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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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학교에서는 열하일기와 박지원에 대해서 배우고 그의 작품인 '허생전, 양반전, 호질'등은 대수능에서도 문제로 출제하는 텍스트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인지도는 어느 인물이나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 가히 국민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막상 "열하일기를 읽어보신 분?" 하면 딱히 손을 번쩍 들어올릴만한 독자가 몇이나 될까...그러는 당신은 읽어보았소라고 묻는다면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수 밖에 없는 한 사람임에랴... 

열하일기를 읽어보야에 겠다고 생각하게된 동기는 오직 작가 '고미숙' 덕분이다. 이 장을 빌어 고미숙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고미숙님의 TV강연을 시청하게 된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어찌나 강연을 재미나게하던지...그녀가 써내린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하는 매력덩어리 고미숙님~. 우리의 고전이 이토록 멋지게 강연해주다니... 우리의 것을 늘 소중하게 생각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한 사람으로 고미숙은 내게 충분한 동기를 주었다. 정말 유익한 그녀의 강의였다.  

프롤로그에서 나타나는 현학적인 고미숙

드디어 고미숙의 책을 집어들었다. 책의 껍데기부터 웃기기 시작하는 양반이다. 연암을 닮아가고 있나? 이 책을 읽고나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은 부록부터 읽으면 더 재미있다나...고미숙은 '프롤로그'에서 지극히 현학적인 미사여구를 사용한다. 고미숙의 공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표현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나 이런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 고미숙은 정말로 표현력이 풍부한 작가이다. 한마디로 고미숙은 '정말 글을 잘쓰는 작가' 중 한사람이다. 그러나 그토록 현학적인 표현들은 앞으로 이 책을 읽어가야하는 독자들에게 깊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고미숙의 현학적 표현들을 계속해서 만나게되면 어쩌나...하는 절망감 말이다. 마치 넘어야 할 산과 같은 압박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도 이점을 걱정하면서 읽어갔던 것이다. 푸코와 들뢰즈를 공부한 사람이라서 그런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미숙과 연암의 잘 버무려진 웃음과 진지함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프롤로그가 끝나고 본격적인 연암과 동행하게되면서부터 고미숙의 흥미진진한 문체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도 열하일기를 읽지않는 사람이있다면 이상하다 생각하리만치 그녀의 필체는 독자를 사로잡는다. 책을 읽다가 할 일도 깜박 잊어버리는 수가 발생한다. 고미숙의 언어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언어는 본디 상상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해오지 않았던가?? 언어의 본질에 의심을 품게하는 작가...고미숙이다. 무엇보다도 고미숙은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의 글 안에서는 그런 따스함이 배어있다. 이 책을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고미숙과 연암의 유쾌한 웃음의 미학 때문 만은 아니다. 고미숙의 따듯함과 연암의 웃음이 잘 버무려진 탓이다. 아니, 고미숙이 바로 연암 박지원인 것이다. 고미숙안에는 연암이 들어와 있던게 분명하다. 이런걸 두고 빙의라던가? 고미숙이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연암의 빙의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누가뭐라고 한다해도 이런 나의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고미숙은 생철학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다. 연암의 사상과 고미숙의 이해가 함께 잘 버무려지면 이토록 흥미로우면서도 뜻깊은 인문학을 탄생 시킬 수 있단 말인가...연암이라는 한 사람의 위대함을 고미숙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연암이 그 얼마나 재기넘치며 사물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사람인지...연암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꼼짝없이 연암에 의하여 포착되어 연암의 사상과 결합하면 바로 통찰력으로 변모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그 어떤 자연이든...

 

연암에 대하여... 

연암에 대해서 잘 알고싶다면 위키백과에서 연암 빅지원을 치거나, 박지원을 치면 바로 알 수 있다. 위키백과는 빅지원이라는 인물의 백과 사전을 보여준다. 이보다 더 좋은 정보가 또 있을까? 그러나 백과사전의 설명으로는 연암을 알아낼 길이 없다. 절대로 말이다... 그러나 고미숙의 이 책과 함께라면 연암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아주 잘 알 수 있다. '연암' 이라는 인물의 역사적 기치뿐만 아니라 진정한 하나의 인간 박지원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를 통해서 보여주는 박지원의 우정론에서 출발하여, 사건과 사물로부터 확장해가는 사유의 무한함을 느낄 수 있다. 고미숙은 이런 박지원을 노마드라고 했다. 노마드는 구속을 원치 않는 존재이다. 한마리의 야생마와 같은 존재이다. 길들일 수도 없고 길 들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 노마드는 육체만 노마드인 것이 아니다. 사유의 방식도 노마드이다. 그러나 사건과 사물을 통하여 그는 정확하게 시대 통찰하고 있다. 그의 빛나는 웃음의 미학과 함께 말이다..    

