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물론 배우가 인기가 있으면 단순히 연기 이외의 것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건 배우의 인격입니다. 사람들은 배우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배우와 연락하여 살고 있는 듯 느끼기도 합니다. 때론 그런 점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할리우드는 너무합니다. 그들은 배우를 노예처럼 생각합니다. 영화에 출현하지 않을 때도 아무 때나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녀(이탈리아 배우 발렌티나)는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오드리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168)

일반적으로 스타들은 명성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그런 것들 없이 살아가야 하는 금욕적인 의무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드리의 야망은 다른 사람들처럼 밝게 타올랐지만, 그 불빛은 일반적인 목표들을 비추지 않았다. 스타덤에 대한 그녀의 태도에는 자기희생이라는 강한 요소가 있었다.

스타덤뿐이 아니었다. 결혼을 생각하는 태도는 더 심했다. 그녀는 로맨틱한 이상적인 결혼에 대해 전부를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위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느꼈다.

 

(177)

오드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초조해하고 있을 때 파라마운트 제작부장 돈 하트먼에게서 뉴스가 전해졌다. <로마의 휴일>의 주연인 그녀가 다가오는 아카데미상의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뉴욕의 영화평론가협회는 이미 12월 말에 그녀에게 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현재 감정 상태에서는 이런 좋은 뉴스가 많이 생겨도 흥분되기보다는 무덤덤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개인적인 박수갈채는 자극제가 아니라 진정제 역할을 했다. 칭찬은 의무를 동반했다. 방종을 허락하는 허가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갖고 있는 캘빈주의 유산의 한 부분이었다.

내가 느낀 것은 성공에 뒤따르는 책임감이었어요.”

 

(195)

미국의 평론가이며 페미니스트인 마조리 로젠은 이렇게 썼다.

그녀는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순수한 힘과 신체적인 특질이 잘 조화되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중략)

오드리는 자신의 특징을 일찍 만든 편이고 오랫동안 지속시켰다. 세실 비턴은 그녀를 전문적인 시각으로 관찰해 사진작가로서의 견해를 피력했다.

커다란 입, 낮은 가슴, 짙게 칠한 눈썹, 코코넛 머리 장식, 광택 없는 긴 손톱, 유연한 몸동작, 긴 목, 그리고 지나치게 마른 몸매…, 그녀는 모든 것이 심플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비턴의 시각으로 그녀를 보지 못했다. 대중들은 생기발랄함만을 보았다. 리처드 쉬켈은 이 생기발랄함을 심각함과 결합된 장난기 가득한 순진함이라고 표현했다.

오드리의 목소리 톤은 다른 신체적 특징만큼 뚜렷한 특징이다. 비턴은 이렇게 썼다.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처럼 리듬을 타고 처음에는 평이하고 느린 어투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어린아이가 질문할 때처럼 높이 올라가는 어조로, 가슴을 쥐어짜는 특질이 있다.”

(236)

오드리는 존경받을 만했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들은 땀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편집증처럼 집착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주고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는 전적으로 상대를 믿었어요. 오드리는 그 점이 아주 좋아요. 그래서 상대가 돈을 벌게 되는 겁니다.”

(401)

나에게 한 편의 새로운 영화를 시작한다는 건 항상 두려운 일이었어요. 난 근본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촬영하는 것이 언제나 힘든 일이었지요. 영화 촬영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는 다른 작업인 것 같아요. 자전거는 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만, 영화는 한번 촬영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지요. 아무리 아름다운 시나리오와 훌륭한 배우와 감독이 있더라도 촬영할 때면 언제나 혼자가 된답니다.”

(456)

그녀는 린 바버에게 말했다.

명성은 내가 영화에 출현하던 시절 이후 나에게 남겨진 물건, 예를 들면 이런 가방 같은 겁니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내가 그녀에게 시간을 희생한다는 표현을 썼어요.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반박했어요.”

그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희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내가 받은 선물입니다.”

(462)

그녀는 전쟁 경험에 대해 자주 질문을 받았었다.

전쟁은 오랫동안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나는 전쟁 중에 많은 것을 보았어요. 그러나 그 모든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본적으로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낙천주의자가 되었어요. 죽어서 과거를 비참하게 되돌아보면 기분만 상할 겁니다. 단지 나쁜 면만을 보고, 놓친 기회들을 아쉬워하고, 이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뭐 하나요?”

