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고세훈 지음 / 한길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지금까지 읽은 조지 오웰의 책은 <동물 동장> <1984> <카탈로니아 찬가> 이렇게 세 권이란다. 세 권 모두 재미있게 읽었고, 조지 오웰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단다. 그래서 그의 전기 같은 책을 찾아보다가 우리나라 사람이 쓴 <조지 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라는 책을 알게 되었단다. 지은이는 고세훈이라는 분인데 아빠는 잘 모르는 사람이야. 책이 두꺼운 양장본이고, 평점이 나쁘지 않았고, 아빠가 좋아하는 출판사 중에 하나인 한길사에서 나온 책이라 샀단다. 그렇게 사 두고 몇 년 동안 책장 한 켠에 꽂혀 있다가 이번에 아빠의 눈에 띄어서 읽게 되었단다.

다시 지은이 소개를 읽어보았어. 정치학을 전공하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쓰시기도 하고 2019년에는 고려대 명예교수로 계신다고 하더구나.(현재는 잘 모르겠어) 고세훈 님은 조지 오웰의 광팬이셨나보구나. 조지 오웰에 관련된 1차자료들 대부분을 반복적으로 읽고 나서 조지 오웰에 관한 글을 써서 모은 것이 바로 아빠가 이번에 읽은 <조지 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라는 책이란다. 이 책의 분량이 600페이지가 넘는데, 한 사람에 대한 책들을 읽고 그에 대한 독후감일 수도 있는데 그 분량이 600페이지가 넘더니 지은이 또한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조지 오웰. 그동안 아빠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대충 예상했던 대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생을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이 책의 내용 자체도 방대하지만 아빠는 인상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되도록 짧게 이야기하도록 할게.


1.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블레어이고 영국인이지만, 1903 6월 인도 식민지 벵갈에서 태어났단다. 아버지가 인도 정부의 하급관리로 일하고 있었거든. 태어나서 얼마 안 있어 영국으로 건너와 교육은 영국에서 받았단다. 조지 오웰의 집은 가난했어. 당시 영국에서는 빈부의 차이에 대한 차별도 심했는데, 조지 오웰이 학생 때 그런 차별을 받기도 했다는구나. 어렸을 때부터 이런 사회의 부조리를 몸소 체험해서 그의 피에 저항이 쌓였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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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무엇보다 부자애들은 결코 매질을 당하지 않았는데, 오웰의 기억에 따르면, 연소득 2천 파운드 이상의 부모를 둔 아이가 매 맞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가난한 집 학생은, 일류 사립고에 진학하여 학교의 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학비가 감면됐고 따라서 입학이 가능했다. 학교의 명성이 금전적 이익과 직결되던 산황에서 장학금은 학교()편에서는 장기투자였던 셈이다. 우웰이 그 경우에 속했다. 그런데 공짜 점심은 정말 없었다. 반액장학생이던 그가 치러야 했던 비용은 주로 정신적인 모욕과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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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그의 첫 직장은 버마의 경찰공무원이었단다. 당시 버마는 인도 정부 관할 소속이었어. 그러니까 영국의 식민지 중에 하나인 버마에서 경찰로 일한 거야. 이곳에서 약 5년간 생활하고, 1927년 휴가차 영국에 왔다가 경찰공무원을 그만두고 작가를 하겠다고 다짐했단다. 아무래도 버마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 버마에서 생활은 그가 이후 작가로 일하면서 줄곧 글쓰기의 소재로 쓰이게 되었단다. 저항의 피를 가지고 있는 조지 오웰이 식민지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홀대를 보면서 얼마나 분개했을까 싶었단다. 그 자신이 모국인 영국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제국주의 영국에 대한 비판은 평생 이어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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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34)

오웰이 제국경찰을 그만두고 7년이 지난 1934년에 출간된 <버마 나날들>은 오웰이 동양에 대해 쓴 유일한 반제국주의 소설이다. 그가 죽을 때까지 붙들었던 <끽연실 이야기>는 버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미완성으로 남았기 때문에 그 의도와 내용은 추측하기 힘들다. <버마 나날들>은 영국제국주의의 실상에 관한 현장기록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정치적 각성과 반성을 유인하기 위한 지식인 오웰의 행동이었다. 버마 체험에 대한 오웰의 회상들이 대체로 그렇듯, 책의 행간 곳곳에는 도저한 석벽(石壁)과도 같은 인종적 편견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이 스며 있다. 오웰은 거기에서 제국주의가 현지인들뿐 아니라 지배자들의 일상에도 깊숙이 침투해서 모두의 싦과 의식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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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결심한 조지 오웰은 파리에서 1 6개월 동안 글쓰기 전념하였단다. 수입이 없던 그에게 덮친 건 극심한 가난이었고, 폐질환이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이 폐질환은 지병이 되어 평생 그를 괴롭히게 된단다. 파리에서의 가난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영국 런던으로 돌아왔단다. 그렇다고 영국에서의 생활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어. 그는 영국에서도 가난과 함께 했는데, 이때의 생활을 소재로 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단다. 왜 사람이 기본적인 삶도 보장받을 수 없는가. 온 세상이 자본주의에 점령당해서 그런 것이었어. 그래서 자본주의를 비판하였단다. 민주주의가 정치 체계에서 옳은 체계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세계에 있는 민주주의라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파시즘과 똑같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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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특히 전쟁 발발 이전 즉 오웰이 아직 평화주의를 고수하던 때에, 자본주의하에서 민주주의란 파시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보통사람들의 존엄이 구현되는 사회였다. 그는 인간이 지닌 본질적이고 태생적인 위험이 형제애에 대한 신뢰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전통이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평화주의를 떠난 이후에도- 저버린 적이 없었다. 보통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경계하고 그것의 개선(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한 절망은 언어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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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내놓은 책이 버마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소설 <버마 나날들>이라는 소설이란다. 그리고 이후 에세이, 소설, 평론 등으로 계속 쓰지만 눈에 띄게 인기를 끄는 작품은 없었단다. 그 즈음에 스페인에서는 좌파 정부가 프랑코가 이끄는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고 프랑코 독재가 시작되면서 내전에 휩싸여 있었단다. 스페인 내전에 지원하여 직업 참가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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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스페인 내란 소식을 접한 오웰은 즉시 보통사람의 존엄을 위해 싸우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1936 12 23일 런던을 떠나 26일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스페인에서는 공산당이 지지하는 정부가 공포정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웰의 눈에 바르셀로나의 거리와 사람들 사이에는 평등이 넘쳤다.” 그 광경은 싸워서 지켜낼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가 보이게 스페인 전쟁은 본질에서 계급전쟁이었다. 이기면 보통사람의 대의는 강화되고, 패한다면 지대수익자들이 환호하리라는 사실, 그 외에 나머지는 모두 거품이었다. 스페인에서 혁명전사가 된 오웰은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 머문 후에 POUM의 독립노동당 분대원으로 아라고 전선에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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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을 다녀오고 나서 그는 그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단다. 이 책에서는 <카탈로니아에 경의를>로 번역을 했는데, 아빠가 읽었던 책은 <카탈로니아 찬가>로 번역을 했단다. 아무튼 그 책에서는 조지 오웰은 자신이 좌파이지만, 좌파에 대한 좋은 글들만 적지 않았단다. 좌파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잘못에 대한 비판을 적어 놓았어. 특히 스탈린이 이끄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회주의에 대해 비판하였고, 스탈린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는 좌파미디어에 대해서 비판하였단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좌파 정당인 독립노동당에 가입해서 활동하게 되는 것도 스페인에서 실망한 좌파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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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3)

