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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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영화 <마션>의 원작 소설의 지은이로 유명해진 앤디 위어의 최근작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었단다. 아빠도 영화 <마션>을 재미있게 보고 그 원작 소설도 재미있게 봐서, 앤디 위어의 다음 소설 <아르테미스>도 읽었단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해서 그랬는지 <아르테미스>를 읽고는 실망을 했었지. 그래서 다음 작품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의 또 다른 신간이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단다. 인터넷 서점 서칭을 하다가 뒤늦게 신간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아르테미스>에서 실망을 해서, 읽을까 말까를 여러 번 망설이다가 <마션>을 기대하면서 읽어 보았단다.

다 읽고 난 아빠의 느낌은 <아르테미스>보다는 낫고, <마션>에는 미치지 못했단다. 이 책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우주 속에서 그려지는 SF 소설이란다. SF 소설들은 일단 소재가 기발해야 한다는 생각해.

이번에 읽은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설정은 태양이 식어가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설정이 괜찮았단다. 정말로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태양이라는 것이 언젠가는 식혀서 별의 생명을 다하겠지만, 그것은 아무 먼 미래의 일이라서 지금 시대는 아무도 걱정을 하지 않는데, 그 일이 어떤 이유로 갑자기 현 시대에서 발생을 한다면그것도 제법 빠른 속도로 말이지이 소설은 그 경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을 그린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단다. 전염병에 걸린 태양을 구출하는 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특별 임무였단다. 아참,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헤일메리(Hail Mary)라는 말은 미식축구 용어로, 경기 막판에 역전을 노리고 하는 패스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하는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 알겠더구나.


1.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 한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낯선 우주 공간의 우주선 안옆 테이블에는 자신 말고 두 사람이 더 있었으나 이미 오래 전에 죽어 있었어. 그도 오랜 잠에서 깨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옆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심지어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기억하지 못했어. 그러니 더더욱 자신이 어떤 임무를 띠고 이 우주선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지.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옛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게 되었는데, 그것도 한참 시간이 걸렸어.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미생물학 박사로 외계 생명체를 연구를 했었는데, 자신의 이론이 인정 받지 못하고 학계에서 따돌림 비슷한 것을 받자, 그 일을 그만두고 중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태양의 온도가 급격히 식는 일이 벌어졌단다. 그 원인을 조사하던 과학자들은 금성에 있는 무엇인가 태양의 열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 밝혀졌어. 그래서 NASA에서는 금성으로 가서 그 무엇인가를 채취해서 지구로 가지고 왔단다. 마치 작은 생명체로 보이는 것이었어. 그래서 NASA에서는 외계 미생물을 연구했던 그레이스에게 그 괴생명체의 정체를 밝히는데 도움을 요청했단다.

아주 작은 점의 생명체인데 태양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레이스는 거의 잡혀 오듯이 끌려왔지만, 그레이스도 그 생명체에게 호기심이 있어 살펴보았단다. 그 생명체의 이름을 아스트로파지라고 불렀어. 별을 뜻하는 아스트로와 세균을 숙주세포로 하는 바이러스를 의미하는 박테리오파지의 합성어였어. 그레이스는 아스트로파지의 주 성분이 물이고, 자신의 온도를 약 96도로 유지한다는 것을 밝혀냈단다. 금성에서 가지고 온 아스트로파지는 총 173개였는데, 그레이스가 그것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알아내자, 그 아스트로파지들을 세계 곳곳의 과학자들에게 보냈단다. 그 아스트로파지란 놈이 어떻게 태양의 에너지를 빼앗아 태양의 온도가 떨어지고 있는지 연구를 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레이스에게 주어진 아스트로파지는 3개였어. 아스트로파지의 속도는 빛의 속도의 0.92배로 엄청나게 빨리 움직였어. 그들이 태양에너지를 흡수하면서도 금성을 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성은 알다시피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있는 별이야. 그걸 가정으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아스트로파지에서 주었더니, 글쎄, 그 놈이 번식을 하였단다. 그러니까 숫자가 늘어났어. 아스트로파지가 금성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번식하고 태양으로 가서 다시 에너지를 흡수하고 이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가설을 세웠단다.


2.

이 프로젝트의 담당은 스트라트라는 사람인데, 그레이스는 자신의 가설을 스트라트에게 이야기했어. 스트라트는 그레이스를 곧바로 어떤 항공모함으로 데리고 갔고, 그곳에는 세계의 유력 정치인과 과학자들이 모여 있었단다. 그렇게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어. 태양이 식어가는 것은 태양만의 문제가 아니었어. 태양을 비롯하여 주위 별들이 모두 조금씩 어두워졌다고 했어. 그리니까 아스트로파지는 별들을 이동하면서 별들을 죽이고 있다고 했어. 마치 전염병처럼 말이야. 그런데 타우세티라는 별은 감염이 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단다. 타우세티가 왜 감염되지 않았는지 확인이 가능하다면, 태양도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 태양이 점점 식고 있으면 인류도 멸망을 피할 수 없었단다. 인류가 망하기 전에 그 비밀을 풀어야 했어. 그래서 타우세티까지 우주선을 보내기로 했단다. 연료는 아스트로파지를 이용하기로 했어. 아스트로파지의 속도가 빛의 속도의 0.92배라고 했으니 얼마나 빠르겠니. 타우세티까지 날라가는 13년 정도 걸리고, 다시 그 정보를 가지고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13그 정도면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단다.

이제 타우세티까지 가는데 필요한 아스트로파지를 확보하는 일. 그들은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아스트로파지를 배양시켰단다. 그 역할도 그레이스가 맡았어. 하지만 타우세티까지 갔다 오는데 필요한 아스트로파지를 배양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걸렸어. 그래서 타우세티까지 가는 것만 확보하고 오는 것은 정보를 담은 물체만 보낼 수 있는 양으로 확보하기로 했어. 그러니까 이 탐사를 떠나는 사람들은 다시는 지구를 돌아올 수 없다는 뜻이었어. 극적인 요소로구나.

지구 곳곳에서 지원자를 뽑았어. 그래서 야오(중국인), 일류키나(러시아인), 두보이스(미국인)이 선정되었단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그들에게 아스트로파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열심히 알려주었어. 그런데, 두보이스가 아스트로파지로 실험을 하던 도중에 폭발사고로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그 대타로 그레이스가 강제로 선정되었어. 그는 이 임무를 거부했지만, 스트라트가 그를 강제 탑승시켰단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그 우주선을 타고 멀리 타우세티 별 주변까지 와 있었던 거야.


3.

그레이스가 타고 있는 우주선은 타우세티의 주변을 돌고 있었단다. 그런데 레이다 망에 또 다른 우주선이 포착되었어. 지구에서 보낸 우주선은 아닐 테고그렇다면? 외계인?  그래, 맞아.. 외계인이었어. 조심스럽게 그들과 소통을 시도했어. 그들이 공격 성향을 보일 수도 있잖아. 알고 보니 우주선에도 생명체는 하나뿐이었단다. 오각형의 바위 같은 모습이었고, 팔이 다섯 개, 팔 하나에 손가락은 3개였어. 바위와 비슷한 모습이라서 그레이스는 그 외계인을 로키라고 불렀단다. 지구와 전혀 다른 신진대사로 살아가고 있었고 환경도 달랐어.

처음에는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컴퓨터를 이용하여 번역프로그램을 만들어 나중에는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 로키는 또 다른 별의 에리드라는 행성에서 왔다고 했어. 로키는 에리디언이었지. 그가 온 이유는 그레이스와 같은 이유였단다. 자신들의 별이 식고 있는데 타우세티는 괜찮아서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왔다고 했어. 23명이 같이 출발했는데, 모두 죽고 자신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했어. 에리디언들은 산소 대신 암모니아로 숨을 쉬었으며, 빛 대신 소리로 사물을 확인하였으며, 체온은 200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숫자를 헤아릴 때 6진법을 사용했단다.

