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 질문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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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김민형 교수님의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어. 학창 시절에 수학을 좀 좋아했던 편이라서, 수학 관련된 책이라서 읽었는데,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그냥 그렇게 읽었단다. 그래서 후속편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 나와도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엄마가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우리 집에 있냐고 물어보더라. <수학이 필요한 순간>만 없고,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는 없다고 이야기를 했지. 엄마도 읽어보시겠다는데 사 드려야지.

그리고 책이 집에 도착을 하고 아빠가 먼저 읽어보았단다. 이런 책은 조용한 공간에서 좀 집중을 해서 읽어야 좀 이해가 가는데, 번잡한 출퇴근 시간에 주로 읽어서 그런지 집중도 잘 안되고 그랬단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수학을 배우기 시작하고, 대학에 들어갈 때도 상당히 중요한 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과목이고, 어떤 학과에서는 대학에서도 계속 공부해야 하는 과목. 직접 활용하기도 하지만, 많은 학문의 기초가 되는 수학. 그런 수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이 있단다. 수학은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수학을 쉽다는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적을 거야. 그런 수학을 일반 사람들에게도 쉽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한 책이 이번에 읽은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책이란다. 세미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제로 김민형 교수님이 여러 분야, 여러 세대를 포함한 분들과 함께 세미나 형식의 모임을 갖기도 했다는구나. 그래서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기는 좋았단다.


1.

이 책을 읽다 보니 아빠도 학창 시절에 배웠던 수학들이 생각이 나더구나. 원의 면적이나 구의 면적을 증명하는 것을 예전에 봤었을 텐데, 다시 보니 새롭고 재미있더구나. 원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생각해 낸 사람은 아르키메데스라는 유명한 고대 철학자이자 수학자란다. 원의 면적이라는 것이 결국은 원둘레를 밑변으로 하고 반지름을 높이로 하는 삼각형의 면적과 같다라는 것을 증명했단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책에 나오는데, 그런 생각을 해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구면적도 원기둥에서 아랫면과 윗면을 뺀 옆면의 면적과 같다는 것도 증명했단다.

고대의 수학은 대부분 기하학을 이용해서 설명하려고 했다는구나. 타원형 같은 경우도 원뿔을 자른 모양이라고 설명을 했대. 너희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타원형을 x y의 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배울텐데 현대의 수학에서는 기하학보다 수와 함수를 많이 이용한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서는 참과 거짓에 대한 논리학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는데, 이것은 컴퓨터의 기초가 되기도 한단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대학교 때 들었던 논리학 수업이 생각나더구나. 함수 이야기를 할 때는 삼각함수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삼각함수의 덧셈공식도 설명해 주었었어. 고등학교 시절에 참 많이 헛갈렸던 삼각함수의 덧셈공식, 뺄셈공식들…. 수학 문제가 어렵게 나온다면 삼각함수가 포함되어 있는 문제들이 있었지. 틀리기 일쑤지만 그런 어려운 문제를 풀어 답을 찾았을 때의 쾌감마저 떠오르더구나.

그리고 고등학교 수학 때 어려운 분야 중에 하나가 벡터 분야가 있었단다. 방향과 힘을 동시에 포함하기 위해 도입된 벡터. 물리에서도 등장하는데, 수학에서 문제를 어렵게 내면 정말 어려웠던 기억이 있단다. 고등학교 때 어려운 수학문제만 모아놓은 문제집이 있었는데, 그 문제집에서 아빠가 가장 어렵게 생각했던 분야가 벡터였던 걸로 기억해. 참 좌절감 많이 느끼게 하는 문제점이었지. 오늘은 책 이야기를 하는데, 자꾸 아빠의 학창시절을 자꾸 이야기하게 되는구나.^^

책의 내용은 뒤로 갈수록 점점 어려워졌단다. 확률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3차원이 아닌 4차원 그리고 그 이상의 다차원을 숫자로 표시한 방법도 이야기해주고, 소리와 파동을 수식으로 나타날 때 많이 쓰는 푸리에급수에 대한 이야기도 했어. 이 부분은 아빠가 오래 전에 읽은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이라는 책이 생각나더구나. 그 책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공부하는 내용을 적은 책이었는데, 그 책도 나쁘지 않았지. 역시 수학은 범위도 넓고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구나.


2.

요즘 shawn이 로봇에 관심이 많고 코딩도 배우고 있잖니, 코딩을 배우다 보면, 알고리즘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알고리즘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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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25)

규칙의 기계적인 적용만 이용해서 하는 작업을 보통 알고리즘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을 거의 동일시하죠. 알고리즘은 아주 단순한 단계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명령의 조합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가 알고리즘이라고 보는 것들이 아주 오래전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원전 2500년경 바빌로니아에 원시적인 나눗셈 알고리즘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곱셈 알고리즘, 최대공약수 알고리즘, 소인수분해 알고리즘 등을 생각할 수 있죠. 알고리즘이라는 말 자체는 중세 이후 16시기경까지 유럽 대학에서 수학 교재로 널리 사용되던 책 <복원과 대비의 계산>을 쓴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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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원주율을 구하는 방법도 설명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너희들이 심심풀이로 원주율(π)을 외운 일이 생각나더구나. 아빠는 여전히 3.14까지밖에 모르는데 너희들은 3.14 그 아래 몇 자리까지 더 외웠잖니. 아직 까먹지 않고 있니?^^ 책에는 더 많은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런 전문적인 내용을 다시 전달해줄 능력이 없어서 오늘은 이상으로 짧게 마치련다. 아빠가 나중에 다시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을 발췌해서 따로 정리해 두었는데, 너희들도 이 책을 다 읽지는 않더라도 그 부분만 같이 읽어도 좋겠더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 출간된 많은 독자가 보내온 고마운 피드백 덕분에, 비전문가에게 수학적 사고를 설명하는 과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숙고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또 방금 보았듯이 어떤 정의가 모호해질 때마다 가능한 모든 정의를 모아놓은 집합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상당히 고등한 개념적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세이온은 일종의 연구소 같은 곳으로, 지중해 방방곡곡과 중동 등지에서 모인 다양한 학자, 물리학자나 수학자 들이 각종 시인, 문인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학술 활동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지금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거기서 살았지만, 공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하던 때에 유클리드에게서 배웠다고도 합니다.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굉장히 많은 과학적 지식을 습득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유클리드라는 인물이 실제 존재했는지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확인하기는 어렵겠지요. 당대 수많은 학자가 교류했던 무세이온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기념하는 현대 도서관이 2002년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 P53

이런 원리는 학교 교육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수학의 기본 개념을 조심해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깊은 생각 없이 효율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보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해진 형식을 따라 저절로 푸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니까요. 수학의 학습은 피아노 연주 같은 면이 있습니다. 기초 기술을 습득하면 반복 훈련을 해야 하고, 그게 익숙해지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말입니다. 흔히 수학 공부에서 암기가 중요한가 원리 파악이 중요한가 하는 질문에 제가 늘 둘 다 중요하다고 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명료한 사고가 반드시 원리를 아는 사고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 P98

세상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 일에는 명제를 분석하는 것과 생성하는 것 모두 필요합니다. 여기서의 생성은 앞서 이야기한 명제의 합성과 논법의 적용을 둘 다 포함합니다. 이론가들이 원하는 완벽한 이론이란 분해와 생성 과정이 어디선가 만나는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이론은 없고, 궁극적으로 가능한지도 불분명합니다. - P185

