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마신 소녀 - 2017년 뉴베리 수상작
켈리 반힐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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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소설은 겉표지가 예뻐서 눈 여겨 본 책이란다. 겉모습에 혹하면 안 되는데….^^ 아빠는 유달리 예쁜 책표지에 관심이 가더구나. 아빠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책 디자인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지^^ 그래서 알아본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원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재미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읽는 아빠와 같은 어른이 읽어도 나쁘지 않아. 이 책은 너희들이 조금만 더 크면 읽어도 되겠다 싶더구나.

달빛 마신 소녀. 은유적인 표현인줄 알았는데, 소설 속 주인공이 실제로 달빛을 마시고 마법사가 되었단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그런 일이 일어난 다음에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해줄게.

1.

잰이라고 하는 마녀와 글럭이라고 하는 괴물과 피리언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용이 함께 살고 있는 숲이 있었어. 그리고 숲 한쪽 끝에는 보호령을 받는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 반대편 숲 끝에는 자유도시가 있었어. 그런데 언젠가부터 보호령 쪽 숲 속 빈터에 해마다 아기가 버려졌어. 잰은 그 불쌍한 아기를 데려다 숲 반대편의 자유도시에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부부에게 전해주었어. 그 날은 자유도시의 축제의 날이 되었단다. 그리고 그 아기들은 모두 자유도시에서 행복하게 잘 자라났단다.

올해도 잰은 버려진 아기를 데리고 가는데아기가 너무 예쁜 거라자유도시 가는 길을 자꾸 멀리서 돌아가고아기가 울면 별빛을 모아 먹이곤 했는데, 별빛을 먹인다는 것을 실수로 달빛을 먹이게 되었어. 어쩌면 고의였을지도 몰라^^ 달빛을 먹인 것이 왜 실수냐 하면 달빛을 먹게 되면 마법사가 되거든

아기가 마법사가 되어버려서, 자유도시에 데려다 주지 못하고, 잰이 직접 데리고 와서 키우게 되었어. 그리고 그 아기에게 루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괴물 글럭과 피리언도 루나를 무척 좋아했단다.

다섯 살이 된 루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법을 쓰게 되었어. 다섯 살인 아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 거야. 그리고 얼마나 천방지축인지는 아기를 키워본 부모라면 다 알 거야^^. 그렇다 보니 루나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게 자꾸 마법을 쓰게 되었어. 이에 잰은 루나의 마법을 몸 속에 가둬두었다가 루나가 13살이 되면 나올 수 있도록 마법을 썼어.

그런데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어. 그 마법으로 인해 잰의 마법은 점점 줄어들고, 결국 루나가 13살이 되면 잰은 죽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마법이었어. 그런데도 잰은 그런 마법을 썼어. 그만큼 루나를 사랑했던 것이지. 그 이후 루나는 평범한 소녀처럼 자라났단다. 부작용이 하나 있긴 했어. 루나의 기억력이 자꾸 왔다갔다는 하는 것이었어.  

2.

보호령 사람들은 장로들이 이끌어 갔는데, 그 중에 대장로는 걸랜드라는 사람이었고, 걸랜드는 조카인 앤테인을 처음으로 장로회에 포함시켰어. 앤테인은 견습장로가 되었지. 보호령 사람들은 해마다 숲 속의 마녀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쳤어. (아까 이야기했듯이 숲 속의 마녀는 아이를 버려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대부분 부모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앤테인이 처음 견습장로가 된 해의 제물로 바칠 아이의 부모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어. 어쩔 수 없이 장로들이 강제로 아이를 데려갔어. 앤테인도 따라 숲 속에 갔는데, 숲 속에 빈터에 아이를 그냥 두고 오는 것을 보고, 마녀가 오기 전에 짐승이 물어 가면 어쩌냐고, 마녀가 안전하게 데리고 가는 것을 확인하자고 가자고 이야기했다가 혼만 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어.

앤테인은 그 일이 마음 속에 남아서 불편하게 했어. 그래서 아이를 제물로 마치는 희생제 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계속 불참했단다. 그때 미친 듯이 울부짖었던 아이의 엄마는 결국 성에 갇혔어. 그 아이가 바로 잰이 데리고 간 루나였단다. 루나의 엄마가 갇힌 성은 수녀들이 살고 있는 성이기도 했어.

5 년이 지나고 앤테인은 루나의 엄마를 찾아갔어. 루나의 엄마는 어디서 났는지 귀한 종이로 종이 새를 잔뜩 만들었어. 그런데 그 종이 새들이 실제 날아와서 앤테인을 공격을 했고, 앤테인은 빰에 깊은 상처가 흉하게 났고, 이후에도 그 흉터는 지워지지 않았어. 앤테인은 더 이상 장로는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만두었어.

앤테인은 목공소를 차리고 목수로 일했어. 그는 목공에 소질이 있어서 크게 성공을 했단다. 그가 학교를 다닐 때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있었어. 이름은 에신이라고에신은 수녀가 된다고 성에 들어갔었는데, 자신 스스로 그만두고 성을 나왔고, 우연히 앤테인과 만나게 되었단다. 에신도 사실 앤테인을 좋아했었거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결혼을 했단다.

앤테인은 장로를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숲 속에 빈터에 두고 아는 아기들에 대한 걱정을 했단다. 그래서 희생제날, 몰래 장로들을 뒤따라갔고, 남겨진 아기를 혼자 지켜보았어. 그리고 정말 늙은 마녀가 나타나서, 아기를 데려가는 것이었어. 그래 잰이었어.

잰이 버려졌다고 생각한 아기를 데려가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어떤 젊은 남자가 공격을 하는 것이야. 잰은 잰 나름대로 아기를 지켜야겠다고 그 젊은 남자의 공격하고 새로 변신하여 그 자리를 도망갔단다. 서로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3.

루나는 점점 커가면서 마법이 조금씩 새어나왔어. 하지만 그것이 마법인 줄은 몰랐지. 루나는 지도를 그리는데, 자신이 가 본 자유도시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보지 않은 숲 반대편도 지도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이야. 그곳을 꿈에서 봤거든

루나는 까마귀 알을 하나 부화하게 했어. 그래, 자신도 모르게 또 마법이 새어 나온 거야. 그 까마귀는 늘 루나의 곁에 있게 되었단다. 그 뿐만 아니라 루나는 까마귀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었어.  루나는 그런 것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어.

한편, 아주 작은 용 피리언이 우연히 장화를 발견해서 그들이 자신 집에 갖다 놨어. 그런데 그 장화는 신비한 장화였어. 장화를 신으면 순간이동을 할 수 있었거든

루나가 점점 커가면서 잰은 자신이 점점 늙는 것을 알 수 있었어. 500년 동안 늙지 않았던 잰이 늙고 있었고, 마법을 쓸 때도 점점 힘에 붙였어. 그래서 잰은 루나의 곁을 떠나기로 했어. 루나에게 편지를 남겨두고루나가 그 편지를 보고 가만히 있겠니. 당연히 잰을 찾아 나섰지.. 잰을 따라 무작정 숲으로 가다가 땅 밑 어둠 속으로 떨어졌어. 루나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글럭과 피리언도 루나를 찾아 길을 떠났단다.

4.

앤테인과 에신은 아이를 갖게 되었어. 출산일을 계산해보니 자신의 아이가 희생제의 제물로 바쳐야 했어. 엔테인은 걸랜드를 찾아가 해결책을 제시했어. 마녀를 공격해서 무찌를 수 있다고 했어. 걸랜드는 앤테인이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했어. 걸랜드는 앤테인을 막기 위해 원장 수녀 이그나시아 수녀를 찾아갔어. 그리고 앤테인의 계획을 막아 달라고 했어. 이그나시아 수녀는 그렇게 하기로 했어.