자...옆의 사진을 보시라. 연암 빅지원의 초상이다. 우선 연암의 체구를 먼저 감상해보시길... 떡벌어진 어깨와 육중한 몸통,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팔뚝도 무척 굵어 보인다...체중이 상당히 나감직하다. 그러면 이제 연암의 얼굴을 살펴보시라. 체구를 감안한다면 결코 살이 많이찐 사람의 얼굴은 아니다. 체구와 비교했을 때 얼굴이 무척 작아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연암이 비만은 아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렇다. 연암은 무척 체력이 단단하고 강단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는 이제 연암의 눈매를 보시라. 첫 인상치고는 너무 매서운 눈초리이다. 옆으로 쭉-찢어진 눈이 더구나 위로 치켜뜨고 있다. 영락없는 장군깜이다. 당장에 불호령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연암의 눈매, 호걸 무인의 기질마지 엿보이는 연암의 초상화... 그리고 이제는 연암의 수염을 살펴볼 차례이다. 서릿발같은 연암의 수염들이 아주 힘차게 가슴까지 내리뻗어있다. 한 가닥 만져보기라도 할라치면 꿈틀 살아서 움직일 것만 같은 수염...강철로만든 가는 철사가 아래로 뻗어 내려온 느낌이다. 눈매와 수염은 연암의 강렬한 미이지를 전달하고도 남음이 있다. 김히 누구도 연암 앞에서는 머리를 꼿꼿히 들 수 없을 것만 같은 추상같은 기상이 엿보이는 초상화이다. 조선 시대의 초상화는 정밀하기로 유명하다. 흔히 빠르게 그린 단조로운 일반 초상화도 있지만, 연암의 그것은 확연히 구분되는 조선의 초상화적 특징을 잘 보여주며 극세사진을 보는 듯 하다. 연대가 오래되어 초기의 현장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겠으나 연암의 내외적 모습을 100% 보여주는 좋은 초상화라 생각한다. 연암의 초상화만 떠올려도 웃음이 실실 새어나오니 말이다... 더욱이 연암은 정말 배꼽 잡는 양반이다. 그걸 아직 모르고 있었다니...허참...

 고미숙은 이러한 연암의 초상화가 주는 이미지와 열하일기속에서 나타나는 연암의 웃음을 동시에 떠올리며 글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저 얼굴의 개그' 라니...언뜻 개그를 상상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얼굴인데 막상 저 얼굴로 개그를 하는 장면과 클로즈업을 시키면 그야말로 더없이 우스운 개그를 연출하게되는 것이다. 고미숙은 초상화에서 드러나는 연암의 이미지가 연암의 개그와 혼합되어 변화 무쌍한 표정들로 바뀌게되면 그야말로 개그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실제로 저 얼굴의 개그를 생각하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게된다.  

더 중요한 것은 연암의 개그가 개그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개그는 언제나 동반하는 깊은 통찰이 등장한다. 그의 통찰은 바로 사상가로서의 연암을 느낄 수 있게한다. 자...웃음과 통찰력, 그리고 그의 사상의 조합...고미숙에 우리에게 전해주려고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육체적인 노마드가 소유하고 있는 사상적 노마드를 고미숙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조선이 성리학의 나라였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과연 연암의 글과 통찰력, 그리고 그의 사상을 감지하게될 독자들이 느낄수 있는 충격...연암이라는 위대한 인물에대한 단순한 이해를 뒤어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이 반성하게하는 인간 연암을 그동안 너무나 몰랐다는 반성을 하게만든다.   

