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취임한 지 석 달이 가까워 옵니다만, 지금까지의 그의 언행은 국가권력을 사익을 위해 사용해온전임자들과는 무척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운영의 책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 대한 설명책임과 시민들과의 격의 없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시점에서 국가에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돌보는 것임을 잊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취임 직후 그가 가장 먼저 발표한 정책제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그리고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국회 안팎에 아직 광범하고 뿌리 깊게 포진해 있는 기득권세력과 수구 언론들의 완강한 저항과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조치를 단행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11)

민주주의는 복잡한 이론을 필요로 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민중의 스스로의 운명과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하는, 즉 자기통치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정치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윤리적으로 커다란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 핵전쟁의 가능성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상황을 타개하려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파스트트들이나 유사 파시스트들은 주장하지만, 실제로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점을 지금 한국에서촛불혁명'의 성과로 모처럼 민주정부가 들어서서 그동안의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적 가치와 제도를 살리기 위해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실험들은 일본의 여러분의 주목과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5)

이런 면에서, 영미권의 산업 민주주의란 독일의 경제 민주주의와는 달리 그 폭이 좁아요. 생산 현장 중심이죠. 독일의 경제 민주주의는 사회경제 시스템 전반을 민주화한다는 구상인데, 영미식 산업 민주주의는 현장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단결권, 교섭권, 행동권, 참여권) 보장을 골간으로 해요. 이런 점에 견주면, 우리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균형 성장, 적정 분배, 남용 방지, 주체 조화)은 영미식 산업 민주주의보다 범위는 넓지만, 내용이 좀 추상적이에요. 특히 국가의 경제 개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민주화라기보다 국가화라고 할 수도 있겠죠.

 

(17)

그래서 예컨대, 제대로 된 일자리도 만들고 노동시간도 단축하고, 청년들이 자신의 꿈에 따라 공부하고 사회에 나와도 고른 대우를 받으며,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의 경영 참가도 적극 보장하고, 주거나 교육, 의료나 노후 문제를 사회 공공성 차원에서 해결해내는 새 해법들이 나와야 해요. , 경제민주화란 살림살이를 행복하게 하자는 거요.

 

(24)

-정치,경제 민주화가 이뤄진다면 일반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지겠죠. 아이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꿈을 꿀 수 있고, 어른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겠죠. 더 이상 헬조선이 아니겠죠. 물론 이 모든 건 지난한 과정이라 긴 시행착오와 학습과정이 필요해요. 시간도 걸리죠. 중요한 건 나부터 깨어난 시민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또 여럿이 더불어 토론하고 여론을 만드는 거죠. 또 현 선거제도의 맹점을 고쳐나가면서(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등의 도입을 통해), 정치,경제 민주화의 의지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선거에서 뽑아야죠. 이렇게 되면 일반인들도 정치,경제에 더 많은 관심과 책임감을 느끼게 될 거예요.

 

(48)

결국, 뒤떨어졌다고 하는 아시아인들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서구인의 노력은, 그것이 아무리 진지하고 이타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존경과 감사는커녕 원한을 불러일으켰다. 토착민들은 자신들이 깃들어 살던 오래된 사회적, 정치적 질서로부터 쫓겨나고 또한 서구적인 것이 지배하게 된 세계에서 인간적 존엄성이 부정된 결과, 늘 서구를 서구 자신의 게임법칙으로 패배시키기를 꿈꿨다. 앙드레 말로의 예언적 소설 <서양의 유혹>(1926) 속에 등장하는 중국인 지식인은 유럽은 지금 유럽식 옷을 입고 있는 이 모든 젊은이들을 이미 정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이른바 유럽의 비밀이라는 것을 알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비밀 중 많은 것을 지금 아시아인들은 손에 넣었다.

 

(51)

세계화 경제의 수혜자로서 이 아시아인들이 갖고 있는 자기 이미지는, 물질적으로 성공하고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목적지를 향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신감에 찬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도는 경제의 세계화로 인한 단절을 중국보다 훨씬 더 눈에 띄게 드러내고 있다. 인도는 경제의 몇몇 부문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기대감을 높여놓고는 그 혜택은 매우 좁게 분배하고 있다. 그리고 환멸과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를 확대해온 결과, 허다한 사람들이 흔히 포퓰리스트와 종족주의적인 정치가들이 먹이가 되고 있다.

 

(116)

왜 많은 나라가 공론조사를 정책결정에서 주요한 기준으로 활용할까? 그 이유는 공론조사 방식이 갖는 탁월한 장점 때문이다. 공론조사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쟁점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1차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1차 조사 결과의 의견 분포 및 인구통계학적 특성(지역별, 계층별, 성별, 세대별 등)과 일치하는 토론 참여자 표본을 선발한다. 표본은 많을수록 좋지만 토론 장소의 협소성과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우리나라 핵발전소 문제에 있어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301~501명 정도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155)

