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Non  Tanto(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아니하게)?

 

아니, 한번쯤은 지나치거나 과하게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남들은 맨날 바라고 부러워하고 염원하는 일을...직업으로 택해 하게 된다면,

지나치거나 과하게 애정과 사랑을 듬뿍 쏟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기가 하고 싶어하던 것을 직업으로 택해, 하고 사는 사람은 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남들 다하는 일상사 근심 따위는 없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었다.

암튼 내가 엿보기에 그것이 그들의 천직인 것 같아 보였고,

그 일을 하는 그들이 마냥 행복해 보여서 부러웠던 사람들, 둘에 관한 책을 읽었다.

 

한명은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이고,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은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다.

사진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의 사진들의 주는 느낌은 남달랐다.

스케일부터 웅장하고 담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뭐랄까 사람의 영혼 따위를 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사진을 매개로 나에게 뭔가 계속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그런 느낌을 주었던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이미 고인故人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 책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임정은 옮김 / 다반 /

 2012년 2월

 


호시노 미치오는 일본에서 태어나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할 때까지는 사진과 관계없는 삶을 살다가,

어느날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서 출간된 알래스카 마을의 사진을 보고 마음을 빼앗겨, 전공도 작파하고 사진을 하게 된다.

동물 사진에만 국한되지 않고 폭넓은 관점으로 알래스카의 자연과 동물을 꾸준히 사진에 담아,

'National Geographic','Audubon'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며 일본 각 지역과 미국 카네기 자연역사박물관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1996년 8월 8일 취재차 방문한 시베리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수에서 불곰의 습격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맑고 투명한 글이 곁들여진 그의 사진은 세계 각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회와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둘 줄 아는 사회의 차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후자의 사상에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매력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생명의 기척이 한층 더 근원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40쪽)

어떻게 보면,

호시노 미치오가 추구한 건... 사진이 아니라,사진이라는 것으로 대표되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밥 샘이란 불가사의한 클링깃족 인디언을 만나고,

그와 함께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데,

그건 바꾸어 말하면'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는 법이라고 할 수 있겠고,

어쩜 그 '보이지 않는 것'에'영혼'도 포함되었던 게 아닐까?

" 다른 사람이 주는 음식을 절대 거절하면 한 돼."란 말을 나는 밥에게 듣고 왔다. 우리 입에 들어간 음식은 죽은 자와 우리 조상의 영혼이 먹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포틀래치에서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의 존재다. 영혼 재래를 믿는 클링깃족 사회에서는 이 시기에 태어난 친척 아기에게 죽은 자의 이름을 붙인다. 그러고 나서 "안녕하세요, 할머니!"라고 아기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죽은 자에게 인사를 한다. 포틀래치의 열기 속에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회에 대한 양수가 복받침을 느꼈다.ㆍㆍㆍㆍㆍㆍ자네들은 왜 '영혼' 이야기를 하지 않나? 나는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네. 자네들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런가 ㆍㆍㆍㆍㆍㆍ? 샤이언족의 땅을 나와 처음으로 알래스카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계속 기도했다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지나가는 땅에 잠든 영혼들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니 말일세ㆍㆍㆍㆍㆍㆍ."(97~99쪽)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무한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정지한 것 같은 숲은 물론 심지어 별조차도 같은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일만년을 여행한 별빛이 전해주는 우주의 깊이, 인간이 먼 옛날부터 간절하게 바란 피안의 세계, 무슨 목적을 위해, 어떤 미래를 향해 살아가느냐 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ㆍㆍㆍㆍㆍㆍ.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어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인간이 진정 알고 싶은 것을 알고 말았을 때, 과연 우리는 살아갈 힘을 손에 넣을까? 아니면 잃어버리게 될까? 알고픈 것을 알려는 마음이 인간을 지탱해 주지만, 알고자 하는 것을 결국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161쪽)

다시말해, 호시노 미치오가 그의 사진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한 것들이 물질문명이나 기술문명 따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신화와 전설 속에서 빛을 발하는 영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서...

충분한 공감과 소통에 실패한 듯 보이기도 할지 모르겠다.

숲을 산책하며 밥의 아내 도우가 해준 이야기를 되새겼다. 퀸샬럿 섬을 밥과 함께 여행했을 때 하이다족 여자가 밥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도우에게 질문한 것은 그래서였다. 자신의 내밀한 괴로움을 어떻게 만난 지 한 시간이 채 안 된 낯선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일까? 밥이 힐러(신앙에 근거한 치유 능력을 가진 자) 라서 그랬을까? 도우는 내 추측을 부정하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몇 번이나 있었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었어. 하지만 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기 힘으로 치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대신 힘들어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곁에 있어 줄 수는 있어. 밥한테 그런 힘이 있는 걸지도 모르지. 젊었을 적에 떠난 여행에서 밥은 몸소 지옥을 경험했어. 고통을 품은 사람들은 밥이 짊어진 깊은 상처를 저도 모르게 느끼는 게 아닐까? 그래서 봇물이 터져 콸콸 흘러나오듯 자기 상처를 털어놓게 되는 것 같기도 해.

 밥이 반세기 동안 방치되어 황폐해진 묘지를 십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청소한 다음부터 싯카 인디언 사회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눈뜨고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게 되었지.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

 문득 큰까마귀의 말에 따라 불덩어리를 가지러 간 젊은 매가 떠올랐다. 화상을 심하게 입으면서도 불꽃을 가져와 생명에게 영혼을 불어넣은 젊은 매의 모습을 나는 내심 밥 샘과 겹쳐보고 있었다. 이 세상은 큰 까마귀의 말에 따라 불덩어리를 가지러 간 무수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115쪽)

이 구절만으로도 충분히 내겐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힐러, 치유, 치유능력, 고통이나, 깊은 상처 따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육체적 상처나 고통, 그 치유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만은 모든 치유법을 아우르는 온갖 병에 듣는 처방 쯤 되는 것 같다.

 

위 얘기를 종합해 볼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힘들어하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자기가 같은 공감이나 소통 능력을 갖게 되는...

이를테면, 영혼에서 나는 찝찌름한 냄새가 같기 때문이 아닐까?

 

"자네한테 인디언의 말을 하나 가르쳐 주지ㆍㆍㆍㆍㆍㆍ."

"네ㆍㆍㆍㆍㆍㆍ."

"초우친."

"그건 무슨 뜻인가요?"

"사랑한다는 말이네."

나는 그 말을 잊지 않도록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208쪽)

 

다른 한명은 맨발의 디바 '이은미'였다.

 

 

 

 

 

 

 

 

 

 

 

 

 이은미, 맨발의 디바
 이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이은미의 라이브 공연을 몇번 본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가 뿜어내는 에네르기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힘을 얻어오곤 했었다.

그때마다...그녀에게서 그런 에네르기를 뿜어내게 하는 원천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걸 그녀는 prplogue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마흔이 되면서부터 화낼 일이 별로 없어졌다. 한때 '호랑이'라 불렸을 정도로 지난날의 나는 누가 보아도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다. 예전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 아니 강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런 태도가 내 음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던 것 같다.

 격정으로 어지러웠던 스무 살, 치열했던 서른 즈음을 지나 어느덧 마흔을 넘긴 나는 다행히 많이 강해졌다. 내 몸 위에 날카롭게 돋아 있던 가시가 사라지고, 보드라운 잎사귀가 새로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 음악 안에서, 또 음악하는 사람들에게서 얻은 기쁨 덕분에 조금씩 바뀐 것이다. 자연스레 내 음악은 좀 더 친절해졌고, 내 성격도 좀 더 원만해졌다.

 언젠가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불현듯 '아,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만 넘치던 어린 시절엔 그저 음악이 좋아서 무대에 섰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기만 했다. 세월이 흘러 한뼘 정도 성숙한 다음 바라본 무대는 그 의미가 사뭇 달랐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보다, 나를 한결같은 눈길로 바라봐주는 관객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것을. 내 음악을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기에 무대에 오를 수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자,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사무치게 느껴졌다. 이 행복을 지키고 싶었다.(4~5쪽)

좀 길지만 prplogue의 거의 전부를 옮겼다.

그 이유는 그녀와 내가 분야는 다를 뿐이지만, 처한 입장은 똑같기 때문이었다.

난 과연 '내 일을 사랑하나' 하는 생각을 해 볼때가 있다.

다분히 문과적 성향을 타고났다고 생각한 나였고,

아빠의 강요에 의해서 선택한 학과였지만, 도태하거나 낙오하는 건 더더욱 싫었었다.
'아,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가뭄에 콩 나듯 아주 뜨문뜨문이었다.

