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황소
션 케니프 지음, 최재천.이선아 옮김 / 살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소는 지금으로부터 1만 5백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 가축화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동물이다. 오랫 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왔기에 우리는 이 동물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저자 션 케니프는 지적인 황소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소를 생각하면 대개는 한우 소고기, 불고기, 육회, 쇠고기국, 안심, 등심구이 등 먹거리를 생각하거나 연자방아를 돌리고 쟁기질을 하는 등의 일하는 모습도 연상할 것이다. 한편, 청도 소싸움이나 스페인의 투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살아선 일꾼이고, 죽어선 몸 보시까지 하는 충직한 짐승이다.

 

'에트르'란 이름을 가진 황소가 이 책의 주인공인 화자話者다. '에트르'란 '존재'를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에트르는 사람의 말도 알아듣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또한, 이를 토대로 스스로 어떻게 행동할지도 고민한다. 심지어 냇물에 비친 황소가 자신이라는 사실도 안다. 자, 황소 에트르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엉프"

"앙프"

 

 

 

 

에트르가 살고 있는 목장의 주인은 크릴리다. 그의 아들은 자크다. 이들은 항상 개와 함께 다닌다. 에트르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배에 닿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키를 가졌지만 항상 으르릉거리며, 무리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몰아부치기 때문이다.

 

축사에 들어간 암소들은 어떤 먹이를 먹는지 금새 크고 뚱뚱해진다. 시간이 흘러 만족할 만큼 통통해진 암소들은 슈트 컨베이어로 안내되고 이내 그들은 사라지고 만다. 에트르는 암소들과 그리 친하지 않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농장엔 닭들도 많다.

 

검은 황소가 이 목장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다. 처진 엉덩이를 가진 늙은 소이지만 힘이 세고 덩치가 가장 커서 다른 소들은 아예 싸움 상대가 되지 못한다. 넓은 목장 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다른 황소의 도전을 기다리지만 누구도 그를 공격하지 않는다. 

 

어느 날 연한 분홍색 얼굴을 가진 어린 암소를 만났다. 우윳빛 엉덩이와 머리엔 검정 무늬가 있다. 엉덩이가 작은 걸 보니 새끼를 낳아 본 적도 없는게 분명하다. 에트르는 콧김을 내뿜으며 암소에게로 다가갔다. 엄마 이후로 암소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처음이었다.

 

빗소리에 잠이 깬 에트르는 진흙탕을 벗어나 목초지 가운데에 위치한 언덕으로 향했다. 전에 본 암소가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앙탈을 부리던 암소와 결국 친해졌다. 암소는 에트르의 몸에 기대어 자신의 가죽을 비벼 대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나무 아래에서 서로 의지한 채 쉬었다.

 

"이랴, 이랴, 이랴!"

"멍, 멍, 멍, 멍, 멍, 멍!"

 

개가 소 떼 주위에서 반원을 그린다. 개는 으르릉거리며 소 떼 가운데로 파고들어 두 무리로 갈라놓았다. 한 무리가 사라지고 나머지 소들은 케일이 무성한 목초지에 남겨졌다. 목장 주인은 소들이 케일을 많이 먹고 빨리 살찌기를 바란다. 에트르는 그 암소가 그리웠다.

 

매일 저녁 무렵이면 에트르와 암소는 노을을 뒤로하고 걸어서 목초지 가장자리까지 갔다. 매일 밤 그들은 풀밭 위에 누워 가죽을 맞댄 채 새벽까지 잠을 잤다. 에트르는 풀과 케일로 충분히 배를 채워도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살집이 올라 분홍빛의 엉덩이를 실룩대는 암소 때문이었다. 그런데, 검은 황소도 이 암소에게 무척 관심이 많았다.

 

"검은 황소 넌 절대로 그녀를 가질 수 없어!"

"내 암소라고! 넌 절대 그녀를 가질 수 없어!"

