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 장준하의 항일대장정
장준하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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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아빠가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을 읽었잖아. 그리고 장준하가 쓴 <돌베개>라는 책을 연이어서 읽고 싶었어. <돌베개>는 장준하의 항일투쟁기라고도 해.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에도 <돌베개>의 글을 많이 인용했고 말이야.

이 책에는 장준하가 일본군에 들어간 1944년부터 해방 후 다시 귀국하여 김구 선생의 일을 보좌하던 1945년 말까지 약 2년에 걸친 이야기가 담겨있단다. 돌베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왜 제목을 돌베개라고 지었을까? 하는 굼긍증도 생겼지만, 그보다 돌베개 출판사가 더 먼저 떠올랐단다. 돌베개에서 출판한 책들은 진보성향의 책들과 사회문제를 다른 책 등 아빠가 좋아하는 책들을 많이 출간하는 출판사였거든. 그 돌베개 출판사가 바로 장준하의 책 <돌베개>에서 이름을 따왔나? 이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확인해보니, 그것이 맞더구나. 출판사 돌베개는 장준하의 책 <돌베개>에서 출판사명을 따온 것이래. 그러면 장준하는 항일투쟁수기를 엮은 책의 이름을 왜 <돌베개>로 지었을까? 그것은 아내와 암호였다고 하는구나.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에도 나와 있지만, 일본 유학 중이던 장준하는 예전의 제자였던 김희숙과 애틋한 정을 나누다가 결혼을 했고, 결혼한지 일주일 만에 학도병에 자원하여 입대하면서, 나눈 암호. 일군을 탈출할 경우 편지에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을 편지로 적어 보내겠다는 암호. 그 구절 속에 한 단어 돌베개. 그리고 그가 황량한 중국 땅에서 들판에서, 산에서 잠을 청했을 때, 그가 벤 돌을 돌베개라고 생각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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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돌베개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日軍)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다. 그 후 나는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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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준하가 일군에 들어갔다가 일군을 탈출하고, 중국군 부대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6000리 길을 행군하여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에 다다른다는 내용은 이미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단다. 이 책은 그런 그의 행보를 장준하의 글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어 더욱 실감이 나고, 그때그때 순간마다 그의 생각이 어떠하였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단다. 어쩌면 장준하를 비롯한 그의 일행이 일군을 탈출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일 수도 있었어. 철조망 밖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탈출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벌인 일이야.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행동하게 했는가? 그들이 일군을 탈출하고 밤을 이용하여 도망 중에 불로하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들을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맞게 되고, 그 감격을 조국에 바치고자 했어. 그래서 그들은 조국을 향해 절을 했단다. 아빠는 그 장면을 상상해봤어. 일군에 쫓겨 밤새 도망가다가 불로하의 큰 강 물결에 떠오르는 태양이 비치고... 그 광경을 보는 젊은이 4명이 조국을 향해 큰절을 하는 그 장면... 그들의 뜨거운 가슴이 느껴지는 듯했단다. 그 뜨거운 가슴이 목숨을 내놓는 탈출을 감행한 것이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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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불로하, 말 없는 강, 안으로 안으로 모든 것을 가라앉혀 비록 그 바닥에서는 물결이 거세어도 수면은 언제나 잔잔히 흐르기만 하는 강, …… 너 마르지 않고 너 나타나지 않는 그 강심을 나는 여기서 배우리라.”

어느새 이국의 태양은 머리 위에 올랐고 강물 위엔 쏟아진 햇볕이 물결을 덮으며 웅장한 음악이 강 밑으로 흐르는 것이었다. 우리의 소망과 새로운 각오를 위해 강은 흘렀다.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군복을 입었다. 서로서로를 돌아보며 새 결의를 다짐했다. 모두 새사람이 되었다. 진정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조국 광복, 이 깊고 긴 강처럼, 크고 깊은 긴 일을 마침내 나는 찾아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떳떳한 조국의 아들이 다시 되었다. 기쁨과 감격은 이 아침을 신비롭게 하였다.

우리는 동북쪽의 조국을 향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숙였다. 이글대는 태양을 마주하고 가로로 한 줄을 만들어 서서 이 가슴의 감격을 조국에 고하고자 했다. 김준엽 동지, 윤경빈 동지, 김영록 동지, 홍석훈 동지 그리고 나, 이렇게 차례로 서서 조국을 향한 배례를 한 것이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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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준하 일행은 중국 중앙군 유격대에서 생활을 하다가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 나서기로 했단다. 그러다가 그들은 린촨(임천)에 있는 한국광복군 훈련반에서 합류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이미 한국 젊은이들이 팔십여 명이 머무르고 있었어. 낯선 타지에서 같은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은 또다른 감회였을 거야. 그런데 말이 한국광복군 훈련반이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무기도 없으니, 그들이 하는 것은 제식훈련이 전부였어. 장준하는 취사병으로도 일을 했는데, 전우들을 위해 고구마를 몰래 훔쳐오던 일화도 이야기해주었단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대원들의 글을 받아서 잡지를 냈단다. 동료들은 그 잡지를 <등불>로 제목을 뽑았고, 속옷을 깨끗이 빨아서 표지를 만들기도 했어. 그곳에서 훈련을 하긴 하지만 제식훈련이 전부였고, 장준하는 최종 목적지는 충칭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어. 그는 김학규 중위의 만류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났단다. 그때 임촨에 남는 이들도 있었고, 장준하와 같이 떠난 이도 있었어. 민간인들 포함하여 53명이 임촨을 떠났는데, 그때가 1944 11 30일이었어. 11 30. 이제 한파가 몰아닥치는 겨울이 찾아올 거야. 거기에 먹거리도 거의 없고, 언제 어디서 마적단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길. 그들은 뜨거운 피 하나로 길을 떠났단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중칭으로 향한 길은 고난의 길이었어.