크세나키스는 작곡할 때 확률론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피아노 곡을 쓸 때 먼저 88개의 음 가운데 ‘이 곡에서 이 88개의 음을 다음과 같은 분포로 사용하겠다’ 정한 뒤 작곡을 하는 겁니다. 가령 ‘도’는 전체 음의 12%가 나오고, ‘레’는 14%, ‘미’는 37% 나오게 하는 식으로 분포를 정한 다음 작곡을 하는 거죠. 음뿐 아니라 박자, 화음, 시간 등의 음악적 요소들을 물리적인 입자와 유사하게 여기는 작곡철학과 관계 있습니다. <확률의 작용>이라는 곡에서는 맥스웰 볼츠만 분포를 많이 사용했는데요, 이는 이상 기체 안에 있는 입자들의 속도 분포를 말합니다. 이를 작품에서 선율의 속도 분포에 사용한 것이죠. - P353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 같지만 핵과 전자 사이, 원자와 원자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광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광자의 압력 때문에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적당한 설명인 듯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손으로 만지는 것이 귀로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물체가 손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빛 때문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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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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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의 관심분야 중에 하나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이 두 가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신기함 가득한 이론들이라서 관심을 끊을 수가 없단다. 그것들에 관한 책들도 여럿 읽었는데, 새로운 책이 있다면 또 관심을 갖게 된단다. 이번이 읽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라는 책도 우연히 책 소개를 읽어 보고 리스트에 포함한 책이란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 관한 내용을 소설로 썼다고 하는구나. 문득 예전에 읽은 <클링조르를 찾아서>라는 소설도 생각이 나는구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양자역학에 과한 소설이었는데, 참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거든.

아무튼 그런 연유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라는 책을 읽었단다. 읽기 전에 제목만 보고 대충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이해가 좀 갔어. 이 세상 사람 중에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리차드 파인만의 말에서 따온 것 같았어. 우리의 세상을 이루고 있는 작은 미립자들 세상의 기본 원칙인 양자역학을 이해하려 하지 말라는 의미로 보였단다. 이 책의 지은이는 벵하민 라바투트라는 사람으로 요즘 아빠의 기억력으로는 이름 외우기는 포기해야겠구나. 네덜란드에서 태어나서 헤이그, 부에노스아이레스, 리마 등에서 자랐고, 지금은 칠레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구나.


1.

이 책은 하나의 장편인줄 알았는데, 실존했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런데 그 에피소드들이 완전 독립적이라기 보다는 가는 실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었어.

첫 번째 이야기는 독극물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프리츠 하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야기를 읽고 나면 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프리츠 하버는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죽인 염소 가스를 개발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이 사람은 한편으로 공기 중 질소를 추출해 내는 방법을 알아내어 식량 증식에 엄청난 기여를 하여 굶어 죽는 사람들 대거 줄이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는구나. 위대한 과학자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데 이 사람이 딱 그런 사람이로구나. 그런데 그가 죽기 전에 공기 중에서 질소를 추출한 것을 두고 죄책감을 느꼈다고 하는구나. 독가스로 사람 죽인 것 때문이 아니고 말이야이유는 자연의 평형을 깨뜨렸다는 이유로큰 그림을 본다고 해야 할까? 참 몰인정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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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프리츠 하버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몇 안되는 소지품 중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무지막지하게 교란하는 바람에 인류가 아니라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단 몇십 년 동안이라도 인구가 산업시대 이전으로 감소한다면 인류가 공급한 잉여 영양소 덕에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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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르츠실트라는 과학자가 있었어. 그는 과학자이지만,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군입대를 하게 된단다. 전쟁 와중에 그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보게 돼. 그리고 이 놀라운 방정식에 감탄을 하고, 즉시 그것에 대한 정확한 해를 구하게 된단다. 그리고 자신이 푼 일반상대성 방정식의 해를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로 보낸단다. 아인슈타인도 그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랬어. 자신이 발표한 지 한 달 밖에 안되었는데, 전쟁 중에 그 해를 풀어내다니슈바르츠실트의 해는 오류가 없어 보였어. 하지만 그의 해에 따르면 시공간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형성되는 것이 있었어.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은 블랙홀의 가능성을 주장했던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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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일반적인 항성의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예측대로 완만하게 휘어졌으며 항성 본체는 마치 해먹에 누운 두 아이처럼 함몰부 중앙에 떠 있었다. 문제는 거성이 연료를 다 써버려 붕괴하기 시작할 때처럼 너무 큰 질량이 매우 작은 면적에 집중될 때 일어났다. 슈바르츠실트의 계산에 따르면 그런 경우에는 시공간이 단지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찢어진다. 항성이 짜부라들어 밀도가 계속 커지다보면 중력이 너무 세지는 바람에 공간이 무한히 휘어져 스스로를 감싸고 만다. 그 결과는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영영 단절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심연이다.

사람들은 이를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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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슈바르츠실트는 온몸에 수포가 생기는 천포창으로 그만 죽고 말았단다.

….

수학이란 참 이상한 점도 있어. 두 수의 합의 일반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a+b=c 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를 해도, 이것을 증명한다니… a+b=c가 증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빠는 처음 알았단다. 아무튼 이것을 일본의 모치즈키 신이치라는 사람이 2012년 증명을 했다면서 블로그에 논문을 첨부 파일로 올렸다고 하는구나. 보통 이런 증명은 유명한 학술지에 발표를 할 텐데,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것부터 모치즈키라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구나. 아무튼 그가 올린 a+b=c를 증명하는 논문 때문에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고 하는구나. 그 논문이 맞냐 안 맞냐는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대. 그런데 모치즈키가 그 증명에 대한 강연을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강연을 취소하고 블로그에 오렸던 논문도 모두 삭제를 했대. 그가 이렇게 괴짜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는 모치즈키가 정신적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그로텐디크 때문일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로텐키트는 엄청난 수학 천체였는데, 평생 은둔하면서 수학만 연구했던 괴짜 수학자로 불렸거든아참, 그런데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모치즈키의 대학 시절을 이야기했는데, 그때 룸메이트로 김민형이 나오는데, 그 김민형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학자로 옥스퍼드대학교 수학과 교수를 역임했던 그 김민형 교수님 같았단다. 모치즈키도 수학자이고 김민형 교수님도 수학자이고 연배도 비슷해 보였거든. 그래서 김민형 교수님의 약력을 찾아봤더니 프린스턴 대학교를 나오시지는 않았네소설 속 허구인물인가?


2.

네 번째 이야기는 책의 제목과 같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란다. 이 부분이 아빠가 기대했던 양자역학에 얽힌 과학자들의 에피소드들이 담겨져 있었단다. 아빠가 그 전에 읽은 양자역학에 관련된 책들에서 대부분 나왔던 내용들이었단다. 특히, <퀀텀 스토리>에서 나왔던 내용들이 많이 나왔어. 마치 그 책의 일부분을 소설로 각색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하이젠베르크가 꽃가루 알레르기로 헬골란트 섬으로 요양 갔다가 그곳에서 행렬역학을 통해 양자역학을 증명한 이야기, 아인슈타인의 빛의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주장한 이야기, 아인슈타인의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프랑스 드 브로이 공작이 원자도 빛처럼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졌다고 하는 주장한 이야기, 드 브로이가 던진 이 아이디어에 번뜩 깨달음을 깨달아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을 파동함수로 정리한 이야기도 소개해준단다.