귀국 즉시 스페인 반파시스트 진영의 내분, 정확히는 스탈린 공산주의 세력의 반혁명적 기회주의적 실상을 낱낱이 밝힌 <카탈로니아에 경의를>의 집필에 착수했다. 그런 작업은 좌파정치의 미래, 진정한 민주사회주의의 앞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지만, 오웰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진실이었다. 스페인 상황을 선별적으로 보도하던 좌파미디어는 결과적으로 소련의 입장을 그대로 따른 셈이었다. 오웰은 런던의 지식들이 결코 일어나본 적이 없는 사건들 위에 정서적 상부구조를 구축한다고 탄식했다. 그가 POUM을 강하게 지지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자본주의 언론이 귀기울여주지 않고, 좌파언론은 오로지 중상만 해댔기 때문이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오웰이 스페인에 오기 전부터 POUM파시즘의 직접적 도구로 간주한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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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독립노동당(ILP) 에서 일년 반 정도 활동하다가 그만두었고, 건강이 안 좋아져서 한동안 요양을 했단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35살 즈음이었지.(1938) 1941 8월부터 1943 11월까지는 BBC 방송국에서 일했는데 BBC에서 일하다 보니 문학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 그만두었다고 하는구나. 1943 11월부타는 좌파잡지 <트리뷴>에서 문예편집장으로 일했어. <트리뷴>이 좌파 진영이었지만,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날카롭게 이어졌단다.

조지 오웰에 대해 읽다 보니 그의 사상은 뚜렷했던 것 같았단다. 그는 일단 자신의 조국 영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였단다. 하지만 그는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했단다. 그러면서도 세계2차 대전에서는 독일보다는 영국을 지지하였단다. 당연하겠지. 독일의 나치즘은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사악한 세력 중에 하나였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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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오웰은 제2차 세계대전을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는 전쟁으로 간주했다. 영국이 독일보다 도덕적으로 반드시 우월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국제국주의는 나치즘보다 더 사악하다 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출판할 자유가 독일보다는 영국에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오웰이 보기에 영제국의 가장 어두운 부분인 인도에도, 전체주의 국가에서보다 훨씬 많은 표현의 자유가 존재했다. 그러나 전체주의의 정신이 독일과 소련을 넘어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이런 절박한 인식이야말로 작가로서 오웰이 전체주의에 결연히 맞서야 했던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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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는 좌파이고 사회주의자였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러시아 사회주의도 강하게 비판했단다. 러시아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고, 전체주의라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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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러시아 사회주의는 내적으로 전체주의화했고, 외적으로 제국주의화함으로써 사회주의의 본래 의미를 철저히 왜곡시켰다는 것이 오웰의 기본 시각이었다. “1930년 이래 나는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를 거의 보지 못했다. (…) 반대로 나는 그것의 지배자들이 여타 지배계급과 다름 없이 권력을 탈취하고 유지하려고 혈안이 된 위계적 사회로 전화되는 뚜렷한 증거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소련신화를 몰락시키는 일이야말로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위해 핵심적 과제가 돼야 한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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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러시아 공산주의를 비판하면서 쓴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동물농장>이라는 책이란다. <동물농장>의 주인공들은 모두 동물들이지만, 소설 속 동물들은 현시대 정치인들과 매칭을 쉽게 할 수 있었단다. 그런 비판적인 소설이라서 많은 출판사에서 <동물농장>의 출간을 거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45 8월이 되어서야 <동물농장>이 출간되어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어. 그래서 처음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지.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동물농장>이 출간되기 얼마 전에 아내 아일린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단다. 이제 가난에서 막 벗어나려던 시기였는데 말이야. 조지 오웰도 썩 운이 좋지는 않았어. 이제 가난의 딱지를 떼려고 하는데 건강이 다시 급격도로 안 좋아졌단다. 타자기를 쓸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아 다음 작품인 <1984>는 손으로 썼다고 하는구나. 그 책도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와 비판을 한 소설로 어두운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란다.

이 소설이 조지 오웰의 마지막 소설이 된단다. 1950년 폐렴이 악화되어 죽고 말았단다. 죽기 얼마 전 조지 오웰은 재혼을 하게 되는데 약간 의아했단다. 아일린이 죽고 <동물농장>이 출간된 이후 악화된 건강으로 계속 요양하고 치료에만 전념했거든그리고 두 번째 아내가 되는 소니야는 죽기 얼마 전에 알게 되었고, 곧바로 결혼을 하였단다.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서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고, 결혼을 한 지 3달 만인 1951 1 21일 그는 눈을 감고 말았단다. 이 책에서 조지 오웰과 소니야의 사랑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단다. 둘 사이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을 수 있기 때문에 아빠는 말조심을 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소니야가 조지 오웰의 돈을 보고 결혼했다는 비난도 있었다고 하더구나. 더욱이 소니야는 자유분방한 자유연애를 했던 사람이었고, 조지 오웰이 죽고 나서 모든 인세 수혜자가 되었으니 사람들이 그런 시선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영국을 사랑하지만 영국을 비판하고 좌파였지만 좌파를 비판했던 조지 오웰. 그가 바랬던 사회주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민주 사회주의. 그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진정 사회주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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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360)

오웰은 도저한 사회주의자였지만, 보통사람에 의해 보통사람의 가치와 정서가 구현되는 정치에 희망을 걸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그의 입장은 왕왕 인기가 없었고 종종 시대에 뒤처지기도 했지만, 그는 그것을 견지하고 추구하는 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윤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오웰은 손수건 산업의 도덕성을 먼저 따진 후에야 코를 푸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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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

오웰에게 희망은 (민주적) 사회주의에 있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일종의 도덕적 자유주의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국가는 경제적 삶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떠안음으로써 국민을 빈곤 실헙 등의 공포에서 해방시키지만, 국민 개인의 지적 삶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때 예술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에서처럼, 혹은 그보다 더욱, 번성할 터인데, 예술가는 더 이상 경제적 압박하에서 작업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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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꿈꾸는 사회주의가 민주 사회주의였지만, 세상은 그의 꿈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단다. 그가 미래를 예견했던 것처럼 러시아의 사회주의는 점점 전체주의가 되어가서 100년도 안되어 스스로 무너져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전체주의가 무너졌다고 하지 않고,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사회주의가 무너졌다고 했단다. 그러니까 사회주의는 잘못되었다는 편견을 갖게 된 거지. 오늘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정치인들은 반대진영 정치인을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는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자는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물론 민주주의를 표방한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일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고작인 듯 싶구나. 민주주의 장점과 사회주의 장점이 잘 어우러진 정치체계는 정말 어려운 것인가 싶구나.

이번 독서 편지를 시작하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지 오웰에 대한 책을 읽기 했지만 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단다. 아빠도 이해력이 좋지 않아 이 두꺼운 책, 가제에 보고서라고 단어가 포함된 이 두꺼운 책을 제대로 이해했을 리도 없고 말이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조지 오웰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런 작품들을 쓰게 되었는지 알게 된 것 같구나. 그리고 늘 저항하고 비판하는 조지 오웰의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좋았단다.