그리고 해가 바뀐 1945 1월말 장준하 일행은 중칭의 임시정부에 도착을 했단다. 김구 주석, 이청천 장군 등 고위직의 환대를 받았어. 장준하를 포함한 50여 명들도 감격을 받았지. 그리고 그는 앞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할 일에 대한 기대를 했어. 그러기 위해서 길고 긴, 그 힘든 여정을 떠났던 거니까. 그런데, 며칠 지내고 보니 장준하는 임시정부에 실망을 느끼게 되었단다.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을 읽고 쓴 편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장준하는 임시정부 요원들 앞에서 그들의 당파싸움에 신랄히 비판했어. 그리고 혼날 것을 각오하고 자신의 생각을 거듭 이야기했어. 그러면서, 임시정부 요원들이 변하여 자신의 당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대한 독립을 위해 하나로 뭉치길 바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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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아니한 단 10여 일 동안, 그동안 우리의 눈에 비친 임정은 결코 우리가 사모하던 그 임정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 본 것이라면 용서하십시오. 진정으로 여러 선배 선생님께서 이곳 이 땅에서 임정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희에게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탐욕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탈출해서 기나긴 행군으로 오면서 그리던 임정은 모두 일치단결되어 있는 완전한 애국투쟁의 근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그 단결된 힘으로 오직 잃은 나라 찾는 데만 목숨 바쳐 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 그 기대는 지나친 하나의 환상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누가 준 것입니까?

조국을 잃고 망명한 입장에서 임정을 세웠기에 임정이 하는 일에는 파쟁이 개재되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잘못 본 것입니까? 아니면 사실입니까?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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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에 대해 실망을 한 장준하는 기대와 달리 그곳에서도 딱히 할 일이 없었어. 그러다가 이범석 장군과 만나게 되었고, 이범석 장군의 소개로 3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떠나 미국첩보대인 OSS에 들어가게 되어 특수훈련을 받게 된단다. 그들은 조국에 잠입할 목적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면서, 그들의 국내 잠입이 의미 없게 되었단다. 일본의 포츠담 선언은 곧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으나, 자신의 손으로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었던 거야.

 

3.

1945 8 14, 장준하는 다른 일행들과 미국사령부 사절단 소속으로 비행기를 타고 국내로 향했단다. 그리고 여의도에 도착했는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본군의 총부리였단다. 일측촉발의 상황. 아직 국내 사정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이었어. 결국 그들은 다시 회항하기로 결정되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다시 조국을 찾은 것은 그 해 11월 김구 주석과 함께였단다. 임시정부의 최고 수장이었던 김구 주석의 귀국이었는데, 공항에는 아무도 없었어. 조짐이 이상했던 것이지. 광복이 되고 난 3개월 동안 국내 정세는 대혼란의 시간을 겪고 있었어. 거기에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을 제한했던 거야. 뒤늦게 경교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김구 주석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던 장준하는 가족에게 가 볼 틈도 없이 바쁜 생활을 하게 되었단다. 이제 그에게 조국 독립의 일이 아닌, 조국 재건에 대한 막중한 일이 떨어진 거야. 김구 주석을 보좌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강대국들이 양분해버린 조국을 하나로 만든다는 것은 험난한 길이라고 생각했어.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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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구어내려고 했던 조국의 독립. 아직도 우리나라는 홀로 서지 못하고, 둘로 나뉘어져 있단다. 비록 그렇더라도 반쪽인 나라에서라도 독립운동가들이 내세웠던 국가의 가치들.. 그런 것들이 잘 만들어져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하지만,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정말 답답하구나. 뒤늦게 진실들이 밝혀지면서, 다시 제대로 된 나라로 갈 기틀을 마련했지만, 아직도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자신의 죄를 사과는커녕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단다. 과거 친일파들이 이러했을려나. 올해는 우리나라가 다시 정상궤도를 되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너무 멀리 와버린 기분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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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놓아줄게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서정아 옮김 / 나무의철학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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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2016년을 마무리하면서, 회원의 관심분야를 파악해서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단다. 회원마다 관심분야를 20여 개 정도로 알려주는데, 관심이 많을수록 큰 글씨로 보여준단다. 아빠의 경우 “추리/미스터리소설” 부분이 제법 큰 글씨로 보여주었어.


맞아. 아빠는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야. 어렸을 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 읽은 셜록 홈즈 문고판들은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단다. 그런 것을 보면 아빠는 그때부터 추리 소설을 좋아했던 것 같아. 요즘도 누군가 재미있게 읽은 추리 소설을 소개해주면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를 해. 아빠가 이번에 읽은 클레어 맥킨토시의 <너를 놓아줄게>도 웹상에서 알게 된 책이야. 전직 경찰이었던 지은이의 경험을 통해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지은이의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괜찮았단다. 작가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어야겠구나.
 