 

연암의 소중한 가르침

연암과 무딪히는 모든 것들은 살아서 움직인다. 고정된 표상의 말뚝에서 이탈하여 자유롭게 변이하면서 그 무엇의 경계에 서있는 연암, 그래서 고미숙은 그를 경계인이라 칭한다. 경계인이란 이방인 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하지만 넘나드는 의미를 함축하고있다. 고미숙은 후자를 뜻하고자 경계인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열하일기를 읽다보면 연암의 생각이 들려온다. 연암은 우리에게 계속 묻고, 다층사고를 하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표상의 말뚝이란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그 말뚝에 매어있는 한 우리는 그 이면에 숨어있는 것들의 성질을 볼수없게된다. 인접한 것들과의 유기적 관계를 인식할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의 가운데에 진리가 있고 도가 있다는 것이 연암의 생각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우리가 배워야 할 노마드 연암의 모습이다.  

노마드 연암은 매우 창의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억매이지 않기때문에 자유롭고 자유롭기에 창의적이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자유로운 탐구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자명한 이치를 고미숙은 연암을 통하여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고미숙이 의도했던 안했던 간에....연암은 사물이든 사건이든 이면에 숨겨있는 본질을 보라고 권한다. 본질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있는 상태에서는 구할 수 없는 가치이다. 미지의 수를 구하려면 올바른 태도를 필요로한다. 미리 정해진 고정값으로는 대입이 불가능하다. 유기적인 상황속의 X값을 어떻게 고정된 수치로만 대입을 할 것인가. 번번히 오답일 수 밖에....연암은 우리의 고정값을 벗어던지라고 말한다. 아니 고미숙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누가 말하고 있다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연암이 고미숙이고 고미숙이 연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연암

 연암과 같은 인물이 과연 우리의 선조였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우리의 고전 속에 살아 숨쉬는 선조들의 정신과 얼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모르고있었나보다. 고미숙과 연암의 유쾌한 한마당은 독자인 나를 사로잡았다. 연암을 고미숙이라는 사람이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고미숙이 아닌 다른 사람이 연망을 만났더라면...어쩔뻔한건가...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하는 것은 바로 연암과 고미숙이 서로 버무린 감동을 독자의 도가니 속에 담아두고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암에게서 배우고 우리의 귀중한 기치를 부여하는 순간 연암은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도 일조할 것이다. 우리의 선조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기르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보다 더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우리의 것으로 스스로의 자긍심을 길러주는 것보다 우리를 강인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의 정신 자산으로 우리의 정신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대는 비록 다르지만 현대의 우리들은 연암에게서 수많은 지혜와 재치 그리고 통찰력을 배울 수 있다. 더불어 그의 웃음의 던지는 개그는 덤인 것이다. 비록 웃음이 이 책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결코 그 웃음 뒤의 역설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웃음은 바로 허공으로 사라져 없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숨은 연암의 통찰력이야말로 우리가 꼭 붙들어두어야할 소중한 자산이다.

 고미숙이 만난 연암은 바로 "나- 이런 사람이야~",  고미숙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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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2-01-3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공님은 어떻게 읽으셨나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
흠뻑 빠지신 것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이 책 읽고 저도 박지원에겐 흠뻑 빠졌으니
고미숙님이 저를 잘 안내해주신거죠?

요 책 보면서 알게된 [비슷한 것은 가짜다]가 전 더 좋았어요.
정민선생님처럼 단정한 글을 더 좋아하나봐요. 제가...^^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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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마지로 7년 해놓고...그가 여러분과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 함께 하실분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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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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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사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OK 하실 분은 얼마나 될까... 나는 NO!

다수의 사람들이 대기업 삼성의 진실을 용기있게 파헤쳤다고 찬사를 보내마지 않는다. 어떤이는 글로벌 삼성의 수치라고 생각하고, 어떤이는 양심의 선언이라고도 말한다. 저자의 폭로를 그 무엇이라 생각해도 좋다. 삼성이 비리가 많았고 권력과 타협했으며 부패한 기업이라는 것도 좋다. 그 무엇이든 다 좋다. 그러나 저자에게 끈임없는 의문이 든다... 왜 그는 그렇게 추악하고 더러운 삼성의 거대 기업의 밥을 먹으며 삼성의 더러운 짖거리를 해주는 견공 노릇을 7년씩이나 해온 것일까... 

