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를 위한 나의 첫 철학 읽기 수업 나의 첫 수업 시리즈
박균호 지음 / 다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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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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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나의 첫 ~”시리즈가 있는데, 아빠는 이번에 그 시리즈 중 하나인 <10대를 위한 나의 첫 철학 읽기 수업>를 읽었단다. 예전에 박균호 님의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을 읽었는데 이번에도 박균호 님의 <10대를 위한 나의 첫 철학 읽기 수업>을 읽었단다. 고전보다 철학이라고 아빠한테는 더 어려운 분야로 생각한단다. 평생을 이과생, 공대생으로 살아온 아빠에게 철학이라고 하면 알고는 싶지만 어려운 분야라서 다음 생에 만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야란다. 그런 철학을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너희들과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번에 읽은 <10대를 위한 나의 첫 철학 읽기 수업>가 깔맞춤인 것 같구나.

그런데 철학이란 무엇일까? 너희들이 아빠에게 철학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한창을 고민하다가 인터넷 검색을 해볼 것 같구나. 이 책에서는 철학을 비교적 쉽게 잘 정리해주셨어. 삶에서 만난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했단다. 불합리에 맞서서 싸우는 것도 철학이고, 비판적 사고도 철학이고 그로 인해 소통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철학이라고 설명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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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철학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소통 능력을 키워 주기도 합니다. 철학이 정립된 사람은 말과 글에 모호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쉽고 명확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서도 그 뜻과 의도를 재빨리 파악합니다. 그런 면에서 철학이야말로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실용적인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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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철학이란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공부하는 학문이 아닐까 싶구나.


1.

철학을 생각하면 철학자가 떠오른단다. 이 책에서도 각 장마다 한 사람의 철학자를 소개해주고 그의 주요 저서를 이야기해주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철학자의 철학 사상을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아빠가 철학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들은 그래도 이름은 들어본 사람들이 많았어. 그리고 그 사람들의 철학 사상도 예전에 학창 시절 윤리 시간에 들어본 것들도 있었지.

4개의 장으로 나눠서 이야기해주었어. 1장은 생각과 감정이라는 제목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칸트, 인간은 반성하면서 성장한다고 하는 헤겔, 현명하게 화를 내어야 한다는 세네카를 소개했단다. 그 중에 세네카의 <화의 대하여>의 내용이 인상적이었어. 2000년 전에도 사람은 더 똑같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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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화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술에 취하고 욕정으로 가득 차고 고마운 줄 모르고 욕심 많은 야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을 나는 매일 만나야 한다.”

세네카가 약 2,000년 전에 지목한 사람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이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면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악취를 풍기고 주정을 한다. 일터에는 배려심 없는 언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친절과 배려를 베풀어도 고마움을 모르고, 오히려 제 욕심을 채우느라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학교에 가면 팀 활동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채 얌체처럼 무임승차하는 친구가 있다. 앞에서는 친한 척하면서 뒤에서는 흉을 보는 친구도 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세네카가 살았던 시대에 비교하면 안락하고 풍요롭지만, 복잡한 사회 속에서 날마다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야 한다. 스트레스와 화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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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화가 났을 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했는데, 이거 참 효과적인 것 같더구나. 너희들도 화가 날 때 한번 거울을 들여다 보면 좋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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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세네카는 인간이 화를 내는 주된 이유는 나는 잘못한 게 없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화를 내는 이유가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오만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를 내는 이유가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오만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를 내서 상대를 제압한다고 해도 결국 화를 낸 사람은 지는 것이다. 세네카는 화가 났을 때 거울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거울 속 화난 모습과 평소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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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에서는 정치와 사회라는 제목으로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와 악법도 법일까? 라는 내용으로 이야기하고,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쉽게 이야기해도 어려운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는 도스또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이야기하면서 이기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무상 복지와 선별 복지와 엮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책을 좋아하는 아빠로서는 쇼펜하우어의 독서에 대한 비관적인 평가가 인상적이었단다.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 철학의 대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독서를 이렇게 악평을 할 수 있다니,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닌 분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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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쇼펜하우어는 독서를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을 다른 사람이 대신 깨우쳐 주는 것으로 단언했다. 독서에 대한 지독한 악평이다. 그러니까 독서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과정을 무턱대고 뒤따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미리 그려 놓은 점선을 따라 펜으로 덧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을 깊이 하다가 책을 읽으면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쇼펜하우어는 단언한다. 결국 독서를 하는 동안의 머릿속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노니는 놀이터라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독서에 대해 이보다 더 가혹하고 비관적인 생각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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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는 선악과 정의라는 제목으로, 자신만의 길을 간 노자의 <도덕경> 이야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이야기,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데카르트의 이야기, 철학자보다는 작가라 할 수 있는 톨스토이의 <참회록>에 담진 인생철학 이야기, 개혁의 아이콘 맹자 이야기를 해 주었단다. 이 장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 대해서 같이 읽어보자꾸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어했나 보구나. 그 생각은 인류가 멸종될 때까지 변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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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26)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유로운 풍요 속에서 느끼는 행복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가 행복이라 여기는 물질적인 풍요,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 온갖 종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일 뿐이지 그 자체가 행복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理想)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스승 플라톤과는 달리 현실적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육체적 쾌락의 욕구, 명예욕, 물질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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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4장에서는 생존과 환경이라는 제목으로 로마의 변호사로도 유명한 키케로의 노년에 대한 이야기, 동양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만들 공자의 <논어> 이야기, 고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우주 만물의 원리를 파헤쳤던 이야기, 사람마다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교훈을 준 장자 이야기, 무신론을 비판하며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파스칼의 <팡세>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각 장의 이야기를 세세히 이야기해주면 좋겠지만, 아빠는 그 정도의 철학적 사고 능력이 되지 않아서 패스~~ 너희들이 좀더 커서 이 책을 읽고 반대로 아빠한테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하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철학에 관한 큰 오해 중 하나는 철학은 학문의 영역이지 실생활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책의 끝 문장: 물론 이마저도 평생 신을 부정하다가 죽음을 앞두고서야 믿는다고 해서 천국에 갈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성적 존재인 사람은 모든 가격을 뛰어넘기 때문에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은 그 무엇과도 교환할 수 없으며, 그 존재만으로 존엄성을 지닌다는 게 칸트의 생각이다. 자신의 자녀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남의 자식과 교환하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지 않은가. 다만 칸트는 존엄성을 지닌 인간에 대해 한가지 조건을 달았다. 도덕적 자율성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만이 존엄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즉 맹목적인 욕망에 따르지 않고 자율적 판단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성을 지녀야만 존엄성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 P19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칸트가 말한 자율성을 추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즉 본인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인간을 수단으로만 삼아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의 존엄성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본주의도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기술 발달과 자본 축적을 도모해야 한다. 인간을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사례가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철학의 쓸모도 여전할 것이다. - P24