그러다가 한곳에서 6,7년 근무하게 되면서,

자칭 VVIP라 불리우고 나는 진상으라고도 부르는 그들이,

다른 의미로는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을때...

나는 내 직업 앞에서 다시 한번 겸허해 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음악이나 무대 자리에 사랑이라든가 하는 단어를 넣어보면 훨씬 쉽게 이해가 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얘기할 수 있지만, 실상 덜 능률적인건 사실이다.

내가 한결 같은 눈길로 바라보는 그 사람이, 나를 같은 눈길로 바라봐줄때 나는 행복에 겨운거다.

다시말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감정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이...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나에게 화답하여 줄때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사무치게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이겠다.

 

음악에 미쳐서, 무대에 서면 그같이 엄청난 에네르기를 뿜어냈던 이은미도...음악 말고 다른 것은 볼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을 견딜 수 없어 하게 되는데, 그 회의감을 burn out 현상이라고 한단다.(소진증후군이란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책에선 그걸 피아니스트 정원영을 빌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딱 하나만 생각하자. 너 음악 없이 살 수 있어?"

 오랜 슬럼프를 겪은 뒤라 다시 소리를 찾고 음악을 만들어가는 하루하루가 새로웠다는데,

깊고 어두운 우울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길 간절하게 바랐던 그녀에게 답을 준 것도 결국 음악이었으리라.

그렇게 해서 오랜 진통 끝에 탄생한 6집 음반의 제목은 '마논탄토 Ma Non  Tanto' 였단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그녀는 사랑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는 걸 절감했단다.

지나치게 감정에 빠진 나머지 그것이 그녀의 소리를 잠식하는 일이 없도록,

가슴은 뜨겁되 그녀의 음악이 대중의 감성을 너무 앞서 지나치지 않도록,

채우기보다 걷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단다.

 

음악은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즐기는 것이다.

ㆍㆍㆍㆍㆍㆍ

누군가 그에게 Tears in heaven

 물론 예술의 궁극적 목표는 교감이다. 예술가들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를 강렬히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할 수 없다.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나와 다르게 느낀다고 해서 "그건 틀렸어"라고 말할 수 없는 것, 그 누구도 정답을 강요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음악이고 예술인데 말이다.(73쪽)

 

 

 

ㆍㆍㆍㆍㆍㆍ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음악은 그저 듣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최고다. 바람 소리로 들리면 바람 소리로, 플루트 소리로 들리면 플루트 소리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예술은 조각내고 분석하고 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느끼면 스며드는 것이기에. (75쪽)

그건 예술뿐 아니라, 사람이나 사랑 따위의 궁긍적 목표와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호시노 미치오'와 '이은미' 둘 다 자기가 하고 싶은 방법으로 소통을 하고자 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통의 방법에 있어서 '호시노 미치오'는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사진이나 글은 신화나 전설을 소통시키는데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반면 '이은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소통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음악을 전달하는 매개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나 보다. 

나는 음악으로 내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들은 찬찬히 내 음악을 감상하고 즐기면서 소통하면 된다. 그 이상의 것이 왜 필요한가. 그들 곁에서, 그들의 다친 마음을 위로해주고 희망을 전해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음악이다.(85쪽)

 

좀 더 쉬운 길도 있는데 왜 굳이 힘든 길로 가라고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검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제자에게 스승이 한동안 앞마당만 쓸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검을 쓰기 전에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검을 다스릴 줄 아는 심성과 끊임없는 비질에도 지치지 않는 강한 체력과 인내심이기 때문이다.(90쪽)

그러고보면, 심성과 강한 체력과 인내심은 검이나 음악을 하겠다고 찾아온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공감과 소통의 전제 조건인 듯 하다.

 "사람들이 이걸 알까?"

  아주 미묘한 소리 하나 때문에 밤을 꼴딱 새우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는 원하는 사운드를 완성한 다음 만족스런 표정으로 서로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정말 우리가 이 작은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 밤을 새웠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나 할까 싶은 것이다.

 "아마 모를 거야. 그런데 몰라도 돼."

 굳이 말하지 않는 한 그 수고를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소리 하나 때문에 밤을 새웠고, 소리를 찾았고, 한 뼘 더 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럽다.

(126쪽)

이은미, 그녀가 부러웠던 건 바로 이 구절 때문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몰라도...

자신을 알아주는 한 사람이라도, 단 한사람만 있다면...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녀는 이 한사람 덕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러운, 그래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도 있는데...

나도 오늘부터 날 알아주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여야 할지,

아님 날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을때 보여줄 비장의 무기를 연마하여야 할지, 를 놓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에 눈을 껌벅이고 앉아 목하 고민 중이다~--;

 

 

 

 

 

 

 

 

 

이은미 - The Best Collection 2000~2011 [DIgipack]
이은미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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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4-1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글도 음악도!!

숲노래 2012-04-10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시노 미치오 님은
알래스카에서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수 있는 삶'을 누리는
자연 터전을 보았고,
이를 사진으로 담으며
글로도 엮자고 생각한 사람이에요.

프레이야 2012-04-1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과 글을 보고 알래스카를 꿈꿔요.
여행하는 나무!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 가보는 거랑 사는 거랑은 천지차이겠지만요.^^

이은미 콘서트는 딱 한 번 가봤어요. 맨발의 디바!
정말 대단했어요.
결혼 안 하길 잘했지라니.ㅎㅎ 그래도 자긴 결혼했으면서...
정말 우애로울 수 있는 반려자, 그게 최고의 관계일 것 같아요.
그곳엔 오늘 비가 추적추적 많이 내렸나봐요. ^^

잉크냄새 2012-04-1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라는 책을 통하여 그를 처음 알게 되었지요.

사진작가이지만 그의 글은 풍경보다는 그 풍경속에 존재하는 삶의 이야기에 더 촛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진 2012-04-11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를 보고 있어서 글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호시노가 추구한것은 사진이 아니라 아진으로 대표되는 어떤 것... 크, 좋네요 !

風流男兒 2012-04-1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역시 아껴가며 보고 있어요.
급하게 읽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그런가봐요.
 

 

 

           그 젖은 단풍나무

 

                                  - 이 면 우 - 

 

 아주 오래 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비가 내렸다
오솔길 초록빛 따라가다가 아, 그만 숨이 탁 막혔다
단풍나무 한 그루 돌연 앞을 막아섰던 때문이다 그

젖은 단풍나무, 여름숲에서 저 혼자 피처럼 붉은 잎
사귀, 나는 황급히 숲을 빠져나왔다 어디선가 물먹
은 포풀린을 쫘악 찢는 외마디 새울음, 젖은 숲 젖
은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살면서 문득 그 단풍나무를 떠올린다 저 혼자 붉
은 단풍나무처럼 누구라도 마지막엔 외롭게 견뎌내
야 한다 나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이 숲의 단풍나무
라 생각했다 그대 바로 지금, 느닷없이 고통의 전면
에 나서고 이윽고 여울 빠른 물살에 실린 붉은 잎사
귀,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누구라도 상처 하
나쯤은 꼭 지니고 가기 마련이다.
 
  멀리서 보면 초록숲이지만 그 속엔 단풍나무가
있고 때론 비 젖은 잎, 여윈 손처럼 내밀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말없음표 같은 비
후두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미는
낯선 손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아직 몰랐다 다만 여
름숲은 초록빛이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그 단풍나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고통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
 
  이렇게 살다가,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세운
두 무릎 사이에 피곤한 이마를 묻을 때 감은 눈 속
따듯이 밝히는 한 그루 젖은 단풍나무를 보리라.
  
  지금이 꼭 가을이 아니라도

 

요 며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는 대신, 엉덩이 곁에 발을 들어올리고 무릎을 곧추 세우는 꼴로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female 버젼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고,

누군가는 빨리 화장실로 가라고 몰아내려 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고난도의 자세를 구사할 수 있는 신체의 유연성에 감탄스러울 뿐이긴 하지만...

그런 자세를 하고 있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 자세를 허물어뜨려 원상복귀하기까지의 그 고통이 만만치 않은 걸 자꾸 까먹고 또 그 자세를 취하니 그게 문제다.

 

 

 

 

 

 

 

 

 

 

  만 가지 행동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저도 답답했어요. 선생님은 자꾸만 '두성을 쓰란 말이야.' 하시지만, 그걸 쓸 줄 알았으면 벌써 썼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그동안 내가 책에서 했던 말들도 저 멘토의 말과 같았구나 싶었다.