성에 갇힌 미친 여자, , 루나의 엄마. 미친 여자가 성을 탈출했어. 그리고 자신의 꿈에서 보았던 곳으로 갔어. 자신이 만든 종이 새를 타고 숲으로 날아갔어. 이 여자도 마녀냐고? 아니야.. 이 여자가 이야기하기를 광기와 마법은 비슷한 것이라고 했어. 그래서 광기도 마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미친 여자는 종이 새를 타고 숲으로 가서 루나가 머물렀던 집에 도착을 했어. 루나가 잰을 찾아 길을 떠났기 때문에 빈 집이었지. 그곳에 장화가 있길래 신었어.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그 장화 말이야.

.

잰은 생각해보니 아기를 찾으러 가는 날이 다가왔어. 그래서 아기를 찾으러 갔어. 마법을 써서 제비로 변해서 갔지. 제비로 변한 잰가는 길에 앤테인을 만났어. 앤테인도 숲 속의 빈터에 가는 길이었어. 마녀와 싸우기 위해서어떤 움직임이 있어서 마녀가 나타난 줄 알고 무기를 휘둘렀어. 확인해보니 작은 제비가 자신이 휘두른 무기에 날개를 다쳤어. 앤테인은 새를 치료해 주기 위해 자신의 품에 넣고 데리고 갔어. 그리고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랐어.

앤테인이 하는 혼잣말을 들은 잰…. 그제서야 보호령 사람들이 아기를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잰은 제비에서 본 모습으로 변해서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잰은 마법이 점점 약해져서 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었어. 답답한 마음에 부리로 계속 쪼기만 했어.

이그나시아 수녀는 앤테인을 찾기 위해 숲 속으로 향했어. 그러다가 숲 속에서 장화를 신은 미친 여자를 만났어. 이그나시아 수녀는 깜짝 놀랐어. 왜냐하면 미친 여자가 신고 있는 장화는 자기 것이었거든…. 미친 여자도 이그나시아 수녀를 알아보고 도망을 갔어. 뒤를 쫓는 이그나시아 수녀

이그나시아 수녀…. 그녀는 사실 마녀였어. 그런데 마녀의 신분을 속이고 수녀로 지내고 있었던 거야. 그것을 앤테인의 아내인 에신도 알고 있었어. 수녀 수업을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 그런데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어.

이그나시아 수녀가 숲 속으로 가자, 에신은 성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수녀들에게 이그나시아 수녀의 정체를 알려주었어. 그리고 성을 떠나라고 했어. 보호령 마을은 늘 슬픔이 가득한 구름이 늘 떠 있었는데, 이그나시아 수녀가 숲으로 떠나자 그 구름이 싹 거쳤어마을 사람들도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시위를 하기 시작했어.

5.

다시 숲 속 상황을 보자꾸나. 루나는 마법의 힘이 점점 세어지고, 그 마법으로 할머니의 위치도 알게 되었어. 그곳에 갔더니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젊은 남자(그래, 앤테인이야.. )과 제비만 보였어. 앤테인은 루나를 보고 소녀로 변한 마녀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루나를 공격하려고 했어. 때마침 도착한 피리온과 글럭이 앤테인을 공격을 막아내서 루나는 안전할 수 있었어. 아주 작은 용이었던 피리온은 갑자기 몸이 커져서 지금은 글럭보다 더 덩치가 큰 용이 되었어.

루나는 마법을 써서 잰을 제모습으로 변신시켰어. 잰은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해서, 앤테인은 오해를 풀었어. 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미친 여자와 이그나시아 수녀가 차례로 나타났지. 미친 여자는 루나를 보자마자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루나도 자신의 엄마라는 것을 알아챘단다.  그리고 잰은 이그나시아 수녀를 알아봤어.

이그나시아 수녀의 진짜 정체는 슬픔포식자였어. 사람들의 슬픔을 먹고 사는 마녀. 그래서 희생제를 만들어서 아기를 제물로 바치게 한 거야. 마을 사람들의 슬픔을 먹기 위해서 그리고 마음에도 언제나 슬픔이 가득한 구름이 떠 있게 했고오백 년 전 화산이 터졌을 때 다른 마법사들을 배신해서 마법사들을 죽게 하고, 그때 피리언의 엄마도 죽게 만든, 그야말로 나쁜 마녀였던 거야. 슬픔이 사라지자 아그나시아의 마법도 사라졌어. 그냥 늙은이에 불과했어.

다들 보호령 마을로 돌아왔어. 루나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어. 엄마는 이름도 잊어버렸는데, 루나가 찾아주었어. 엄마의 이름은 아다라였어.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 잰은 마지막 숨을 쉬고 세상을 떠났어. 글럭은 그 잰을 데리고 습지로 떠났단다. 아름다운 시 한편 남기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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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별빛과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바늘 같은 그리움은 어둠 속에 사라진다.

끊기지 않는 화음이 무한과 무한을 잇는다.

내 심장이 네 심장에 소원을 빌고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러는 동안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동안 우주는 팽창한다.

그러는 동안 사랑의 신비가 드러나고

다시 또다시, 너의 신비 속에서.

나는 떠난다.

나는 돌아온다.

글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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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설은 끝났어. 아름다운 영화를 한편 본 기분이었어. 하지만 아빠의 머리로 상상하는 영상은 부족했어. 나중에 어떤 영화감독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383-384)
"자. 지식이라는 게 머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란다. 네 몸, 네 심장, 네 생각에서도 나오지. 가끔은 기억에 저 나름의 생각이 있을 때도 있어. 우리가 만든 공기방울이 꽃을 안전하게 지켜줬지. 생각나? 공기방울을 만들어. 공기방울 안에 또 방울을 만들고, 마법의 공기방울. 얼음의 공기방울. 유리와 철과 별빛의 공기방울. 습지의 공기방울. 중요한 건 재료가 아니라 의도란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하나씩 그려봐. 집 둘레에, 텃밭 둘레에, 나무 둘레에, 농장 둘레에. 마을 전체에 두르고, 자유도시의 마을들도 둘러. 공기방울과 공기방울과 공기방울들. 둘러싸. 지켜. 우리 셋이서 같이 네 마법을 쓸 거야. 눈을 감으면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 줄게."

(382)
엄마에게 마법이 있었다. 루나는 느낄 수 있었다. 루나의 마법과는 다른 종류였다. 루나의 마법은 뼈와 조직과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 있었다. 엄마의 마법은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바구니 안에 남아 있는 온갖 잡동사니 같았다. 달그락거리는 부스러기와 조각들. 그래도 루나는 엄마의 마법을 느꼈다. 엄마의 갈망과 사랑도.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그게 루나의 몸 안에서 솟구치는 힘을 더 대범하게 해 주었고 넘치는 마법의 길을 이끌어 주었다. 루나는 엄마의 손을 더 꼬옥 쥐었다.

(144)
"시인이 말하기를 조급함은 작은 존재의 것이다. 벼룩, 올챙이, 초파리 같은. 우리 루나는 초파리보다 훨씬 뛰어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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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2 - 역사평설 병자호란 2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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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병자호란 2권을 이야기해줄게. 2권에서도 해 줄 이야기가 많으니까 거두절미하고 바로 책 이야기를 해줄게. 1권은 인조반정부터 정묘호란을 거쳐, 인조가 겁도 없이 다시 후금과 절교한다는 내용까지 해주었잖아. 2권은 더욱 아픈 역사가 이어진단다.

패배의 역사. 그 패배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니 한번 살펴보자꾸나. 후금의 홍타이지는 몽골족마저 모두 차지하고 영역을 더욱 넓혀갔어. 사라졌던 칭기즈칸의 옥새가 발견되었는데, 이것도 홍타이지가 받았어. 그리고 명나라의 한족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귀순을 했단다. 그만큼 홍타이지는 포용정책을 썼어. 이제 동아시아의 대세는 후금이 되어가고 있었어.