 

결국 숙명적인 대혈투가 벌어졌다. 덩치가 훨씬 큰 검은 황소를 이기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검은 황소가 공격하자 밤하늘이 대낮처럼 붉게 물들었다. 에트르의 몸은 검은 황소에게 이리저리 짓밟히고 겨우 목숨만 부지했다. 이를 계기로 에트르와 암소는 사랑을 나누었다.

 

에트르의 암소는 새끼를 낳았다. 숫놈이었다. 엉덩이의 넓이는 18인치, 엉덩이 높이는 42인치 정도로 꽤나 큰 녀석이었다. 계절이 많이 흘렀다. 검은 황소도 이젠 둘을 괴롭히지 않았다. 에트르"엉프", 암소는 "앙프"라고 소리내면 새끼 송아지는 "음매"라고 맞장구쳤다.

 

마침내 슈트 컨베이어에서 에트르의 암소는 죽음을 맞이한다. 목이 잘리고, 앞다리 두 개가 잘리고, 뒷 발이 잘린 후 배는 길게 잘리고 가죽도 벗긴다. 내장을 도려내고 텅 빈 몸이 트롤리에서 빙글빙글 돌고있다. 고기는 길고 날카로운 칼로 뼈에서 떼낸다.

 

에트르는 어린 새끼를 찾아 여기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암소가 송아지를 낳던 곳 인근 풀숲에서 잠자고 있는 송아지를 발견했다. 송아지에게 다가가 아버지임을 인식시키려하나 사뭇 경계 태세이다. 송아지가 실컷 공격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송아지야, 넌 지금 여기를 떠나야 해" 

 

에트르는 철망을 들어 올린다. 철사가 그의 살을 찔러 피가 뚝뚝 떨어진다. 송아지를 구멍 밖으로 밀어내어도 철망에 발굽을 걸치고 끝까지 버틴다. 총이 발사되었다. 에트르는 철망을 밟고 넘어가 숲으로 향했다. 새끼도 따라나선다.

 

"함께 가자, 소들아. 사는 것처럼 살자!"

 

송아지는 케일이 먹고 싶을 것이다. 또한, 목초지의 풀도 먹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송아지는 목장 생활의 익숙함이라는 덫에 빠져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익숙함에서 결별해야만 자유와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며칠 동안 길을 따라 걸었다. 송아지는 앞다리가 발굽까지 부어올라 걷기가 쉽지 않다. 힘들게 몇 발자국 걷더니 넘어지며 옆으로 뒹군다. 송아지는 일어서지 않는다. 호흡이 빠르고 희미하며 입술은 창백하게 말라 있다. 눈빛은 희미해져 간다. 송아지는 숨을 멈춘다.

 

에트르는 송아지의 몸을 머리로 밀어 나무 아래로 옮기고 가시나무 가지를 덮어 주었다. 독수리가 송아지의 살을 쪼아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송아지를 숲에 남겨두고 햇볕이 내리쬐는 풀밭으로 나아갔다. 에트르는 절벽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수천 마리의 소들이 울타리 속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기견을 비롯한 동물 보호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이효리 씨가 제인 구달 선생을 시애틀에서 만나도록 주선한 사람이 이 책을 번역한 최재천 교수다. 그는 서울동물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는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돌이에트르 모두 인간이 만든 비극의 산물이다. 고통받는 동물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생존을 위한 황소의 투쟁이 우리의 투쟁과 다르지 않다.

 

"울타리 밖을 내다보기보다는 울타리 안을 바라보며 사는 편이 더 낫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리 Story - 행동의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심리 처방
티모시 윌슨 지음, 강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사회심리학이란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들의 복잡한 관계에서 그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평소에 매우 얌전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공격자의 모습으로 반사회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공격적인 행동이 왜 발생했는지 연구하는 것이 사회심리학이다. 이 책의 저자 티모시 윌슨은 정통적인 사회심리학자다.

