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당신이 구닥다리인 척, 고루한 척, 타락한 척하시는 거 저는 알고 있어요. 저는 당신이 부리는 이런 호기 따위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아요. 요즘 들어 때를 만난 유행이기도 하고요. 당신에게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거나, 아니면 고통스러운 병일 테지만, 당신이 원하면 언제고 사라져버릴 겁니다. 당신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데, 마음속 공허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죠. 공허에 귀를 기울이고 또 당신이 허락하기만 한다면, 당신의 그 공허를 채워줄 여인이 나타날 겁니다. 하지만 이는 제 관심사에서 벗어난 일이에요. 저는 예술가에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 안의 남성이 불행한 단 하나의 이유는 예술가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2-43)

저는요, 절대 저 자신을 해치지 않아요! 저는 타인을 좋아하는 만큼 저를 좋아합니다. 맹세컨대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저 자신을 좋아합니다! 제 팔레트, 제 영광의 도구가 저에게 고통의 도구라고 말한 이유는 제가 고통 없이 일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질서 속에서, 제 몸이나 마음의 죽음이 아니라 제 신경이 소지된 후 안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이게 답니다. 테레즈, 제 말 어디에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던가요? 저는 오로지 피곤에 빠졌을 때만 제대로 작업합니다.”

 

(48)

당신 속에 있는 그 힘과 제가 전쟁을 해야 하는지, 또 행복해지고 차분해지라고 당신을 설득하면서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신성한 불을 없애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열망은 정신에 대한 지속적인 조건이 될 수 없으며, 열망이 제 열에 들뜨면서 생생하게 표현되었을 때, 열망은 저절로 쓰러지거나 우리를 부수고야 말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든 연령대가 각각의 특별한 힘과 징후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우리가 소위 대가들의 다양한 방식들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그들 존재의 연속적인 변화가 만들어낸 표현이 아니었던가요? 서른 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걸 갈망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무엇이건 어떤 관점에 관한 확신을 당신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환상의 나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빛의 시기가 올 겁니다. 당신은 진보하기를 바라지 않나요?”

 

(93)

테레즈, 저는 말입니다.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건 당신이지 저 자신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을 알게 된 이후, 당신은 제가 행복을 믿고 행복의 맛을 느껴보게 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제가 버릇없는 아이 같은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은 게 당신 잘못은 아닙니다. 그렇지요! 저는 이보다는 나은 사람이지요. 저는 당신의 사랑이 제게 행복이 될 것인지를 지금 묻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오로지 사랑이 삶이 될 거라는 것, 그리고 좋건 나쁘건, 제게 필요한 게 바로 이런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159)

이제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우리 서로에게 솔직해집시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아요. 서로 사랑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요! 서로를 속여왔던 겁니다. 당신은 그저 연연이 있었으면 했던 거고, 아마 당신에게 저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지요! 당신에게 필요했던 건 하인이나 노예였다고요. 불행한 저의 성격, 제가 진 빚, 저의 권태, 무분별한 생활에서 느끼는 저의 무기력함, 진정한 사랑에 대한 저의 환상이 저를 당신의 재량에 맡기게 될 거라고, 제가 다시는 정신을 차릴 일이 없을 거라고 믿게 만든 겁니다. 이렇게 위험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면 조금 더 행복한 성격, 더 큰 인내심, 더 많은 융통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많은 재능이 당신에게 필요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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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0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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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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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었단다. 독서 기록을 찾아보니 2016년에 읽은 것이 마지막이구나. , 그렇게나 오래 되었나? 얼마 안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월이 빨리도 흘러가는구나. 둘째가라면 서러운 다작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7년 가까이 읽지 않았으니,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을까 싶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은 작년에 출간된 <희망의 끈>이라는 책이란다. 희망을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런 말이 이 책의 내용과 연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책을 펼쳤단다.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어디 가지는 않았구나. 여전히 책장 잘 넘어가고, 잘 짜여진 구조물처럼 촘촘한 이야기가 펼쳐지는구나.


1.

프롤로그는 안타깝고 무서운 이야기로 시작한단다.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의 어린 아이들이 처음으로 둘만 외할머니네 집에 갔단다. 대견하게 둘은 아무런 문제없이 외할머니 집에 갔단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했고, 그만 어린 남매는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단다.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는 크게 좌절하여 삶이 무너지는 듯했어. 그리고 그들은 삶의 희망을 다시 찾아보고자 아이를 갖기로 했어. 이젠 나이가 많았던 레이코는 임신이 쉽지 않았고, 병원에서 어렵게 체외수정을 통해 힘들게 임신에 성공을 했단다.

….

야요이 찻집을 운용하는 찻집 주인 하나즈카 야요이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단다. 사라진 물건은 없어 보였어. 담당 형사인 마쓰미야는 수사를 시작하기 시작했어. 야요이는 50대 중반의 여자로 이혼을 해서 혼자 지내고 있고, 자녀들은 없었어. 마쓰미야는 사촌이자 상사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 그 상사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의 주인공 가가 교이치로였단다. 그럼 이것도 가가 형사 시리즈인가 싶긴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마쓰미야로 볼 수 있단다. 가가 형사가 조연이나 특별출연으로 출현했다고 해야 할까.