후금의 만주족, 몽고족, 명나라의 한족을만몽한이라고 불렀는데, 몽타이지는 만몽한의 신료들로부터 황제가 되라고 강권 받았단다. 처음에는 몇 번을 사양했지만, 결국 받아들였어. 나라이름도 우리가 청나라로 부르는대청이라 하고, 연호는 숭덕이라고 했어. 이제 홍타이지는 거대한 나라의 황제가 된 거야. 이제 아빠도 후금이라고 하지 않고 청나라라고 이야기할게.

이제 청나라의 신료가 된 몽골족의 사신들이 조선에 왔는데, 조선은 몽골족의 사신을 야만족 다루듯 푸대접했단다. 이 일은 청나라의 분노를 사게 만들었단다. 그뿐만이 아니야. 조선의 사신이 청나라에 갔다가 황제에게 배례를 하라는 명령에 끝까지 거절했다가 두들겨 맞는 일도 있었어. 나덕헌, 이확이라는 신하들인데, 그 기개가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정세파악을 못한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홍타이지가 뒤늦게 알고 때리는 것을 말려서 멈추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생각하기에 홍타이지는 이미 조선은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어. 지금은 그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나두는 것 같았지. 나덕헌과 이확은 배례를 안 했다고 얻어맞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그때 청나라의 국서를 들고 귀국을 했는데, 그 국서에는 청나라의 불만이 가득 남겨있었어. 그리고 조선을 공격하겠다는 최후통첩도 써 있었지. 이걸 가지고 갔다가는 왕에게 혼날 것 같아서 오는 길에 버렸는데, 그것마저도 인조는 벌을 내려 그들은 귀향살이를 했다는구나.

최후통첩을 받은 인조. 여전이 청나라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방어할 생각도 안하고. 그저 강화도로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었단다.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구나.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일단 백성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거짓이라도 머리를 굽혀야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백성들 버리고 혼자 도망갈 생각만 하다니

정온, 최명길 등이 화친 맺지 않고 싸울 거면 강화도가 아닌, 압록강에 군대를 총집결 해서 싸우자고 했어. 거기서 싸워야 져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청나라의 속내를 다시 확인하자고 했어. 하지만 인조는 그들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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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정온은 청과 결전을 벌이자고 강조하면서 인조의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진정으로오랑캐와 싸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반정공신들이 거느리고 있던 정예병들을 원수에게 배속시키라고 요구했다. 정온은 온 나라의 정예병과 무사가 전부 반정공신들 휘하에 배속되어, 평소에는 그들의 농장을 관리하다가 유사시에는 호위를 핑계로 전장으로 가는 것을 피하고 편안함을 취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정묘호란 당시에도 멀쩡한 정예병들이 적과의 싸움은 기피한 채 강화도에 머물면서내란이 있을까 걱정스럽다는 말만 되뇌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헌부 관원들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정예병이란 정예병은 모두 반정공신 휘하 군관들에게 소속되어 사병처럼 부려지고 있는 현실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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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36 11 25. 홍타이지는 결국 조선과 전쟁을 선언했어. 병자호란의 시작이었지. 만주족, 몽골족, 한족의 군사들을 데리고 조선으로 향했어. 청나라는 철기를 중심으로 한 군대라서 평지에서 싸우는 것이 불리하다고 생각한 조선은 산성에서 수비하는 방법을 선택했어. 그런데 청나라는 그런 산성을 굳이 공격하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대로를 통해서 서울로 향했단다. 산성을 지키던 조선군들은 이미 지나가버린 청나라의 뒤꽁무니를 쫓는 격이었어.

인조도 청나라의 침입 소식을 듣긴 했는데, 그것마저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 한참 후에 들었어. 그가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청나라 군대로 코앞까지 닥쳤을 때였지. 그 이야기는 강화도로 도망갈 타이밍을 놓쳤다는 거야. 이미 강화도로 가는 길이 차단되었어. , x됐다는 생각만이 머리가 가득 찼겠지. 강화도에서 수비하려고 그곳에 군비를 갖추었는데, 이제 어디로 가나….

결국 차선으로 결정한 것이 남한산성. 남한산성이 천험의 요새라서 방어하기는 좋지만, 중요한 것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거야. 군량과 마초가 턱없이 부족했어. 조선은 청나라가 쳐들어오더라도 따뜻한 봄이 되면 오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강화도에만 전쟁 준비를 하고.,. , 한심하십니다.

남한산성에 오긴 했지만, 이곳에서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김류는 인조에게 몇몇만 몰래 강화도로 가자고 했어. 비겁한 인조는 그러자고 했어. 몰래 산성에 나와서 강화도로 향하다가 빙판길에 몇 번 넘어져서 부상만 입고 다시 남한산성으로 돌아왔단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이후에도 어떻게 하면 강화도로 내뺄까 하는 생각만 했대.

.

청나라 군사들은 남한산성을 둘러싸고 공성전을 벌였어. 남한산성 안의 조선군은 마냥 구원군만 기다리고 군량만 축내고 있었어. 그것도 얼마 없었어그리고 신하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여 논쟁만 벌였단다. 어떻게든 도망가자는 이들.. 끝까지 싸워보자는 이들지금이라도 화친하자는 이들결정을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어. 몇몇 소소한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대세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어. 그러다가 기다리던 지원군이 지방 곳곳에서 오지만, 그들도 제대로 된 체계가 없었고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각개로 왔다가 연이어 지고 말았어.

2.

결국 인조는 화친을 하기로 했어. , 조건을 걸었어. 남한산성에서 자신은 나가지 않겠다. 왕세자를 인질로 줄 수 없다하지만, 청나라는 지난날 조선의 잘못만 늘어놓으며, 화친을 위한 요구 조건을 점점 높여만 갔어. 청나라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었지.. 그들이 요구하는 것의 기본은 조선의 왕이 산성에서 나와서 항복의례를 하라는 것이었어. 인조는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했지. 그런 와중에 강화도에서 소식이 날아왔어.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

당시 강화도에는 먼저 피신해 있던 왕의 가족과 신하들의 가족들이 있었어. 강화도의 군대는 김경징이라는 사람이 지키고 있었는데, 청의 수군을 얕보고, 수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어. 그에 비해 청나라는 강화도 함락을 철저히 준비했어. 명에서 귀순한 공유덕, 경중명을 중심으로 수군을 갖추고 있었거든. 제대로 된 방어가 없던 강화도는 쉽게 함락이 되었단다. 강화도의 왕족과 신하들의 가족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고, 그들을 데리고 남한산성으로 향했어.

강화도의 패배 소식은 남한산성에 도착했고, 좌절케 했어. 청나라는 다시 왕이 나와서 화친을 하라고 요구했어. 말이 화친이지 나와서 항복하라는 거지. 결국 조선은 청의 요구조건을 모두 들어주고 전쟁의 패배를 인정했어. 인조가 직접 나와서 항복의례를 했단다. 그 유명한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했어. 그리고 나서 도성인 창경궁으로 돌아왔단다. , 얼마나 비참한 귀환이더냐

3.

명나라와 관계를 끊고 앞으로는 청나라의 연호를 써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대신들의 자식들을 인질로 데려가겠다.

조선 군대는 원조를 해야 한다.

특히, 곧바로 전함 50대와 수군을 지원해라.

주기적으로 대신들을 파견하여 예물을 바쳐라.

외교 의례는 명나라와 같은 수준으로 해라.

많은 수의 포로를 데리고 가겠다.

그런데 그 포로들이 도망 오면 다시 청나라로 보내라.