하이젠베르크는 같은 물리학자들도 어렵게 생각하는 행렬역학을 이용하여 양자역학을 설명하는데, 슈뢰딩거는 비교적 쉬운 파동함수로 설명을 하니, 하이젠베르크가 반발하기도 했지. 한동한 패배감에 빠져 안 먹던 술도 먹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양자역학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제5회 솔베이 회의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단다. 5회 솔베이 회의에서 하이라이트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보어를 중심으로 한 코펜하겐 학파와 아인슈타인의 논쟁이었단다. 그 이야기도 소설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어.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되는데, 이는 아인슈타인이 이 논쟁에서 졌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이 책에 나온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알고 있던 내용이었으나, 이렇게 소설로 읽으니 생생함이 더 느껴지기도 하는구나. 이 소설에서도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이야기하며, 양자역학은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떨어진 이론이라고까지 이야기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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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전 세계를 장악한 스마트폰 뒤에는, 인터넷 뒤에는, 신과 같은 연산 능력이라는 가슴 벅찬 약속 뒤에는 양자역학이 있다. 양자역학은 우리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줄 알며 양자역학은 마치 신기한 기적처럼 작동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 우리의 정신은 양자역학의 역설과 모순을 감당할 수 없다. 양자역학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떨어진 이론 같아서 우리는 유인원처럼 그 주위를 뛰어다니고 만지작거리고 노리개로 쓸 뿐 결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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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는 앞서 모치즈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왔던 그로텐디크를 연구했다가 그의 연구가 너무나 뛰어남을 알고 자신을 연구를 접은 한 정원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마치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구나.

과학과 소설이 만난 듯한 이런 소설을 아빠가 좋아하는 모양이다. 예전에 읽은 <클링조르를 찾아서>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좋았단다. 이런 장르의 책들이 또 있는지 함 검색해봐야겠구나. 아빠가 가끔 유튜브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동영상을 보면, 너희들도 같이 보곤 해서 아빠가 설명을 좀 해주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구나. 앞으로는 그냥 같이 영상을 보자꾸나. ㅎㅎ


PS:

책의 첫 문장: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전날 밤 건강진단에서 의사들은 나치 지도차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발견했다.

책의 끝 문장: 하지만, 정말이지, 누가 그러고 싶겠는가?


나치가 강제 수용소에서 사용한 독가스의 전신인 치클론A는 수십 년 전 캘리포니아 오렌지 살충제로 뿌려졌으며 멕시코인 수만 명이 미국에 밀입국하려고 몰래 탑승한 기차의 이를 구제하는 데 쓰였다. 객차의 나무판은 고운 파란색으로 물들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아우슈비츠의 벽돌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색깔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시안화물의 진짜 기원은 1782년에 최초의 현대적 합성 안료 프러시안블루에서 분리된 부산물이다. - P16

이 새로운 파동역학의 중요성을 감히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은 빌라 헤어비히 요양원에서 슈뢰딩거의 골머리를 썩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파동 함수가 실재에 대해 실제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 중 하나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썼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론이다. 인류가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하고 우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뭔가 기이한 구석이 있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는 듯하다.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내가 보여주는 세상은 당신이 나를 적용하명서 생각하는 세상과 같지 않다고." 슈뢰딩거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개념을 설명하는 일에 열중했으며 어딜 가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 P200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새 개념을 뒷받침하는 수학적 근거를 적어둔 종이를 꺼내 건네자 보어는 눈밭에 앉아 읽었다. 하이젠베르크에게 영원처럼 느껴진 시간 동안 보어는 말없이 계산을 검토했으며, 다 끝나자 일어나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추위를 떨치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보어는 이것이 실험적 한계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냐고,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대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물질 자체에 관계된 것이고,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어떤 현상이 완벽하게 정의된 특징들을 한꺼번에 가질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애초 직관은 옳았다. 양자의 실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양자계를 기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림도 은유도 아니라 숫자의 집합이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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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6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이 책 읽다가 포기했거든요. 진짜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북홀릭님 리뷰를 보니까 다시 읽으면 왠지 알아들을거 같은 느낌이 막 드네요. 이 책을 읽기에 좋은 길잡이 리뷰입니다. ^^

bookholic 2023-02-18 00:38   좋아요 1 | URL
최근 들은 칭찬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칭찬입니다...^^
책과 함께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소설Q
박서련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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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쾌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제목을 가진 소설을 하나 읽었단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지은이는 박서련이라는 분인데, 아빠가 박서련 님의 책은 <체공녀 강주룡> <더 셜리 클럽>이라는 책과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을 하나 읽었단다. 다 괜찮게 읽어서, 인터넷 서점에서 박서련 님의 책을 보게 되면 관심을 갖게 되더구나. 이번에 읽은 책도 그렇게 살펴보던 책인데, 제목 마저 독특하고 재미있어 보여서 읽고 싶었고, 너희들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샀단다.

소설에는 실제 마법소녀, 아니 마법소녀들이 나온단다. 자신의 신분을 숨겨서 보통 사람들이 모르고 그런 마법소녀들이 아니고, 보통 사람들도 이 세상에 마법소녀들의 존재들을 알고 있었어. 마법소녀라고 하면 아빠는 어렸을 때 TV에서 본 마법소녀 밍키가 가장 먼저 떠오르더구나. 세대별로 자신들이 어렸을 때 TV 만화에서 본 마법소녀들이 적어도 하나는 있지 않을까 싶구나. 좀 많이 유명했던 세일러 문도 마법소녀들이고지은이는 그런 TV 만화 속 마법 소녀들한테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하더구나. 너희들이 알고 있는 마법 소녀들은 누가 있으려나…^^ 헤르미온느?


1.

주인공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아. ‘라는 화자가 이야기하는 일인칭 관점이라서 말이야. ‘ 29. 어렸을 때부터 시곗방을 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살게 되었어. 그런데 코로나가 닥치면서 일자리를 잃어 백수가 되었고 빚만 늘게 되었어.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는 다리 위에서 자살을 하려고 했단다. 그 때 그곳에 운명처럼 나타난 아로아라는 마법소녀. 아참, 이 소설의 소녀라고 해서 나이가 어린 소녀로 생각하면 안 된다. ‘마법소녀는 하나의 직업? 직책? 이런 걸로 생각하면 된단다. 마법사처럼 말이야. 그럼 마법소년은 없냐고? 그래이 소설 속 세상에는 마법소년은 안타깝게도 없단다.

아로아는 예언의 마법소녀인데, 마법소녀들의 간사도 맡고 있다고 했어. 그러면서, ‘가 시간의 마법소녀이며, 마법소녀들 중에 가장 막강한 마법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마법소녀라고? 아로아는 그러면서 전국마법소녀협회, 줄여서 전마협에 를 데리고 갔단다. 그곳에서 공간의 마법소녀, 행원의 마법소녀 등 많은 마법소녀들을 만났어. 그들은 테러도 막아내는 등 마치 히어로물 영화 속 히어로들처럼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출하기도 했어. 마법소녀들이 최근에 관심이 많은 것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단다. 정말 마법소녀들이 있다면 기후위기의 해법도 찾아낼 수 있을까?

….

예언의 마법소녀 아로아가 가 마법소녀라고는 했지만, 아직 마법을 각성하지는 못했어. 마구, 그러니까 마법도구를 받고 마법이 각성되도록 노력을 해야 했어. 아로아의 도움을 받아 노력했지만, 마법의 각성은 쉽게 되는 것은 아니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아로아가 실망의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했어. 자신의 예언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는데, 처음 틀렸다고.. 시간의 마법소녀는 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러면서 실제 시간의 마법소녀를 찾으러 가보겠다고 했어.


2.

뭐야, 그럼 는 마법소녀가 아니고 보통 사람인가? 그건 아니고 마법소녀이긴 한데, 어떤 능력을 가진 마법소녀인지 모르는 거야. 마법이 각성이 될 때까지 는 보통 사람처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평범하게 살기로 했어. 그러던 어느날 아로아가 다시 찾아왔어. 시간의 마법소녀를 만나긴 했는데, 그 시간의 마법소녀가 자신의 능력을 나쁜 곳에 쓰고 있다고 했어. 그러니까 빌런이었던 거지. 마법소녀들은 비상이 걸렸어. 모든 마법소녀들이 모여서 시간의 마법소녀를 처치하려고 했지. 마법소녀들은 각기 능력을 적재적소에 사용을 해서 시간의 마법소녀를 잡아왔단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거처럼 시간의 마법소녀는 최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잖아. 모든 마법소녀들의 시간을 멈추는 마법을 사용해서 마법소녀들은 모두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지. 하지만, 시간의 마법소녀가 실수를 한 것이 하나 있어. 마법소녀들의 시간만 멈추라고 했는데, 그곳에 아직 각성을 하지 않아 마법소녀가 되지 못한 주인공 가 있었지. ‘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있다가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어. 그 순간 하필 그 순간 마법의 각성이 일어나려고 했어. 마구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지.