1.
영국 브리스톨에 살고 있는 다섯살 제이콥은 유치원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었어. 집에 가까워지자, 제이콥은 혼자 달려갔단다.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어. 제이콥이 차도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나타나 제이콥을 쳤어. 제이콥의 엄마는 손을 쓸 수도 없는 찰나였단다. 쓰러진 제이콥에게 달려가 엄마는 비명과 눈물로 끌어안았지만, 제이콥은 이미 … 그리고 급하게 선 자동차... 그 차는 잠시 서있다가 후진을 하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났어. 뺑소니.
이 사건은 곧 언론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두 사람이 비난을 받게 되었단다. 아이를 치고 뺑소니를 친 범인, 주택가에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차를 몬 것도 잘못한 것인데, 사고를 내고서 그 자리를 도망친 것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어. 그리고 다섯살 아이를 혼자 뛰어가게 한 제이콥의 엄마에게도 비난이 쏟아졌어. 결국 제이콥의 엄마는 경찰 조사의 어느 정도 끝나게 되자, 집을 떠나 잠적하였단다. 이 사건은 레이라는 경험이 많은 경사와 신참내기 케이트가 수사를 맡았어. 하지만, 그들은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되었단다. 비가 오는 날 한적한 주택가였기 때문에 목격자도 거의 없었고, 뚜렷한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야. 제보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말이야. 사건 장소에 있던 제이콥의 엄마도 충격을 받아 거의 아무것도 보질 못했어. 어둡고 비오는 오후, 라이트가 밝게 켜진 채 서있던 자동차 만을 기억하고 있었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였지. 시간은 흘러 육 개월이 흘러갔고, 경찰 상부에서는 그 사건에 대해서 종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 레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신참내기 케이트는 무척 열을 받았단다. 왜냐하면 아직 수사할 것은 많이 있었기 때문이야. 결국 케이트와 레이는 경찰서의 공식적인 지원 없이 몰래 그 수사를 하기로 했어. 하지만 여전히 수사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에는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단다. 제이콥 사건은 아무런 성과없이 일 년이 다 되어갔어. 케이트는 상부에 이야기해서 1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제보를 받아보자고 했어. 그리고 나타난 결정적인 제보. 그래서 레이와 케이트는 단서를 잡고, 차 주인인 용의자를 찾아냈고, 현재 용의자가 머물고 있는 곳을 주소를 확보하게 된단다.
 
2.
제나는 그 사건 이후 밤마다 제이콥이 차에 부딪치는 그 순간의 꿈을 꾸었어.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브리스톨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기로 했어. 핸드폰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가면 제이콥을 잊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제이콥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그래, 제나는 제이콥의 엄마였어. 제나는 브리스톨을 떠나 웨일즈의 작은 해변마을 펜파흐라는 곳에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게 되었어.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밤마다 악몽을 꾸었단다. 늘 똑같은 꿈. 어느날 이른 아침 힘들게 발을 떼고 해변가에 나와서 사진을 몇 컷 찍어봤어. 그날 이후 그것이 제나의 유일한 바깥 활동이었어. 제나의 거의 유일한 이웃 베선이 어느날 그의 사진을 보고 사진이 너무 좋다고 했어. 심지어 사겠다고까지 했는데 제나는 그냥 주었어. 이후 베선은 제나의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팔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 제나도 돈이 점점 줄어들어 무엇인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단다. 그러면서 제나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어.
어느날 제나는 길 잃은 강아지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해주었어. 그리고 제나에게는 친구 둘이 더 생겼단다. 길 잃은 강아지와 동물병원의 수의사 패트릭. 패트릭이 관심을 보였지만, 제나는 아직 트라우마에서 깨어나지 못했어. 그러나 패트릭의 정성이 제나의 마음을 열게 했고,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어. 그리고 제나는 일년 만에 처음으로 악몽을 꾸지 않고 개운한 잠을 잤단다. 그날 아침 초인종이 울렸어. 그리고 경찰이 방문했어. 제나에게 수갑을 채우고, 뺑소니 용의자로 체포하겠다고 말했단다. 아빠는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어. 용의자라니? 제나는 제이콥의 엄마였는데? 아, 아니었나? 아빠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인가? 소설에서는 단 한번도 제나가 제이콥의 엄마라고 한 적이 없었던 것이었어. 지은이가 독자들을 속인 것이지.. 반전을 꿈꾸면서 말이야. 제이콥의 엄마가 잠적을 했지? 그런데, 제나가 제이콥의 엄마라고 한 적은 없었던 거야. 그리고 제나가 밤마다 악몽을 꾼 이유는 자신이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쳤기 때문이었던 것이지. 수갑을 찬 제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경찰을 따라 나섰단다.
 
