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3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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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가끔씩 읽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이 시리즈는 유명한 작가들의 책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아빠만 모를 수도 있지만) 작가들의 작품들도 출간을 한단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통해서 새로 알게 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있었어. 이번에 읽은 저메이카 킨케이드라는 분의 <루시>라는 책도 처음 알게 된 작가의 처음 들어본 책 제목이란다.

저메이카 킨케이드라는 작가는 앤티가섬이란 곳에서 태어났대. 앤티가 섬은 카리브해에 있는데 영국 연방 소속이라고 하는구나. 저메이카는 어렸을 때 뉴욕에 와서 입주 보모 생활을 했는데 그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 바로 <루시>라는 소설이란다. 저메이카는 주로 피식민지, 여성, 흑인, 이주민 등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래. 그렇게 소수자들과 약자들을 대변하는 작가이다 보니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언급된다고 하는구나. 올해는 안타깝게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네.

 

1.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제목과 같은 루시(루시 조세핀 포터)이고, 지은이 저메이카처럼 십대 후반의 나이에 오페어(입주 보모)로 일하게 된 장면부터 시작한단다. 루시가 일하게 된 집은 변호사 루이스와 가정 주부 머라이어 부부와 네 자녀가 있는 집이었어. 머라이어는 루시에게 친구처럼 잘 대해주었단다. 나중에는 루시가 머라이어를 엄마처럼 생각하기도 했어. 네 자녀도 말썽 피우지 않고 잘 지냈어. 그렇게 잘 지내다가도 루시 자신은 그들과 섞일 수 없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닫곤 했지. 루시에게도 꿈이 있어서 오페어로 일하면서 야간학교도 다녔단다.

그렇게 일도 하고 학교도 다니곤 하지만, 루시는 여전히 10대 소녀였어. 친구들과 만나 놀기도 하고,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한단다. 머라이어가 잘 해주지만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혼자 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고향을 떠난 것은 루시 자신의 선택이었단다. 루시는 엄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는 아들만 챙기고 자신을 홀대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었거든. 그리고 아버지는 바람만 피우고 집안일 돌보지 않는 완전 불량 가장이었단다. 엄마가 가장 잘못한 것이 아빠와 결혼한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집안에서 탈출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거지.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또 그런 것이 아니지. 딸을 멀리 보낸 루시의 엄마는 자주 루시에게 편지를 보냈단다. 하지만, 루시는 답장은커녕 한 통도 뜯어보지 않았단다. 심지어 겉봉투에 긴급이라고 써 있는 편지도 열어 보지 않았어.

한달 뒤 루시의 엄마는 인편으로 소식을 전했어.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집안은 빈털터리가 되었다고그러니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말이야. 루시는 돈만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 자신은 자신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가 그만큼 강했어. 이런 장면을 지켜보던 머라이어는 루시에게 엄마를 용서해 주라고 조언을 했단다.

….

행복하게만 보였던 머라이어의 가족. 남편 루이스가 머라이어의 친구와 바람을 피고 이혼을 하게 되면서, 겉으로만 보던 게 전부는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단다. 머라이어는 이혼에 담담한 모습이었어. 루시는 1년 동안 한 보모 생활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아파트에 살기로 했단다. 자아를 찾아가기 위한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간 것이라 생각해. 그리고 남자친구의 소개로 작은 회사에 다니기도 시작했어. 그렇게 그 큰 도시에 조금씩 조금씩 더 적응해가고 있었단다.

머라이어의 집을 떠났지만, 친구로 계속 연락했고, 몇 달 뒤에는 다시 만나기도 했단다. 둘의 우정은 계속 이어질 듯 하구나. 그리고 루시도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갈 것 같고 말이야. 루시가 보모생활을 착한 머라이어의 집에서 한 것이 참 다행인 것 같구나. 물론 머라이어게도 루시 같은 보모가 와서 다행이었고 말이야.

책이 얇은 만큼 소설을 이렇게 끝이 났단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많구나. 이 책이 피식민지 유색 인종의 주인공이 백인의 주류 사회 들어와서 성장해 가는 모습 그런 소설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아빠는 루시와 머라이어의 우정이 더 기억에 남는구나.

, 오늘은 소설이 짧은 만큼 독서편지도 짧게 끝낼게.

 

PS:

책의 첫 문장: 첫째 날.

책의 끝 문장: 그 문장을 보자 수치스러움이 집채만한 파도처럼 나를 휩쓸어 난 하염없이 울었고, 공책에 떨어진 눈물로 잉크가 더 번져 글자들은 하나의 커다란 얼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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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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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어려워하지만 동경하는 분야 중에 하나가 철학이란다. 그렇게 어려운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그런 철학자들 중에 아빠가 좋아하는 강신주 님의 책을 읽었단다. 인터뷰어 지승호 님과 강신주 님이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니까 공저라고 해야겠구나.

