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대하는 이들 중엔 정신이 잠깐씩 출타하여 호칭에 혼란을 느낄 연세의 분들이 있기는 하다.
얼마전의 일이었다.
우리 대장을 향하여,
"아저씨 밥 잘먹는 약 좀 없어?"
하는 소리와,
"아저씨라고 그러면 대답 안해줘."
하는 소리,
"내가 우리집 아저씨 물어봤지, 은제 의사 슨생한테 아저씨라고 그랬어?"
하는 소리가 오락가락하여 나가보니,
"그리고 으사 슨생도...나 만치로 나이들어봐. 그나마 아줌마라고 성별 안바꿔 부른걸 감사하게 될걸~?"
하시면서,
내심,
'호칭의 혼란쯤이야 나이듦의 현상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지,뭐 그리 유난이냐?'
말이 더하고 싶으신 표정으로 날 쳐다보신다.
나까지 구경을 나가자이번엔 현장에 계셨으나 귀가 먹통이어서 상황을 관망만 하던 올해 아흔의 쉰떡 할머니가 끼어든다.
"아줌니 올해 몇이여?"
"먹을멘치로 먹었어요."
쉰떡 할머니가 엉덩이를 떨고 일어나며 재촉을 하자, 마지못해,
"......여든이여."
라고 하며 창피한듯 '나이만 먹었어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데,
귀가 먹통인 쉰떡 할머니는 진짜 알아들으신 건지,
입모양을 보고 미루어 짐작을 하신건지,
용케 알아들으시고는...
"얼마 안 먹었구만, 아직 젊구만, 뭐~."
마냥 부러워 하시는 눈치다.
그동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하던 예순의 대장와 마흔 몇 살의 나는 명함도 못내밀어보고 깨갱거리 수밖에 없었다.
모든게 그런것 같다.
기준을 정해놓고 보면, 기준의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입장은 바뀔 수 있는거다.
'산사나무 아래'라는 로맨스소설을 읽어주셨다.
내 또래 다른 애들이 로맨스소설을 읽을 때 난 무협지를 읽었었다고는 벌써 여러 차례 얘기했었고,
그래서 그런지 난 로맨스 소설은 금세 심드렁해지는 경향이 있다.
갈등 구조가 단조로운 것이,
쉽게 말하면 밀고 당기는 '밀.당.'이 맘에 들지 않는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아닌 거지,
좋아도 좋아한다는 얘기도 제대로 못해서 이런 저런 오해가 생기고 하는 것,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좋아하는 사람을 놓치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이 나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답답하다.
섣불리, 경솔하게 마음을 함부로 드러낼 일도 아니지만,
한번 사는 인생이고,
그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사랑한다면,
마음을 표현하는데,
감정을 전달하는데,
인색해서도 안되겠다.
나는 상대방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게 아니므로,
표현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상대의 마음을 간파하는 묘한 기술이란 것이,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뿐인데,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게 아니고,
상대적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일 뿐인데,
촉이 좋아 짐작이 맞을 수도 있지만, 착각은 자유일 확률도 반이나 된다.
말 그대로 착각은 자유이고, 콩깍지가 씌어도 내눈에 씌는건데 웬 참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큐피트의 화살이 제대로 들어맞았을때 애기이고,
어긋났을때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 일례가 요번에 생긴 스토커의 법적 기준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암튼,
이 모두가 풋풋한 젊은 이들의 얘기니까 이토록 애절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ㅋ~.
지금 마흔을 훨씬 넘어선 내가,
처음 읽는 로맨스소설이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어서 징치우처럼 철떡서니 없이 굴면...
그땐 고도의 주책이 되는 거다.
분위기를 바꾸어,
난 이 '산사나무 아래'를 영화로 봤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언젠가 페이퍼로도 남겼다고 생각했었는데,
(부산에 가고싶다, 또는 버섯만두가 먹고 싶다.<--링크)
되짚어 보니, 같은 '장이모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산사나무 아래'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책을 보고나니, 영화도 필히 찾아보고 싶어졌다.
책 속의 '징치우'랑 나랑 정서적으로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 속에서 징치우가 본인은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때는 아주 괜찮은 외모로 묘사되고 있는데,
영화를 보고 맞춤한 캐스팅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져서이다.
하긴, 징치우랑 나랑 정서적으로 닮았다고 느낀 것도 이런 '잡념'에 빠져 있을 때 뿐이고,
난 배구도, 탁구도 실력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신통치 않고,
밥을 빌어서 죽을 쒀먹진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닥 살림도 야무지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피로와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징치우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손을 파고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모든 신경을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오랫동안 연습한 특기를 발휘하여 온몸을 짓누르는 아픔을 잊기로 했다. 바로 잡념에 빠지는 것이다. 생각에 깊이 빠지면 종종 영혼이 몸을 빠져 나가 다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 자신은 상상 속 인물이 되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징치우는 산사나무를 생각했다.(19쪽)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지금도 중국은 침술과 민간의학이 발달하여 아무곳에서나 구급약과 침, 뜸을 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때에도 제대로된 의학은 불모지에 가까웠고 민간요법과 대체의학이 발달하여,
그걸 널리 전파하였나 보다.