노자의 <도덕경>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무위자연설(無爲自然設)에 관한 것이다. 세상만사가 모두 허무하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방관하라는 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니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이란 모든 억압과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자연의 흐름과 함께하면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 P109

<도덕경> 40장에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라는 말이 나온다. 반대로 가는 것이 도(道)의 운동성이라는 뜻이다. 노자는 모든 사람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기 마련이며,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은 결국 위험할 길일 수 있다고 설파한다.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역발상이야말로 노자의 전체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남들이 모두 가려고 하는 길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그 길은 외로운 길이며, 특히 나이가 어린 사람은 더더욱 선택하기가 어렵다. - P110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종교는 왜 이토록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까? 그것은 여전히 과학 지식으로 풀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라고 해서,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의 공포가 완전히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도로 과학이 발달한 초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더더욱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 상징적인 예로, 첨단과학이 집결해 있는 자동차를 세워 두고 안전 운전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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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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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시리즈 MIDNIGHT 세트 여섯 번째 기 드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를 읽었단다. 이 책에서는 <비곗덩어리> 이외에 <두 친구>, <목걸이> 이렇게 세 개의 단편이 실려 있었단다. 모파상 역시 유명한 작가인데, 아빠는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어. 모파상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야. 모파상이라고 하면, 파리 에펠탑이 처음 생겼을 때, 에펠탑이 흉측하다면서 보기 싫어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인 에펠탑 아래서 밥을 먹었다는 일화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었단다. 아빠가 읽은 것은 이번에 읽은 단편 세 작이 고작이었지만, 모파상이 왜 유명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는지 알겠더구나.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을 만큼 좋았단다.


1.

첫 번째 이야기는 <비곗덩어리>라는 소설이란다. 인간 군상의 더러운 면을 볼 수 있는 그런 소설이었어.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에서 프랑스군은 패배하고 프로이센 군대가 프랑스의 노르망디로 진격하여 점령하였단다. 노르망디의 사람들 몇몇은 그곳을 탈출하려고 했단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도 그렇게 탈출하는 마차에 동행한 사람들이었단다. 노르망디를 탈출하는 마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열 명. 부르주아 부부가 세 쌍, 수녀 두 명, 코르뉘데라는 민주주의자 젊은이, 화류계 여자 엘리자베트 루세였어.

엘리자베트 루세의 별명이 바로 비곗덩어리였단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비곗덩어리겠지만, 읽다 보면 누가 더 비곗덩어리 같은 몸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된단다. 그들은 다들 모르는 사이이고, 마차에서 처음 만났단다. 부르주아 부부들은 엘리자베트를 무시했어. 날씨가 좋지 않다 보니 예정보다 마차는 늦어졌어. 그들은 중간 도착점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다들 먹을 것을 챙겨오지 않았단다. 엘리자베트 한 사람만 빼고 말이야. 엘리자베트는 음식을 충분히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점심 때가 되어서 끼니를 해결했어. 엘리자베트는 수녀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었고, 코르뉘데도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해서 같이 먹었어. 하지만 부르주아 부부, 특이 부인들은 화류계에 몸 담고 있는 엘레자베트와 엮이기 싫어서 배고파도 참았단다. 하지만, 마차는 점점 늦어져서 언제 중간도착지에 도착하게 될 지 몰랐어. 배는 점점 배고파지고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들도 하나둘 엘리자베트에서 손을 벌렸고, 엘리자베트는 그들에게도 자신의 음식을 골고루 나눠주었단다. 그 계기로 그 귀부인들도 엘리자베트와 이야기도 나누기 시작했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엘리자베트는 화류계에 몸 담고 있지만, 애국심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엘리자베트가 노르망디를 떠나려고 하는 이유도, 프로이센 군인을 죽이려다가 실패해서 도망가기로 한 거야.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지지자로써, 코르뉘데가 보나파르트를 비판하자 화를 내면서 따지기도 했단다. 이런 일이 있고 귀부인들도 엘리자베트에게 점점 호감을 갖게 되었어.

그들은 중간도착지에 도착을 했고 여인숙에 여장을 풀었어. 그곳에도 프로이센 장교가 있었는데, 그 프로이센 장교가 엘리자베트를 찾았어. 엘리자베트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괜히 프로이센 장교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되니까 주변 사람들이 엘리자베트를 설득해서 엘리자베트가 프로이센 장교를 만나고 왔는데 화를 잔뜩 냈고 왜 자신을 호출했는지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그런데, 다음날 마부가 사라졌어.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려던 일행은 다급했지. 마부를 찾아 사라진 이유를 물어보니 프로이센 장교가 못 가게 했다는 거야. 자신이 엘리자베트와 잠자리를 하기 전에는 말이야. 그러니까 어제 엘리자베트를 찾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단다. 엘리자베트는 거절했어. 애국심이 강한 엘리자베트로서는 당연한 처사였지. 엘리자베트가 계속 거절하게 되자 그들은 꼼짝없이 며칠을 계속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일행들은 엘리자베트를 원망하기 시작했어. 그들은 엘리자베트를 빼고 회의까지 했어. 결국 그들은 우회적으로 엘리자베트는 설득했단다. 프로이센 장교도 다 같은 손님 아니냐, 어려울수록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등등 수녀들까지 그 설득에 동참하였고, 결국 엘리자베트는 프로이센 장교의 말을 들어주었어.