그레이스와 로키전혀 다른 생명체이지만 그들이 이곳에 온 목표는 똑같았단다. 그들은 타우세티의 비밀을 푸는 것. 그들은 자신들의 행성의 과학 지식들을 합쳐서 타우세티의 비밀과 아스트로파지를 없애는 방법을 찾는데 온 힘을 쏟았단다. 그 임무가 쉽지만은 않았단다. 수 많은 위기와 위험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비밀을 밝혀냈단다. 그것은 타우세티에는 아스트로파지를 잡아 먹는 포식자들이 있었어. 그래서 타우세티는 안전했던 거야. 이제 그 포식자들만 얻으면 지구인과 에리디언을 살릴 수 있는 것이었어.

추가로 좋은 소식 하나로키의 우주선에는 엄청난 양의 아스트로파지가 있었어. 그 양이라면 그레이스가 지구에 돌아갈 수 있는 양이었어. 지구 복귀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능해지다니…. 감격적인 순간이구나. 그레이스와 로키는 어렵게 채취한 아스프로파지의 포식자를 나눈 뒤에 각자의 행성으로 출발했단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별에 가슴 아파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지구를 오는 길에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온단다. 그레이스는 그 위기를 간신히 극복하게 되는데, 로키가 걱정이었단다. 로키도 똑 같은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었어. 그레이스가 도와주지 않으면 에리디언들은 그대로 끝이 나는 위기그냥 모른 척하고 지구로 갈 수는 없었단다. 그레이스는 원래 목표대로 해결책인 아스트로파지의 포식자와 그에 대한 정보만 실은 작은 로켓을 지구로 보내고, 자신은 다시 방향을 반대로 틀어서, 로키를 향해 간단다. 그렇게 그레이스는 로키를 다시 만나고 위험에 처한 로키를 구해준단다.

다시 지구를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려서그레이스는 로키의 행성으로 함께 갔단다. 먹을 것도 맞지 않고 지구의 중력과도 달라서 몸이 금방 안 좋아졌지만 그는 그곳의 생활을 선택했단다. 로키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주었지만, 그는 그곳에 머무르기로 했단다. 그리고 얼마 후, 태양의 밝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로키가 알려주었어. 그렇게 그레이스의 임무는 성공이었지. 지구 귀환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정신 없이 이야기를 해서, 중요한 부분들도 많이 빼먹고 이야기를 한 것 같구나. 나중에 너희들이 좀 더 크면 이 책을 한번 읽어봐도 좋을 듯 하구나. <마션>처럼 이것도 영화로 만들어질까 궁금하더구나.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원작과 달리 주인공 그레이스가 지구 귀환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는 해피엔딩을 좋아하거든~~^^


PS:

책의 첫 문장: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책의 끝 문장: 아이들 열두 명이 발톱을 들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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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만난 사람들
김영미 지음 / 그러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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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김영미 PD님의 <세계는 왜 싸우는가>를 괜찮게 읽고, 그 분의 다른 책을 더 읽어보겠다고 산 책이 있는데, 그 책이 이번에 읽은 <전쟁터에서 만난 사람들>이란 책이란다. 지난번에 읽은 <세계는 왜 싸우는가>라는 책은 세계의 주요 분쟁 지역의 역사와 분쟁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고 하면, 이번 책에서는 그 분쟁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단다.

분쟁이라고 하면 서로 적이라고 하는 양쪽 진영이 있을 텐데, 김영미 님은 양쪽 진영을 모두 취재하셨단다. 그리고 미국 등에서 테러리스트로 지목한 사람들도 취재를 하셨는데, 아빠는 무서워서 엄두도 안 날 것 같은데, 김영미 PD님은 그런 분들의 인터뷰를 해서, 그들의 입장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세상에 알리기도 하셨단다. 정말 대단한 배짱이시구나.

아빠가 이 책을 읽을 때 너희들이 이 책의 표지를 보고 한 마디 했잖니. 전쟁터에서 어떻게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냐고 말이야. 그러네, 분명 뒷배경의 건물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는데, 버려진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환한 미소를 띠고 있구나. 이런 사진을 보고도 권력자들은 전쟁을 하고 싶을까. 저 아이들이 늘 웃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 곳의 아이들은 늘 미사일과 총포의 공포에 떨어야 한단다. 이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일까. 욕심에 허덕이는 권력자들 때문이 아닐까 싶구나. 지은이 김영미 PD님은 이번 책의 주제는 사람이란다. 전쟁터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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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꿋꿋하게 삶을 꾸려가는 모습에서 그 어떤 무용담이나 모험담보다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처한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는 그들도 희망을 가질 때가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류애를 지닌, 가슴이 뜨거운 피디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들도 평범한 그 누군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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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부터 이런 분쟁 지역의 PD를 하신 것은 아니라고 하더구나. 2001 9 11, 아빠도 생생히 기억하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 이후 무작정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고 하는구나. 식구들이 걱정을 할까 봐 거짓말까지 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대. 무작정 날아가긴 했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시네. 운 좋게도 마음씨 착한 쉬르라는 통역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쉬르는 적극적으로 김영미 님의 취재 활동에도 도움을 많이 주었대. 여러 사람들을 취재하고 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가슴 아픈 사연들도 있었단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하는구나. 심지어 동물 취급을 받는다고 했어. 집 밖에 나가면 부르카를 뒤집어 쓰고 다녀야 했고 말이야. 사회 생활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고, 이런 일을 하게 되면 집안의 수치라고 생각을 했대. 어쩌다 그런 교리가 생겨났는지 참 궁금하구나. 그런 아프가니스탄의 천재 여류 시인 나디아가 있었어. ()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아픔, 특히 여성들의 아픔을 이야기했는데, 그 시집에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단다. 그런데 나디아의 남편 입장에서는 그런 나디아의 창작 활동이 집안의 수치라고 생각을 했고, 이 일로 나디아와 여러 번 다툼을 하다가 결국에는 그녀를 죽였다고 하는구나. 분명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나디아의 남편은 처벌을 받지 않았대.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에 죽인 명예살인이기 때문이래. 충격적이더구나. 사람을 죽였는데,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다니 말이야. 그 남편은 나디아보다 더 어린 여자와 재혼을 했고, 그 여자는 집안일만 해서 남편이 만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충격을 먹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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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가족은 아프가니스탄 여성으로 공개적으로 사랑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집을 낸 나디아를 죽여야 했다. 그런 입에 담을 수 없는 단어를 사용한 나디아를 명예살인 한 것이다. ‘명예살인이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죄를 지은 아내나 딸, 여동생을 죽여 가문의 위신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이 천재 시인은 시()와 자기 목숨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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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탈레반이 음악을 탄압을 했대. 그렇다 보니 음악 하는 사람들도 처벌 대상이 되어 도망 다니면서 음악을 해야 한다고 했어. 김영미 님이 취재를 한 무스타파 밴드도 그런 사람들이었단다. 음악을 하고 싶어 했던 무스타파 밴드는 탈레반 몰래 깊은 숲 속에서 사람들을 초대해서 공연을 했다고 하더구나. 한 지구 상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구나.

또 어려웠던 취재 중에 하나는 난민촌을 취재한 것이었어. 난민촌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 그들의 아픔이 느껴졌어. 김영미 님은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난민촌에서 그들과 함께 3~4주 가량을 생활하셨다고 하는구나. 전기도 없고, 먹는 것, 씻는 것 모두 불편한데도 그곳에서 난민들과 함께 어울렸다고 하는구나. 처음에는 취재에 거부를 하던 난민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취재를 해주었대. 특히 난민촌의 여성들을 취재할 수 있었다고 하는구나. 난민촌의 생활은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아이들이 더욱 힘들었단다. 아이들은 얼어 죽기도 하고, 지뢰를 밟아서 죽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아이는 변소에 빠져 죽기도 했대. 하지만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정이 있었고, 사랑이 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구나.


2.

이 책은 전쟁터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전쟁터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이 두 곳을 이야기하는 것이란다. 앞서 이야기한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이고, 이제는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을 몇몇 해줄게.