책 제목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책 제목을 보면 이소라 님의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가 자꾸 생각이 나더구나. 이 노래도 좋아했었는데 말이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강신주 님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제목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철학자이자 시인인 폴 발레리(1871~1945) <해변의 묘지>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면서 강신주 님 본인도 바람을 좋아하신다고 했어. 특히 산에서 느끼는 바람, 산에서 느끼는 바람은 아빠도 참 좋아하는데그런데 산에서 느끼는 바람을 싫어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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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30)

저도 바람을 좋아해요. 제가 왜 산에 가냐면 산에서 느끼는 바람은 다르거든요. 더 정확히 말하면, 산에서는 수많은 바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산에 오르면서 몸이 뜨거워지고 땀도 나니까, 작은 바람도 쉽게 느껴지죠. 그래서 계곡으로 올라가지 않고 능선을 타요. 순간순간 바람이 불고, 비바람이 치고 이런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산등성이에서 갑자기 구름 생기는 것 못 봤죠? 비 오는 날 산에 가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습한 날은 바람이 조금만 불면 등성이에 구름이 생겼다 없어졌다 생겼다 없어졌다 그래요. 그런 광경이 너무 예뻐요. 그게 정서적으로 저랑 맞는 것 같아요. 타르코프스키하고 미야자키하고 모네하고 정서적으로 맞아요. 바람을 모티프로 자기 얘기를 드러내는 것, 바람과 멀리 있는 문명과 바람과도 같은 자연, 우주적인 것들에 감수성이 있는 것 같아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폴 발레리(1871~1945) <해변의 묘지>라는 시 마지막 구절이에요. 시가 아주 철학적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는 이 구절이 자막으로 올라가면서 시작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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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강신주 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몇 번 이야기한 것 같긴 한데, 그의 세상 바라보는 시각이 마음에 들고,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진정한 자유주의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의 자유는 무엇인가 틀이 있는 자유라고 하면, 강신주 님의 자유는 사방이 뻥 뚫려 있는 자유 같았어. 그런 뻥 뚫린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말과 생각들은 시원함을 주었단다. 마치 산에서 부는 바람처럼 말이야.

작년에 강신주 님의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을 읽으면서 살이 쪽 빠진 모습에 건강을 걱정했었는데, 역시나 한동안 아프셨다고 하더구나. 구체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한 마디로 너무 무리를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이제는 마음이 아닌 몸이 걷고 싶을 걷고, 몸이 쉬고 싶을 때 쉬겠다고 하더구나. 아직 건강이 다 회복되신 것 같지 않은데, 얼른 회복하셨으면 좋겠구나. 아빠도 가끔 몸은 쉬고 싶어하는데, 머리가 시켜서 몸이 일을 하거나 책을 쓰거나 지금처럼 독후감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건강을 생각해서 좀 자제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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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몸의 시간은 정신보다 느리고 조심스럽고 그만큼 안정적이다. 아픈 몸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벌레가 가는 듯 마는 듯 걷는 것 같아, 언제나 몸이 좋아질까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건강한 몸이 아파지는 것도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얼마나 집중도 높게 집필 작업을 했는지, 얼마나 정열적으로 강연을 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내가 몸을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말을 할 수 없는 몸이 퍼져버린 것이다. ‘너 이제 혼자 가. 나는 더 이상 못 가겠어.’ 몸은 몸으로 그리 표현했던 셈이다. 이제는 몸의 시간이었다. 몸의 마음에, 몸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어야 했다. 지금까지 나의 말을 묵묵하게 들어주었던 몸 아닌가. 이제는 내가 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어야 할 때였다. 몸이 걷고 싶을 때 걸을 것이고 몸이 쉬고 싶을 때 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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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뷰어 지승호 님과 강신주 님이 열한 번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꿰뚫는 한가지 주제가 있어 보였단다. 자본주의 비판. 자본주의가 주류가 된 시점과 지구가 망가지기 시작한 시점이 똑 같은 것만 봐도 자본주의 시스템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란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그것이 지구를 망치고 있어도 버리지 못하는 시스템이 되어 버렸단다. 자본주의의 욕망이 모두 담긴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라고 이야기하셨단다. 편리하면서도 늪이 되어버린 스마트폰. 자본주의 시스템은 그 스마트폰을 우리보다 더 영리하게 사용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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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자본주의는 공동체에서 쪼개진 개개인들이 생계를 걸고 참여하는 게임 같은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고요. 누군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필요를 만들 수 있는지를 분석해서 신제품을 만드는 것이 자본의 논리니까요. 그래서 빅데이터가 중요한 거예요. 노동자는 그 정보를 계속 빼앗기고 있고, 자본은 계속 그 정보를 축적하고 있단 말이에요. 플랫폼 기업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하는 사회가 됐어요. 내가 모르는 내 습관까지 알고 있어요. 내 나이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취미는 뭐고 관심사는 뭔지, 내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방문했던 사이트에서 무엇을 검색하고 구매했는지…… 내 흔적들이 당신이 좋아할 만한 책과 영화, 상품으로 광고 창에 뜨잖아요. 내가 남긴 소비의 흔적들이 플랫폼 기업의 자본이 되는 거죠. 소비자, 곧 노동계급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도록 강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 팽창 전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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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스마트폰은 나이 든 사람의 노련함과 경험을 빼앗아 갔단다. 예전에는 나이 든 사람으로부터 지혜를 얻는다곤 했는데, 요즘에는 스마트폰에서 검색만 하면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야. 이젠 나이 어린 손주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세상이 되었단다. 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풍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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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자본주의사회는 나이 든 사람이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배울 게 없는 존재로 만들어놨어요. 기계 조작도 서툴고, 데이터 분석 같은 일들은 젊은 직원이 대신 해줘야 돼요. 권력이 있기 때문에 해주는 거예요. 사실 기계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가장 잘 다뤄요. 할머니 할아버지 스마트폰은 손주들이 다 세팅을 해주잖아요. 이 순간 손주들이 우외에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열등한 위치에 있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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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님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노동자를 노예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를 하신단다. 하지만 그래도 노예보다는 낫지, 아빠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어지는 그의 글에서 노동자를 출퇴근 노예라고 부르고, 노예는 출퇴근이 불가능한 노동자라 이야기하시는 것에 빵 터졌단다. 그래 인정해 주자 ㅎㅎ. 난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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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거대 문명이 탄생한 기원전 3000년 이래로 지금까지 인류는 복종의 시대에서 5000~6000년 정도를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분업 체제에 진입을 해서 이 사회 시스템을 벗어나서는 먹고살 수 없을 정도로 분업의 강도사 세졌어요. 자동차 바퀴만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생태운동을 할 수 있나요? 자동차가 존재해야 자기가 사는데, 산업화된 시스템에서 하나의 나사가 되지 않으면 생계의 위험에 빠지는 사회인 거예요. 타율적 복종에서 자발적 복종으로 바뀐 것뿐인데, 체제는 타율자율만 강조해서 자본주의사회가 왕조시대보다 더 발달했다고 얘기를 해요. 그런데 내가 볼 때는 복종에 방점을 찍어야 돼요. 노동자를 정확하게 출퇴근 노예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면 노예는 이렇게 정의 내리면 되죠. ‘출퇴근이 불가능한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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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희들도 이제 학교 교육의 한 가운데에 있다 보니,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더구나. 자본주의 체제하에 교육이라는 것이, 결국은 일 잘하는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틀에서 너희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용기도 없더구나.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가다 보면 순응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안타까워하면서 말이야. 스트레스 받지 않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그게 가능할 지 모르겠구나.