3.
소설은 이제 2부로 들어선단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어. 바람둥이 이안. 이안이 오래 전에 여대성인 제나를 꼬시는 이야기로 2부는 시작했어. 이안은 케이트를 꼬시기 위해 별짓을 다하고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았단다. 그렇게 케이트를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제나를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떨어뜨리기 위해 이간질을 했고, 오직 자신만의 소유물로 만들었어. 이안은 성격파탄자에 의처증이 심하고, 분노조절장애도 있고 거짓말쟁이였어.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겠지? 이안은 심지어 제나의 고양이까지 질투를 해서 제나가 없는 사이 고양이를 죽였어. 이안은 제나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 첫날 욱하는 마음에 제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단다. 제나는 깜짝 놀랬지만, 이안의 거짓 어린 사과에 용서를 했단다. 이후 제나의 결혼 생활은 공포 그 자체였단다. 툭 하면 이안은 폭행을 휘둘렀어. 하지만, 제나는 자신을 죽인다는 위협 앞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 그런 생활을 제나가 했던 거야. 이안은 그 전에 이미 결혼도 했었고, 폴란드에서 온 어린 아가씨를 임신시키기도 했었어.
 
4.
경찰에 체포된 제나는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자백했어. 무서워서 뺑소리를 쳤다고 했어. 미안하다고 했어. 레이와 케이트는 제나가 너무 순순히 죄를 인정해서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였어. 이안이라는 나쁜 사람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더욱 그랬지. 분명 운전자는 이안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제나는 재판 전까지 잠시 보석으로 풀려나서 펜파흐로 돌아왔는데, 이웃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제나의 집에는 온갖 낙서로 덮여 있었어. 패트릭도 제나를 차갑게 외면했어. 베선만이 제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는 등 친절히 대해주었어.
제나에게는 언니 이브가 있었어. 어렸을 때는 아주 친하게 지냈어. 그런데 이안의 이간질로 인해 사이가 멀어졌어. 그런데 이안이 어느날 이브를 찾아왔어. 왜냐하면 이브의 집에서 제나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기 위해서 말야. 그리고 얼마 전 제나가 선물한 펜파흐 해변가의 사진을 찾아냈어. 이브 몰래 그 사진을 찢었고, 이안을 제나의 집을 결국 찾았어. 이안은 제나를 찾아가서 폭행하여 제나는 정신을 잃었단다. 깨어보니 패트릭이 사과를 한다면서 찾아왔어. 이안이 다녀간 다음 이브는 경찰에 찾아가서 자기동생을 이안으로부터 보호 신청을 요청했어. 경찰은 알겠다고 했고,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 이안이 제나의 남편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거지.
자백을 한 제나에게 유죄가 내려지는 것은 명백했어. 그런데 재판 몇 시간 전에 패트릭이 레이에게 여권 하나를 전달해 주었어. 그 여권은 제나의 여권인데 지금까지 알고 있는 다른 성(family name)이 적혀 있었어. 결혼을 했었다는 것이지. 레이와 케이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지. 레이는 제나의 남편이 이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안이 가정폭력범으로 전가 기록이 있다는 것과 첫번째 부인에게 접근금지령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도 같이 알게 되었지. 그리고 이안이라는 이름이 낯익었는데, 이브의 보호 신청이 생각났어. 그래 거기에 적혀 있던 이름도 이안이었던거야. 재판이 열리기 전에 제나는 다시 경찰의 조사를 받았어. 그제서야 진실을 이야기했어. 이안이 그동안 해왔던 폭행들. 임신 7개월의 배를 발로 차서 자신의 아이를 죽인 사실까지.. 낱낱이… 그날 운전도 이안이 했다고 이야기했어. 그런데 사실을 이야기하면 이안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운전했다고 이야기한 것이래…

사실 그날 이안은 단순한 사고를 냈던 것이 아니었어. 주택가로 들어선 순간, 자신이 임신시켰던 폴란드 여인이 살던 동네라는 것을 알았어. 그런데 길을 건너는 아이가 바로 그 아이였던거야. 자신의 아들.. 아이를 떼라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던 그 여인에 적개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도로 위로 뛰어들자, 그는 브레이크가 아닌 악쎌을 더욱 힘있게 밟았던 거야. 우연한 사고 뒤 뺑소니가 아닌 살인사건이었던거야.
제나는 경찰서에서 모든 진실을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그곳에 또 다시 이안이 기다리고 있었어. 광분되어서 제나를 마구 폭행했어. 제나도 더 이상 맞을 수만 없다고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는 이안을 공격했어. 도망과 격투가 이어지다가 이안이 자제력을 잃고 싸우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그래도 다행히 권선징악의 해피엔드로 끝이 났구나. 지은이는 이 소설을 자신이 경찰이었을 때 경험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썼다고 했는데, 실제에서는 결말이 어땠을까 궁금하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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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1-04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잠자리 머릿맡에서 책을 성심성의를 다해서 읽어주는 아빠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

bookholic 2017-01-05 00:2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지는 않아요... 일찍들 자라고, 옆에서 자는 척 합니다. 그러다가 먼저 잠들기 일쑤이고요~
 
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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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이번에 읽은 소설은 김려령이라는 작가의 <트렁크>라는 소설이란다. 제목만 봤을 때는 자동차 트렁크를 생각했는데, 책 표지의 그림을 보고 여기서 이야기하는 트렁크는 여행용 가방을 이야기하는 트렁크라고 알게 되었단다.

