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짚은 단순한 볏대만이 아니었다. 그건 농경생활을 영위해 가는 데 다양한 쓰임새를 갖는 소중한 재료라는 것을 넘어서서 그 어떤 것보다 청결하고 신성한 뜻을 지닌 대상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짚은 멍석 망태기 삼태기 새끼맷방석 섬 등속의 농사기구며 생활용품을 만들고, 지붕에 이엉으로 얹고, 신을 엮어 신으며, 땔감으로 썼다. 그런 생활의 긴요한 쓰임새 외에도 짚은 길운을 지키고 액을 물리치며, 저승길의 혼백을 받드는 제구(祭具)이면서, 하늘에 이승의 염원을 실어 비는 매개물로 쓰였다. 보름날을 비롯하여 온갖 액땜을 하는 허수아비가 짚으로 엮어졌고, 3년상이 끝날 때까지 사립 밖에 걸리는 사잣밥 망태기가 짚으로 짜여졌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사립 밖에 붓는 물밥의 깔개가 짚이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모아 만든 달집의 짚단에는 또 한해 농사가 가뭄도 홍수도 없이 풍년 들게 해달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지푸라기 하나하나에 서려 있었다.


(51)

토지조사사업은 크게 네 가지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고 있었다. 첫째, 조선의 전국토를 대상으로 총독부 소유의 땅을 최대한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둘째, 모든 종류의 토지 소유자들을 명백히 하여 세금을 철저하게 징수하자는 것이었다. 셋째, 조선땅 전체를 샅샅이 측량하여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완전히 장악하자는 것이었다. 넷째, 양반계층의 재산을 보호해 줌으로써 식민성 지주로 예속시키는 동시에 친일세력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자는 것이었다.


(94-95)

그게 그럴 만한 까닭이 있소. 산이 너무 많은 함경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농토를 찾아 청나라의 봉금령을 어기면서 두만강을 건너다닌 것이 벌써 수십년 전부터였소. 밤에 두만강을 건너가 만주땅에 농사를 짓고 새벽이면 돌아오고는 하는 것이오. 그러다가 잡히면 월강죄로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었소. 허나 배곯는 사람들은 그 죄를 무서워하지 않았소. 사람들은 자꾸 강을 건너갔고, 청나라도 힘이 쇠해지면서 봉금령도 흐지부지되기 시작했소. 그러자 조선사람들은 만주땅으로 파고들어 들이 넓고 물길이 좋은 용정에다 붙박이로 터를 닦게 된 것이오. 실은 이 만주땅이 예전에는 다 우리 땅이었소. 백두산이 가운데 솟아 북쪽으로 산줄기들이 뻗어내린 땅이 만주고, 우리 선조들이 고구려라는 나라로 또 발해라는 나라로 이 만주땅을 다스렸던 것이오.”


(116)

그러나 도를 통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수하게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다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별들이 이 세상 사람들로 느껴지면서 무상감에 빠진 마음은 다시 세속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무상감은 순간이었고 세속으로 열린 마음은 무상의 진리를 잡아먹었다. 피눈물나고 쓰라리고 아픈 나날의 세상살이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인생은 무상한 것이라고 가르치며 고개를 돌리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생은 외적의 온갖 횡포 아래 죽어가고 피흘리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중들이 목탁 치며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고 목청 높여 염불을 왼다고 하여 외적이 물러가고 중생들이 평안해질 리가 없었다. 그건 억지고 눈가림이었다. 태평세월 속에서 편안하게 한평생을 보낸 인생살이는 우주의 수억겁 세월에 견주어 무상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흉악한 총칼 앞에 목숨을 내놓은 채 날이면 날마다 짓밞히는 지옥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이 어찌 무상일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나날은 너무 긴 고통의 유상이요 괴로움의 유상이요 절망의 유상인 것이었다.


(211)

총독부에서는 <역둔토 특별처분령>이라는 것을 공포했던 것이다.

