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학 - 그리스도교적 종말론의 근거와 의미에 대한 연구 몰트만 선집 1
위르겐 몰트만 지음, 이신건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이나 현실을 바라볼 때 좌절하게 됩니다. 언제 세상이 옳은 방향,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지에 대한 기대까지 사라지게 만듭니다. 여전히 세상은 잔혹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는 크게 부각시키며,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합니다.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회는 새로운 계급이 형성됩니다. 사회적 제도로 인한 계층 구조는 아니지만, 부자와 가난한 자의 위치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가진 자는 현대 사회에서 더 많은 힘을 얻고, 그 힘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없는 자는 더 이상의 희망조차 잃어버립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존재합니까?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합니까? 오히려 세상에서 교회가 지탄받는 모습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난관을 뚫고 나아가야 할지 난감합니다. 신학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세계적 석학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그는 현대 사회의 문제 앞에 잠잠하지 않습니다. 풀 수 없는 실타래 같지만, 성경과 신학을 통해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는 『희망의 신학』을 통해 '희망'이 사라진 것만 같은 세상에 큰 경종을 울립니다. 


몰트만은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을 핵심에 두기를 원합니다. 자칫 변두리에 머물러 있던 종말론을 중심으로 가져오기를 원합니다. 이 책을 자신의 조직신학 시리즈 중에서 제일 처음 집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우리가 희망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이유를 몰트만은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하나는 오만과 절망이요, 더 강력한 것은 현재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몰트만은 파스칼, 괴테, 헤겔, 니체, 파르메니데스, 키르케고르, 에브너에 이르기까지 헬라적인 현재 개념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몰트만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엘(EL)이 아니라 야웨(JHWH)라고 강조합니다. 즉, 현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전망을 제공해 주시는 새로움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극적으로 안셀름의 유명한 명제인 '지식을 추구하는 신앙'을 변용하여 '인식을 추구하는 희망'이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의 모든 선포와 그리스도인들의 실존과 교회는 종말론적 성격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미래의 문제"를 기본 문제로 삼습니다. 이러한 종말론에 대한 관점에 기초하여, 몰트만은 1장에서 현대신학자들이 취한 종말론의 무역사성을 비판합니다. 


몰트만이 말하는 종말론은 역사적 종말론입니다. 역사적으로 종말론을 이해하자는 것이지요. 이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예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현실을 해명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해석이 아닌 역사의 변혁을 원합니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종말론은 하나님의 약속된 미래를 향한 기다림과 희망의 이론입니다. 


몰트만은 “희망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종말론”의 근거를 예수의 부활과 현현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이제 몰트만은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을 “약속의 하나님”으로 파악하고, 하나님의 계시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약속으로 이해함으로써 그의 종말론적 사고를 심화시킵니다.


판넨베르크의 역사신학과 함께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도 “역사”의 차원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은 개인의 영혼은 물론 세계사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몰트만은 판넨베르크처럼 보편사로서의 역사 해석에 관심을 두기보다, 하나님의 약속된 미래를 향한 역사의 변화에 관심을 가집니다.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차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몰트만은 역사에 의해 종말론이 폐기되거나 종말론에 의해 역사가 폐기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몰트만에 의하면 종말을 기다리는 희망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세워집니다. 이스라엘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있어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희망으로 인해 열립니다.


몰트만은 마지막으로 이러한 희망의 신학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현대사회가 그리스도 공동체에 기대하는 역할이 있지만, 그러한 역할에 잠식당하거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교회가 새로운 탈출을 감행해야 하며,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바빌론 포로 생활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목적은 자신만을 위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부활한 자의 통치로 살아가며,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과 공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는 자의 다가오는 통치로부터 살아가야 합니다. 


'세계를 위한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소원대로 세계를 위해 봉사하며, 세계 안에서 활동합니다.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야 합니다. 진정한 공의와 평화, 자유와 존엄성은 종말론적인 기대 지평 안에서 일어납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야 합니다.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을 세세하게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철저하게 개인화되어 있고 내세 지향적인 모습으로 현실에서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세계의 교회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 또한 종말론적 기대 가운데서 우리의 소명을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칠십인역 입문 - 칠십인역의 정의, 역사적 배경, 기원, 번역 과정, 가치, 권위
그레고리 R. 래니어.윌리엄 A. 로스 지음, 이민희 옮김 / 북오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에게 칠십인역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칠십인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천차만별입니다. 70명의 번역자가 아닌 72명의 유대 학자들이 번역했다는 정도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지적 만족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은 시기와 장소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칠십인역에 대한 우리의 정보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설명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요청으로, 72명의 번역가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파견되어 프톨레마이오스 궁궐에서 72일만에 과업을 마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 『칠십인역 입문』에서는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고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칠십인역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고자 노력합니다. 이를 위해 구약학자인 윌리엄 A. 로스(William A. Ross)와 신약학자인 그레고리 R. 래니어(Gregory R. Lanier)는 보다 통전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칠십인역에 접근합니다.