그 렇게 양심적이고 세상의 추악한 모습에는 치를 떨며 참을 수 없는 강직한 사람이었다면 왜 그는 7년씩이나 섬성이라는 주인이 주는 밥을 받아먹으며 그 주인에게 7년씩이나 견마지로(犬馬之勞)의 충성을 한 것일까... 그리고는, 그렇게 7년간의 충성을 바친 삼성을 되돌아 사납게 물어뜯는 이유는 무엇일까...그럴줄은 모르고 입사를 하고보니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 권력과 영합하여 세상의 온갖 더러운 짖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천인공노할 사실들을 온 세상에 알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일이 없어야겠다 생각하여 만 천하에 모든 것을 폭로하노라고 말한다면...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것이 진심이라면 그는 삼성에 7년씩이나 몸을 담았을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삼성의 비리 담당 고문으로 채용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7년씩이나 걸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토록 양심적이며 정의에 불타오르는 울분을 억누르지 못하는 인물이었다면...과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만 천하에 폭로하는 그의 양심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불의라는 것을 알았다면 애초에 발을 들여 놓지 말던가, 아니면 처음엔 몰랐지만 나중에라도 알았다면 그 순간 바로 양심 선언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녕 정의로운 일이며 양심이 있는 자가 할 일인 것이다. 마음껏 녹을 먹고나서 되돌아서서는 비리를 폭로하는 것은 배신 행위에 불과한 짖이다. 책에 의하면 삼성은 조직 폭력집단을 능가하는 그 무엇을 가진 더러운 기업이다. 그는 이를 잘 알고서도 삼성에서 녹을 먹었다. 조직 폭력 집단에서도 신뢰가 필요한 것이다. 배신은 어쩔 수 없이 배신일 뿐이다.  

양심선언과 배신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양심선언은 스스로의 가치관과 상대의 가치관이 다르다고 판단되고 상대방에 의하여 부당한 요구를 받을 때, 그에 항거하는 하나의 저항권이다. 그리고 그 집단에 일시적으로 동조하여 행동하지만 그것을 즐기지 않는 양심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온갖 수많은 것들을 즐겼다. 자신은 절대로 즐기지 않았노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삼성에 몸담고 있었던 7년은 그가 분명 즐거워했다는 것을 방증해주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그리고 자신이 팽된다고 느끼는 순간 배신감에 사로잡혀 폭로를 하게된 것이다. 배신이란 이럴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것이 어찌 양심 선언의 성립에 전제가 되어주는 상황이란 말인가... 

배신에대하여 똑같은 배신으로 앙갚음하는 것을 양심선언이라는 포장지로 둘둘말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 아니라면 이를 달리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개인적으로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은 믿을 수가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신뢰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하는 것이다. 상호 신뢰는 그것이 조직 폭력배끼리의 신뢰이든, 현자들 끼리의 신뢰이든 그 자체로 지켜야하는 것이다. 나쁜 짖을 함께 해놓고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만 빠져나가는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독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나와 나쁜 짖을 함께한 친구가 나를 배신하고 자기만 쏙 빠져나가면서 양심선언이라는 것을 해버린다고 생각해보시라...그런 친구가 있다면 독자들은 그 배신에 아마도 치를 떨고 말것이다... 

삼성은 마치 비리 덩어리이고 너무나 추악한 집단이며 자신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삼성의 더러운 모습을 만 천하에 고발한 용기있는 지성인으로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함께 온갖 나쁜 짖은 다해놓고 자신만 살아보겠다고 꽁무니를 뺀 인사이고 신뢰라고는 한푼어치도 없는 정말 믿음을 줄 수 없는 인사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할술 더떠서 그는 그 배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수익을 잘도 챙기고 있다. 배신의 책으로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정말 더 나쁜 배신이다. 흔히 배신자는 스스로 자책하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배신을 하기는 하지만 배신을 했다는 스스로의 자책에 괴로워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렇듯 돈벌이까지 나서다니...  

그는 삼성을 위해 스스로의 손에 그 더러운 피를 기꺼이 뭍힌 인물이다. 그것도 빤히 알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그 댓가로 삼성이라는 주인이 주는 달콤한 밥그릇을 챙기며 즐겼다. 7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말이다... 그리고는 폭로를 한 것이다... 

나는 결코 삼성이 잘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신뢰라고는 한 푼어치도 없는 인사의 배신이란 저런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저런 인사와 그 어떤 일을 기꺼이 함께 하고싶은 독자가 있다면 서평의 별를 마음껏 눌러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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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명에 관한 서책들을 읽으며 독자로서 받은 감동의 물결은 말로다 표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경상 좌도와 경상 우도를 각각 대표하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과 생각을 견주어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으며 사상을 이해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남명의 일생을 다루다시피한 남명학 총서들을 차례로 읽어가는 즐거움은 비단 즐거움 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일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에대한 지표로서의 역할을 올곳이 해주고 있다. 