지은이 김려령. 이 분은 영화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의 원작 소설을 쓴 지은이로 유명하단다. 아빠는 이 두 책은 보지 않았고, 그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이 소설의 느낌은? 방심하고 있는 아빠가 허를 찔렸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예상치 못한 소재였기 때문이야.

 

1. 

어떤 내용이냐고? 주인공 노인지. 스물아홉 살. 직업은 W&L이라는 결혼정보회사의 차장으로 일해. 스물아홉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차장이라는 직급이 그녀의 능력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었어. 사실 아빠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책 속에서 넌지시 알려주더구나. 노인지가 일하는 곳은 이 회사의 비밀 자회사 NM이라는 곳이고, 그는 거기서 FW일을 하고 있어. 이게 다 뭐냐고? NM New Marriage 의 약자이고, FW Field Wife의 약자야. 뭐냐하면, NM 회사는 불법 계약 결혼을 알선해주는 회사였던 거야. 1년씩 계약을 하고, FW들은 계약자의 집에서 1년 동안 아내 역할을 한다는 거야. 그리고 계약이 끝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것이고… 누가 보면 성 매매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NM에서는 한 사람에게 얽매이고 싫은 부자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그런 비밀 회사를 만든거야. 물론 거금의 돈은 들겠지. 아무튼 불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직업이었어. 주인공 노인지는 FW였지만, 그 회사에는 FH도 있었어. Field Husband. , 남편 역할도 해주는 거지. 그들은 상대방을 거절할 수 있지만, 3번을 거절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어.

노인지는 네번째 FW를 하고 있었는데, 그를 선택한 사람은 가명으로 활동하는 작곡가였어. 한 두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참을 만 했지. 그리고 일년을 무난하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 1년의 FW을 마치면 일주일 간의 휴가가 주어졌어. 같이 살던 부모님들은 아들 따라 지방으로 이사를 가셔서, 노인지는 혼자 생활했어. 노인지에게는 시정이라는 절친이 있는데, 휴가에 맞게 시정이 놀러왔는데, 대뜸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거야. 노인지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거절했지만, 거의 떠넘기듯 한 소개팅을 하게 되었어. 시정도 노인지가 실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으니, 혼자 있는 친구에게 소개팅을 해준 거야. 엄태성이라는 백수. 노인지는 한 번 만나고 그만 만나려고 했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그는 회사 앞으로 매일 찾아왔어. 노인지는 자신의 정보가 노출되면 안 되는 직업인지라, 그를 떼어놓으려 심한 욕도 했어.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그가 찾아오지 않았지.

 

 2.

다시 바로 직전의 남편이 다시 인지를 선택했어. 그만큼 인지가 지난 일 년 동안 FW 역할을 잘 했다는 의미이지. 그래서 다시 결혼 생활을 시작했어. 그런데, 일이 벌어졌어. 엄태성. 그 소개팅남이 찾아온 거야. 이런…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회사에서는 비상 연락망이 있었어. 얼마 안 있어, 엄태성을 회사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끌려갔어. 이유도 모른 채.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사라져.. 어느 정신 병원에 감금을 시켜 버리는 거야. 이것이 결혼 생활 내내 인지의 마음을 괴롭혔어. 그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자신을 좋아했던 것 뿐인데 말이야. 결국 남편에게 도움을 청해서 그를 구해주기로 했어. 남편은 어떻게 힘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엄태성이 갇혀 있는 곳을 찾아냈고 그를 풀어주게 했단다. 그리고 남은 결혼 생활을 잘 마무리를 했단다. 인지는 상사로부터 이제 곧 진급을 할 거라는 언질을 받았어. 그런데, 인지는 다른 생각, 어쩌면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아. 다섯번째 FW를 깔끔히 마치고 사직서를 던졌거든.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듯.

 

3. 

아빠는 사실 이 소설 속의 내용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많이 불편했단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해도, 직업으로써 아내 역할을 한다는 것이, 남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어. 물론 아빠가 오랜 관습에 물들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어차피 결혼이라는 제도도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인 것처럼, 이런 기간제 결혼도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하면... 아빠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윤리’라고 할 텐데, ‘윤리’ 또한 인간이 만든 거 아냐? 라고 반문을 받는다면 답변이 궁색해질 것 같구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단지 문득 떠오른 자신의 상상력을 소설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오늘날 결혼 제도를 비판하려고 의도적으로 이런 소재를 생각해냈던 것일까? 아니면 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라고 쓴 걸까? 아빠는 소설을 읽을 때 지은이의 숨은 뜻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 그냥 재미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거든. 그런데 이 소설은 지은이의 의도가 좀 궁금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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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2-30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지난 한 해 자녀분들께 보냔 독서편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연의가 성장하면 bookholic님처럼 좋은 글을 선물하고 싶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bookholic 2016-12-30 21:28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도 하루 남은 2016년 잘 마무리 하시고, 2017년 새해도 온 가족 건강한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sapa0719 2018-10-2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력이 좋으십니다!!
 