높은 질의 삶을 지향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한 자연스런 흐름이다. 이 덕분에 한 사회의 문화는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흐르며 변화무쌍해진다. 특히 혁신적인 기술의 산물이 등장했을 때에는 유행처럼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 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가 초래한 것은 인류가 예상치 못했던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었다. 이러한 위기는,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되묻게 한다. 결국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대규모의 산업적 기술보다 지역에서 자급자족에 필요한 기술이며, 지나치게 첨단으로 가기보다는 오래된 전통 기술과 눈높이를 맞추는 절충된 기술이라는 것을 말한다.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과 인력으로 짓고, 만들고, 고치고, 사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거대 산업기술이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다면, 자급자족을 위한 기술은 덜 위험하고, 폐해를 일으키더라도 회복이 가능하고 빨리 복원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적정기술의 철학으로서, 도시든 농촌이든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떤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쓸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169)

결론적으로, 나는 확신을 가지고 강조한다. 사회적 자본과 사회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마을공동체는 존속할 수 없다. 사회적 자본의 비무장상태로, 사회안전망의 무방비 상태로 추진하는 모든 공동체사업은 사기이거나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평균적 능력의 주민,시민들은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 안전하게 사는 문제에 일상과 평생을 진력해야 하는 절박한 숙명에 처해 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데 이웃과 공동체를 챙길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이런 개인들이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바람대로 기계적 연대를 벗어나 사회적 분업을 통한 유기적 연대로 옮겨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폭주하면서 사회가 혼돈상태에 빠지고 규제가 도통 먹히지 않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걱정하는 현대사회의 실상이 아닌가.

 

(198~199)

동생 허균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누이가 생전 꿈에서 받아 적은 시에 푸른 바다 아득히 요해에 잠기고 푸른 난새 채색 봉황에 기대었는데 붉은 연꽃 스물일곱 송이 서리 내린 차가운 달빛 아래 떨어지네라고 하더니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3 9를 곱하면 27로 누이의 나이와 같다. 사람의 일이란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어 피할 수 없음이 이와 같단 말인가?

 

또 평하기를,

 

  누이의 시는 모두 천성에서 나온 것이다. 유선시를 즐겨 지었는데 시어가 모두 맑고 깨끗하여 익힌 음식을 먹는 속인들은 따라갈 수 없다. ()도 우뚝하고 기이한데 사륙문(四六文)이 가장 좋다. 백옥루상량문이 세상에 전한다. 둘째 형(허봉)은 일찍이, “난설헌의 재능은 배워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이백과 이하가 남긴 노랫말을 읊은 것이다라고 평했다. , 살아서는 부부 금슬이 좋지 못했고, 죽어서는 제사 받들 자식이 없으니 아름다운 구슬이 깨져버린 원통함이 그지없다.

 

(204)

내가 대학시절 잘 읽었던 소설가 중에 이병주라고 있다. 특히 식미지시대를 신문기자처럼 혹은 역사가처럼 관찰하던 시선과 간결한 문제가 인상적이었지. 조금 엘리트주의적이었지만. 신화를 공부하면서 그때 그가 어떤 연재소설 앞머리에 붙였던 제사가 퍼뜩 떠오르곤 했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는 말. 나는 이제껏 역사와 신화를 이보다 더 자신 있게 비교하는 말을 본 적이 없어. 우선은, 역사와 신화가 낮과 밤처럼 다르다는 뜻이겠지. 태양은 양이고, 달은 음이야. 태양이 질서와 논리라면, 달은 혼돈과 주술이야. 낮이 의식과 이성이면, 밤은 무의식과 감성일 테고. 낮에는 일을 하고 기록한다. 밤에는 잠을 자고 꿈을 꿔. 기록에 대해서는 기억이겠지. 역사가 사실과 관련이 있다면, 신화는 허구요 마법과 관련이 있지. 시간에 대한 인식도 아주 달라. 역사의 시간이 직선이든 나선형이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전의 그것이라면, 신화의 시간은 발전과는 상관없어. 그저 텅 빈 시계판 위를 빙빙 돌 뿐이야. 역사에는 종언이 있어도, 신화에 대해서는 종언을 말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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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자유가 없다면 인문정신은 숨을 쉴 수도 없고, 창조적인 수많은 작품도 존재할 수 없다. 내게 가끔 생기는 장난기가 강연장에서 또다시 도졌다. 아니, 지금 자유로워 보이는 젊은 대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강연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한 편의 시를 읽었다.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21)

우리에 갇힌 동물보다 자연공원에 방목된 동물이 더 자유로운가.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하나도 없다. 허용된 자유는 언제든 허락한 측에서 철회할 수도 있는 불완전한 자유, 아니 정확히 말해 자유를 표방한 기묘한 억압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자연공원의 동물들은 자신을 가두는 사방의 벽 쪽으로 가기보다는 본능적으로 가운데로 모인다. 하긴 벽에 직면하는 순간,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 테니 얼마나 불쾌한 일이겠는가. “한계를 넘지 않는다면, 너희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이것이 바로 허용된 자유의 논리이다. 허용된 자유를 자유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게 된다. 체제가 우리를 핍박하려고 할 때, 우리는 나약하게 외칠 것이다. “저는 한계를 지켰는데, 왜 그러세요?” 너무나 어리석고 나약한 한탄을 토해 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허용된 자유를 거부하고 자신의 자유를 찾아야 한다.