이제 오드리는 두 번 다시 무비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방음 스튜디오에 만들어진 천국을 떠났다. 그리고 유니세프를 위한 여행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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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오랜 친구가 보내준 쪽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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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인터뷰가 끝나고 타일러에게 재미삼아 천사를 만나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 속 상황일 뿐이라고 답할 줄 알았는데 타일러는 그런 우문이 어디 있으냐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 물론이지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천사를 만났습니다. 당신은 나의 천사이고, 나 역시 당신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천사가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라면, 딱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날개 달린 천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지도 모른다.

(19)

진숙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지만 마구잡이로 갖다대는 객관적 논리가 적용되지 않고 그렇게 환장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 게 바로 사랑이 아닌가. 이 세상에 단 한 가지, 약삭빠른 머리가 아무리 요리조리 계산해도 속수무책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게 마음이고,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9)

우리는 보통 우리의 삶이 아주 위대한 순간들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순간, 내가 나의 모든 재능을 발휘해 위대한 일을 성취할 날을 기다린다. 내게는 왜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한다.

그렇지만 그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새 왔다 가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대통령에게도, 신부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자동차 정비공에게도, 모두에게 골고루 온다.

(47)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묻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즉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 삶이 더욱 풍부해지고 내가 행복해지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53)

킹 부인의 말처럼 사랑이란 결국 아주 쉽고 단순한 감정-불쌍하고 약한 자를 보고 눈물 흘린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래 전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했겠지만, 어쩌면 눈물은 사랑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1943)를 쓴 생택쥐페리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부()”라고 했다.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꼭꼭 숨겨놓았던 눈물을 찾아 마음의 부자가 된다면 이 찬란한 봄에 맞는 부활의 아침이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61)

<스티브 잡스의 연설 중에서…>

때로 삶은 벽돌로 당신의 머리를 내리칩니다. 하지만 결코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제가 어렸을 때, <지구백과>라는 책이 있었는데 우리 세대의 바이블이었지요. 책으로 된 구글같다고 할까요. 그 책의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 아래 늘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남기를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늘 배고픈 채로, 늘 어리석은 채로. 저는 제 자신이 그러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말하고 싶습니다. 늘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남으십시오

(74)

얼마 전 어떤 잡지를 보니 치매 예방법이 나와 있었다. 호기심에 유심히 보았다. ‘하루 두 시간 이상씩 책을 읽는다’, ‘의도적으로 왼손과 왼발을 많이 쓴다’, ‘일회용 컵이나 접시를 쓰지 않는다.’, ‘가능하면 자주 자연을 접한다등등 어느 정도 상식적인 예방법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이 재미있었다. ‘가능하면 자주 감동을 한다.’

감동을 많이 하라?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되는지 모르지만 감동을 하면 치매 예방이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마음의 움직임이 두뇌의 움직임과 직결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치매라는 병이 흔한 이유는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감동이 없어진 것과 상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치매에 안 걸리려면 감동을 많이 해야 한다.

(99)

영어를 배우든 그 무엇을 하든, 남보다 좀 더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좀 더 깊이 분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머리, 남보다 좀 더 새롭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창의적인 눈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남에게 나눠주고 싶은 나눔의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157)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것보다

- 앨프레드 L. 테니슨. <사우보> 중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부럽지 않네

고귀한 분노를 모르는 포로가,

여름 숲을 알지 못하는

새장에서 태어난 방울새가.

난 부럽지 않네, 시간의 들녘에서

제멋대로 뛰어놀며

죄책감에 얽매이지도 않고

양심도 깨어 있지 않는 짐승들이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것도

사랑해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나으리.

(175)

인생은 아름다워라! 6월이 오면

                  - 로버트 S. 브리지스 <6월이 오면>

6월이 오면, 나는 온종일

사랑하는 이와 향긋한 건초 속에 앉아

미풍 부는 하늘 높은 곳 흰 구름이 지은

햇빛 찬란한 궁전들을 바라보리라.

그녀는 노래하고, 난 그녀 위해 노래 만들고,

하루 종일 아름다운 시 읽는다네.

건초더미 우리 집에 남몰래 누워 있으면

, 인생은 아름다워라 6월이 오면.

(265)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 메리 R. 하트만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간혹 가슴앓이가 오고 가지만

다른 얼굴을 한 축복일 뿐

시간이 책장을 넘기면

위대한 놀라움을 보여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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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ASEM 정상회의 만찬을 마친 대통령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주방에 라면을 청했다. 순방국의 공식 만찬 행사에 다녀올 때마다 거르지 않는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라면 한 그릇을 비운 후 대통령은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리랑 담배에 불을 붙였다. 힘들도 어려운 시기에도 그의 얼굴에서 웃음을 지켜준 세 가지 아이템이었다.