이 소설은 야요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마쓰미야의 숨겨진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단다. 어느날 아야코라는 사람한테 연락이 왔단다. 모르는 사람인데 아야코는 마쓰미야의 어머니를 알고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니, 아야코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단다. 어머니도 뭔가 아는데 말씀을 안 해주시는 것 같았어. 아야코가 마쓰미야에게 연락한 이유는 아버지의 유언장 때문이었단다. 작은 숙박 시설을 의미하는 료칸의 주인 요시하라 아야코.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아버지는 말기암이었단다. 그런데 아버지의 유언장에는 낯선 이름 마쓰미야 유헤이란 이름이 있었어. 그래서 연락을 하게 되었던 것이란다. 대충 이러면 숨겨둔 아들일 확률이 높은데,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단다. 변호사를 통해 마쓰미야가 아버지의 사생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아야코와 마쓰미야는 만났고, 아버지의 유언장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알았던 마쓰미야는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의 존재에 조금 당황을 했고,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2.

그건 그거고 마쓰미야는 야요이 살인사건에 대해 열심히 수사를 했단다. 죽은 야요이는 평판이 좋은 착한 사람이었단다. 야요이가 죽기 전에 만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했단다. 피트니스 강사, 피부관리사, 전남편 등 주변 사람들을 만났지만 특이한 점이 없었어. 전남편을 오랜만에 만난 것이 특이한 점이지만, 그들은 아이를 갖지 못해서 합의해서 헤어진 것이라서 안부를 전하기도 했었나 봐. 이번에는 오랜만에 만나기는 했지만전남편은 알리바이가 확실했단다.

한 가지 또 특이한 점은 평생 관심 없던 피트니스 클럽과 피부관리를 한 달 전에 등록했다는 점. , 사랑을 시작하셨나? 그 다음 탐문 수사는 단골 손님들이었어. 단골 손님 중에 프롤로그에서 남매를 잃었던 부부 중에 남편 유키노부가 있었단다. 그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프롤로그 때와는 시간이 꽤 흘러서 유키노부는 예순두 살이었고, 그때 어렵게 낳은 아이는 어느덧 14살이 되었어. 이름은 모나였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내 레이코는 2년 전에 백혈병으로 죽고 말았단다. 유키노부는 딸 모나와 단 둘이 지냈단다. 하지만 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어.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는 모나가 태어났을 때부터 잘 보살피려고 했단다. 사고로 남매를 잃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조심을 하는 건 좋았는데, 너무 도가 지나쳤단다. 뿐만 아니라 모나 앞에서 계속 죽은 남매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모나에게 숨겼어야 했다고 생각한단다. 어렸을 때는 모르겠지만, 사춘기 소녀에게 죽은 오빠 언니의 이야기는 오히려 부모와 관계를 좋지 않게 만들었을 거야. 역시 모나와 아버지 유키노부 사이는 좋지 않았단다. 집에서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런 유키노부가 야오이 찻집에 자주 들렀던 것이란다. 그럼 야요이가 사랑에 빠진 이가 유키노부인가? 하지만 유키노부 역시 알리바이도 있고 특이한 점도 없었어. 사랑하는 사이 같지도 않았어. 유키노부와 인터뷰를 해보니 야요이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야요이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고 했어.

….

한편 마쓰미야의 상사이자 사촌형인 가가는 야요이의 전남편 와타누키과 동거인 다유코를 인터뷰했단다. 와타누키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다유코와 함께 살고 있었단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유코는 가가와 이야기하다가 자신이 죽었다고 범행 사실을 이야기했단다. 아니, ? 질투심 때문에? 와타누키가 전부인 야요이를 만나고 와서 행동이 이상해진 것을 눈치채고, 무슨 일인가 야요이를 만나러 갔다가 우발적으로 야요이를 죽이게 되었고, 지금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단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3.

가가가 다유코를 인터뷰하는 동안 마쓰미야는 유키노부 주변 인물들을 조사했는데, 당연히 그의 딸 모나를 조사했어. 모나를 만나 야요이의 사진을 보여주자,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어. 모나가 테니스부에 있는데, 연습하는 것을 자주 보러 온 사람이라고 했어. 왜 야요이는 모나의 학교에 찾아온 걸까. 마쓰미야는 야요이의 부모님 댁에도 찾아갔어. 그리고 그곳에서 야요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깜짝 놀랐단다. 왜냐하면 야요이의 어린 시절 사진과 모나와 너무 똑 닮았기 때문이야. 뭐지? 머릿속에서 스치는 가설이 하나 지나갔어..