시간의 마법소녀도 그것을 보고 한테 왔어.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자신이 무슨 능력이 있는 줄도 모르고 는 그냥 시간의 마법소녀의 능력이 사라져달라고 빌었어. 그러자 실제로 시간의 마법소녀의 마법능력은 사라지고 말았단다. 그래서 다른 마법소녀들의 시간도 되찾고, 시간의 마법소녀를 제압할 수 있었단다. 도대체 는 어떤 마법 능력이 있었던 걸까? 이것까지 다 이야기해주면 완전 스포일러인데….

그건 나중에 너희들이 읽어보고 알 수 있기를그 능력을 알게 되면 왜 주인공이 마법소녀를 은퇴하려고 하는지 알게 될 거야. 실제로 이 세상에 마법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있으면 어떨까? 실제로 지구의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좋은 일들만 하면 좋겠지만, 소설 속 시간의 마법소녀처럼 나쁜 곳에 마법을 쓴 이들이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구나. 보통 사람들도 이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도 많은데, 마법까지 갖춘 이가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면 안되겠지.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단다. 마법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야.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가능한 한 폐 안 끼치고 죽는 방법이 없을까?

책의 끝 문장: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 꿈에 대해 말하는 건 아주 오랜만이라는 걸 나는 조금 뒤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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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3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3-03-17 23:18   좋아요 1 | URL
답글이 늦었네요..^^
서니데이 님, 늘 축하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곧 주말인데, 즐거운 주말되시고요...^^
 
한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5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 11월초 단풍 구경도 할 겸 역사 탐방도 할 겸 경주 여행을 계획했잖아. 그런데 여행 며칠 앞두고 우리 집에 코로나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다 취소됐지. 그리고 회복을 나서, 좀 춥지만 경주에 가기로 했잖니. 몇 달 전에 부여로 백제 역사 탐방 다녀오고 이번에는 경주로 신라 역사 탐방 다녀오고너희들에게 신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오래 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한 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을 찾아 읽었단다. 경주가 가기 전에 다 읽었으면 너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을 텐데, 절반 정도만 읽고 말았지. 여행을 다녀오고 나머지를 다 읽었고

신라의 역사는 거의 천 년 동안 이어졌단다. 우리나라에 있었던 나라 중에 고조선을 빼면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야. 그렇다 보니 왕도 56명이나 된단다. 그걸 한 권의 책으로 엮었으니 상당히 축약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라를 비롯한 삼국 시대의 역사 기록이 많지 않았어. 그래서 몇몇 사건들은 지은이의 합리적인 추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그런 걸 감안하고 신라의 역사를 들여다 봐야겠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통일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단다. 하지만, 당시 신라도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칠 밖에 없던 상황이었단다. 그리고 당시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던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적국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삼국 통일은 당시 신라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구나.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신라의 전성기가 오기 전에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시대에 통일을 못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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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하지만 신라의 입장에서 헤아려 본다면 생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경상도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 신라가 북쪽의 강대한 세력인 고구려와 최대의 라이벌 백제, 끊임없이 침략을 자행하는 왜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시엔 지금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를 민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던 시대가 아니었음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 별개의 나라로 오직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지상과제였고, 신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신라가 백제의 땅을 지키지 못하고 신라 땅마저 당나라에 병합됐더라면,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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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는 어떤 사람들이 세운 나라일까. 신라는 박혁거세가 세운 나라라고는 하지만, 백성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중국 연나라 유민과 고조선 유민들이 진나라에 쫓겨 남쪽으로 내려와서 지금의 경상도 지역의 진한의 한 부족국가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들이 신라의 시작이라고 보면 될 것 같구나. 당시 한반도에는 마한, 진한, 변한이 존립하고 있었는데, 마한이 가장 강력한 나라여서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이해하면 돼. 작은 부족 국가였던 신라가 세력을 점점 팽창하면서, 소위 마한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는데 그걸 주도한 이가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였단다. 기원전 57년부터 약 60년간 재위를 했다고 하는구나. 십대 나이에 재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재위 22년인 33살 때 서라벌에 금성을 쌓고 나라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대. 말년에는 반란이 일어나서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어.

2대왕은 박혁거세의 차남인 남해왕인데 20여 년 재위했단다. 낙랑군이 자주 침략하여 고생했는데, 이때 사위인 석탈해가 낙랑군을 격퇴하여 공을 세웠단다. 3대왕은 남해왕의 아들 유리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실제 재위 기간은 33년인데, 실제로는 초반 20년만 왕 역할을 하고, 나머지 14년은 석탈해가 집권했을 거라고 하는구나. 유리왕은 관직을 만들고 나라의 기틀을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권력의 추가 석탈해에게 넘어가 있었어. 유리왕부터 왕의 호칭을 이사금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 자국이라는 뜻이 담겼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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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3)

탈해는 훌륭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이가 많다고 하면서 떡을 깨물어 유리와 자기의 이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그 결과 유리의 이 수가 더 많자, 탈해는 자기의 측근들과 함께 유리를 받들었다. 그후로 이 자국이라는 뜻의 이사금을 왕호로 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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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왕은 석탈해란다. 신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왕을 지낸 성씨가 박씨, 석씨, 김씨 이렇게 셋이란다. 사이 좋게 번갈아 하면서 한번씩 한 것은 아니고, 우연찮게 성씨가 바뀌게 된 것이란다. 석탈해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2대 남해왕의 사위였고,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권력을 잡고 있는 실질적인 왕이었단다. 석탈해는 석씨 왕의 시조로 이 사람 또한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구나. 유리왕 20년때부터 정권을 잡은 석탈해는 이제 막 개국한 가야와 전쟁을 하기도 했고, 백제에서 요구한 조공을 거절해서 백제와도 전쟁을 벌였단다. 석탈해가 아들이 없고 김알지를 양자로 들였는데, 김알지라는 사람은 김씨 왕들의 시조가 되는 사람이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김알지 또한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구나. 김알지는 백제에 의해 망한 마한의 왕족으로 추정된다고 했어.

5대왕은 파사왕으로 3대 유리왕의 차남이란다. 비록 왕위에 올랐지만, 권력은 김알지계와 석탈해계가 잡고 있었대. 파사왕의 왕비는 김알지의 손녀라고 하는구나. 6대왕은 지마왕으로 말갈의 외부 공격을 잘 막아내고 안정을 찾았지만, 지진, 가뭄, 메뚜기 떼 등 자연재해가 잦았대. 이런 자연재해는 지마왕 때뿐만 아니라 신라 역사에 걸쳐서 빈번하게 발생했단다. 최근에는 없는 우박, 메뚜기 떼 등의 피해가 많았다는 기록이 있구나.. 7대왕은 일성왕으로 유리왕이 말년에 낳은 아들이란다. 태자이긴 했지만 유리왕이 죽었을 때 너무 어리고 석탈해가 막강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왜국으로 망명을 갔다가 지마왕이 후세 없이 죽게 되자, 신하들의 추대로 80살이 거의 다 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왕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8대왕은 아달라왕으로 반란군에 위해 죽고 마는데, 충격적인 것은 반란군의 주동자 중에 왕비인 내례부인 박씨(지마왕의 딸)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내례 부인 박씨는 9대왕이 되는 벌휴왕의 차남인 이매라는 사람과 불륜 사이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달라왕이 이매를 살해앴단다. 이런 사유로 내례 부인도 반란에 참여했던 것 같구나. 9대왕은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벌휴왕이란다. 벌휴왕은 석탈해의 후손으로 석씨였어. 석탈해가 왕이 되었을 때는 왕의 사위로써 한시적으로 왕이 된 것인데, 벌휴왕은 반란으로 왕이 되었으니, 벌휴왕부터는 석씨들이 왕위를 물려받아 약 172년간 이어진다고 하는구나.(184~356) 벌휴왕이 왕이 된 것도 다 내례 부인이 관여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10대왕은 내례부인과 이매 사이에서 태어난 내해왕이었단다. 11대왕 조분왕, 12대왕 첨해왕으로 이어진단다.