그것은 총독부가 무력을 앞세워 빼앗아 국유지로 편입시켜 버린 조선 사람들의 역토나 둔토를 일본이주민들에게 대여의 우선권을 부여해 주는 특혜법령이었다. 그건 이민정책을 활성화시켜 이민을 많이 오게 하는 조건 마련인 동시에 조선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소작이나마 얻으려고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지배술책이었다.


(262)

그러나 공허는 잠시 망설였다. 마음 한구석에 앞을 가로막는 손이 불쑥 나왔던 것이다. 그 손은 다름아닌 부처님의 손이었다. 그는 그 손을 바로 내칠 수가 없어서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둠 속 저 멀리서 겨울별들이 유난히 또렷또렷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삼천대천 세계로 보자면 사람의 한평생은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 하나의 물방울이요 한 덩이 뜬구름이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인연을 맺지 마라, 인연은 괴로운 것이다, 그리운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원수는 만나서 괴로우니라. 그저 지당할 뿐인 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대로 하자면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때 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불심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있다. 그 마음에 따라 금덩이도 돌로 보이고 아무리 미색인 여자도 목석으로만 보이게 된다.


(313)

술이 취하면 누구나 아리랑을 불렀다. 불러도 목놓아 불렀다. 목놓아 부르다보니 가락은 제멋에 겨워 더 늘어지며 슬퍼지고 넌출져 휘감기며 처연해지고, 술에 젖은 가슴은 그 가락을 못 이겨 허물어지며 더 서러워지고 녹아내리며 한스러워져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가락에는 끝내 물기가 묻어나고는 했다. 그들은 통곡을 대신해 그 가락을 목놓아 부르고, 분을 삭이려고 목놓아 부르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334-335)

국민군단의 창설은 국민회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박용만이 주도한 것이었다.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군사학을 전공한 박용만은 2년 전에 하와이로 옮겨와 국민회 기관지 <신한국보>의 주필을 맡으면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장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해 왔다. 국민군단의 창설은 바로 그 무장투쟁론의 첫 단계 실현이었다.

열여덟에서 스물두 살까지로 제한된 국민군단의 신병들은 130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하와이로 건너와 자라난 젊은이들이었다. 그리고 군단이 갖춘 장비는 사관용 45구경 단총 39, 장도 10, 목제총 350, 나팔 12, 드럼 7, 미합중국 보병학교 교재 28종 등속이었다.

원래 미국통치령 내부에서는 외국인들의 군사훈련이라 군사활동은 일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와이 군사령부에서는 국민군단의 창설을 묵인했다. 그건 국민회의 교섭능력만이 아니라 조선인 노동자들이 각 농장에서 발휘하고 있는 노동능력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에 미국 국무장관 브라이언이 발표한 이례적인 성명서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조선인은 어느 점에서도 일본인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따라서 언제나 조선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조선인 교포단체와 교섭하여 결과를 해결지을 것이며 일본인의 간여를 허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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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피렌체를 지배했던 가문이자 역사상 가장 힘센 시민 가문 가운데 하나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 빛을 못 보던 작가들을 적극 후원해 르네상스 예술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가문이기도 합니다. 메디치 가문이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데 쏟은 거액의 출처가 바로 환어음을 활용한 은행업에서 나온 이윤이었어요. 메디치 가문이 유럽 경제의 큰손으로 성장하도록 기초를 놓은 인물은 조반니 데 메디치입니다. 국제무역을 하며 결제의 어려움을 절감한 조반니는 가장 먼저 유럽 전역에 지점망을 구축해 일종의 환전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상인들은 메디치 가문의 환어음만 가지고 국경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됐죠. 덕분에 귀금속 화폐를 운반하는 비용과 위험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201)

플랜테이션이란 서구 유럽인이 돈과 기술을, 노동자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규모 농장을 말합니다. 사탕수수와 면화가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재배되는 대표 품목이죠.