짧게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글이 길어졌구나. 마지막으로 그가 권력에 붙어 먹는 지식인에 대한 비판 한 소절을 소개하고 마칠게. 조지 오웰의 권력욕에 빠진 지식인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것처럼 보였단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권력 욕심에 기웃기웃하는 것을 요즘에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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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오웰이 보기에 지식인은 권력을 지니거나 권력을 추구했으며, 늘 권력 주변에 서성댔다. 그가 지식인과 지배계급을 동일시했던 이유이다. 그는 지배층의 오만과 위선을 경멸하듯 지식층과 오만과 위선을 경멸했다. 그에게 지식인의 위선과 권력욕은 모두 가장 가동할 권력의 형식이면서 자본주의 외적 내적 발전형태인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었다. 따라서 오웰의 지식인 됨 혹은 지식인으로서의 삶은 그 자체가 가해자의 근원적 죄의식에 닿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떠남내려감그리고 엄혹한 글쓰기 과정을 모두 개인적 속죄의 근거로 삼는 한에서만 비로소 스스로에게 정당화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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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이 책은 오웰이 쓴 지금까지 알려진 거의 모든 일차 자료에 대한 반복된 독서를 기반으로 씌어졌다.

책의 끝 문장: 그래서 그는 열정이 소진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쓰는 일을 지속한다.


조지 오웰에게 세인트 시프리언스 예비학교와 버마는 그의 삶 전체, 즉 가난과 전쟁의 체험뿐 아니라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깊고도 넓게 영향을 미쳤다. 이 점은 무엇보다 오웰의 삶과 작품들이 웅변으로 보여주지만, 여러 계기에 걸친 그의 직접진술과 말년에 이를수록 빈번해지는 회상과 환기, 주변인물과 전기작가들의 증언이 확인해준다. 오웰에게 학창시절과 버마 시절은 삶과 글쓰기의 원체험이었다. - P109

세계가 전체주의로 흐르리라는 오웰의 예감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짙어졌다. 그는 조만간 모든 민족주의 운동은 초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고, 히틀러가 떠난 자리에 스탈린, 영미의 백만장자 그리고 드골 유의 온갖 ‘작은 독재자’들이 들어설 것으로 보았다. 세계적 흐름인 중앙집권적 체계는 경제적으로는 기능적일지 모르나 정치적으로는 비민주적 카스트 체제와 같이 가기 마련이다. 거의 신적인 카스트가 꼭대기에 있고 밑에는 적나라한 노예들이 있는 위계적 구조에서 유례없는 자유의 박멸이 진행될 것이다. 그때 언론의 자유는 첫 번째 치명적 죄악이며 후에는 "무의미한 추상"이 될 것이다. 그것은 <1984>에서 윈스턴 스미스가 오브라이언의 주장에 따라 4개 손가락을 5개로 보듯, 지도자의 뜻대로 2+2=5가 되는 세상이다. 그때 자율적 개인은 존재가 말살되고 작가는 창조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 P166

노동계급 가정이야말로 유대와 평등이라는 동일한 가치가 배양되는 통합공동체의 기초였다. <위건 피어로 가는 길>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노동계급 가정에서는 따뜻하고, 품위 있고, 깊은 인간적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쉽지 않다. 육체노동자는 (…) ‘교육받은’ 사람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더 많다. 그의 가정생활은 자연스럽게 더 정상적이고 보기에도 좋게 꾸려진다. 나는 종종 노동계급 가정의 실내가 독특하고도 손쉽게 완전성, 말하자면 완전한 대칭으로 꾸며져 있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 P254

유럽대륙에 전운이 감돌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오웰의 성찰은 깊어졌고 과격해졌다. "우리는 영국이 민주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인도통치에서 보듯이, 겉으로는 덜 자극적일지 모르나 독일 파시즘 못지않게 악하다. 자신의 조국에서부터 자본주의를 전복시키지 않고 어떻게 파시즘에 대항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웰이 보기에 "파시즘이라는 경쟁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자본주의-제국주의 정부와 협력한다면 이는 파시즘을 뒷문으로 불러들이는 것과 같았다. 적어도 경제체제에 대한 한 영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파시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때는 아직 전쟁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 P299

오웰은 도저한 사회주의자였지만, 보통사람에 의해 보통사람의 가치와 정서가 구현되는 정치에 희망을 걸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그의 입장은 왕왕 인기가 없었고 종종 시대에 뒤처지기도 했지만, 그는 그것을 견지하고 추구하는 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윤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오웰은 손수건 산업의 도덕성을 먼저 따진 후에야 코를 푸는 사람이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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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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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블로그 알라딘 서재에서 알게 된 책,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이란 책을 읽었단다.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은 양장본으로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드는 시리즈인데, 이 책도 그 시리즈로 나와서 아빠가 선택하는데도 한몫을 했단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이 제목에 들어가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편안한 죽음이라니누가 죽음을 경험해봤다고 편안한 죽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사람은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해주거나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단다. 그저 다른 이의 죽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과연 편안한 죽음이 있을까.

이 책의 지은이는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분인데 보부아르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름이구나.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소개를 보니, 꽤나 유명한 사람인 것 같은데 아빠는 그저 낯설지 않은 이름이라고밖에 할 수 없구나. 얼마 전 알라딘 서재에서 많이 소개되는 책 <2의 성>이라는 책도 이 분의 작품이더구나. 지은이 소개를 좀더 읽어보니 프랑스 콩쿠르 상도 수상하고 페미니즘 운동도 하시고, 사회문제에 있어서 시위도 직접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셨더구나. 그리고 유명한 철학자 사르트르와 계약 연애를 했다는 내용도 지은이 소개란에 있더구나. 평생을 열정적인 삶을 사신 분 같구나. 이번에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경험,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적은 글이었단다.

다들 어머니라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일 텐데 그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사람이 힘들 거야. 그리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경험일 테고 말이야.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이자 지은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읽게 되었단다.


1.

엄마가 욕실에서 넘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보부아르. (일인칭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되는데, 그 일인칭이 지은이일 테니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냥 보부아르라고 할게) 병원에서는 대퇴부 경부 골절이 발생해서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어. 의사들도 낙관적인 소견을 보이면 세달 뒤면 뼈 붙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고 했어. 엄마의 나이 일흔여덟. 기력이 없으셔서 욕실에서 넘어질 수도 있는 나이. 보부아르는 병원에 있으면서 지나온 엄마의 고단한 삶을 떠오르기도 했단다. 쉰네 살에 아버지가 죽고 혼자된 어머니의 삶. 아버지가 그리 착하신 분이 아니고 속만 썩이다가 가셔서 그런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히려 더 열정적인 삶을 사셨던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 한 평생 삶은 억압의 삶이라고 할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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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 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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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분이 병원에 입원을 했으니 이것저것 검사를 받아보게 되었는데, 뜻밖의 발견. .