(172)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결국은 자기 삶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약간의 불일치가 생깁니다. 참모들은 제 인생을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좋은 정치만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결국 한 인간으로서 삶의 선택에 치열하게 맞닥뜨리는 것은 아닌 셈이지요. 그런데 어찌 보면 사람들은 자기 멋에 살다가 죽는 게 아닐까요?”

(177)

경사였고, 분명히 좋은 일이었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을 탄생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기에 기쁨이 더 컸다. 선거를 위해 이 년여에 걸쳐 숱한 외교 일정을 소화했던 터라 대통령 당선에 견줄 만한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바깥으로 감정을 드러낼 일은 아니었다. 의전비서관이 축하 행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왔다. 그는 최대한 간단히 하자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생색낼 일이 아니다

그것이 전부였다.

(181)

미국의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의 안보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의 평화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어떤 형태든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방향의 제재 조치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인이지만, 막상 전장에서 죽는 것은 군인이다.”

그가 평소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렇듯 그는 전쟁이 초래할 비극을 원치 않았다. 또 결코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혹여 미국과 북한 사이의 갈등이 깊어져 군사적 충돌이라도 생기면 한반도의 남쪽은 전쟁의 참화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접견이 계속되는 동안 대통령의 얼굴은 몇 번이나 벌겋게 상기되었다. 때로는 격앙된 표정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긴 설득이 이어졌다. 접견을 마치고 관저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그는 진익훈 대변인에게 기록해두라며 말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고집 센 나라와 가장 힘센 나라 사이에 끼어 있다.”

(202)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대통령이 혼잣말처럼 말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선출된 권력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게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317)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재판을 통해 싸울 각오를 다졌다. 이미 큰 생채기가 나 있었지만 그래도 명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설령 감옥에 가는 일이 있어도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 생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쏟아지는 엄청난 비난의 화살 속에서도 자신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 자신에게 뒤집어씌워진 누명의 한 귀퉁이라도 제대로 벗겨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구차한 연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받는 고통을 덜어내는 방법은 아니었다. 감옥 안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진보의 미래를 성찰하는 글을 쓴들 효과는 크게 없을 듯싶었다. 그런 한편에서는 사실이 아닌 그 모든 것을 사실이라고 인정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토로하기도 했다.

내가 차라리 사법절차를 포기하는 것은 어떻겠나? 이 말은 내가 그냥 모든 걸 인정해버린다는 뜻이다.”

(320)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332)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뒤 대통령은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켠다. 어느 곳이든 일하는 사람이 있는 마을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고 덕담을 건넨다. 그는 이제 전직 대통령이라기보다 시민 임진혁에 가깝다. 마을회관을 나서면서 그가 말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역시 사람입니다.”

2017 5 15. 봄이 그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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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4-25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곧 5월이네요. 5월 9일 대선이 있고, 무엇보다 5.18이 있고 5.23이 있고...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하지만, 우리 역사에는 참 잔인한 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bookholic 2017-04-25 23:56   좋아요 0 | URL
올 5월에는 좋은 기억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76)

내가 물었다. “데키무스를 돕겠다는 겁니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살인자를?”

옥타비우스의 대답.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에케나스도 입을 다물었다.

옥타비우스가 다시 말했다. “우리 맹세를 기억하나? 그날 밤 아폴로니아에서? 너와 나, 아그리파와 마에케나스.”

내가 대답했다. “잊지 않았습니다.”

옥타비우스가 미소 지었다. “나도 잊지 않았어…, 데키무스를 증오해도 구해줘야 한다. 바로 그 맹세를 위해서. 그리고 법을 위해 살려줄 것이다. “ 순간 그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려보았아. 아니, 어쩌면 상대가 내가 아닐 수도그가 다시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본모습을 의식한 걸까?

(79)

우리가 입성했을 때 로마는 분쟁과 야욕으로 갈가리 찢긴 터였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친구임을 빙자해, 살인자들과 놀아나고 우리의 옥타비우스 카이사르가 양부께 물려받은 명예와 권력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옥타비우스 카이사르는 침탈자 안토니우스의 야심을 확인하자마자, 양부의 노병들이 땅을 일구고 있는 정착촌으로 달려가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 때마침 암살당한 지도자를 애통해하던 터라 퇴역군인들은 충성을 맹세하고 우리와 함께 약탈자들과 싸워 국가의 꿈을 되찾기로 했다.

