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유와 미를 구분할 수 있는 건 오직 얼굴에 난 점이다. 점의 유무 빼고는 모든 것이 똑같은 쌍둥이 유와 미. 아직 첫 생리도 하지 않은 파릇파릇 십 대 쌍둥이 소녀는 둘이 붙어 다니는 것이 좋다. 엄마는 돈이 두 배로 든다며 늘 잔소리고, 엄마가 그렇게 하는 것에는 너무나 좋은 아빠가 빚더미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유와 미는 그래서 쌍둥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시험도 대신 치고, 식당에서 밥도, 극장에서 한 장의 표로 어째어째 들어가서 먹거나 관람한다.

나, 이 쌍둥이가 극장에서 보는 공포 영화도 봤다는 사실. 예전에 리뷰를 했을 텐데. 태국 공포 영화는 무섭지만 대부분 슬프다. 내가 본 태국 공포 영화는 그렇다. 머리만 동동 떠다니는 태국 귀신도 참 힘들어.

영화 속에서 다마고치를 해서 뭐야? 도대체 언제야? 했는데 영화 속 배경은 1999년이다. 그래서 이 순진한 쌍둥이는 세계 종말의 뉴스를 보고 할머니 이름으로 외상 해서 비상식량을 엄청나게 사 왔다가 엄마에게 혼나는 그런 십 대 소녀들이다.

반짝반짝 상큼한 과즙 같은 유와 미, 이 쌍둥이 중 유가 마크라는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마크를 만나는데 유 대신 미가 나갔다가 물에 빠지기도 하고, 마크는 쌍둥이 악마에게 속는 기분이 이런 거라며 즐거워한다.

커플이 친해질수록 쌍둥이는 조금씩 멀어지고 마크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과연 이 쌍둥이는 어떻게 될까.

영화 속 모든 배경이 전부 예쁘다. 학교며, 동네며, 강이나 가정집 모든 배경이 아주 예쁘다. 점 빼고는 모든 것이 똑같은 유와 미의 다른 점을 알아가는 마크. 파릇파릇 십 대 성장 스토리는 나라를 막론하고 재미있다. 모든 일들이 재미있고 평범한데 생리를 겪게 되고 사랑을 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야기 ‘유앤미앤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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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해가 구름 저 너머로 숨어 버려 흐리고 쎄 하다. 시멘트 바닥은 마치 표백된 것처럼 푸석푸석 새 하얗다. 딱성냥으로 쓱 그으면 그대로 불이 온 세상에 다 붙어 버릴 것처럼 마른하늘에, 마른날이다. 이런 날의 오전에 표백된 마당을 보며 컵라면에 팔팔 끓는 물을 부어 호로록 먹고 싶다. 그러면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일 것 같다. 그 느낌은 천국이지 않을까. 천국을 몹시 알고 싶었던 알피.


라디오 헤드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가 영화 초반에 흘러나올 때 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되돌리고 싶었던 조슈아. 조슈아는 마야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공허한 자신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건 마야를 다시 만나는 것,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상실을 되돌릴 수 있는 건 오직 마야뿐이기 때문이다.


Radiohead -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https://youtu.be/6JDqZpIahoQ?si=9P8Tq-Ybadx-wHlV


키드 에이 앨범의 수록곡으로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아, 하는 그 기분을 크리에이터를 볼 때, 영화 안에서 라디오 헤드의 음악이 흐를 때 그 기분이었다. 마치 달의 뒤편 같은 앨범 키드 에이. 그런 느낌을 영화에서는 두 번째다. 처음은 톰 크루저의 ‘바닐라 스카이’다. 초반에 톰이 오픈 유어 아이즈 배경에도 흐른다. 다. 시. 제. 자. 리.로. 돌. 아. 가. 야. 한. 다. 는. 것이다.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 15세의 터프한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 녀석이 숲 속에서 홀로 며칠을 보낼 때 그의 곁에서 외롭지 않게 위로해 준 음악이 라디오 헤드의 ‘키드 에이’ 앨범이었다. 고독하고 고독할 때,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독의 끝에 다다랐을 때 고독을 받아들이게 된 15세의 다무라 녀석은 키드 에이 앨범을 들으며 그것을 깨닫는다.


탐욕에 가득 찬 저항도 없고 고통에 의한 굶주림도 없는 세상, 욕심에 찌든 사람들의 눈이 점점 따뜻한 자신들의 마음에 동화되어 가는 세계. 바로 알피가 알고 싶은 하는 세계, 바로 달의 뒤편 같은 세계, 바로 그런 형이상학적인 노래가 영화에 흐른다.