녹색평론 통권 151호 - 2016년 11월~12월, 창간 25주년 기념호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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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이 창간 25주년이 되었단다. 이번 호는 창간 25주년 특집호란다. 하지만 그리 기뻐할 만한 일만은 아니라고 하는구나. 녹색평론사가 출판 사정이 어렵대. 그러면서 이번에 녹색평론의 가격을 2000원을 올리면서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단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를 부탁했어. 녹색평론 잡지책이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녹색평론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들이 많이 있단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려는 시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것이 아빠의 바람이란다. 녹색평론을 읽다가 좋은 내용이라서,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으면 아빠도 가끔 그 글을 발췌하여 SNS에 올리곤 했단다.

하지만, 아빠가 처음 녹색평론을 읽기 시작한 2010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빠 지인들 중에 녹색평론을 읽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알고 있는 이들도 많지 않단다. 그래도 녹색평론 뒷면에 녹색평론 모임 공고를 보면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이 녹색평론을 같이 읽고 있고, 그 모임 공고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희망을 가져본단다. 아빠도 그 오프라인을 한번쯤 나가고 싶지만, 기회가 잘 안 되는구나. 그리고 녹색평론이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좀더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번 호가 특집호라서 그런지, 그간 계속 다루었던 내용들의 중복이라서 다소 아쉬움 마저 남겼단다.

 

1.

창간 27주년 특집호 표지에 무위당 장일순의 사진이 있어 반가웠단다. 아빠가 무위당 장일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동안 녹색평론에서 몇 번 그에 다룬 글을 읽고 그에 관한 책을 읽고, 그에 관심이 생겼단다. 들어가는 글에서 그의 생명 사상에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다. 최근 우리나라는 두 달 가까이 국정 마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두 달이 아니라 9년 가까이 국정 마비 상태였는데,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이 실태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악마와 같은 이가 아직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면서,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단다.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악마를 가리켜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버티고 있는데, 당장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단다. 저런 악마가 국가를 개인과 측근의 소유물로 만드는 것을 그대로 둘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시스템은 과연 민주주의 맞는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민주주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저렇게 잘못을 수도 없이 많이 한 악마가 버티고 있는데도 당장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이 또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탄핵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그것은 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그런데 얼마 전에 끝난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미국 또한 민주주의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누군가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던 것도 민주주의라서 그렇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그런 민주주의라면 무엇인가 상당히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구나.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치르기 전이었고, 트럼프라는 사람이 인기를 끄는 것 자체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났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 글을 쓴 이는 지금쯤 어떻게 이야기할 지 궁금하구나.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지금의 민주주의는 정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단다. 그런 변화를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상관하지 않고 바꿀 수 있는 이가 다음 지도자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얼마전 내년 나라 예산 편성을 할 때, 빚더비에 쌓여 있는 나라가 또 빚을 끌고 와서 예산 편성을 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자신의 당선을 위해 세금을 헐뜯어가는 것을 보고 이 개판인 국회의원 선거 제도도 뜯어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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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하다는 것은 오늘의 정치상황 때문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가는데, 지금 이대로 가면 인류 생존의 토대 자체가 붕괴한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세계의 정치는 마냥 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판을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기본적 교양도 상식도 없어 보이는 부동산 부호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렇게 대중들의 인기를 끈느 것을 보고 소위 엘리트 지식인들은 포퓰리즘의 대두를 걱정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났다는 신호로 보는 게 옳습니다. 그동안 지배층이 정당정치니 민주주의니 하는 가면을 쓰고 정치랍시고 해온 게 실은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는 게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은 대중들의 분노가 표출됐다고 봐야죠. 소위 엘리트들에 대한 민중의 반란이라고 봐야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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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권력의 심각한 부패만큼 시민들의 둔감을 걱정하였는데, 이것은 이 책이 촛불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나와서 그런 것 같구나. 주말마다 벌어지는 평화적인 촛불시위는 악마의 스캔들 만큼 온 세계에서 관심을 갖고 있더구나. 권력의 부패에는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모욕감에 거리로 뛰쳐 나온 것이란다. 그나저나 얼른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2.