거대한 규모보다 더 중요한 건 플랜테이션의 운영 방식이에요. 서구 유럽인이 돈과 기술을 제공했다고 했죠? 이들은 토지와 생산시설, 그리고 노동력을 제공해줄 노예를 잔뜩 사들여 대규모로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설탕을 내다 팔아 처음 투자한 돈의 몇 배를 벌어들였죠. 이때 처음 토지와 생산시설을 사들이는 데 들어간 투자금이 바로 자본입니다.


(245-246)

당시 미국이 사회주의 진영을 이기기 위해 택한 전략 중 하나가 자본주의 진영에 속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를 성장시키는 일이었거든요. 미국의 도움을 받아 경제성장을 경험한 국가라면 사회주의 진영으로 넘어가지 않을 테고, 다른 국가들에도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함을 과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죠.

해방 이후 자본주의 진영에 편입된 우리나라에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각종 원조도 받고, 미국이 허용하는 수준에서 보호무역도 적절히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요. 일본과 유럽 등 다른 자본주의 진영 국가들도 미국의 외교 전략에 발맞추어 한국의 보호무역을 용인해주었습니다.


(301)

유독 이해관계가 잘 맞는 국가들이 있다면 WTO가 일률적으로 정한 조건보다 더 장벽을 낮추는 게 좋겠죠. 예컨대 WT) 8% 관세를 적용하라고 할 때, 두 국가끼리 자체적으로 관세를 완전 철폐하는 등 특혜에 가까운 조건으로 시장을 열어둘 수 있어요. 이렇게 이해가 맞는 국가끼리만 특별한 조건으로 협력하는 경우를 지역주의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지역주의 협력체가 바로 유럽연합, 다시 말해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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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일정수준 이상 초과생산된 쌀의 정부매입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을 대해 윤석열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가뜩이나 쌀농사가 위축되고 있는 판에, 그리고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해 식량이 무기화되고 있는 이런 중대한 시기에 돈많은 정부가 가난한 농부의 주머니를 더욱 빈곤하게 만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요, 졸렬한 시책일 뿐이다. 본시 비토라는 것이 대통령의 권한이라고는 하지만 함부로 사용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농민은 아무리 눌러봐야 끽소리 못한다는 안도감이 있기 때문에 비토권 행사의 최적대상으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내가 시골에 강연 나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농사짓는 사람들은 나의 비토비판을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응원한다. 그런데 비극적인 사태는 농민의 대다수가 보수적으로 투표를 했다는 사실에 있다. 뻔히 자기를 죽일 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자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 즉 자기를 억압하는 자를 지도자로 모시는 것이다. 무지의 광란일까? 도대체 민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민주라는 이상은 인간세에 있는 것일 것? 벼라별 생각이 드는 것이다.


(46)

일본의 강점(强占)은 과거지사, 지나간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50년의 역사일 뿐 아니라, 해방 이후 우리민족의 모든 역사를 지배하는 현존사(現存史)인 것이다. 끊임없이 역사의 의미를 묻게 만드는 현존재의 역사인 것이다. 일본의 강점통치가 없었더라면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하여 등장한 미소 양숙의 분할점령도 없었을 것이고, 빨갱이색출도 없었을 것이고, 반공이념도 국시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6.25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세계의 냉전질서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요, 오늘날 소위 말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쓰레기이념도 이 역사에 발붙일 곳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태극기부대니 뭐니 하는 보수이념은 결국 반민특위의 좌절로 살아남은 친일파세력이 대간을 이루는 비극적 흐름일 뿐이다. 이런 떳떳치 못한 슬픈 몸부림도 일본의 강점이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55)

일본은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것은 인류보편사의 정신이 요구하는 도덕성이다. 그 도덕성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인류사의 양심이 바로 우리 역사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요, 일제강점기의 만행이 우리 민족에게 남겨놓은 과제상황이다. 이 인류사의 성스러운 과업을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이 뭉개버리고 또다시 일본에 굴종하며, 일본의 편에 서서 일본의 모든 편익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 국운의 책임을 지고 있는 최고권력자가 이 나라의 성스러운 세계사적 과업의 명운을 무시하고 또다시 일본의 강점과도 유사사한 사태를 재발시키고 싶어하는 형국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너무도 엉뚱하게 들이닥친 허무맹랑한 정황이래서 도무지 이해의 틀을 잡을 수가 없다.


