돌은 빌생하지 않는다. 우주의 조화란 부드럽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우주에는 그런 은하들이 또 하늘의 별들보다 더 많다.  

그런데, 우리와 약 2,000,000 (2백만) 광년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에서 우리 은하까지 올수 있는 녀석들이라면 그들의 과학 발전의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 과연 캐산이나 그랜다이저가 그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겨우 200년의 과학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구이다. 나이는 45억년. 그러나 50억년이 된 다른 행성에서 지구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가정해볼 때....그들의 과학은 5억년의 차이가 날 것이다. 200년대 5억년의 과학 발전의 차이...그 차이를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아마도 그들은 우주 공간을 날아 다니고도 남을 지도 모른다...우리가 아직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살이고, 태양의 나이는 약 50억 살이다. 대략 50억 년 후에는 태양은 그 빛을 잃어버리고 인력도 상실되어 결국 풍선처럼 부풀다가는 폭발해 버리고 말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태양계가 우주의 성간 가스로 사라지는 것이다. 지구의 운명은? 역시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다. 물론 아주 아주 먼 후의 이야기이다. 

지구인들은 그럼 어떻게 되는 것일까...당연히 가만히 있다면 지구와 함께 폭발하여 먼지로 변하고 말것이다. 지구인이 살아 남는 방법은 없을까...당연히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의 은하에 있는 별들의 개수만 8천 억 개이다. 그 중에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행성이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 곳을 찾아 이사를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행성을 차지하고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그리고 이사를 하는 방법은? 우주에 관한한 상상력은 그 한계가 없다. 

그럼 이사를 하는 방법은 타임머신인가? 절대로 아니다... 타임머신은 일종의 기계이다. 광속으로 달리는 기계...그러나 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자동차를 타고 달리듯 타임머신을 타고 달리는 방법이 아니다. 바로 4차원의 공간을 열어내는 방식이다. 아니, 4차원과 접하는 부분을 찾아내는 일이다. 여기에서 또 우리의 상상력은 끝없이 달려나간다....

 이 책이 주는 우주와 상상력은 이 책을 읽는 모든이들에게 적당한 지식과 그에 상응하는 상상력을 끝없이 발전시키게 한다. 이 책이 주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까...

최근엔 어린이들이 쉽게 읽을 좋은 우주관련 도서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좋은 정보들로 가득한 최근의 도서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왜냐면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감탄하고 감탄하던 그 때가 생각 나기때문이다. 마땅히 읽을 만한 책도 별로 많지 않았던 것도 같다. 정말 오래 전에 출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요즘에 읽어도 탁월하며 더욱 빛 나는 듯하다. 오죽했으면 구판본을 잘 보관하고 새로운 신판을 구입해 읽었을까... 양장본은 비싸서...보급판을 사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출간된 일반인을 위한 우주 관련 도서로는 고전이면서도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과학 전문 기자였던 저자는 이 분야를 독자에게 전달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고나 할까... 기자는 내용을 전달하는 달인이 아니던가...독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내용들을 불편함이 없이 이해하기 용이하도록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도서는 우주과학의 입문서로서도 대단히 훌륭하지만, 적지 않은 분량에 담고 있는 내용들은 입문서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한결같이 중요한 내용들인지라 그 어느 한 구절도 놓치기 아까운 것들이다.   

책장에서 구판의 코스모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 후로 다양한 우주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러 가지 관련 도서들을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겐 우주과학의 바이블과 다름없는 책이다.    

리뷰를 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 주절주절 쓸 필요도 없는 일인데...왜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말이 따로 필요치 않은 그런 책이다... 우주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독자에게 정말 추천하고 싶은 그런 책 말이다...두께가 있고 내용이 많아 인내심이 있는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 학생이라면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부모님이 읽고 나서 설명을 하는 방식이라면 최고의 활용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 진진한 내용들이 주렁주렁한 감동적인 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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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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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이클 샌덜의 정의에 대한 고찰이다.  저자 스스로 정의를 내리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파장이 생각 이상으로 커서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가 그만큼 정의를 원하고 갈망한다는 뜻과도 같기 때문일까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하여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 읽어보게 된 것이다. 이미 읽어보신 독자들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정의를 정의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그러나 많은 독자들은 정의를 논하는 일는 정의로운 일에 속한다고 생각 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샌덜이 말하는 정의는 무엇이고 마이클 샌덜의 정의에 대한 고찰이 이토록 대한민국의 서가에 높은 파동을 일으키며 독자들의 반향을 몰고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1. 정의란 공리와 행복의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인가
2.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인가 (자유시장 지상주의 Vs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3. 정의란 미덕과 공동의 선을 고뇌하는 것인가   


370여 쪽에 달하는 저자의 책이 주는 정의에 대한 핵심적 접근은  위의 3가지로 요약 할 수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실증적 사건이나 가설적인 사건을 모델로 설정하고 ‘정의’에 대한 각각의 접근 방식, 즉 서양 철학자들의 의견을 투영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같은 주제에 대한 상이한 주장에 대해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내용을 전개시키는 방식이다. 

우선, 공리주의적 접근에 대해 언급하자면 핵심 인물인 벤담이 주장하는 공리주의는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라 설정하여 이론을 전개시키기 보다는 인간행위의 가치를 수치화하여 설득하려' 하고 있다. 이는 각각의 가치들이 가지는, 그리고 각 개인이 부여하는 가치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 결함이 있다. 결과적으로 모든 가치를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시켜 환산해내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자유주의자적 입장은 공리주의적인 결함을 어느정도 극복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적인 삶의 절대적인 덕목이냐하는 질문과 만날 때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모든 사람 각자가 가질 수 있는 이견을 수용하는 자세를 지지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즉 도덕적, 법적, 윤리적, 종교적인 덕목들을 포괄하는 좋은 삶의 추구를 위해서 함께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거창한 제목에 비해서 결론은 지극히 평범하다 하겠다.