(88)

상황은 이틀 만에 끝이 났네. 로마의 피는 한 방물도 흘리지 않고.

우리 병사들은 무티나 전투 이전에 약속한 보상을 받았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옥타비우스를 입양한 것도 합법화되고 공석으로 남은 히르티우스의 집정관 직도 물려받았지. 그리고 열한 개 군단을 위 휘하에 둘 수 있었다네.

8 11(, 당시 자네들은 섹스틸리스, 즉 여섯 번째 달이라고 불렀겠군그래.) 옥타비우스는 로마에 들어가 집정관 계승을 위해 제례에 참석했네.

그리고 한 달 후 스무 해 생일을 맞았지.

(358)

다행히, 젊음은 자신의 무지를 보지 못한다네. 도저히 감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지. 무지에 눈을 감고 그래서 후일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는 것도 필경 피와 살에 담긴 본능 덕분이겠지?

(361~362)

젊은이는 미래를 모르기에 삶을 일종의 서사적 모험으로 여기지. 오디세이아처럼 낯선 바다와 미지의 섬을 여행하며, 자신의 힘을 실험하고 증명하고 그로써 자신의 불후를 발견하고 싶은 걸세. 중년이 되면 꿈꾸던 미래를 겪었기에 삶을 비극으로 본다네. 자신의 힘이 아무리 위대한들, 신이라는 이름의 사고와 자연을 이길 수 없으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자기가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노인은 삶을 희극으로 볼 수 있네. 승리와 실패를 가감한다면, 누구도 타인보다 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네. 그 힘들과 맞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영웅도 아니고, 그 힘에 파멸당하는 운명의 주인공도 못 돼. 늙은 배우처럼 너무 많은 역을 맡은 탓에 더 이상 자기 자신일 수가 없는 거야.

(374)

전술했듯이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존재했네. 그래, 어쩌면 세상이 바로 내 시라고 볼 수 있겠군. 부분을 전체로 통합하고 이 파벌을 저 파벌과 통합하고 그 파벌에 걸맞은 역할과 혜택을 부여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내가 지은 시라 해도 세상이 시대를 초월해 존재할 수는 없을 걸세. 베르길리우스가 숨을 거두며 자신의 걸작 시를 파기해달라고 애원한 바 있지. 그 양반 말로는 미완성인 데다 부족하기까지 했어. 군단 하나가 패퇴하는 장면만 보고 다른 두 군단의 대승을 접하지 못한 장군처럼,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을 실패자로 여겼다네. 하지만 그의 로마 건국 시편은 로마 자체보다 오래 살아남을 걸세. 물론 내가 만들어놓은 이 허접한 세상보다도 장수할 거야. 난 그 시를 파기하지 않았네. 베르길리우스도 내가 그러리라고 생각지는 않았을 거야. 시간은 시가 아니라 로마를 부순다네.

(384)

내 생각은 이렇다네. 누구나 살다보면,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있을 걸세. 이해 못 할 수도 있고 형설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네. 아무리 초라하다 해도 본질을 넘어선 그 누구도 되지 못해. 나도 지금 말라빠진 정강이, 쭈글거리는 손, 세월에 얼룩지고 처진 살갗을 보고 있네. 한때 이 육신이 그 자체에서 벗어나 타인의 육신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니 우습기까지 하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혹자는 쾌락의 찰나에 온 생을 걸고는, 육신이 말을 듣지 않으며 괴로워하고 외로워하지.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육신이 아는 것이 오로지 쾌락뿐이건만, 그 쾌락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야. 오히려 우리 믿음과 달리, 성애란 그 무엇보다도 이타적이라네. 타인과 하나가 되어 스스로를 탈피하려 하기 때문일세. 그 때문에 대부분 가장 저급하다고 여기네만 성애도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네. 성애가 더욱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이야. 하지만 일단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자아에 갇히지도, 자아 속으로 쫓겨나지도 않는다네.

(399)

하지만 그가 건설한 로마 제국은 티베리우스의 폭정을 견디고 칼리귤라의 극악무도한 폭력과 클라우디우스의 무능력까지 모두 이겨냈습니다. 이제 새 황제를 맞이할 때입니다. 바로 선생께서 어렸을 때 지도하셨고, 지금도 그 곁을 지키시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신임 황제께서 선생의 지혜와 미덕을 후광으로 통치하시라는 사실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네로 휘하에서 로마가 마침내 옥타비우스 카이사르의 꿈을 실현하기를 신들께 간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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