 

 

 

"모든 변화는 행복을 담은 스토리 편집으로 촉진되고 가속화될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사람의 변화'다. 윌슨은 사람들의 행동변화의 밑바닥에 깔린 원리가 무엇인지 심도있게 살펴보고 자신의 고유한 이론과 기법을 제시한다. 이른바 스토리 편집이다. 그는 이와같은 스토리 편집 기법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이 금연을 결심했다고 치자. 흡연자가 금연자로 새로이 탄생하려면 보통 결심으로는 쉽지 않다. 대개는 의욕적으로 결심하지만 '작심삼일'로 허망하게 끝나는 경우가 왕왕이다. 저자는 이러한 결심의 실패는 결국 스토리 편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스토리 편집일까? 저자의 주장은 간단 명료하다.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의 삶에 전개되어야 할 이야기를 절실하게 창작하라는 것이다. 즉, 단순히 금연하다는 결심보다는 자식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자식을 부양하려면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하므로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결심하면 이는 지켜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스토리 편집 접근방법의 효과에 대한 실험과 사례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다. 스토리 편집이 인간의 행동과 의식의 변화를 유도하는 매우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임을 검증하고 또 검증한다. 이 검증에 인용된 실험과 사례들이 매우 흥미롭다.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선발된 거스 가드세이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설명을 들어보자. 가드세이가 매우 평범한 사람이면서도 2억 5천만 명이 넘는 미국의 인구 중에서 가장 행복한 까닭은 그가 너무도 확실하면서도 절실한 행복 스토리를 편집해서 소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3년의 <USA 위크엔드>지의 기사에 따르면, 거스 가드세이는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뽑혔다. 사실 이 조사에서 여자가 제외되었고, 조사지역이 버지니아 주의 버지니아 비치라는 곳에 국한되었기에 결과의 신뢰성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거스 가드세이는 평법한 생활을 하는 주식 중개인이다. 그는 약 65평 주택에 살며 자녀를 둘 둔 4인 가족의 가장이다.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 45살인 그는 빌 게이츠 같은 억만장자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 부자이면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부지기수이므로 돈이 행복의 일차적인 요인은 분명 아니다.

 

시장에 자기계발서가 그렇게 많이 나와 있다는 건 아무것도 효과적이지 않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중 하나가 정말로 영원한 행복의 비밀을 풀었다면 그 책이 시장을 독점하고 나머지 책들을 모두 퇴출시켰을 테니까. 이를테면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은 복권을 사는 것과 같다.   

 

주식 중개인이 그리 많은데, 오직 거스 가드세이만 행복하다는 것은 그의 인생관이 타인들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 연구원들은 의미, 희망, 목적 의 세 가지가 핵심 요소임을 밝혔다.

 

첫째, 인간의 존재와 세상 속에서의 위치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질문들에 대해 답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둘째, 낙관적인 태도가 도움이 된다. 낙관적인 사람들이 역경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나름대로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향해 정진하는 강인한 주인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즉 목적의식을 가지라는 뜻이다. 

 

행복 내러티브는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나쁜 일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한다. 좋은 내러티브 안에는 강인한 주인공이 있다. 즉 책임감을 갖고 바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주도적인 인물이 있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것이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거액의 연봉을 받고 일류 로펌에 입사한 사람은 재정적으로는 목표를 완수한 셈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주도적으로 인생을 살지 못하기에 일 자체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다. 심지어 사무실에서도 친구가 없으며 수임을 맡으려고 동료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한 학생은 로스쿨을 마치자 고향에 있는 법률사무소에 취직했다. 일류 로펌에 비해 초라한 연봉이다. 하지만 수임 사건의 선택에 있어서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며, 사무실 동료들과의 일체감에 만족을 느낀다. 다른 신입 변호사 몇 명과 가까워져 퇴근 후 또는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과연 누가 행복하겠는가? 