등등… 청나라의 요구조건은 엄청 많았고, 그 요구조건들 하나하나가 조선의 가슴을 베는 것 같았어. 그리고 청나라는 화친을 방해했던 신하들을 청으로 보내라고 했고, 자진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는 청나라게 끌려가서 그곳에서 죽고 말았단다. 청은 조선 수군을 동원해서 오랜 목엣가시와 같은 가도를 정벌했단다.

이제 인조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청나라의 비위를 맞추며 왕권을 유지하는 것이었어. 예물과 군량미를 꾸준히 바치면서그로 인해 조선 백성들은 굶어 죽는지 마는지 신경도 안 쓰고소현세자. 일반적으로 인조와 소현세자는 사이가 좋이 않다고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사이가 좋았다고 하는구나. 아무래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인데 그랬겠지. 소현세자가 청나라로 끌려갈 때, 청의 황세자 도르곤에게 잘 봐달라고 간절히 부탁도 했었어. 첫 번째 귀국할 때만 해도 소현세자를 극진히 대했어.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청나라는 조선이 전쟁 패배에 대한 요구조건을 안 들어주자, 인조를 폐위하겠다고 경고를 하게 되었어. 여러 차례자신을 폐위시키면 누구를 왕에 세울 것인가?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를 왕위에 세울 것으로 인조는 생각했어.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소현세자를 미워하게 되었어. 소현세자는 장인어른의 장례식 때문에 두 번째 귀국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인조는 냉대하였고, 세자빈에게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못 가게 하는 등 꼰대를 부리기 시 작했어. 나중에 소현세자가 완전이 귀국을 한 다음, 소현세자는 귀국하자마자 병에 걸렸고, 병에 걸린 지 삼일 만에 죽고 말았단다. 검시 결과는 소현세자가 독살당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아무도 누구 짓인지 밝히려 하지 않았단다. 그저 불쌍한 죽음 하나 추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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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이후 피로인은 커다란 사회문제였어. 피로인은 청군에 잡힌 민간인 포로를 이야기하는데 그 수가 약 50만이나 된대. 그들의 대우는 처참했고, 도망이라도 가면 다시 끌려가야 했어. 그리고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게 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부잣집 피로인들은 돈을 주고 데리고 오기도 했대. 그것을 속환이라고 해.

허박이라는 하는 신하는 나라차원에서 속환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어. 속환하여 나라로 돌아온 이들에 대한 대우도 좋지는 않았어. 끌려간 것도 자신들 뜻이 아니었는데, 그들, 특히 여자인 경우는 속환녀라는 딱지를 붙이고 버림을 받았어. 한번뿐인 인생인데 그들은 시대를 잘못 만났고, 왕을 잘못 만난 것뿐이었는데 말이야.

일본도 조선이 청나라에게 패배한 소식을 전해 듣고, 온갖 간섭이 늘어나고 요구사항도 많아졌어. 힘없는 조선이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니. 동네북이 되어버렸어.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많은 신하들은 조금만 버티자는 생각을 했대. 몽골족의 사례를 생각하면서, 오랑캐 국가는 길어야 100년 밖에 못 간다면서 말이야. 하지만 청나라는 포용정책을 통해 오랫동안 지속했단다.  아빠가 오래 전에 청나라 전성기 역사를 다룬 <강희대제>, <옹정황제>, <건륭황제>라는 역사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그 소설을 통해 청나라가 그저 야만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단다. 그들 나름대로 통치철학이 있었고, 유능한 지도자가 있다면 오래 번창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

여기까지가 병자호란에 관한 이야기란다. 패배의 역사라고 읽는 내내 가슴 아팠단다. 무능한 왕의 표본을 볼 수 있었어.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단다. 그리고 주변 강국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것 같구나.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여 있는 오늘날의 우리나라균형 잡힌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인 듯 싶구나. 거기에 북한이라는 존재까지어쩌면 인조시대 때보다 더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요즘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북한, 중국을 다루시는 것을 보면 뛰어난 협상가이자 중재자라는 생각이 들어. 일 년 전 타임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표지모델로 삼으면서 뽑았던 Negotiator라는 제목이 얼마나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구나. 그의 이런 노력들이 가까운 미래에 좀더 좋은 열매로 맺어지질 바랄 뿐이란다. 오늘은 그럼 이만


(60)
정온은 청과 결전을 벌이자고 강조하면서 인조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진정으로 ‘오랑캐’와 싸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반정공신들이 거느리고 있던 정예병들을 원수에게 배속시키라고 요구했다. 정온은 온 나라의 정예병과 무사가 전부 반정공신들 휘하에 배속되어, 평소에는 그들의 농장을 관리하다가 유사시에는 호위를 핑계로 전장으로 가는 것을 피하고 편안함을 취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정묘호란 당시에도 멀쩡한 정예병들이 적과의 싸움은 기피한 채 강화도에 머물면서 ‘내란이 있을까 걱정스럽다’는 말만 되뇌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헌부 관원들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정예병이란 정예병은 모두 반정공신 휘하 군관들에게 소속되어 사병처럼 부려지고 있는 현실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179)
대국 명조차 자신에게 벌벌 떨고, 막강한 차하르 몽골까지도 항복했는데 소국 조선은 끝까지 자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홍타이지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조선의 뻣뻣한 태도는 공유덕을 비롯한 한족 출신 귀순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명의 번국인 조선도 끝까지 고개 숙이기를 거부하여 명에 대한 의리를 배반하지 않았는데, 명의 신료들이 먼저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비아냥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럴 경우, 한족 출신 귀순자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었다. ‘남조에 본보기를 보이려 한다’는 대목에서도 그러나듯이 홍타이지는 인조를 불러내 자신 앞에 무릎을 꿇려야 할 ‘절박함’을 갖고 있었다.

(181)
인조는 반정이라는 비정상적인 정변을 통해 추대된 임금이었다. 인조를 옹립했던 시하들은 분명 광해군보다는 훨씬 나은 임금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그를 선택했다. 하지만 인조가 산성에서 나가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을 경우, 그를 추대한 신하들은 인조의 처참한 몰골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쫓겨난 광해군에게 문제가 많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그래도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명분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는 신하들이 나를 과연 임금으로 계속 떠받들어 줄 것인가?’ 인조로서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시나리오’였다.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출성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데에는 이 같은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281)
인조는 ‘반정’을 통해 추대된 임금이라 훈신들의 입김에 밀려 왕권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애초부터 안고 있었다. 실제로 1629년 7월, 인조는 "조정 신하들에게 압제를 받고 있다"며 자조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병자호란 이후 확 달라졌다.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 친청파로 변신했다. 하지만 ‘변신’ 이후에도 청이 입조론과 왕위교체론을 흘리며 압박해오자 권력을 지키기 위해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렸다. 소현세자의 급사, 왕세자의 교체, 원손 지위의 박탈, 강빈의 사사 등이 그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인조와 소현세자를 이간시켜 ‘충성 경쟁’을 부추겼던 청의 획책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나아가 병자호란이, 역설적이지만, 인조가 ‘추대된 임금’이라는 정치적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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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4-07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희극과 비극으로 반복된다고 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희극보다는 비극 쪽이
우세하다다는 느낌이 드네요.

무능한 군주 / 정치지도자를 선출한 이들이 받아야
하는 형극의 세월이었던 걸까요.

bookholic 2018-04-07 21:13   좋아요 1 | URL
앞으로는 다시는 무능한 리더를 국민들의 손으로 뽑는 비극은 일어나질 않기를 기원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병자호란 1 - 역사평설 병자호란 1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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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초등학교 때 소풍을 장릉이라는 곳에 간 적이 있었단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관내에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 저학년 때라서 장릉이 누구의 무덤인지도 몰랐고, 그저 커다란 무덤이 있었고, 주변 잔디밭에서 놀다 온 기억뿐이구나. 그리고 나중에 장릉이 조선시대 인조라는 왕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조라는 사람이 얼마나 무능한 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그런 왕의 무덤으로 소풍을 가서 그랬는지 소풍에 가서 무덤의 주인에 대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구나. 선생님이 일부러 안 알려주셨던지, 아니면 아빠의 기억력의 한계이던지..