인간이 고독한 이유는 군중 속에 나의 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의 가장 크나큰 고통은 여자가 사라지고 나면 고독의 빛이 당신의 몸 깊숙이 배어든다는 점이다. 조슈아는 마야가 떠난 후 진정한 고독을 알게 되었다. 라디오 헤드의 음악이 흐른다. 조슈아는 마야를 찾아야 한다. 마야가 살아있다. 마야를 찾으면 다시 되돌릴 수 있다.


이 영화는 사실 길을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가 아닐까. 그 길이란 사랑하는 마야를 찾아가는 길이다. 조슈아는 알피에게 어떻게든 천국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다. 그래야 천국에 있는 마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알피가 눈물을 흘릴 때 조슈아는 알피를 꽉 안아준다. 알피에게 진정한 사랑을 알려주고 싶은 조슈아.


Am I going to heaven? 알피는 조슈아에게 묻는다.


그리고 조슈아는 알피에게 웃음이라는 걸 알게 해 주고 떠난다.


천국에서 만나자. 조슈아는 멀어지는 알피에게 말한다.


마지막 엔딩곡 한스 짐머의 ‘진정한 사랑’이 흐를 때 천국이란 사랑을 알고 있는 알피 네가 있는 바로 그곳이라는 것, 천국이란 사랑하는 것, 서로 모르는 너와 내가 만나 사랑하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True Love https://youtu.be/MrOMHLYcIyg?si=rYI7Gl141VuNZVxj Hans Zimmer


바닐라 스카이 버전의 라디오 헤드.  https://youtu.be/99Wn774kdeA?si=1V5UPFxIWx4Y6-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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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평민? 제목이 별로라 다시 바꾼 제목으로 영화가 나온 것이 ‘로마의 휴일’이었다. 희대의 천재 글쟁이 달튼 트럼보는 로마의 휴일 각본을 영화사에 판매할 때에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판다. 정부의 탄압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는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는 명분하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진보 성향의 각본가들을 탄압한다. 여기에 레이건 (당시 배우협회 회장) 대통령부터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 존 웨인, 로버트 테일러 등 많은 배우들이 정부 쪽에 서서 탄압에 가담한다. 하지만 그레고리 팩 같은 배우는 트럼보 같은 진보주의자들을 응원하며 반미활동 조사위의 만행과 정부를 비판했다.

자신들의 편에 섰던 판사가 뇌출혈로 사망하게 되자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는 트럼보. 그때가 1950년 6월이었다. 감옥에서 수모를 겪으며 수감 생활을 하는 트럼보. 수감 생활은 힘들기만 하다. 그래도 클레오에게 편지를 쓸 수 있어서 두려움을 잊고 잠시 행복하다. 가장 운 좋은 불행아라고 말하는 트럼보.

할리우드의 천재 극작가 달튼 트럼보.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시작하는데. 달튼 트럼보의 이야기를 한 영화 ‘트럼보’는 정말 재미있다. 당시 여러 영화인들이 동료들을 정부에 고자질하여 달튼을 포함해 10명이 증언을 거부함으로 1960년대 초까지 영화계를 떠나야 했다. 이들을 ‘할리우드 10’이라 불렀다.

그러나 강력한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달튼 트럼보의 창작 욕구를 누를 수 없었다. 달튼은 수모, 고통, 고욕 모든 것을 짊어진 채 10개가 넘는 가명으로 활동하며 존재가치를 증명해낸다. 좌절하고 쓰러지고 넘어져도 주저앉지 않았던 트럼보. 결국 그는 미국의 최고 극작가가 된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다. 대한민국 탄생이래 난생 처음 겪는 탄압으로 폐지된 KBS 시사 프로그램 ‘더 라이브’가 다시 방송되는 그날까지.



예고편

https://youtu.be/gnOOgJv4k3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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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길어지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호하게 된다. 전쟁에는 선과 악도 의미가 점점 빛을 잃어가고 그저 살아남거나 시키는 대로 테러를 하거나 테러를 하는 범인을 잡는 일에 하루, 한 달, 일 년 모든 날들을 보내게 된다.