강신주 님은 좋은 교육이라는 말은 모순적인 것이라면서, 교육 대신 성장이라는 말을 쓰자고 하더구나.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돕자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해진 교과서가 아닌, 좋아하는 책을 읽게 하라고... 그런데 성장이라고 말을 바꿔도 성장이라는 것 또한 비교하기, 경쟁하기 딱 좋은 말처럼 들리는구나. 남들보다 더 성장해야 하고, 곧게 성장해야 한다면서 말이야. 교육이든 성장이든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숙제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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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철학적으로 말해서 좋은 교육은 모순적인 표현이에요. 교육은 나쁜 거예요. 기성세대든 억압세대든 자신의 말을 잘 듣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니까요. 더군다나 교육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의미라면, 교육은 인문주의자가 목숨을 걸고 없애야 할 대상일 거예요. 교육이라는 말을 없애고 차라리 성장이란 말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정확히는 성장을 돕는 거죠.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책과 교재는 다른 거예요. 교재 즉 교과서는 아이들을 졸게 만들죠. 반면 그 교과서 밑에 몰래 숨겨놓고 읽는 책은 그렇지 않잖아요. 선생님이나 부모가 읽으라는 교재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은 이렇게 차이가 있어요. 앞에서 저는 자신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이 주인이고, 반대로 타인의 권위에 눌려 타인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말했어요. 결국 교재는 노예의 문자고, 책은 주인의 문자였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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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즐겁게 하면서, 노예 같은 노동자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옳은 말인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푹 빠져 살다 보니 생각마저 굳어버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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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찾아주는 일, 아니 정확히 말해서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살아낼 수 있는 길에 들어선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리고 노력 없이 주인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만, 그걸로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폭력 수단과 정치 수단을 독점했기에 국가는, 그리고 생산수간을 독점한 채 국가의 비호를 받기에 자본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찾은 아이들은 이미 물을 만난 물고기와 같아요. 그러니 국가나 자본이 땅에서 살기를 요구해도, 그들은 가급적 물을 떠나지 않으려 할 거예요. 한편으로는 자신을 노예로 만들려는 경향과 맞서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두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갈 거예요. 여기에 바로 인류의 희망과 미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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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앞서 아빠가 이야기한 것처럼 강신주 님은 진정한 자유주의자란다. 강신주 님은 자유와 사랑을 동급으로 놓고 이야기를 하시곤 했어. 그래서 강신주 님의 이야기에 사랑이 또 빠질 수 없단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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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꿈꾸는 것을 이루려 한다면 억압체제에 저항하게 돼요. 왜냐하면 체제에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사랑과 자유는 항상 같이 가는 거예요. 인문학의 정신이 사랑과 자유가 아니면 뭐겠어요. 그 두 가지 내용을 가진 것이 인문주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예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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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를 하나로 생각하다 보니, 사랑이라는 정의도 자유와 엮어서 내리는데 옳은 말씀이란다. 그가 내린 사랑의 정의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하는 것. 그야말로 자유주의자의 끝판왕이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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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하는 거예요.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는 온전히 주어졌을 때, 그때 나를 좋아해줘야 기쁘고 희열이 있죠. 스토킹은 그 사람의 자유를 제거한 상태에서 나만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자유를 제거하는 방법은 그 사람을 죽이는 데서 정점에 이르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는 타인의 쾌락과 즐거움은 중요하지 않고, 나의 쾌락과 즐거움만 있는 거죠. 개인주의적 자아는 자기 안에 갇혀서 쾌와 불쾌만을 따진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한다는 말과 같아요.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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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좋은 말씀들도 많았는데, 오늘은 아빠가 몇몇 발췌해 놓은 글들을 소개해 보았단다. 오늘은 이쯤에서 마칠까?