체외수정소설 속 주인공 마쓰미야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만 해보면 되겠지. 그리고 유키노부를 다시 만나서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하자, 유키노부는 더 이상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해주었단다.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가 불임치료를 받았던 병원은 애광병원이라는 곳이었는데, 모나를 임신했을 때 수정란이 바뀐 것 같다고 했어. 모든 것은 병원의 실수라고 했지. 그런데 안 바뀌었을 확률은 아주 조금은 있다고 했어. 그래서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는 그냥 아이를 낳기로 했단다. 그렇게 모나가 태어난 것이고, 모나는 자라면서 이상하게 엄마도 아빠 모두 닮지 않았단다. 하지만 친딸처럼 아니 친딸보다 더 소중하게 키웠단다.

이 비밀은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만 알고 있었단다. 그런데 레이코가 2년 전 죽기 전에 모나의 친부모에게 알려주는 것이 낫겠다고 했어. 그래서 유키노부는 수소문 끝에 야요이 찻집까지 오게 된 것이란다. 야요이게 진실을 이야기해주었어. 야요이는 비교적 침착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야요이는 전남편 와타누키를 만나 이야기를 했단다. 그래서 최근에 오랜만에 전남편을 만난 거야. 야요이는 자신의 딸을 멀리서라도 보기 위해 모나가 다니고 있는 중학교에 자주 갔던 것이란다. 그리고 모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피트니스 클럽도 다니고 피부관리도 받았던 거야.

그렇다면 왜 다유코는 야요이를 죽였을까. 다유코는 와타누키를 만나기 전에 어떤 유부남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었어. 와타누키를 만나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와타누키가 전부인을 만나고 와서는 입양을 검색하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였어. 그래서 자기를 버리고 전부인과 재결합을 하는 줄 알고 야요이를 찾아갔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해를 해서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했어. 가가 형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고 크게 후회를 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자백을 하게 되었다는 거야.

유키노부는 이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유일한 사람 모나에게도 이야기를 했단다. 모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진짜 살가운 딸처럼 대했단다. 유키노부의 결정이 모나가 이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이고 하고, 자신을 평생 보살펴 준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 아닌가 싶구나. 이렇게 진실은 밝혀지고 사건도 해결되고…. 그런데 굳이 야요이를 찾아가 진실을 이야기를 해야했을까. 야요이가 알게 되어서 좋을 것이 뭐가 있다고이야기를 위한 설정이겠지, 실제 그럴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더구나.

….

그런데 마쓰미야와 아야코의 이야기도 있잖니. 그들이 남매인 거잖니. 그렇다면 마쓰미야의 어머니와 아카코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겠지. 그 사랑도 가슴 아픈 사랑이더구나. 그 이야기는 아빠가 졸려서 생략해야겠구나.

….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무서운 살인 사건을 다루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향기 나는 그런 소설이구나. 그런데 왜 소설 제목이 <희망의 끈>이었던 거지?


PS,

책의 첫 문장: 오우마가도키(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마귀를 만나는 시간이라는 뜻-옮긴이)라는 말이 있다.

책의 끝 문장: “긴 끈이 끊기지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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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유길준은 <서유견문> 14장 개화의 등급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화란 온갖 사물을 깊이 연구하고 경영하여, 날로 새롭고 더 새로워지도록 기약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 진취적인 기상이 웅장하여 사소한 태만함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개화하는 일을 주장하고 힘써 실행하는 자는 개화의 주인이며, 개화한 자를 부러워하여 배우기를 기뻐하고 본받기를 즐거워하는 자는 개화의 빈객이다. 또 개화한 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 부득이하여 따르는 자는 개화의 노예라 할 것이다.”


(35)

1902년부터 1903년까지 서울 주재 이탈리아 총영사로 일한 카를로 로제티도 1904년 이탈리아에서 출간한 <꼬레아 꼬레아니>에서 한국인들의 폭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에서는 많이 먹는 것이 큰 자랑거리의 하나이며,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는 누가 더 많이 먹는가를 내기하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다. 이 경우 그들이 먹어치우는 엄청난 양은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체질로 인하여 상류층에서 가장 즐기는 오락이 바로 잔치라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혼령들을 위한 제사는 제쳐두더라도 결혼식 잔치에서부터 친척의 기일날에 이르기까지 즐거운 연회가 항상 함께 한다.”


(73-74)

서재필은 자서전에서 영은문은 조선이 중국의 명청 양국을 상국으로 섬길 때에 생긴 것인데, 우리가 중국의 노예라는 표라고 볼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본국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이 영은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더러운 표, 부끄러운 이 문을 없애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였다. …… 영은문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다 독립문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때마침 내가 가진 화첩 중에 파리의 개선문이 생각나서 그 규모를 축소해 그 모양만은 똑같이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때 독일공사관에 근무하는 스위스 사람에게 설계도를 부탁 작성하였다. 그리하여 심()모라는 목수가 시공하였는데 총공사비는 1500여 원이 들었다.”