사람을 묘사하는데도 그래서 그런가...은연 중에 그런 식의 관찰과 묘사가 눈에 띈다.
웃을때 입은 웃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아 차가운 눈빛을 띠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사람은 웃을 때 코 양옆으로 주름이 잡히며 눈도 가늘어졌다. 꾸며낸 웃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웃음이며 조소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웃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만 사탕 먹으라는 법 있나요." 그가 다시 사탕을 내밀었다.(30쪽)
이 책이 나한테 놀라웠던 것은,
지금 마흔을 넘은 나보다도 훨씬 더 속 깊고 어른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의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날텐데, 대화를 가만 들어보고 있을라치면 파파할머니, 할아버지의 대화 같다.
"겸손이 사람을 키운다고, 이렇게 겸손한 걸 보니 금세 성장하겠는데요." 그가 멈춰 서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착한 아이는 거짓말하지 않아요. 아코디언 연주할 줄 알죠? 가져왔어요?"(31쪽)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그때는 사람의 교통편이나 운송 수단도 발달하지 않았을때여서,
특히 여행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하룻밤 제대로 묵을 수 있는 방조차 구하기 힘들었는데...
자신의 짐조차 자기가 짊어질 수 잇는 만큼이 고작이었을텐데,
아코디언을 가지고 왔냐고 묻는 게...참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낭만이라든가, 음악적 감수성 같은게 로맨스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는 하겠지만...
들고다니는 손풍금이라고 불리우는 아코디언의 소리는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처량 내지는 청승 맞다고 하는게 낫지 않겠나, ㅋ~.
그래도 로맨스소설답게 아슴아슴한 문장은 나와주신다.
참 바보같지만, 저런게 사랑일 것이다.
한참 나이 먹어선 부러운 마음에, '바보같다'는 소리나 하고...
어쩜, 되돌릴 아스라한 기억 따위조차 없는 내가 진정 '바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람이 떠난 뒤에야 사랑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갑자기 그 사람을 볼 수 없게 돼서야 바로소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징치우는 두려웠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심장을 그의 손에 건네줬고, 지금은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징치우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다면, 손 안의 심장을 한 번 꽉 쥐기만 하면 되고, 징치우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싶다면 그저 미소를 한 번 짓기만 하면 된다. 징치우는 자신이 왜 그렇게 경솔했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게 됐다니.(47쪽)
산사나무 아래
아이미 지음, 이원주 옮김 /
포레 / 2013년 4월
그리고 연결해서 읽은 책이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이다.
'산사나무 아래'를 읽으며 이 책이 생각난 것은 아마도, 두 소설에서 모두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변기가 언급되고 있어서 인것 같다.
그리고 '산사나무'의 그것보다는 다소 나이가 든 이'쑨위에'와 '허징후'의 사랑이 등장한다.
이들의 사랑은 나이가 다소 있다고 하여,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하여...사랑마저 애틋하지 말란 법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사상이나 이념이기 이전에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역자가 '신영복'이라는 사실은 예전엔 깨닫지 못했던 흥미유발의 원인이다.
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 호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호 젠후의 태도는 대단히 훌륭하지 않으냐. 하지만 사물을 모두 정반(正反) 양면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그에 대해서 지나쳤다, 이것이 한 면이다. 반면, 그에게 잘못이 있었던 것도 확실하다. 사상의 과격성, 감정의 불건정성. 그가 거기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환영해야 할 일이지. 우리 당은 일관해서, 과거의 잘못을 장래의 교훈으로 삼고 병을 고쳐서 사람을 구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으니까......."(106쪽)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어느 누구도, 그를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수가 없다.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그의 경우 영원히 말뿐이고 개념뿐인 것이다.
생활이란 것은 참으로 사람을 교육시키는 힘이 있다.(165쪽)
인생이란 것은 과거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과거에 상상했던 것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인생일 따름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고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바로 인생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삼켜버리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드높이 단련시키기도 한다. (367쪽)
페이퍼를 이쯤에서 마무리하려던 차에,
내가 좋다고 설레발을 치는 번역가 한분이 신변 잡기적인 책을 내셨다는 얘길 며칠 전에 들었었는데,
알라딘 신간 알리미가 '띵똥'거린다.
알라딘 신간 알리미, 땡큐다.
일빠로 구입해야쥐, ㅋ~.
하찌의 육아일기
이창식 지음 / 터치아트 /
201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