이 책에 실린 이라크의 이야기는 2002년부터 시작한단다. 2002년 이라크는 후세인 독재 시절이었고, 미국에서 대 이라크 전쟁을 선포해서 전운이 감돌고 있던 시절이었단다. 그러니까 김영미 님이 이때 이라크를 들어간 이유는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는 평범한 이라크 사람들을 취재하려는 것이었어. 그런 사람들 중에 무스타파라는 평범한 가족들을 취재했단다. 앞서 이야기한 아프가니스탄의 무스타파 밴드와 이름이 우연히 같지만 그들과는 관련 없는 이라크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이라크 내에서도 후세인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아서, 내심 미국이 쳐들어와서 후세인을 몰아내면 자신들의 삶이 좀 나아질 것으로 기대를 하는 이들도 많았단다. 그런 기대가 있어서인지 곧 닥쳐올 전쟁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준비하는 듯 했어. 기름 등을 사두고 먹을 것들을 사 두는 등 그들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그러나 속으로는 무척 무서울 것 같구나. 포탄과 미사일이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전쟁이니 말이야.

김영미 님은 전쟁이 점점 임박하면서 더 이상 머물 수 없어서 이라크를 빠져 나오셨단다. 그리고 예정대로 미국과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고, 미국의 승리로 돌아갔단다. 그와 동시에 후세인 독재도 끝이 났지. 이라크 시민들 대부분도 처음에는 미군을 반겼단다. 그 동안 오랜 후세인 독재의 시달림으로부터 벗어나 제대로 된 나라가 되겠다는 희망이 있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런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단다. 친미 세력으로 만들어진 이라크 정부가 민심을 잘 읽어서 나라를 이끌어 갔다면 좋았겠지만, 독단으로 일관했단다. 특히 이슬람 지도자를 무단 체포를 하면서 이라크 백성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어. 그 외에도 미군들이 여러 가지 잘못들을 저지르면서 이라크 국민들에게 미군은 정복자의 모습으로 비춰졌단다. 그러면서 미군에 저항하는 저항군이 생겨나기 시작했단다. 김영미 님은 다시 이라크에 들어가서 이들을 취재를 했는데,  그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하는 독립군과 마찬가지였단다. 누가 그들을 탓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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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미군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이들은 말하자면 독립군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독립군들이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테러리스트냐 독립군이냐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독립군도 일본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이다. 이라크 저항 세력도 미군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이다. 하지만 우리의 독립군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사람들에게 그들은 독립군이다. 역사의 평가는 후대에 한다지만 내가 그때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애국심에 불타는 독립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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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님은 이라크 반군뿐만 아니라,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도 취재를 했단다. 연령층이 다양했는데, 십대 후반의 어린 군인들도 있었대. 미군 또한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그들은 또 누가 이곳으로 오게 했는가. 정말이지, 전쟁이란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한 너무 위험하고 무모하고 쓸데없는 권력자의 욕심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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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303)

이라크는 인간이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이 피폐해지는지 너무도 잘 보여 준 곳이다. 이라크 사람들도 전쟁으로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전쟁터에 내몰린 미군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전쟁에는 승자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되고 나서 얻는 승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쯤 마이크가 집으로 돌아가 엄마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엄마가 해 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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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가 또 큰 전쟁이 일어났단다. 명분도 없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온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어. 이 무모한 전쟁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너무 가슴 아프더구나.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지만 러시아 푸틴의 생각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구나. 그렇게 러시아의 완벽한 실패가 끝이 나야 다른 강대국들이 섣불리 이웃나라를 넘보지 않을까 싶구나. 얼른 얼른 평화적으로 이 무시무시한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느낀 점 하나. 한 나라의 지도자를 제대로 뽑지 않은 탓에 러시아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나라까지 비극으로 내 몰게 되었구나. 우리나라도 곧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우리나라를 안전하면서 웃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세상에는 왜 이토록 많은 슬픔이 있어요? 사람이, 왜 아파야 하는 거죠?”

책의 끝 문장: 아마도 더 많은 루비나가 학용품을 받고 행복해하며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나든 종교가 무엇이든 그것은 어른들의 일이다. 아이들은 어느 나라를 지목하여 태어날 수도 전쟁을 막을 수도 없는 힘없는 생명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적어도 세 가지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배고프지 않을 권리,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을 권리, 그리고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
- P59

피디를 시작하던 때 내가 "방송이 재미있고 신난다. 피디라는 직업 정말 좋다"라고 말하자 한 선배는 "시간이 지나면 그냥 단지 직업일 뿐이야. 나이를 먹으니 열정도 많이 식더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나이가 들어도 출연자들을 만나 카메라에 담는 일이 더더욱 신나고 행복해진다. 내가 철이 안 들어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아마도 내 생애는 마리암과 같은 출연자를 만나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으로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또 다른 마리암을 만나러 세계를 돌아다닌다. - P73

그런데 세상에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파키스탄 페샤와르로 취재 갔을 때 나는 음악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탈레반이다. 그들은 인간이 즐기기 위해 만든 음악은 신이 금지한다고 주장한다. 흥겨워 어깨를 들썩이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것은 절대 신이 용납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탈레반은 이런 신념을 곧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음반 가게나 라디오, 텔레비전을 파는 상점에 폭탄 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 P140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로 본 전쟁과 전쟁을 겪어 본 아이들 눈에 비친 진짜 전쟁은 많이 달랐다. 우선 그림 속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았다. 반면 무기나 탱크는 사람들에 비해 과장되게 컸다. 내가 그림 전문가 수준의 안목은 아니나, 무기가 사람을 죽일 만큼 어마어마한 화력을 내뿜는다는 것이 아이들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고, 그런 무시무시한 무기 앞에서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나무와 꽃 같은 아름다운 것을 그려야 할 동심이 전쟁으로 물든 것 같아 안쓰러웠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나라와 어른들 잘못 만나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생과 사를 가르는 전쟁에 노출되었나 싶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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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05 0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김영미 작가님은 대단하네요. 저도 못했을거 같아요 ㅎㅎ 정말 폐허속에서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고서도 전쟁을 계속 하고 싶은지 의문입니다~!!

bookholic 2022-03-05 23:45   좋아요 1 | URL
네, 제 식구들 중에 전쟁터에 취재간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고 쫓아다니며 말릴 듯...
그래도 김영미 님 같은 분이 계셔서 우리가 전쟁의 실상을 알고,
그런 전쟁에 더욱 반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채사장 님의 신간 소식이 반가웠단다. 팟캐스트 <지대넓얇>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쉽게 인문 지식을 쉽게 설명해주는 책을 통해 만났지. 그와 친구들이 진행하던 팟캐스트를 참 즐겨 들었었어. 어느 날 갑자기 그만들 하신다고 해서, 한 동안 쉬다가 시즌 2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구나. 최근에 나온 책들은 초창기 책들에 비해 임팩트가 좀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쓴 책은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소설은 처음인데,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하더구나.


1.

책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이란다. 소마.

소설은 소마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한평생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어린 시절 부족 간인지 나라 간인지 모를 전쟁으로 부모를 잃었단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남아서, 적국 엘가나라는 장수가 데리고 갔단다. 엘가나는 아데사라는 명문가의 사위였는데, 엘가나의 아내는 한나라는 여자였단다.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고, 그 일로 한나는 늘 신경과민 상태의 우울증을 갖고 있었어. 한나는 남의 집 아이, 그것도 이도교의 아이인 소마를 멀리하고, 아이를 자신의 눈에 띄지 않게 하인들에게 지시를 했는데, 나중에는 그 소마를 잘 보살펴주고 소마를 통해 치유 받게 된단다. 한나는 소마의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자기네 식으로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지었단다.

한나의 오빠 바가렐라라는 사람이 있어. 아데사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이자 엄청 무서운 장수이기도 하단다. 바가렐라는 한나가 사무엘을 데리고 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자신의 막내 아들이자 서자인 헤렌을 엘가나와 한나의 양자로 주었단다. 한나는 무서운 오빠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어. 한나는 소마를 아들처럼 생각했지만, 양자이긴 했지만 아들이 생겼으니 헤렌과 소마를 똑같이 대할 수는 없었단다.