(79)

케네디는 말한다: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

 - 취임연설문 중-

너무도 유명한 명언이지만,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다! 그 조국이 어떤 조국인데, 무엇을 하려는 조국인데! 우리 조선땅에서만해도 미군정시기에 정의롭지 못한 족적을 남겼고 또다시 월남땅에 100만톤이 넘는 폭탄을 투하하려는 조국을 위하여 먼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달라구? 초기에는 영장을 받으면 서로 가려고 다투었다.


(111)

방사성 오염수의 방류는 코로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구원한 해악을 이 지구 온생명에게 끼칠 것이 분명한데, 지금 윤석열은 키시다의 손을 잡고 아무 대책 없이, 걱정 말라고 하면서 시찰단만 보내면 끝나는 문제라고 웃음짓고 있는 형국이다. 시찰단의 명단조차도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잊었는가? 19세기 말, 일본 시찰한다고 파견된 신사유람단 사람들이 결국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을!


(234)

나는 묻는다:”아니 민중이 민중 스스로를 구원한다고 안 선생님(안병무)은 말씀하셨는데, 어째서 민중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그런 인물을 이 험난한 세파를 헤치고 나아가야 할 이 위태로운 시기에 지도자로서 뽑는단 말이오?"


(308)

백제의 멸망을 두고 의자왕 말년의 사치와 타락을 운운하는 것은 사가들의 상투적 근인(近因) 지어내기에 불과한 짓이다. 그렇게 국민의 사랑을 받고 영민한 결단으로 국력을 신장시켰던 해동증자 의자왕이 갑자기 타락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실상에 와닿질 않는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적대해서는 아니 되는 국가를 적대하여 패망일로로 직입하는 오늘날의 꼴과도 같다.


(315)

풍류는 하나의 로칼한 종교단체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고유한 현묘한 도, 즉 길(way)이다. 그 도는 그렇다고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종교와 같은 조직적 힘을 가지며, 군생(群生)을 접화(接化)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유•불•도라는 종교철학의 핵심내용을 다 포섭하는 우리민족 원래의 철학이요, 문화요, 삶의 방식이다. 외래종교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풍류는 이 민족에게서 사라질 수 없다.


(343)

일본의 민중은 자민당화되어 있습니다. 자민당을 객체화 시켜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민당의 정치세력은 근원적인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없습니다. 자민당은 이렇게 큰 원전사고를 치른 후에도 원전을 계속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거시적인 문제에 관해 도덕적 통찰이 없습니다. 더구나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은 언론이 죽어 있습니다. 언론이 국민에게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국과 같은 직접선거도 없지요. 그러니 자민당에 맞서는 사회세력이 없는 셈입니다.”


(344)

키시다는 아베보다 훨씬 더 악랄한 인물입니다(여기 번역을 악랄하다라고 했는데 그가 쓴 표현은 히도이였다). 아베는 순진한 데라도 있어요. 이념적인 경직성은 있어도 그렇게 교활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키시다는 매끄럼하게 생겼지만 악랄합니다. 도덕적 판단이 없이 가지가 하고자 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취하고 마는 인물이지요. 일본인들은 그의 영도 아래 더욱더 타락하게 생겼습니다. 소수의 입장에서 일본의 대세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기력하게만 느껴집니다. 저도 답답하게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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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현수막에 쓰인 글씨 그대로 군산과 강경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었던 것이다. 철도 개통으로 군산 전체가 떠들썩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철도가 개통됨으로써 군산은 마침내 육로 수로 철로 세 가지 길이 합쳐지는 교통의 요충이 됨과 아울러 다른 부()들보다 앞질러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철도 개통의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았다.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 강경에 이르는 뱃길에서 소모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동시에 수송량을 대폭 늘릴 수 있는 이점만이 아니었다. 그 철도는 엄연히 호남선의 일부였다. 따라서 군산의 세력은 항구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륙으로 뻗치게 되어 있었다. 힘을 뻗칠수록 일본물건들을 많이 팔아먹고 조선물건들을 많이 내갈 수 있어서 군산은 그만큼 번창할 수밖에 없었다.