(128)

처음에 전화는 텔리폰이란 말을 음역(音譯)해서 덕진풍(德津風)이라고도 했고 의역(意譯)해서 전어기(傳語機)라고도 했다. 다리풍, 어화통, 전어풍 등으로도 불렸다. 영어 텔레폰의 차음이거나 신조어다.  당시 일반인들은 하늘의 전기바람은 비구름을 말리고 땅의 덕진풍은 땅 위의 물을 말린다며 전기와 전화를 싸잡아 경원시했다. 진용옥은 덕진풍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지만, 텔레폰의 한역이므로 덕률풍(德律風)’이 맞다고 주장했다.


(243-244)

또 전인권은 이 당시 종로는 조선의 아크로폴리스였으며, 이들의 투쟁은 단기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만민공동회는 종로에 연단을 만들고 신분과 나이의 구별 없이 어린이조차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하는 등 한국의 직접적 민주주의또는 대중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원형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255)

윤치호가 현실에 굴복해 변절했을망정, 그에게 국가, 사회를 생각하는 그런 정신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윤치호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즉시 관직을 버리고 애국계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06년에 결성된 대한자강회의 회장에 추대되었고, 1907년에 조직된 비밀단체 신민회의 주도 멤버로 활약했다. 그는 그런 활동을 하다가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인데, 출감 후 그는 <매일신보> 사장과의 회견에서 이후 일선동화(日鮮同化)를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했다.


(273-274)

1899 5 26일에 일어난 전차 소각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종로 2가에서 전차가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를 치어 죽이자 아이의 아버지가 도끼를 들고 전차에 달려들었다. 전차가 멈추지 않고 지나가려 하자 이를 지켜보던 군중들이 차장과 운전수를 향해 돌진했다. 그들이 도망가자 군중은 방치된 전차에 돌을 던져 파괴하고 그 위에 석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또한 뒤에 달려오던 다른 전차도 전복시키고 태워버렸다.


(369)

1902년부터 1903년까지 서물에 주재한 이탈리아 총영사 카를로 로제티는 1904년 이탈리아에서 출간한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장례식의 주된 분위기는 분명 슬픈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바로 자신들의 감정을 가장하려는 극동 아시아 모든 민족의 기질인 것이다. 상여꾼들은 종종 청중의 웃음을 자아내는 노래를 부르며 보조를 맞춰 행진하고, 가족을 둘러싼 친지들은 농담이나 웃음짓으로 가족을 흥겹게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쓰는데, 우리 관점에서 볼 때는 매우 어색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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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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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가끔씩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읽곤 한단다. 이 시리즈는 최근에도 계속 신간이 나오고 있는데, 알아보니 100권까지 기획했다고 하는구나. 엄청난 프로젝트로구나. 책 가격이 좀 비싸긴 한데, 컬러 사진도 많이 담겨 있어 읽기 편하고 책 구성도 괜찮고, 그리 두껍지도 않고(^^) 해당 인물과 그의 작품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좋더구나. 그래서 가끔씩 읽곤 한단다. 이번에 읽은 것은 클림트라는 작가란다. 지은이는 전원경이라는 분인데, 아빠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분이란다.

...

클림트라고 하면 화가보다 더 유명한 <키스>라는 작품의 작가로만 알고 있단다.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구나. <키스>라는 작품은 아빠가 알고 그림 중에 가장 화려한 그림인데 실제로 그림에 금박을 붙여 놓은 작품이란다. 너희들에게도 이야기했더니 <키스>라는 작품을 알고 있더구나. 이상한 포즈로 키스를 하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야. 그러면 이 유명한 작품을 그린 클림트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이 그림은 어떻게 그리게 되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알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펼쳐 들었단다.


1.

클림트. 이 분에 대한 사전 지식은 하나도 없었단다.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트리아 빈 출생. 오스트리아 빈이라고 하면 음악의 도시 아닌가? 오스트리아 빈의 화가로는 클림트가 대표적이라고 하는구나. 화풍이 독특해서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에곤 실레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 또한 오스트리아 빈 출신으로 클림트와 교류도 했다고 하는구나.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 공항에 내리면 공항 벽에 클림트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클림트를 그들의 대표 작가로 공식 인정하는가 보구나.

====================

(288)