 

(23)

시는 소설이나 희곡처럼 단순히 문학 일반에 속하는 하나의 장르가 아니다. 시는 문학의 가능성이다. 형식도 모방하지 않고 내용도 모방하지 않아야 시가 된다. 혹은 형식도 강요되지 않고 내용도 강요되지 않아야 시가 된다. 그렇다. 시는 글로 표현된 자유정신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시는 난해하다는 인상이 든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일체 외적인 것으로부터 단절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니까 느끼고 욕망하고 생각하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시라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자유를 행사하는 진정한 시인 경우에는 어디엔가 힘이 맺혀있어야만 한다는 역설한다. 그의 말대로 진정한 시에는 반드시 시인의 자유정신이라는 보석이 박혀 있기 마련이다. 시인 자신이니까 살아 낼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새로운 자유가 없다면 시를 썼다고 해도 쓰지 않는 것과 진배없으니까.

 

(45)

그가 쓰고 싶었던 자신에게 철저한 글, 즉 시가 어떻게 친절할 수 있겠는가. 다른 장르의 글과 달리 시는 자신이니까 쓸 수 있는 글,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글이다. 시를 읽는 것은 당연히 나와는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속내와 그 삶을 읽는 것이다. 어떻게 타인의 속내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시 읽기의 어려움은 수학이나 철학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46)

이제 더욱더 궁금해진다. 김수영은 가슴에 어떤 이상을 품고 살았던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김수영은 시인이 되려고 했고, 시인으로 살고자 했다. 다시 말해 김수영의 이상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시인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지금부터 차근차근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숙고해 보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먼저 시인은 평범한 일반 사람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일반 사람은 관습이나 교육에 따라 사물이나 자신을 이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세계와 불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미 세계가 조율한 대로 소리를 내니, 타인이나 사회와 불화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시인은 투철한 자기 이해에 이르러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관습의 목소리나 타인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에서 추방할 수 있고, 나아가 잃어버린 자신만의 목소리를 되찾아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55)

그래서 그는 사태와 자기가 하나로 붙어서 생긴 타성을 이라고 부르며 경계했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을 보면 된다. ‘이란 한계점이다. 고치려야 고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숙명이다. 에 한두 번이나 열 번 스무 번이 아니라 수없이 부닥치는 동안에 내 딴에는 인간 전체에 대한 체념이랄까-그런 것이 생긴다. 그래서 나도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본의 아닌 철학자가 된 셈이다.”

 

(123)

바로 이것이다. 김수영이 추구했던 새로움은 단독성의 발견에서 오는 새로움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지금 독자들에게 그리고 앞으로의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단독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새로울 수 있었고, 단독성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행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얻었다. 반면 김춘수와 같은 모더니스트들은 새로운 시적 테크닉은 시도했지만 단독성을 포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당연히 그들의 시는 그만큼 시적 보편성도 상실했다. 김수영이 동시대 모더니스트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확신하도록 한 중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흥미롭지 않은가. 머리로만 쓰는 시와 온몸으로 쓰는 시가 이토록 확연히 다른 운명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144)

그가 시인은 영원 배반자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인은 영원한 배반자다. 촌초(寸秒)의 배반자다. 그 자신을 배반하고,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하고,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한 그 자신을 배반하고…… 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 배반을 배반하는 배반자…… 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다. (…) 시인은 모든 면에서 백치가 될 수 있지만, 단 하나 시인을 발견하는 일에서만은 백치가 아니다. 시인을 발견하는 것은 시인이다. 시인의 자격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밖의 모든 책임을 시인으로부터 경감하라!” - <시인의 정신은 미지>(1964.9)

 

(153)

불행히도 모든 교육은 단독성을 개화시키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신봉하는 가치를 주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단독성을 회복하려는 순간, 당연히 가정이든 학교든 군대든 회사든 권력을 쥔 자들로부터 탄압받기 마련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생긴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로부터 스스로 단독성을 부정하는 개인들이 탄생한다. 외적인 탄압과 억압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과 똑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들과 달리, 이런 불행한 개인들은 오히려 타인이 자신과 같은 옷을 입고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기 쉽다. 그들이 유니폼, 즉 동일한 형식을 즐기는 것은 이런 이유인지 모른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제스처를 버리고 권력이 허용하는 제스처를 취해서 자신의 단독성을 은폐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는 자신들이 애써 은폐하려던 단독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들은 조금씩 자신이니까 살 수 있는 삶, 자신이니까 느낄 수 있는 감성, 자신이니까 생각할 수 있는 사유를 영위할 것이다.

 

(159-160)

시는 나니까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삶을 살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시인과 시인 아닌 사람의 구분도 사라질 것이며, 서로가 자기 삶의 형식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 즉 김수영이 말한 모든 사람들이 착한 시인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동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원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현재의 시는 무효가 될 것이다. 현재의 시에는 단독적인 삶을 영위하는 모습보다는 그것을 꿈꾸는 이의 설움이 묻어나니까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순간, 그들의 말과 행동은 서러운 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히 긍정적인 시가 될 것이다. 이런 낙원을 꿈꾸면서 당분간 시인은 타인의 제스처가 아니라 자신의 제스처를 만들어 삶을 살아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단독성을 회복할 때까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 줄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다.