ㆍㆍㆍㆍㆍㆍ

훈습의 구체적 방법이나 내용은커녕 용어의 의미조차 밝히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사석에서 지인들이 "그런 얘기를 책으로 써 달라."고 했던 내용들은 훈습 과정의 개인적 경험이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실천한 행동들에 대한 내용이었다.(7쪽)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프로이트가 정의한 작업이 먼저 이행되고 나면 엡스타인이 정의한 상태가 뒤따라오는 것 같았다. 무의식 깊이 밀어 넣은 후 억압, 회피해 온 정서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의식 속으로 되찾아 오면 저절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다음으로 타인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왔다. 이어서 세상을 보는 틀이 바뀌고, 그 다음에야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졌다.(27쪽)

 

훈습 기간 중 분리되기만큼 어려운 것은 '경계지키기'였다. 예전 방식은 버렸어도, 어디서든 새롭게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73쪽)


'성실하게 살되,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65쪽)' 교과서대로만 살면 될 줄 알았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른이니까, 나의 마음 하나 쯤은 이미 내 마음대로 컨트롤 하고 산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누군가를 치료하고 사니까, 그게 감정이입을 하고 사는 거라고 착각을 했었나 보다.

요즘들어, 누군가를 치료하는 건 반대로 철저히 나를 배제하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누군가를 지켜보고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일이, 표현하지 못하고 염원하기만 하는 일이...

어쩜 '나'라는 나무의 겉줄기나 외관은 그대로 둔채, 보이지 않는 물관과 체관만을 그에게로 향하고 행하게 하는,

그런 서글프고 비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김형경님처럼, 남에게 내 삶의 나뭇가지 하나 기대지 않는 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모두에게 적당히 친절하며,

냉철하고 지적이며 시니컬한 미소를 구사할 줄 아는, 그렇지만 감정표현을 하는데 있어서 서툴지 않은 사람.

그런 완벽한 사람을 어른이라고 그려놓고 있었지만, 그건 단지 내가 그려놓은 이상향이었을 뿐...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었나 보다, 누군가의 말대로 채 자라지 못한 내면아이가 여전히 울고 있었나 보다.

 

이 책의 김형경같은 생각을 되풀이했다.
"누구 안 아픈 사람이 있겠어? 살아가면서 저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에 혼자 웅크려서 울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

누구나, 누구나, 누구나...다 아프고 다 괴로울 것이다.

그런 인정 만으로도 버거운데...누구나의 틈을 뚫고 '누군가'가 슬며시 자리한다.

'누구나'에서 '누군가'로 '분리'되기도 버거웠는데...이번엔 '경계지키기'를 요구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한다는데...

"중도는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 상태가 아니다. 흑과 백이 분리되기 이전, 너와 내가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중도라 한다."

라는 어려운 말을 인용하려다가,

쿨하게 내 식대로 가기로 했다.

 

'경계 - 금'은 넘으라고 있는거야~!'

 

 

 

 

 

 

  루시드 폴(Lucid Fall) 정규 4집 - 레미제라블
  루시드 폴 (Lucid Fall) 노래 / 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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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3-08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쪼옥~

하늘바람 2012-03-0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 끄떡끄덕.

2012-03-09 0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3-09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은 흐리고 차분한 아침, 루시드 폴의 목소리가 착착 감겨오네요.
잘 듣고 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참, 로뎅의 그 자세는 정말 ..ㅎㅎ

숲노래 2012-03-09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참말 안 아프며 살아갈 수 있어요..

꿈꾸는섬 2012-03-14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면우 시가 참 좋다고 내내 생각했어요.
 

오늘도 손석희의 시선 집중을 들으며 아침을 먹었다.

며칠째 이명박 정부 4년 평가 논객 토론이란 걸 하고 있는데, 오늘은 '사회ㆍ문화 분야'였다.

여간해선 주파수 고정인데,

아침에 만나면 밥맛이어서 주파수를 바꾸고 마는 몇 안되는 이 중 하나가 논객으로 나와 주파수를 바꾸려는데,

반대편 논객이 내가 흥미로워 하는 이였다.

(손석희 시선집중,이명박 정부 4년 평가 논객 토론 - '사회ㆍ문화 분야')

 

디지털 진화, SNS(social network service) 관련 그들의 토론을 듣고 있다 보니,

예전에 그가 100분 토론에 나와 영화 아바타 관련 혹평을 했던게 떠올랐다.

 

요즘 내주된 관심사가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그런 얘기만 당나귀 귀가 돼서 들리는 것이다, ㅋ~.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의 개념을 알고는 있었지만, 체화하지 못하여 와닿지 않았었는데...

서동욱의 '철학연습'을 읽으면서, 이 부분의 개념을 다시 잡았다고 해야 하나?

 

 

 

 

 

 

 

 

 

 철학 연습
 서동욱 지음 / 반비 /

 2011년 4월

 

 

사실 이 책은 구한지 좀 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 서동욱은 시인이기도 해서 그런지...

책의 처음 '책을 펴내며'를 읽다가 그만 그의 화려한 수사에 질려 길을 잃고 접어 던졌었다.

그런데, 처음만 참고 견디면... 이책의 제목'철학 연습'에 걸맞게,

현대철학이론들을 현대적 삶의 측면(돈, 사랑, 외모, 스마트폰 시대의 책읽기와 글쓰기 등)에서 바라보고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몰두의 이면에는 기원적인 것, 원본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간직할수 있다는 경계가 담겨 있을 것이다. ㆍㆍㆍㆍㆍㆍ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형이상학적 주제로만 보이는 기원의 신화는 실은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으며 우리삶을 위협할 수 있다. 원형적인 순수한 인종은 누구인가?그것은 백인이다. 원형적인 성, 보다 우월한 성은 부엇인가? 그것은 남성이다ㆍㆍㆍㆍㆍㆍ.그리고 이러한 기원이 누리는 영광의 배후엔 늘 기원보다 열등한 주변부가 영광의 그늘로 자리잡는다. 순수한 원천에 대한 향수와 자만심으로부터 등을 돌리면 거기엔, 순수하지 못한 것이 섞여든 우색인종들, 혼혈아들, 불법이민자들이 있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긍정은 바로 순수한 원형적 모범의 기준을 벗어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환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가짜 인생이여, 복제와 인용으로 가득 찬 삼이여!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그런데 '나의 가짜 인생'은 좀 어폐가 있는 표현 아닌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없는데,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나'라고 불리는 순수한 것이 있겠는가? 삶은 이렇게 오리지널리티를 지니는 '자아'가 사라진 익명성의 터널로 들어간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태를 '주체의 죽음'이라 부르기도 했다. 주체가 죽은 시대에, 이 모범도 원본도 없는 복제물들의 파편을 가지고서 어떤 삶을 꾸며나갈 수 있을까?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아바타와 RPG게임이라는 시뮬라크르의 놀라운 생산자들 속에서 표류하는 우리가 오늘날 던져야 하는 윤리적ㆍ정치적 물음이란 이런 것이다.(259쪽)

 

예를 들면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관련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인터넷에서의 나는 실제에서의 나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대담한 구석이 있다.

실제에서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지 못할 정도로 대담무쌍하다.

그건 인터넷 세상이 가상이어서가 아니라, 인터넷 세상이 주는 익명성과 모호함에 나를 함께 묻어버는것이다.

어느때보다 더 나의 본능에 가깝지만, 다만 일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나답지 못할 따름이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기준이 '일상에서의 나'가 될 수 있을까?

이 논리대로라면, 일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나는 진짜가 되는 것이고,

어느때보다 나의 본능에 가까운, 솔직하고 대담한 나는 가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디지털 진화에 따른 개인화, 개인적 고립 문제로 이어졌다.

흔히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들 얘기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 지혜로워져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장르소설을 읽다보면...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독선과 아집에 빠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랑제의 소설 '검은선'에도, 내가 좋아하는 프레드 바르가스의 '죽은자들여, 일어나라'에도 등장한다.