먼저 저자들은 '칠십인역'이 무엇인지를 논합니다. 대부분의 사본들도 동일하지만 '칠십인역'은 구체적인 특정 성경 역본 모음집이 아닙니다. 이는 히브리 성서의 고대 그리스어 번역 전서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번역 초기는 '오경'이 중심이었고, 이후에 히브리 책과 외경이 추가적으로 포함되었습니다.



저자들은 칠십인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포괄적 접근한 뒤, 그리스어 구약을 통칭하는 칠십인역의 근원과 발전과정을 설명합니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들을 다 알 수 없지만, 가능성 있는 사안들을 꼼꼼하게 살피며, 최근 학계의 흐름과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에 대해 짚어줍니다.



이러한 개념 정리와 칠십인역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나서, 저자들은 칠십인역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크게는 구약 연구에서의 중요성과 신약연구에서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 동일한 에너지를 쏟는 것이 구약학자와 신약학자가 함께 저술한 책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이 책의 장점입니다.



무엇보다 칠십인역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고대 사본들보다도 훨씬 이전의 해석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칠십인역을 통해 당대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구약성경을 해석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와 사회적 맥락, 신학적 통찰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다양한 번역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성경의 원뜻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합니다. 각각의 번역본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으며,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는지에 따라 번역에 여러 차이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어 구약을 히브리 본문의 번역본으로, 더 나아가 고대의 주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입문서는 개념과 역사, 중요성, 이후의 연구에 있어 더 찾아보아야 할 과제 등을 정리하여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세세한 사항들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칠십인역에 대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이해와 더불어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입문서임에 틀림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때 - 고난과 고통 속에서
해럴드 센크바일 지음, 김태형 옮김 / 구름이머무는동안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힘들어도 잘 내색하지 않는 편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입니다. 혹여 우리의 고난 이상으로 지나치게 관심받을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주시겠거니 생각하며 묵묵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음 소리에 반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저보다도 더 자주 저의 아이가 있는 병원에 방문해 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보호자를 위해 커피를 사고, 아이를 위해 선물을 사서 말입니다. 심지어 집에 있는 아이를 잊지 않고 맛있는 음식도 배달해 주십니다.



끊이지 않는 사건들 앞에 지칠 때가 많습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일이 불쑥 튀어나옵니다. 지나간 일에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고통의 강도가 높을수록 한숨이 늘어나긴 합니다.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요.



주변에 소중한 분들이 계셔서 어려움 가운데 기쁨을 느낍니다. 쉴 틈 없이 집과 병원, 직장을 오가야 하기 때문에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풍성합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그들의 위로와 끊임없는 관심으로 우리 아이들은 참으로 넉넉한 사랑을 받으며 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는 위로도 이러할진대,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위로는 어떠하겠습니까? 짜증과 원망, 무력감이 우리 안에 가득 찰 때 갑작스레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맛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가 주어지는 성취감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주님이 내려주시는 한없는 사랑입니다.



이 책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때』는 고통과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지를 묻습니다. 저자인 해럴드 센크바일(Harold L. Senkbeil)는 50여 년의 오랜 목회 경험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그곳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와줍니다.



실제로 고통의 문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로하는 대상자와 그들의 태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고난의 문제를 설명한다고 해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논리도 필수적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따뜻하고도 진심 어린 마음입니다.



이 책은 한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할 수 있는 넉넉한 품이 느껴집니다. 깊은 묵상과 오랜 기도 가운데 말씀과 치열하게 싸웠던 목회자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그리하여 독자를 눈물로 안내하며, 드넓은 주님의 품으로 함께 인도합니다.



우리는 너른 품 안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는 불신했지만,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셨습니다. 가장 힘겨운 순간, 나 혼자라고 느꼈던 그 순간이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 또한 고난의 그 순간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느끼게 됩니다.



기쁘고 즐거운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듯합니다. 우리네 삶은 오히려 슬픔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했으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기쁨을 모색해야겠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그때는 우리의 슬픔이 기쁨이 되지 않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님 나라 윤리 - 우리 시대의 산상설교
데이비드 거쉬.글렌 스타센 지음, 박규태 옮김 / 비아토르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재가 없고, 책장도 많지 않아 책을 자주 나누어줍니다. 그래서 제 책장에 오랜 시간 남아있는 책은 제 나름의 기준에서 소장 가치가 분명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예수 따름의 윤리』가 그러한 책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와 산상수훈 해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 8월에 읽은 책이니, 벌써 13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책을 읽을 때 중요한 부분에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하고 인덱싱 처리를 합니다. 곳곳에 인덱싱이 되어있는 것을 보니 어떤 마음으로 읽었을지 짐작됩니다. 참으로 감격하고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번에 여러 부분에서 개정 확장하여 새롭게 『하나님 나라 윤리』로 나왔습니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빠르게 세상은 변했고, 저자들은 자신들의 책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않았나를 돌아봅니다. 그리하여 이번 책에서는 그러한 반성과 더불어 세상을 완전히 뒤집는 변화보다 일상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윤리』를 다 읽고 이전 책과 다른 새로운 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의 통치와 예수 따름의 윤리』를 읽고 적은 서평이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고, 초판의 논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아 아래에 첨부합니다.