 

(173)

눈이 시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눈은 하늘이란 지고한 권좌로부터 스스로를 추방하여 구체적인 곳으로 내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은 순수하고 고결하다. 신처럼 모든 것을 관조하지 않고, 스스로 더러워질 것을 감내하면서도 기꺼이 모든 것과 함께 하려고 한ㄷ. 눈은 더러운 진창도, 썩어 가는 시체도, 악취를 풍기를 오물도 가리지 않고 그들을 덮어 고결하게 승화시킨다. 눈 내리는 날 세상의 모든 존재는 빈부, 미추, 선악, 강약을 넘어서 동등하게 변한다. 부자의 집도 빈자의 집도 똑같이 흰 지붕이 되고, 대학 교수의 머리에도 구걸하는 아이의 머리에도 똑같이 흰 눈이 쌓이니까 말이다. 하늘과 땅이 지배와 피지배를 상징한다면, 눈은 지배 의지를 극복하고 구체로의 비약을 도모하는 시인 정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185-186)

모든 돌고 있는 팽이는 자시만의 중심을 가지고 돈다. 그런데 두 팽이가 마주친다는 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팽이의 회전 스타일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허망하게도 팽이는 쓰러지고 만다. 팽이만 그런가.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만의 스타일로 살지 못하고 남의 스타일을 답습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 내지 못한다. 김수영의 말대로 생각하면 서러운일이다. 보통은 인간이 고독하기 때문에 누군가와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거나 완성되기 위해 지혜로운 사람이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통찰이 옳ㄴ다면, 이게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서도 안 되고, 누가 기대는 것을 용납해서도 안 된다. 오직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삶을 마무리해야만 한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197)

김수영은 시의 다양성과 문화적 실험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시의 다양성은 시인들의 삶이 각기 다른 만큼 불가피한 것이고, 시의 실험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려는 시인들의 투철한 의지가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의 제스처도 흉내 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자신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사상은 진정한 시인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사활을 건 문제다. 이런 사상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시적 형식과 테크닉의 모색은 단지 원숭이의 장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에서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현대성보다 사상보다도 백배나 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남의 말을 자기 말인 것처럼 지껄이는 순간,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화려하고 현란한 말로 남을 속일 수 있다고 할지라도, 거짓말쟁이는 결국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를 완성할 수도 없을 것이다.

 

(238)
어느 개인이 공동체가 각인시킨 시선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이 순간 그는 더 이상 공동체의 노예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불온한 주체가 된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불온한 주체에 직면했을 때 공동체가 어떻게 몸을 도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적 인식에 이른 주체의 행동과 말은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릴 것이고, 그것은 마침내 무서운 전염병처럼 공동체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킬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이 있다면 어떤 모양의 새로운 것이냐는 김수영의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그는 어떤 새로움도 좋다는 식의 새로움 강박증자는 아니었다. 물론 그가 기존의 낡은 시적 표현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진정으로 거부한 것은 기존의 것을 답습하고 자신만의 삶과 표현을 억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김수영에 따르면 이런 억압을 뚫고 새로운 것을 모색할 때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것, 혹은 시적 인식이 가능한 법이다.

 

(267)

자유의 방종은 그 척도가 기준이 사랑에 있다는 것만을 말해 두고 싶습니다.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자유는 여하한 행동도 방종이라고 볼 수 없지만,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호흡입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도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환경에서는 여간 조심해서 보지 않으면 분간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사랑이 순결하면 순결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기도가 눈에 보이지 않듯이 사랑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유의 방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회에서는 백이면 백이 거의 다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의 자유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를 방종이라고 탓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요즈음 느끼는 일>(1963.2)

 

(330)

어쨌든 시인은 자유를 노래하는 자유로운 존재여야만 한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시인이라고 자처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술과 시인들이 현실적 자유를 회피하고 관념적인 자유로 후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그들은 시를 적당한 감각적인 현대어를 삽입한 언어의 조탁이나 세련되어 보이는 이미지의 나열과 구성으로 썼다. 몽상과 상상의 자유라고나 할까? 그들은 시인으로서의 자유로움을 현란하고 낯선 이미지의 시나 아름답고 예쁜 시를 만들어서 증명하려고 했다. 김수영에게는 “7할의 고민과 3할의 시의 총화가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예술파 시인들에게는 현실과 자신에 대한 “7할의 고민”, 즉 사상이 부재했다. 그러니 그들은 현실에 무기력하기만 한 시만을 쓸 수밖에 없었다.