두어 달 전 아빠가 회사에서 일하는데 바닥이 출렁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단다. 예전에 마룻바닥이었던 교실에서 덩치 큰 친구가 옆을 쿵쾅쿵쾅 뛰어날 때 느꼈던 출렁거림... 그 출렁함이 지나가고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웅성댔단다.  그리고 그것이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의 여파란 것을 알게 되었단다. 경주라고 하면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인데, 이정도 느낄 정도면 지진의 강도가 적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했단다. 지진 강도 5.8. 언론에서는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등의 기사를 쏟아냈단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진 그 자체가 아니라 수많은 핵발전소가 더 큰 문제란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지진 당시 우리는 핵발전소의 위험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단다.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안전한가? 지진에 잘 버틸 수 있는가? 핵발전소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활성단층과 활동성단층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활동성단층 위만 아니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하는데, 그것은 말장난에 불가하다고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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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용어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활성단층은 지구의 40억 년 역사 중 180만 년전에 시작된 제4기에 형성된 단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활성단층은 최근 ‘180만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을 의미한다. 활동성단증의 정의는 두 가지이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 또는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으로 정의된다. 언뜻 보면 두 가지 정의가또는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활동성단층이 되므로 더 보수적인 기준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꼼수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개념이 입증하기 매우 힘들다고 한다. 이미 움직인 단층에서 또 한번의 움직임이 있을 경우 단층면이 바스러지기 때문에 그 단층이 한 번 움직인 것인지 두 번 이상 움직인 것인 확인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활동성단층의 정의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은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정의뿐이다. 다시 말해서 핵산업계는 (180만 년 내에 움직인) 활성단층이 아니라 (3 5천 년 내에 움직인) 활동성단층에서만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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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진이 일어난 곳이 하필 경주였단다. 경주라는 도시는 신라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로 예전에 여행 갔을 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기를 꺼리는 도시가 되었단다. 왜냐하면 경주에 세워진 방폐장의 문제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입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함에도 불고하고 그곳에 지어진 방폐장. 그런데 지진까지 덥쳤으니... 그리고 경주는 방폐장 뿐만 아니라 경주에는 월성단층이 있단다. 진도 6.5까지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하지만, 제대로 성능을 보이는지 확인을 해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스릴러 세상에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정말 6.5에도 강건하게 설계하게 되었다고 쳐도, 진도 5.8이 발생했다면, 6.5 이상도 언젠가는 발생할 수 있는 강도라고 생각이 드는구나. 지금이라서 우선 6.5 지진을 견딜 수 있는 게 맞는지 시험을 해봐야 하고, 더 높은 진도에서도 견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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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2일 경주지진 이후 440회가 넘는 여진이 2주째 지속되고 있다. 많은 경주시민들은 반복되는 지진에 지쳐 있다. 친척 집에 피신을 한 사람도 많다. 여기에 원전사고의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진도 6.5에 견딜 수 있게설계된 원전이라지만 설계대로시공되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과연 그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조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규모 5.8의 지진이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에서 발생하였다. 또한 관련 정보는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원자력계는 벌써 이번 지진의 진원지가 양산단층이 아닐 가능성과 활동성단층이 아닐 가능성을 주장하고 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나는 이 정도의 사실들 앞에서 우리 국민이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하여 충분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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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녹색평론에는 늘 서평을 서너 편 싣고 있단다. 아빠는 그 서평을 통해 알게 된 책들을 읽곤 했어. 이번에 소개된 책 세 권은 모두 읽고 싶더구나.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어 노동 운동에 평생을 바친 이소선에 대한 책 <이소선 평전>.

그리고 몇 년 전에 이슈가 되었다가 올해 초 다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빼앗긴 숨>.

그리고 기후 변화에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을 제시한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아빠의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모두 넣어야겠구나.

 

 

 

9월 12일 경주지진 이후 440회가 넘는 여진이 2주째 지속되고 있다. 많은 경주시민들은 반복되는 지진에 지쳐 있다. 친척 집에 피신을 한 사람도 많다. 여기에 원전사고의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진도 6.5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원전이라지만 설계대로 ‘시공’ 되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과연 그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조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규모 5.8의 지진이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에서 발생하였다. 또한 관련 정보는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원자력계는 벌써 이번 지진의 진원지가 양산단층이 아닐 가능성과 활동성단층이 아닐 가능성을 주장하고 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나는 이 정도의 사실들 앞에서 우리 국민이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하여 충분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급박하다는 것은 오늘의 정치상황 때문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가는데, 지금 이대로 가면 인류 생존의 토대 자체가 붕괴한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세계의 정치는 마냥 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판을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기본적 교양도 상식도 없어 보이는 부동산 부호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렇게 대중들의 인기를 끈느 것을 보고 소위 엘리트 지식인들은 포퓰리즘의 대두를 걱정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났다는 신호로 보는 게 옳습니다. 그동안 지배층이 정당정치니 민주주의니 하는 가면을 쓰고 정치랍시고 해온 게 실은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는 게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은 대중들의 분노가 표출됐다고 봐야죠. 소위 엘리트들에 대한 민중의 반란이라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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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2-24 0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자녀분들께 독서편지를 쓰시는 bookholic님의 글을 보면서 자상함과 자녀분들에 대한 사랑을 느낍니다^^: 가족분들과 따뜻한 성탄 보내세요.

bookholic 2016-12-24 23:08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님께서 따님께 하시는 걸 보면 늘 부족함을 느낀답니다. 따님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알 수 있네요. 겨울호랑이님도 온가족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되시기 바랍니다.^^
 
시인의 밥상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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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공지영의 에세이는 많이 읽지 않았지만, 아빠가 읽은 그의 에세이 중에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아주 인상적인 책이 한 권 있단다. 아빠가 워낙 지리산을 좋아해서, 아빠가 예전부터 친구들한테 나중에 지리산에 가서 살겠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책이, 그것도 아빠가 좋아하는 공지영 작가가 썼다고 하니 냉큼 읽었던 기억이 있단다. 그런데, 그 책이 벌써 6년이나 지났다니아빠가 읽은 것은 얼마 전 같은데 말이야. <지리산 행복학교>에는나중에가 아니라지금지리산에 내려가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그려졌단다. 그리고 6년이 지나고, 공지영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해주었단다.

