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러니까 고상하게 말하자면, 싫증을 잘 느끼고,

평상시 나의 언어 습관대로 편하게 얘기하자면,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언젠가  어떤 책을 읽는데,

'심리학자들은 "아름다운 외모에서 생겨난 사랑의 유통기한은 1~2년"라고 입을 모은다. 길게 잡아 2년이 되면 배우자의 외모보다는 정신세계가 더 중요해져서 외모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라는 구절을 발견하고는, 2년이상을 견디어 내면 되는건가 하는 마리앙토와네트 같은 생각을 잠깐 했었다.

 

언젠가도 얘기했었지만, 나의 사랑의 선택하는 기준은 좀 독특하여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재력이나 신분도 아니었고,

아름다운 외모는 더더욱 아니었고,

그 사람의 글씨체였으니,

글씨체야말로 그사람의 모든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

구태여 따지자면, 외모와 정신세계 둘다라고 할 수 있겠다, ㅋ~.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언제였던가, 이명옥의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를 보면서도,

사랑도 공부가 필요하다 말에 공감을 할 수가 없어서 구시렁거리는 날 보고 사람들은 정말 사랑을 해보기나 한거냐면서 놀려댔었다.

난 그때, 사랑을 일종의 교통사고 같은것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가 없이,

무방비 상태에 있다가...맞이하게 되는 그런 것이어서,

본인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고, 어쩌지 못하겠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이명옥은 이일호의 글과 그림 '화염경'을 빗대어서 '사랑을 공부해야 한다'는 의견에 살을 입히고 확장시키고 발전시켜 나갔었다.

 

형체가 없는 영혼은 늘 자신의 몸을 그리워한다. 제몸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몸과 포개져야 한다. 사람은 영혼의 빈틈을 메우려는 몸부림이다. 영혼의 빈틈에는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고, 살과 살 사이에서 두려움과 환희가 대립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살과 살 사이의 빈틈을 없애려고 맹렬하게 요동친다. 하늘에서 백만 송이, 천만 송이, 억만 송이의 장엄한 꽃비를 내리게 한다. 내 몸이 네 몸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의 구별조차 할 수 없는, 남녀간의 사랑은 영겁회귀를 노래하는 화엄세계의 춤인 것이다.(이일호의 '화염경' 부분, 183~4쪽)

 

사랑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뜬금없이 웬 공부?'하면서 손사래부터 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공부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왜? 인격을 완성하고,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기적이며 축복임을 절감하는데 사랑 만한 스승은 없을 테니까.(185쪽)

 

그때는 숟가락으로 떠넣어 주어도 몰랐던 걸 좀 알겠는건,

이 책 '사랑의 역사'가 제대로 된 학습서여서 인지,

아니면 그 사이 내가 사랑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ㅋ~.

 

사랑을 만나게 되거나, 빠지게 되는 건 일종의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옛날에는 '사건의 우연성'에 초점을 맞추었었고,

그래서 공부 따위로 어쩔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사랑을 하다'라는 행위의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꾸준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이 사랑을 몸소 경험했느냐는 물음에는...'모르겠다~(,.)'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지만,

한동안 참 많이 아팠고 지금도 아프다.

머리를 옵션으로 들고 다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감성이 풍부하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마음 아플 일이 많았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마음'은 항상 죽 끓듯 끓고 있으니 관심을 가졌었지만,

육신 또는 육체라고 표현되는 몸은 쥐죽은듯 고요하니, 나를 이루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임을 간과했었다.

햇빛이 없으면 살 수 없으면서도 해가 떠있을땐 중요성을 잊고 지내듯이,

나의 거죽을 이루는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몸이 아파, 몸의 어느 특정 부위가 아파서,

그 부위가 도드라져서 나로부터 분리되는 느낌이 들고나서야,

그제서야 날 이루고 있는 부분 중,

항상 이렇게 저렇게 들끓고 있는 마음만이 아닌, 잠잠한 육체의 존재를 인식하고 돌아보게 되었고,

'그동안 날 잘 다독거리고 데리고 살아줘서 고맙다~'라며 무한 땡큐를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을 공부한다는 건 자신의 온몸으로 통과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아프다는 것과 닮았다.

주체가 자신이어야 하고,

비록 아프더라도 자신의 온몸으로 오롯이 통과하고 났을때,

한뼘쯤 성장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랑의 역사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그동안의 난,

이 나이에 창피한 얘기지만,

'남미영'의 <사랑의 역사> '프롤로그'를 빌리지 않더라도,

나또한 공부에 방해가 된다거나 엉덩이에 뿔난다는 생각에...사랑을 지레짐작하였고,

사랑은 위험한 것이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거나 사랑에 베여 피 흘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사랑 없는 삶 속으로 숨어 들지는 않았었나 돌이켜 보다가는,

책속의,

우리가 사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제대로 알지 못해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믿고, 사랑인 것은 사랑이라고 믿은 결과지요. 사랑은 탐구할 가치가 아주 높은 학문이며, 배우고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공부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ㆍㆍㆍㆍㆍㆍ

세상에는 사랑을 이야기한 수많은 소설이 있지만 사랑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탄이나 미화 혹은 한탄으로 균형감각을 잃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런 작품은 사랑을 보는 우리의 판단을 흐려놓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이야기 하되, 비판과 질문과 탐구의 시선을 잃지 않은 작품을 골랐습니다.(6~7쪽) 

라는 구절을 보면서 '그랬었다'로 이런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한가지 더,

피 흘리지 않기 위해 사랑없는 삶으로 숨어들었던 그 선택 때문에,

난 언젠가 사랑이라는 그 위험한 것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깨달음과 배움이 그렇듯 너무 늦은 때란 없다, ㅋ~.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소설들은 나에게 다양한 느낌을 주는데,

감히 내가 토를 달 수 있는 건 없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흔히 고전이라는 것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책이 담고 있는, 작가가 전달하려는, 작품세계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하여도,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서는 그게 무엇인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을뿐더러,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서른네 개의 작품 중에는 내가 읽었던 책들도 제법 되는데,

어느 것 하나 이 책에서 얘기하는 그런 의도로 읽었던것 같지는 않다.