2.

김알지가 김씨 왕의 시조라고 했는데, 아직 김씨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단다. 그러니까 김알지는 김씨 왕들의 시조이지만, 왕은 아니었던 거야. 성씨 3개가 신라의 왕위를 차지했지만, 삼국 통일 및 통일 신라를 열고 전성기를 누렸던 것은 모두 김씨 왕들이란다. 그 김씨 왕들의 첫 번째 왕이 바로 13대 미추왕이란다. 12대왕 첨해왕이 급사하고 신라들의 추대로 미추왕이 왕이 되었는데, 미추왕은 김알지의 6대손이란다. 261년부터 284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하는구나.

14대왕 유례왕은 다시 석씨가 되었는데, 유례왕은 11대왕 조분왕의 아들이자, 13대 미추왕의 사위일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하는구나. 백제와 왜와 대립이 점점 심해지던 시기였대. 15대왕 기림왕은 조분왕의 차남이란다. 탈해왕부터 쓰던 계림이라는 나라이름을 원래 이름이던 신라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16대왕 흘해왕은 내해왕의 후손으로 10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대. 왜와 사이가 안 좋아지고 백제와 화친을 맺는 외교 정책을 펼쳤고 약 45년간 재위를 했지만 후세를 남기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16대 흘해왕으로 석씨 왕조가 끝나고 17대왕 내물왕이 김씨 왕조를 다시 한번 열게 된단다. 역사의 기록에는 13대 미추왕의 사위로 기록되어 있지만, 연대가 맞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내물왕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는구나. 그런 내물왕이 어떻게 왕위에 올랐을까? 당시 흘해왕의  석씨 세력과 김씨 세력의 알력 다툼이 있었고, 김씨 세력이 그 싸움에서 승리를 해서 김씨인 내물왕이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는구나. 내물왕은 교과서에도 나와서 익숙한 왕이로구나. 내물왕이 집권할 당시 백제는 근초고왕이 전성기를 다지면서 고구려 고국원왕과 한판 싸우고 있던 시기였단다. 내물왕은 백제와 고구려의 전쟁을 주시했어. 하지만 왜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고구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왜를 몰아냈단다. 그 이후 고구려에 조공을 받치는 신세가 되었지만 말이야. 내물왕부터 왕의 호칭을 이사금이 아닌 마립간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18대왕은 실성왕으로 내물왕의 사촌동생이라고 하는구나. 내물왕의 아들이 너무 어려서 사촌동생이 왕위에 올랐대. 실성왕은 왕이 되기 전에 고구려와 전투에 참여했다가 인질로 잡혀있다가 귀국했대. 왕이 되자 내물왕의 아들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어. 그래서 내물왕의 아들이 자라자 그를 고구려 인질로 보내서 죽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내물왕의 아들이 실성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19대왕 눌지왕이란다. 눌지왕은 41년간 재위했는데, 이때 국제 정세가 복잡했단다. 당시 장수왕이 집권 중인 고구려와 사이가 안 좋고, 왜의 노략질도 계속되었대. 내물왕 때 처음 사용하던 마립간이라는 호칭을 왕의 정식 명칭으로 정했다고 하는구나.

20대왕 자비왕은 눌지왕의 장남으로 왜나라가 계속 침략해와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국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단다. 그리고 가야금 명인 백결선생이 활약하던 시기가 이때라고 하는구나. 백결 선생이 이름이 백결인줄 알았는데 아니더구나. 본명은 박문량이고 신라의 문신 박제상의 막내아들이라고 하는구나. 박제상이라고 하면 <부도지>를 쓴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백결 선생의 아버지였구나. 21대왕 소지왕은 자비왕의 3남이고, 임기 내에 재해, 재난, 화재 등이 많았고, 왜의 침략도 끊이질 않아 민심을 많이 잃었다고 하는구나. 백제 동성왕과 협력하여 고구려군과 맞서 싸우기도 했다는구나.

22대왕 지증왕은 내물왕의 증손이란다. 왕비는 연제 부인인데 똥이 굵어서 왕비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단다. 지증왕은 이것저것 개혁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순장을 금지한 것이란다. 순장은 사람이 죽으면 하인들도 같이 묻는 잔인한 장례방법인데, 그것을 금지시켰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경작법으로 널리 알려 농사에 이롭게 했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에도 나오는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 복속을 한 것도 지증왕 때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아빠는 지금껏 이사부의 성이 이씨 인줄 알았는데, 이사부는 전체가 이름이고 성씨는 박씨라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박이사부.  지증왕 때부터 왕이 죽으면 왕에게 칭호를 붙여는 묘호를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구나. 23대왕은 지증왕의 장남인 법흥왕이란다. 이제 계속 교과서에서 많이 본 왕들이 나오고 있구나. 법흥왕은 514년부터 540년까지 재위를 했단다. 국가 기반을 확립하기 위한 개혁을 많이 했대. 신라의 최고 관직으로 알려진 상대등을 이때 처음 도입을 했어. 영토 확장도 활발히 했고, 가야도 병합을 했단다. 다음 왕인 진흥왕이 신라의 전성기를 열 준비를 해준 것이라고 볼 수 있어. 법흥왕이라는 왕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흥왕 때 불교를 공인했단다.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눌지왕 때 묵호자에 의해서이고, 불교의 공인은 법흥왕이고 그 공로로 묘호가 법흥왕이 된 것이란다. 법이 불교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뜻하는 것이든. 이차돈이 법흥왕에게 자신을 죽임으로써 불교 공인을 해달라 요청했고, 왕은 만류했으나 계속된 요청으로 아차돈을 처형했단다. 그리고 그의 목에서 흰 젖이 나오고 꽃 비가 내렸다는 전설이 있단다. 그런데 이차돈도 성씨가 이씨가 아니고 박씨라고 하는구나. 박이차돈.

24대왕은 신라왕 중에 가장 유명한 진흥왕. 이름은 삼맥종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처음 들어봤어. 법흥왕의 아우 김입종의 아들인데 7살에 왕위에 올랐다고 하는구나.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엄마인 지소태후가 섭정을 했는데, 지소태후는 법흥왕의 공주란다. 가족관계를 이야기하다 보면 친인척이 다 연루되는 되는 경우가 있는데, 신라는 성골 진골 등 골품제를 중시하면서 친인척간 결혼은 일상이었단다. 그런 점은 감안하고 신라 왕족의 가계도를 이해해야 한단다. 지소태후는 10여 년간 섭정을 하면서, 원화 제도와 선화제도라는 인재 양성 제도를 만들었단다. 원화의 장은 여자로 임명했대. 그런데 나중에 선화제도로 합쳐지고 이 선화제도가 화랑제도로 바뀌었다고 하는구나. 이 화랑에서 나온 인재들 중에 위인들이 많고, 이들이 삼국통일에 큰 업적을 세운 것을 보면 이때 원화제도와 선화제도를 만든 지소태후의 선견지명이 대단한 것 같구나. 청년이 된 진흥왕이 왕위에 오르고, 영토 확장에 힘써 함경도까지 영토를 확장하게 된단다. 그리고 자신이 차지한 땅에 순수비를 세웠는데, 북한산에 가보면 북한산 순수비를 볼 수 있단다. 진짜는 박물관에 있고, 모형물이지만 말이야. 진흥왕 순수비는 국보 3호로 지정되었단다. 신라의 전성기를 연 진흥왕은 안타깝게도 제법 이른 나이인 43살에 죽고 말았단다.