 

 

우리는 스토리 편집 접근법을 개인의 행복에 적용해보았다. 행복 내러티브는 사람들에게 희망, 목적 그리고 의미를 부여해준다. 이러한 방향으로 내러티브를 수정하기 위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법들이 있다. 이 기법들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데 효과적임이 입증되었다. 구체적인 방법은 아래와 같다.

 

페니베이커의 글쓰기 요법: 지금 특별히 걱정스럽거나 분노가 느껴지는 사건이 있는가? 이 일이 몇 주간 마음속에 머무르면서 생각이 표면 위로 떠오른다면 글쓰기 요법을 시도해보자. 글쓰기에 적합한 조용한 장소를 찾아, 삼사 일 연속으로 하루에 최소 15분씩 그 문제에 대해 글을 쓴다. 직접 손으로 써도 좋고,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녹음기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한 걸음 물러나 이유 묻기: 화가 나거나 슬픈 사건을 하나 떠올린 후 다음과 같이 따라하라.

 

눈을 감는다. 방금 떠올린 사건이 발생한 장소와 시간으로 돌아가 그 장면을 바라본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사건 속의 자신을 멀리서 관찰할 수 있을 정도까지 멀어진다.

그 사건이 마치 재연되는 것처럼 지켜본다.

이 상황을 계속 관찰하면서 상대의 감정을 이해해보도록 노력한다.    

 

 

 

나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법 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강력한 이야기의 힘이 계속 이어진다. 자신을 성장시키는 비결은 다름이 아닌 자기 스토리를 쓰는 힘이다. 인간은 당근과 채찍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간다. 왠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하는가? 이 책을 한번 펼쳐 보기를 권한다.

 

"행동의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심리처방이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허허당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불이 나면 꺼질 일만 남고

상처가 나면 아물 일만 남는다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붓 하나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스님이 있다. 허허당 스님. 이 스님은 사찰도 없고 시주도 안 받는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팔리면 화구 구입비만 빼고 남는 돈은 모두 타인들을 위해 나눠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재산이 하나도 없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상처 입은 생명을 위로하기 위해서란다. 어디 한번 따라가 보자.

 

책을 펼치면 그리움에 사무친 소녀의 그림이 나타난다. 어디 이뿐이랴. 슬픔에 겨운 여인의 모습, 아프리카 소녀의 모습, 달 구경하는 아이의 모습, 꿈꾸는 소년 소녀의 모습, 하늘이 되고 싶은 아이의 모습, 봄을 품은 아이의 모습, 외계인이 되고 싶은 아이의 모습, 행복에 취한 아이의 모습, 토끼 소녀의 모습, 놀란 아이의 모습, 마왕이 되고 싶은 아이의 모습, 아이폰 소녀의 모습 등등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존재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놀랍고도 신비로운 예술이다. 그의 그림은 이 신비로운 생명의 예술에 반응하며 춤추고 노래한 것이다. 일체 생명의 자유와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 모두의 존재가 더없이 아름다운 고귀한 것임을 그리고 우리의 삶이 위대한 예술임을 기억하자.

 

 

 

 

허허당虛虛堂. 그는 1974년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하여 2년 뒤 해은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향곡 선사 문하에서 선禪수행을 쌓고, 1978년 토굴에서 도반과 함께 정진하던 중 문득 깨달은 바 있어 붓을 잡기 시작했다. 1983년부터 지리산 벽송사 방장선원에서 선수행과 함께 본격적인 선화禪畵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꾸준히 국내에서 전시회를 가졌음은 물론 스위스 취리히와 하와이 등 해외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그는 지금 경북 비학산 '휴유암'에서 정진 중이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대중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팔로워들의 괴로움에 맞장구치고 공감한다. 약 2만명의 팔로워을 거느린 유명 트위터리안이기도 한 그는 비우면 진리가 찾아든다는 깨달음을 얻고서 30년전 법명인 향훈을 허허당으로 바꾸었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매 페이지에 함께 수록된 그림과 잘 조화를 이루며 독자들로 하여금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만들어준다. 스님의 글과 그림은 산중 생활에서 길어올린 명상과 사색에 특유의 섬세한 감정이 어우러져 세상 풍파에 지치고 상처 받은 영혼들의 피안처가 되어준다. 