헤렌은 당연한 듯 소마를 시기하고 못살게 굴었단다. 그러다가 작은 트러블이 생겼고, 그 일을 헤렌이 친아버지 바가렐라에게 고자질을 했고, 그 일에 연루되었던 소마를 보살피던 하인을 죽여 버렸단다. 그때 소마도 같이 죽이려고 했지만, 한나가 결사적으로 막아서 간신히 살았단다. 이 일이 있고 소마를 다들 멀리했단다. 잘못하면 또 죽을 수 있으니 말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마는 아데사 가문의 하인이라고 생각했어. 한나만이 아들처럼 잘 보살폈단다.


2.

청년이 된 소마와 헤렌. 헤렌은 친아버지 바가렐라의 빽으로 왕립기사단에 들어가게 되었단다.  한나는 오빠에게 사정사정해서 소마도 뒤늦게 왕립기사단에 들어갔단다. 굳이 헤렌이 몸답고 있는 왕립기사단이었을까. 둘이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소설의 재미적인 요소 때문에 지은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현실세계에서 한나라면 이제 헤렌이 떠나고 없으니, 소마를 좀 더 살갑게 대하면서 곁에 두었을 것 같구나.

소마는 왕립기산단에서 네이케스와 고네라는 남매를 만나게 된단다. 그들은 부조리한 이 세상을 바꾸려는 비밀 조직을 갖고 있었어. 소마도 그 조직에 들어갔단다. 그들은 미래를 꿈꾸지만 현실에서도 할 수 있다면 했단다. 그 중에 하나가 마녀 재판에 끌려온 여인들을 구하는 일이란다. 마녀 재판이라고 하면 중세시대에 실제로 있던 일인데, 마녀로 몰린 사람은 누명을 쓰고 화형을 당했단다. 이런 일이 네이케스와 고네의 눈에는 부조리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들이 이끄는 비밀 조직은 복면을 쓰고 마녀 재판에 끌려온 여인을 구출하는 일을 가끔씩 했단다.

헤렌이 이 비밀조직의 정체를 알게 되고, 다시 삼촌이자 친아버지인 바가렐라에게 알리고, 바가렐라는 기사단장에게 압력을 가해서, 이 조직은 결국 와해되게 된단다. 네이케스를 전쟁터에 보내 버렸어. 그리고 그들은 불법 단체를 만든 벌을 받게 되는데 소마가 고네를 채찍으로 때리는 벌을 받았어. 그들의 저항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아쉬웠단다. 지키는 대로 소마가 고메를 채찍으로 때렸거든. 물론 고네가 괜찮다는 눈짓을 소마에게 보냈어. 일단 순응하고 다음 기회를 볼 생각을 했는지도 있겠구나. 그런데 그 채찍에 독이 묻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지. 이 일이 있고 소마도 전쟁터로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고네의 죽음 소식을 들었단다. 채찍에 묻어 있던 독으로 죽은 거야.

네이케스도 동생 고네의 죽음 소식을 들었는데, 이 일로 네이케스는 소마를 배신자로 생각했단다. 나중에 만났을 때 소마가 불가피했던 일이고 독이 묻은 줄 몰랐다고 잘 이야기했다면 네이케스도 이해해줄 것 같았는데, 그런 기회가 있을 때도 소마는 침묵했단다.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아.

전쟁터에서 소마는 큰 충격을 받는단다. 전쟁을 통해 죽은 사람은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보다 선량한 백성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그리고 자신의 적국이었던 크레도니아에 투항하였어. 이제 그는 자신의 조국의 적군이 되어 싸우게 되었는데, 그는 크레도니아의 사령관이 되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단다.


3.

그렇게 전쟁과 함께 20년의 시간이 지났어. 소마는 크레도니아의 최고사령관이 되어 있었어. 적국이자 자신의 모국에는 여전히 헤렌이 있었단다. 헤렌과 소마는 적으로 만났고, 결국 소마가 이겼단다. 크레도니아의 정치인들은 소마의 출신성분까지 들먹이며 소마를 의심했어. 거기에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소마는 죽을 뻔했다가 극적으로 탈출했단다. 그래서 소마는 쿠데타를 일으켰어. 이 쿠데타는 성공하여 정권을 잡고 반대파를 모두 숙청했단다.

소마도 권력 시스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본능적인 모습을 보여주더구나. 우리 인간들이 자신의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소마는 세상의 일인자가 되었단다. 그리고 아데사 땅에 돌아갔단다.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한나의 소식도 궁금하고하지만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았지. 한나는 이미 죽고 없었고, 그 옛날 권력의 중심이었던 바가렐라도 이제 늙은 채 죽어가고 있었단다. 자신과 전투에서 죽은 줄 알았던 헤렌은 폐인이 되어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으로 살아가고 있었어. 소마는 헤렌을 죽였단다.

계속 극으로 치닫는 느낌을 떨칠 수 없구나. 어린 시절 순순했던 소마가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아데사의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그 중심에는 네이케스가 있었어. 네이케스와 오해를 풀 정도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소마는 예전의 소마가 아니었단다. 적으로 만난 소마는 네이케스는 옛친구가 아니고 그저 적군이었어. 네이케스 마저 죽였단다. 둘 간에 대치했을 때 대화를 나눌 만했는데, 아무 말도 없었단다.

이제 그의 적수는 없었단다. 또 세월이 흘렀단다. 일인자가 된 지 10. 크레도니아 곳곳에 기독교 마을이 곳곳에서 생겨났어. 그곳에서 기독교는 이교도였어. 소마는 명령을 내려 기독교 마을을 탄압하라고 했단다. 기독교도들을 모두 죽였어. 어떤 마을은 모든 사람들을 죽였단다. 그 마을에 우연히 살아남은 한 장님 소녀 이오페가 있었는데, 이 소년은 마치 어린 시절 소마를 보는 듯했단다. 소마도 마음에서 혼자 살아났잖니. 자신의 그런 아픈 기억이 있었는데, 그와 똑 같은 만행을 저지르다니그의 오래된 기억도 모두 잊어버린 것 같구나. 소마는 이오페를 데리고 와서 보살폈단다.

이오페가 자라고 이오페는 소마를 마사지해주고 말동무를 해주었단다. 이오페와 함께 하는 시간만이 소마에게 편안함을 주었고, 그 편안함은 사랑으로 발전했단다. 노년에 들어 진정한 사랑을 얻게 된 소마. 그런 소마를 정치인들은 불만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어. 그리고 반대 세력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소마를 불구로 만들어 내쫓아버렸단다. , , , 입을 모두 망가뜨려 소마는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했어. 그에게 남은 감각은 촉각뿐이었지그렇게 불구의 몸이 된 소마는 내면의 세계에서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된단다.

비록 소설이지만. 소마의 행동에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이 많았단다. 약간은 답답한 캐릭터였어. 일인자로 최정상에 있을 때조차 그는 세상의 문을 닫고 혼자만의 세상을 구축한 것 같았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폭력적인 세상에 적응했던 그가 자신의 세력을 구축을 하지 않았다니 이해가 좀 안 가는구나. 그러니 쿠데타로 수십 년 쌓아 올린 권력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지

채사장 님이 이 소설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단다. 소마가 커가면서 나이 먹으면서 영혼이 성숙했다고 볼 수는 없고, 더 사악해지고 탐욕적으로 바뀌는 모습만 보였거든. 그걸 반면교사 삼으라고 그런 캐릭터를 만드신 건지이런 저런 궁금증이 많이 생긴 채 책을 덮었단다.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아버지는 밤새 신을 태웠다.

책의 끝 문장: 그즈음 북쪽 평원에서 다시 늑대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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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5 - 광해군에서 인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5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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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가끔씩 읽는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 5권을 읽었단다. 이 책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방송에 나왔던 내용을 편집한 책이라서 쉽고 재미있게 잘 써져 있었단다. 너희들이 조금 더 크면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구나. 너희들이 역사를 좀 안 좋아하는 것 같지만 말이야. 이번 <역사저널 그날> 5권에서는 광해군부터 인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단다. 우리 Jiny도 학교에서 역사를 배워서 광해군과 인조라는 사람을 들어봤는지 모르겠구나. 작년에 <역사저널 그날> 4권의 이야기가 임진왜란 이야기였는데, 그 다음 이야기라고 보면 된단다.