예술의 도시 빈에는 여러 예술가들의 흔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남아 있다. 도시 곳곳에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와 슈베르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거장들 중에서도 클림트처럼 빈에 자신의 발자취를 확실하게 남긴 이는 없다. 클림트는 빈의 공기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존재다. 빈 슈베하트 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이들은 누구나 공항 벽에 펼쳐진 <키스>의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실물보다 훨씬 더 큰 그 이미지들은 클림트의 도시 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 오래된 황제의 도시는 이제 예술의 황제로 클림트를 떠받들고 있다. 제국의 광휘는 오래 전 사라졌으나, 클림트의 영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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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볼게. 클림트가 언제적 사람이냐면, 1862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서 1918년 죽을 때까지 줄곧 빈에서 지냈다고 하는구나. 클림트가 살았던 시절의 오스트리아 빈은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였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반 츠바이크도 오스트리아가 전통을 중시하는 것을 빗대어 어제의 세계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어제의 세계>는 슈테반 츠바이크의 책제목인데 아빠도 지은이만 보고 사둔 책인데 오스트리아에 관한 책인가 보구나. 살짝 읽기 어렵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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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말처럼 클림트가 살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어제의 세계였다. 황제가 거주하던 도시, 19세기 말에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과 고딕 양식의 교회를 지었던 시대착오적인 도시가 클림트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그처럼 과거지향적인 분위기에서도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19세기를 떠나 20세기로 전진하는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기가 바뀌는 와중에 클림트는 먼 과거와 먼 나라에서 찾아낸 영감을 통해 혁신적인 걸작들을 창조해냈다. 그 혁신 속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모순과 불균형들은 천재이기 이전에 빈 사람이었던 클림트가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클림트의 걸작들은 과거인 19세기도, 미래였던 20세기도 아닌 제3의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으며, 그 독특한 아름다움은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개성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클림트의 걸작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복잡하고도 모순된 한 도시가 놀라운 천재성을 만나 이뤄낸 유니크한 혁신이었다.

====================

클림트가 1912년부터 죽은 1918년까지 만년에 지내던 집이 있는데, 클림트 빌라라 부르는 그 집이 2000년에 복원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독특하게도 그 집 거실에 삼국지의 관운장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하는구나. 클림트가 말년에 일본 판화 등 동양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2.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에 보헤미안 이민자 집안에서 칠남매의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하는구나. 딱 봐도 어린 시절은 가난할 것 같구나. 역시나 가난했대. 그래서 17살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동생인 에른스트, 친구인 프란츠 마치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리고 건축물 장식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구나. 운도 좀 따르고 실력이 소문나면서 그들은 점점 많은 그림과 중요 건물의 천정과 벽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단다. 당시 빈에서도 유명한 부르크 극장의 천장화와 빈 미술사 박물관 벽면 그림도 그랬어.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도 생겨서 그들은 아틀리에를 구해서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 작업도 했대.

행복도 잠시, 동생 에른스트가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죽고 말았어. 그것도 아내 헬레나가 딸을 낳은 직후에 말이야. , 안타깝고 불쌍하구나. 동생 에른스트가 죽기 6개월 전에는 아버지가 56세 나이로 뇌출혈로 돌아가셨단다. 연이어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긴 거야. 이런 경험 때문인지 클림트는 평생 가족을 보살피고 함께 했다고 하는구나.

클림트가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거의 결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여자친구 에밀리 플로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동생의 아내인 헬레나의 언니로 처음 알게 되었다는구나. 그렇다고 클림트가 일편단심 순정파는 아니었다고 해. 여러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고, 사생아가 열네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구나. 에른스트가 죽고 나서 친구였던 프란츠 마치와도 의견차이가 생겨서 예술가 컴퍼니는 해체되었다고 하는구나.

예술가 컴퍼니 활동을 할 때 클림트는 사진보다 다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단다. 책에도 그런 작품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정말 사실적으로 그렸더구나. 그런데 예술가 컴퍼니를 해체하고 나서 클림트는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술을 시도했고, 그와 뜻을 같이 사람들과 함께 빈 분리파를 결성했다고 하는구나. (1897 5) 이때부터 파격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대.

이 시절에 빈 대학의 천장화를 그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의 바뀐 화풍으로 그리려고 했대. 여신의 누드 등이 포함된 스케치 초안을 빈 대학 측에 보여주었대. 빈 대학에서는 당연히 논란이 되었지. 결국 빈 대학은 클림트와 계약을 철회하기로 했단다. 바뀐 클림트의 화풍은 평론가들에게도 비판의 대상이었단다. 그런 비판에 신경 쓸 클림트가 아니었단다. 아마 평론가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면 클림트가 오늘날 그렇게 유명해지지 못했을 거야.

클림트가 기존 전통을 깨는 것은 사실 스타일을 바꾼 것은 아니고, 잠재되었던 것을 겉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하더구나. 클림트가 좋아했던 음악가는 음악의 혁명가 같은 베토벤이라고 하고 베토벤을 위한 <베토벤 프리즈>란 작품을 그리기도 했단다. 그런데 미술을 이해하는 세포가 턱없이 부족한 아빠로서는 그 그림이 도대체 왜 <베토벤 프리즈>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더구나. 그런데 그 그림이 클림트 그림에 있어 중요한 이유는 금을 사용하는 소위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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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26)