 

(334)

시인이 가야 할 길은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지도자라는 형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인문주의나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표자와 피대표자라는 이분법 때문에, “작가는 달리지 않고 군중만 달리게 하는아이러니한 권력 현상이 발생한다. 어쩌면 참여파 시인은 자신이 왜 현실을 극복하려고 했는지 망각한 불행한 사람이다. 그들은 자유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339)

오늘날의 시가 골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회복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의 상실이라는 가장 큰 비극으로 통일되어 있고, 이 비참의 통일을 영광의 통일로 이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다. 그는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산다. 여기에 시의 새로움이 있고, 또 그 새로움이 문제되어야 한다. 시의 언어의 서술이나 시의 언어의 작용은 이 새로움이라는 면에서 같은 감동의 차원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현실이 담겨 있느냐 아니냐의 기준도, 진정도 난해시냐 가짜 난해시냐의 기준도 이 새로움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 - <생활현실과 시>(1964,10)

 

(344)

시는 온몬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 <시여, 침을 뱉어라>(1968.4)

 

(370)

무서운 것은 문화를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의 문화의 위험의 소재(所在)도 다름 아닌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치스가 뭉크의 회화까지도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그 전위성을 인정하지 않았듯이, 하나의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문예시평자가 역설하는 응전력과 창조력-나는 이것을 문학과 예술의 전위성 내지 실험성이라는 부르고 싶다-은 제대로 정당한 순환작용을 갖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1968.2)

 

(377)

인간은 정당한 목적, 바로 자유다. 그리고 새로움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그는 과거에 살던 누구와도 닮지 않고 앞으로 태어날 누구와도 닮지 않을 바로 그 자신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움과 자유의 존재론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는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에 걸맞게 새로운 삶의 스타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위기에 빠질 때 작가는 사람들에게 경고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의 경고는 자유가 부정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것일 수도, 아니면 스스로 온몸으로 자유를 구가하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듦으로써 자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간접적인 것일 수도 있다. 진정한 작가의 작품들이 인간의 자유를 가로막는 벽과의 충돌을 기술하거나, 동시대 사람들의 통념을 조롱하는 전혀 새로운 삶의 전망을 보여 주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카프카가 그랬고, 바이런이 그랬고, 그리고 우리 시인 김수영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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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박근혜는 해야 할 일을 너무 안 했지만, 이명박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너무 많이 했다. 이명박이 원로랍시고 인사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이명박이 국가라는 이름 뒤에 숨어 저지른 폭력과 사기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명박이 정치라는 탈을 쓰고 사익을 추구한 것을 떠올리면 슬프고 분하다.

 

(6)

사람들은 이명박을 두려워한다. 그에겐 권력과 돈이 있다. 내가 이명박을 쫓으며 취재한 사람들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입을 꼭 다물었다. 한마디만 더 들으면 좋겠다 싶은 때에도, 더 강요할 수만은 없었다. 사라지거나 저수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명박 내곡동 특검팀의 한 책임자는 비자금의 실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 패거리들은 돈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목숨을 빼앗는 것쯤이야 거리까지 않는다.

 

(16)

나는 이명박 하면, 돈에 환장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를 꿰뚫는 단어는 돈이다. 그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사랑도 믿지 않는다. 돈을 믿는다. 모든 생각이 돈으로 통하고 모든 행동은 돈에 좌우된다. 대통령이 되기 직전 교회에 간 이명박은 예수 믿고 우리 집안 다 부자가 됐다라고 간증했다. 이 말에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49)

김제동이 진행하는 SBS ‘힐링캠프에 이승환 형이 초대 손님으로 나간 적이 있다. 그래서 단짝인 류승완 감독, 만화가 강풀과 함께 방송에 출현했다. 방청석에서 응원하는 콘셉트로. 이날 녹화에서 승환 형은 이런 말을 했다.

진우같이 정의로운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 안전하게라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눈물을 보였다. 형의 진심에 나도 마음으로 울었다. 물론 이 장면이 전파를 타지는 못했다. 결국 내가 나온 부분은 통편집되고, 내 이름은 이틀 동안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나중에 박근혜가 방송에서 나를 보고 화낼까 봐 통편집했다는 후문이 들었다.

 

(50)

그는 보험사 내 담당자였다. 오래전부터 나를 응원하는 지지자라고 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괜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닌 듯했다. 약속을 잡고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내 보험이 이상하다고 했다. 보험은 보통 사고나 질병을 대비하는데 내 보험 약관은 온통 사망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했다. 사고로 죽거나 해외에서 죽어야 보험금을 가장 많이 타는 구조란다. 전쟁 나가는 사람이 드는 보험 같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건넸다.

이런 식으로 보험을 들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죠. 가끔 뉴스에 나오는 보험금을 타려고 남편을 죽인 사건 말이지요. 기자님은 워낙 위험한 상황이어서 이렇게 보험을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64)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을 발표한 지 4년이 지난 2011 6, 석유공사 배 아무개 과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이라크 쿠르드 사업의 석유공사측 실무 책임자였다. 취재해보니 배 과장은 평소 실패한 쿠르드 사업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윗사람들은 나거거나 좋은 자리로 떠났다. 배 과장은 나중에 이 문제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죽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배 과장이 영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면서 홀가분해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숨진 배 과장은 마흔 살로, 자녀 둘을 둔 아빠였다.

 

(94)

대통령 자리도 돈을 해 먹기 위해 차지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명박이 국회의원이 되고, 서울시장이 되고, 대통령까지 된 목적은 단 하나다. 돈이었다. 결국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후 이명박 패밀리는 국가적으로, , 많이도, 해 먹었다. 담대한 사기다.