제목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하고 부담스러운 추를 달고 있지만 제목처럼 사실상 정의에 대한 정답을 던져주려고 시도한 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구인들이 정의를 어떻게 고민하는가 하는 정도의 소개서라고 보는 것이 어쩌면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서구인들이 고민하는 방식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구인들의 사고의 근간이 되는 철학을 알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을 쉽게쓰려고 노력한 흔적 덕분에 철학자들의 배경 사상을 충분히 알지 않아도 읽어나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한국 독자들은 왜 이토록 열광하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평범한 결론에 도달하는 이 책이 올해 이토록 한국인들에게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사실은 이것이 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면으로 마이클 샌덜은 동양철학에 근거한 정의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동양의 철학을 논외로 하고 정의를 다룬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 성설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이 샌덜의 한계라면 애써 그의 노고를 깍아 내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첫 째로, 한국의 토론 문화의 부재이다 -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실제로 토론 문화에 온전히 적응한 한국인들은 드물다. 약한 기반을 가진 한국의 토론문화는 마이클 샌덜과 같은 강의에 단연 매료될 수 밖에 없다. 그의 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에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부담스러울 가능성이 높은 이 책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생각하게 하는 매력을가지고 있으므로 충분히 그 단점을 상쇄시키고 있다. 한국의 토론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요즘의 100분 토론은 무척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초창기 100분 토론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정말 토론의 ‘토’자도 모르는 분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는 모습이란...내내 쌈박질만 하다가 100분 다 보냈다. 그런데 지금의 100분 토론의 태도는 전혀 그 양상이 다르다...

둘 째로, 이 책은 이런 점에서 고뇌 권유서이다 - 우리에게 정의론 논하기 위해서 이런 고민을 해보시라는 권고의 책인 것이다. 특히, 우리가 자주 고민하지 않던 방식으로 말이다. 문제의 핵심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주장과 공리주의의 벤담,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이마뉴엘 칸트의 철학과 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비판적 입장의 ‘로버트 노직’도 알면 훨씬 더 유익한 독서가 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경제 구제 금융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도 알고 있으면 더 좋다. 

  여기에도 우리에게 한 가지 문제점은 있다. 등장 인물들의 철학적인 사고를 잘 알지 못할 때 오는 문제점이 바로 그것으로, 책을 무작정 읽는 것은 어느 화가의 작품을 보고 그 화가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유사한 행위이다. 몇 장의 그림으로 화가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오히려 반대로 화가의 철학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한 후에 비로소 그의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 하는 것이 순서로서 올바른 경우이다. 이 역시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셋 째로, 우리가 가진 교육 문화적 배경이 한 이유일 수 있다 - 우리 나라는 불교가 먼저 토착화했고 이어서 유교가 한 시대를 이끌어 온다. 고려의 광종 때 부터 실시한 과거제는 유교의 경전에 대한 이해와 경전의 암기테스트를 시행하면서 관료들을 뽑았다. 불교의 전파는 불교의 경전에 대한 암기 중심의 교육이나 마찬가지였고 유교 중심의 과거제 역시 암기 위주의 교육을 양산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주입식 암기교육은 이미 만들어진 교과서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주력하는 교육 시스템이다. (물론 사고가 발전하려면 기초적인 지식에 대한 암기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윤리적인 모든 측면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이미 잘 깍아진 틀 안에서 행동하고 사고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규범이란 이럴 때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은 우리가 정의에 대해 스스로 고뇌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원동력에 장애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론 수업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우리 문화적 이유들은 마이클 샌덜이 정의에 대해 고뇌해보라고 암암리에 부추기는 이 책을 통하여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넷 째로, 한국 학생들의 사유에 대한 '공적 힘'의 개입이 있었다 - 사실상 이 책에서 고뇌하도록 제시하고 있는 각각의 예와 가설들을 우리 스스로 해본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두가 뛰어들 수 있는 장을 만나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정치적인 이유로 학생들의 사유와 그 행위를 공적인 힘을 빌려 규제한 탓도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집회와 시위의 제재가 좋은 예이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행동과 사고는 위험한 것이 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은 사회의 현상을 감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샌덜의 이 책은 ‘정의’에 대해서 다함께 고뇌해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 함께 고뇌해보자는 뜻의 이 책이 이토록 한국의 서점가에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현대의 사회적 현상을 독자들이 감지한 탓일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의 현대 사회를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 보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적인, 경제적, 그리고 모든 사회적인 정의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장 큰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이 사상가들의 철학은 시대가 혼란스럽고 불안할 때 등장했다. 하룻밤 사이에 땅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며 혼란의 혼란을 거듭되고 도덕적인 타락이 극을 이루던 시절 공맹사상과 노장사상, 그리고 제자백가의 사상과 철학이 등장했다. 예수의 등장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이클 샌덜의 저서가 새로운 정의론을 주창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상은 샌덜의 정의론이 왜 우리사회에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이유들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마이클 샌덜의 정의에 대한 고찰이 이토록 대한민국의 서가에 높은 파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보면 정의란 한 사회의 도덕적, 관습적, 종교적, 철학적,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보다 정의로움에 대한 고뇌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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