 

 

상처

 

그대 가슴에 묻어둔 상처 아무 데서나 끄집어내지 마라

그대 가슴이 아무리 아파도 지금 그대와 마주한 이의 가슴엔

차마 아픔조차 느낄 수 없는 텅 빈 가슴이 타고 있을지도

 

 

 

 

 

고통의 소멸

 

고통의 순간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를 바르게 이해할 때 비로소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이 고통스러워 또 다른 곳으로 피해 가면

거기 그만한 고통이 또 기다리고 있다

 

 

허허당 스님이 1년 동안 칩거하며 완성한 '백만 동자百萬童子' 그림을 불교계에서는 법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역작이라고 평가했다. 지금도 그는 떠오르는 단상을 시로 읊고, 그림을 그리면서 트위터를 통해 많은 이들을 위로하며 어루만져 주고 있다. 위로받고 싶다면 지금 이 책을 펼쳐보라.

 

 

 

인류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세상은 인간 중심 신의 중심의 세계를 떠나

생명 중심의 세계로 가야한다. 이걸 모르고 계속 가면 인류가 제일먼저 멸망할 것이다.

 - 허허당 스님의 트위터에서(2012.07.18.01: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드스페이스 - 생각이 사라진 신기한 마음속 평화 공간
앤디 퍼디컴 지음, 윤상운 옮김 / 불광출판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헤드스페이스(HEAD SPACE)는

전통적인 명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쉽게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

현대 생활에 적합한 형태의 명상 기법이다.

 

이 책의 저자 앤디 퍼디컴은 어느 날 갑자기 아시아로 가서 스님이 되었던 인물이다. 당시 대학에서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다가 그가 훌쩍 아시아로 떠났기에 왠지 창조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상상될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과 씨름을 하던 중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게 아니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생각과 싸우고 있었다. 그가 정식으로 명상을 배운 것은 22살 때의 일이지만 이미 11살 즈음에 고요한 마음을 확실하게 경험한 적이 있었다.

 

명상 수업 시간에는 동양의 낯선 단어들이 많이 사용된다. "그냥 마음을 비우세요", "그냥 내려 놓으세요" 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거나 내려놓는 법을 이미 아는 사람은 굳이 명상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다. 한번에 한 시간 정도 그냥 앉아 있을 필요는 더구나 없는 것이다. 

 

스님으로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스님이 도시에서 생활할 때엔 사정이 좀 다르다. 일반인들은 마음 다스리는 법을 절박하게 찾지만, 스님의 가사에서 풍겨나오는 종교적인 색채에는 불편해 한다. 그들은 삶을 헤쳐 나가는 법,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스트레스를 다루는 법,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 등을 단지 찾고자 했다. 이를 알게된 그는 명상을 일상생활에 통합해야 함을 깨달았다.

 

명상이란 그저 날마다 일정 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자체가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세 가지의 요소 중 일부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명상법에 따르면, 명상을 배우는 자는 우선 명상에 '접근'하는 법을 배우고, 다음에 명상을 '수행'하는 법을 배우고, 마지막으로 명상을 삶에 '통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헤드스페이스(Head Space) 명상은 2010년에 정식으로 소개되었다. 사실 색다르거나 기이한 요소는 없다. 단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비우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쉬운 방법을 소개하는 것 뿐이다. 이 명상의 목적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시도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명상은 삶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다. 하나 이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의 문제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명상의 목적은 명상을 하는 당사자가 명상을 어떤 식으로 이용할지 결정함에 달린 것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 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사이클링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지만, 이들의 목적은 제각각 다르다. 명상도 마찬가지다. 명상은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되며, 그 가치는 자신이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명상의 수많은 효과를 체험하려면 한 가지의 삶의 영역에만 선택할 필요가 없다. 명상은 많은 이에게 만능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마음을 치유하는 아스피린과 같다. 날마다 조금씩 마음을 비우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명상이다. 질병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 삶의 특정 영역을 목표 삼아 명상을 이용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미국 해병대는 최전방 군인에게 집중력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명상을 채택한다고 한다.