그리고 그들은 다시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단다. 엘리자베트를 뺀 나머지 일행들은 너무 기뻐 환호성을 지르고 샴페인까지 먹었단다. 다음날 드디어 마차가 출발했어. 그런데 일행들이 사뭇 다른 행동을 보였어. 하나같이 다들 엘리자베트를 외면하고 멀리하려는 것이 보였어. 점심시간이 되자 그들은 이번에는 먹을 것을 챙겨와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아침에 긴급히 나오느라 먹을 것을 챙기지 못했어. 중간지점 오는 길에 모두 엘리자베트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니 이번에는 엘리자베트에게 도움을 주어야 인정이거늘, 그들은 아무도 엘리자베트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어.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아무 말하지 않고 속으로 분노를 참았단다.

그들이 어려울 때 그들을 위해서 음식을 내놓고, 자신의 몸까지 희생하면서 그들을 살려주었는데, 이런 푸대접을 하다니그들은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지, 속은 털 달린 비곗덩어리일 확률이 백 퍼센트라 생각한단다.


2.

두 번째 소설은 <두 친구>

이번 소설의 배경은 1870 9월에 일어난 보불전쟁이란다. 이 전쟁으로 프로이센은 파리를 원천봉쇄를 했단다. 두 주인공 모리소와 소바주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어. 그들은 전쟁 전에는 일요일마다 낚시를 함께 다니곤 했어. 전쟁 이후 한참 못 만나다가 우연히 만나서 옛 생각에 낚시를 가자고 했어. 아직 전쟁 중이라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프랑스 대령에게 허가를 받고 낚시터에 갔단다. 그런데 그 근처에는 프로이센 군이 있어서 조심조심 강가로 갔단다.

낚시는 대성공이었고,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어. 그런데 갑자기 대포소리그리고 그들 앞에 프로이센 군인들이 나타나서 그들은 체포되고 말았어. 프로이센 군인들은 그들이 첩자라고 생각해서 암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총살하겠다고 엄포를 냈어. 하지만 그들이 암호를 알 리가 없잖아. 그렇더라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아무 암호라도 불러댈 만 한데 그들은 솔직히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어.

총이 그들을 겨눠도 그들은 무섭지 않았어. 아마 그들이 오랜만에 아주 즐거운, 어쩌면 평생 가장 즐거웠던 낚시를 했기 때문에 이젠 아무런 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은 결국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총살당하게 되었단다. 두 친구의 우정, 멋지구나.


3.

세 번째 소설은 <목걸이>. 이 소설 역시 무척 인상적이라서, 편지를 쓰기 전에 너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이미 이 내용을 알고 있더구나. 동화책으로 읽었다고혹시나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엄마도 이 작품을 알고 있었고, 어린 시절에 동화로 읽었다고 하더구나.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아빠의 완패로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니 줄거리도 간단히 해줄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가씨 마틸드. 자신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은 특별하고 늘 세련되어야 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현실은 마틸드는 루아젤이라고 하는 말단 직원과 결혼을 했어. 마틸드는 자존심이 세어서 부잣집 친구는 만날 생각도 없었어. 남편 루아젤의 회사에서 파티를 열게 되었는데, 마틸드는 무척 슬퍼했어. 입고 갈 옷이 없다고 말이야. 자신은 옷이 없어서 못 가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자신의 취미를 위해서 모아둔 돈을 다 털어서, 마틸드의 옷을 사주었단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신구가 없다고 했어결국 마틸드는 부자 친구에게 빌리기로 했단다. 그녀는 친구 프레스트에 부인을 만나 비싼 장신을 빌렸단다.

파티에서 마틸드는 완벽한 인기를 끌었단다. 마치 파티의 주인공인 듯싶었어. 마틸드 또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 그런데 파티가 끝나고 나서야 프레스트에 부인에게 빌린 목걸이가 없어진 걸 알게 되었어. 남편이 다시 찾으러 갔지만 찾을 수 없었어. 결국 마틸드와 남편은 엄청난 빚을 지고 그 목걸이와 아주 비슷한 목걸이를 3 6000프랑을 주고 사서 프레스트에 부인에게 돌려 주었단다. 친구는 다행히 자신의 목걸이와 다른 목걸이란 걸 눈치채지 못했어.

이제 마틸드와 남편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엄청 노력을 했단다. 갖가지 궂은 일들도 마다하지 않았어. 그렇게 궂은 일을 10년을 해서야 빚을 다 갚았단다. 그 사이에 마틸드도 억센 가정주부가 되어 그 옛날의 아름다운 얼굴은 간 데 없었어. 심지어 친구가 못 알아 볼 정도로 말이야. 10년이 지나고 우연히 만난 목걸이를 빌려 준 프레스트에 부인이 마틸드를 알아보지 못했단다. 마틸드는 10년이란 시간이 지났으니, 그 옛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어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러자, 그 프레스트에 부인은 놀라면서 그 목걸이는 500프랑짜리 모조품이었다고 이야기했어.

OMG 이로구나. 진작에 친구에게 용서를 구했다 어땠을까? 이미 시간은 다 지나가버렸는데아니야, 그랬다면 여전히 허영심에 살고 있었을지 몰라. 마틸드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잃었을지 모르지만, 지난 10년 동안 더 값진 무엇인가를 얻었을 거야.