아래의 책들은 남명학 연구의 서책들이므로 주로 남명을 중심으로 조명하고있지만 퇴계 이황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질수 있게하며 두 인물의 시대적 배경이 같았던 만큼 서로의 학문과 사상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계기를 마련해주기도한다. 남명과 퇴계 이황, 어느 한쪽만 알게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에 사로잡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어보인다. 그러므로 남명과 퇴계를 모두 공부하고 싶은 열망을 줄것이다. 

이 책은 남명의 일대기를 학문과 사상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다룬 책이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남명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남명을 이 한권으로 마음에 채우기에는 남명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남명은 거대하고 위대한 인물이었다. 자연스럽게 남명과 관련한 책들을 찾게마련이다. 적은 분량이지만 남명의 사상이 잘 녹아있다. 남명이 평생 소중하게 간직했던 2글자인 '경의'에 대한 설명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정말 감동스러워 여러번 읽게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님의 사상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그 기절을 발휘하였고 위기의 나리를 구하는데 앞장서게된다.  학문과 사상이 제자에게 끼치는 영향이 그 얼마나 지대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왼 쪽의 이 책은 남명의 생애와 학문, 남명학파에 관하여 여러 연구자료들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남명의 학문과 사상에 이미 실학적 사상이 담겨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남명의 독자적인 주체성과 당시 사림의 정신에 대한 좋은 글들을 만날 수 있다. 남명은 유자이지만 불교에 대해서도 탄력적인 인물이었다. 퇴계는 남명에게 노장의 병통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퇴계가 지적했던 남명의 사상적 병통은 무엇을 말함인지 그 진실을 알 수가 있다. 남명은 유, 불, 도를 넘나드는 사상가였음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남명은 왜 그런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자신 사상을 굽히지 않았을까. 그의 학문과 사상적 배경에는 오로지 백성을 위함이 있었다는 것을 그 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과연 퇴계는 어떠했을까...궁금해진다.    

 

이 두 책은 제목 그대로 조선 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남명에 관련한 기록들을 소개하고있다. 이는 철저히 남명의 측근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서 써내린 기록들이므로 보다 객관적인 프리즘을 통해 남명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된다. 남명의 상소문을 좀더 세부적으로 알 수있고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는 권력의 핵심및 백성들의 실태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상소를 통하여 그 누구보다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겼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과연 군신의 예와 의리란 무엇인가, 강직하고도 결단력있는 남명의 상소문은 우리에게 군신의 의리를 가르치고 있다. 남명은 수차례에 걸친 관직을 제부 받았지만 출사하지 않았다. 왜 남명은 출사하기를 거부했을까. 단지 사람으로서 출사를 거부하는 자만이 그 가치를 더욱 높여 차후에 활용하기 위함이던가? 그런 얄팍한 이기심에 의하여 출사를 거부했던 인물들도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남명은 결코 그러한 조무라기 선비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었다. 출사했다면 정승에 오르고도 남음이 있었겠지만 남명에게는 철학이 있었다. 바로 출처관이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는 남명의 출처관을 알고나면 비로소 수긍이 갈 것이다.   

     

같은 성리학자로 사서를 읽고 주자를 공부했지만 두사람의 사상은 완연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선비로서 추구하는 바에서는 공통점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학문의 목적이 서로다르며 그러므로 안과 밖으로 드러나는 사상이 확연하게 구별된다. 퇴계 이황은 퇴계학파을 아루었고 남명은 남명학파를 이루었다. 경상 좌우도의 두 거대한 학맥을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백년신교, 천리신교라하여 경외하고 존중했다. 두사람은 같은 해에 태어났으므로 한 시대를 고스런히 공유하게된다. 퇴계는 출사하지 않는 남명을 실득하기위해 대사성으로써 편지를 보내기도한다. 두사람은 사상이 달랐지만 상대방에대한 신뢰를 죽는 그날까지 저버리지 못했다. 현대의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하여 상대방을 비방하고 적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두사람은 상대방에게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하면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위의 서적들은 남명에 관련한 이야기들과 그의 인간관계를 잘 엿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남명이 당대의 최고 선비로서 알려지게된 것은 비단 조정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백성들과 무관의 유생들도 그의 이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나명과 관련지어 전해오고있다. 남명과 이야기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감지해낼 수 있는 만민들의 남명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있다. 매우 흥미로운 소재들이 많아 읽는 내내 독자를 즐겁게한다. 나아가 남명의 인간관계를 아주 잘 엿볼 수 있는 서적이 바로 남명의 인간관계, 남명과 그의 벗들, 수우당 최영경이다.  