진흥왕의 아들 동륜이 태자였는데 행실이 좋지 않았대. 진흥왕의 애첩들을 사랑하게 된 동륜은, 진흥왕의 애첩 중에 한 명을 만나러 가던 도중 큰 개에 물려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또 다른 아들 금륜이 왕위에 올랐으니 25대왕 진지왕이란다.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지만 실제 권력을 잡은 이들은 사도부인 박씨와 미실이라는 여인이란다. 진지왕은 사도부인과 미실에 의해 왕위에 올랐는데, 여색에만 빠지자 2년 만에 사도부인과 미실에 의해 폐위 당하고 말았단다.

26대왕 진평왕은 진흥왕의 첫아들로 태자였던 동륜의 아들이고, 52년간 재위했단다. 그가 왕위에 있을 때 백제와 연개소문의 고구려 연합이 공격을 해왔어. 신라는 수나라에 도움을 요청을 했고, 수나라도 영토 확장의 욕심의 고구려의 뒤를 쳤단다. 하지만, 수나라는 고구려에 대패하고 물러나 결국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단다. 중국 땅에서는 그렇게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생겨났단다. 앞서 잠깐 소개되었던 미실이라는 사람은 진흥왕부터 진지왕을 거쳐 진평왕까지 약 40년 동안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를 했던 사람이란다. 왕들뿐만 아니라 왕족들과 잠자리도 같이 했지만, 미실에게 진정한 사랑은 사다함이라는 사람이었단다. 하지만 결혼은 왕족인 세종이라는 사람과 해야 했어. 사다함이 어린 나이에 일찍 죽고 나서, 미실은 색정과 권력의 화신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미실은 예전에 드마라와 소설에 소개되면서 더 많이 알려진 사람이란다. 인터넷이나 유뷰브에서 찾아보면 미실이라는 사람은 많은 자료가 있을 거야.

이 시절 화랑도 풍월주 중에 유명했던 한 사람을 한 명 소개해 줄게. 8대 풍월주 문노라는 사람인데, 아빠는 처음 들어본 사람인데, 많은 화랑으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신라 시대 개방된 성생활을 하는 중에도 문노는 윤궁이라는 사람에게 일편단심이었다고 하는구나.


3.

이제 27대왕 할 차례구나. 56대왕까지 있으니, 아직 반도 안 왔구나. 진평왕은 아들 없이 첫째 딸 천명 공주, 둘째 딸 덕만 공주만 낳았단다. 그럼 예전 같으면 사위에게 왕자리를 물려주기도 했는데, 진평왕은 자신의 딸들 중에서 둘째 딸 덕만 공주에서 왕위를 물려주었으니 그가 27대왕 선덕왕이란다. 아마 선덕왕의 남편 김용춘이라는 사람의 신분이 낮아서 그랬을 거야. 신라는 골품제로 신분을 무척 중요시 여겼으니까 말이야. 당시 여자가 왕위에 오르는 일은 주변국을 다 뒤져봐도 없던 일이란다. 당나라에서도 신라의 선덕왕을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지지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입지가 그리 탄탄하지는 않았겠구나. 그런데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김춘추였는데, 김춘추는 고구려와 당에 오가면서 이웃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했단다. 그리고 당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어. 그것이 나중에 삼국 통일의 기반이 되기도 했지. 28대왕은 진덕왕으로 진평왕 이복동생인 갈문왕의 딸이란다. 선덕왕이 죽고 나서 성골 중에 왕을 고르다 보니 이번에도 여자인 진덕왕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을 잡고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김춘추가 진덕왕을 밀어주었다고 하는구나.

진덕왕 통치가 끝나고, 29대왕은 김춘추가 결국 왕위에 올랐으니 태종무열왕이란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장남인 김용수의 장남이란다. 진평왕 때부터 정치에 참여하여 선덕왕, 진덕왕 때 이미 유명해졌고, 특이 외교관으로 많은 성과를 냈어. 그래서 진덕왕이 죽고 신하들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으니 그때 나이는 52세였단다. 김유신 장군이 이때 활약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 병합에 성공했단다. 하지만 완전히 궤멸시키지 못하고, 백제 부흥군들이 공격이 계속 있었어. 무열왕의 둘째 부인 문명부인은 김유신의 동생 문희인데, 무열왕이 김유신의 동생과 결혼하게 된 것은 김유신의 시나리오였단다. 가야 출신 김유신이 권력의 한 가운데 들어서기 위한 작전이었지.

30대왕 문무왕은 무열왕의 장남으로 20년간 재위를 했는데, 년도로 661년부터 681년이란다. 신라 삼국 통일이 몇 년? 너희들도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바로 676년이란다. 그러니까 문무왕이 재위하는 동안 삼국 통일의 대업이 이루어진 거지. 문무왕은 왕이 되기 전부터 통일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단다. 백제부흥군을 완전히 궤멸시켰고, 연개소문이 죽고 난 다음 내분에 휩싸인 고구려도 당나라와 연합하여 멸망시켰단다. 백제와 고구려가 망하자 당나라는 신라땅도 자신들이 먹으려 공격하였고, 신라가 이 공격을 잘 막아냈단다. 그래서 대동강 이남까지 신라의 영토가 되었단다. 그렇게 통일 신라 시대가 시작되었단다. 원효와 의상이라는 유명한 스님이 활동하던 것도 문무왕 때라고 하는구나. 그들이 절도 많이 지어서, 요즘도 절에 가보면 많은 절들이 이때 지은 것으로 적혀 있단다. 우리가 경주에 놀러 갔을 때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고 갔잖니. 조금 늦게 일어나서 아빠가 정신 없이 가느라 우리가 도착한 곳이 문무대왕릉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지 못했는데, Shawn이 문무대왕릉은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지? 바로 앞 바위를 보면서 말이야..ㅎㅎ 그게 문무대왕릉이었어. 우리는 문무대왕릉 사이에서 떠오른 해를 본 것이고


4.

, 이제부터는 통일 신라 시대의 이야기란다. 31대왕 신문왕은 통일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을 체제를 9 5소경으로 정비했단다. 김흠돌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김흠돌이라는 사람이 신문왕의 장인이면서 화랑도의 풍월주였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왜 난을 일으켰을까. 신문왕은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화랑도를 폐지했다고 하는구나. 화랑도의 풍월주가 난을 일으켰으니 화가 날만도 하겠구나. 그리고 당시 백제 유민과 고구려 유민들이 난을 일으키기도 했대. 다 진압당했지만… 32대왕은 신문왕의 장남인 효소왕이었고, 33대왕은 신문왕의 차남인 성덕왕인데, 성덕왕은 효소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구나. 신라의 이방원인가? 그런데 성덕왕이 재위하는 기간에 자연재해가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서 민심을 잃었다고 하는구나. 성덕왕은 업적보다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우리도 보고 온 성덕대왕신종으로 유명한 왕이란다.