미드 시리즈 홈랜드를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냉전이 지속되면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나쁜 편인가.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곳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소련의 전쟁도 오래 끌면서 젤린스키는 작년만큼 세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외면받고 있다. 반도에 투척해서 전쟁을 멈추라며 지원받았던 엄청난 양의 무기를 젤린스키가 원하는 곳에 다 써버리고 전쟁이 길어지는 발단이 되면서 작년 초에 젤린스키가 1조에 가까운 돈을 빼돌렸다는 영국 비비씨의 보도가 있었다. 이번에 선거를 다시 해야 하지만 젤린스키는 전쟁 중이라 선거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전쟁은 점점 길어지는데 죽어나고 고통을 받는 건 불쌍한 국민들뿐이다.


전쟁이란 길어지면 이제 어떤 식으로 끝맺음을 해야 하는 건지 결말의 답이 사라져 버린다. 길어지는 과정에서 믿었던 대통령이 이상하게 보이면서 점점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건 그저 전투력이 없는 일반인들뿐이다.


이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만 봐도 그렇다. 2차 대전 후 영국과 미국에 속아서 팔레스타인의 지역이 이스라엘로 넘어가면서 혹독한 탄압을 받아왔다. 참다 참다못한 팔레스타인이 1987년에 인티파타가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량학살을 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아이들도 싹 다 죽였다. 잔혹하게 인종 청소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 여론이 생겨났다. 이스라엘은 가자, 서안 지구든 뭐든 다 쓸어버리고 이스라엘 정작촌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과 전기를 이스라엘이 통제를 하고 제대로 된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그런 탄압을 팔레스타인은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서안지구의 온건파, 가자지구의 강경파. 파타와 하마스. 팔레스타인의 지지는 하마스 쪽으로 기울었다. 강경파 쪽으로. 가자지구에 폭격하는 모습을 보며 축하하는 극장도 이스라엘에 있는데, 그 모습을 아이언맨에서 오마주 하기도 했다.


장벽을 세워 24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둬 버렸다. 가혹하게 봉쇄를 하고 인구 탄압을 했다. 만약 이스라엘 군인에게 돌 하나를 던지면 법으로 징역 20년을 살게 된다. 사람을 잡아서 임의 구금을 할 수 있는 시간도 400일로 법으로 정해놨다. 마음대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미성년자도 잡아서 구금했다가 세계에서 들고일어나서 미성년자는 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누가 누구 편을 드는지가 여론을 통해 나오고 있지만, 고통을 받고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일반인들뿐이다. 아무 죄도 없는, 그저 하루를 보내고 싶은 그런 일반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를 보면 지금의 전쟁을 하는 국가들의 배경과 그들의 이유 같은 것들이 보인다. 영화 속에서 어째서 테러를 일으키는지, 자살폭탄이라는 것과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디카프리오의 모습에서 현재 전쟁의 실존하는 사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생각과 다르고 사실과도 다른 게 진실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로 아주 잘 만든 영화다. 명배우들의 현실 같은 액션과 연기를 볼 수 있다. 재래시장에서 터지는 폭탄은 실제 같고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는 건 언제나 짜릿하다.


디카프리오가 나온 셔터 아일랜드를 보면 정신이 이상해서 아내와 자신의 아이들을 무참히 죽인다. 정신이 돌아와서 보니 너무나 처참하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에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무의식에서 너무 고통스러운 사실을 기억에서 배제시켜 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형사가 되어 아내를 죽은 범인을 찾아다닌다. 무의식이 방어기제를 펼치는 것이다.


완다비전에서도 완다가 그렇게 완벽한 마을을 만들어 버린 이유도 무의식 속에서 방어기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비전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고 받아들일 수 없어서 완다는 완벽한 가정이 있는 마을을 만들어 버렸다. 그것이 틀어졌을 때 닥터스트레인지와의 결투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김필영 박사에 의하면 인간은 무의식 세계 속에 수많은 성향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의식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에서 방어기제를 펼친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딸 역시 심리학 박사였는데 프로이튼지, 그의 딸인지 실험을 했다. 돌아가는 나무막대를 한 무리에게는 20달러를 주며 돌리라고 했고, 또 한 무리는 1달러를 주며 돌리라고 했다. 2시간 후에 20달러를 준 사람들에게 어땠었냐고 물어보니 괜히 했다, 재미없었다, 내가 왜 이걸 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 반면, 1달러를 준 무리의 사람들은 재미있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같은 반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왜 이런 반응일까. 그건 바로 무의식의 방어기제 때문이다. 1달러를 받고 2시간 동안 나무 막대를 돌린 자신이 너무 한심한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은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괜찮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어. 그러니 형편없는 건 아니야. 같은 반응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실험은 흑백사진 시대 때부터 시도했는데, 어릴 때 놀이기구를 탄 기억이 없는데 어린 시절의 사진을 놀이기구와 합성을 해서 보여주면 자신도 모르게 기억이 심어지게 된다. 놀이기구를 탄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놀이 기구를 탔다고 기억을 만들고, 거기서 이야기까지 생성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후에 이건 합성이라고 해도 아니야, 그럴 리 없다며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고 한다.