 

그리스인들에게 지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혜에 접근하기 위해선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생각함의 도구인 이성이 '일하도록'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은 모든 사람이 나누어 가진 '보편적인 것'이기때문에, 이성은 자신이 생각한 것이 정말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사람에게 깃든 이성에게 묻고 교정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성이 노동하는 방식으로서의 '대화'이다. 그러니 당연스럽게도 철학은 '의견'을 내놓고, 그 의견을 교정하기 위해 논쟁을 하고, 교정되어 보다 나은 의견을 다시 내놓는 그런 생각함의 과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은 '의견'을 지닌 자들의 전쟁터다. 옆집 아저씨의 인생 철학도, 사장님의 경영 철학도, 철학관을 운영하는 점쟁이의 신묘한 철학도 혼자 방 안에 있을 땐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몽상이며, 나아가 "이거 맞지? 이거 맞는 얘기잖아!"라고 다짜고짜 옆사람에게 강요될 때는 사람을 피곤케하는 독선과 폭력이 된다. 그러나 개인들이 지닌 그런 다양한 생각들이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성의 전쟁터에서 생존을 시험받게 될 때 그것들은 이미 철학의 반지를 손에 넣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22~23쪽)

 

결국 사회와 문화가 발달하고, 그리하여 디지털이 진화한다고 해도,

인간은 보편적 이성을 지닌 존재이고, 자신의 이성이라는 것이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알아보는 유일한 방식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이다.

그러니 개인의 그것이 몽상과 아집, 독선과 폭력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관계와 소통 뿐이다.

 

지인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좋은 뜻으로 한 얘기였는데, 지인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를 들먹여가며 정색을 했었다.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홍지웅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3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식으로, 자기가 해온 방식으로, 우물 속에 앉아 하늘 쳐다보는 (座井觀天)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 아닌가?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나조차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대응할 것이다ㆍㆍㆍㆍㆍㆍ그래서 사람마다 스타일이 생기는 거고ㆍㆍㆍㆍㆍㆍ언젠가 김인호 사장이 나더러 <홍선배는 굉장한 스타일리스트>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이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서 좋아 보인다는 것인지(아마도 김인호 사장은 내가 만들어 온 책들을 토대로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아니면 너무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어서, 혹은 그것을 너무 금과옥조처럼 고집하고 있어서 융통성이 없다는 말인지,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 Philippe Starck은 인터뷰때 기자가 <당신은 스탁 스타일Starck Style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정한 스타일이 있는데>라고 묻자, <나는 스타일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STYLE 대신 PHILOSOPHY라는 말로 불리고 싶다>고 한적이 있다!!(82쪽)

 

더불어 또 한가지, 서동욱의 '철학연습'을 통하여 생각을 달리한게 있는데...다음과 관련해서이다.

난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건 아니어도, '경우의수'정도로 생각하고 예방하고 미연에 방지하자는 주의였다.

그런데 서동욱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건, 의지와 행위뿐이라고 얘기한다.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를 볼게 아니라...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리라.

인간의 운명은 의지와 행위를 통해 개척되는 것이지,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얼굴이나 손금이 살아가면서 변한다고 하는, 우리가 종종 듣는 견해는 바로 인간은 정해진 운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해나간다는 이런 진리를 얼마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ㆍㆍㆍㆍㆍㆍ사정이 이렇다면, 즉 우리의 운명은 지금 해나가는 행위에 달려 있다면, 우리는 왜 덧없이 관상을 보고 점을 치면서, 정해진 우리의 운명을 엿보려고 하는 것일까? 바로 '공포' 때문이다.ㆍㆍㆍㆍㆍㆍ행위가 운명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에, 공포가 발목을 붙잡고서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지 않은지 찾아볼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이 정도는 이야기해야겠다. 결혼 못한 딸들이여, 엄마가 데려온 점쟁이가 네 남자의 관상이 나쁘다고 혼인을 반대하면 그르 헤겔이 제안하 행위 지침에 따라 대하라. 취직 못한 아들들이여,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혹시 관상이 나빠서였다면 그 회사를 향해 코웃음 쳐라. 한 인간의 운명은 머리 한 군데의 평평한 공터에 모여 있는 눈,코, 입, 귀의 생김새, 그리고 머리통의 모양이 겨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타고난 운명의 행운 때문에 황제가 되고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하며 좋은 짝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운명은 오로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그의 행위 속에서만 확인되 수 있다. (307쪽)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관련된 한대목이다.

철학은 접근 불가능한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쯤되면 찬찬히 공부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정신현상학'관련 '헤겔'이 흥미로워 찾아보니, '헤겔,아이티, 보편사'라는 책이 새로 나왔다.

 

 

 

 

 

 

 

 

 

  헤겔, 아이티, 보편사 
  수전 벅모스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철학에 'ㅊ'자도 모르면서...너무 철학 얘기만 머리가 아프지만,

분위기를 몰아서 오늘 일기도 철학적으로 한번 써봐야겠다.

 

어쩌면,

한참동안 말을 잃어버릴것 같다.
제길, 뭐 어떻게 침이라도 한방 맞아 봐야 할지

탕약이라도 한제 달여 먹어야 할지

모를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
얼굴엔 우울을 클리닝 집 꼬리표처럼 달고
어슬렁 어슬렁 정해진 길을 걷다가
훌쩍 2월이 가고
훌쩍 눈물도 좀 나고
훌쩍훌쩍 콧물도 좀 나고
하루 한번은 이곳에 들어와 앉았었지만,
아무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런 댓글도 떠오르지 않아
성질 나쁜 고양이처럼 손톱을 세워
마우스만 딸깍 딸깍 긁어대다

오늘은 손톱을 찰칵찰칵 깎아야지
오랫만에 손수건을 꺼내 자판을 닦아야지.
아무래도 난 좀 어리석은 것 같다.
그리 힘든 일도 아닌데,

왜 밍기적거리고 앉아 훌쩍이고만 있는건지.

생각해 보니까,

2월이 간다는 건 3월이 온다는 얘기다.
아니, 1월이 가버렸다는 얘긴가?
지난 날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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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지 마라...

세실 2012-02-2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양철나무꾼님.....
봄앓이가 시작된 걸까요?
저두 서동욱처럼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바뀌는것 이라고 믿고 싶어요.

하늘바람 2012-02-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셔요 님
제게 힘을 주셨었는데 저도님께 힘을 드려야 하는데
진짜 봄이 되어 황사 바람 불 즈음에 제가 향긋한 봄 바람 보내드릴게요
힘내셔요

2012-02-24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2-2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뮬라크르,,, 의미가 어려울뿐더러 발음도 어렵네요, 종종 '시뮬라르크'랑 혼동하기도 해요 ^^;;
지나간 날이 한순간에 지나가버려서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러한 시간의 경과가 있어야
좋은 일도 온답니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는 날씨 속에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2012-02-2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증 꼬리표를 얼굴에 달고 어슬렁거리고, 하루 한 번 이곳에 들어오지만 아무런 댓글도 써지지 않고, 눈물도 훌쩍, 콧물도 훌쩍, 2월이 갔고 3월이 오는데 1월을 생각하는, 양철님. 왠지 멋지셔요. (힘드신데 죄송..) 여튼 잠을 못 주무신단 말은 늘 걱정스럽습니다. 불면증의 고통을 아니까요..

페크pek0501 2012-02-25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 불면증? 으음~~ 생각이 많고 깊으신 분 같군요.
세상은 그냥 대충 살아야 편히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도 각도를 달리 해서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잖아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릴 주제는 못 되지만...ㅋㅋ 제 삶을 꾸려 가는 것도 힘들어 하는 주제에...ㅋ

아휴, 나나 잘 해, 라고 생각하며 물러납니다. ㅋ 어쨌든 양철나무꾼님 파이팅!!!!!!!!!!!!!!!

잘잘라 2012-02-2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며칠 푹 풀린 날씨 탓이기도 하고
이웃님들 서재에서 불어오는 봄기운 탓도 있고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예요.
(봄 타는 메리포핀스ㅡ.ㅡ;;)

아까 낮에 냉이를 한봉지 사다가 청양고추,풋고추,빨간고추 이렇게 세가지 고추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 먹었어요. 맛이 끝내줬어요.ㅋㅋ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저녁은 드셨나요? 말이나 글은 걸러도 밥은 거르지 마세욧!!!

같은하늘 2012-02-27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주 오랜시간 댓글들과 멀리 지낸걸요.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시간들...
아프지 말고 힘내세요~~

북극곰 2012-02-27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는 일이에요?
나무꾼님 힘내요! ^__^



2012-02-27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인 하나가 어깨가 아프다고 왔었다.

본인이 adhesive capsulitis라고 자가 진단하고 치료받겠다고 온 것을,

Impingement syndrome같으니 정형외과 가서 제대로 검사받고 수술하라고 보냈었다.

그 과정에서 좀 매정하게 보였었고 그게 서운했었나 보다.

이 지인은 수술 후 5일 만에 내게 치료를 받겠다고 나타나서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더니 급기야 나에게,

"나처럼 아파본 적 없죠?"

라고 하며 아프다고 툴툴거린다.

치료를 받겠다는 건지, 아픈걸 위로받겠다는 건지...언젠가 읽었던 '라인업'의 '존 코널리'가 생각났다.