작품이란 보는 시점이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관점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그저 편한 상대가 좋다.

서른네 개의 작품 중, 이런 나의 취향에 가장 부합한 책을 꼽으라면 '제인에어'다.

 그 후로 그는 미녀도 아니고 키도 작고 어린애처럼 왜소한 체격이지만 자기 앞에서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 아는 게 많고 자신의 생각을 짧은 문장 안에 담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아가씨, 자신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은 가정교사 제인을 좋아하게 된다.

 

  난 당신을 보면 이상한 기분을 느껴요. 내 왼쪽 늑골 밑의 어딘가에 실이 한 오라기 달려 있어서 그게 당신 작은 몸의 같은 곳에 똑같이 달려 있는 실과 풀리지 않게끔 단단히 묶여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ㆍㆍㆍㆍㆍㆍ. 그래서 당신이 먼 곳으로 떠나버리면 그 실이 끊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체내에 큰 출혈이 일어날 것 같소.(148쪽)

 

또 한가지,

이 책에 언급된 서른네 개의 작품들과 관련하여,

사랑을 공부하거나 배우는 건 책이나 독서를 통하여서가 아니고,

우리가 몸으로 경험한 것만이 그렇더라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배우는데 있어서, 머리가 아닌 몸의 법칙이 적용되는 몇 안되는 예이다.

하지만, 모든 배움이 그렇듯 너무 늦은 때란 없다, ㅋ~.

  

난 그동안 배움이랑 관련된 사람의 기억력은 머리와 연관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사랑을 배우는 것과 관련하여선 후각이나, 청각, 촉각, 내지는 공감각 등의 예민한 감각도 아니었고,

사랑을 하는 것과 관련된 몸이었다.

온몸 구석구석이었다.

난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사랑을 배웠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더라.

암튼 사람의 기억력은 머리와 연관된 것만은 아니라는걸 몸소 체험했다.

그러니, 사랑의 유통기한도 기억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싫증을 잘 느끼고,

평상시 언어 습관대로 얘기해서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깜박깜박한다는 것이다.

 

머리로 하는 기억은 몰라도,

몸으로 하는 기억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일테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줄 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다.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인지,

아니면 육체적 관계에만 탐닉하면 된다 인지~(,.)

 

근데, 정말 편안한 관계는...

힘들게 다다르게 되는 육체적 합일에서 느끼게 되는게 공감이나 소통에서 오는게 아니라,

그런 관계를 지나고 난 후에 느끼는 충만함 속의 텅빔, 가득참 속의 성김에서 불현듯 느껴지는 허허로움이 아닐런지, ㅋ~.

 

같이 엮일 얘기는 아니어서 망설였는데,

알라딘 서재의 달인이기도 하신 '된장' 님이 책을 내셨나보다.

매번 책을 받기만 하고 게을러 리뷰를 올리지 못해, 마음의 빚이 크다.

부디 판에, 쇄를 더할 수 있도록 대박나시길 빈다, ㅋ~.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
 최종규 글.사진 / 숲속여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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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11 11: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사랑이 참 좋은 거 같아요.
그게 꼭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의 사랑일 수도록 있지만 정신적인 서로의 소통도 사랑일 수 도 있고 말이에요.
ㅎㅎㅎㅎ 뭐 제가 남녀 간의 사랑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은 배워야 한다는 것은 많이 공감하는 글이에요.
아무런 준비 없이 다가가면 놀라는 것이 사랑인 것 같아요.
하~ 사랑이라 ㅋ

양철나무꾼 2014-07-17 18:19   좋아요 0 | URL
여기서 '밑줄 쫙'쳐야할 부분은 '자기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줄 안다'예요.
교주님,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랍니다.
자기 자신도, 타인도, ㅋㅋㅋ~.
 

소설 책 한권을 읽고 이렇게 두들겨 맞은 듯 머리가 멍해지고 온몸이 무거워져 보기는 처음이다.

그러고보니 책의 제목이 다분히 중의적이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방인영이 먹던 사과 음료도 후르츠 펀치라고 할 수 있고,

권투에서 상대를 훅 가게 만드는 한방도 펀치라고 할 수 있다.

방인영이 먹던 사과 음료는 나중에 모래의 남자가 먹게 되는 음료와도 묘하게 연결이 된다.

그냥 읽어버리고 말면 그뿐인 책이지만,

내 자신의 삶에 대입시켜 읽을라치면 모골이 송연해지는것이...

눈이 퀭해지는게 한뼘은 꺼지고 심장은 저만큼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맨 뒷장을 펼쳐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위로 갈수록 읽은게 많았지만 기억에 남지는 않고,

기억에 남는 것은 대부분 최근 것으로 박일문, 이만교, 김혜나의 '제리'가 있고,

전석순과 최민석은 구해놓고는 아직이다.

때문에 기억에 남는것이라곤 김혜나의 '제리'가 있겠는데,

난 '영 아니올시다'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다, 괜찮다...해도,

이 책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쳐뒀었는데,

좋다.

왜 엄지손가락이 두개밖에 없는지 한탄할 정도는 아니어도,

별 다섯개를 꽉꽉 눌러 채워줄 수는 있겠다.

 

아쉬운 점이라고 해야 할까, 무서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한방에 훅 가는 펀치에 비해, 얘기를 빚어낸 필채는 경쾌하다 못해 좀 가볍다.