 

(101)

제도권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보지 못한 경우였다. 이것은 조폭이 조직을 움직이는 구조였다. 조폭 두목이 누군가를 제거하고 싶다. 그러면 부하를 시켜서 칼로 찌르게 하고 감방에 간 동안 옥바라지 해준다. 감옥에서 나오면 중간 보스로 승진시켜주고 일도 챙겨준다. MB 시스템은 조폭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다.

그래서 배신자도 잘 나오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세상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128)

나에겐 꿈이 있다.

비자금 저수지를 찾는 꿈. 우선, 비자금을 찾아서 터뜨린다. 물론 내가터뜨리는 게 중요하다.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확실한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수사가 시작되고 이명박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운다. 이명박은 구속되고 부정 축재한 돈을 다 빼앗는다. 그 돈을 국민들에게 나누어준다. 그 돈을 찾으면 우리나라 복지 수준을 크게 향상될 것이다. 그 돈이면 성인 한 명당 통장에 1천만 원씩 넣어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이명박의 공약을 내가 실현시켜주주는 것이다.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것. 이명박 비자금 찾기 프로젝트는 우리 국민 모두가 부자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141)

이명박, 이상득 형제는 진짜 대단하다. 형제가 다 해먹은 사업도 까고 들어가 보면 친박이 꼭 한두 명씩 나온다. 자기네들이 먹으면서 친박한테 자리를 하나씩 나눠줬다. 자원외교 때 책임자가 친박 최경환이었다. 역외탈세와 관련해서도 최경환 이름이 나온다. 롯데월드파워 만드는 치밀함. 그들은 정말 대단하다.

 

(174)

기자는 기사를 쓰는 사람이다.

기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비자금을 캐는 일은 기사로 쓰지 못할 가능성이 99퍼센트다. 그래도 쫓아야 한다. 무슨 이야기만 들리면, 단서든 자료든 뭐라도 생기겠지 하는 마음에 달려갔다. 즐거운 마음으로. , 많이도 다녔다. 내 여권에 찍힌 스탬프의 8할은 이명박 덕분이다.

 

(213)

그래도 가야 한다.

가서 물어야 한다.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곤란한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나는 회사가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월급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241)

저수지는 케이맨에 있다.

이명박의 것으로 의심되는 돈은 캐나다를 거쳐 케이맨제도로 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케이맨으로 갔다. 가야만 했다.

케이맨제도는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 영토이다.

쿠바 옆에 있다. 미국 뉴욕에서 남쪽으로 4시간을 날아가면 케이맨의 수도 조지타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케이맨은 제주도만 한 크기로 인구는 5 5천 명. 충북 영동군 인구가 5만 명 정도다. 이곳은 스쿠버들에게는 최고의 휴양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비자금의 천국으로 더 유명하다.(중략) 지난 8년간 우리나라에서 조세회피처로 나간 돈이 190조인데 그 중 홍콩을 제외하고는 케이맨이 제일 많다. (중략) 2007년부터 한국과 케이맨의 직접교역액은 급상승한다. 매년 2배 이상 성장. 이명박 재임기하고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석연치 않다.

 

(267)

다스는 이명박 정부 들어 폭풍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 2000 1,787억 원이던 매출액은 이명박 취임 첫해인 2008 4,540억 원으로 증가한다. 이명박 재임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3배 이상 성장해 무려 1 37백억 원을 기록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성장세는 꺾이지 않았다. 박근혜 집권 첫해인 2013년 다스는 1 79백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2016년에는 2 38백억 원 매출을 기록했다. 다스는 해외로도 뻗어 나가고 있는데 중국에 8, 인도에 2, 미국, 체코, 브라질, 터키에도 해외 법인을 세웠다. 현대, 기아차가 진출한 곳에는 거의 다 공장을 지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후 진행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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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 이제 때려치울 거야!” 하고 물러나면 나의 한계가 거기까지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버티는 자에게는 한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그날까지 버텨야겠어요. 팝가수 켈리 클락슨도 노래하잖아요.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41)

짧은 순가, 머릿속에서는 하루 쉬자는 쪽과 비가 내려도 무조건 가자는 쪽이 설전을 벌였습니다. ‘온종일 비가 오면 어쩌려고!’ ‘우비 입고 다니지?’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럼 그때 가서 쉬지?’ 고민 끝에 결국 가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어요.

폭포에 도착해서 잠시 우산 쓰고 걷다 보니 날이 개었습니다. 포기하자는 유혹에 졌다면 숙소에서 맑게 갠 하늘 보며 땅을 칠 뻔했어요. 역시 인생은 끝까지 가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76)

무언가 배울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이 정도는 알고 있지라고 자신하는 순간,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가 사라집니다. 대부분이 기초 회화는 안다고 자신하지요. 하지만 책을 읽어 이해하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문장을 보지 않고도 말이 나와야 언어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기초 회화부터 새로 외워야 합니다.

 

(127)

예전에 책에서 읽은 수식을 소개합니다.