 

 주인공인 사립탐정 찰리 파커는 분노와 복수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그가 받는 고통으로 규정되는 인물이다. 그는 직접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게 놔두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덕분에 그는 이기심이나 비탄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가 쫒는 부인과 아이의 살인범에게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중략)...나는 모든 것을 잃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간으로 남기 위해 애를 쓰는 남자에 대해 쓰고 싶었다. 최악의 악몽이 현실로 실현되면 거기에는 일종의 끔찍한 자유가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든 일단 그 정도로 끔찍한 일을 견뎌내면 다시는 어떤 것도 그를 그 정도로 아프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찰리 파커란 이름을 지어준 이유는 그와 같은 이름의 재즈 뮤지션인 찰리 파커의 별명인 버드에서 풍기는 비행, 자유, 영성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죽음에 얽매여 있는 그를 위로해주기 위해 그 이름을 주고 싶었다.

(라인업, 91쪽에서...)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장르소설 작가들 말고,

'라인업'을 통해서 유독 매력적으로 와닿았던 사람이 켄브루언과 존 코널리였는데...

켄 브루언은 막상 읽으니 '라인업'을 통해서 보여지던것 보다는 '아니올시다' 였고,

존 코널리는 '좀 심하다'고들 해서 여지껏 미루었었는데...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전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체해부도'식의 적출 묘사였는데, 그동안 단련될만큼 단련되어서 그런가 보다.

지극히 개인적이겠지만, 그동안 읽은 것 중 심한 것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검은선'과 '한니발'을 들겠다.

하지만, 이 둘은 꼭 읽어 볼만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모든 죽은 것
 존 코널리 지음, 강수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7월

 

 

 

암튼, '모든 죽은 것'은 작가의 필력과 역자의 번역력 모두 훌륭하여 재밌게 작품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리고 저 위에 밑줄 그은 '직접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고통받게 놔두려 하지 않는'....

소위,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불리우는 것만으로도 난 하트눈이 되어 황홀해하며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주인공 찰리 파커를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놓은것과 어느 부분부터인가 그에게 영매 끼를 불어넣어 전지전능하게 만들어 놓아...좀 심심하고 재미없어 질 수도 있겠다.

 

나만 해도 알토 색스포니스트 '찰리 파커'를 좋아했던 터라...

처음 읽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찰리 파커'도 너무 금방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알토 색스포니스트 '찰리 파커'와 이 책의 주인공 '찰리파커'의 다른 점은 흑인과 백인이라는 것뿐이다.

색스포니스트 찰리 파커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때부터 색스폰을 불기시작했고, 16살에 네살 위인 여자와 결혼을 한다.

마약, 알콜, 약물 중독에다가 여자관계까지 복잡했던 그는 음악적인 열정만 남달랐다.

그렇게 지난하게 살던 그는 딸마저 잃고 급기야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가, 서른다섯의 나이에 요절한다.

 

이 책의 주인공 '찰리 파커'는 경찰이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경찰 생활을 하던 그는, 아내와 다투고 술을 마시러 나간 사이 아내와 딸을 한꺼번에 잃게 된다.

알콜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술을 마셔서 아내와 다투게 된건지, 아내와 다투어서 술을 마시게 된 건지...의 전후 관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암튼 그는 술때문이라고 자책을 하고 술을 끊고 경찰을 그만 두고 사립탐정 비슷한 걸로 나선다.

서른 네살로 등장하지만 몸매 관리를 잘해 서른 둘로도 보인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는 그는,

눈동자는 청회색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만큼 투명하고, 얼굴은 약간 길쭉하며, 고통스런 기억 탓에 눈매가 깊고 입가에도 주름이 졌다. 수염을 깔끔하게 깎고 머리도 잘 다듬고 좋은 양복에 조명발까지도 도와준다면 꽤 봐줄 만했다. 조명만 괜찮으면 서른두 살이라고 우기도라도 그렇게 큰 비웃음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운전면허증에서 적힌 나이에서 겨우 두 살을 뺐을 뿐이지만, 나이가 들면 사소한 것들이 점점 중요해지는 법이다.(95쪽)

다른 경찰이나 탐정들처럼 터프하거나 강압적이지 않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간으로 살기 위해 애를 쓰는 한 남자일 뿐이다.

또한 현실이 아무리 암울하더라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전형화와 더불어, 쉽게 맥이 빠져버린 이유는...너무 금방 범인을 예측할 수 있어서 였다.

38쪽과 60쪽에서 단서가 이미 나타난다. 나만 그 실마리를 찾았나?

범행동기라는 것도 참 어이없다.
미국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나라여서,

개인의 이해관계가 먼저이고, 가정의 화목함 따위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줄 알았는데...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내에게는 그렇고 그럴 수 있는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좀 아이러니 컬 했다. 

"ㆍㆍㆍㆍㆍㆍ그는 위험을 즐기려고 한 것 같습니다. 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이를테면 '인상'을 남기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인상. 요란한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38쪽)

 

울리치는 광대처럼 보일지도 모르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광대처럼 굴 수도 있겟지만, 뉴올리언스에서 그를 아는 사람치고 그를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ㆍㆍㆍㆍㆍㆍ

 "넥타이 멋진데." 밝은 빨간색에 양과 천사 무늬가 있는 넥타이였다.

 "형이상학적인 넥타이지."울리치가 응수했다. "조지 허버트(1593-1633, 영국의 목사. 형이상학파 시인- 옮긴이) 넥타이라고나 할까."(60쪽)

 

내가 이 책에서 눈여겨 본 것은 찰리 파커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렇게 참혹한 방법으로 어이없이, 아내와 딸을 잃고도...그가 살아가는 이유, 

그건 다른 어느 친구들보다 앙헬과 루이스를 더 가깝게 느끼는 이유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쩜 내가 장르소설을 읽는 이유,

내가 요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걸음 다가간다는게 '가까이'가 되기 보다는, 밀어내는 제스츄어가 되기도 하는걸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찰리파커는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단다.

그렇다면 앙헬과 루이스가 찰리 파커를 가깝게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 또한 그들과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읽었다거나,

그들과 별다를게 없는, 자기네와 비슷한 부류라는걸 느꼈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대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러니 '나처럼 아파본 적 없죠?'하고 툴툴거렸던 이의 저변은 둘 중 하나로 해석하는 수밖에 없겠다.

오히려 자신이 마음을 제대로 열지 못한 겁쟁이이거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한 고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 이미 고통에 잠식 당했거나...

 

그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앙헬과 루이스, 이 두사람이 괜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세계에 아무런 환상을 품지 않았다. 그것의 일부였다가 또 그것과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주는 철학적인 해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킬러였다. 그런 환상을 품을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로 인해 앙헬도 그런 환상을 품을 수 없었다. 이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도 저만치 멀어졌고, 나는 내 힘으로 나 자신을 다시 세우고 새롭게 발 디딜 곳을 찾아야 했다.(125쪽)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기라도 한것처럼ㆍㆍㆍ-->이 부분은 보충 설명이 필요하겠다.

비늘이 떨어질려면 어류의 몸이 되어야지, 사람 눈에서 비늘이 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므로,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정도로 바뀌어야 하겠다.

하지만, 이마저도 성경을 열심히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뉘앙스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눈을 덮고 있던 콩깎지가 벗겨진 것처럼'...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형사시절에도 나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을 다룰 때면 늘 조심했고, 오만하거나 주제넘는 짓을 하지 않았다. 상대가 존중하는 것을 존중해줘야 했고, 침묵에서 신호를 읽어야 했다. 그들에겐 모든 것에 의미가 있었고, 폭력을 쓸 때처럼 의사소통의 방식도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었다.(149쪽)

 

모든 건 해석의 대상이며, 모든 건 암호이다. 상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얼핏 보기에 관련이 없는 정보들 속에서 의미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걸 숙지해야 한다. 이 노인네는 그런 암호를 읽어내며 평생을 살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고 여겼다. (152쪽)

 

 "악마라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악마가 뭔지는 나도 몰랐다. 비인간성으로 말미암아 한 개인이 어떤 식으로든 '경계를 넘어서'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게 악마인 건지, 인간의 특징,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어 있는 어떤 특징을 규정하는 통념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뭔가가 있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171쪽)

 

내가 공감과 소통을 좀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쯤되면 존 코널리 아니, 이 책에선 주인공 찰리 파커의 타인에 대한 '존중'이 예사롭지는 않다.