 

명상은 기술인 동시에 경험이다. 명상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려면 반드시 '행'해야 한다. 명상은 철학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명상의 목적을 자신이 스스로 정하듯, 명상의 경험도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 책에서 느끼는 스카이다이빙과 시속 200km로 직접 지상으로 돌진하는 경험과는 천양지차이다. 따라서, 명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직접 해 봐야 한다. 

 

명상은 자신을 다른 사람, 새로운 사람, 또는 훨씬 나은 사람으로 바꾸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명상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감정과 생각을 자각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며 이 과정에서 균형잡힌 건전한 시각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 이해 그리고 건강한 관점은 결국 삶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커진다 하겠다. 

 

 

과학자들이 명상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고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은 금물이다. 연구 결과가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효과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몸이 저리고 아파도 인내심을 갖고 명상 지침대로 하루에 10분 직접 경험해 보라. 그리고, 이 짧은 시간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확인해 보라. 

 

"하루에 10분만 마음을 비우면 인생이 가벼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랑이 모양을 한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백두'는 백두산白頭山의 '백'자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인 두류산頭流山의 '두'자가 합쳐진 이름이다. 따라서, 백두대간의 남측구간의 종주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해야 한다. 작가 김별아는 지난해 백두대간을 완주한 '이우학교 백두대간 종주 6기 팀' 출신이다. 2010년 3월 13일에서 2011년 10월 22일까지 장장 20개월간 총 39차에 걸쳐 약 750km에 이르는 길을 완주했다.

 

그녀는 종주 8기 팀을 응원하려고 후배들을 위해 지원 산행에 나섰다. 이 때 지리산은 산불 방지 입산 통제 기간인지라 부득이 출발은 지리산의 이웃인 고남산에서 시작했다. 작년 종주 산행을 할 때는 옆도 뒤도 돌아볼 여력이 전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앞선 이의 꽁무니뿐이었다.

 

동네 뒷산도 오르기를 꺼려하던 그녀가 마흔 살의 몸으로 9시간 동안 약 16km의 산길을 걸을 때 고통의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난산'이라는 별칭이 붙은 높이 846m의 고남산古南山을 올랐을 때의 기억은 지금의 그녀에게 있고도 없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산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대신 산을 타줄 수는 없다. 굳이 하자면 등에 업고 산행을 해야하는데 이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로지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더우면 땀을 흘리고 추우면 몸을 떨면서 걷는 것이다.

 

이 높디높은 산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들이 바다에서 솟아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없이 깊은 심연에서 더없이 높은 것이 그 높이까지 올라왔음에 틀림없다.

 -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고통을 견뎌내며 산을 타는 일은 높은 만큼 깊고, 깊은 만큼 높은 이치를 깨닫는 일과 같다. 오르막길을 기어오르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내리막길을 빨리 내려가면서도 자만하지 않기 위해서는 차라투스트라의 말 "정상과 심연은 하나" 임를 기억해야 한다. 절망과 희망, 죽음과 삶, 고통과 희열은 애초부터 둘이 아니었다. 자, 김별아 작가를 따라 함께 산행해보자.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위치: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코스: 중산리 탐방센터 ~ 벽소령 대피소 (1일차)

        벽소령 ~ 성삼재 (2일차)

거리: 1일차(16.6km), 2일차(17.5km)

시간: 1일차(12시간 30분), 2일차(8시간 30분)