소설은 그렇게 끝났지만, 그 프레스트에 부인이, 연민까지 느꼈던 그 부인이 그 목걸이에 돈을 마틸드에게 뒤늦게 주었을 것 같단다. 그렇다면 지난 10년에 대한 보상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더 이상 예전처럼 허영심에 빠져 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마음 먹기 달렸겠지만 앞으로 남편과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패주하는 군대가 며칠 연달아 이 도시를 통과해 지나갔다.

책의 끝 문장: 고작 5백 프랑짜리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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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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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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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빠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란 책을 읽은 적이 있어. 그 책은 정신질환이나 신경질환에 대한 임상 사례를 모은 책이었는데, 지은이의 글솜씨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으로 기억한단다. 그 책의 지은이는 올리버 색스라는 사람이었어. 몇 년 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그가 별세했다면서 그를 기리면서 그의 저작들을 소개해 준 적이 있었고, 얼마 뒤에는 그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자서전을 읽고 별 다섯 개를 주어서 귀가 얇은 아빠는 한번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고 그 책을 샀단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안 읽고 책장에 잘 보관하고 있었단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눈이 맞아서 특별한 계기 없이 읽게 되었단다.

평생 의사로 산 사람인데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단다. 자서전이라서 어렸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먼 옛날 이야기를 어쩜 그렇게 자세히 이야기를 할 수 있나 했는데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참 열심히 썼다고 하는구나. 무려 1000권을 넘게 썼다고 하니, 시간만 나면 일기를 쓰지 않고서는 그것이 가능한가 싶더구나. 그의 글이 괜히 읽기 쉬운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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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현재 1,000권에 육박한다. 늘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형 일기장에서 큰 책만 한 것까지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나는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경우를 대비해 항상 머리맡에 공책을 놔두고, 수영장이나 호숫가, 해변에도 웬만하면 한 권 놔둔다. 수영은 생각이 굉장히 활발해지는 활동이어서 특히 완성된 문장이다 단락으로 떠오르면 곧바로 나가서 써놔야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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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어렸을 때 일기를 거의 쓰지 않고, 어른이 되어서 가끔씩 일기를 쓰는데, 지금이라도 꾸준히 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있지만 책도 읽어야 하고, 책 리뷰는 잔뜩 밀려 있고, 유튜브는 항상 아빠를 유혹하고 있으니 일기를 쓸 시간은 정말연초마다 올해는 매일 조금이라도 써야지 마음 먹고는 이내 일기를 펴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란다. 그렇게 어려운 일기를 1000권이나 썼다고 하니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1.

파란색 책 표지를 한 장 넘기면 모터사이클에 앉아 있는,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이 한 장 있단다. 의사로써 평생을 살았던 그가 진료하는 사진이 아닌 이런 사진을 시작부터 넣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모터사이클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겠더구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모터사이클 광이었다고 하더구나. 사고도 여러 번 나서 위험한 경우가 있었지만, 모터사이클을 포기할 수 없었대. 그렇게 남성미 철철 넘치는 그였지만, 의외의 사실에 약간 놀랬단다. 그는 동성연애자였어. 그런 사실까지 스스럼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멋지더구나.

올리버의 부모님 두 분은 모두 의사였기에 그 또한 의사의 길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옥스퍼드 대학교 의예과에 진학을 했단다. 대학 시절이라고 하면 혈기왕성하던 시기잖니. 하지만 그는 동성연애자. 그가 대학생이던 1950년대 영국은 동성연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어. 그렇다 보니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았지.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가곤 했었대. 동성연애라는 것은 자신이 그러고 싶어하는 것보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더 크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진정 사랑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상황과 환경.

1958년 그는 미들색스 병원이라는 곳에서 인턴을 시작했고, 27살 살에 공군에 입대하기 위해 영국을 떠나 캐나다 몬트리올에 오게 되었어. 공군 입대가 의무 사항은 아니었나 봐. 공군 입대는 하지 않고 그는 캐나다에 와서 세 달 동안 여행을 했고, 미국으로 넘어가 미국 서부 여행도 했단다. 그 여행을 마치고는 미국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가 레지던트로서 병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지만, 병원 밖에 생활은 그야말로 자유를 누렸단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역도 대회도 나가곤 했다는구나. 물론 그는 늘 사랑이 고팠고,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지만 그 남자는 이성애자로 올리버를 떠나게 되어 아파하기도 했어. 그런 힘듦 때문인지 그는 마약에 빠져 치료를 받기도 했어.


2.

이런 어려운 점들이 있었지만 신경과 의사로써 그는 실력이 점점 쌓여갔단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출간하려고 했어. 지금이야 의사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책들을 출간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의사가 책을 쓰면 좋지 않은 평과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단다. 어느 정도냐면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책 출간한 것 때문에 올리버가 의사를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하실 정도였대.

그런데 올리버의 첫 번째 책 <편두통>은 전문가와 일반인들에게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아서 그의 이름을 서서히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 그는 의료 연구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단다. 근육이 마비되어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뇌염 환자들에게 마약 성분 중에 하나인 엘도파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단다. 하지만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정상이 되었다가 다시 뇌염 증상이 재발하게 되었어. 이 현상은 설명하기가 어려웠지만, 그 사례에 대한 내용을 <깨어남>이라는 제목을 책을 썼는데 이 책은 공존의 히트를 치면서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단다.