그 동안 소화가 계속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게 악성종양이 소장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라고소장을 막고 있을 정도의 종양이라면 진행이 이미 한창 되었다는 의사의 말.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지만, 부모님이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인정하기 싫어할 거야. 그만큼 두려운 병이 암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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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그런 것 같았다. 심지어 암인 게 분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눈언저리에 든 멍이며 살이 빠지는 것 하며. 그런데 의사는 암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아들이 미쳤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인정하는 이는 부모고,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인정하는 이는 자식이기 십상이다. 엄마는 평생 동안 암에 걸리지 않을까 두려워해 온 만큼 나와 내 동생은 엄마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걸 믿지 않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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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엄마에게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단다. 말기암이라는 것을 환자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야 하는가는 오래 전부터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구나. 최근에는 환자에서 솔직히 이야기하고 치료를 해서 고치자고 희망을 주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책이 쓰여진 시점에는 환자에게 숨기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구나. 보부아르도 어머니에게 숨겼어. 어머니에게는 그저 복막염이 발견되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그렇다고 병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는 병의 위중함이 커졌다 작아졌다는 반복하면서 몇 번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셨단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선택. 말기암이라서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수술을 한다면 생명 연장을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 이 경우 수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은 의사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린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수술을 거부할 경우 쏟아지는 비난을 어찌 감수할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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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예측, 그리고 결정을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로서는 굳어 가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게 되면 엄마가 장폐색증을 견디면서 지옥을 맛봐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게 뻔했다. 의상들이 안락사를 거부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 아침6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용기를 내서 N박사에게 그대로 돌아가시도록 어머니를 내버려두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N박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아는 자 특유의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나를 냉대했다.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머니에게서 몇 년 더 사실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셈입니다라고. 내가 엄마를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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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의사의 수술에 대한 낙관적인 이야기를 듣고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였단다. 엄마는 여전히 복막염 때문에 수술하는 줄 아시고


2.

보부아르의 가족은 동생 푸페트가 있는데, 푸페트도 병원에 와서 둘이 함께 어머니 병상을 지킬 때도 있고, 번갈아 가면서 병상을 지킬 때도 있었단다. 병원 밖에 있을 때 임종이 다가왔다고 연락이 오고 병원에 가보면 다시 위기를 넘겨 안정을 취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 이런 것을 몇 번 경험하는 것은 가족들도 심한 스트레스일 거야. 죽음에 두려움과 이런 순간들의 괴로움이 교차하는 모순. 보부아르와 동생 푸페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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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푸페트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지냈다. 나 역시 혈압이 높아 얼굴이 붉어진 상태다. 우리는 엄마가 임종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회복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또한 그걸 지켜보면서 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처지로 인해 특히나 힘들었다. 고통과 죽음 사이에 경주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죽음이 이기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죽은 듯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시계를 매달아 둔 검은색 리본이 미미하게나마 움직이는지를 확인하게 위해 엄마가 입고 있는 하얀색 실내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심스레 관찰하곤 했다. 이게 마지막 경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위가 쪼그라들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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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통해 조금 더 늦춰진 엄마의 죽음. 지은이는 그 늦춰진 죽음에게 자신도 얻은 것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수술을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괴로움을 없었다고자칫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죄책감에 괴로워 했을 거라고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이처럼 힘든 경험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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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37)

그러나 엄마의 죽음이 늦춰진 결과,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얻은 게 있었다. 그 덕분에 거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수많은 후회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소멸하는 동시에 반대로 자신의 현존 덕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 삶에서 더 크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어야 했던 존재,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리 삶 전부에 해당하는 존재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가 다른 이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정신을 잃을 전도로 아찔함을 자아내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한계-물론 한계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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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을 통해 조금 늦춰진 엄마의 죽음은 얼마 못 가 현실이 되었단다. 보부아르는 병원 밖에 있어서 임종을 지키지 못했단다. 병원에 뒤늦게 도착한 보부아르는 엄마의 얼굴에 드리워진 죽음의 신만 보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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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52)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사랑, 우정, 동료애가 죽음이 야기한 고독을 능가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을 때조차 나는 엄마와 함께 있지 않았다. 엄마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속고만 살아온 엄마를 거짓말로 끝내 다시 한 번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운명과 공모한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거부하고 죽음에 맞서 싸우던 엄마와 세포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엄마의 패배로 나 역시 쓰러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임종하는 자리에는 세 번씩이나 참석했던 나는 정작 엄마의 임종은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의 머리맡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조소를 머금은 채 음산하게 춤을 추던 죽음의 신을 보았다. 한 손에 낫을 든 채로 문을 두드린다는, 밤새워 듣던 이야기에 나오는 그 죽음의 신을, 낯설고도 끔찍한 모습을 하고서 머나먼 다른 곳에서 찾아온다는 죽음의 신을 나는 보았다. 죽음의 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입을 활짝 벌리고 턱뼈를 드러내며 웃던 엄마의 바로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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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고 했지만, 지은이도 이야기한단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고 말이야. 그래 맞아.. 편안한 죽음은 없어. 자신에게도…. 남겨진 이게도 말이야. 지은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죽음은 폭력일 뿐이야. 그것도 부당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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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이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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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죽음에 관해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단다. 죽음은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그 누구도 피할 것 없는 것. 그래서 누군가는 그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빠는 솔직히 말해 자신 없구나. 고통은 둘째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어찌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PS:

책의 첫 문장: 1963 10 24일 목요일 오후 4시에 나는 로마에 있는 미네르바 호텔 방에 있었다.

책의 끝 문장: 하지만 각자에게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나는 엄마를 말리는 데 애를 먹었다. 엄마는 베개에 몸을 기댄 채 내 눈을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매가리가 풀린 게야. 너무 피곤하고 진이 다 빠져버렸어. 내가 늙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단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면 일흔여덟이야. 완전히 늙어 버린 셈이지. 그러니 준비를 해야겠구나. 인생의 책장을 한 장 넘기려고 해."
- P22

엄마가 다른 이들에게 내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대신에 나를 조금 더 믿고 내게 마음을 더 써 줬더라면 우리 관계가 좀 더 좋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엄마가 그러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복수심이 너무나 컸고, 치료해야 할 상처가 너무나 깊었던 까닭이다. 무언가를 할 때면 엄마는 늘 스스로를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길 거부해 온 엄마가 어찌 나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 사이가 나빠지지 않도록 태도를 꾸며 내는 데 있어서도 엄마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 때면 엄마는 무척 당황하곤 했는데, 이는 이미 주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도록 교육받은 탓이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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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25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스럽고 편안한 죽음은 없겠죠? 마지막 문장이 너무 공감이 가네요~ 저도 죽음은 의연하게 받아들이긴 힘들거 같아요 ㅜㅜ

bookholic 2022-02-25 23:29   좋아요 0 | URL
네, 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말을 즐겁게 보내요~~~^^
 
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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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재미있게 읽은 이케이도 준의 <변두리 로켓> 시리즈 2번째 이야기, <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를 읽었단다. 작년에 <변두리 로켓>을 읽고 나서, 우연히 오랜만에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단다. 그 친구에게 아빠가 이 책을 추천해 주었단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장과 그 회사에 다니는 연구원들의 삶과 애환을 담겨 있는 따뜻한 소설이라고 하면서, 그 친구에게 추천을 했는데 읽었는지 모르겠구나. 이번 2 <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에도 사람 냄새 나는 회사 이야기가 있었단다. 재미도 좋아서 순삭해버렸단다.


1.

주인공 쓰쿠다가 운영하는 쓰쿠다제작소. <변두리 로켓>의 결말에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서, 이제 탄탄대로만 갈 것 같았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왔단다. 그 위기들을 어떻게 넘겨가는지 이야기해줄게.

니혼클라인이라는 대기업에서 의문의 의뢰가 들어왔단다. 어디에 쓰는지는 알려고 하지 말고, 설계도대로만 시제품을 만들어달라면서 했어. 그것도 적은 비용으로 의뢰가 들어왔단다. 쓰쿠다는 대기업 니혼클라인과 협업하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적은 비용으로 시제품을 만들면 적자이기 때문에 망설이다가 시제품뿐만 아니라 나중에 양산까지 쓰쿠다제작소에서 한다는 조건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했단다.