“1.01 365승은 37.8

0.99 365승은 0.026

향상심이 강한 사람이 전날보다 매일 1퍼센트씩 자신의 행동을 개선하여 그것을 1 365일 지속해간다. 그리고 그것을 1.01 365승이라고 생각하면 1이 약 38이 된다. 한편, 어찌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전날보다 매일 1 퍼센트씩 행동이 절하된 상태로 1 365일을 이어나가면 0.026이 된다. 20, 30년이라는 시간 간격으로 샐러리맨을 보고 있으며, 이 수식이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18년이나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후회한 12가지>(와다 이치로 지음)”

 

(177)

결국 세상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소설 <왕좌의 게임>에서 읽은 영어 대사를 노트에 적어놓고 다시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Never forget what you are, for surely the world will not. Make it your strength. Then it can never be your weakness. Armor yourself in it, and it will never be used to hurt you.”

영어 공부를 겸해 원서를 읽는다면 좋은 문장을 수첩에 모아보세요. 나만의 영어 명언집이 완성됩니다. 배낭여행을 갔을 때 미국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얘기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때 나는 말이야, 타이리온 라니스터의 그 대사가 참 좋아하고 소리 내어 외워보는 겁니다. 영어 공부도 되고, 인생 공부도 되고,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좋은 길이 여기 있어요.

 

(256)

저는 어려서부터 유시민 씨가 쓴 책을 좋아했어요. 유시민 씨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말과 글이 다 유창하지요. 그는 대학 졸업하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독일로 유학 가서, 그때 처음 독일어로 정식으로 배웠다고 해요. 그렇지만 독일어로 박사 논문을 쓰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답니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논리를 만들고 다른 이들에게 설득하는 일인데 그 바탕이 바로 모국어 실력이라는 것이지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보면 모국어가 중요하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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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불쌍하다. 대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논문을 써야 하는데, 논문을 쓰자면 연구를 해야 하고, 연구를 하자면 대학원생이 있어야 하고, 대학원생을 두자면 연구비를 받아야 하고, 연구비를 받자면 연구과제를 따야 한다. 4대강사업과 관련이 있는 환경, 토목 분야 연구비는 대부분 4대강사업을 찬성해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대운하 반대 교수모임에 들어온 교수들을 보면, 관련 분야인 토목, 환경 분야 교수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극소수이고 대부분 이와 관련 없는 분야의 교수들이었다.

 

(13)

이명박 정보가 굳이 댐을 보라고 부르는 이유는 보와 댐의 설계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는 적당히 아무 데나 세워도 되지만, 댐은 물이 새거나 지반이 내려앉지 않고 물을 안전하게 담아둘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저수 지역의 지표지질 조사를 해야 하고, 또 댐 구조물이 들어설 자리에 댐을 안전하게 앉힐 수 있는 암반이 있는지 정밀 지반 조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4대강에 들어선 댐들은 수위 6m를 맞추기 위해서 설치 위치를 잡았을 뿐, 댐 설계기준을 따르지 않았다. 지금껏 댐의 물이 새고 강바닥이 파이고 끊임없이 콘크리트를 쏟아부으면서 보강 공사를 하는 이유가, 댐들을 모래 위에 짓고 옆구리를 흙더미에 걸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댐들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1996년과 1999년에 두 번이나 무너진 연천댐도 흙더미에 걸쳐놓은 옆구리가 터져서 무너졌다.(이 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든 댐인데, 무너지면 보상해주겠다고 각서에 도장을 콱 찍었지만 보상을 해주지 않아서 주민들이 소송을 하는 데 무려 9년이나 걸렸다.)

 

(33)

처벌을 보복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일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보복은 민주사회에서 절대로 행해져서는 안된다. 처벌과 보복은 같은 편이 아니다. 사적인 보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처벌이 필수적이다. 만화 <26>은 공적인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사적인 보복의 정당성이라는 심각한 철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권문제, 특히 국가범죄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 독일에서는 2016년 초에도 아우슈비츠에 근무했던 94세의 나치 친위대원 라인홀트 한닝을 기소하여 5년형이 선고되었다. 독일은 종전 70년을 넘겨서도 나치 인권탄압의 말단에 섰던 사람들까지도 단죄하는데, 한국은 불과 30년 전의 인권탄압도, 광주에서의 발포명령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는 구속되자마자 사면 얘기가 나오고 있다.

 

(86)

오늘날 가정이 자본주의체제의 가치에 삼켜질 위험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전통적으로 담당하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가정의 대부분의 시간이 직접적인 생산과 직접적인 활동 대신, 돈을 벌고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섬김에서 나옵니다. 국가와 기업이 우리를 위해 해주는 일이 많아질수록 국가와 기업의 힘은 강력해시고 가정의 힘은 축소되고 무력해집니다. 우리가 그동안 친숙하게 상품과 서비스 형태로 소비했던 것들을 직접적인 활동과 사랑의 수고로 바꾸어낸다면, 하나님의 통치가 경험되는 영토는 그만큼 넓어지겠지요. 우리가 가정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수고를 자발적 사랑으로 감당하고, 그러한 가정들의 인격적인 사랑의 역량과 지혜가 모인다면, 언젠가 함께 가정다운 학교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119)

유럽 같으면 혁명과 소련에 대한 긍정적 관심은, 아인슈타인과 비트겐슈타인, 벤야민 그리고 로맹 롤링이나 리온 포이히트방거 등의 기라성 같은 비판적 지성인들의 공통분모였다. 아인슈타인 같은 당대의 양식과 양심의 화신은, 볼셰비티들의 반대파에 대한 탄압책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면서도 레닌에 대해서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그와 같은 사람들은 확실히 인류 양심을 수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산주의와 관계없는 인도주의자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의 10월혁명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공산주의의 폭력성에 대해 명확히 비판적이었던 간디는 왜 레닌과 볼세비키들의 숭고한 자기희생정신을 흠모했을까? 인도주의적 세계주의자인 타고르는 왜 1930년 소련 방문 이후 소련을 이 세상에서 비길 바 없이 흠모할 나라라고 규정했을까?