무능한 왕의 무덤이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왕릉의 존재를 잘 모를 거야. 아빠처럼 그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이나 알고 있지 말이야. 초등학교 때 소풍 이후에는 한번도 가보지는 않았단다. 하기야 그렇다고 다른 왕릉에 가본 적도 별로 없구나. 우리집 근처에 있고, 아빠가 좋아하는 정조대왕의 왕릉만 여러 번 가본 것 같구나.

인조가 왜 무능한 왕이었는지, 아빠가 이번에 읽은 <병자호란>이란 책을 읽으면 잘 알 수 있단다. 지은이 한명기라는 분은 아빠가 십여 년 전에 재미있게 읽은 <광해군>이라는 책을 쓰신 분이란다. 그 책을 통해서 아빠가 광해군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반정으로 내쫓길 만큼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 광해군을 반정으로 몰아낸 인조. 그런 인조는 왕다운 왕이었을까?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볼게.

1.

1623 3 13. 조카 능양군은 신료들의 힘을 등에 업고 숙부 광해군을 끌어내고 왕이 되었으니 그가 인조이고, 역사는 이 사건을 인조반정이라고 하였단다.

광해군.

임진왜란 때 도망간 왕 아버지 선조를 대신하여 분조로 국내에서 활약했던 세자 광해군. 그런데 전쟁이 끝났을 때 선조의 정비는 이미 죽고, 후궁들만 있었는데, 뒤늦게 정비를 맞아들이고, 영창대군을 낳았어. 적자가 태어난 거야. 이미 후궁의 아들 중에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고, 분조까지 해서 왕이 될 준비까지 했는데 말이야. 영창대군이 크고 나면 세자가 바뀌는 것은 아닐까 광해군도 걱정이 되었겠지. 그런데 얼마 뒤 선조는 죽고 광해군이 즉위했단다. 그러나 여전히 어린 영창대군은 언제든 자신을 위협할 존재였어. 결국 영창대군을 죽였단다.

조선시대에 왕 주변의 권력다툼으로 친인척을 죽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단다. 영창대군뿐만 아니라 반대측을 죽였는데, 그 중에 능양군의 아버지, 능양군의 동생도 포함되었단다. 그리고 관계상 어머니에 해당하는 인목대비도 유폐시켰단다.

능양군은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다고 생각했을 테고,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을 거야. 그런 능양군과 뜻이 맞는 신하들이 있었고, 반정을 계획했어. 궁 안에서도 그런 반정의 기미가 보였지만, 안일한 대응을 했고, 결국 광해군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단다.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늘 인조. 명나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어. 명나라에서 반정을 인정해주고, 왕으로 승인을 받아야 했어. 그렇다 보니 명나라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줄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광해군을 몰아낸 이유 중에 하나라고 내세운 것이 후금에 공격을 받는 명나라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었거든. 명나라는 인조 왕권을 미루면서 그런 인조의 처지를 이용했어. 2년이나 승인을 미루면서, 조선군의 지원을 받게 되었단다.

.

2.

인조 반정에 성공에 공을 세운 사람 중에 이괄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이괄은 인조반정에서 공을 세웠지만, 논공행상에서 2등 공신으로 분류되고 외지로 발령받는 등 불공평한 처우를 받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괄은 다시 난을 일으켰고, 놀란 인조는 공주성까지 도망을 갔단다. 이괄의 난은 내부 배신자에 의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단다. 인조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

작은 난에도 왕이 멀리까지 도망을 갔으니 민심은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고, 개혁안을 밀어붙이기에는 능력 부족이었고, 명나라 사신들은 툭하면 와서 어마어마한 은과 인삼을 요구해서 강탈당하는 수준이었단다. 특히 명나라 장수 모문룡은 함경도 앞에 작은 섬 가도에 머무르면서, 양곡을 수탈해갔어. 금과 조선을 견제한다고는 하는데,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본적이 없고, 조선을 상대로 수탈을 일삼을 뿐이었단다.

인조반정을 일으킨 이유 중에 하나가 광해군이 후금에 대한 공세가 소극적이었다는 것인데 인조반정 이후 후금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안되어 광해군의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단다.

반정 왜들 했나.

명나라 모문룡.

이 사람 참 골치 아픈 사람이었단다. 앞서 아빠가 인조 책봉에 있어 명나라가 2년간 질질 끌다가 이루어졌다고 했잖아. 모문룡은 자신이 인조 책봉에 큰 공을 세웠다면서 이것저것 참 많은 것을 요구했어. 인조 정권은 모문룡을 위한 송덕비까지 만들어주었단다. 이 노회한 인물은 조선에 대해 갑질 자유이용권을 가진 것처럼 행동했어. 모문룡은 광해군 때부터 가도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광해군은 그의 노회함을 알고 그를 멀리 했어. 하지만 인조는 책봉의 은인으로 발목이 잡혀서 그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단다. 모문룡 한 사람만 거들면 참아보기라도 하지.. 그의 군사들도 가도 밖에 나가서 온갖 수탈을 했단다. 그런 그의 군사들을 처벌을 했다가 오히려 좌천된 조선의 관리도 많았어. 반정을 통해 왕이 되었지만, 참 꼴불견이구나.

3.

당시 명나라 사정을 좀 이야기해줄게. 한마디로 지는 해였어. 망해가는 나라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두루 갖추었다고 보면 돼. 온갖 비리의 중심이었던 만력제라는 황제가 죽고 장남 태창제가 즉위를 했어. 개혁시도를 했지만, 명나라도 운이 다했는지, 이 능력 있어 보이는 태창제는 즉위 한달 만에 갑자기 죽고 말았어.

그리고 16살의 준비라고는 전혀 안된 천계제가 즉위했단다. 이후 환관들이 권력을 잡고 정권농단에 앞장섰어. 그나마 웅정필, 원숭환 등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난 장수들 덕으로 요동 지역을 후금의 공력으로부터 막고 있었어. 특히 영원성 전투에서 후금 상대로 값진 승리를 거두었고, 이 영원성 전투에서 누루하치가 부상당한 후 죽었단다.

이후 누루하치의 후계자로 홍타이지가 즉위했어. 홍타이지는 참 영리한 사람이었단다. 홍타이지는 한인 포용 정책을 써서 명을 배신한 한인들에게 후한 대접을 해주었어. 그리고 홍타이지는 조선에 대한 강경파였기 때문에 그는 정권을 잡자마자 명나라 공격에 걸리적거리던 조선을 공격하기로 했어. 조선 때문에 명나라를 공격할 때 늘 후미가 신경 쓰였거든.

그는 1627 1 8, 조선 정벌을 명령했단다. 그것이 바로 정묘호란이야. 홍타이지가 조선 공격을 서둘렀던 것은 또 다른 이유도 있었어. 누루하치의 후계자이긴 했지만 권력을 아직 제대로 잡지 못했기 때문에 홍타이지는 전쟁을 이용하여 자신이 일인자임을 보여주려고 했고,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하려는 목적도 있었어. 조선의 군사였다고 후금에 투항을 했던 강홍립 같은 이도 같이 데리고 왔어.