날짜: 2010년 11월 13 ~ 14일(17차 산행) 

 

지리산은 별들의 고향이다. 높고 외롭지만 구김살 하나 없는 말긋말긋한 별들이 우리를 향해 양팔을 한껏 벌리고 있다. 민족의 영산, 어머니의 산, 항쟁의 산 등등 붙은 이름도 많다. 1박 2일의 여정이라 먹거리와 입을거리가 꽉찬 배낭이 무겁기만 하다. 3대에 걸쳐 덕을 쌓지 못하면 지리산의 10경인 '천왕 일출'은 구경 못한다는 말이 있다. 또한, 아무나 감히 함부로 오지 말아야 할 산이라고도 한다. 지리산은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만든다.

 

34km의 거리를 장장 21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산행이 끝났다. 산기슭의 산채비빔밥집에 모여 앉아 다시는 오지 않을 거란 말을 하지만 해냈다는 생각에 모두 감격스러워 한다. 아이글이 쓴 산행 후기에는 유난히 '별'에 대한 글이 많다. 북두칠성을 이렇게 완벽하게 본 적이 없다는 아이의 말처럼, 다시 오른다면 일출보다 별 보러 가는 산행을 택해야 할까 보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마시고 

 

 - 이원규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중에서

 

 

산풍령에서 덕산재까지

 

위치: 경남 거창군 고제면 ~ 경북 김천시 대덕면

코스: 신풍령 ~ 삼봉산 ~ 소사고개 ~ 삼도봉 ~ 대덕산 ~ 덕산재

거리: 15.2km

시간: 7시간 30분

날짜: 2010년 11월 27일 (18차 산행)

 

'산 넘어 산'이란 말을 우린 자주 한다. 인생의 고비 고비가 많기 때문이리라. 갈수록 어려운 지경에 놓이는 우리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큰 산'인 지리산을 넘었다고 산행을 얕보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산이란 작고 낮아도 쉽지 않은 법이다. 산행을 하면 우린 겸손을 배우게 된다.

 

비인지 우박인지 진눈깨비인지 하늘에서 물기가 떨어진다. 어느새 물기가 스며들어 배낭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이번 산행의 삼봉산에서 덕산재 구간은 바로 덕유산 국립공원 지역이다. 겨울의 길목에서 맞는 비는 뼛속까지 냉기가 파고들었다. 눈에만 보이는 가짜 날씨에 속아 우비를 챙기지 않은 사람이 여럿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는 교훈이다.

 

대덕산을 향해 가는 길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고개를 들면 뺨따귀를 철석 때리는 성질 못된 바람 때문에 낙엽 깔린 진창길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모진 비바람에 배낭 커버가 다 날려간다. 흔들리면서 걷는다. 젖으면서 걷는다. 8시간의 산행이라고 14시간의 산행보다 쉬우란 법은 결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최선일 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빵보다 인문학" 이란 클레멘트 강좌가 한국에도 도입되어 경희대 실천인문센터의 최준영 교수가 안양교도소 죄수들을 대상으로 문학을 가르칠 때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가 바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그들은 따가운 외부의 눈총보다 더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한다. 비바람 맞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아파서 더욱 소중한 꽃이다. 

 

 

김별아 작가와 함께 한 백두대간 산행은 2011년 10월 22일 대간령에서 진부령까지 14.3km의 구간을 우중 산행으로 끝을 맺는다. 17차 산행을 시작으로 39차 산행까지 약 11개월 간의 여행은 아름다운 시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아울러 적절하게 인용된 시는 마치 일류기업의 적재적소 인사원칙처럼 그곳에 있었다.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거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중년 들어 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든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들거라

 

 - 박재삼 <산에서>중에서

 

 

나는 주말이면 대개 산에 오른다. 내가 함께 데려가려고 애쓰는 후배가 한 명 있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 "선배님,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오르세요?"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오를 때의 산과 내려올 때의 산이 다르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