평소에도 이런 사람을 경험하게 된다. 내 주위에 어르신들 중에 요즘이 원하는 꿈같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어르신 아들이 과학분야 쪽에서 박사 생활을 하는데 요즘 거기가 지원이 줄어들어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르신은 욕을 하면서도 나라는 이전보다 아주 잘 살게 되었다, 좋아졌다고 말한다. 미국은 너무 싫어해서 욕을 엄청하지만 디즈니랜드는 너무 좋아서 돈을 왕창 써버리는 꼴이다.


김필영 박사가 한 말과 유시민 작가의 말이 일맥상통하는데, 현재 지지율이 30%가 넘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지만 2번을 찍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찍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방어기제가 나타난다. 내가 찍은 사람이 그럴 리 없다고 믿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기부정의 말을 한다. 지금 나라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경제가 좋아질 것이다, 일본이나 독도에 관련된 것은 가짜뉴스라고 해버린다. 방어기제가 단단하게 생겨 버린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 허트 로커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허트 로커는 전쟁에 중독되어서 전쟁의 현장에 서야만 살아있다고 느끼는 군인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모두가 충격 비슷한 것을 느꼈던 마지막 장면. 영화 두 시간 내내 마치 이라크의 그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던 허트 로커. 우리가 아침에 참새처럼 들리는 방앗간 같은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사 먹듯 이라크의 그곳에서는 폭발물을 제거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분대장으로 제임스가 오는데 긴장과 두려움의 폭탄보다 더 위험한 행동으로 대원들을 미치게 만든다.


사막에서 이라크 병들과 대치 중인 장면은 그야말로 하이퍼리얼이다. 사막에서 내리쬐는 태양열 때문에 입술은 말라가고 눈에서는 물이 흐르고 그러면서 1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이라크 병들에게서 총구를 대고 있어야 한다. 목과 피부는 타들어가고 파리는 얼굴에 날아와 들러붙는다. 아차 하는 순간 데드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기에 이 순간은 정말 군인들의 피를 말린다.


제대를 한 제임스는 부인과의 대화에서도 일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저 군대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흩어지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우리는 제임스가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시리얼 앞에서 그 하나를 고르지 못하는 모습에서 명령 없이는 혼자서 시리얼 하나 선택 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전쟁이란, 전쟁중독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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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잔잔하게 영화가 흘러가는데 지나고 보면 진폭이 커서 약간 숨이 가쁜 영화다. 마지막 장면은 오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렬했다. 영화 속 한 장면이 한 남자를 온통 말해주고 있어서 감동을 했다.

마그리트의 그림, 이름을 버린 두 남자의 뒷모습 뒤에 서 있는 키도 역시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 같은 마지막 장면. 정말 강렬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시나가와 원숭이에서도 사람의 이름을 훔친다. 이름을 훔치고 나면 그 사람의 대부분을 소유하게 된다. 의미적으로 그렇다.

이름을 버린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 신분을 버리는 것이다. 신분을 버리게 되는, 버려야 하는 개인적인 엄청난 이유가 있다. 유전자처럼 따라다니는.

안도 사쿠라는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연기가 뛰어나서인지 안도 사쿠라가 울면 몰입하게 된다. 이름을 버린 한 남자를 남편으로 알고 살았던 여자에게 변호사 키도가 찾아와서 남편이 남편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누군지 찾아가는 미스터리다.

영화는 아주 좋고, 몹시 좋다. 자신의 정체성, 바꿀 수 없는 유전자, 대중 속의 고립, 외도, 무시, 재일, 무시, 편견이 서서히 조여오듯 압박하는 게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사실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놀라게 된다.

우리는 사실 신분을 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매일 살아간다. 가족과 있을 때, 일을 할 때, 그곳에 갔을 때, 인스타그램의 나, 모임에서의 나는 전부 다른 사람이다. 어떤 신분이 진짜 나인지 나 조차도 알 수 없다.

일본 영화계가 망했다 해도 수작은 계속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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