개연성의 확보 면에서도 좀 아쉬운 생각이 드는데,

여고생에게, 친부모를 향하여 그렇게 맹렬한 살의를 갖게 만든 이유가 구체적이지가 않다.

실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어쩜 이 책에 나오는 방인영이 나처럼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라면 방인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아쉽고 무서웠다.

 

 

 

 

 

 

 

 

 

 펀치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책을 읽고 내가 제대로 된 펀치를 맞은 느낌을 받았던 것은,

뒷표지의 "독자들의 윤리관과 도덕관에, 그리고 삶에 남겨 둔 약간의 기대에 펀치를 날린다'는 문구와 난폭한 냉소와 당돌한 폭력으로 무장한  반성하지 않는 10대 소녀라는 표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윤리관과 도덕관이란 무얼 얘기하는 걸까?

과연 그 기준이란 무엇이며,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걸까?

반성하지 않는 10대라고 했는데, 무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 책은 요즘 세상을, 가치관의 부재,혼란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기존의 윤리관과 도덕관이 땅에 떨어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봐야 할 것은 어쩜 존속살해의 개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존속살해를 하고도 어쩜 반성조차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 아니라,

존속살해라는 건 어디까지나 소설적 장치일 뿐이고,

이를 통하여,

10대 소녀가 어떻게 자아를 찾고,

자존감을 회복하는지,

다시말해, 자립하는지의 과정을 엿보아야 하는것이 아닐까?

깊은 곳에 저장된 자신감이 옛날 옛적에는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 속의 직유가 깊이 침범해

내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 냈다.

성교육 시간에 본 낙태 동영상에서 태아를 긁어낸 것처럼,

아이가 기계를 피해 도망가듯 내 자존감도 달아나려 안달했다.

이젠 더이상 도피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자존감은 내 안에 있는 거지 사람들이 볼 수 있거나

그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란 걸,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깨달았다.(187쪽)

 

내가 이 책의 방인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쉽고 무서웠다고 한 것은,

우리집안이 이 책의 방인영의 그것만큼 하이 레벨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친인척의 관심은 이 책의 방인영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아들이 이 책의 방인영과 얼추 비슷한 또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본위로 생각하려 든다.

내가 어른들의 집요하고 과한 관심에 숨이 턱턱 막혔었으면서도,

지금도 그때의 잔재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우리 아들의 장래에 간섭하려 든다. 

아들이 원하는 직업을 향하여 한번도 신중히 생각해보지 않고,

그걸로는 밥 벌어먹고 살 수 없으니,

일단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간 후에 취미활동으로 하라고 한다.

밥을 빌어먹고 살아도 그건 네 운명이라며 쿨하게 넘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친구 중 하나는,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으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모범적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걸 이 친구에게 사주하는 과정에서 이 친구 또한 별천지를 경험하게 되었을테고,

근데 이 친구는 나와는 태생이 다른지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내색을 한다.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니 충분히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경우, 친구도 비슷한 부류이기 쉽다.

누구의 심장은 웬만한 열에는 끄떡 없는 강철로 만들어 졌고,

또 누구의 심장은 아주 작은 체온이나 온기로도 녹일 수 있는 얼음으로 만들어졌겠는가?

게다가, 그게 사람의 감정 따위,

시간이나 세월에 비례하여 쌓여가는 정이나 미움 따위의 문제였을 경우,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어쩔 것인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친구를 강신주에게 보내야 겠다.

착해지지 말란 말입니다.

나빠져도 괜찮단 말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강신주 말고 또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이 친구에게,

그동안 살던대로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지 말라고 사주라도 하였단 말인가?

매 순간순간을 살면 되는거다.

매 순간순간을 가열차게 살면 되는거다.

 

나는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 이 순간을 살 것이고,

울아들도, 이 친구도 그럴 수 있도록 자리를 넓게 펴주는 수밖에 없다.

옛날에 '넓은 맘과 깊은 속'의 뉘앙스를 몰라서 한참 고민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친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터득하였다.

넓은 맘과 깊은 속.

 

 

 

 

 

 

 

 

 강신주의 다상담 3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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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2 16:35   좋아요 0 | URL
책은 언제나 스스로 불러들이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이 책을 불러들인 삶을 즐겁게 사랑하면서
십이월 추위도 기쁘게 맞아들이는 하루 누리셔요.
펀치는 푸른기와집에서 지내는 분들도 좀 맞으면 좋겠네요~

양철나무꾼 2013-12-17 10:31   좋아요 0 | URL
전 오늘 아침 우리나라 젤 오래된 문학지라는 '현대문학' 사태랑 관련하여 맘이 영 꿀꿀합니다.
아무리 매서운 검열의 시대에도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덩여.
사전 검열의 형태인지,
알아서 기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씁~쓸~해서 더 춥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여~--;
 

친구가 잘 키워보라며 '로즈허브' 가지를 몇 개 꺾어 보내준게 시작이었다.

그 과정에서 '달팽이'도 같이 보내와, 경기를 일으킬 뻔 하기도 하였지만,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아직까지 똘똘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그 후로 내 스스로 화분을 하나씩 둘씩 장만하는 취미가 생겼다.

볕이 드는, 창가에 화분을 이렇게 저렇게 놓고보니, 작은 가든이 하나 생겼다.

이름 하여 'Seo's Garden'되시겠다.

 

 

 

근데,  꽃이 있으면 새가 날아온다고...

내가 있는 이곳은 4, 5층 건물의 2층인데,

2층과 3층의 층간 공간 어디에 새가 알을 낳아서 부화시켰는지,

얼마전부터 '짹짹'거리는데 아주 시끄럽다 못해 정신이 사납다.