지리산의 멤버들 중에 버들치 시인으로 부르는 박남준 시인이 있어. 공지영 작가의 친구들 중에 요리 잘하기로 소문난 버들치 시인의 밥상 이야기와 그의 지리산 친구들 이야기가 한 가득 담겨 있었단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버들치 시인의 시들도 담겨 있는데, 그가 지리산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시에서 지리산 향기가 나는 듯 했단다. 작가의 말에서 버들치 시인이 심장수술을 받았고, 이 책을 쓴 목적에 그를 도우려는 목적도 솔직히 이야기했단다. 목적이 어쨌든, 그들의 부러운 삶을 담백정갈한 공지영 작가의 글로 만나 무척 좋았단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아빠도 밥을 좀 가볍게, 자연 친화적인 식단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찻물에 밥을 말아, 김치 하나 놓고 먹어 봤는데, 김치 본연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어 좋았고. 구수한 밥 향기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단다. 무엇보다 거북함 없는 든든함마저 기분을 좋게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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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요리를 먹은 후(어쩌면 내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나의 밥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소박한 것이 점점 좋아진 것도 그와 1년을 함께 한 탓이리라. 오늘 나는 찻물을 우리고 밥을 말아서 들기름에 볶은 김치랑 단출히 아침을 먹는다. 땅에 뿌리박은 모든 것들은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을 도로 내놓고 땅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다.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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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라고

이 말이 아빠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강한 문구로 남았단다. 아빠의 가슴에도 깊이 새기고 싶었어. 그들은 돈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 그들은 그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더구나.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하고, 누구보다 계절을 즐긴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바쁜 회사일에 계절의 변화조차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들의 생활 패턴을 바꾸면 즐기고 있어. 그들의 삶이 비록 단순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풍요로운지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빠는 무엇인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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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 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이들이 소유한 것의 양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가 의신마을 최도사다. 그는 계절별로 두어 벌의 옷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언제든 어깨에 달랑 지는 바랑 하나에 짐을 챙겨 그는 먼 길을 떠날 수 있으리라. 내 주변의 많은 성직자, 수도자분을 보았지만 최도사만큼 적게 소유하고 있는 이는 보지 못했다. 스스로내비도의 교주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긴 간다.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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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는 잘 나가는 작가란다. 아마 돈도 많이 벌 거야. 그런데 버들치 시인을 비롯한 지리산 친구들은 가난한 친구들이란다. 공지영 작가는 생각한다. 나중에 자신이 돈을 많이 벌어 지리산 한편에 땅을 사서 친구들 같이 편히 살게 하겠다고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지리산 식이 아니라고, 할 거라고 덧붙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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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리산이야, 꽁지야. 친구들이 와서 지붕 다 고치고 지네들이 고기 사 와서 먹고 갈 거야. 넌 글이나 쓰라니까.”

그래, 거기가 지리산이었다. 소유가 전부가 아닌 곳, 욕망이 다다른 곳, 지혜가 다른 곳. 나는 문득 또 생각했다. ‘알았어. 내가 책 팔아 돈 많이 벌어서 지리산 한편에 땅이라도 살게. 그래서 다들 편히 살다가 갈 수 있게 할게라고. 아마도 친구들은 또 지청구를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게 지리산 식이 아니라니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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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을 읽다 보면 또 지리산에 가고픈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가 작년 겨울에 지리산 등반을 한 적이 있어. 그렇게 지리산 등반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냥 지리산 자락에 며칠 그들처럼 머물러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리산이 뒤에서 든든히 지켜주고, 앞으로는 섬진강 강이 내다보이는 그런 곳. 그런 곳에서 지리산에서 나는 나물을 먹으며, 전통 차 한잔 하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다 보면, 영혼에 찌든 때가 모두 씻겨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지난 번 <지리산 행복학교>를 책이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이 그 책에서 나온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지리산 주변의 땅값이 올랐다면서, 지리산 친구들이 투덜거렸다고 하는구나. 이러다 그곳에서도 쫓겨나는 것 아니냐고 말이야. 그런데 이번에 또 <시인의 밥상>을 내고 이 책이 인기를 끌면서 또 지리산 땅 값이 올라가는 것 아닌가 모르겠구나.^^

이 책에는 지리산 지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리산 주변이 아닌 다른 동네에 이야기도 나왔는데, 전주의 <새벽강>이라는 술집에 한번 가보고 싶더구나. 그리고 작년 여름에 너희들과 함께 놀러 갔던 거제도의 몽돌해변에 관한 이야기도 여러 번 이야기되어 반가웠단다.

 

 3.

본명보다 별명으로 더 많이 등장하는 버들치 시인 박남준. 아빠는 사실 그를 공지영 작가의 책을 통해서만 들어본 시인이란다. 그의 글들을 이 책에도 실려 있는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그의 글들은 담백하고 지리산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그의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이 책의 실려 있는 그의 글들 중에서 아빠가 가장 좋게 보았던 글을 발췌하면서, 오늘 편지는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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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물락 쭈물럭

단단하던 감들이 만지면 만져줄수록

쪼글쭈글 시들어간다

축축 늘어진다

사람의 모난 마음도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

둥글게 두리동동 동그래질 것이다

감을 깎다가 익거나 으깨져서 물러진 부분들

서걱 베어낸 곶감이 있다

그 베어진 상처 쪼물락 쭈물럭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더니

그러니까 상처가 씻기고 치유되어서

동글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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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 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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