공감할 수 없으면 그게 바로 악이고, 악마인 셈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밀려왔고, 그러자 위에 통증이 느껴졌다.(191쪽)

이런 사실적인 문장도 겪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다.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내 얼굴의 표정을 읽고 어떤 낌새를 차린 것 같았다. 확실치는 않았고, 알아야 하거나 말하고 싶은 것 이상의 뭔가가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는 눈치를 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췄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멀고 험한 길을 걷다가 서로 위로를 건네는 두 명의 여행자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느꼈다.(253쪽)

'따로 또 같이'나, '제대로 된 공감' 따위의 말이 무색하게...

그저 잠시 말을 멈추고, 걸음을 멈추고, 서로에게 일부러 위로를 건네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때문에 살면서 비슷한 고통을 겪거나,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는게 쉬운 일도 아니지만...
만나고 스치는 것만으로도, 눈치를 준 것도 아닌데...

어떤 위로 같은,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느끼기도 하는가 보다.

내 손을 잡아주는 그녀의 손길에서, 묘하게 머뭇거리는 그 동작에서 전문가의 이해를 넘어서는 뭔가가 느껴졌다. 내 희망사항이었을까? 나는 그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첫 걸음, 다시 세상 속에 들어와 자리매김하려는 어설픈 첫 시도였다. 이틀동안 무수한 일을 겪은 다음이라, 잠시나마 뭔가 긍정적인 것을 만지고 싶었고,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선한 것들을 깨워 일으키고 싶었다.(325쪽)

 

 그녀는 말을 멈췄고, 나는 이 얘기가 지금껏 속으로만 되뇌어졌다는 걸 알았다. 이건 입밖으로 꺼내서 사람들과 주고받을 얘기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는 그런 얘기였다. 가끔은 자신만의 고통이 필요했다. 자신만의 것이라고 부를 아픔이 필요했다.ㆍㆍㆍㆍㆍㆍ

"그리고 나는 지금 이러고 있어요."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가끔은 근접하기도 해요. 그리고 가끔, 운이 좋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죠.가끔은."

(438쪽)

존 코널리의,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섬세함과 세심함이 좋았다.

 

345쪽 중간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등장한다.

58, 59쪽에선 마지막 봤을때보다 몸이 불었고, 접힌 목덜미 사이로 땀이 줄줄 흐르는 거구의 사내라고 했었는데...

아내와 딸을 잃은 지 넉달 후라는 설정이 나왔으니까 아무리 길어야 넉달만에 보는 친구이니,

마지막 봤을때보다 몸이 불었고 땀이 줄줄 흐르는 걸로 봐서 여름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체구의 남자로 여겨진다.

이때 황갈색 양복이라고 표현되던 것이 345쪽에선 황갈색 정장으로 바뀌어 있다.

일반적으로 양복과 정장의 혼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단벌신사로 표현되고 있어서 단어가 하나로 통일되면 좋을 것 같고,

양복은 남자가 입는 옷이고, 정장은 여자도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넉달만에 보고 요번 일로는 뜨문뜨문 전화통화를 하다가 본 것일 것이다.
이번 사건이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진 것이 아니니까,

밑의 '처음 만났을때 이후로'는 '지난 번 만났을때 이후로' 정도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 만난건 친구 사이이니 최소한 몇 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할 수도 있을테고,

몇 년이면 얼굴 살이 빠지거나 찐게 이슈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울리치를 58, 59쪽에선 황갈색 양복을 입은 거구의 사내라고 표현했는데,

345쪽에선 '젊었을 때는 예뻤고, ㆍㆍㆍㆍㆍㆍ서른 살의 여자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앞뒤로 번역이 너무 좋아 번역 상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고, 뭔가 착오가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이 부분 때문에 몰입도가 떨어지고...화~악 깨는 건 있다.

처음 만났을때 이후로 그가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살도 많이 빠졌고,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광대뼈가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일 때도 있었다. 문득 몸이 아픈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얘기를 하고 싶으면 울리치가 먼저 말을 꺼낼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을 먹는 그를 보는데 제니 오바흐의 시체 옆에서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젊었을 때는 예뻤고, 규칙적인 운동과 신중한 식이요법으로 몸매를 유지했으며,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데도 상당히 화려한 생활을 영위했던 서른 살의 여자였다.(345쪽)

 

그런 생각을 했다.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어야 타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하여 오지랖 넓게 채워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을 욕심내어서도 안 된다.

잔에 찬 다음은 넘치게 마련이다.

두개 다 갖고 싶다고 양손에 쥐고 있다가 넘어지면 코가 깨지듯이 말이다.

 

"나처럼 아파본 적 없죠?" 라고 묻는 이에게,

어떻게 해줄 수 없어서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으면 손 떨고 수긍하는 법도 배워야 하리라.

같이 나누고 공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고,

잔혹하고 고통스러워서 내 소중한 사람은 공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일도 생길 수 있으리라.

 

색스포니스트 찰리파커는 음악에 대한 넘치는사랑으로, 음을 잘게 나누고 쪼개는 비밥을 창시했다.

음악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했지만 어찌되었건 정통에선 변형이다.

음을 그대로 지켜 연주하는 고전이나 정통은 너무 소박하고 수수하다고 하여 밀려날지도 모르겠다.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전이나 정통의 입장에서 보면 음을 조금이라도 왜곡 또는 변형시킨 경우,

찰리 파커의, 음악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라고 하여 눈감아 버리기엔, 가슴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수식이 화려한 넘치는 사랑과 공감을 할 것이냐,

소박하고 수수한 사랑과 공감을 할 것이냐, 하는 취향에 관한 문제일뿐...

모두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도 없고, 모두에게 이해되어지고 사랑받을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인식이 그리 슬프거나 처연하지는 않다.

 

이제, 존 코널리의 '무언의 속삭임'으로 달려 볼까나?

 

 

 

 

 

 

 무언의 속삭임
 존 코널리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12월

 

 

 

 

 

 

 

 

 

 

 

 

 

페이퍼의 내용이랑 전혀 상관없는 이 곡이 듣고 싶은 걸 보니, 망령 또는 드라큘라의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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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2-1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밀려왔고, 그러자 위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픔과 공감이 듬뿍 묻어나는 스타일이군요.
이 글도 그렇구요.

gimssim 2012-02-15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면 마음이 약해지요. 그래서 어딘가 투정부리고 상대는 그것을 받아주어야한다고 생각하죠.
왜? 나는 아프니가.
그러나 몸이 아픈 것만큼 철저하게 개별적인 게 어디 있을까요?
마치 죽음이 그러한 것처럼.

알케 2012-02-1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널리 문장은 묵직하게 '가오'를 잡다가 툭 던지는 유머가..ㅋㅋ "장의사를 고소하기 위해 무덤을 박차고 나온 시체처럼"이란 형용사절에서 빵 터져서 ㅎ 또 루이스와 앙헬커플의 로코식 대사치기도 재밌고..근데 근래 나온 3권 <무언의 속삭임>은 쫌...기대이하였어요..

마녀고양이 2012-02-15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실이 그리 슬프거나 처연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 한다는 사실이...

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잠시, 난 왜 그게 그리 안 되는지 몰라.
글이 쥐어짜면 물기 떨어지겠다,,, 좀 쉬어야 할텐데, 걱정하는 중~ ㅠ

2012-02-15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2-15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에 양철나무꾼님이 힘들 게 읽었다는 게 그런 거였군요! 그러면 나는 그것만 모아서..( '')
저는 뭔가 자극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ㅋㅋㅋ

페크pek0501 2012-02-1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는 위험을 즐기려고 한 것 같습니다. 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이를테면 '인상'을 남기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인상. 요란한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38쪽)

- 저도 댓글을 쓸 때 뭔가 인상을 남기고 싶어져요. 요란한 넥타이를 매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처럼요. ㅋ

 

길이 끝난 그 자리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가다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툭툭 먼지를 떨고 일어나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명한 진리이지만 일상에서 깨닫는 건 쉽지 않았다.

다친 건 그럭저럭이다.
머리의 스테이플러는 열흘에서 하루 빠지는 지난 수요일날 뺐고,
가슴이 결리고 발목이 아프지만, 지속되는게 아니라...한번씩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는 통증이라서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다만 매일 밤 꿈에서 자전거에서 떨어지던 그 장면을 재현하다가 깜짝깜짝 놀라서 깨곤 하는데,
성장기 청소년이라면 키 크는 꿈이라고 좋아하기라도 한다지만...
머리로는 잊어 버리자 하면서도 몸이 잊지 못하고 있다가 밤마다 악몽으로 재현해 내고 있으니, 큰 일은 큰 일이었다.