가만히 듣고 앉아 있자면 새가 노래하거나 지저귀는 그런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새끼들이 배가 고파서 '짹짹'대는 듯한 것이,

마음을 수선스럽고 가난하게 만든다.

도대체 어디로 그 녀석들이 들어갔는지, 어디에 둥지를 틀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꽃이 있으면 새가 날오는 것은 순리이려니 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밖에...~--;.

 

쉬는 날이면 늘 그렇듯이,

어제도 이리저리 뒹굴거리면 옷으로 방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데...

아는 분이 볼일이 있어서 집앞에 오셨다며 불러내셨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느라라,

시장 한복판 음식을 늘어놓고 파는 좌판에 앉아 해물파전에 소주를 마셨다.

누군가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소리가 지글 지글 전 부치는 소리랑 비슷해서...

비오는날이면 전이 더 땡기기 마련이라고 하던데...

모퉁이 벌어진 비닐 천막으로 내다보는 비는,

추적추적도, 지글지글도 아닌 것이,

땅바닥에 수직으로 내려꽂히고 패대기치는 것이...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쪽 구석에 있는 텔레비젼에서 '치지직~'거리며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진행자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고,

'항공기'에 조예가 깊다는 옆의 사람은  모형 항공기를 손에 들고 이렇게 저렇게 재현해 내는데,

그 사람의 손이 흉물스러운 건지, 모형항공기가 흉물스러운 건지,

내 심사가 꼬여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와중 한쪽 귀퉁이에선 SNS-스마트폰에 텔레비젼이 밀렸다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얘기하느라 내리는 빗속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나랑 같이 낮술을 마시는 이는 불콰해진 얼굴로,

"미국은 말야, 대통령이 나와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말야...

 우리나라 아시아나 항공사는 뭐하는거야? 유감 표명 한마디도 없고 말야. 쉬쉬하느라 정신없구 말야~=3"

하고 투덜거렸다.

나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요.

  저렇게 큰 일이 있는데, 무게 잡고 재빨리 수습하고 유감표명하는게 오히려 얄궂게 보일 수도 있겠다아~."

라고 하며,

"사람 일은 한치 앞도 모르는거예요.

 저렇게 큰 항공기가, 안전하여 사고날 확률도 적은 그런 항공기가,

 게다가 기장들도 하나같이 베테랑이어서 만시간 비행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던데 말예요.

 우리도 운전 조심해야 해요.

 우리가 조심해도 고장이거나 상대방이 갑자기 밀어붙이면 어찌할 수 없는 거잖아요."

라고 하였다.

나랑 같이 술을 마시던 이는,

한치 앞을 알 수가 없는 것이 인생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 지금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대비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당신은 며칠 전에도 책을 라면상자로 여남은 상자 도서관에 기증하셨다고 하시길래,

'날 주지, 도서관에 기증은 왜 하냐?'

고 타박을 하였더니,

나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거고,

그리고 나이 상으로도...

이젠 펼치고 벌여 놓기만 할때가 아니라, 소박하게 정리하고 단출하게 할때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책들은 다 불교관계 서적이어서 내가 읽기 힘들거라신다.

나는 '읽을려고 노력하면 다 읽을 수가 있지, 못 읽는게 어디있냐'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고,

당신은 나의 책욕심이 과하다고 타박을 하셨다.

 

앞으로 읽을 책을 몇 권 준비해 두는 것은 모르지만,

다 읽지도 못하고,

읽을 깜냥도 안되면서,

책을 무조건 들이기만 하는 것은 병이라고 하셨다.

 

내가 필요없는것을 사거나 사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대구하였더니,

금이나 보석을 사재기하면 값이 올라 재테크나 되기라도 하지,

언제 품절이나 절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건 다 핑계이다,

도서관 가면 다 있고,

e-book형태로 데이터베이스도 다 갖춰져 있어서,

장차, 읽고 싶은 책이 없어서 못 읽는 일은 없을거라고 하신다.

충격적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실 요즘의 난 정도가 지나쳤다.

알고 자각하면서도 책을 사들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은,

그래...인정하자, 일종의 병이라면 병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관도서가 생겨나고,

자고 일어나면...알라딘에서 이런 저런 사은행사나 이벤트를 하고 있으니,

미욱한 중생 마음이 동하였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책이 무너져 날 덮치는 꿈을 꾸기도 하고,

무너진 책을 이리저리 교차로 놓아 견고하게 책탑을 쌓아올리는 꿈을 꾸는가 하면,

테트리스 맞추기처럼 한줄을 완벽하게 맞추면 블럭이 줄어드는 것처럼 책을 빈틈없이 잘 맞춰 쌓아올리면,

한줄이 싸악하고 없어지는 그런 꿈을 꾸기도 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내 독서습관을 점검하고 앞날을 계획해볼 요량으로,

'상반기 독서목록을 정리해 보아야지...'하고 앉았는데...

 

얼마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던 아주머니의 갑작스런 부고 소식이 들려온다.

며칠전 내가 싫어하는 팥죽도 사 드리느라고 같이 먹었고,

열무김치를 담궈 국수를 매콤하게 비벼 드셨다는 얘기도 들었었는데,

주말을 지나는 사이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는것이, 인생무상이다.

 

사치스럽게 살면 안되겠지만,

인생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아등바등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살 것도 아니지 싶다.

욕심을 줄이고,

하루 하루가 축복이니 감사하여야 겠고, 따위는 어쩜 차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순한 눈, 선한 맘이 되는 것은 내가 궁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 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겠다...는 말은 곧,

내가 제대로 나이먹어가고 있나, 와 동의어 일게다~--;

 

그럼에도 새로 들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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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08 19:54   좋아요 0 | URL
그런데 그분이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셨다면...
도서관에서는 그 책들 머잖아 버릴 거예요...
겹치는 책이라면, 또 대출실적 적은 책이라면,
자리 차지한다고 다 버리니까요.