PS:

책의 첫 문장: 이 책의 머리말을 쓰기 위해 2013년에 발간되었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프롤로그를 읽어보았습니다.

책의 끝 문장: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온다…… 글을 써야겠다!” 잘 돌보지 못해 미안한 내 몸이 너그럽게 허락한다면.


노예사회, 농노사회, 노동자사회, 본질적으로 진보한 것이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이들 다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지 못해요. 지금 노동자들이 아무리 농노보다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생산이 아니라 특정 소수, 부르주아들이 원하는 생산을 하고 있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을 주인이라고 하고, 남이 원하는 것을 사람들을 노예라고 불러요. 고전적 정의예요. 질적으로 보면 아직도 억압사회인 거죠. ‘소비사회’라는 논리로 자본주의가 발달해야 되기 때문에 노동계급한테 소비자의 위상을 주는 거예요. 월급을 주고 물건 만들고, 또 그 돈으로 소비하고, 이 과정이 계속 돌면서 계속 월급쟁이 생활을 하지만, 과거 농노보다는 경제 사정이 좋죠.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예요. - P33

젊은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운 것은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하고 얘기할 때 빵빵 터지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선순위에서 밀어놓은 것은 손주는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니까요. (웃음) 이상한 상상력을 가진, 새로움을 접하니까요. 젊다는 것은 새롭고 낯설다는 거예요. 어린아이들끼리는 서로 차별도 하지 않아요. 어린아이가 피부색이 다르다고 인종차별을 할까요? 그러지 않잖아요. 차별은 위계질서가 굳어지고 우선순위가 매겨진 기존 사회에서 물려받은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그런 거죠. 새롭고 낯설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현실은 굉장히 슬픈 일인 것 같아요. - P65

간혹 가다가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살지도 않는 집을 하나 더 가지고 있으면서 임대료를 얻어서 생활을 한다고 해요. 그러고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노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수익이 생긴다면, 그건 다른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한 거예요. 임대료의 경우는 물론 주거가 불안한 사람들로부터 착취한 거죠. 작은 자본가고 작은 지주인 거예요. 그래서 속상하고 이런 사람들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아요. 큰 집에서 사는 건 상관이 없지만, 대신 집으로 임대료를 받으면 안 돼요. 그런데요, 집이 없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간혹 월세 등을 받아서 노후를 유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죠. 이 경우는 조금 난감해요. 가족공동체가 와해되어서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니까요. 이런 서글픈 경우가 아니라면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자 등으로 이윤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돼요. - P152

세상이 좋아지리라는 막연한 희망도 버려야 해요. 또 세상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비관도 버려야 하고요. 자본과 국가라는 구조적 악은 여전히 강력하게 거대한 요새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요. 이 요새의 문은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죠. 그렇지만,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문을 밀어붙어야 해요. 열리지 않더라도 그 문 앞에서 외쳐야 돼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저랑 함께 이 문을 밀어 열어젖힐 분 없나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 P256

<조선혁명선언>에서 신채호는 구시대의 혁명을 주정해요.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는데, "구시대의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상전’의 교체가 아니라 ‘상전’이 없어지는 것, 개인의 자유와 정의로운 공동체를 스스로 주인이 돼서 만드는 것이 혁명이라는 얘기예요. 신채호가 간디보다 수천 배 위대한 이유죠. 상전의 자리에 일본인이 들어오든, 아니면 한국인이 들어오든 마찬가지예요. 상전의 자리에 어떤 권력자가 들어오든 마찬가지죠. 상전의 자리, 형식, 혹은 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 안 돼요. 결국 신채호의 시선에서 촛불집회는 혁명일 수 없어요. 여전히 수많은 상전의 형식이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채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상전인 회사의 CEO가 있고, 자본가가 있고, 국가는 명령을 내리고 있고, 입법으로 그것을 강제하고 있잖아요.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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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12-09 00:03   좋아요 2 | URL
늘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막 금요일이 시작되었는데요, 즐거운 금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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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작년에 충격을 받을 만큼 재미있게 읽은 우리나라 SF 소설이 하나 있었으니, 박지리 님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라는 소설이었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소설을 마지막으로 박지리 님께서 젊은 나이에 이미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해 박지리문학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품도 읽어보겠다고 구입을 해 두었는데, 이제서야 읽었단다.

