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가르칠 수 있는 용기 - 출간 10주년 증보판
파커 J. 파머 지음, 이종인.이은정 옮김 / 한문화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인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과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를 통해 만났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도 저자는 가르침의 공간에 대해서 강조한다. 그 전에 대학교를 졸업하려던 시기에 만났던 책이『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였다. 이 책은 객관적 정보를 주는 책이라기 보다, 저자의 삶을 통해 울림을 주는 책이다. 파커 파머는 소명이라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선물을 인식하고, 잘 들음으로 얻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특별히 “가장 어려운 일은 남의 고통을 ‘고치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일, 그냥 그 사람의 신비와 고통의 가장자리에서 공손하게 가만히 서 있는 일이다”와 “정체성이란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이나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배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간단한 사실에 달려 있다.”라는 글귀는 오랫동안 나의 뇌리와 가슴에 남아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더 확장하고 구체화한 듯하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부분들이나 예화들이 더 풍성하게 담겨져있으며, 더 교육적이고 일반적인 느낌을 가졌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 교육과 영성을 모두 잡으려 했다면,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과감히 영성의 색을 버리고 교육적 요소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저자 자신의 삶의 맥락과 과정을 봤을 때, 충분히 사회와 소통 가능한 언어를 가졌으며, 그럼에도 곳곳에서 기독교 영성가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교사들의 존재와 내면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는 다른 교육학 책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관점이며, 과감한 도전이다. 교육이 잘 일어나기 위한 방법론적 접근을 하는 책은 많지만, 교육을 함에 있어, 교사의 내면을 다루고 있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내면을 다룰 때도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실제적이며 경험적인 언어로 내면의 역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언어는 교육의 일선에 있는 많은 사람들(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만이 아닌)에게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결국 가르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며, 우리는 자아를 가르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교육의 ‘내용’(What)과 ‘방법’(How)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교육에 있어 ‘왜’(Why)라는 질문과 ‘누구’(Who)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야 할 것이다.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고민이 뒷받침되며, 핵심적이고 중차대한 부분에 접근해야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장이 일어날 것이다. 또한 어디 하나에 편중되거나 치우친 관점이 아니라, 지성과 감성, 영성의 3대 노선을 적절하게 취하면서, 그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영성의 강조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일반 교사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도 기독교 영성가의 모습을 보인다는 근거이며, 그 동안의 파커 팔머의 삶을 볼 때 충분히 납득가능하고 일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청년사역을 하면서 청년 리더들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자신의 마음 속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것이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많은 소그룹에서 성경공부와 예배와 사역의 3대 요소를 적절히 배치하여 잘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질문의 답에 그들은 성경공부나 예배나 사역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은 바로 ‘사람’이었다. 자신을 섬겨준 리더일 수도 있고, 함께 소그룹에서 뒹굴었던 멤버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도 교육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의 핵심에 ‘사람’이 놓여있다고한다. 결국 교육은 자아의 내부에서 지혜의 핵심을 뽑아내려는 노력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 하지만 많은 교육자들은 자신의 존재와 내면에 대한 관심보다는 바로 눈 앞에 놓여있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자아정체성의 확립과 성실성이 겸비되지 않는다면 참된 교육이 일어나는 일은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의 능력 뿐만 아니라 존재나 인격까지도 비방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공포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지를 알 때에 학생의 공포를 이해하며 함께 끌어안을 수 있다. 이러한 공포는 다양한 이유로 야기된다. 공포를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악이 있다. 분열되고 깨어진 사회는 서로를 경쟁상대로 인식하며, 함께 공존하는 것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공포는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다. 지식은 명제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지식은 혼자서 독단적으로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식은 타자와의 일체감을 이루는 방식이며, 언제나 상호연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때 큰 고통을 겪게 된다. 하나의 돌파구는 공포를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인정하고, 공포 그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두려움은 어떠한 관점으로 그것을 해석하는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우리가 그 동안 배워왔고 쌓아왔던 다양한 정보와 지식은 새롭게 정리되어지고 갈아엎어지고, 통합되어져야한다. 그래야만 온전하고 통합적인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의 교육도 이러한 관점의 변화 가운데서 보아야 한다. 능력을 추구하며,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세상의 현실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역설적 사고방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역설적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양극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관을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저자는 커뮤니티를 강조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기존의 사고와 체계를 바꿀 수 없다. 갈수록 서로의 동료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실태는 더욱 교사를 고립되게 만들고, 성장할 수 없게 만든다. 교사는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동료들에게도 문을 닫는다. 교사뿐이겠는가? 대부분의 영역에서도 동일하다. 동료가 어떤 비전을 세워 어떻게 그 과정을 일구어나가는지 볼 수가 없다. 커뮤니티를 일구기 위해서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기존에 해 오던 것들을 기본적으로 충실히 하면서도 새로운 곳에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기존의 것과 다른 다른 차원의 지식을 배우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역을 반복하면서 가지게 되는 외로움과 공허함, 자존감의 하락 등은 커뮤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정직한 소통을 이루며 치열한 하지만 따뜻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갈 때, 새롭고 통전적인 교육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