가까운 헌책방에 가져다 주는 쪽이
제대로 좋은 책손한테 가도록 하는 일이 되지요. 우리 한국에서는...

2013-07-09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7-09 12:39   좋아요 0 | URL
창가 작은 가든이 예쁘네요.
비오는 날 떨어지는 비를 배경으로 보면 운치가 있을 것 같은데요.

책이 무너져서 깔리는 꿈이라니!
그거 정말 무서운데요.
요즘 저도 책 정리할 생각에 머리가 아파요.

허름한 좌판에 앉아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양철나무꾼 2013-07-09 22:56   좋아요 0 | URL
그 이후로 비가 내린 날이 많았는데, 그간 적조하였네요.
아직도 유효하죠?
비 내리면~?ㅋㅋㅋ
 

요즘 고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다.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라는게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옛것이라고 하여 고루하거나 진부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깊이있는 사고(思考)를 요하면서도 품격을 두루 갖춘 것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난 옛날에 도스토옙스키 옹의 책을 좀 읽다가 넘 어려워서,

고전은 그렇게 다 어렵고 재미없는건 줄 알았었다는~--;

물론 세월이 흐르고,

나도 생각이 여물고,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삶을 해석하는 관점 같은 것들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실은, '안나 까레니나'를 그냥 읽게 되지는 않았었다.

어쩌다가 읽게된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가 계기가 되어 고전문학에 feel이 제대로 꽂혀 주셨다.
'김의기'와 '안나 카레리나'를 읽으면서 느끼는건,

고전문학 중에는 중고등학생들이 필독서로 읽기엔 쉽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거다.

나처럼 반 평생을 산 사람의 눈으로 전후좌우 사정을 고려하여도 어림짐작하게 되는 것들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개중에는 번역까지 난해하여 우리말로 적혀있어도 무슨 뜻인지 못 알아먹겠는 것도 있더라~--;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로마서 12:1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1부/13쪽/1줄)

 

  

 

반면,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에 나온 이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내가 갚을 것이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누구의 번역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두 번역을 놓고 봤을 때, 같은 내용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난 고민을 하다가 '로마서 12장 19절'을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여러분이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이 나에게 있으니 내가 갚을 것이라.'"

라고 되어있다.

번역의 잘, 잘못을 떠나서 적어도 원수나 복수를 갚는 주체가 '주님'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는데,

작가의 의도가 그런 것인지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안나카레니나를 읽으면서 '톨스토이'가 시대를 넘나드는 거장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의 부단한 노력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대의 사조나 조류, 유행에 대해서 폭넓고 깊이있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뿐더러, 그걸 그의 작품 곳곳에 녹여냈는데...그것이 요즘의 삶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올드하거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였는지, 달아놓은 각주를 보면서 였는지...기억이 가물가물한데...러시아어가 재밌게 느껴져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키티는 안나의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산문적인 용모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러시아어에서 '시적'이라는 말은 '예술적인'이나 '아름다운'의 뜻을, '산문적'이라는 말은 '일상적이고 범속한'이나 '무미건조한'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1권/162쪽)

 

레빈이 이런 상상을 하는 부분도 재밌다.

그럼 손님이 물을 거야. 어떻게 이런 일에 그토록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까? 남편이 흥미를 느끼는 일이라면 저도 흥미를 느끼게 돼요.(212쪽)

단순히 레빈의 그것이라고 생각했을때는, 좀 권위주의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 상대방이 흥미를 느끼는 일에 같이 흥미를 느끼게 되는 그런 사랑이라면, 참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이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
 김의기 지음 / 다른세상 / 2013년 1월

 

 

 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겹쳐 읽은 책은, 이택광의 '마녀프레임'이다.

이 책은 이웃 a님의 서재에서 보고 혹하여 읽게 되었는데 '동종요법'이나 '고대의학'관련된 장르소설을 좀 읽어줬던 터라 그랬는지 어쨌는지, 책의 내용이 너무 가볍고 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암튼~--;

  마녀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존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히브리 신화에도 마녀는 분명히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마법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다. 즉 날씨나 출산 또는 의술처럼 생존과 밀접한 일들을 마녀가 관장했다.히브리어로 마녀는 므카세파인데 이 말은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특별히 '여성'이라는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마녀하면 떠오르는 섹스와 관련한 뉘앙스도 없다. 대체로 마법은 병을 고치거나 기후를 변하게 하는 요술이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대개 여신 숭배에서 기원했다.(28쪽)

 

마녀사냥이란 "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라는 문구가 번역 문제에서 의미적 혼란 때문에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발생한 것이었다.ㆍㆍㆍㆍㆍㆍ마법사(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는 말은 이렇게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반해서 마법을 사용한 경우에 처벌하라는 말이었다. 아이를 납치하거나 질병을 퍼뜨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다 오늘날로 보면, 의학과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진 존재들이 고대의 마법사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29쪽)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해 본 것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이라는 '틀'은 '예외'를 만들고 약자, 소수자, 희생양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과거에는 그것이 마녀였고, 여성이었고, 유태인이었고, 빨갱이였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무슬림이고 동성애자고 이주노동자의모습으로 현신하고 있는 것이란다.

 

프레임은 어찌보면 군중심리 같은 것이다.

교집합, 여집합, 합집합의 관계에 따라...마녀로 지목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마녀를 지목해야 하고,

이런 상호감시체계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이 '인터넷'이다.