이 책으로 상도 타고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고, 나중에는 연극, 오페라도로 각색이 되었고, 이 책이 나온 지 한참 지난 다음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당대 명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아 영화도 흥행을 했다고 하는구나. 영화의 원제목은 <깨어남(Awakenings)>였는데,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는 <사랑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단다. 우리나라 제목이 더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의사 역할을 했어. 그러니까 올리버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야. 올리버가 이 영화에 자문도 했는데 로빈 윌리엄스의 노력에 감동받았던 것 같구나. 로빈 윌리엄스는 아빠도 무척 좋아한 배우인데, 그의 충격적인 자살 소식에 놀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그가 이렇게 의사로서 작가로서 성공을 하고 있지만, 그의 사랑 전선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구나. 이 자서전에는 그의 사랑에 대한 어려움도 솔직히 적혀 있단다. 그는 마흔 살 때 영국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 청년과 마지막 사랑을 하고 그 이후 35년간 잠자리를 같이 한 이가 없다고 이야기도 담담히 했단다. 담담히 했지만 그로서는 무척 힘들었던 시간이 아닐까 싶더구나. 그는 <깨어남> 성공 이후 의사 일과 작가 일을 병행하였단다. 병의 사례를 모은 <아내를 모자로 생각한 남자>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어. 그는 그 이후에는 후천성 색맹 환자들에 대한 연구, 뇌와 의식의 재발견 등 많은 성과를 냈고, 많은 책들도 냈단다. 나중에 그런 업적들을 인정 받아서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을 받기도 했어.

그런 그에게도 나이가 들면서 불행이 찾아왔단다. 2009년 눈에 흑색 종양, 그러니까 암이 생겼어. 치료를 하긴 했지만 오른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단다. 이후 인공무릎관절수술, 좌골신경통 등의 병을 겪으면서 그는 계속된 고통으로 자살까지 생각했었대. 자서전이니까 그의 죽음까지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는 결국 2015년 간까지 전이된 암으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고 하는구나.


3.

아빠가 올리버 자신을 중심으로 짧게 이야기하다 보니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는 가족들과도 끈끈한 사랑을 유지했단다. 그리고 많은 편지들을 주고 받았어. 특히 그의 부모님과 세 형들그의 어머니가 좀 일찍 돌아가셔서 안타까웠지만 말이야. 그리고 레니 이모와도 사이가 좋았단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레니 이모와 편지도 많이 주고 받았어. 그가 일기도 많이 썼지만, 편지도 참 많이 썼다고 하는구나. 자기 인생의 큰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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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

편지 역시 내 인생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편지는 쓰는 것도 받는 것도 다 좋아한다. 편지는 사람들, 중요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매개체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도 편지 쓰기는 무리 없이 잘되는 경우가 많다. ‘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말이다. 나는 내가 받은 모든 편지를 보관할 뿐 아니라 내가 쓴 편지까지 사본으로 보관한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가령 처음 미국에 와서 많은 중대한 사건을 겪었던 1960년대)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위해 오래된 편지들을 다시 읽노라니, 이 편지들이 내 인생의 보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잘못된 기억과 변덕스러운 기분으로 착각했던 온갖 오류를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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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소식을 전하고자 하면 바로 전화를 하기 때문에 편지를 거의 쓰지 않는데, 좀 낭만이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일기와 마찬가지로 바쁜 이 시대에 편지 쓸 시간이 어디 있겠니 ㅎㅎ 그래서 아빠가 꼼수로 생각한 것이 독후감을 편지 형식으로 쓰는 것이란다일기는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편지는 자주 쓰는 편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의 글쓰기 예찬에 깊게 공감하면서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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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

글쓰기는 잘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잡념이나 근심걱정 다 잊고, 아니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로지 글쓰기 행위에 몰입하는 곳으로, 좀처럼 얻기 힘든 그 황홀한 경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쉼 없이 써내려간다. 그러다 종이가 바닥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날이 저물도록, 하루 온종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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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어릴 적 2차 세계대전 중에 기숙학교로 보내진 나는 무력하게 갇혀 있다는 느낌에 움직임과 힘을, 마음껏 움직여 다닐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갈망했다.

책의 끝 문장: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거의 70년 전의 그날 느꼈던 그 마음처럼.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장난이 아니라고. 개별 학생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학생의 뛰어난 점이 보였을 뿐이고, 내가 모두에게 A를 준 것은 무슨 얼치기 평등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각 학생 고유의 두드러지는 점에 점수를 준 것이라고. 나는 어떤 학생이건 점수나 시험 성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느꼈다. 어떤 환자든 그렇게 할 수 없듯이. 그 학생의 다양한 면면을 접해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그들의 공감 능력과 배려심, 책임감과 판단력 같은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자질은 또 무엇으로 평가한단 말인가? - P227

나는 글쓰기 행위를 통해서 글을 쓰는 동시에 생각을 발견하는 쪽인 듯하다. 어쩌다 깔끔하게 딱 완성되는 글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차례 다듬고 잘라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같은 생각을 여러 가지로 표현해보는 내 스타일 탓인 듯하다. 글을 쓰다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생각들이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와 문장 중간에서 글의 주제와 결합해 발전하곤 한다. 그런 경우에는 괄호 안에 넣거나 종속절로 덧붙여 때로는 문장 하나가 단락 하나 길이가 되기도 한다. 형용사 여섯 개가 쌓여 더 적확한 문장이 될 수 있는데 다 쳐내고 하나만 쓰는 것은 결코 내 방식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세계는 온통 촘촘하고 빽빽하기만 하다. 이것을 글에 다 담으려다 보니(클리퍼드 거츠(1926~2006, 미국의 인류학자)가 말하는) "두툼한 기술(thick description)"이 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글의 짜임새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쇄도하는 생각들에 도취해 올바른 구성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 P236