현호정이라는 처음 보는 분의 소설로 <단명소녀 투쟁기>라는 독특한 제목이란다. 소설 길이도 그리 길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단다. 박지리 님의 소설의 강렬함에 의해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에 대한 기대치가 컸던 탓이었는지, 그 기대만큼은 아니었단다. 소설이라는 것은 작가의 텍스트를 읽는 이로 하여금 머릿속으로 그 세상을 그려내면서 읽어 나가야 하는데, 아빠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고 복잡하고 혼란스런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뒷부분에서 왜 그랬는지 알겠더구나. 그래도 그것 치고도 너무 어지러운 구성이었단다.


1.

주인공 구수정은 수능 때문에 찾아간 점쟁이 백두로부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단다. 아니, 아직 젊음도 꽃피우지 못했는데, 스무 살도 안되어 죽는다니 이게 말이 될 법인가. 수정은 이것은 필사적으로 그 죽음으로부터 피해서 달아가기로 마음먹는단다. 그래서 소설 제목이 <단명소녀 투쟁기>로구나. 단명으로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소녀가 죽지 않기 위한 투쟁의 기록.

수정은 죽음을 피해 남으로 계속 가다가 죽음을 향해 북으로 가는 이안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단다. 그렇게 알게 된 이안과 함께 하는데, 그들이 있는 세상은 비현실적인 세계였단다. 소 만한 개가 점점 작아 들어 죽지를 않나, 작은 일곱 아이들이 빨리 늙어가질 않나현실 세계의 질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이 세계는 어떤 세계란 말인가. 하기야 죽음으로부터 도망쳐 남으로 간다는 것 또한 현실세계와 질서는 맞지 않았단다. 심지어 저승신을 만나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수정의 소원과 이안의 소원을 들어주는 조건을 내건단다. 수정의 소원은 죽지 않게 하는 것이고, 이안의 소원은 죽게 해달라는 것

저승신이 내놓은 조건은 명부에 적힌 사람을 열명을 죽이면 된다는 것이야. 이쯤 되면 누군가의 꿈 속 세계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는데, 책에서도 힌트가 나왔단다. 그 힌트는 수정이 꿈을 꾸었는데, 이안이 병실에 있는 꿈이었어. 그러니까 그 꿈이 실제는 현실이고, 수정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 세상이 꿈인 것이겠지. 아무튼, 저승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수정과 이안은 명부에 적인 이들을 하나씩 처단하게 된단다.

….

그리고 구수정은 마침내 죽음에 이르지 않게 되고 눈을 뜨게 된단다. 눈을 뜬 구수정은 자신이 병실에 혼수상태로 있었음을 알게 되었단다. 병실에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자살시도를 했었기 때문이야. 현실에서는 자살 시도를 했지만, 죽음을 앞둔 긴 꿈에서는 살고자 했던 것이지. 운명이 구수정에게 주었던 기회가 아니었나 싶구나.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말이야.

깨어난 구수정은 옆 자리 침대를 보았어. 비어 있었어. 그 침대에는 원래부터 아무도 없었다고 했어. 이안은 구수정이 꿈에서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었던 것이지. 소설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생각하기에 혹시 옆 침대에 이안이 있었는데 결국 죽게 되었고, 구수정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다시 충격 받아 위험에 빠지게 될까 봐 사람들이 수정에게 거짓말은 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단다. 또는 이안은 다른 병원의 다른 침대에서 혼수상태였는데, 그들이 꿈 속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어.

아무튼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읽는 내내 안개 낀 곳을 거니는 느낌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걷히는 그런 기분이었단다.


PS:

책의 첫 문장: 구수정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고 예언한 사람의 이름은 북두(北斗).

책의 끝 문장: 칼은 나를 아프게 하는 방식으로 나를 살리거나 죽이지만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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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4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둘째가 다윈영의 악의기원을 진짜 좋아하는데 저는 아직 못읽어봤네요. 딸은 딸 저는 저의 독서를 이러는데 북홀릭님 항상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책을 같이 읽어주시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bookholic 2022-11-16 08:19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도 아이들과 늘 소통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도 저랑 잘 놀아줬으면 좋겠는데, 욕심이겠죠? ㅎㅎ

파이버 2022-11-14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은 얇은데 가름끈이 흑과 백 두개나 있어 특이했던 책이었습니다. 저도 흥미롭게 읽긴 했지만 구성이 어지러웠다는 것에 백번 동감합니다.

bookholic 2022-11-16 08:2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어지러워요 ㅎㅎ
지은이의 다음 작품은 좀더 나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 국선변호사 사건 일지
신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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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우리가 함께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대해 극찬을 했는데, 아빠도 정말 재미있게 잘 봤단다. 너희들도 이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잖아. 그 드라마에 나오는 노래도 무한반복으로 듣기도 하고그 드라마는 법정드라마라서 에피소드마다 재판이 나오는데, 그 재판들은 실제 있었던 일들을 참고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 재판들이 실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신민영 변호사님이 쓴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라는 책이란다.