 

 

 

 

 마녀 프레임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나영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그리고, 그런 군중심리를 가장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연예인이 아닐까 싶지만, 잘못 틀어지면 '타.진.요'같은 인터넷 카페가 생겨나기도 하고 눈덩이나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곳이 연예계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과 호기심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된 책, 1박2일 '나영석'PD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정함'이다. 집중과 편애는 한 끗 차이다. 공정함을 잃는 순간 오해가 만들어지고 팀워크는 깨진다. 누군가를 편애해서 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받을 기량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너도 저 기회가 탐이 난다면 최소한 패스를 받을 기량 정도는 스스로 터득해서 갖춰야 한다. 그것만 갖춰진다면 언제라도 너에게 공을 주겠다. 이런 식이다. 어쩌면 야박해 보일 수 있는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호동이 형이 철저하게 유지했던 그 기회에 대한 '공정함'때문이다. 멤버들은 누군가를 질투하기보단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빠른 길임을 알게 된다. 한 예로, <1박 2일>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운 사람은 이수근이다.(143~144쪽)

 

심각하지 않게 설렁설렁 넘겨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그런 책에서 다른 어떤 책에서 깨달을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예전에 한번 김C와 술을 먹다가 인간은 대체 몇 살쯤에 철이 드는가, 라는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잇다. 김C의 대답은 이랬다. 사람은 말이야.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 30대가 되면 마흔이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근데 너는 철들었니? 아니, 하고 나는 대답한다. ...결론은 이거야.87살쯤 먹고 죽기 직전에 드디어 깨닫는 거지. 아들딸 주변에 모아놓고 숨은 넘어가는데 창피해서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거지. '아아....철든다는 건 없구나.' 이렇게 말이야. 최종결 결론을 내리고 저세상으로.

  흠. 묘하게 설득력 있는 애기. 과연 그럴듯하다. 철이 든다는 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철이 든 척.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어른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실을 직시하고 저는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 김C는 가능하면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177~178쪽)

암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날씨가 변덕스럽다거나,

(4월에 눈이 내린게 51년만에 있는 일이란다, ㅋ~.)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하여 나 또한 변덕스럽게 책 한권 읽지않고...

어쨌거나 이 봄을 건너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뭔가를 읽기는 꾸준히 읽었는데 단지 기록으로 남길 시간이 없었을 뿐이고,

내가 열심히 읽는데도 불구하고 신간은 새록새록 나와주고 계신다는 거다.

'책.탑.타.파.'를 고려하여 당분간은 책을 구입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지만...불끈~!!!

이 책 꼭 한권만 구입한 뒤로 결심은 잠시 유보다~--;

 

 

 

 

 

 

 

 

 

 로스트 라이트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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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04-12 13:18   좋아요 1 | URL
제 경우엔 러시아작가들 중엔 도스토예프스키 한 사람만 편애하고 톨스토이 이 할배는 어려서부터 정이 안가서 유명하다는 소리만 풍문으로 들었어요. 전 당분간 해리보슈 형님하곤 결별. 해리 홀레 형님하고 새 교분을 맺는 중이어서 ㅎㅎ 이 캐릭터 너무 어썸합니다.

2013-04-1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9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는데, '토요일에 만난 사람' 코너에 내가 애정해 마지 않는 강신주가 나왔다.

요며칠 심심함이 극에 달했었다.

딱히 마음 둘데가 없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했으며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왜 사는 지를 모르겠는 채로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그렇게 그렇게 지냈었다.

강신주 식으로 얘기하면 타자와의 소통부제로 괴로워했고,

이지누 식으로 설명하자면 지독한 고독을 맛보는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강신주는 가뭄에 만난 단비였다.

출근 시간 부랴부랴 움직이느라 제대로 못들은 부분을 나중에 다시 듣기로 들었는데, 역시나 '강신주'였다.

다소 '센 발언'도 서슴치 않는 것이 솔직한 성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고,

철학이라는 어려운 얘기를 하면서도 '박사'랍시고 심각하게 무게잡고 얘기하지 않는 것도 좋았다.

전에 그가 알튀세르를 좋아하여 이메일 계정을 'contingency'로 한다는 소릴 들었었는데,

오늘도 contingency와 eventuality가 적절히 버무려진 그런 것이었다, 아흑~!

 

오늘 라디오를 듣고 그가 더 좋아 졌는데,

강연에서 말을 많이 하다 보니까 강연이 끝난 후엔 듣고 싶어져서...

보통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잠이 든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어서 였고,

첫 단행본이라는 <장자 :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을 풀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철학자' 강신주가 아니라 '인간' 강신주를 엿본것 같아서 였다.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려면 내가 변해야 되고 내가 변해야 타인과 소통하는 게 동시적인 사건이어가지고 우리가 대개 소통의 문제가 지가 안 변하면서 소통하려고 할 때 폭력이 돼요. 그러니까 타자와의 소통이라고만 얘기하면 이상하고 주체의 변형이라고 하면 지 혼자 수행하는 거고 그런데 왜냐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진짜 그 사람한테 마음을 열면 내 자신이 변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경험을 장자가 딱 포착을 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뭐라고 그러죠. 이거 어렵다, 개념이 너무 철학 개념이 한 4개 정도 들어가니까. 그래도 이걸로 하자, 이 제목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손석희'도 '강신주'도 '이지누'도 아닌, 내가 심심하다는 거다.

타인과 제대로 소통을 하려면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강신주'를 들으며,

'고독'을 수행처럼 지켜낸 '이지누'를 되풀이해 읽으면서,

심심함이 극에 달해 바닥을 쳤다는 얘기를 하려니,

왠지 라디오를 헛 듣고 책을 헛 읽은것 같지만서도...