남명은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절도가 있었으며 벗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역시 그의 학문에 바탕을 둔 것이라하겠다. 남명은 사회관 및 세상에대한 대응을 철저히 학문에서 바탕을 두고있다. 이처럼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일치하여 일생을 살다 간사람도 찾아보기 드물 것이다. 그러나 남명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경과 의를 인생의 방향으로 설정한 남명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그러기에 백성들의 삶에 그 누구보다 더 애착을 가지고 소를 올렸던 것이다. 수우당 최영경은 남명의 학문과 기절을 듣고 한양에서 진주로 찾아가 공부하기를 청한 인물이다. 과연 수우당 최영경은 남명의 학문을 배운 후에 어떻 인생을 살아갔을까... 

   남명의 적통을 이어받은 제자 중 정인홍이라는 인물이 있다. 곽재우과 마찬가지로 임진란을 맞이하여 거병하였고 국난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이바지 한 인물이다. 그 공로가 너무나 큰 나머지 광해군은 내암 정인홍에게 중책을 맞긴다. 정인홍의 학문은 그 어느 누구 못지않게 깊었으며 기절은 스승을 닮아 드높은 절의를 가진 인물이었다. 너무나도 강직하고 타협을 할줄 모르는 그의 성품은 오히려 스스로를 고립시키게되고 간신 이이첨에게 이용당하게된다. 결국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대역죄로 몰려 최후를 맞이한다. 정녕 정인홍과 같은 인물이 조정에 두어명만 더 있었더라도 조선은 지금의 조선과는 사뭇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불의를 좌시하지 않는 강직함, 왕권과 국력을 강화시켜 조선을 일으켜보겠다는 일념으로 출사했던 정인홍, 그는 오직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던진 열사요 기개의 정절이 꽃피운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 조선의 선비였다. 사욕을 채우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오로지 국가와 백성을 위해 한 몸을 바친 그는 정녕 백성의 스승이자 군신의 의리를 아는 선비였다. 스승 남명 조식과 더불어 진정한 선비의 사전적인 의미에 가장  합당한 인물이 바로 정인홍이었던 것이다.    

 

 

  

 

 

 

 위의 책들은 남명의 제자들을 좀더 상세하게 알수 있는 서책들이다.  

 

 

 

 

 

 

 

 위의 책들은 남명 조식의 선비사상을 잘 엿볼 수 있는 또다른 책들이다.  

 

 

 

 

 

 

 선생님의 문집과....

 

남명의 학문과 문학을 통하여 좀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남명의 제자들은 임진란이 일어나자 분연히 일어서 백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기위해 거병했다. 이는 스승님의 실천학문에 입각한 사상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퇴계학파와 더불어 조선의 학맥을 이어간 남명의 학문은 최근 많은 연구가 진행중인 듯하다. 그러나 아직 국내의 독자들은 남명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문묘에 배향된 18현 중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자격이 없는 인물도 있어보인다. 오히려 남명 선생님이야말로 그 어느 선비 못지않은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당파적인 잇속때문에 결국 배향되지 못했다. 치열한 당파전은 인조반정 이후에도 조선이 망하는 그날까지 지속되었고, 어쩌면 현재에 이르기까지 노론의 영향력이 진행중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있어보인다. 이는 절대로 국민의 탓이 아니다. 국민들로하여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하는 역사학자들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고 본다. 국민을 올바른 사관으로 이끌어야하고, 그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배울 수 있어야한다. 현재는 과거의 퇴적물이며, 그를 바탕으로 우리는 서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밝은 미래지향적 가치관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자신이 서있는 근간을 모르고서는 정체성의 상실은 물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마저 불명료하게한다. 온 국민이 우리의 역사를 재인식하고 제대로 파악하여 올바른 사관을 가지는 그 날이 오기를 학수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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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남명 조식 2 - 남명 전기 자료,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교양총서 14
최석기 엮음 / 경인문화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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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에는 퇴계과 같은 이는 있으되 남명과 같은 이는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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