 

(353)

부처님이 설허시기럴 몸언 맘얼 담는 그럭이라고 허셨소. 그렁게 알맹이넌 맘이고 껍데기넌 몸인 것이오. 그런 이치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언 맘이 껍데기인 몸얼 벗어불고 극락왕생허는 것이라고 말씸허신 것이기도 허요. 긍게로 중헌 것언 맘이제 몸이 아닌 것이고, 그 큰애기덜 둘이 도적놈덜헌티 몸얼 더립힌 것언 너물얼 캐다가 손얼 까시에 찔리고, 발얼 돌에 채이고 헌 것이나 하나또 다를 것이 없소. 흔헌 말로, 시상사 다 맘묵기에 달렸다는 말이 바로 부처님의 그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오. 허고, 목매달아 죽은 큰애기가 소로 환생히서 평상 죄닦음얼 헌 것언 첫찌로 목심얼 경시헌 죄요, 부처님이 말씸허시기럴 이 시상이서 질로 에로운 일이 만상 중에서 사람으로 몸얼 짓고 태어나기가 질로 에롭고, 그담으로 에로운 것이 바른 마음 지닌 불자가 되기가 에롭다고 허셨소. 사람 하나가 죽고 새로 사람이 되어 태어나자면 만년에 만년으 세월이 흘러야 된다고 설허셨소. 그리 에롭게 태어난 목심얼 경시허는 것언 질로 큰 죄요. 그담이 함부로 목심 끊어 부모헌티 불효허는 죄요. 그런 죄넌 다 몸이 맘보담 중헌지 잘못 알고 저질른 어리석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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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를 보면 볼수록 경제의 중요성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당나라와 이슬람 군대가 벌인 전쟁도 탐험가들이 새 항로를 개척하러 나선 것도, 두 차례 발발한 세계대전도 모두 경제적 이유로 설명이 더 잘 된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저는 다시 경제학을 돌아보게 되었고, 경제사라는 분야에서 안식을 찾았습니다.


(23)

우리는 모두 돈을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라는 약속된 매개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안전하고 아늑한 삶을 보장해주는 집이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따뜻한 음식이 될 수도 있고요. 즐거운 공연이나 게임 속 아이템,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 서비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 역시 그런 욕망의 일종이지요.


(48)

경제학은 본래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다루기보다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이득, 또는 만족에 관심을 두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만족이나 이익을 경제학 용어로 효용이라고 하는데요. 한정된 자원과 조건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큰 효용을 가져다줄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따지는 게 경제학의 특징입니다. 그러니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도록 효용을 수치화할 수밖에 없는 거죠.


(55)

경제학에서 한계란 한 단위가 추가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오래 굶주렸다가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경우 밥을 한 술 뜰 때마다 만족감, 즉 효용이 증가하겠죠? 이렇게 한 단위가 추가될 때 늘어나는 효용을 한계효용이라고 부릅니다. 밥을 막 먹기 시작했을 때는 배가 많이 고프니까 밥 한 숟가락으로도 상당한 효용을 얻습니다. 한계효용이 큰 거죠. 그렇지만 밥을 먹으면 먹을수록 한 숟가락이 주는 효용은 줄어들어요. 한계효용이 점점 작아집니다. 이렇듯 더 많이 소비할수록 추가되는 만족의 크기는 줄어드는 현상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불러요.