그제 느긋하게 아점을 먹고나자, 남편이 자전거를 갖고 산책을 나가자고 하였다. 
자전거를 다시 탄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었고,
차를 몰고 가다가 만나게 되는 자전거도 무서워서 운전대를 놓은지도 2주째였다.
(내가 출퇴근하는 길 양 옆엔 자전거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남편을 누구보다 믿기는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운전은 남편으로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는 소리를 주워 들었었고,
자전거도 그 연장선 상에서 생각했었다.

마지 못해 궁시렁대며,
집에서 입던 핫팬츠 대신 대충 무릎 나온 청바지로 갈아입고 나갔더니...
남편이 의외의 말을 건넨다.
"그래, 자전거 탈 때는 편한 복장이 최고야.
 복장이 편해져야 마음도 편안해 지는 거야.
 집 앞 수퍼 갈 때 정장에 뾰족 구두 신고 가지 않듯,
 아직 자전거 제대로 타지도 못하면서 전문가 복장, 그거 너무 오버하는 거야..."
그리고 집앞 평지에서는 잘 타고 '쓔욱~'가던 자전거를 내리막길 조금 전에 멈춰서 끌고 내려간다.
"세상 사는 것도 그렇지만, 자전거 타는 것도 마찬가지야.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급경사가 나오면 폼잡지 말고 내려서 걸어가면 그만이야.
 이런 급경사는 아무리 자전거를 잘타는 사람도 부담스러운 경사야.
 하지만 멋지게 복장 멋지게 갖춰입고 프로 입네 하면서, 내려서 자전거 모시고 가려면 좀 그렇지? 
 그러니까 무릎 나온 청바지를 입고 수십번, 수백번 왔다갔다한 다음...자신 있어지면 그때 복장 갖춰입고 타란 말야."

남편 말대로 가파른 경사라서 자전거를 모시고 내려가기도 버거웠다.
세번 경사길을 자전거를 모시고 오르내리는 생쇼를 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나 혼자서는 자전거를 타고서든 모시고서든 그 경사길을 오르내리는 것은 버겁다 였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의외로 홀가분했다.
어제, 그제 밤엔 자전거 타는 장면을 재현하는 꿈도 꾸지 않고 달게 잤다.

지인의 원포인트 레슨을 통하여, 자전거가 무조건 간다는 걸 배웠다면,
남편을 통하여, 자전거를 타고 가기 힘든 길은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는 걸 배운 셈이다.

퍼질러 앉지 않는다면,
넘어진 자리에 잠시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쉬어가도 좋다는 것도,
그래야 먼지를 떨고 추스렀을때 방향이나 길을 잃지 않고 어떻게든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이영광'의 이 시 <고사목 지대>를 읽었다.
'이영광'은 문태준에 의하면 '죽음을 흠향하는 시인'이라 불리울 정도로 죽음을 품고 있는 시인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가 품고 있는 죽음의 성질이 이 시 <고사목지대>에서 좀 바뀐걸 엿볼 수 있다.
그가 품고 있는 죽음은 삶의 저변으로서의 죽음, 삶의 밑거름으로서의 죽음으로 어느새 바뀌어 있다.

          고사목지대
                       
- 이 영 광 -


죽은 나무들이 씽씽한 바람소릴 낸다
죽음이란 다시 죽지 않는 것,
서서 쓰러진 그 자리에서 새로이
수십년씩 살아가고 있었다

사라져가고
숨져가며
나아가고 있었다

유지를 받들듯,
산 나무들이 죽은 나무들을 인정해주고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는 생사의 양상이 바뀌어
고사목들의 희고 검은 자태가 대세를 이룬 가운데
슬하엔 키 작은 산 나무들 젖먹이처럼 맺혔으니,

죽은 나무들도 산 나무들을 깊이
인정해주고 있었다

나는 높고 외로운 곳이라면 경배해야 할 뜨거운 이유가 있지만
구름 낀 생사의 혼합림에는
지워 없앨 경계도 캄캄한 일도양단도 없다

판도는 변해도 생사는
상봉에서도 쉼없이 상봉중인 것
여기까지가 삶인 것

죽지 않는 몸을 다시 받아서도 더 오를 수 없는
이곳 너머의 곳, 저 영구 동천에 대하여
내가 더이상 네 숨결을 만져 너를 알 수 없는 곳에 대하여,
무슨 의혹 무슨 신앙이 있으랴

절벽에서 돌아보면
올라오던 추운 길 어느 결에 다 지운 눈보라,
굽이치는 능선 밑 숨죽인 세상보다 더 깊은 신비가 있으랴

강물에 목욕재계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고, 죽은 뒤 그 강물에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갠지스강이 떠오르는 시이기도 하다.

'이영광' 시인은 제11회 미당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고, 수상작은 '저녁은 모든 희망을'이라는 시란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 이 영 광 -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
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
그는 병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기죠
그는 병들었다, 하지만
나는 왜 병이 좋은가
왜 나는 내 품 안에 안겨 있나
그는 버르적댄다
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
침이 흐른다
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 평에
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
어떤 기적이 필요하다
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벌 받고 있지 않은가, 그는
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
변혁에 대한 갈망으로 불탄다
새날이 와야 한다
나는 모든 자폭을 옹호한다
나는 재앙이 필요하다
나는 천재지변을 기다린다
나는 내가 필요하다
짧은 아침이 지나가고,
긴 오후가 기울고
죽일 듯이 저녁이 온다
빛을 다 썼는데도 빛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안 된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준다
그는 힘없이 낫는다
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는 무장봉기를 꿈꾸지 않는다
대홍수가 나지 않아도
메뚜기 떼가 새까맣게 하늘을
덮지 않아도 좋다
나는 안락하게 죽었다
나는 내가 좋다
그는 돼지머리처럼 흐뭇하게 웃는다
소주와, 꿈 없는 잠
소주와 꿈 없는 잠

'저녁은 모든 희망을', 이 시가 좋은 것은...저녁은, 또는 중년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 준다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과 소멸, 그 사이 거쳐 지나가는 경험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한다고 얘기함으로써, 통과 의례처럼 얘기하고 있다.
무난하게,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던 나는...
다쳐보기 전엔 다치면 아프다는 걸 미루어 짐작했을 뿐이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공감하거나 통감하지 못했었다.
내가 다쳐 아파본 후에야 통증이 실제적으로 살아 움직였다.
아파봐야 건강함의 소중함을 알 수 있고,
어둠이 있어야 상대적으로 빛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빛을 다 썼는데도 빛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 햇빛을 다 썼는데도 달빛이 나타나기 전인 저녁 어스름 무렵인가 보다.
죄를 지어 받는 벌마저도 비교 대상이 없이 혼자일때는 형벌인줄 모르듯이 말이다.
인생을 엘리베이터 타지않고, 또박또박 한걸음씩 내딛은 자가 맞이하는 저녁은 아마도 희망일거다. 