후금 진격 소식에 방어할 생각은 전혀 없이 도망갈 생각부터 한 인조곧바로 강화도로 도망을 가버렸어. 후금은 대륙을 근거지로 한 나라이기 때문에 수군이 없었거든. 몇몇 장수들이 도망보다는 임진강에서 방어를 하겠다고 인조에게 군사를 요청했지만, 인조와 신료들은 자신들의 호위군을 보강하기 위해 군사를 지원해주지 않았어. 이괄의 난의 트라우마였나…. 나라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시는 위대하신 왕이시네.

인조가 강화도로 도망을 가자, 후금군 대장 아민은 화의를 제안했어. 사실 후금도 명의 후방공격에 부담이 있어 조선에 오래 머물 수 없었거든. 조선 조정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어. 쯧쯧 도망간 것들이 무슨그러다가 결국 화친을 맺었어. 후금을 형으로 모시고, 조선 자신은 동생이 되겠다고 했어. 참 이상한 관계가 성립이 되었네. 조선은 명을 부모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명과 전쟁중인 후금과 형제관계를 맺었으니 말이야.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럴 거면 반정을 왜 했는지….

후금이 형이 되었지만, 그리 착한 형은 아니었어. 후금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서 가는 곳마다 온갖 약탈을 했단다. 백성들의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그래서 평안도 정봉수 등이 자체적으로 의병을 만들어 후금과 전투를 벌여 승리하기도 했어. 그러자 후금은 심한 불만을 쏟아냈단다. 감히 형이 하는데 동생이 무슨 참견이냐.

후금과 조선의 화친 소식을 들은 명나라는 당연히 강한 불만을 가졌어. 그리고 가도에 틀어박혀 있던 모문룡은 전혀 도와줄 생각 안하고 관망의 자세를 보였어. 조선은 모문룡이 후금의 후방을 공격해주길 기대했지만 가마니 자루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어. 정묘호란이 끝나고 나서는 자신이 기책을 내어 후금을 쫓아냈다고 명에 거짓보고를 했지. 참… 어찌 보면 어리숙한 인조와 조선 조정이 불쌍해 보이기도 하구나. 하지만 그런 무능한 왕으로 인해 받는 백성들의 고통은 너무 크구나. 촛불을 들 수도 없고..

4.

정묘호란이 화친으로 끝을 맺고 인조는 다시 서울 경덕궁으로 돌아왔어. 민심은 더욱 악화되었고, 곳곳마다 민란이 일어났어. 그렇다고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안위에만 신경을 썼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도 기가 살아났어. 국내 사정을 일본에 숨기려고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 일본은 국교 재개를 요청했는데,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있나. 후금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실리를 찾고자 일본과 교역도 다시 재개했어.

명나라는 천계제가 죽고 숭정제가 즉위했어. 가도의 모문룡의 지지기반은 천계제와 그 주변의 환관들이었는데, 숭정제가 즉위하고 지지기반이 없어졌어. 이를 이용하여 원숭환은 모문룡을 처치하기로 했어. 모문룡을 초대해서 속임수를 써서 처단했단다. 그래서 원숭환은 가도의 군대를 이용하여 요동반도 전체의 수비를 강화하려고 했어.

하지만, 홍타이지.. 이 영악한 인간이 꾀를 썼어. 반간계를 써서 원숭환과 숭정제를 이간질시킨 거야. 명나라 사신들에게 거짓 정보를 흘린 거야. 원숭환이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고숭정제는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원숭환을 단칼에 처형시켰단다. 숭정제도 정세에 어두운 황제였고, 역시 간신들로 둘러싸여 있었어.

결국 명나라와 후금의 운명은, 그 나라의 지도자인 숭정제와 홍타이지의 능력의 차이로 결정나고 있었어. 이것은 비단 명나라와 후금만 그런 것은 아니지.. 당시 조선도 인조라는 왕으로 인해 나라와 백성들의 운명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늘날에도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봐도 바로 알 수 있잖니. 요즘 문재인 대통령이 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하더구나.

다시 책이야기를 해보자꾸나. 명나라와 후금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선은 더욱 난처한 입장이 되었어. 샌드위치 신세라고 할까. 원숭환이 죽고 나서 가도는 무주공산.. 명나라의 유홍지란 인물이 반란을 일으키고 가도의 일인자 되었어. 조선이 기회다 싶었어. 명나라의 반란을 일으킨 유홍치를 잡아 명나라에게 도움을 주고, 후금에게도 가도를 정리했다고 할 말이 생기고…. 그렇게 생각하고 가도 정벌을 나섰는데, 유홍치가 재빠르게 도망을 가버렸어.

그런데 도망을 갔던 유홍치는 명나라 정부를 어떻게 꼬득였는지, 반란군이 아닌 정식 관리인으로 다시 가도로 귀환을 했어. 모문룡이 유홍치로 바뀌었을 뿐 바뀐 게 없었어. 다시 조선을 괴롭히고 수탈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운명은 오래 가지 못하고 내부 분란으로 죽고 말았단다.

정묘호란 이후 돌아간 후금은 조선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어. 화친을 맺으면서 약속했던 것들을 실행이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야. 무역 거래를 하기로 했는데, 조선이 무역 거래에 미온적이었고, 명나라보다 후금이 더 강한데 제대로 된 대접을 안 한다고 불만을 가졌어. 화친의 약속으로 조선의 배와 수군을 빌려주기로 했는데, 조선은 그것도 빌려주지 않았어. 임진왜란에서의 수군의 활약으로 인해 주변국가들은 당시 조선의 수군과 전함이 명나라보다 낫다고들 생각하고 있었대. 그러고 보면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있어서 그나마 결국은 승리를 했는데, 이때는 그런 영웅도 없고, 무능한 임금만 있었으니

5.

홍타이지는 명의 거점이었던 대릉하성을 포위하여 승리를 거두었어. 이 전투를 통해 명나라의 중요 장수들이 청으로 귀순을 했단다. 홍타이지는 그들에게 후한 대접을 해주었고, 그들도 후한 대접에 보답을 하듯이 명군이 가지고 있던 대포와 전함 기술을 전수해주었어. 이로써 후금은 수군도 갖추게 되었단다. 조선은 여전히 이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장차 후금이 쳐들어오면 강화도로 도망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그러면서 방어진지도 강화도에만 집중을 하였단다. 참나.. 백성들은 육지에 다 있구만

.

그 사이 인조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데 신경을 썼어. 자신의 친아버지를 왕으로 추숭하는데만 신경을 썼어. 이것으로 신하들과 계속 대립을 하게 되었고. 일이 년도 아니고 무려 10년이나 이어졌단다.

그 사이 후금은 계속해서 화친 때 약속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인조는 국제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조선의 처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후금과 절교 선언을 해버렸어. 대단한 용기일세. 많은 신하들이 만류하고 간청을 했지만, 절교 선언은 홍타이지에게 전달을 했어.

홍타이지는 오히려 조선을 포용하는 자세를 보였어. 지금은 명과의 전쟁에 치중을 해야 할 때였거든그리고 홍타이지는 조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존재로 생각을 했을 거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이미 손 안에 든 물건이라고 생각을 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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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년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인조의 실정을 이야기하면서 정신 좀 차리라고 이야기했지만, 쇠 귀에 경읽기였어.. 강학년의 비판을 소개하면서 병자호란 1권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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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1634 11, 강학년은 인조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인조가 자신을 장령으로 임명하자 서울로 올라오는 대신 상소를 올렸다. 그는 상소에서 인조의 실정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광해군의 아들을 죽인 것, 숙부 인성군을 죽인 것, 생부 정원군을 부묘하려는 것 등을 통렬하게 비난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여 인조반정 이후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다음의 내용이다.