이처럼 뇌의 여러 영역에서 두루 일어나는 신경세포 발화의 상호작용과 동기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뇌 지도들 간의 무수한 연결점(시냅스 synapse)이다. 양방향으로 신호를 전달하도록 연결된 시냅스는 수많은 신경섬유로 이루어지는데 많으면 수백만 가닥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의자를 손으로 만졌을 때 오는 자극이 한 세트의 지도에 작용한다면, 의자를 눈으로 보았을 때 오는 자극은 다른 세트에 작용한다. 한 의자의 지각 처리 과정에서 이들 지도 세트 사이에서 신호 재입력이 일어난다. -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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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9 07: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색스 이 분이 글을 잘 쓰는 이유가 있었군요. 천권이 넘는 일기라니 진짜 대단하네요. 서양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살아가는게 참 쉽지 않은듯한데 우리나라는 더하겠죠. 그의 글을 보면 그는 정말 사랑이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개인적인 삶도 좀 더 행복했었더라면 안타깝네요

bookholic 2022-06-29 19:03   좋아요 2 | URL
네, 소수자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올리버 색스는 후회없는, 열정 넘치는 삶을 사신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2-06-29 2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없이ㅡ살아보다/저는 올리버.색스.떠올리면.그표현이.딱 떠올라요

bookholic 2022-06-30 00:07   좋아요 2 | URL
네, 딱 좋은 표현인 것 같아요..^^
그의 그런 삶에 대한 열정을 배우고 싶어요... 체력이 딸리지만...^^

scott 2022-07-02 2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색스 박사님의 열정은 대단하죠
쪽잠을 자면서 쉼없이 환자 돌보며
방대한 양의 논문 글도 쓰다 가신
환자로 대하지 않고 진정으로 인간으로 존중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

bookholic 2022-07-03 20:40   좋아요 1 | URL
정말 대단하시고,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모두 사랑하셨던 분이군요~~^^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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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매년 봄이면 출판사 문학동네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출간한단다. 젊은 작가를 소개해준다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이 상은 올해로 13번째로구나.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좋은 취지로 책 가격도 싸게 출간하여 부담 없이 젊은 작가를 만날 수 있단다. 올해는 작년보다 가격이 2,200원이 올랐지만 여전히 저렴한 편이구나.

아빠도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새로운 작가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매년 이 책을 읽어 보고 있단다. 매년 아빠가 알고 작가가 적어도 한두 명 포함하고 있었는데, 올해 수상한 사람 중에는 알고 있는 작가가 없구나. 작년에 어떤 분들이 상을 받았지? 하고 찾아보았더니, 올해 수상자들 일곱 명 중에 네 명이 작년에도 수상을 했더구나. 그러니까 아빠가 작년에 이미 네 명의 작품은 읽어봤다는 소리인데, 그 지은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수상자들 이름을 보면서 아는 사람도 한 명도 없네, 아빠가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에게 너무 소홀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좀 미안하구나. 아빠의 기억력만 좋다면, 작년에 수상한 네 분은 기억했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올해 수상분들의 이름을 내년 이맘때는 잘 기억하고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로구나. 솔직히 아빠가 딱 마음에 드는 소설이 이번에는 없었거든. 그래도 보통 한두 작품은 마음에 드는 소설이 있어 아빠만의 대상을 고르곤 했었는데 말이야. 올해는 아쉽게도 아빠의 기준으로는 대상작이 없다고 할 수 있겠구나. 그런 거 보면 아빠가 점점 젊음에서 멀어지고 있는 걸까?


1.

최근 몇 년 사이 젊은작가상 수상작의 대세는 퀴어 문학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작년에 이야기할 때도 퀴어 문학이 아빠가 받아들이기에는 낯설다고 이야기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더구나. 아무래도 아빠의 성 정체성으로 읽기에는 좀 안 맞았어. 그 문체들이 아름답다는 평을 받은 소설들도 아빠한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단다. 이번 수상작에도 몇 작품이 퀴어를 소재를 했단다. 이게 문학에서만 유행을 하는 것인지 실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만연한지는 잘 모르겠구나수상에서 떨어진 작품들 중에도 이런 퀴어 문학이 많을까? 이런 생각도 들더구나.

그럼 수상작들을 아주 간단히 소개하고 마칠게.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빠한테는 인상 깊은 작품이 별로 없어서 정말 짧게짧게 이야기 해볼게. 대상작은 임솔아 님의 <초파리 돌보기>란 작품이란다. 주인공 이원영은 아무일 가리지 않고 일해 온 중년 여성이었단다. 그러다가 과학기술원에서 초파리를 키우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초파리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어. 그런데 이 일을 나서 머리카락이 뽑히고 건강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어. 검사를 받아봤는데 특별히 이상 소견은 없었고 말이야. 몸에 이상이 있어 휴직을 했지만, 실험동에서 일했던 것에 불만은 없었어. 자신에게 좋은 기억만 있었으니까 말이야. 소설가인 딸 지유는 엄마의 이런 증상이 산업재해로 의심을 했어. 그리고 엄마의 일을 고발 소설로 쓰려고 했었지. 그래서 엄마가 일했던 당시의 작업 환경을 물어보았지만, 엄마는 아무일 없었다고 했어. 그러면서 소설의 소재가 될만한 다른 이야기들을 했어. 소설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면서 말이야. 대충 소설이 이렇게 끝이 났단다. 소설가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했다는 것은 작품마다 비평이 책에 포함되어 있으니 생략할게.

김멜라 님의 <저녁놀>. 정말 노골적인 퀴어 문학으로 너희들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하기 뭣 해서 패스. 무생물을 의인화하여 그 무생물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꾸려 나갔단다. 조선시대 술이나 엽전 등을 의인화해서 쓴 소설과 비슷한 기법이 아닌가 싶구나.

김병운 님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이 작품에서 에이섹슈얼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봤는데, 누구에게도 성적인 끌림을 갖지 않는 사람을 이야기한다고 하더구나. 한때 연극배우였던 수호. 오래 전 동성애 독서 모임에서 알게 된 윤범. 그러다가 수호가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독서 모임이 안 나가고자신과 같은 에이섹슈얼인 인주를 만나 함께 살게 되고그들의 일상적인, 너무나 일상적인 일기 같은 소설이었단다.

김지연 님의 <공원에서>. 주인공 수진은 여자이지만 키도 크고 남자처럼 꾸미고 다녀서 남자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단다. 그런 수진이 겪는 에피소드들을 엮은 소설이란다.