모든 깨달음은 그렇게 오더라,

소통과 고독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으려면,

일단 소통과 고독을 몸과 마음으로 직접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관독일기 : 잠명편
 이지누 지음 / 호미 /

 2008년 11월

 

하지만 고독이란 것은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또 고독을 견디고 이겨 내며 굳건함을 지키는 것 또한 스스로 해야 할 일일 뿐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럿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 있는 반면 혼자 이루어야 하는 일도 허다히 많다.(64쪽)

그렇다고 내가 그동안 심심함이나 고독 따위는 전혀 몰랐었냐 하면...그건 또 아니다.

다만 그런 내게, 소통의 즐거움과 더불어 고독의 굳건함을 알려준 친구가 여행중이신 고로,

홀로 남겨진 나는 그전보다 더 심심함과 고독함을 뼈 아프게 느끼고 있고,

생각은 엉뚱한 곳으로 널을 뛰어 날 홀로 내버려 둔 친구를 향하여 '직무유기'라며 툴툴거리고만 있다.

 

잠箴은 자신의 허물을 예방하고 반성하며 결점을 보완하려고 짓는 글이고,

명銘은 스스로를 반추하며 새기는 글을 말한단다.

이 책 <관독 일기 :잠명편>에 나오는 조선 시대의 숱한 사상가와 문장가(장유, 신흠, 김집, 이규보, 안정복, 조익, 이식, 윤휴, 허균, 보각 선사, 원랑 대통, 낭혜 무염 등) 의 글들을 이지누의 날 선 해석으로 접했다.

정갈하고 깔끔한 상차림을 '내가' 주체가 되어 고루 누리기 위해,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노력하였고,

그 과정에서 극도의 심심함과 지독한 고독을 맛보았다.

 

이지누는 담담하게 읊조리듯 얘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고독이 자신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오는 것이란걸 느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그 고독을 견디고 이겨내는 굳건함을 지키는 것 또한 녹록지 않았다.

 

어찌보면, 이지누의 그것들은 너무 날이 선 듯하고 반듯하여 좀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푸른하늘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말이다.

좋아할 순 없어도 존경할 순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몸은 신身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일 테고, 거울은 오늘 실레마을에서 바라보며 윤대녕 형에게 마음 속으로 선물한 것과 같은 푸른 하늘일 것이다. 누구라서 그 하늘에 자신을 비추어 스스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생각보다 인정하는 마음이 더 깊어야 한다는 것이다. 깊이 인정하지 못하면 고치는 것 또한 겉일 뿐일 테니까 말이다.(87쪽)

게다가 그의 글이 반듯하고 사실적인 기술이라고 해서, 문체까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지는 않다.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기품을 잃지 않아, 미려하고 그리하여 시적 감상에 젖기에 충분하다.

그의 '서정'이 다른 사람의 그것과 다른 점은, 직접적인 경험과 체험에서 나온 사실의 기록이라서 한결 애틋하고 살가운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뭇잎 지는 소리는 빗소리와 달라서 자꾸만 두리번 거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빗소리는 대개 일정하여 오히려 그 소리가 그치면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지만 낙엽 지는 소리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순하게 떨어져 내린다고 해도 그는 일정하지가 않다. 또 마른 잎이 바위나 나무 등걸에 부딪치는 소리는 바람 부는 대로 들쑥날쑥하여 제멋대로이다. 더구나 무엇엔가 집중하고 있다가 그 소리를 들으면 마치 누군가가 숲 속을 걸어서 나에게로 오는 것 같은 환청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91쪽)

 

그러나 뒤늦게 깨달은 것은 인생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보다 나 스스로 이루어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면 인생이란 어차피 홀로 가는 길이다. 그 지독한 외로움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버리고 말지 싶다. 비록 고독할지라도 홀로 이루어야 할 것들을 참구하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은 절로 진정한 벗이 될 것이다.

서로 동시대의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기만 한 진정한 벗이란 한두 명일지라도 족한 것이다. 새로운 벗을 사귀거나 그것을 지키려는 것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혹독할지라도 단절의 고독을 만드는 것이다. 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날 위를 홀로 걷는 고독을 내 안에 지니지 않은 채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107쪽)

 

암튼 이지누를 읽으면서,

홀로 고독해지는 것을 지독히 두려워 하면서도 고독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이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엿보았는데, 이게 수행자의 그것이라서 멋지다기 보다는 왠지 처연해서 눈물이 났다.

게다가 친구가 잠시 잠깐 곁에 없는 것으로도 극도의 심심함과 지독한 고독으로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내가,

벗이 동시대의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지독한 고독을 겪어야 하는 걸까.

그걸 강신주는 본인이 더 힘들어봐야 된다는 한마디로 일축하고 있다.

자기가 힘들어봐야 그것보다 적게 힘든 사람들은, '저 사람이 어떤 걸로 힘들구나' 하는 것들을 대충 알게 되고,

그래야 자신이 힘들게 고민하고 살아왔던 걸 철학이나 문학이나 이런 걸 통해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된단다.

하지만, 위로를 한다든가 하진 않는단다.

때때로 보면 지나치게 어떤 힘든 것도 아닌데 오버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야단도 많이 쳐야 되고 욕도 좀 하고 그래야 돼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안아주세요. 이런 것도 있어요. 위로 받으려고 해요. 무슨 위로를 해요. 위로를 하긴, 다 힘든데 살기가.

그런데 말이다.

내 입장에서 보기에는 엄살을 부리는 사람도 그렇지만, 의연한 사람도 인간다운 매력이 없기는 매 한가지다.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세상에서...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이 곁에 있어서 더욱 고독하고 쓸쓸해지는 것만은 막아보자는 심사다.

 

책을 통틀어 이지누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부분은,「대대례大戴禮」의 '무왕천조'편에 나오는 무왕이 반우에 새겼다는 명과 관련해서 인듯하고, 나도 그랬다.