34대왕은 성덕왕의 셋째아들 효성왕인데 5년이라는 짧은 기간 재위했고, 35대왕 경덕왕은 성덕왕의 넷째아들이란다. 경덕왕 때 통일된 지도 어느 정도 되었고 왕권도 어느 정도 강화되어 나라가 안팎으로 안정이 되었단다. 그래서 풍악을 즐기기도 했는데 이에 비판이 일자 또 신하들의 조언을 듣고 국정운영을 말년까지 잘 했다고 하는구나. 이 때 우리가 경주에 가서 본 월정교(비록 복원한 것이지만)도 이때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성덕대왕 신종도 이때 만들기 시작했대. 36대왕 혜공왕은 8살 때 왕위에 올라서 경수태후가 섭정을 했는데, 천재지변이 계속 일어나고 반란도 계속 일어났대. 그 반란 속에 스물세 살 어린 나이에 살해당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반란으로 왕이 된 이가 36대 선덕왕인데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많이 늙었을 때여서 재위기간은 5년뿐이었다고 하는구나.

38대왕 원성왕도 혜공왕을 죽인 쿠데타의 핵심 세력이었대. 선덕왕이 죽고 추대로 왕위에 올랐고 상대등 출신이었다고 하는구나. 이때도 가뭄, 흉년, 메뚜기 떼 등 자연재해가 많았대. 39대왕은 원성왕의 장남 소성왕이고, 40대왕은 소성왕의 장남 애장왕이란다. 애장왕이 어린 나이인 13살에 왕위에 올랐어. 처음에는 섭정을 했지만 나이를 먹고 친정을 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해 나갔어. 그런데 소성왕의 이복동생, 그러니까 애장왕의 삼촌인 언승이 조카들의 쿠데타를 일으켰고, 애장왕을 죽여버렸단다. 음 신라의 수양대군이구나. 그렇게 헌승이 왕위에 올랐으니 41대왕 헌덕왕이란다. 헌덕왕은 17 3개월간 재위를 하고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니 42대왕 흥덕왕이란다. 흥덕왕도 애장왕 반란에 참여를 했던 사람이란다. 흥덕왕이 재위하던 때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활약하던 시기였단다.

43대왕 희강왕은 원성왕의 손자의 아들로 희강왕 또한 애장왕 반란에 참여했었단다. 그런데 희강왕도 측근의 반란에 쫓기다 자살로 삶을 마감했단다. 희강왕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반란을 주모자가 44대왕 민애왕이란다. 희강왕이 반란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명이란 장군은 장보고와 함께 청해진 군대를 이끌고 와서 민애왕을 공격하여 죽였단다. 그리고 김명은 신무왕을 왕위에 세웠으니 그가 45대왕이었단다. 하지만 병중으로 6개월만에 죽고 말았단다. 46대왕은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인데, 장보고와 약속하기를 장보고의 딸과 결혼하기로 약속했는데 이를 어겼단다. 그러자 장보고가 발끈하여 경주를 공격해오려고 했는데, 장보고를 두려워한 문성왕은 염장이라는 사람을 이용해서 장보고를 죽였단다. 신라의 해상을 주름잡던 장보고의 죽음은 개인뿐만 아니라 신라에게도 큰 손실이었단다.

47대왕은 원성왕의 증손자인 헌안왕이고, 48대왕은 헌안왕의 사위인 경문왕이란다. 경문왕 때는 반란도 많고, 재해도 많아 백성들이 힘들었는데, 거기에 황룡사대탑(구층 목탑) 공사로 백성들을 부역까지 시키니 불만이 치솟았단다. 49대왕 헌강왕은 오랜만에 덕치를 행해서 태평성대를 이룬 시기라고 하는구나. 하지만 재위 10년째인 이십 대 어린 나에게 그만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50대왕은 경문왕의 차남인 정강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정강왕도 1년만에 병으로 죽고 말았단다. 자식 없이 죽게 되자, 51대왕은 여동생인 진성왕이 재위했단다. 진성왕은 이름을 좀 기억하면 좋은데 그 이유는 진성왕 때 신라가 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진성왕은 색욕에 빠져 국정은 뒷전이었고, 그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반란군이 일어났단다. 이를 답답하게 본 최치원이 시무십조를 쓴 것도 이 때였단다. 왕권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지방호족 세력들이 점점 커졌어. 호족들이 군대를 갖고 있었는데 그들도 세력 확장을 하면서 전투를 일으켰단다. 이때 후백제를 세우는 견훤, 후고구려의 전신인 태봉을 세우는 궁예도 이때 성장했단다. 이때 신라의 왕이 진성왕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진성왕이 죽고 헌강왕의 서자가 왕위에 올랐으니 52대왕 효공왕이란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신라의 국력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약해진 때였단다. 궁예와 견훤이 서로 전쟁하면 세력을 키워나갔지. 효공왕도 여색과 술에 빠져 지냈고, 박씨 세력의 신하들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추정하였어. 효공왕이 죽고, 김씨가 아닌 박씨인 박경휘가 왕이 되었으니 그가 53대왕 신덕왕이란다. 이후 박씨 왕들이 이어지게 된단다. 54대왕은 신덕왕의 아들 경명왕, 55대왕은 경명왕의 동생인 경애왕이었어. 하지만 신라를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었고, 나라는 엉망이 되어버렸단다. 견훤과 한 축을 이루고 있던 궁예는 왕건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고 왕건이 고려라는 나라를 세웠단다. 때는 918년이었어. 경명왕은 고려와 화친하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병으로 일찍 죽었어. 경애왕도 신라를 연명하는 방법으로 고려와 화친하는 수밖에 없었어. 백제의 견훤 부대가 공격해 들어왔어. 경애왕은 고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고려는 늦게 도착을 했단다. 그 사이에 경애왕은 도망 중에 자살을 하고 말았단다.

견훤이 경주를 차지하고 경애왕의 외종제 김부를 왕위에 세웠으니, 신라의 마지막 왕인 56대왕 경순왕이었단다. 마지막 다시 김씨 왕이란다. 견훤도 신라와 전투에서 이겨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지만, 후계자 문제로 아들 신검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쫓겨나고 말았단다. 견훤은 고려에 투항을 했어. 경순왕도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자신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고려에 투항했단다. 그렇게 1000년 역사의 신라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망하게 되었단다. 935 11월이었단다. 투항한 경순왕은 극진대우를 받으며 삶을 마감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이 투항을 반대한 이가 있었으니 신라의 마지막 태자였단다. 그는 나라 잃은 슬픔을 개골산에 들어가 불편한 삼베옷을 입고 지냈다고 해서 마의태자로 후세에 알려졌단다. 견훤을 몰아낸 신검도 결국 왕건과 전투에서 지고 후백제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한반도는 다시 고려라는 나라로 통일이 되었단다.

, 여기까지가 아빠가 읽은 <한 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이란다. 역사라는 것이 역사가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어.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단다. 특히 역사기록이 부실한 고대 역사는 더욱 그래. 그러니까 이 책의 내용도 너희들이 교과서에 배우는 내용이나 다른 역사책의 내용과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단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그 책을 쓴 지은이의 역사관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오늘 길고 긴 독서편지를 마치마. 그런데 Shawn이 이야기한 것처럼 고구려 역사 탐방은 어디로 가야 하지?


PS:

책의 첫 문장: 신라인들이 중국 대륙에서 흘러든 종족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책의 끝 문장: 그래서 마의 태자라는 별호가 붙었다.