쓰쿠다제작소에서 일하다가 더 공부한다고 그만 둔 마노라는 사람이 있는데, 마노가 다니는 아시아의과대학과 니혼클라인과 협업 프로젝트로 인공심장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고 쓰쿠다에게 알려주었어. 그리고 쓰쿠다제작소에 의뢰한 것은 인공심장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소형밸브였단다. 쓰쿠다제작소에서 받아본 소형밸브의 설계도... 좀 이상하고 내구성도 보장이 안되어 보여서 인공심장에 쓰이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설계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데, 대기업에서 의뢰한 것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어. 그래서 니혼클라인에서 요구한 조건에서 내구성까지 갖추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지만, 개발 담당자들이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 특히 개발을 이끌고 있는 나카자토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어찌저찌하여 시제품을 완료해서 니혼클라인에 납품을 했는데, 뒤늦게 설계 변경 요청이 왔단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기간과 개발비용의 조건으로 말이야.

결국 쓰쿠다제작소는 그간 적자를 감수하고 그 제품 개발에서 손을 떼기로 했단다. 그런데 그 밸브를 니혼클라인에서 요구한 비용과 기간으로 개발하겠다고 하는 업체가 나타났어. 시나라는 사장이 경영하는 사야마제작소란 곳이야. 시나는 미국 나사 출신의 뒷배경이 빵빵한 그런 사람이었단다. 니혼클라인의 입장에서는 나사출신의 사장이 경영하는 회사에 더 신뢰를 보냈어. 경험은 보지 않고 말이야.

아시아의과대학에서 인공심장 개발의 총책임자는 기후네 교수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탐욕과 권력 욕심이 엄청난 사람이란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거야. 그 기후네 교수 아래에서 앞서 이야기했던 마노가 같이 인공심장을 개발하고 있었던 거야. 마노는 니혼클라인이 쓰쿠다제작소를 대하는 것을 보고 비도덕적인 회사와 함께 일하기 싫다면서, 최근 연락 온 옛 스승님이 일하고 있는 후쿠이현의 호쿠리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단다. 그 스승님의 이름은 이치무라 교수였는데, 원래 이치무라 교수도 아시아의과대학에서 일하고 있었고, 기후네 교수의 제자이기도 했어. 그런데 기후네 교수가 이치무라의 아이디어를 빼앗아 자기 것처럼 발표하는 것으로 보고, 그와 결별하여 지방에 있는 호쿠리쿠 대학으로 이전을 한 것이란다.

이치무라 교수는 그곳에서 인공 판막 개발을 하고 있었단다. 마노도 호쿠리쿠 대학에 와서 이 인공 판막 개발에 합류하게 된 것이란다. 이치무라 교수가 인공 판막을 개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후네 교수는 그 기술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치무라 교수에게 접근했는데, 이번에는 이치무라 교수가 거절을 했단다. , 그렇더니 기후네 교수의 치졸한 복수가 시작되었어. 이치무라 교수가 써낸 논문들을 너무 부적합이 되도록 뒤에서 힘을 썼던 거야. , 정말 치졸한 인간이로구나.


2.

며칠 뒤 마노가 쓰쿠다제작소를 찾아왔어. 인공 판막에 사용하는 원형틀을 쓰쿠다제작소에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어. 의료제품에 사용하는 것이고 인공 판막이라는 생명과 직접적 영향을 주는 제품이라서, 나중에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소기업에서 그것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료복지사업이라는 좋은 의도의 사업을 그냥 외면하기 어려웠단다. 그래서 결국 한번 해보기로 했단다. 이번 개발의 리더로 지난 인공심장 개발의 리더였던 나카자토에게 다시 맡기려고 했어. 지난번에 중단된 프로젝트를 다시 만회해 보라고 말이야. 그런데 나카자토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거야. 그리고 경쟁업체인 사야마제작소를 스카우트를 받아서 가기로 했다고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뭐 어쩔 수 없었지.

니혼클라인과 프로젝트가 깨진 지 얼마 안되어, 데이코쿠 중공업에서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단다. 데이코쿠 중공업이라면 1권에서 인공위성 로켓을 같이 개발했던 대기업 아니던가. 성공적인 발사를 했으면 같이 일해야겠지만, 데이코쿠에서는 다음 버전은 수주가 아닌 경쟁입찰로 하겠다고 통보했단다. 당연히 수주라고 생각해서 원자재까지 다 놓았는데 이제 와서 경쟁 입찰이라니…. 횡포도 이런 횡포가 없구나. 그런데 그 경쟁 업체라는 곳이 알고 모니, 사야마제작소였단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사야마제작소의 사장 시나의 나사 출신이라는 소문이 여기에도 퍼져 있었다. 이미 다음 버전의 생산 업체는 사야마제작소로 내정되어 있고, 경쟁 입찰은 형식적인 것으로 보였어.

예상대로 사야마제작소는 데이코쿠 중공업의 신규 밸브 개발 입찰도 따는 분위기였어. 경쟁 입찰 시험 성적은 쓰쿠다제작소가 좋았지만, 사야마제작소로부터 로비를 받은 이가 사야마제작소의 사장 시나가 NASA 출신임을 강조하고 앞으로 발전성에서 사야마제작소와 손 잡는 것이 좋겠다고 했어. 기본에 충실한 쓰쿠다제작소는 이대로 무너지는가?


3.

쓰쿠다제작소를 퇴사하고 사야마제작소에 스카우트된 나카자토. 시제품을 만들었으나 계속 실패했어. 내구성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은 시제품 제작 오차에 의한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담당자한테 이야기했더니, 그럴 리 없다고 큰 소리치면서 무조건 설계 문제라고 했단다. 쓰쿠다제작소와 다른 회사 분위기쓰쿠다제작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다 같이 어디가 문제인지 확인해 봤을 텐데..

어찌저찌하여 사야마제작소에서 만든 인공심장의 첫 이식 수술. 그런데 인공심장을 이식한 환자가 얼마 안되어 위급상황이 벌어졌고, 당직 의사였던 사람이 심장 마사지를 하면서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단다. 인공심장은 기계로 되어 있어서 마사지를 하면 안되었거든. 결국 인공심장을 이식 받은 환자는 죽고 말았어. 니혼클라인과 사야마제작소에서는 제품에는 이상이 없었다. 당직의사가 실수로 조치를 잘못해서 환자가 죽고 말았다. 이렇게 발표를 했단다. 뭔가 붕괴의 냄새가정말 제품에 이상이 없었을까?

그런데 내부고발자가 나타났단다. 인공심장 이식 환자가 죽은 것은 인공심장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이야. 인공심장에 대한 시험성적서의 데이터가 조작되었다고 했어. 그 근거 자료를 잡지사에 보내게 되어 언론에 보도되었단다. 사야마제작소는 큰 타격을 입었어.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제품인데 시험성적서를 거짓으로 만들다니. 이건 소설이지만 정말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정말 이렇게 조작된 시험성적서를 이용해서 제품을 출시하는 회사가 있을까.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되는구나. 사야마제작소가 이런 스캔들이 터지자 인공심장 공동 개발을 하던 니혼클라인과 아시아의과대학은 발 빠르게 발을 뺏어. 그리고 경쟁 입찰에서 사야마제작소의 손을 들어주었던 데이코쿠 중공업도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쓰쿠다제작소의 손을 잡았단다. 데이코쿠 중공업도 쓰쿠다제작소에 한 짓들을 보면 한번 당해야 하는데, 다시 손을 잡고 정리를 하다니데이코쿠 중공업에도 대부분 사야마제작소로 돌아섰지만 자이젠 같은 착한 사람이 쓰쿠다제작소를 계속 밀어주었으니 좀 봐주기로 하자. 다신 배신하지 말기를

그리고 쓰쿠다제작소와 호쿠리쿠 대학이 협업을 해오던 인공 판막은 성공적인 개발을 완료했단다. 여기까지가 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란다. 줄여서 이야기한다고 마음 먹었는데, 문맥은 자주 끊기고 글만 길어지는 낭패가 발생했구나. 변두리 로켓은 4권까지 출간되었는데, 다음에 읽게 되면 또 이야기해줄게. , 졸립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봄바람에 초여름 기운이 섞인 4월 하순,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오타구 가미이케다이에 위치한 직원 200명 규모의 중소기업 쓰쿠다제작소에 의뢰가 들어왔다.