광해군도 왕인데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왕자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란다. 연산군과 광해군이렇게 두 명의 왕이 왕자리에서 쫓겨났지. 사실 단종도 오랫동안 노산군으로 불렀는데, 단종은 쫓겨난 것이 아니라 삼촌한테 왕자리를 빼앗긴 것이니 그들과는 좀 다르단다. 그런데 연산군과 광해군도 좀 많이 다르단다. 연산군이 쫓겨난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지만, 광해군이 쫓겨난 것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부당하다는 의견이 많이 있단다. 아빠도 오래 전에 한명기 님의 <광해군>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된 이후 광해군을 쫓아낸 것은 부당하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조선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 그 와중에 어려운 국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모습이 현명한 왕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단다. 당시 신하들 대부분은 명나라를 받들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광해군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대처했어. 당시 명나라는 쇠퇴해가고 있었고, 여진족이 세운 후금은 기병부대를 앞세워 세력이 커지고 있었거든. 광해군은 그런 후금을 오랑캐로 보지 않고 하나의 나라로 보았고, 그런 명과 후금 사이에 조선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거야. 그는 명의 눈치도 봐야 하고, 후금의 눈치도 보면서 요령껏 대처했단다. 명에서 조선에 원군을 요청했을 때도 일단 원군을 보냈지만 후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전투에서 지면서 바로 항복을 했단다. 당시 이 원군을 이끌던 사람은 강홍립 장군이라는 사람인데 사전에 광해군과 의견 조율이 있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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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계승범] 그렇죠. 명에 대한 광해군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죠. 게다가 명이 후금 진영으로 들어가 선제공격을 하겠다며 원군을 요청했는데, 광해군은 명나라 군대가 반드시 패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광해군은 조선이 명을 도와서 군대를 보내면 아까운 조선 병사들만 죽을 것이고 거기에 후금의 원한까지 사서 후금이 우리에게 보복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죠. 반대로 신하들은 명이 분명 이길 텐데 우리가 미적거리면서 확실하게 돕지 않으면 나중에 후환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누가 이길 것인가? 그 판단에 차이가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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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도 어려웠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내 사정도 어려웠어. 광해군은 여러 당파의 인재들을 등용하였고, 나라의 조세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대동법을 시행하려고 했단다. 대동법은 기득권의 거센 반발로 결국 경기도만 시범 적용하는 것으로 축소되었어.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는 버릇은 알아줘야겠구나. 광해군의 콤플렉스는 자신이 적자가 아닌 서자라는 사실이었어. 그래서 늘 역모 사건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 같아. 실제로 적정자인 영창대군을 왕으로 세우자는 역모가 발생하기도 했단다. 이 사건이 진압되긴 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여덟 살이었던 영창대군도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단다. 물론 영창대군은 이 역모와 관련이 없었지. 지금은 여덟 살로 어리지만 그가 스무 살이 된다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강화도로 유배를 간 영창대군은 불을 뜨겁게 달군 방에서 죽게 되는데 이를 주도한 사람이 이정표라는 사람이란다. 광해군의 지시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구나. 광해군이 잔인하다고 하지만, 당시 조선에서 권력 싸움으로 상대진영을 죽이는 것은 아주 흔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드문 것도 아니었단다. 태종이나 세조 모두 가족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잖니.

광해군은 영창대군의 엄마이자 선조의 왕비인 인목대비도 폐위시켰단다. 자신의 친엄마는 아니지만, 현재는 자신의 엄마이니, 엄마를 폐위시킨 격이 된단다. 위에서 아빠가 이야기한 것들이 인조 세력이 반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들이야. 명과 후금 사이의 줄다리기 외교를 한 것은 조선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고,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것은 권력 다툼의 부산물이라고 보면 이것이 과연 반정을 할 정도의 잘못이냐 라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날까지 계속 논란이 되었던 거야.


1.

하지만 인조반정은 손쉽게 성공하고 만단다. 광해군도 반정이 일어나기 전에 반정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대. 지나가는 소문으로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반정이 일어나고 왕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유배 생활. 유배를 가서도 18년 동안 지내고 나서 나이 들어 죽었다고 하는구나. , 그의 삶도 참 파란만장하구나.

만약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고 광해군이 계속 왕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후금이 이름을 바꾼 청나라와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구나. <역사저널 그날> TV 프로그램의 패널로 참여하신 역사학자 최태성 님은 더 낙관적으로 보시더구나. 인조반정, 참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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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최태성] 일단 명나라는 멸망했을 거 아니예요. 그럼 광해군 그늘 밑에서 친청 세력이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실제로 이로부터 100년 뒤에 북학파가 나와서 청의 문물을 수용하자고 주장하잖아요.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다면 아마 그런 세력이 더 일찍 형성되었을 테고, 청의 문물을 빨리 수용하면서 근대 사회로 일찍 진입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일제강점기도 없었을 테고 산업화도 더 빨라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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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법. 인조 반정은 일어났고, 인조와 반정세력은 이제 자신들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어. 무너져가는 명나라에 무조건 숭배하고, 강력해지는 후금을 멸시하고는 감각 떨어진 세력들. 그리고 인조반정에 성공한 데 기여를 했다고 공신책봉을 하는데, 왜 나는 적게 주냐고 불만인 사람들그릇이 딱 그 정도에 모양도 엉망인 그릇들이었단다. 인조 또한 준비된 왕이 아니니 우왕좌왕. 그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진 신하들의 이야기나 따라야지

공신책봉에 불만을 가졌던 이 중에 이괄이라는 사람이 변방으로 좌천까지 되고 역모를 꾸민다는 누명까지 쓰자 화가 나서 실제로 난을 일으킨단다. 역사는 이괄의 난이라고 불렀어. 이 한 사람이 일으킨 난도 제대로 막지 못하고 한양을 두고 공주성까지 도망을 가는 것이 당시 인조와 측근 세력이었단다. 그러면서 후금을 쳐야 한다는 소리를 하다니이괄은 한양까지 점령을 했어. 그렇다고 이괄의 군대도 제대로 된 군대가 아니다 보니 오래 가지는 못했단다. 한양 입성 3일만에 정규군에 의해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단다.

이 반란에 참여했던 한윤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반란이 실패하고 후금으로 도망가서 투항했단다. 조선의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조선 조정에 미움 박힌 그가 후금에 가선 조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조선 조정이 갖고 있는 후금에 대한 의견에 거짓말까지 더해서 이야기를 했겠지. 당시 후금은 누루하치가 죽고 홍타이지가 정권을 잡았는데, 홍타이지는 늘 조선에 강경한 자세를 보였던 사람이란다. 거기에 한윤의 이야기까지 들었으니그것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겠지만, 후금은 명을 공격하기 전에 후방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을 쳐들어왔단다. 정묘호란이었어.

이때 한윤은 후금의 앞잡이가 되어 함께 쳐들어왔단다. 후금의 기병부대를 조선이 막을 힘이 있었겠니. 다시 도망가야지. 이번에는 강화도로 도망을 갔단다. 기병부대가 주력인 후금이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겠다는 생각으로육지에 있는 백성들이 어떻게든 나 몰라라 하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강화도에 콕 박혀 있는 인조와 신하들. 후금은 여기서 오래 시간을 끌 수 없어서 먼저 화친 요청을 했고, 후금과 조선의 관계는 형과 아우 같은 관계를 갖자고 했단다. 인조는 이에 동의하고 강화도에서 나와 한양에 입성했단다.

지금이라도 국제정세를 잘 파악하고 후금과 사이를 좋게 유지해야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후금에 대한 자세는 오랑캐를 보는 듯한 자세였단다. 외교 사절단이 와도 오랑캐 취급을 해서 그들 속을 뒤집어 놓는 등 다시 사이가 급격하게 안 좋아졌단다. 얼마 뒤 홍타이지는 다시 조선을 쳐들어왔단다. 인조는 이번에도 강화도로 도망을 가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치고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단다. 남한산성이 지대가 험하긴 하지만, 바다 위에 섬도 아니고 날씨는 엄청 추운 겨울이고, 먹을 것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몰래 강화도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빙판길에 넘어져 다쳐 다시 남한산성으로….