사람에게 빠지려면 차라리 물에 빠지겠다. 못에 빠지면 헤엄쳐 나올 수 있지만 사람에게 빠지면 구제할 수 없다(與其溺於人也 寧溺於淵 溺於淵 猶可遊也 溺淤人 不可求也).

글을 읽고 참으로 묘한 마음이 일어나 선뜻 책상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다. 그 울림이 무척이나 강했던 것이다. 오늘까지 읽은 글들이 어느 것 하나 허튼 생각으로 대할 것이 없지만 이토록 크게 마음을 흔든 것은 없었다. 글을 읽고 두어 시간이 지난 지금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나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무왕은 사람에게 빠지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무왕의 그 큰 생각에 빠져 버렸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

여전히 나는 진정되지 않았다.(292~293쪽)

하지만, 이지누는 금방 진정이 되지 않아 이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라고 하였는데,

나는 물보다는 사람에게 빠지는 쪽을 택하겠다.

물에 빠졌을 경우 헤엄쳐 나올 수 있는 것은 수영을 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고, 수영을 하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다.

사람에게 빠지면 쉽진 않겠지만,

내가 그(녀)를 닮고 배울 수도, 그(녀)가 나를 닮고 배울 수도 있을 것이고,

구할 수 없어도 물들어 닮고 배우다보면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여 나아지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게 강신주의 첫 단행본 <장자 :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에서 얘기한 '자신이 변해야 되고, 자신이 변해야 타인과 소통하는 게 동시적인 사건'이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암튼, 이지누가 너무 좋아 헤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던 차에 작은 맞춤법 오류를 발견하였다.

솔직히 다른 책이라면 눈도 꿈쩍하지 않고 넘어갈 일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그것이다 보니 작은 걸 갖고도 호들갑이다.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일테고,(아흑~, 어쩔거야. 인간적이어서 멋지잖아~--;)

나도 인간이니까 호ㆍ불호를 놓고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것이다, ㅋ~.

 

ㆍㆍㆍㆍㆍㆍ박병천 선생의 소리는 애끓는 한을 머금은 채 한 세상 넘어간 곳에서 뱉어 내는 것만 같았다. 비록 천대받던 무가이었을지라도 소리에 기품이 넘쳤고 몸짓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사람을 통해서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거늘 이제 또다시 그 소리를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사람의 일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사람이 내는 소리와 몸짓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절절하게 보여 주던 고인은 자신이 타인을 위해 부르던 소리를 들으며 북망산천 먼 길을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절로 처연한 마음이 생기고 슬픔이 일어났다. 다시 한번 애도의 마음을 펼쳐 놓은 채 잠이 들었다.(141쪽)

 

위 문단에서 빨간 글씨 '애끓다'의 용례를 보게 되면,

'애'가 끊어질 만큼 슬플 때는 '애끊다'를, '애'가 부글부글 끓을 만큼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울 때는 '애끓다'를 써야 한단다.

박병천 선생의 소리는 애(창자)가 끊어질 듯이 슬픈 소리였으니, '애끊다'가 적절하겠다. 설혹 부글부글 애가 끓는 통한의 그것으로 들렸다고 해도, 뒤에 나오는 '오로지 사람을 통해서만 끊어지지 않고' 와 '문맥 상 호응을 이룰 수 있도록 '애끊다'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또 한군데, 

ㆍㆍㆍㆍㆍㆍ"도에 가까워진 사람은 말수가 적어진다"고 했거늘 그 많은 말들을 밖으로 토해 내지 않고 어디에 새겨 두었을까. 그것은 마음 속일 것이다. 달아나지 못하고 갈라지지 않게 굳게 붙들어 둔 마음 말이다.

번연히 알고 있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러나 그 마음 다스리고 보존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이토록 마음에 대해 많은 경계의 글들이 넘쳐나는 것 아니겠는가. 날마다 돌아봐야겠다. 나의 마음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맹자」'고자 상 告子 上'에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놓친 그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學文之道 無他 求其放心而已矣)"라는 말이 나오지 않던가. 공부를 한다는 것,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본성을 깨닫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지 싶다.(243쪽)

 

 

학문(學問)-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

학문(學文)-≪서경≫, ≪시경≫, ≪주역≫, ≪춘추≫, 예(禮), 악(樂) 따위의 시서ㆍ육예를 배우는 일.

 

따라서, 저 상자 안의 빨간 글씨는 學問이 되어야 맞는다.

 

 

 

 

 

 

 

 

 

 

 

 

 

 

 

 

 

 [수입] Joni Mitchell - The Studio Albums 1968-1979

 [10CD 리마스터 디럭스 박스세트]
 조니 미첼 (Joni Mitchell) 노래 / Warner / 2012년 10월

 

 

Love is touching souls
Surely you touched mine
Cause part of you pours out of me
In these lines from time to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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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3-02-24 00:07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글들이 많아서, 다시 또 읽고 있어요. 전 타자와의 소통에 문제가 많은편이라, 제가 바뀌지 않고, 상대도 바꾸지 않고, 포기쪽을 선택해요.ㅜㅜ 사람한테 빠져서 미친듯이 살았던 20대도 생각나고, 주저리주저리,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나는 글이에요.....

다크아이즈 2013-02-24 15:29   좋아요 1 | URL
강신주 목소리를 들으셨군요. 타자와의 관계에서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 맞아요. 하지만 인간인지라 그게 맘대로 안 될때면 저도 꿈꾸는 섬님처럼 포기하는 쪽을 택하고 말아요. 사람 사귀기는 힘들지만 놓는 것은 한 순간이더군요. 강신주식 장자를 읽을 때의 그 바람결 냄새가 아직도 선하옵니다. 정통 장자를 학문하는 사람들이 마구 욕하는 그 상황까지 전 재밌게 생각했어요.
심심함을 가장하시는 나무꾼님 언제나 잘 계시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