책의 끝 문장: 기술자들의 싸움도 조용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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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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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시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구나.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한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의 크기에 따라서 시간의 속도가 다르게 간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크기에 따라서 시간의 속도가 더 차이 나게 가는 것 같구나. 그렇게 시간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새해, 아빠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책이 눈에 들어왔단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니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제목으로 달다니

책을 주문할 때는 책 값이 비싸서 꽤나 두꺼운 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적 작고 얇더구나. 그런데 왜 이리 비싸게 받는 거야? 양장 때문인가? 지은이가 인세를 많이 줄 만큼 유명한 사람인가? 지은이는 카를로 로벨리라는 분으로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작가이나, 이미 많은 과학 교양서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이론 물리학자이자 양자 이론과 중력 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이래.

양자 이론은 미시적인 세계, 중력 이론은 거시적인 세계. 각각 다른 물리 법칙이 작동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두 세계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물리 법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있단다. 카를로 로벨리 님이 만들어낸 개념인 루프양자중력이라는 말에 양자라는 말도 있고, 중력이라는 말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분도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공통적으로 설명하는 물리 법칙을 찾아내려고 공부하시는 분인가 보구나.

그런데 그런 중력과 양자역학의 공통 접점을 연구하시는 분이 왜 시간을 흐리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셨을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시계 초침이 흘러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고 무엇일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새해에 시간이 천천히 가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아빠의 바람도 무색하게 벌써 2월도 중반이 넘어가 버렸구나.


1.

그런데, 이 책은…. 어렵다.

아빠와 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참 버거운 책이었단다. 1부에서 나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부분은 그래도 읽을 만했단다. 아인슈타인 전까지 시간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절대 변하지 않는 것 말이야.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런 개념을 산산이 깨트렸고, 이론이었던 그의 상대성 이론이 실제로 증명이 되면서 진리가 되었단다. 중력과 속도의 크기에 따라 시간의 흐름은 변한다는 것이 핵심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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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시계만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다. 아래쪽에서는 모든 과정이 더 느리다. 나이가 같은 두 친구가 있는데, 한 명은 평지에 살고 다른 한 명은 산에 산다고 해보자. 수년이 지난 뒤 두 사람이 만나면, 평지에서 산 친구는 살아온 시간이 더 짧아서 덜 늙어 있다. 이 친구의 집에 걸린 뻐꾸기시계는 덜 진동했고, 볼일을 볼 시간도 적었으며, 집에서 기르는 식물도 덜 자랐다. 또한 이 친구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시간도 적었다. 아래쪽은 위쪽보다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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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시간은 일정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우주를 시각을 확장시키면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1광년 떨어진 곳에 별이 있다면 그 별에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지금관측한다면, 그 별은 이미 1년 전에 일어난 일을 보게 되는 것이거든이렇듯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 사람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거야. 그렇다면 과거, 현재, 미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은이는 그것을 그것은 사건들의 네트워크라고 설명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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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08)

반면, 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작동한다. 아주 간단한 사건이든 아주 복잡한 사건이든 더 단순한 사건들의 조합으로 분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들의 총체이다. 폭풍우도 사물이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들의 집합이다. 산 위의 구름도 사물이 아니다. 공기 중의 습기가 응결된 것을 바람이 산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파도도 사물이 아니라 물이 움직이는 것이고, 이 물은 언제나 다른 모양을 만든다. 가족도 사물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 느낌의 총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당연히 사물이 아니다. 산 위에 결린 구름처럼 음식, 정보, , 언어를 비롯한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복잡한 프로세스다. 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 화학적 프로세스의 네트워크 속에, 자신과 비슷한 타인들과 교환한 감정의 네트워크 속에 있는 수많은 매듭들이 인간 안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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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건의 네트워크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 이론은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란다. 열역학 제 2법칙은 너희들도 나중에 학교에서 배우게 될 거야. 쉽게 이야기하면 열이란 것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이동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건의 흐름은 엔트로피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만 흐르게 된다는 법칙이란다. 엔트로피라는 것은 무질서한 정도라고 하는데, 모든 물질은 무질서한 정도로 변하려고 하는 성질, 그것이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인 것이란다. 사실 우리 거실이라 너희들 방도 누군가 치우지 않으면 점점 지저분해지게 되니, 열역학 제 2법칙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란다.^^

그럼 다시 과거, 현재, 미래의 정체를 알아보자꾸나.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사실은 엔트로피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야. 과거는 엔트로피가 낮고, 미래는 엔트로피가 높은 것이지. 엔트로피가 낮고 높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사건의 네트워크로 엮이게 되는 것이고생물체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가고 죽는 것도 시간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엔트로피가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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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생명체도 유사하게 상호 뒤얽힌 과정들로 구성되어 있다. 광합성은 태양으로부터 받은 낮은 엔트로피가 식물에 쌓이는 과정이다. 동물은 음식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낮은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엔트로피가 아니라 모두 에너지라면, 우리는 음식을 먹지 않고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세포 내부는 복잡한 화학 공정들의 네트워크로서 낮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문을 여닫는 구조물이다. 분자들은 촉매처럼 공정들의 얽힘을 촉진하거나, 반대로 억제하기도 한다. 각각의 모든 공정에서 엔트로피의 증가는 모든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생명은 서로 촉매작용을 하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과정들의 네트워크다. 간혹 생명이 특별히 질서화된 구조들을 만들어낸다거나, 국소적인 영역에서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고 흔히 말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저 낮은 엔트로피의 음식을 분해하고 소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나머지 우주에 존재하는 스스로 구조화된 무질서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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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뒤로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구나. 분명 한글로 되어 있는데,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글들. 이렇게 엔트로피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이유를 양자역학까지 끌어들여 설명하게 된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은이가 연구하는 학문이 중력 이론과 양자 이론을 합친 루프양자중력을 연구하는 사람이잖니이런 엔트로피의 단방향 흐름도 양자의 불확실성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아빠는 대충 이해를 했단다. 잘못 이해했다는 해도 문제될 것 없고, 자세한 내용은 이해하지 못해도, 뭐 어쩔 수 없고….

….