<서경>정치는 어지러워지기 전에 제어하고 나라는 위태로워지기 전에 보전하라고 했는데 전하의 국사는 이미 위태롭고 어지러운 지경에 들어섰습니다. 여러 차례 대란을 겪었음에도 조금도 허물을 반성하지 않고 고식책만을 써서 패망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옛날 난정 때문에 나라를 전복시킨 자들과 똑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인데, 신은 그 종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당초 전하께서 반정한 거사는 변화에 적절히 대응한 세상의 드문 조처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백이(伯夷)가 있었다면 반드시포악한 자가 포악한 자를 갈아치웠다고 비난했을 것이고, 엄연년이 있었다면 반드시 곽광(霍光)을 탄핵하는 조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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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무엇보다 반정을 통해 정권이 바뀐 이후의 불안정한 민심을 채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괄의 난을 겪은 것이 자충수였다. 실제로 대동청, 재성청 등에 보관된 문서는 이괄의 난을 계기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거기에 정권이 바뀌고, 새로 등장한 정권이 또 다시 바뀔 뻔하는 격변을 겪으면서 민심이 크게 동요했고, 그 와중에 권력을 지키는 것이 다급해진 인조 정권은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거기에 명나라 사신들의 어마어마한 은 징색, 가도 모문룡 진영의 항상적인 양곡 수탈까지 더해지면서 ‘토적’을 위한 군사력 증강계획은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259)
정묘호란 이후 조건은 이렇게 모병과 후금군 사이에서 난감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었다. 모문룡은 조선이 ‘오랑캐’ 후금과 화약을 맺은 것을 힐난했고, 후금은 그들대로 조선이 맹약을 어리고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조선 조정은 양자 사이에 끼여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문룡에게 후금과 화약을 맺은 것은 부득이한 기미책(羈縻策)임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후금 사신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모병들은 이후에도 계속 사단을 일으켰고, 후금군도 그에 맞서 병력을 풀어 요격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모병들은 후금군에게 피해를 입을 경우 조선 관민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요컨대 정묘호란 이후 조선은 ‘샌드위치’가 되었고 청천강 이북 지역은 화약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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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05 0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정으로 명의 눈치를 봤다던 인조 이야기에서 부정선거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박근혜가 연상되네요...

bookholic 2018-04-06 00:10   좋아요 1 | URL
두 분 모두 무능함의 쌍벽을 이루고 있어, 저도 박근혜가 많이 생각났어요..^^

레삭매냐 2018-04-05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선조 다음으로 무능한 왕이 인조가
아닐까 싶네요.

오늘 장만 평전이 나왔다는 소식에 검색해
보니 이괄의 난이 엮어 있더군요...

조선 역사에서 외적이 아닌 국내 반군에게
도성을 뺏긴 모지리 국왕은 인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대요.

명나라 깡패 모문룡의 갑질 자유이용권...
빵 터졌습니다.

국가운영 대신 정권유지에만 관심있는 정권
의 말로는 결국 삼전도 치욕으로 이어졌지요.

bookholic 2018-04-06 00:13   좋아요 0 | URL
장만이라는 사람은 저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라서..^^
<장만 평전>이라는 책 검색을 해봤어요...
관심리스트에 추가해야헸습니다^^
국가운영 대신 정권유지에만 관심을 갖다 보면
삼전도 치욕이나 탄핵 치욕으로 이어지네요~~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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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콩쿠르를 소재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단다. 아빠가 이번에 읽은 소설을 신간소개에서 봤을 때, 느낀 생각이야. 지은이는 유명한 일본 작가 온다 리쿠. 그런데 아빠는 온다 리쿠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야….  이 소설로 2017년 나오키상을 수상했다고 했는데, 무려 156회 나오키상이라그럼 나오키상이란 것은 156년 전에 처음 생긴 거란 말이야? 1800년대에 문학상이라는 것을 만들 생각을 했다고?

나오키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단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년에 두 번씩 주는 문학상이더구나. 1935년에 처음 주기 시작했대.. 그러면 그렇지.. 아무튼 이 소설이 나오키상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눈이 가는 것은 아니었어. 아빠는 단지 콩쿠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면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어. 11년간의 취재 기간, 집필기간 7년이라고 하는데, 소설가의 첫 번째 덕목은 역시 인내력과 끈질김이 아닐까 싶더구나.

너희들이 피아노를 배우면서, 피아노에 관심을 많아졌잖아. 그래서 얼마 전에 온 식구 다같이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봤고... 너희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다면서, “치야키 센빠이~”라면서 흉내도 냈었지. 그리고 드라마를 보고 나서도 한동한 드라마 OST를 들었잖아. 그러면서 클래식 작곡가들도 몇몇 알게 되었고그래서인지, 이 책을 더 읽고 싶어져서 이번에 읽었단다.

온다 리쿠의 소설은 처음인데, 책이 술술 읽혔단다. 피아노 연주에 대한 비유도 아주 좋아서, 연주자가 어떤 식으로 연주를 했고, 어떤 소리를 냈겠구나 상상할 수 있었어.

집에서 읽을 때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음악을 검색해서 들으면서 읽었어. 너희들과 잠깐 여행을 갔을 때, 너희들이 자고 있을 때도 아빠는 이 소설을 늦게까지 읽었는데여행지에서 맥주 한잔 마시면서 읽는 재미있는 소설책너무 좋더구나. 그래서 이 소설의 기억은 더 오래 남을 것 같구나.

 

1.

이 소설은 일본 하마마쓰시에서 3년마다 열리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모델로 했다고 하는구나. 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조성진도 수성을 했었대. 이후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고그런 인연이 있어서인지 지은이는 특별히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조성진과 인연도 이야기했어. 그리고 콩쿠르에 참가자들 중에 한국사람들은 많은 것으로 설정을 했더구나.

.

, 그럼 소설의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 사가 미에코 교수는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였어. 요가시에 피아노 콩쿠르 지역 예선이 열리고 있었는데, 미에코는 프랑스 파리의 심사위원이기도 했지. 서류 심사에서 떨어진 이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오디션이었어. 참가자 중에 잠을 확 깨우는 놀라운 실력자가 한 명 있었어. 가자마 진이라는 일본인으로 음악에 대한 아무런 경력은 없고, 단지 유지 폰 호프만이라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로부터 사사를 받았다고 했어.

유지 폰 호프만.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인데, 몇 달 전에 죽었는데, 죽기 전 유언으로 폭탄을 설치했다고 했는데, 미에코는 가자마 진의 피아노를 듣자마자 호프만의 유언이 떠올랐어. 그가 남긴 폭탄이 바로 가자마 진일 거라고 생각했어

가자마 진의 아버지는 양봉업자이고, 가자마 진은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다가 바로 오디션에 와서 옷도 추레하고 더러웠지만, 그의 음악은 진흙 속 연꽃과도 같았어. 그는 자신의 연주만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어. 미에코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진의 연주에 깜짝 놀랐고,  두려움마저 느꼈단다. 그래서 호프만이 폭탄이라고 했던 것 같아. 미에코는 그 두려운 감정 때문에 불합격 처리하려고 했지만, 다른 심사위원의 설득으로 합격 처리를 했단다.

소설의 시작은 콩쿠르에 참가하는 주인공들의 소개로 시작하고 있었어. 앞서 가자마 진을 소개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에이덴 아야라는 사람이야. 에이덴 아야는 어려서부터 천재소녀로 불렀고, 이미 많은 리사이틀을 비롯하여 연주회도 가졌어. 그런데 갑자기 후원자인 엄마가 돌아가시고, 피아노를 그만 두었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지. 3 , 엄마의 대학 동기이자 어떤 대학의 음대학장인 하마자키 교수가 찾아와서 아야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어. 하마자키 교수는 아야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자신의 학교에 오라고 했어. 그리고 시험을 통해 입학을 했지. 잊고 지냈던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게 된 거야. 하마자키 교수는 아야에게 콩쿠르를 권했고, 아야도 고마움에 참가하겠다고 했어.