 

(125)

완벽한 정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궁극적으로는 바로 10월혁명의 복합적 성격이 혁명이 만든 사회의 민주성을 제한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혁명이면서도, 10월혁명은 동시에 아직도 근대적 공업국가나 대중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던 러시아에서 산업화 등의 종합적 근대화 과제까지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근대화 담지 기관으로서의 신생국가가 대대적인 인민 총동원, 철저한 명령과 복종 위주의 서열체계를 요구하며, 그 성질상 소비에트 민주주의 발전의 장애가 된 셈이었다. 소비에트 개발국가의 가시적인 성과들이 특히 제3세계 지식인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영감을 주곤 했지만, 구미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실질적 참정권, 즉 사회운영에서늬 참여 권한이 사실상 제한된 소련 노동자들의 입장은 꼭 부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결국 개발이 얻어진 반면에 민초의 자율성과 민주성이 상실된 것은 1917 10월혁명 후속 과정의 가장 큰 한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134)

1917년의 상황에서 후진적이고 반()봉건적이며 민중의 대다수가 문맹이었던 러시아사회는 혁명을 통해서 현대적이고 발전된 경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소련의 과학자는 세계 전체 과학자 중 4분의 1을 차지하고, 건강 및 교육 제도는 서구 국가들의 그것에 필적하거나 우월한 것이 되고, 소련은 우주공간에 최초로 위성을 발사하고 최초로 인간을 내보낸 나라가 되었다. 1980년대에 소련에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의 과학자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존재했다. 오직 최근에 와서야 서구세계는 소련의 우주계획이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구 국가들이 여전히 우주공간으로 남자와 여자들을 내보내기 위해서 러시아 로켓들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은 이 점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되고 있다.

 

(135)

10월혁명은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기록했다. 그 이전 차르 치하에서는 여성들은 가정의 단순한 부속물로 간주되었다. 차르의 법률은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허용했다. 몇몇 시골지역에서는 여성들을 베일을 쓰도록 강요받았고, 글을 읽는 법도 쓰는 법도 배우는 게 금지되었다. 1917년에서 1927년 사이에 여성들이 남성들과 공식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일련의 법률들이 통과되었다. 1919년에 작성된 공산당의 한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이 대담하게 선포했다. “여성들의 형식적인 평등에 국한하지 않고, ()은 여성들을 낡은 가사(家事)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공동주택, 공공식당, 중앙세탁소, 보육소 등등을 제공하도록 노력한다.”

 

(142)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부활할 가능성, 그리고 그에 따른 여파를 트로츠키는 놀랄 정도의 선견지명으로 1936년에 이미 내다보았다.

 

소비에트체제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계획경제의 붕괴, 그리하여 국유재산의 철폐로 이어질 것이다. 트러스트들과 공장들 사이에 유대는 무너질 것이다. 보다 성공적인 기업들은 독립의 길에 나설 것이다. 그들은 주식회사로 변모하거나 그 밖의 다른 전환기적 형태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이윤을 분점하는 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집단농장들은 훨씬 더 쉽게 해체될 것이다. 현재의 관료제적 독재가 새로운 사회주의권력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부활로 이어지고, 그에 따라 산업과 문화는 파국적 쇠퇴에 직면할 것이다.”

 

(167)

그래서 내가 찾아낸 한 가지 교훈은, 책이라는 것은 좋은 책/나쁜 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책과 내게 맞지 않는 책이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사실 내가 알고 싶어 하고 내가 궁금해 하는 내용을 내가 아는 용어로 전해주는 책이 내게 맞는 책인데, 이러한 책들이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이러한 책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찾아내기만 하면 커다란 도움을 얻었던 것이 또한 사실이다.

 

(230)

이명박 전 대통령의 뻔뻔함’, ‘명랑함의 캐릭터 분석은 압권이다. 조금의 회한적인 얼굴빛도 없이 “5년간 행복한 대통령이었다는 그에게는 염려, 성찰, 자책 등 지도자의 필수 덕목은 없었다. 그는 대통령 역할에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캐릭터의 소유자이다(<행복한 권력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그 자체로 그를 안하무인의 정치이탈자,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권력을 가진 자로 정의할 근거가 된다.(<유체 이탈, 정치 이탈>) 뻔뻔함과 안하무인, 너무도 부적격한 전직 리더들의 캐릭터는 희극적이고 절망적이다. 사과도,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절대 불감증의 두 사람이 통치했던 기간의 불행을 슬프도록 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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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6 0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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