마지막으로 지은이가 바라보는 죽음의 독특한 시각에 대해 소개해 볼게. 사람을 비롯하여 많은 동물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진화의 오류라고 설명했단다. 그런데 진화의 오류든 아니든 죽음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고 두려운 것이니. 엔트로피 무질서의 최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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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내가 보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진화의 오류다. 수많은 동물들이 포식자가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도망친다.. 그것이 건강한 반응이고 그래야 위험에서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잠깐 동안의 두려움일 뿐 계속되지는 않는다. 이 두려움 덕분에 유인원이 탄생했다.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은 분명 도움이 되는 특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 유인원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 물론 두려움의 본능을 일깨워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게 해주기는 한다. 나는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두 가지 진화의 압박에 의한 우발적이고 어리석은 간섭이자, 우리 뇌 속에서 발생한 잘못된 자동 회로 연결의 산물일 뿐 특별히 유용하다거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일정한 기한이 있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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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간이 환상이더라도 거의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는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잘 살아가려면 시간은 꼭 필요하단다. 그래야 약속을 정한 시간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기차나 버스도 탈 수 있고 말이야. 그렇게 보면 시간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두메 산골에서 시계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면, 시간은 꼭 필요한 것 같구나. 현재 시간 밤 11 35. 시간이 없다면 도대체 지금이 어느 정도 깊은 밤인지 잘 몰랐을 것 같구나. 이런 금방 또 시간이


PS:

책의 첫 문장: 가만히 멈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책의 끝 문장: 이것이 시간이다.


이것이 시간이다. 친숙하고 은밀하다. 시간이라는 도둑은 우리를 끌고 간다. 1초, 1분, 1시간, 1년의 쏜살 같은 흐름이 우리를 삶 속으로 밀어넣었다가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끌고 간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는 시간 곳에서 산다. 우리 존재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시간의 애가(哀歌)는 우리의 영양분이 되고, 우리에게 세상을 열어주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한편, 편안한 요람이 되어주기도 한다. 세상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시간이 이끌어가는 일들을 펼쳐나간다. - P7

즉, 시간은 첫 번째 층인 유일함을 상실했다. 모든 장소의 시간은 다른 리듬과 속도를 갖는다. 다양한 리듬의 춤 속에서 세계의 사건들이 얽힌다. 세상이 춤추는 생명의 여신으로부터 지배를 받는다면 최소한 만 명의 여신이 있어야 할 테고, 그 여신들의 춤은 마티스의 그림처럼 거대한 군무로 펼쳐질 것이다. - P26

현재가 아무 의미 없다면 우주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존재’하는 것이 ‘현재 속에’ 있는 것 아닌가? 우주가 어떤 특별한 구성으로 ‘지금’ 존재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는 생각은 이제 더는 타당하지 않다. - P65

뉴턴의 시간은 우리 감각의 증거물이 아니라 우아한 지적 산물인 것이다. 교육받은 여러분에게 사물과 관련이 없는 뉴턴의 시간이란 존재가 단순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면, 그 이유는 여러분이 학교에서 이 시간을 접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조금씩, 알게 모르게 시간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전 세계 교과서들은 시간을 공통적으로 생각하도록 기타의 개념들을 걸러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시간에 대한 직관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물이나 사물의 움직임과 별개인 균일한 시간의 존재가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고대의 인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 P76

관점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본 수많은 것들은 이해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채도 남는다. 어떤 경험을 하든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마음과 뇌, 공간의 어느 지점, 시간의 어느 순간 안에 있다. 세상 속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시간에 관한 우리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이다. 우리는 ‘외부에서 본’ 세계의 시간 구조와 우리가 보는 세상의 측면, 즉 우리가 세상 안에 세상의 일부로 존재함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측면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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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6 - 초기 자본주의와 르네상스의 확산 : 시장이 인간과 미술을 움직이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6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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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가끔씩 보는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시리즈의 제 6권을 읽었단다. 현재 출간된 마지막 권이 6권이고, 이야기는 그 이후에도 이어진단다. 처음 이 시리즈를 접했을 때는 이미 6권까지 출간되어 있었는데, 아빠는 6권으로 끝인 줄 알았어. 책 한 권이 두껍기도 했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 르네상스를 막 지나고, 앞으로도 이야기할 것이 꽤 많을 것 같구나. 10권까지는 나와야 현대 미술까지 다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어. 그런데 지은이 양정무 님은 6권을 내시고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데, 7권 소식은 아직이구나. , 다른 책들 읽으면서 기다리면 되니까 걱정은 안 한단다. 책이 두껍긴 하지만, 미술작품에 대한 사진들도 많고 글씨도 크고, 대화체로 이루어져 쉽게 읽을 수 있단다. 너희들도 조금 더 크면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밀린 독서 편지를 만회하기 위해서, 바로 이야기해줄게.

6권에서는 낯선 지역의 미술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5권에서 이탈리아 중심의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르네상스 미술이 알프스 산맥 넘어 북유럽 지역에서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에 관한 이야기란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걸쳐 플랑드르 지방이란 곳이 있는데, 플랑드르 지방이 6권의 중심이 되는 지방이란다. 플랑드르라고 하면 낯선 지명이지만, 이 지역의 영어식 발음은 플랜다스란다. 그래, 맞아. 바로 플랜다스의 개의 그 플랜다스야. 원래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한 나라였는데, 종교 개혁의 갈등으로 카톨릭을 믿는 벨기에와 프로테스탄트를 믿는 북쪽 네덜란드로 나눠지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이 지역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영향을 받을 수 있던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북유럽을 갈 때, 알프스 산맥이 너무 높아서 가기 어렵고, 무역을 할 때 주로 배를 타고 가게 되는데, 그 배가 도착하는 항구가 있던 곳이 바로 플랑드르 지방이고, 그래서 그곳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미술을 꽃피운 곳이 되었단다. 이 지역은 땅이 해수면보다 낮아서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할 수 없었고, 주로 상업으로 발전하게 된단다. 상업을 하는 사람들이 부유하게 되면서 부르주아 계층이 만들어지잖니. 부르주아라는 뜻이 성안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아빠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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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2)

부르주아(bourgeois)는 프랑스어로 성안에 사는 사람들을 뜻해요. 여기서 부르(bourg)는 성을 의미합니다. 유럽에는 스트라스부르, 함부르크, 잘츠부르크처럼 부르(bourg), 혹은 부르크(burg)로 끝나는 도시 이름이 많아요. 성벽을 둘러치면서 도시를 형성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중세 후기에 상업 활동으로 부를 쌓은 평민들이 주로 성안에서 살았어요. 이 때문에 성공한 평민들을 성한에 사는 사람, 즉 부르주아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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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초상화를 화가들에게 의뢰하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유명한 미술가들도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중에 얀 반 에이크라는 사람이 무척 유명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사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인데, 이 책에 실린 그의 그림을 보니, 미술에 문외한인 아빠가 보기에도 정말 뛰어난 그림이더구나.

플랑드르의 대표적인 도시 브뤼헤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 역시 국제 항구도시였어. 이 곳이 발전하면 증권 시장과 미술 시장도 등장한데… 15세기 플랑드르 지역의 미술의 중심지가 바로 브뤼헤라고 할 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얀 반 에이크가 이때 많은 활동을 한단다. 하지만 이곳에 점점 흙이 쌓이면서 항구로서 역할을 점점 할 수 없게 되는데 그러면서 쇠퇴하게 되고, 16세기 들어서는 안트베르펜이라는 곳이 상업적으로 발전하고, 그에 따라 미술도 같이 발전했단다. 자본주의가 산업혁명 이후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고들 하지만, 이미 이때 상업 중심의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고 하는구나. 상업이 발전하는 곳에 자본이 들어오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미술도 발전하고 그랬단다.