이 싸움은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고, 산성 안에 갇혀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니거기에 강화도 마저 무너지고 말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단다. 사실 강화도에 왕과 신하들의 가족들이 대피하고 있었거든결국 조선의 왕 인조는 항복을 하고, 삼전도에서 삼배구고구례라는 굴욕을 감당해야겠단다. 이 일을 인조 속마음은 굴욕이라고 생각했을지는 잘 모르겠구나. 그저, ,,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어. 왕이 되면 안 될 사람.

오늘 이 이야기들은 아빠가 예전에 한명기 님의 <병자호란>을 읽고 해준 이야기들과 많이 겹쳤구나. 그 때 이야기해준 독서 편지를 찾아보면 조금은 더 자세히 나와 있단다. 참고하시고


2.

광해군과 인조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 책에는 당시 유명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단다. 그 중에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도 나왔어. 허준은 아빠가 이미 다른 책을 읽고 쓴 독서편지에 여러 번 소개를 했던 것 같아서 생략할게. 또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말이야. 우리나라 의사의 원탑이라고 할 수 있잖니.

그리고 또 한 사람 허균. 학교에서 허균이라는 사람은 국어교과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사람으로 배웠던 기억이 있어. 아빠가 학창 시절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역사 교과서에도 그가 나왔는지 잘 모르겠어. 나중에 커서 허균이라는 사람의 실체를 알고 그의 가치관과 그의 최후를 알고 놀랬던 것이 있단다.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는 위인 중 한 명으로 뽑기 시작했단다.

아빠가 허균을 제대로 알게 된 책은 허경진 님이 쓰신 <허균 평전>이라는 책이었단다. 이 책을 일고 나서 허균 팬이 되어 그가 쓴 산문들을 찾아 읽고, 허균에 대한 책들도 찾아 읽고,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에 관한 책들도 찾아 읽었단다. 읽으면 읽을수록 허균이라는 사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더구나. 허균은 한마디로 시대를 앞서 산 사람이었어. 예전에도 허균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따로 안 하고, 허균이 주장한 호민론에 대해 설명한 부분만 발췌하는 것으로 대신할게. 아무튼 허균이 역모 사건으로 안타깝게 죽지 않았다면, 더 좋은 작품들을 남겼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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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3)

[신병주] 허균의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가장 뚜렷이 보여 주는 글이 바로 <호민론>입니다. <호민론>에서는 백성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눕니다. 먼저 시키는 일만 하는 백성인 항민(恒民)이 있습니다. 또 세상에 원망을 품는 원민(怨民)이 있죠. 원민은 저항은 하지 않고 억울함을 속으로 삭힙니다. 반면 세상에 대한 울분이다 원한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호민(豪民)입니다. 결국 활빈당을 조직해서 조정 관리들에게 맞서는 홍길동이 호민이라는 구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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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인조 세력이 반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광해군의 죄목은 숭청배명과 폐모살제였다.

책의 끝 문장: 이런 참담한 비극은 꼭 막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하죠.


[이다지] 저는 이 얘기 들으면서 중국의 유명한 명의 편작이 떠올랐어요. 편작이 그런 말을 했잖아요. "저보다 더 뛰어난 의사 두 명 있는데 모두 제 친형들입니다. 형들 중에는 큰 형님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님이 그 다음입니다. 큰 형님은 환자가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환자의 얼굴만 보고 무슨 병이 생길지를 미리 알고 치료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둘째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미약할 때 병을 알아내어 치료해 주니 환자들은 간단한 치료를 받은 줄로만 알고 크게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병이 커져서 심한 고통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치료를 시작하니 환자들은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고 믿고 고마워하는 것일 뿐입니다." 양생이란 결국 이런 개념이 아닐까요? - P77

[정철상] 허균이 남긴 글과 기록을 추론해 볼 때, 허균은 언변능숙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외향적이며 낙천적 성격을 가지고 있죠. 실제로 허균은 임진왜란 시기에 왜군에 쫓기면서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치를 즐기고 누정마다 걸린 시판을 평하는 여유까지 즐겼다고 합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허균은 풍부한 직관적 감성을 지닌 것으로 추론됩니다. 이러한 성격이 타고난 천재성과 결합되어 소설이나 시 등 문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허균은 감성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추상적 세계를 다루는 이론 분야에도 능했습니다. 유학뿐 아니라 불교, 도교, 천주교 등을 깊이 있게 파고든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P94

[윤성은] 그렇죠. 이 인절미가 오늘 얘기하는 주제와 연이 깊은 음식이거든요. 백성들이 피란 온 인조에게 인절미를 가져다 줬다고 해요. 그때 이 떡을 처음 먹어 본 인조가 너무 맛있어서 ‘누가만든 떡이냐?’ 했더니, 답하기를 ‘이름은 정확히 모르나 임씨가 만든 떡입니다.’ 해서 임절미, 임절미 하다가 인절미가 됐다는 거죠.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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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고세훈 지음 / 한길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지금까지 읽은 조지 오웰의 책은 <동물 동장> <1984> <카탈로니아 찬가> 이렇게 세 권이란다. 세 권 모두 재미있게 읽었고, 조지 오웰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단다. 그래서 그의 전기 같은 책을 찾아보다가 우리나라 사람이 쓴 <조지 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라는 책을 알게 되었단다. 지은이는 고세훈이라는 분인데 아빠는 잘 모르는 사람이야. 책이 두꺼운 양장본이고, 평점이 나쁘지 않았고, 아빠가 좋아하는 출판사 중에 하나인 한길사에서 나온 책이라 샀단다. 그렇게 사 두고 몇 년 동안 책장 한 켠에 꽂혀 있다가 이번에 아빠의 눈에 띄어서 읽게 되었단다.

다시 지은이 소개를 읽어보았어. 정치학을 전공하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쓰시기도 하고 2019년에는 고려대 명예교수로 계신다고 하더구나.(현재는 잘 모르겠어) 고세훈 님은 조지 오웰의 광팬이셨나보구나. 조지 오웰에 관련된 1차자료들 대부분을 반복적으로 읽고 나서 조지 오웰에 관한 글을 써서 모은 것이 바로 아빠가 이번에 읽은 <조지 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라는 책이란다. 이 책의 분량이 600페이지가 넘는데, 한 사람에 대한 책들을 읽고 그에 대한 독후감일 수도 있는데 그 분량이 600페이지가 넘더니 지은이 또한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조지 오웰. 그동안 아빠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대충 예상했던 대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생을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이 책의 내용 자체도 방대하지만 아빠는 인상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되도록 짧게 이야기하도록 할게.


1.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블레어이고 영국인이지만, 1903 6월 인도 식민지 벵갈에서 태어났단다. 아버지가 인도 정부의 하급관리로 일하고 있었거든. 태어나서 얼마 안 있어 영국으로 건너와 교육은 영국에서 받았단다. 조지 오웰의 집은 가난했어. 당시 영국에서는 빈부의 차이에 대한 차별도 심했는데, 조지 오웰이 학생 때 그런 차별을 받기도 했다는구나. 어렸을 때부터 이런 사회의 부조리를 몸소 체험해서 그의 피에 저항이 쌓였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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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무엇보다 부자애들은 결코 매질을 당하지 않았는데, 오웰의 기억에 따르면, 연소득 2천 파운드 이상의 부모를 둔 아이가 매 맞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가난한 집 학생은, 일류 사립고에 진학하여 학교의 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학비가 감면됐고 따라서 입학이 가능했다. 학교의 명성이 금전적 이익과 직결되던 산황에서 장학금은 학교()편에서는 장기투자였던 셈이다. 우웰이 그 경우에 속했다. 그런데 공짜 점심은 정말 없었다. 반액장학생이던 그가 치러야 했던 비용은 주로 정신적인 모욕과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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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그의 첫 직장은 버마의 경찰공무원이었단다. 당시 버마는 인도 정부 관할 소속이었어. 그러니까 영국의 식민지 중에 하나인 버마에서 경찰로 일한 거야. 이곳에서 약 5년간 생활하고, 1927년 휴가차 영국에 왔다가 경찰공무원을 그만두고 작가를 하겠다고 다짐했단다. 아무래도 버마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 버마에서 생활은 그가 이후 작가로 일하면서 줄곧 글쓰기의 소재로 쓰이게 되었단다. 저항의 피를 가지고 있는 조지 오웰이 식민지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홀대를 보면서 얼마나 분개했을까 싶었단다. 그 자신이 모국인 영국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제국주의 영국에 대한 비판은 평생 이어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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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34)