신민영 님은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시고, 자신의 겪은 재판들과 변호사로써 갖고 있는 생각들이 책에 담겨 있단다. 재판을 다룬 영화나 소설을 읽다 보면 변호사와 검사의 논리적인 논쟁에 푹 빠져드는데, 실제 사건을 다른 에세이도 마찬가지로 푹 빠져들게 되는구나. 지은이 신민영 변호사님의 글솜씨가 좋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지은이 신민영 변호사님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선전담변호사시라고 하는구나. 아빠는 법에 관련된 것은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국선변호사는 전담하는 줄도 처음 알았단다. 변호사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줄 알았는데, 2004년부터는 국선전담변호사가 생겼다고 하더구나.


1.

이 책을 읽다 보면 각 사건의 이야기들도 재미있지만, 법조계에 일어나는 일들과 법정 용어들도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당방위가 정말 드물다는 이야기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어떤 사건의 경우 정당방위가 안 된 경우도 있어 안타까운 적이 있지만, 정당방위의 범위를 좁게 가져가는 이유를 읽어보니 그 또한 나름 일리가 있어 보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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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초기 소지가 불법이고 인구밀도가 높으며 경찰서가 비교적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당방위의 범위를 좁게 가져가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정당방위가 허용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주어 보복성 폭력 행위로 이어지게 하는 것보다, 팔을 잡는 등의 현상 유지만 하게 하고 공권력을 빌어 사건을 처리하는 편이 폭력의 총량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물론 몇몇 아쉬운 사건이 있긴 하지만 더 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현행법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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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나 실제 뉴스에서도 보면 집행유예를 받게 되면 좋아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단다. 집행유예를 받으면 거의 무죄나 마찬가지로 생각들을 하는 편이고.. 그런데 집행유예를 만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의아해했는데 집행유예를 받더라도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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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9)

현행법상 집행유예 이상 전과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 벌금형이 가능한 젊은 피고인들의 집행유예형 요청을 만류하는 이유다.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뒤늦게 공무원 시험 응시를 마음먹었다가 집행유예 전과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나이 많은 피고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취업할 때 전과 기록을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형 실효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집행유예 전과는 5년이 지나야 전과 조회 결과에서 사라지지만, 벌금 전과는 2년만 지나면 사라진다. 물론 둘 다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고 취업이나 기타 목적으로 조회할 때에만 보이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그 차이는 분명 크다. 나도 변호사지만 우리나라 법 전체를 다 알지는 못한다. 집행유예 전과가 어디서 어떤 불이익을 가져올 지 도저히 예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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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단다. 증거가 명백한 피고인이라고 하더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고한 사람, 그러니까 무죄로 간주한다는 원칙이란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인권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유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얼굴도 가리고 그러는 것인데,  증거가 명명백백한 흉악범의 얼굴을 가리는 것을 두고, 그런 사람이 무슨 인권이 있냐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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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도대체 왜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만 하는 걸까? 바로 인권 때문이다. 형사재판이라는 게 국가 대 개인의 싸움이라 체급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이 과정에서 사수하려 애를 써도 보장하기 힘든 것이 개인의 인권이다. 하지만 요즘 인권을 얘기하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는 듯하다. ‘흉악범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는데 무슨 놈의 인권이냐. 도리어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반론이 대번에 돌아온다. 사실 그 간의 형법이 피해자에게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피고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 반대급부로 피해자의 인권이 지켜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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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 실린 재판들 중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각색된 사건들은 4편이 있었단다. 먼저 이 책에 실린 치매 남편을 폭행한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화에서 그려졌단다. 드라마 대사 중에도 나왔던 사람의 마음에 따라 죄명이 바뀐다는 내용도 책에 실려 있었단다. 드라마를 보면서 법이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이러면서 봤는데 이 책을 참고했던 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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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같은 주장을 하곤 한다. A라는 사람 때문에 B가 죽었다 치자. 이때 A에게 적용되는 죄명은 살인죄만 있는 게 아니다. A가 무슨 마음을 먹고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죄명은 네 가지로 갈린다. 죽일 마음이었다면 살인죄, 다치게 할 마음이었다면 상해치사죄, 그냥 좀 때려줄 마음이었다면 폭행치사죄,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실수로 죽게 했다면 과실치사죄. 똑같이 피해자가 사망했더라도 가해자의 마음속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에 따라 죄명을 갈린다. 이러다 보니 살인(미수)혐의를 받는 피고인들 십중팔구는 형을 줄여보려 죽일 의도는 없었고 그냥 좀 혼내주려고만 했다고 주장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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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에 보면 자폐 장애인과 성관계를 한 남자가 피고인으로 나오는데, 그는 사랑이라고 주장하지만 자폐 장애인의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자신의 딸을 꼬셔서 겁탈한 것이라고 주장했지.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판결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피고인, 심지어 상대방인 자폐 장애인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야. 이 사건도 실제 있었던 사건을 각색한 것이라고 하는데, 지적 장애인의 권리를 부모님의 의지에 의해서 보장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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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사실상 주변 정황으로 성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지금의 방식은 무죄추정의 원칙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이 과연 피고인만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지적장애인 역시 상대를 선택하고 성관계를 즐길 권리가 있다. 그 관계에 대해 국가가 광범위하게 개입한다면 결국 사람들은 지적장애인과의 성적 접촉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같은 장애인이라고 해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니 이는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매한가지다. 눈앞의 불행을 막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과 그 가족들 앞에서, 멀리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 행복을 얘기하는 건 무책임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궁금한 건 지적장애인 본인들의 얘기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그동안 만났던 연인들이 모두 수사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여전히 심연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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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에피소드는 지적 장애인이 형의 자살을 막으려다가 피고인이 된 3화로, 지적 장애인이 아버지의 자살을 막으려다 살인자로 재판을 받은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구나. 마지막 에피소드는 놀랍게도 6화란다.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쏟게 한 탈북민이 아이 때문에 5년간 도망 다니다가 뒤늦게 자수를 한 사건.. 실제 사건도 드라마에서처럼 변호사가 캐치하지 못한 피고인의 자수로 집행유예를 받았단다. 이 에피소드가 실제 있었던 일이다니