               현 기 증
                          - 이 영 광 -

마흔, 어디선가 누가 지금 나를 완전히
포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고뇌에 찬 결단이기를 빈다
밥 먹다 말고 화장실 갔다 와서
다시 숟가락 집어드는 사람은 지금 제 인생이
너덜너덜해졌다고 깊이 느꼈다, 느꼈을까
내면이란 게 상(傷)하게 되어 있는 거지만 그곳으로
먹는다는 건 안으로 토한다는 것, 근데 왜 멎질 않지
흉터를 몸에 남기고 간 것들조차 믿을 수 없고
머리가 빠진다, 사람 같지 않던 그 독재자처럼
아니 그자와는 아무 관계없이 온 미래일 뿐이다
미래란 늘 난장판이었지만
미래라고 하면 두근거리며 현관에 다가선 발소리가 떠오르지만,
내가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 걸 보면
나에게도 분명 노후가 있을 것이다
죽음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쉼 없이 중얼거렸던 자는
무시무시한 방랑과 영웅적인 은둔에 대해
약간 병적인 선호를 가진 자,
누가 광인보다 더 진실되겠는가
누가 소외되지 않기 위해 칩거한 자의 말을 듣겠는가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은 반드시 우릴 후회하게 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건 이미 실패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세상에 적개심을 가져선 안 돼
누구의 세상도 아니니까
나는 어떻게든 무사히 여길 빠져 나가고 싶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모두가 떠난 듯한 곳에서
114 안내원은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고 별안간 고백했다
사랑은 도처에서 좀비처럼 나타난다
그건 언제나 정신이 좀 없지
하지만 사랑을 사랑해
시는 시인을 죽인다는 말 가지고는 이제 행복해지지 않아
날 갖고 더는 실험하지 않을 거야
나가려면 인정해야 한다. "나는 당신이랑 같아."
자백에는 자백 몰래 끼워 넣은 유언(遺言) 냄새가 나지
저 티브이가 내게 뭔가를 끊임없이 개인 교습하듯
테이크 다운 이후의 그라운드 공방에서 포옹한 두 격투가는
연애하는 자세로 죽어라 치고받고
제 신(神)에게 제 나라를 부동산으로 바치려는 자가 파안대소하고 있고
터미네이터는 소방차 앞에서 재난 선포나 하고
그리고, 느닷없이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난 하프타임의 치어걸들을
나는 멍한 눈으로 본다
그래도 사는 것에는 사는 것 이상(以上)의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니
구름모자 쓴 15층 옥상 위로 섬광처럼 새들이 날아갔다
수치심으로 빨갛게 몸을 데우는 저녁나무 밑에는
너무 가까워 폴짝, 뛰어내리고 싶은 지상(地上)이 있다
비닐 같은 비늘을 벗어 놓고 어마어마한 짐승이 지나갔을 것이야
그러한 뿌연 공기 사이로,
또 그러한 현기증 사이로
개를 안고 비비고 핥으면서 식후의 여자들이 지나간다
제 몸으로 그것을 낳기라도 했다는 듯
그러나 이것은 다만 휴일의 흐릿한 풍경 풍경
커튼을 내리면 사라져 버릴 것들,
애들은 절대로 미치지 않아요
출혈하고 돌아온 몸이 뭔가를 토하려고 다시
털썩, 식탁에 주저앉았을 때부터
너무 멀고 어지러운 바깥을 향해 나에게는
약간의 연기(演技)가, 이를테면 고요한 몸부림이 필요했다
아무리 더러운 것도 만지고 빨고 껴안고 싶은 순간이 온다
술잔에 물든 사양(斜陽) 흔들리다 꺼지면
창밖의 어둠, 천천히 걸어 안으로 들어온다 

'현기증'을 읽으면서 알 수 없는 현기증으로 몸을 비틀거려야 했다.
시를 읽은 후 바라보는 세상은 예전 그대로인데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제 스스로를 포기하게도 되는 나이인가? 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여,
'먹는다는 건 안으로 토한다는 것'이란 구절에선 숨이 멎을 듯하다가,
사랑을 갈구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공허함 뿐이라는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어지러웠다.
아무리 완전하고 의연한 척 하는 사람이라도,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는 순간이,
아무리 더러운 것도 만지고 빨고 껴안고 싶은 순간이 온다는 걸...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 이 영 광 -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을 
잡고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
아귀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리가 없다 껴안는다는 것은 또 이런 것이다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져 다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글거리는 포옹 사
이로 한 부르튼 사나이를 有心히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필경은 나무와 허공과 한 사나이를,
딱다구리와 저녁 바람과 솔방울들을 온통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구명 숭숭 난 숲은 숲字로 
섰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을 보라 껴안는다는 것은 이렇게 전부를 통과시켜 주고도 제자리에,
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다.


난 '숲'이라는 시가 가장 맘에 들었다.
껴안는다는 건,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란다.
껴아는다는 건,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져 다 잊어버린다는 뜻이란다.
껴안는다는 건, 이렇게 전부를 통과시켜 주고도 제자리에 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란다.
이 모두를 다 그러안고 싶은 난...조용히 고요한 숲으로 가야 하리라.

개인적으로 시가 어려워, 또는 생각을 요하게 하여 한참을 머물렀던 시들은...
'그러니까', '일 포스티노', '문','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입동', '비누에 대하여', '헌책들', '작아지는 몸', '이상한 사랑', '칼', '사랑의 미안', '기우', '노안', '사실적' 등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머리가 나빠 다 외울 수 없어서 그렇지 외우고 싶도록 맘에 드는 시
 투성이라는 얘기다.
우연히 만난 시인인데 참 좋다, 한동안 끼고 살아야겠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이영광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10월

  







 

11월이다.
11월은 이 음악을 들으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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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11-0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와 꿈 없는 잠... 둘다 참 좋네요... ㅎㅎ
몸은 이제 많이 좋아지셨나 봅니다. ^^




이란 글자는 잘 보면...


같지 않나요?

양철나무꾼 2011-11-02 17:13   좋아요 0 | URL
이제, 밤에 좀 주무세요?
소주와 꿈 없는 잠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죠~
저만 그런가요?^^

숲이란 글자에서 인생을 읽어내신 거...전에 <내 젊은 날의 숲> 리뷰에서 보고 고개를 주억거렸었어요.

2011-11-01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2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1-11-01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머리에 스테플러.
그런데도 이 멋진 글을 쓰시는 님은 정말 능력자세요.
다시 자전거 타실 용기 나세요?
제 경험상 전 자전거 혼자 배웠어요. 물론 어릴때지만
엄마 몰래 100원주고 30분 빌려 타는 자전거로 공터만 탔어요.
계속 다쳤어요.
다리 정강이 그런 부분만 멍이~
아프지만 심하게 아프지 않은 정도
그러다 갑자기 자전거가 균형을 잡게 되어요 그럼 그 희열.
혹시 넓은 사람별로 없는 그런 공터가 있을까요?
혼자 조금씩 의자를 최대한 낮추고요.

양철나무꾼 2011-11-02 17:22   좋아요 0 | URL
글이라도 멋지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여~^^

제가 자전거를 강사 붙여서 배운건, 벌써 몇달째구여...ㅠ.ㅠ
그리고 배우는 장소는 공터=공원, 맞습니다.
무릎, 정강이 멍이 가실 날이 없는데...그건 훈장쯤으로 알구 있구 말이죠.
몇달째 그냥 그대로여서 좀 속이 상했었지만,
왜 갑자기 동네 내리막길을 자전거를 끌고 나갈 생각을 했는지...아직도 미스테리 하답니다~ㅠ.ㅠ

아이리시스 2011-11-01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넘어지셨는데, 낫지도 않았는데, 또 가셨어요?
우와, 어쩐지 본받아야 할 다짐인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1-11-02 17:24   좋아요 0 | URL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끌려서' 나갔다니까요~^^

잘잘라 2011-11-0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한 남편'에 이어 '엄청' 자상한 남편분 등장에 살짝 부럽다가
남편을 믿고 용기내어 다시 자전거 타러 나가시는 님의 무릎 나온 청바지를 상상하며 웃다가
'숲'에 빠져서 한동안 멍- 때리가다...

양철나무꾼 2011-11-02 17:29   좋아요 0 | URL
'엄청' 자상한 남편이 아니라요~
시골에 추수하러 다녀온 며칠을 빼고, 2주 내내 밤마다 저때문에 잠을 설쳐 짜증이 제대로 났었겠지요~^^

자전거는 아직 타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고, 끌고(=모시고)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숲' 좋죠?^^

마녀고양이 2011-11-02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신랑이 저렇게 멋있게 말했단 말이야? 고백해봐.. 자기가 각색한거 아냐? 샘나려 하는걸.

음, 그래서 자전거를 다시 탔네. 나는 당분간 못 탈 줄 알았는데, 아니 다시 못 탈줄 알았는데
용기 있다......... 좋아보여. 집에서 핫팬츠를 입는 자기, 집 따스해? 아우 추워랑~

양철나무꾼 2011-11-02 17:42   좋아요 0 | URL
음~
울 남편 MPTI유형 더 근사하고 멋지다고 분류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글구 말은 저렇게 했지만, 2주 내내 나 때문에 밤잠 설치더니 강구해낸 일종의 자구책이랄까~^^
자전거는 위 댓글에서도 얘기했지만...모시고 오르락 내리락 한 수준이궁.
집에서 핫팬츠는...암시롱, 밖에서도 핫한 거 입는 거 좋아하는거, ㅋ~.


2011-11-03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5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11-11-0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 내리막사고의 트라우마(?)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신가 봅니다. 큰사고를 당했으니 누구나 겪었을 현상이긴 합니다.단순할 것같은 자전거 타기를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경험하고 계시네요. 무엇이든 한걸음씩 단계를 밟는 것이 중요하죠. 프로패셔널과 아마츄어는 실수를 줄이는 것과 실수를 밥먹듯이 범하는 차이라고 나름정의를 합니다. 프로도 아마츄어의 단계를 거쳤잖아요 기본을 지커다 보면 자전거를 극복하는 날이 오겠죠? 그날을 위해 응원하겠습니다^^

감은빛 2011-11-07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남편이세요!
만약 제가 같은 입장이었다면, 저런 멋진 말과 행동은 못했을 것 같아요.
하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