==========================================

[하나님의 통치와 예수 따름의 윤리]


최근 복음을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정리하고 소개하는 책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전에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론서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해하기가 어렵거나, 쉽게 접하기 힘든 책들이 많았다. 하나님 나라가 새롭게 조명되고 관심이 집중되면서, 이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조금 더 쉬운 접근의 노력들이 많아지고 있다.(예를 들어 웰컴 투 하나님 나라, 성경은 드라마다, 세계관은 이야기다 등)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수록,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오해도 많아지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하나님 나라가 거대담론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너무 추상적이며,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구체적인 실천이나 삶의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알면 알수록 하나님 나라 복음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통치는 삶의 전 영역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회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능동적 개념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회복과 샬롬, 화목이 도래하게 된다. 일그러지고 깨어진 우리들과 만물에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다.



이 책은 우리의 복음이 삶의 실제와 동떨어져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즉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신앙과 윤리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적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통전적인 성품 윤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근거를 복음서의 산상수훈에서 찾고 있다. 우리는 예수의 도덕적 가르침을 높은 이상이나 어려운 말씀, 완전함에 대한 요구, 또는 죄성에 대한 증거로 읽기 싶다. 하지만 예수의 본래 의도는 변혁적 주도 행위이다. 이 변혁적 주도 행위는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는 제자들이 마땅히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가로막는 악순환을 깨뜨릴 수 있는 행위이다.



이러한 큰 원칙에서 저자들은 기독교 윤리의 세부사항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살인과 폭력, 평화, 낙태, 안락사, 성 역할과 성, 정의와 사랑, 진실을 말하는 것,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 기도와 정치, 실천 등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이 책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바로 기독교 윤리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책을 통해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연구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많은 연구 자료들과 책을 인용하고 있다. 특히 존 요더, 톰 라이트, 리처드 니버, 스탠리 하우어워스 등이 많이 언급된다. 이 책을 통해 다른 저자들과 만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적지 않은 분량(700여 쪽)이지만,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그리스도인의 일상 중심 잡기 1
손성찬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인들에게 있어 '돈'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본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돈은 필수적입니다. 없어서는 안되는 도구인 셈이죠.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에 이미 제일 우선적인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돈입니다.



돈에 대한 많은 책들은 세상의 관점을 따릅니다. 부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적극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그것을 통해 돈이 일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로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돈은 애증의 대상입니다. 현실에서는 가장 필요한데, 성경에서는 돈을 멀리하라고 하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돈에 관심을 둔다면 신앙이 적은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돈은 너무도 중요하지만 드러나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모호한 '무엇'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적 관점에서 명확하게 정리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돈이 무엇이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돈의 의미와 사용 방법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또한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며, 헌금은 어떤 관점에서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성경에서 말하는 돈에 대한 관점이 너무도 다양하다는데에 있습니다. 그 배경과 성경 전체의 문맥, 하나님의 의도까지 헤아려야 합니다. 또한 말씀에 대한 적절한 해석 위에 현실과 잇닿아 있는 적실한 적용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의 금융지식도 필수적입니다.



이 어려운 과제를 손성찬 목사는 『돈: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에서 능숙하게 풀어냅니다.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의 관점에서 돈을 어떻게 보아야 하고, 대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저자는 성경 본문을 주텍스트로 사용합니다. 누가복음의 다양한 본문을 선택합니다. 돈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이 바라보는 돈에 대한 관점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로 점점 확장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로 말씀하셨는지에 집중하면서 돈에 대한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반 성도들에게 전해진 설교이다 보니 이해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어려운 개념들도 적절한 비유와 예화를 통해 보다 친숙하게 들려집니다. 자칫 예민해질 수도 있는 문제들도 사려 깊은 단어 사용과 균형감각을 통해 모든 분들이 고민하고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사소한 부분에 맞추어진 관심을 더욱 중요한 부분으로 돌려줍니다. 그리하여 탐욕도 배척도 아닌 제3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돈'만큼 어려운 주제는 없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이 책은 이런 상황을 경험하는 목회 현장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저자의 세심함이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매 장의 말미에 있는 '나눔 질문'과 '하나님 앞에 드리는 다짐'은 보다 활발하면서도 건강하게 돈에 대한 나눔과 기도를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하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던 '돈'에 대한 주제를 객관적이고 균형감 있게 배울 수 있고, 현실에 직접 적용해 볼 수 있는 귀한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