….

이번에 읽은 책 말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참고한 책이 또 있다고 하더구나. 그 책도 기회 되면 함 읽어봐야겠구나. 그나저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시즌 2를 하려나.


PS:

책의 첫 문장: 대검찰청은 종종 영화나 드라마 작가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한다.

책의 끝 문장: 하늘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안효숙 님께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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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겠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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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코로나 바이러스라 퉁쳐서 부르는 코비드-19가 어느덧 3년을 꽉 채워가는구나. 요즘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규제도 많이 풀려서,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단다. 아빠는 그 마스크라는 것이 그렇게 오래 써도 적응이 안되어 여전히 답답하기 그지 없구나.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열풍에 휘청거리는 동안, 우리나라는 방역을 잘 한 나라로 손꼽혀 세계 여러 나라의 귀감이 되곤 했단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염병에 대해 방역을 제대로 못해서 국가 망신을 당하곤 했단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완벽한 방역으로 SAS라는 전염병 환자가 국내에 한 명도 발발하지 않게 해서 세계에서 극찬을 받았던 나라에서, 방역 때문에 망신을 당하게 되었으니 다른 나라에서 보면 참 이상하다고 하겠구나.

어떤 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방역 우수 국가가 될 수도 있고, 방역 망신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단다. 국가 시스템이라는 것이 한번 만들어지면 집권 정당에 관계 없이 잘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더구나. 무능한 정권이 들어서면 국민들이 고생하고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단다. 최근 들어 또 그런 일이 일어나서 가슴 아프구나.

아빠가 서두가 길었구나. 이번에 아빠가 읽은 김탁환 님의 <살아야겠다>라는 소설은 몇 년 전 방역 망신 국가를 만든 메르스 사태에 관한 소설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란다. 메르스가 처음 발발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단다. 창피한 일이지사우디아라비아와 한참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왔다니. 당시 대통령이 방문한 병원의 벽에 A4지에 적혀있던 살려야한다라는 문구가 아직도 생각나는구나. 그런 설정샷을 누가 생각했는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단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메르스 사태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메르스 마지막 환자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로 다시 태어났단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띠었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단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먹먹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고, 제발 국민들이 제발 선거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우리 국민들은 당시 그렇게 국가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이들에게 다시 정권을 넘겨주었단다.


1.

이 소설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소설로 한 것으로 제목 살아야겠다는 앞서 이야기했던 병원의 벽에 A4지에 적어 두었던 살려야 한다를 풍자해서 지은 것이 아닌가 싶구나. 메르스 병원의 첫 번째 확진자가 다녀갔던 서울 삼성 병원을 소설 속에서는 F병원이라고 했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메르스 첫 확진자가 발생했던 F병원과 정부는 왜 모든 것을 숨기려고만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전염병이 처음 생긴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이로 인해 초기 진압을 실패하고, F 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사람들이 연이어 메르스에 확진되면서 메르스는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단다.

이 소설은 2015 5 27일에서 29 F병원 응급실에 방문했던 세 사람의 중심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단다.

김석주.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고 치과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림프종이라는 암을 받아 한동안 항암 치료를 받고 일 년 전 완치 판정을 받음. 그리고 치과 의사로 첫 출근을 했는데, 한 달도 안되어 림프종 재발 증세로 F병원 응급실에 왔다가 그만 메르스에 확진 됨. 식구는 아내 남영아와 네 살 짜리 아들 우람이 있음.

이첫꽃송이. 직업 수습 기자. 아버지의 병환으로 F병원 응급실에 왔다가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F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름. 그 이후 메르스 증상이 발현되고 확진 판정 받음. 이첫꽃송이뿐만 아니라 친척분들도 줄줄이 메르스 확진됨. 퇴원 후에 막내이모부가 메르스로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됨.

길동화. 출판물 물류회사 베테랑 회사원. 막냇동생이 아파서 F병원 응급실에 같이 왔다가 메르스 확진됨. 아들 예석은 제주도에 왔다가 그곳에서 격리됨. 15일간 혼수 상태에 빠져 죽을 위기도 여러 번 겪음.