오웰이 제국경찰을 그만두고 7년이 지난 1934년에 출간된 <버마 나날들>은 오웰이 동양에 대해 쓴 유일한 반제국주의 소설이다. 그가 죽을 때까지 붙들었던 <끽연실 이야기>는 버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미완성으로 남았기 때문에 그 의도와 내용은 추측하기 힘들다. <버마 나날들>은 영국제국주의의 실상에 관한 현장기록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정치적 각성과 반성을 유인하기 위한 지식인 오웰의 행동이었다. 버마 체험에 대한 오웰의 회상들이 대체로 그렇듯, 책의 행간 곳곳에는 도저한 석벽(石壁)과도 같은 인종적 편견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이 스며 있다. 오웰은 거기에서 제국주의가 현지인들뿐 아니라 지배자들의 일상에도 깊숙이 침투해서 모두의 싦과 의식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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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결심한 조지 오웰은 파리에서 1 6개월 동안 글쓰기 전념하였단다. 수입이 없던 그에게 덮친 건 극심한 가난이었고, 폐질환이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이 폐질환은 지병이 되어 평생 그를 괴롭히게 된단다. 파리에서의 가난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영국 런던으로 돌아왔단다. 그렇다고 영국에서의 생활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어. 그는 영국에서도 가난과 함께 했는데, 이때의 생활을 소재로 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단다. 왜 사람이 기본적인 삶도 보장받을 수 없는가. 온 세상이 자본주의에 점령당해서 그런 것이었어. 그래서 자본주의를 비판하였단다. 민주주의가 정치 체계에서 옳은 체계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세계에 있는 민주주의라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파시즘과 똑같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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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특히 전쟁 발발 이전 즉 오웰이 아직 평화주의를 고수하던 때에, 자본주의하에서 민주주의란 파시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보통사람들의 존엄이 구현되는 사회였다. 그는 인간이 지닌 본질적이고 태생적인 위험이 형제애에 대한 신뢰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전통이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평화주의를 떠난 이후에도- 저버린 적이 없었다. 보통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경계하고 그것의 개선(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한 절망은 언어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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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내놓은 책이 버마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소설 <버마 나날들>이라는 소설이란다. 그리고 이후 에세이, 소설, 평론 등으로 계속 쓰지만 눈에 띄게 인기를 끄는 작품은 없었단다. 그 즈음에 스페인에서는 좌파 정부가 프랑코가 이끄는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고 프랑코 독재가 시작되면서 내전에 휩싸여 있었단다. 스페인 내전에 지원하여 직업 참가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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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스페인 내란 소식을 접한 오웰은 즉시 보통사람의 존엄을 위해 싸우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1936 12 23일 런던을 떠나 26일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스페인에서는 공산당이 지지하는 정부가 공포정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웰의 눈에 바르셀로나의 거리와 사람들 사이에는 평등이 넘쳤다.” 그 광경은 싸워서 지켜낼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가 보이게 스페인 전쟁은 본질에서 계급전쟁이었다. 이기면 보통사람의 대의는 강화되고, 패한다면 지대수익자들이 환호하리라는 사실, 그 외에 나머지는 모두 거품이었다. 스페인에서 혁명전사가 된 오웰은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 머문 후에 POUM의 독립노동당 분대원으로 아라고 전선에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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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을 다녀오고 나서 그는 그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단다. 이 책에서는 <카탈로니아에 경의를>로 번역을 했는데, 아빠가 읽었던 책은 <카탈로니아 찬가>로 번역을 했단다. 아무튼 그 책에서는 조지 오웰은 자신이 좌파이지만, 좌파에 대한 좋은 글들만 적지 않았단다. 좌파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잘못에 대한 비판을 적어 놓았어. 특히 스탈린이 이끄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회주의에 대해 비판하였고, 스탈린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는 좌파미디어에 대해서 비판하였단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좌파 정당인 독립노동당에 가입해서 활동하게 되는 것도 스페인에서 실망한 좌파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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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3)

귀국 즉시 스페인 반파시스트 진영의 내분, 정확히는 스탈린 공산주의 세력의 반혁명적 기회주의적 실상을 낱낱이 밝힌 <카탈로니아에 경의를>의 집필에 착수했다. 그런 작업은 좌파정치의 미래, 진정한 민주사회주의의 앞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지만, 오웰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진실이었다. 스페인 상황을 선별적으로 보도하던 좌파미디어는 결과적으로 소련의 입장을 그대로 따른 셈이었다. 오웰은 런던의 지식들이 결코 일어나본 적이 없는 사건들 위에 정서적 상부구조를 구축한다고 탄식했다. 그가 POUM을 강하게 지지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자본주의 언론이 귀기울여주지 않고, 좌파언론은 오로지 중상만 해댔기 때문이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오웰이 스페인에 오기 전부터 POUM파시즘의 직접적 도구로 간주한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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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독립노동당(ILP) 에서 일년 반 정도 활동하다가 그만두었고, 건강이 안 좋아져서 한동안 요양을 했단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35살 즈음이었지.(1938) 1941 8월부터 1943 11월까지는 BBC 방송국에서 일했는데 BBC에서 일하다 보니 문학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 그만두었다고 하는구나. 1943 11월부타는 좌파잡지 <트리뷴>에서 문예편집장으로 일했어. <트리뷴>이 좌파 진영이었지만,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날카롭게 이어졌단다.

조지 오웰에 대해 읽다 보니 그의 사상은 뚜렷했던 것 같았단다. 그는 일단 자신의 조국 영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였단다. 하지만 그는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했단다. 그러면서도 세계2차 대전에서는 독일보다는 영국을 지지하였단다. 당연하겠지. 독일의 나치즘은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사악한 세력 중에 하나였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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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오웰은 제2차 세계대전을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는 전쟁으로 간주했다. 영국이 독일보다 도덕적으로 반드시 우월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국제국주의는 나치즘보다 더 사악하다 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출판할 자유가 독일보다는 영국에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오웰이 보기에 영제국의 가장 어두운 부분인 인도에도, 전체주의 국가에서보다 훨씬 많은 표현의 자유가 존재했다. 그러나 전체주의의 정신이 독일과 소련을 넘어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이런 절박한 인식이야말로 작가로서 오웰이 전체주의에 결연히 맞서야 했던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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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는 좌파이고 사회주의자였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러시아 사회주의도 강하게 비판했단다. 러시아는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고, 전체주의라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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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러시아 사회주의는 내적으로 전체주의화했고, 외적으로 제국주의화함으로써 사회주의의 본래 의미를 철저히 왜곡시켰다는 것이 오웰의 기본 시각이었다. “1930년 이래 나는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를 거의 보지 못했다. (…) 반대로 나는 그것의 지배자들이 여타 지배계급과 다름 없이 권력을 탈취하고 유지하려고 혈안이 된 위계적 사회로 전화되는 뚜렷한 증거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소련신화를 몰락시키는 일이야말로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위해 핵심적 과제가 돼야 한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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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러시아 공산주의를 비판하면서 쓴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동물농장>이라는 책이란다. <동물농장>의 주인공들은 모두 동물들이지만, 소설 속 동물들은 현시대 정치인들과 매칭을 쉽게 할 수 있었단다. 그런 비판적인 소설이라서 많은 출판사에서 <동물농장>의 출간을 거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45 8월이 되어서야 <동물농장>이 출간되어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어. 그래서 처음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지.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동물농장>이 출간되기 얼마 전에 아내 아일린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단다. 이제 가난에서 막 벗어나려던 시기였는데 말이야. 조지 오웰도 썩 운이 좋지는 않았어. 이제 가난의 딱지를 떼려고 하는데 건강이 다시 급격도로 안 좋아졌단다. 타자기를 쓸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아 다음 작품인 <1984>는 손으로 썼다고 하는구나. 그 책도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와 비판을 한 소설로 어두운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란다.