김혜진 님의 <미애>. 작년과 올해 모두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 중에 한 분이란다. 아빠가 작년에 쓴 독서편지를 읽었더니 김혜진 님의 소설이 괜찮았다는 평을 적어 두었더구나. 아빠가 올해 아빠가 선정한 대상 작품은 없다고 했는데, 그래도 무조건 한 작품을 골라야 한다고 하면 김혜진 님의 <미애>를 뽑아야겠더구나. 수상작품들 중에 가장 소설답다고 해야 할까? 주인공 미애는 여섯 살 딸 해민이 있는 이혼녀였어. 이혼 후 직장과 집을 알아보기 위해 세달 동안 후배의 빈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어. 이혼녀라서 이웃들이 쉽게 대해주지 않을 법한데 마음씨 좋은 선우를 만났어. 선우도 다섯 살 아이를 둔 엄마로 미애와 여러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지. 하지만, 한번의 작은 사건과 오해로 멀어진 이후로는 그 어떤 이웃보다 멀어지게 되었었단다. 미애가 그 사건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해도 돌이킬 수 없었어. 우리 인간 관계가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사소한 일로 되돌릴 수 없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단다.

서수진 님의 <골드 러시>. 결혼 7년차인 진우와 서인. 결혼 후 호주에 이주해서 워킹홀리데이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서인이 457 비자를 얻게 되었단다. 호주 457 비자가 무엇인지 몰라서 찾아보니 이 비자가 있으면 4년동안 임시로 거주할 수 있다고 했어. 호주에 공식으로 4년을 머무를 수 있다는 이야기지. 그 둘은 놀 것 못 놀면서 힘들게 살다가 결혼 7주년을 맞이하여 골드러시 체험상품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 여행을 하면서 자꾸 충돌하는 등 행복하지 않은 여행이 되었어.. , 결말이 어찌 되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네..

마지막 작품은 서이제 님의 <두개골의 안과 밖>. 아빠가 책을 읽을 때 너희들에게 편지를 쓸 때 도움이 되려고 키워드나 간단한 줄거리를 적어 두곤 한단다. 그런데 이 소설에 적힌 메모는 형식의 파괴이 다섯 글자가 전부구나. 줄거리도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아빠 취향이 아니라서 다시 읽기도 뭣하고슬쩍 다시 책을 다시 펴보니 사진도 있고, 이상한 글자의 집합체도 있고 그러네. 사진이 있는 것은 W.G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연상하게 하고, 이상한 글자나 한자의 조합은 이상의 <오감도>가 약간 연상되었단다.

….

이렇게 일곱 편의 소설을 아주 간단히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소설은 읽는 이의 취향에 맞는 소설이 있는 것이 분명하단다. 어떤 이가 재미있다고 추천한 소설이 아빠에게는 별로인 소설이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 말이야.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올해 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아빠의 취향은 아니었다는 것이지 작품성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심사위원들이 알아서 잘 선정했겠지. 이상,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이원영은 초파리를 좋아했다.

책의 끝 문장: 새로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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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7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젊은 작가상의 작품들을 여전히 챙겨보시는 북홀릭님 멋지십니다.
한국문학이 계속 발전하려면 북홀릭님 같은 분이 많아야 하는데하면서, 게으른 저를 잠시 반성합니다.

bookholic 2022-06-28 16:39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젊은 감각 유지해보려고 찾아 읽은 건데, 따라가기 버겁습니다~~^^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시리즈 MIDNIGHT 세트 다섯 번째는 똘스또이의 유명한 작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다. 유명한 작품이지만, 아빠는 읽지 않은 책이라서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짧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그런 소설이었단다. 러시아 작가의 이름은 출판사마다 다르게 쓰는데, ‘열린책들은 보통 된소리로 많이 이용을 한단다. 그래서 다른 출판사에서는 보통 톨스토이라고 많이 쓰는데, ‘열린책들은 똘스또이라고 적고 있구나. 러시아 사람들이 직접 발음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해서 어떤 것이 원어 발음에 더 가까운지 모르겠구나. 갑자기 궁금해지는구나. 어떤 것이 더 원어 발음에 가까운지


1.

판사 이반 일리치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마흔 다섯 살에 죽고 말았단다. 동료 판사들이 장례식에 참석을 했어. 그들은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도 했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한 인사 이동에 더 관심을 두었단다. 참으로 냉정한 세상이구나. 똘스또이가 살았던 당시 러시아의 세계도 이미 이런 사회였구나. 이반 일리치는 유족으로 아내 쁘라스조비아 표도르브나,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었단다. 그의 짧은 인생이 어땠는지 이야기해줄게.

이반 일리치는 삼형제 중에 둘째로 태어났어. 모범생으로 늘 예의 바르고 사교적이고 유머도 있었단다. 한 마디로 집안의 자랑이었지. 학교를 마치고는 법조계에서 5년 동안 일하고 예심판사로 일했는데 존경 받는 판사였단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쁘라스조비아 표도르브나를 만나 결혼을 했어. 그야말로 순탄한 인생이구나. 그런데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 행복했었지만 임신 이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내와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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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부부 간 애정이 넘쳐 나고 가구며 그릇이며 침구며 모두 새롭기만 했던 신혼 시절은 아내가 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매우 행복하게 흘러가서, 이반 일리치는 결혼이란 것이 자신이 전에 누리던 생활, 즉 편안하고 유쾌하며 즐거운 데다 사회의 인정을 받는 고상한 생황을 망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한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무언가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롭고, 불쾌하고, 힘들고, 고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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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싸움이 잦아지면서 집보다 일에 더 신경 쓰게 되었어. 아내와 사이가 멀어지면 그걸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회피한 이반의 선택은 좀 잘못된 것 같구나. 일을 그리 열심히 하다 보니 인정을 받아 남들보다 빠르게 검사보에 승진을 하고 얼마 안 있어 검사로 승진했어. 하지만 그 이후 판사 승진은 좀 늦어졌단다. 17년 동안 검사를 하면서 자신이 노르던 판사 자리를 동료들에게 빼앗기는 아픔도 맛보게 되었단다.