14세기부터 약 100년 동안 프랑스와 영국이 백년전쟁을 하게 되는데, 서로에게 신경을 쓰는 바람에 이웃 국가들을 괴롭히는 일이 줄어들었대. 그래서 이웃 지역인 플랑드르 지역은 번성했다고 하는구나. 그 와중에 프랑스와 영국의 간섭 없이 나라도 세웠는데, 그 중에 부르고뉴 공국이란 나라가 있었단다. 브르고뉴 공작이 세운 나라로 약 백여 년 동안 이어진 나라인데, 궁정 문화와 미술을 발전시키면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구나. 정리를 하자만 이때 이 지역에서 미술을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업의 발달로 돈 많은 상인들이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이란다.


1.

북유럽에서 활동하던 앞서 이야기했던 얀 반 에이크와 로베트 칼팽이 대표적인 화가들인데 그들은 사진과 같은 진짜처럼 그림을 그렸는데, 아빠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지구인 같지가 않더구나. 그럼 그들은 어떤 미술 기법을 사용했을까. 그들은 이탈리아와 다른 재료들을 사용했대. 그림을 그릴 때 나무판 위에다가 그랬는데, 이탈리아에서는 포플러 나무를 사용했는데 북유럽에서는 오크나무를 썼대. 더 단단하고 뒤틀리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나무판에다 그림을 그려야 하니, 쉽지 않을 것 같구나. 나무 판을 많이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그리고 물감도 개발해서 썼다고 하는데, 달걀 노른자와 안료를 섞어 사용하는 에그 템페라를 물감을 쓰기도 했대. 신기하구나. 달걀을 만든 물감이라니그리고 기름을 섞어 만든 유화도 이곳에서 즐겨 그렸다고 하는구나.

이 시기의 미술은 성당을 꾸미기 위해 많이 그리고 만들어지고 했다는구나. 그 중에 각 성당마다 대표할 수 있는 제대화란 것이 있는데 이 제대화에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고 하는구나. 제대화란 성당의 앞쪽에 제대가 있는데, 그 제대 위에 올려놓은 그림을 제대화라고 한단다. 절에 있는 탱화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될 지 모르겠구나. 아무튼 그 제대화들이 발전했는데, 양쪽 면으로 된 두폭화, 폭이 세 개로 된 세폭화, 그 이상의 폭을 가진 다폭화 등 형식도 다양하다고 하는구나.

그런 북유럽의 제대화 중에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5개를 뽑아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대단해 보이는데, 직접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단다. 그 다섯개의 유명한 제대화는 십자가에서 내리심’, ‘포르티나리 제대화’, ‘성 볼프강 제대화’ ‘예수 성혈 제대화’, ‘이젠하임 제대화이렇게 다섯 개란다. 나중에 아빠랑 같이 인터넷으로라도 같이 찾아보자꾸나. 물론 책에도 나와 있지만, 좀더 고화질 큰 화면으로….^^

….

알브레히트 뒤러라는 북유럽의 화가가 있는데, 이 사람은 그림도 잘 그렸지만, 나중에 판화로 엄청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판화로 그런 그림들이 정말 정교했어. 뉘른베르크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 도시에는 금세공이 많았고, 인쇄 기술이 발달한 도시였어. 그 곳에서 뒤러는 판화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대. 그리고 판화라는 것이 많은 그림을 찍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는데 이것이 뒤러에게 큰 관심이 있었던 거야. 자신의 그림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 말이야. 많은 사람들에게 팔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고 말이야. 자신의 이름 앞자리를 따서 AD라는 브랜드도 꼭 판화에 넣었대. 나중에 뒤러의 판화가 유명해지면서, 그의 판화를 표절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일어났어. 뒤러는 자신의 판화에 대한 저작권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를 통해서 획득하기도 했단다.


2.

북유럽 도시들이 표본으로 삼은 도시가 있는데 바로 베네치아란다. 그래서 지은이 양정무 님은 베네치아와 그곳에서 발달한 미술을 이야기해주었어. 베네치아는 석호를 개간에서 만든 인공 섬이라고 하더구나. 118개의 섬을 400여개의 다리로 연결해서 만든 섬. 베네치아는 그 풍경이 아름다워서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졌는데, 베네치아 수상 교통의 중심인 카날 그란데와 베네치아의 유명한 성단 산 마르코 성당도 많이 그랬대. 산 마르코 성당은 비잔티움 제국을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니 그런가 보다 하지, 아빠는 잘 모르겠더구나.

르네상스 이전의 베네치아 미술은 그냥 그랬는데, 15세기 들어서면서 급발전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안토넬로 다 메시나와 안드레아 만테냐가 있었단다. 그리고 16세기 들어가는 유화 기법을 도입하고 원근법을 적용하면서, 더 크게 발전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발전한 베네치아 미술이 북유럽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라고 했어.

….

, 이상 6권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아빠가 미술 분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깊이는 이야기하지 못하고, 책에 나온 조그마한 미술작품에도 감탄했다는 이야기만 쭉 쓴 것 같구나. 양정무 님께서 7권은 언제 쓸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은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을 읽어봐야겠구나. ㅎㅎ


PS:

책의 첫 문장: 이번 강의는 이탈리아에서 꽃핀 르네상스 미술이 알프스 너머 유럽에서는 어떻게 펼쳐졌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책의 끝 문장: 이처럼 뜨겁게 변모하는 시대 상황과 이에 발맞추어 다채롭게 변화하는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강의에 풀어놓으려 합니다.


한편 테르 뷔르제 광장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지속됩니다. 프랑스어로 증원 거래소를 북스(Bourse)라 하고, 독일어로는 뵈르제(Borse)라 하는데요. 이게 다 여관 테르 뷔르제(Ter Buerse)를 어원으로 삼아요. 영어로도 증권 거래소는 원래 부어스(Burse)로 불렸는데 18세기에 국가로부터 왕립 거래소라는 명칭을 부여받아 이름을 바꾸었죠. - P89

프랑스 동부에 닿아 있는 부르고뉴 공국은 1363년부터 1482년까지 약 12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15세기 르네상스라는 결정적 시기에 유럽 한복판에 강력한 국가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리고 부르고뉴 공국이 있었던 120년간은 미술사에 대단한 자취를 남겼죠. 앞으로 펼쳐질 북유럽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거든요. - P135

옛날에는 사회 변화나 유행의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느렸으니 30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 변화는 격변이라고 할 수 있죠. 인물이든 사물이든 정확히 재현해낸 얀 반 에이크 그림이 여러 가지 부분에서 이전에 비해 진보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얀 반 에이크가 등장하는 1420년대에서 1430년대에 북유럽에서 그려진 그림들을 아르스 노바(Ars nova) 즉, ‘새로운 미술’이라 하는 거겠지요. 도시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소비 문화가 만들어졌고, 상인과 장인 등 제3신분이 등장해 시민사회가 형성되었죠. 이 같은 일련의 변화는 ‘새롭고 정확한 미술’이 나오는 데 중요한 시대 배경이 되었습니다.
- P243

요즘 화가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화가들이 쓰는 재료와 표현 기법에 큰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재료를 썼는지는 간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재료를 통해서 미술을 보면 달리 보이는 부분들이 많아요. 베네치아 회화는 유화를 캔버스에 그렸기 때문에 색채가 더욱 살아나고 표현도 더 다채로워졌으니까요.
이렇게 색채는 베네치아 회화의 핵심 요소로 떠오릅니다.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색채가 주목받는 시기가 온 겁니다. 특히 조반니 벨리니는 15세기 후반부터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며 베네치아의 화려한 색채 표현을 이끌어나가지요.
- P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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