이렇게 볼 때, 신라 왕조는 시조 혁거세왕부터 제 8대 아달라왕까지 240년 동안은 박씨의 시대, 제9대 벌휴왕부터 제16대 흘해왕까지 172년 동안은 석씨의 시대, 제17대 내물왕부터 제52대 효공왕까지 556년 동안은 김씨의 시대, 그리고 멸망기 해당하는 제53대 신덕왕부터 제55대 경애왕까지 15년 동안은 다시 박씨의 시대로 구분될 수 있다.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후백제 왕 견훤이 세운 왕이었으므로, 이때는 이미 신라의 왕권이 무너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 P73

눌지왕 대에 이르러 왕에 대한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麻立干)으로 변경되었다. 김대문에 따르면 마립이란 말뚝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직위에 따라 놓는 것이니 조선 시대의 품석(品石, 품계를 새겨 나열한 돌)과 같은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조선의 품석은 임금의 것이 없지만, 신라의 마립엔 임금의 것도 있다는 점이다. 즉, 신라 조정에는 왕의 마립의 최상석 한가운데 있고, 그 아래로 신하들의 마립이 나열되어 있는 형태였다. 따라서 마립간이란 마립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곧 임금을 의미했다. - P215

김대문은 <화랑세기>에서 ‘어진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가 화랑도에서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또한 이에서 생겼다’고 했다. 김대문이 <화랑세기>에서 거론한 풍월주는 총 32명이다. 그는 이 시기의 화랑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화랑도 출신이 많았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김유신이 화랑의 제15세 풍월주이고,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제18세 풍월주였으며,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이 제13세 풍월주였다. 또한 가야 정벌의 영웅 사다함이 제5세 풍월주였고, 화랑 중의 화랑으로 이름을 날린 문노가 제8세 풍월주였다. 그 외에도 일일이 이름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수가 화랑도 출신이었다. 김대문의 말대로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말엽까지 신라 사회를 떠받친 인물들은 모두 화랑도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288

선덕왕이 647년 정월에 일어난 비담의 난 중에 죽자 그 와중에 승만이 왕위에 올랐는데, 왜 그녀가 왕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당시 성골로서 왕위를 이을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성골 여자인 승만이 왕이 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성골이라는 신분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어 이 또한 왕으로. 무열왕부터 경순왕까지를 진골 왕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여 이 기록의 진의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진덕왕의 즉위를 성골과 진골의 구분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선덕왕의 영험한 지혜를 믿던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 실권자 김춘추가 난국 타개를 목적으로 그녀를 왕위에 앉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P340

스물이 갓 넘은 나이에 대군을 일으켜 나라를 세운 점으로 봐서, 견훤은 꿈이 원대하고 용맹이 뛰어났으며 항상 미래를 계획하는 성품을 지닌 장부였다. 또한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는 것으로 봐서 임기응변에 능하고, 적을 칠 때는 먼저 적을 안심시킨 다음 치는 것으로 봐서 다소 음흉하여 그 속내를 읽기 힘든 면에 있었으며, 빠른 시일 안에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형성한 점으로 미뤄 과단성 있고 남다른 주변 장악력을 소유했던 게 분명하다. 또 자기 손으로 열었던 후삼국 시대를 스스로 끝내는, 그래서 왕건에게 통일이라는 대업을 선물로 안기는 영웅의 면모를 가졌던 인물이었다. - P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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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프렌즈 2 - 노희경 원작 소설
이성숙.노을 소설구성, 노희경 원작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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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지난 번에 이어서 <디어 마이 프렌즈> 2 권을 이야기해줄게. 2권도 1권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이야기가 이어진단다. 1권 마지막 부분에서 박완과 엄마 난희는 옛일을 끄집어내서 대판 싸웠잖아. 그렇게 대판 속 시원하게 싸우고 나서는 다시 예전에 엄마와 딸 사이로 돌아갔단다.

박완은 3년 만에 슬로베니아에 연하를 만나러 갔단다. 사실 그 동안 보고 싶었던 것을 참았던 것 같았어. 연하가 다리를 다치고 나서 엄마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건 박완의 마음과 달랐던 것이지. 다시 만난 박완과 연하는 며칠 동안 원 없이 사랑을 했단다. 그리고 박완은 기획하고 있는 소설을 한 편 쓰고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짧은 만남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단다.

정아 이모는 석균 아저씨와 헤어져 집에서 나오기로 한 마음을 결국 실천에 옮겼단다. 친구들도 적극 지지해주어. 희자 이모가 이왕 집에서 나와서 살 거면 자신과 같이 지내자고 했으나, 정아는 오롯이 혼자 지내겠다고 해서 희자 이모가 살짝 삐치기도 했지만 말이야. 성깔머리 더러운 석균 아저씨도 정아 이모 없이 혼자 지내다 보니 정아 이모의 빈자리를 깨달은 것 같았어. 처음에는 딸들과 이웃들에게 전화해서 밥 차려 달라 큰 소리 치곤 했지만 결국에는 정아 이모를 찾아왔단다. 석균 아저씨가 잘 해준다고 했지만, 혼자 사는 즐거움을 알게 된 정아 이모는 단호했단다.


1.

어느날 복통이 심한 충남 이모는 맹장 수술을 받게 되었어. 그렇게 자신이 아플 때 충남 이모를 찾는 것은 동문 이모들뿐이었어. 새삼 그들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느꼈지.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충남 이모와 희자 이모 사이에 성재 아저씨가 오묘한 삼각관계에 있다가 충남 이모가 쿨하게 양보했다고 했단다. 성재 아저씨는 희자 이모와 여행을 가기도 했는데, 사실 성재 아저씨는 젊었을 때 희자 이모를 좋아했단다. 어쩌면 젊었을 때 잘 되어서 결혼했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인연이라는 것이 자신의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그랬던 인연이 수십 년 지나서 다시 이어진다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단다.

성재 아저씨는 따뜻한 만남에 행복하셨을 것 같구나. 하지만 희자 이모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기 시작했어. 1권에서 아빠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병원에서 망상장애에 초기 치매 증상이 있다고 했었거든. 그런데 2권에서 그 증상이 심해졌어. 밤마다 외출을 하면서 자신이 기억도 하지 못했어. 그리고 어느 날은 실종이 되어서 친구들과 아들 민호가 찾아 나서 간신히 찾아냈단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정말 멀쩡한 사람처럼 괜찮아졌어. 성재 아저씨가 가장 마음이 아팠겠구나. 성재 아저씨는 이후 지극 정성으로 희자 이모를 챙겨주었단다.

노인이 되면 여러 가지 병이 찾아오게 된단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찾아오는 병을 슬기롭게 잘 이겨내야지. 하지만 치매는 정말 너무 무서운 병이란다. 아직 치매를 완치시킬 수 있는 의료기술이 없는 것으로 알고 싶어.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는데, 내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병이니 본인이 가장 가슴 아프고 슬플 것 같구나.

….


2.

그런데 희자 이모의 치매보다 더 큰 일이 났단다. 박완의 엄마 난희가 어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자신도 건강 검진도 했는데, 간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어. 그것도 어느 정도 진전이 되어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암 또한 어르신들이 겪을 수 있는 무서운 경험 중에 하나란다. 난희는 한 동안 멍한 상태였어. 오늘부터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을 거야. 오랜만에 딸 박완과 여행도 다녀왔어.

처음에는 숨기려고 했지만, 다들 알게 되었고 친구들은 모두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었단다. 특히, 영원 이모가 각별했단다. 영원 이모도 암을 먼저 겪은 경험이 있었고, 오랫동안 앙숙 관계를 청산하고 다시 친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난희는 자신이 아프다 보니 박완과 장애인이 된 연하 사이의 사랑도 인정해 주었단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할까?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개복을 해보니 암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했어. 그래도 다행이구나.

난희의 퇴원을 기념하여 엄마, 할머니, 이모들, 삼촌들은 여행을 계획한단다. 멋진 캠핑카도 하나 빌려서 여행을 떠나게 된단다. 가끔은 박완도 동행하면서…. 그렇게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장식들을 하시는 거지. 소설은 그렇게 마무리를 했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소설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소설로 옮긴 것이라서, 소설을 읽었지만 드라마를 전편 본 것 같구나. 그리고 실제로 한번 보고 싶기도 하구나. 16편이나 되어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 같지만


PS:

책의 첫 문장: “왜 나 죽이려 그랬어? 들판에서…”

책의 끝 문장: ‘Bravo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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