금세공업자의 아들인 클림트는 금을 얇게 펴서 바르는 중세의 기법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은 금을 칠한 벽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했다. <베토벤 프리즈>가 큰 화제를 모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클림트의 동료들은 이 새로운, 동시에 지극히 고답적인 재료의 등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금의 사용은 예술가를 마치 신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심 클림트가 바라던 바였다. 클림트의 황금시대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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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앞서 이야기했듯이 클림트는 평생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냈는데, 몇 번 여행을 갔었는데 그 중에 이탈리아 라벤나 지역을 다녀온 것이 그의 그림 양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라벤나 지역에 성당이 많았고, 성당에 모자이크 양식으로 그림이 그려졌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았대. 라벤나 여행을 가기 전 작품인 <소냐 닙스의 초상>과 라벤나 여행을 다녀온 후 작품인 <프리차 리들러 부인의 초상>을 보면 그의 변한 화풍을 여실히 알 수 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키스>라는 작품을 완성하게 된단다. 당시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양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그 그림에 흉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구나. 이 그림은 현재 벨베데레 미술관에 있다고 하는데, 검은 벽에 <키스> 한 점만 딱 걸려 있다고 하는구나. 지은이 전원경 님께서 <키스>에 대한 평가를 한 글이 있는데 감정이 메마른 아빠가 읽어봐도 그림에 대해 잘 설명해 주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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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벨베데레 미술관의 <키스>가 전시된 방으로 들어서면 검은 벽에 <키스> 한 점만이 걸려 있고 그 앞으로는 관람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려 있다. 독일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등 각 나라 가이드들의 열띤 해설이 한꺼번에 들려온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과 소란은 이 그림 앞에서 일순간에 정지한다. 남자가 여자의 몸을 안고 볼에 막 입을 맞추려고 하는 순간이다. 하나가 된 두 사람의 주위로 온통 황금빛 비가 내리고 있다. 이것은 곧 소멸하기 전의 우주, 마지막으로 빛나는 불꽃의 광휘와도 같다. 극도로 관능적인 순간이지만 결코 천박하거나 노골적이지 않다. 직사각형 문양의 가운을 입은 남자는 황금빛 구름을 몰고 천상에서 지상으로 막 내려온 듯하고 꽃무늬 옷을 입은 여자는 지상에서 막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 여자의 발목에는 황금빛 넝쿨이 감겨 있다.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지만, 남녀가 서로를 갈구하는 감정은 너무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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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키스>는 화가로서 클림트의 인생이 함축된 작품이기도 하다. 남녀의 뒤로 펼쳐진 어두운 배경이 된 암흑은 그의 여름 휴가지인 아터 호수의 고요히 일렁이는 물결과 엇비슷하고, 기하학적인 황금빛 무늬는 라벤나에서 본 비잔티움 모자이크, 그리고 아버지의 금세공 작업을 연상시킨다. 결국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클림트의 인생은 <키스> 한 점에서 모두 표현된 셈이다.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갖가지 언어로 들리는 해설에도 불구하고 전시실은 고요했다. <키스>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거대한 침묵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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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림트의 그림 중에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란 그림이 있단다. 이 그림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남편인 블로흐-바우어 남작이 의뢰하였단다. 그림 속 모델은 당연히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부인이겠지. 부인이 죽으면서 이 그림을 오스트리아 정부에 기증하라고 유언을 남겼대. 그런데 그 와중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이 그림을 나치가 가져갔다가 전쟁이 끝난 후 남편 블로흐-바우어가 가지고 있다가 블로흐-바우어가 죽으면서 그림을 조카에게 주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조카가 미국에 망명을 해서 그 그림은 미국에 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유언에 따라 그림을 오스트리아 정부에 넘겨야 한다고 소송을 했지만, 져서 그 그림은 여전히 미국 뉴욕의 한 갤러리에 있다고 하는구나.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구나. 그림의 주인은 모델인가? 의뢰한 사람인가?


4.

클림트는 잘 안 알려졌지만 풍경화도 많이 그렸다고 하는구나. 아터 호수에 많이 갔는데, 그곳을 그린 풍경화가 많대. 아터 호수를 갈 때 가장 많이 동행한 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클림트의 평생 연인 에밀리. 에밀리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고 커리어 우면으로 당시 빈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하는구나. 에밀리는 클림트가 여성 편력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대. 당시 빈에서는 배우자가 바람 피는 것에 대해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에밀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 같아. 평생 연인이고 클림트가 열네 명이나 되는 사생아가 있지만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고 하는구나.

클림트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동생 에른스트가 어린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죽은 것을 보고 평생 건강에 신경 쓰면서 살았다고 하는구나. 운동도 규칙적으로 했대.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와 같은 나이인 56세에 아버지와 똑 같은 뇌출혈로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무서운 유전자의 힘이로구나. 그의 임종을 가족들과 에밀리가 지켜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에곤 실레도 클림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가 하는구나. 그래서 클림트의 죽은 모습을 그리기도 했대.

아빠가 이야기를 쭉 생각나는 대로 해서 한가지 빼먹은 게 있구나. 클림트가 빈 분리파를 조직했다고 했잖아. 빈 분리파가 해체되고 나서 빈 공방을 조직했는데, 다시 인테리어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는구나.

이상으로 클림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서도 클림트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서 클림트를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어떤 화가에 대한 책을 쓰고 싶으세요?”