이 소설이 조지 오웰의 마지막 소설이 된단다. 1950년 폐렴이 악화되어 죽고 말았단다. 죽기 얼마 전 조지 오웰은 재혼을 하게 되는데 약간 의아했단다. 아일린이 죽고 <동물농장>이 출간된 이후 악화된 건강으로 계속 요양하고 치료에만 전념했거든그리고 두 번째 아내가 되는 소니야는 죽기 얼마 전에 알게 되었고, 곧바로 결혼을 하였단다.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서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고, 결혼을 한 지 3달 만인 1951 1 21일 그는 눈을 감고 말았단다. 이 책에서 조지 오웰과 소니야의 사랑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단다. 둘 사이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을 수 있기 때문에 아빠는 말조심을 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소니야가 조지 오웰의 돈을 보고 결혼했다는 비난도 있었다고 하더구나. 더욱이 소니야는 자유분방한 자유연애를 했던 사람이었고, 조지 오웰이 죽고 나서 모든 인세 수혜자가 되었으니 사람들이 그런 시선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영국을 사랑하지만 영국을 비판하고 좌파였지만 좌파를 비판했던 조지 오웰. 그가 바랬던 사회주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민주 사회주의. 그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진정 사회주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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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360)

오웰은 도저한 사회주의자였지만, 보통사람에 의해 보통사람의 가치와 정서가 구현되는 정치에 희망을 걸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그의 입장은 왕왕 인기가 없었고 종종 시대에 뒤처지기도 했지만, 그는 그것을 견지하고 추구하는 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윤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오웰은 손수건 산업의 도덕성을 먼저 따진 후에야 코를 푸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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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

오웰에게 희망은 (민주적) 사회주의에 있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일종의 도덕적 자유주의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국가는 경제적 삶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떠안음으로써 국민을 빈곤 실헙 등의 공포에서 해방시키지만, 국민 개인의 지적 삶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때 예술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에서처럼, 혹은 그보다 더욱, 번성할 터인데, 예술가는 더 이상 경제적 압박하에서 작업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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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꿈꾸는 사회주의가 민주 사회주의였지만, 세상은 그의 꿈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단다. 그가 미래를 예견했던 것처럼 러시아의 사회주의는 점점 전체주의가 되어가서 100년도 안되어 스스로 무너져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전체주의가 무너졌다고 하지 않고,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사회주의가 무너졌다고 했단다. 그러니까 사회주의는 잘못되었다는 편견을 갖게 된 거지. 오늘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정치인들은 반대진영 정치인을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는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자는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물론 민주주의를 표방한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일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고작인 듯 싶구나. 민주주의 장점과 사회주의 장점이 잘 어우러진 정치체계는 정말 어려운 것인가 싶구나.

이번 독서 편지를 시작하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지 오웰에 대한 책을 읽기 했지만 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단다. 아빠도 이해력이 좋지 않아 이 두꺼운 책, 가제에 보고서라고 단어가 포함된 이 두꺼운 책을 제대로 이해했을 리도 없고 말이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조지 오웰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그런 작품들을 쓰게 되었는지 알게 된 것 같구나. 그리고 늘 저항하고 비판하는 조지 오웰의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좋았단다.

짧게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글이 길어졌구나. 마지막으로 그가 권력에 붙어 먹는 지식인에 대한 비판 한 소절을 소개하고 마칠게. 조지 오웰의 권력욕에 빠진 지식인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것처럼 보였단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권력 욕심에 기웃기웃하는 것을 요즘에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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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오웰이 보기에 지식인은 권력을 지니거나 권력을 추구했으며, 늘 권력 주변에 서성댔다. 그가 지식인과 지배계급을 동일시했던 이유이다. 그는 지배층의 오만과 위선을 경멸하듯 지식층과 오만과 위선을 경멸했다. 그에게 지식인의 위선과 권력욕은 모두 가장 가동할 권력의 형식이면서 자본주의 외적 내적 발전형태인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었다. 따라서 오웰의 지식인 됨 혹은 지식인으로서의 삶은 그 자체가 가해자의 근원적 죄의식에 닿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떠남내려감그리고 엄혹한 글쓰기 과정을 모두 개인적 속죄의 근거로 삼는 한에서만 비로소 스스로에게 정당화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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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이 책은 오웰이 쓴 지금까지 알려진 거의 모든 일차 자료에 대한 반복된 독서를 기반으로 씌어졌다.

책의 끝 문장: 그래서 그는 열정이 소진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쓰는 일을 지속한다.


조지 오웰에게 세인트 시프리언스 예비학교와 버마는 그의 삶 전체, 즉 가난과 전쟁의 체험뿐 아니라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깊고도 넓게 영향을 미쳤다. 이 점은 무엇보다 오웰의 삶과 작품들이 웅변으로 보여주지만, 여러 계기에 걸친 그의 직접진술과 말년에 이를수록 빈번해지는 회상과 환기, 주변인물과 전기작가들의 증언이 확인해준다. 오웰에게 학창시절과 버마 시절은 삶과 글쓰기의 원체험이었다. - P109

세계가 전체주의로 흐르리라는 오웰의 예감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짙어졌다. 그는 조만간 모든 민족주의 운동은 초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고, 히틀러가 떠난 자리에 스탈린, 영미의 백만장자 그리고 드골 유의 온갖 ‘작은 독재자’들이 들어설 것으로 보았다. 세계적 흐름인 중앙집권적 체계는 경제적으로는 기능적일지 모르나 정치적으로는 비민주적 카스트 체제와 같이 가기 마련이다. 거의 신적인 카스트가 꼭대기에 있고 밑에는 적나라한 노예들이 있는 위계적 구조에서 유례없는 자유의 박멸이 진행될 것이다. 그때 언론의 자유는 첫 번째 치명적 죄악이며 후에는 "무의미한 추상"이 될 것이다. 그것은 <1984>에서 윈스턴 스미스가 오브라이언의 주장에 따라 4개 손가락을 5개로 보듯, 지도자의 뜻대로 2+2=5가 되는 세상이다. 그때 자율적 개인은 존재가 말살되고 작가는 창조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 P166

노동계급 가정이야말로 유대와 평등이라는 동일한 가치가 배양되는 통합공동체의 기초였다. <위건 피어로 가는 길>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노동계급 가정에서는 따뜻하고, 품위 있고, 깊은 인간적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쉽지 않다. 육체노동자는 (…) ‘교육받은’ 사람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더 많다. 그의 가정생활은 자연스럽게 더 정상적이고 보기에도 좋게 꾸려진다. 나는 종종 노동계급 가정의 실내가 독특하고도 손쉽게 완전성, 말하자면 완전한 대칭으로 꾸며져 있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 P254

유럽대륙에 전운이 감돌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오웰의 성찰은 깊어졌고 과격해졌다. "우리는 영국이 민주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인도통치에서 보듯이, 겉으로는 덜 자극적일지 모르나 독일 파시즘 못지않게 악하다. 자신의 조국에서부터 자본주의를 전복시키지 않고 어떻게 파시즘에 대항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웰이 보기에 "파시즘이라는 경쟁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자본주의-제국주의 정부와 협력한다면 이는 파시즘을 뒷문으로 불러들이는 것과 같았다. 적어도 경제체제에 대한 한 영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파시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때는 아직 전쟁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 P299

오웰은 도저한 사회주의자였지만, 보통사람에 의해 보통사람의 가치와 정서가 구현되는 정치에 희망을 걸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그의 입장은 왕왕 인기가 없었고 종종 시대에 뒤처지기도 했지만, 그는 그것을 견지하고 추구하는 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윤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오웰은 손수건 산업의 도덕성을 먼저 따진 후에야 코를 푸는 사람이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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