(78)

정부라고 해서 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스나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가 모라토리움 혹은 디폴트 사태에 직면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나요? 모라토리움(moratorium)은 쉽게 말해 빚을 갚을 의지는 있으나 능력이 없으니 상환 날짜를 늦춰달라고 요청하는 일이에요. 지불 유예를 신청하는 거죠. 반대로 디폴트(default)는 채무 불이행, 즉 빚을 못 갚는다고 파산 선언하는 겁니다. 정부가 나라 살림을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놓고 그 빚을 제때 갚지 못할 때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태예요.


(118)

주식은 한자어로 그루 주()와 법 식()자를 씁니다. 무슨 조합인지 바로 이해가 되질 않죠? 그게 당연합니다. 이 표현은 주식을 뜻하는 영어 단어 스톡(stock)’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거든요. ‘stock’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그중에는 그루터기와 저장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루터기가 뭔지 다들 아시죠? 나무나 곡식을 베고 남은 밑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루터기에서 자라난 가지를 베어다가 겨울을 보낼 땔감으로 저장했기 때문에 저장품이라는 의미까지 생겼고요. 거기서 확장해 주식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236)

다가올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결국 우리는 지나온 과거에서 현재를 살아갈 지혜를 구하게 되죠. 경제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골치 아픈 분야가 아니라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존재해온 인간 삶의 총체니까요. 그래서 저는 경제와 역사를 아는 것이 곧 인간을 아는 것이자 세상의 원리를 아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238-239)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화책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 비유적인 내용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골디락스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오두막을 발견합니다.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 외출하고 빈집 식탁에 세 그릇의 수프가 놓여있었습니다. 하나는 뜨거운 수프였고, 또 하나는 식어서 차가운 수프였고, 나머지 하나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수프였어요. 골디락스의 선택은 당연히 미지근한 수프였습니다.

데이비드 슈먼이라는 경제학자가 이 동화에 착안해 골디락스 경제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요. 경제가 지나치게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중간쯤에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이고 지속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죠.


(254)

파생상품이란 예금, 주식, 채권 같은 기초자산에서 파생된 금융상품을 말하는데요, 부동산 저당권을 채권처럼 만들어 내다 팔고, 또 그 채권들을 잘 섞고 포장해서 평균 위험도를 낮은 새로운 투자상품으로 내다 파는 식입니다.


(287)

흑사병은 인류사에 두고두고 남을 지독한 재난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은 농도들은 사회적 지위와 실질 임금이 높아지는 혜택을 입었어요. 또 많은 경작지가 버려지면서 영주의 통제력이 약해진 덕분에 농노는 이동의 자유를 누리게 됐습니다. 이전까지는 거주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 영지에 묶여있던 농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됐죠.

한편 지배 계층 사이에서는 보다 강력한 귀족 가문이 생겨났어요. 상당수의 영주가 권력을 잃고 몇몇 집안에 통폐합된 결과였죠. 말하자면 영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일어난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귀족 가문은 이후 유럽에서 절대왕정이 등장하는 데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289)

흑사병이 퍼질수록 기존 사회의 지배층이었던 영주와 교회의 권위는 가파르게 추락했습니다. 앞에서 사람들이 이주가 전보다 자유로워졌고, 또 실질임금도 늘어났다고 했잖아요. 흑사병에 걸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차 종교적이고 금욕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오늘을 즐기자!’는 식의 소비와 세속적 가치를 지향하게 됩니다. 이후 유럽은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문화 부흥기인 르네상스 시대로 진입합니다. 타락하고 무능한 교회에 반발해 일어난 종교개혁, 종교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합리적 추론과 실험을 중시한 과학혁명도 비슷한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죠.


(294)

경제학의 대가는 귀한 능력들을 겸비해야 합니다.

그는 어느 정도 수학자이자, 역사가이자, 정치가이자, 철학자이어야 합니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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