책의 끝 문장: 제국의 광휘는 오래전 사라졌으나, 클림트의 영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자주 예술 작품을 통해 한 시대의 개성과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받는 독특한 느낌과 기묘한 불균형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빈의 모습 그 자체다. 19세기 말의 빈은 다가오는 다음 세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중세 시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빈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욱 갈망한 도시였다. 클림트의 그림들은 빈의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 P14

클림트의 일생에서 가족의 그림자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클림트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가족에서 집착했고 타계하는 순간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다. 클림트에게 필생의 연인이었던 에밀리 플뢰게를 만나게 된 것도 그가 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 것은 1892년이었다. 그해 아버지 에른스트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 동생이자 동료, 예술적 동지이기도 했던 에른스트가 심근경색으로 급사하고 말았다. 당시 클림트의 나이는 서른, 에른스트의 나이는 스물여덟에 불과했다. 연이은 비극이 클림트 일가를 덮친 셈이다. - P66

오랜 세월 빈은 모든 역사적 발전에서 동떨어진 장소였다. 그것은 다분히 빈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도 했다. 19세기 말, 바다 건너 뉴욕에서 22층짜리 고층빌딩이 지어지고 같은 유럽 대륙 내의 파리에서도 철골 구조로만 이뤄진 높이 304미터의 에펠탑이 세워지며 ‘현재’의 도래를 알리고 있을 때, 빈 사람들은 오히려 바로크풍의 웅장한 박물관과 르네상스 스타일의 기둥으로 장식된 부르크 극장을 세웠다. 그리고 그처럼 과거에 영원히 머물고 있는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오스트리아 예술가 조합은 심지어 ‘자국 예술에 해악을 끼친다’는 이유로 해외 작가들의 오스트리아 전시를 금지했을 정도다. - P75

금세공업자의 아들인 클림트는 금을 얇게 펴서 바르는 중세의 기법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은 ‘금을 칠한 벽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했다. <베토벤 프리즈>가 큰 화제를 모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클림트의 동료들은 이 새로운, 동시에 지극히 고답적인 재료의 등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금의 사용은 예술가를 마치 신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심 클림트가 바라던 바였다. 클림트의 ‘황금시대’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 P124

클림트는 생전에 이미 유명한 화가였으나 작품에 대해서는 늘 평가가 교차했다. 보수적인 빈의 분위기 속에서 클림트의 관능적이고 파격적인 그림은 많은 비판과 논란을 불러왔다. 1908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키스>를 구입하면서 위상은 더욱 높아졌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예술가는 아니었다. 더욱이 사망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해체되고 빈 역시 쇠락하면서 클림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잊혔던 클림트의 작품이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은 사후 약 50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클림트를 비롯해 이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가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면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클림트는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화가가 되었다. - P281

실레는 열입곱 살이던 1907년 클림트를 처음 만났다. 당시 실레는 빈 미술학교 학생이었고 클림트는 이미 빈 분리파와 빈 공방을 통해 오스트리아 전체에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다. 그러나 실레의 드로잉을 본 클림트는 이 소년의 넘치는 재능에 압도되고 말았다. "제가 재능이 있다고 보시나요?"라는 실레의 물음에 클림트가 "재능이 많아, 너무 많아"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리고 클림트는 덧붙였다. "나도 자네처럼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 실레가 클림트에게 자신의 드로잉과 클림트의 드로잉을 바꾸자고 제안했을 때 클림트는 이렇게 답했다. "왜 자네 걸 내 것과 바꾸려고 하지? 자네 그림이 훨씬 더 나은데 말이야." 이 대답의 의미를 실레는 곧 깨닫게 된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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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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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 연말에 광고를 통해서 캐나다 교포 출신 허주은 님이 쓴 <사라진 소녀들의 숲>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단다. 요즘 다른 나라에 사는 우리나라 교포들이 우리나라를 소재를 영어로 쓴 책이 번역 출간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더구나. 그런 흐름에 또 하나의 책이 나왔나 보다 했단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엄마가 너희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면서 이 책을 추천하더구나. 어디선가 추천 글을 봤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아빠가 주문을 했어.

책이 생각보다 많이 두껍더구나. 너희들은 숙제하느라 바뻐서 그런지 책이 한동안 그대로 있길래 아빠가 먼저 펼쳐 보았단다.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최고의 소설를 비롯하여 많은 홍보 문구가 있어서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단다. 너무 기대를 한 것이 잘못일까. 책을 넘기면서 실망감이 점점 쌓여갔고, 그래도 결말은 봐야지 하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책이 두꺼워서 끝까지 가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구나.