당시 러시아 사회의 법조계에서 경쟁이 치열했던 것 같더구나. 결국 이반 일리치도 판사로 승진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아내와 사이도 좋아졌어. 집도 새로 구하게 되었어. 이반 일리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사교적이고 공과 사를 잘 구분하는 그런 판사가 되었단다. 그런데 승진 때문에 좋아진 아내와 사이는 오래 가지 않았단다.

….


2.

어느날 집의 커튼을 달다가 의자에서 떨어져 옆구리를 부딪혔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단다. 그런데 그 일 이후 옆구리 통증이 점점 심해졌어.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는 병원에 갔고, 의사는 그의 병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이야기를 했어. 그냥 전문가의 말만 믿으라고. 법원이나 병원이나 똑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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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그는 의사를 찾아갔다. 모든 게 예상한 대로였다. 병원에서 으레 벌어지는 상투적인 일들이 여기서도 그대로 벌어졌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그리고 이반 일리치 자신이 법정에서 짓는 것과 똑같아서 전혀 낯설지 않은 저 근엄한 척 무게 잡는 의사의 표정도 예상과 똑같았다. 이곳저곳 두드려 보기, 청진기 대보기, 뻔한 답변을 요구하는 중요치 않은 질문 던지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맡기세요, 우리가 전부 다 알아서 합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다 잘합니다. 누구든 다 똑같이 잘해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심각한 표정도 똑같았다. 모든 것이 법정에서 벌어지는 것과 똑같았다. 그가 법정에서 피고를 앞에 두고 짓는 표정을, 이 저명한 의사가 그의 앞에서 똑같이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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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옆구리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어. 점점 심해지면서 입맛도 떨어졌어. 자신도 큰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을 열중하다 보면 고통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고통은 점점 심해졌단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들이 그와 함께 있어주면 좋으련만 가족들은 그의 병을 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아내와 딸은 그만 빼고 놀러 다니고 그랬으니까 말이야. 이반 일리치는 여러 의사들을 만났지만 다들 비슷한 처방으로 주었고 제대로 고칠 수 있다는 의사는 만나지 못했어.

이반 일리치는 점점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기 시작했단다. 그는 더 이상 일도 할 수 없었어.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상황까지 되었지. 그가 이렇게 아프게 되자 사람들이 문병을 뫘단다. 그러나 그들의 문병은 그에게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하는 뻔한 거짓말에 고통을 받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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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5)

사람들의 거짓말은 그를 고문했다. 그들은 모두가 알고 있고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을 인정해 주려 들지 않았다. 이반 일리치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이반 일리치 자신도 그 거짓말에 동참하게 만들려고 했다. 거짓, 거짓, 그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행해지는 이 거짓, 무시무시하고 장엄한 죽음의 의식을 한낱 문병이니 커튼이니 식사에 나온 철갑상어니 하는 것들로 격하시키는 이런 거짓이 이반 일리치를 무섭도록 고통스럽게 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벌일 때면 <거짓말은 그만둬. 내가 곧 죽는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잖아. 그러니 제발, 거짓말만은 좀 그만둬>라고 여러 번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이상하게도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럴 기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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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도 모두 그 앞에서 괜찮을 거라고 거짓말을 하고, 그를 보살펴주고 있는 젊은 하인 게라심만이 진심으로 그를 대했단다. 그도 이젠 알았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난 생활을 생각했어. 후회만 가득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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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05)

결혼…… 뜻하지 않게 했던 것. 환멸,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이 생명력 없는 업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1, 2, 그리고 10, 20. 언제나 똑 같은 삶. 살면 살수록 생명은 사라져 가는 삶. 그래, 나는 산에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랬었던 거야. 분명 사람들 눈에 나는 올라가고 있었어. 하지만 정확하게 그만큼씩 삶은 내 발아래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다 끝났어. 죽는 것만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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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자신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어. 그는 죽음을 앞두고 너무 안 좋은 것만 생각하는 것 같구나. 그도 분명 삶의 좋았던 시절과 좋았던 기억들이 있을 텐데 말이야. 아무래도 마흔 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을 병에 걸려서 원망하는 마음이 더 컸던 모양이구나.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이반 일리치에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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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전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겼던 생각, 즉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으신 분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저항하고 싶어 했던 한때의 희미한 충동,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곧바로 떨쳐내 버리곤 했던 그 충동만이 진짜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업무, 그가 삶을 살아온 방식, 가족, 사회와 직장에서의 이해관계 같은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변호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허접하기 그지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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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나서 먼 훗날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들이 떠오를까 생각해 보았단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죽음은 두렵구나. 만약 죽을 줄만 알았던 이반 일리치가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다시 삶을 이어갔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 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갔을 것 같구나. 우리는 이반 일리치의 경험을 교훈 삼아서 그가 다시 살아날 때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해 보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말이야.


PS:

책의 첫 문장: 커다란 법원 건물에서 멜빈스끼 사건을 심리하던 판사들과 검사들은 휴정 시간이 되자 이반 예고로비치 셰베끄의 집무실에 모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끄라소프 사건에 대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책의 끝 문장: 그는 그렇게 죽었다.


그는 그 생각의 자리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차례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의지할 데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죽음에 대해 잊어버릴 수 있도록 자신을 지켜 주던 지난날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때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고 감싸 주고 지켜 주던 예전의 모든 생각들이 이제는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그래 들어 이반 일리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차단해 주던 이전의 감정 상태를 복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일하자, 일을. 나는 일 덕분에 사는 사람 아닌가>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 P75

<너한테 필요한 게 무엇이냐?> 그가 맨 처음 들은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랬다. <필요한 게 뭐냐고? 무엇이 필요하지?>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무엇이냐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 사는 것.>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통증조차 못 느낄 정도로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걸 말하는 거지?>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것. 예전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예전엔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목소리가 물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자신의 즐거웠던 삶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하나씩 되새겨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즐거웠던 삶에서의 좋았던 순간들이 이제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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