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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ㅣ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평점 :
아래의 노장 전문기라고 하시는 분의 리뷰를 읽고 고민을 참 많이도 했다. 장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의 번역이라고 혹평을 해주어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읽어보기로 한것이다. 책 몇권 읽는다고 장자를 알 것 같으면 장자 전문가가 쏟아졌을 것이다. 그만큼 장자는 이해하기 어렵고 그 경지를 느끼기다 어려운 분일 것이다.
좋은 역서도 있고 안 좋은 역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관련 책들을 읽다보면 경험을 통해서 가장 장자에 근접한 책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좀 모자라면 어떠라 싶은 나의 생각이 어쩌면 위험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설프게 아는 것의 위험함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말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때문에 아예 읽기조차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은 소극적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반적인 독자들이 장자를 읽기로 결정했다고해서 전문가가 되려고 한다고 생각하면 어불 성설일 것이다. 일반 독자는 장자를 정확하게 알 필요도 없고 정확하게 알 가능성도 적어보인다. "봉황은 한 번의 날개짓으로 9만리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한 번의 날개 짓으로 9만리를 날아간다."는 장자의 말씀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하는 정도만 알아도 독서의 보람을 찾일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봉황의 9만리'는 서구의 사상과는 정 반대의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서구의 사고는 경험과 실증의 이성중심 사고이다. 직접 경험을 해보아야 궁금증이 풀리고 실험을 해서 그러하다는 결과를 얻어야만 대상을 인정하는 실증론적 습성을 가졌다. '증명하지 못하는 이론은 접수 거부한다' 는 풍토를 가진 곳이 바로 서양인 것이다. 그들은 심증만으로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론적 물증을 들이대야만이 받아주는 학계와 연구의 풍토이다. 그러나 동양의 생각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왜냐면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마도 장자의 말씀은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느라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서구의 인문학적 사고가 이성 중심의 철학이라면 동양의 생각은 '도' 중심일 것이다.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일 것이다.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그 무엇, 자연의 이치인가? 아니면 섭리인가? 궁금해할 뿐 나는 결코 알수는 없는 일이다.
여하튼 아랫분의 리뷰로인하여 고민고만하다가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서 장자님과는 이별을 할지 아니면 더 나아가 장자님을 더 읽어가게될지 아직은 알수는 없다. 그러나 시도가 중요하도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작이 중요하니만큼 단단히 마음 먹었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장자와 결코 이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