이 소설은 공녀(貢女)라는 실제로 우리나라에 실제 있었던 아픈 역사를 소재로 삼았단다. 공녀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해서 간섭을 할 때, 강대국의 요구 또는 협박에 의해 약소숙의 미혼 여성을 보내는 것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나라가 고려를 침략했을 때, 고려의 여자들을 원나라에 공녀로 많이 보낸 역사가 있단다.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란다. 그런데 이 소설의 배경은 조선시대 초기란다. 조선시대면 중국땅에는 명나라인데, 이때도 공녀를 보냈었나?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명나라 초기에도 원나라만큼 아니지만 공녀를 요구해서 보낸 경우가 있다고 하더구나. 아무튼 시대적 배경은 조선 초기인 1426년이란다.


1.

때는 1426. 주인공 민환이. 성이 이고 이름이 환이란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이름을 부를 때 환이라고 이름만 부르는 것이 아니고 대화체 속에도 민환이이렇게 다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다 보니 번역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는 앞으로 환이라고 할게. 환이는 남장을 하고 홀로 제주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단다. 일 년 전 종사관이었던 아버지가 제주도에 가셨다가 소식이 끊겼기 때문에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란다.

아버지가 제주도에 가신 이유는 사라진 13명의 소녀들을 조사하기 위해서였어. 그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실종되신 거라서 그 사건과 아버지의 실종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환이는 원래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5년 전에 아버지가 진급을 하시면서 제주도를 떠났단다. 환이에게는 동생 매월이가 있었는데, 매월이가 신병(神病)이 들어, 그러니까 신내림을 받아서, 5년 전 환이와 식구들이 제주도를 떠날 때 매월이는 제주도에 있는 노경심방이라는 무당에게 맡겼단다.

환이가 이번에 제주도에 가면 매월이를 5년만에 만나는 것이었단다. 환이가 제주도에 도착해서 먼저 매월이를 찾아갔단다. 매월이와 환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5년만에 만나도 매월이가 그리 반가워하지도 않았단다. 사실 매월은 어린 자신을 혼자 두고 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단다. 덩달아 언니한테도 서운함이 있었겠지. 어머니라도 계셨으면 말렸을 텐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안 계셨지. 아버지가 잘못했네. 진급을 포기했어야지. 어린 딸을 홀로 남겨두다니

아무튼 환이는 13명의 사라진 소녀들의 대한 수사를 시작했단다. 그런데 13번째 소녀였던 현옥이라는 소녀의 시신이 한라산 자락에서 발견되었단다. 환이는 그곳을 시작으로 사건 조사를 시작했단다. 그 사건을 조사하다 보면 아버지의 행적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매월도 환이를 환대하진 않았지만, 환이를 도와주었단다. 시신 발견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중에 유선비라는 사람이 환이의 조사를 도와주었어.

환이는 시신으로 발견된 현옥의 언니인 고이슬을 만났어. 고이슬은 일 년 전에 환이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단다. 드디어, 아니 벌써 실마리가 잡히는 건가. 하지만 조사도 쉽지 않았어. 하얀 가면을 쓴 이가 환이를 공격했고, 이를 매월이가 나타나 도와주어 간신히 도망치기도 했단다. 아버지를 찾다가 환이도 덩달아 죽을 것 같구나. 조선 시대 낯선 장소에서 아무런 직책도 없는 여자 혼자 사건을 조사하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 너무 이질감이 느껴지더구나. 남자 형제가 없다면 일가 친척에게 도움을 청해도 도와줄 남자 친척이 있었을 것 같은데양반집 규수인 것 같은데, 든든한 하인들이라도 동행하면 좋았을 것을그 밖에 여러 가지 소설의 설정이 너무 이질감이 들더구나. 조선시대 맞나, 싶더구나.


2.

환이는 조사를 하면서 의심 가는 사람들이 생겼단다. 제주도로 유배를 온 죄인 백씨. 매월을 보살펴 주고 있던 무당 노경심방. 13명의 소녀들이 사라진 마을의 촌장인 문촌장. 제주의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 제주 홍목사 등등. 환이는 가장 먼저 죄인 백씨를 범인으로 의심하는데, 한번 의심하면 모든 정황이 그가 범인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초보 탐정의 실수를 한단다. 설마 읽는 이로 하여금 그를 범인이라고 생각하라고 쓴 건 아니겠지.

다음으로 노경심방을 범인으로 의심할 때도 진심으로 다해 의심하더구나. 환이와 매월은 이 일을 함께 하면서 어떻게 될 것 같니?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질까? 아니면 좋아질까? 뻔하겠지? 그리고 그들은 결국 한라산의 어떤 동굴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 동굴 속에서 소녀들을 찾게 된단다. 그리고 그 일을 벌인 범인들도 찾게 되는데, 개연성도 그렇고 우연성은 지나치게 많고 그렇구나. 지명과 이름과 시대만 우리나를 배경으로 했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앞서 이야기한 이질감이 끝까지 이어졌단다.

이 책을 적극 추천했던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참 별로였단다. 엄마도 읽어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책이 아무리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너희들이 읽기에는 시간 낭비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래서 줄거리도 대충 이야기하고 오늘은 이만 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장장 스무 해 동안 범죄 사건을 수사하며 내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은 없었다.

책의 끝 문장: “집으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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