이첫꽃송이는 나이도 젊고 기저 질환도 없어서 그런지 그나마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했지만, 길동화와 김석주는 그렇지 못했단다. 길동화는 음압 병동까지 이동했다가 퇴원을 하긴 했는데, 후유증이 심했단다. 숨쉬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았어. 그리고 다니던 회사에서 잘렸는데, 그 이유는 메르스 환자라는 것이 소문나면서, 거래처에서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거야.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다른 직장으로 알아보려고 했지만, 메르스 환자였다고 하자 받아주지 않았어. 어렵게 얻은 일자리도 거래처에서 알게 되어 다시 해고되고 말았단다. 이 억울함을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하나? 그가 메르스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런 일을 겪게 되자, 자살 결심까지 하게 되었단다.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하다가 아들 예석에 의해 성공하지 못했단다.

예석은 예전에 F병원에서 만난 윤해선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단다. 윤해선 변호사는 소송을 해보자고 했단다. 윤해선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로 세월호 변호도 맡고 있었는데, 이첫꽃송이의 돌아가신 엄마의 옛 제자였단다. 이첫꽃송이와도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었고, 이첫꽃송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고, 친척분들도 메르스에 걸려서 보호자 역할을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윤해선 변호사가 이첫꽃송이의 보호자로 병원에 왔었단다. 그때 같이 입원했던 김석주, 길동화, 그리고 가족들도 알게 된 거야.

이첫꽃송이는 메르스 완치 후 다행히 기자로 복귀했단다. 문화부 기자 소속이었지만, 메르스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들 인터뷰를 하기도 했단다.


2.

그리고 또 한 사람 김석주. 그는 림프종이 재발하긴 했지만, 메르스 증세는 다른 사람들보다 좋았단다. 아직 젊어서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림프종 담당 의사도 메르스를 먼저 완치시키고 림프종을 치료하자고 했어. 메르스 증세는 많이 좋아졌으나 PCR 검사를 받으면 아직 양성이었어. 그래서 림프종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런 와중에 국가방침이 바뀌면서 갑자기 국가지정병원으로 이동하라고 했어. 김석주의 림프종 담당 의사는 F병원에 있어서 병원을 옮기면 안 좋을 것이 눈에 뻔했거든. 김석주의 아내 남영아도 병원 옮기지 말아달라고 항의했지만 그 항의는 묵살되었고, 김석주는 국가지정병원으로 옮겨졌고, 문을 몇 개나 지나고, 방호복을 입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격리 병동에 입원했단다.

김석주의 메르스 양성 반응은 50일이 넘어도 계속되었고, 이제 국내 메르스 마지막 환자로 남게 되었단다. 림프종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항암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는데, 격리 시설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는 극히 제한적이었단다.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입고 오는 것뿐만 아니라 림프종 치료에 필요한 장비들도 들고 오지 못하니까 말이야. 격리병동에 있으면서 가족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어. 이것은 입원이 아니라 감금 수준이었단다. PCR 검사를 하면 계속 음성과 양성이 반복해서 나왔어. 그래서 격리병동에서 퇴원도 못하고, 림프종 치료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상태는 악화되어 갔단다.

2015 10월 초 드디어 최종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을 하게 되었단다. 담당 의료진은 김석주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면서, PCR 검사에서도 다시 양성이 나올 수 있고, 그렇게 양성이 나와도 전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격리병동에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4개월만에 집에 온 김석주는 림프종 항암 치료 전에 일주일 간 집에 머물렀단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식구들 친구들과 함께 퇴원파티도 했어.

그런데 며칠 뒤 기침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들렀는데 다시 메르스 양성 반응이 나왔단다. 일전에 이야기와 달리 병원에서는 김석주를 다시 격리 병동에 감금시켰어. 남영아는 병원에 항의를 했어. 격리 기준도 없이 무조건 격리를 한다고병원에서는 질병관리본부의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어. 격리를 하고 나서 메르스 치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림프종 치료는 다시 미뤄지게 되었어. 메르스 치료도 안해, 림프종 치료도 안해, 격리 해제도 안해...

남영아의 항의가 묵살되자, 윤해선 변호사는 이 일을 세상에 알리자고 해서 남영아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김석주의 사연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제서야 병원에서도 뭔가 하려고 했어. 그 뭔가라는 것은 격리병동에서 림프종 치료를 하는 것인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격리 병동에서 림프종 치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단다. 결국 김석주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11 25일 세상을 등지고 말았단다. 그리고 국가는 메르스 종식 선언을 했다고 하는구나.

….

아빠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것이 실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더구나. 그래도 마지막 확진자가 잘 치유가 되길 바라면서 읽었는데, 결국 절망으로 끝이 났구나. 이 소설을 읽는 아빠도 이렇게 억울한데,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김석주와 그의 가족들의 억울함은 얼마나 컸을까. 어떤 보상이라도 죽음 목숨을 되돌릴 수 없는 법. 아빠는 사실 메르스 마지막 확진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이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단다. 당시 메르스 마지막 확진자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봤더니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이름만 달랐지 완전히 실화더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전염병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국가시스템에 의해 국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질 않길이렇게 쓰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또 엄청난 비극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말았단다. 오래 전에 떠돌던 말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단다. “이게 나라냐?”


PS:

책의 첫 문장: 5 20일 오전 11, 역학 조사관 세 명이 경기도 W병원 8층 준비실을 나섰다.

책의 끝 문장: 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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