다카시마 아카시. 28살의 유부남이자 이번 콩쿠르 참가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야. 예전에 피아노를 쳤으나 그 꿈을 접고, 악기 회사에 다니던 그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콩쿠르 참가를 결심했단다. 일년 동안 준비를 하고 드디어 예선을 앞두고 있었지.

마사루. 줄리어드 음대의 비밀 병기라 불렸어. 미국인으로 참가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일본계 페루인이고, 아빠는 프랑스사람이야. 어렸을 때 일본에서 잠시 살기도 했는데, 그때 이웃집 소녀(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소녀가 아야일 거라고 쉽게 추측이 되는…^^)때문에 피아노를 접했어. 그때 마사루가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야와 아야의 선생님은 마사루에게 피아노를 배우라고 이야기했어. 마사루는 프랑스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2년 만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줄리어드 음대까지 입학하게 된 거야. 아직 어렸을 때 일본에서 만난 어린 소녀를 잊지 못하고, 소녀가 선물로 준, 피아노가 그려진 음악학원 가방을 간직하고 있었어. 그리고 마사루는 큰 키에 준수한 외모로 인기가 좋았다고 하는구나.

이렇게 주요 참가자는 네 명이란다.

가자마 진, 에이덴 아야, 다카시마 아카시, 마사루

 

2.

아야는 하마자키 교수의 딸 가나데가 콩쿠르 준비를 도와주었어. 가나데는 아야의 어렸을 때부터 팬이었대. 콩쿠르에 나갈 때 입을 옷도 빌려주었어. 적극적인 협조를 했어. 아야는 연습하러 학교에 갔다가 정말 잘 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피아노 연주 소리에 이끌려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어. 그곳에는 어떤 소년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그 소년은 아야와 눈이 마주치자 잽싸게 도망을 쳤단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소년은 바로 가마자 진이었단다.

드디어 1차 예선. 5일간 진행되며 참가자 90. 한 사람당 20첫째 날, 눈에 띠는 참가자는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온 제니퍼 챈과 마지막 주자였던 다카시아 아카시였어…. 둘째 날은 단연 마사루가 돋보였어. 피아노 실력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뛰어나 곧바로 스타가 되었단다. 마사루 때문에 마사루 다음에 연주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기도 했단다. 아야와 하자마 진은 마지막 날 연주했어. 하자마 진은 프랑스 지역 예선 때 있었던 일로 이미 소문이 자자해졌고, 아버지를 따라 양봉업을 해서 꿀벌왕자라는 별명도 붙었어. 그리고 그 소문이 헛된 것이 아님을 단 20분만에 보여주었어. 그리고 아야의 연주도 깊은 여운을 남겼단다. 아야의 연주를 관객석에 본 마사루.. 한 눈에 아야가 어렸을 적 일본에서 알게 된, 잊지 못하고 있던 그 소녀라는 것을 알았어. 아야의 연주가 끝나고 마사루가 아야를 찾아가고 재회를 했지. 아야는 마사루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사루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을 해냈어. 1차 예선이 끝나고 2차 예선에 통과한 사람은 모두 24명이었고, 예상대로 4명은 모두 통과했단다..

2차 예선은 40분 내외를 연주해야 해. 연주할 곡들은 주최측에서 선정한 주제곡들 중에서 고르고, 모든 참가자들이 주최국의 작곡가의 신곡을 연주하는 것이 있어. 올해는 히시누마의 <봄과 수라>라는 곡이야. 마사루와 아야는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준비를 했어. 그들은 콩쿠르가 끝날 때까지 어렸을 때 쌓다 말았던 우정을 다시 쌓았단다. 소설책 너머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어.

아카시는 무난하게 2차 예선을 연주했단다. 점점 실력도 늘어나는 것 같았어. 가자마 진은 스승님이 죽기 전에 해주신 말들을 생각하면서 준비를 했고, 가자마 진은 콩쿠르가 좋은 음악들을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라며 좋아했어. 마사루는 2차 예선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나, 특히 <봄과 수라>라는 곡의 카덴차가 뛰어났어. 카덴차라는 것은 연주자의 즉흥연주라고 생각하면 돼. 작곡자가 악보에 어떤 부분을 비어두어 연주가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란다.

콩쿠르에서 참가자들이 같은 곡을 연주하게 될 때, 이 카덴차 부분의 연주에 따라 곡의 성격이 많이 바뀔 것 같구나. 아무튼 마사루의 카덴차가 너무 뛰어나서,  아야는 그 음이 잊혀지지 않아 자신의 카덴차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았어. 그래서 카덴차를 연습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스승님의 친구의 집에서 연습을 했어. 그런데 아야를 몰래 쫓아오는 이가 있었으니 가자마 진이었어. 진은 같이 연주를 하자고 제안했어. 그러면서 아야는 진과도 친해졌지. 그리고 진과 피아노 연주를 하고 난 이후, 아야는 무엇인가 변한 듯한 모습이었어. 진의 연주를 통해 자신의 실력도 올라갔고, 자신만의 카덴차를 완성할 수 있었단다.

..

2차 예선 마지막날, 진의 파격적인 연주로 연주회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어. 진의 뒤이어 나온 아야는 그 뜨거운 열기를 다른 방식으로 감각적으로 색다른 연주를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단다. 2차 예선 결과 12명이 통과했는데, 주인공들 중에서는 아카시가 탈락했단다. 그리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온 제니퍼 챈이 탈락했는데, 제니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거친 항의를 하기도 했대.

가마자 진은 턱걸이로 합격을 했는데,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렸어. 그런데 공통적인 생각들은 다음 연주를 또 듣고 싶게 만드는 연주라는 거야.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불호보다 호가 점점 많아졌어. 한국 참가자들도 4명이나 12명이 하는 3차 예선에 통과한 것으로 나오는구나. 우리나라의 어린 피아니스트들이 국제 콩쿠르 대회를 많이 참석하는가 보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3차 예선과 여섯 명만 남은 본선그리고 최종 수상자…. 과연 누가 일등을 했을까? ^^

.

이 소설을 통해서 콩쿠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도 알게 되어 좋았단다. 이 책에서 소개된 음악도 찾아서 들어보았는데, 아주 좋았단다. 책의 앞부분에 이 책에서 소개된 음악의 작곡가와 제목을 정리해 주어서 찾아보기 편했단다. 새로 알게 된 음악가들도 있어서 좋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온다 리쿠라는 좋은 작가를 뒤늦게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의 다른 책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305)
음악은 항상 ‘현재’여야만 한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전시품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아름다운 화석을 캐냈다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그냥 표본에 그쳐버리기 때문이지.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다카시마 아카시라는 사람의 연주는 재미있었다. 수면의 잔물결, 시원스레 지나가는 바람, 칠흑 같은 우주까지 보였다. 저 사람 역시 자기만의 음악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641)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이런 걸 어떻게 치란 말이야,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야말로 악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수많은 음표들. 양손 화음이 끝도 없이 잔뜩 늘어서 있는 새까만 악보.
동경하던 낭만적인 2번을 몰래 연습해보았을 때는 해서는 안 될 장난을 치는 기분이었지. 물론 그때는 결국 흉내도 내지 못했다. 띄엄띄엄 연주하는 게 고작이라,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할 체력도 기력도 없었던 것이다.

(654)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에 아주 조금, 지상의 중력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언가를 덧붙인다면.
‘음악을 한다’는 것이 그에 가장 합당한 답 아닐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나타나는 순간에 곧 사라지는 음악. 그 행위에 정열을 쏟고, 인생을 바치고, 마음을 강하게 빼앗기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인간에게 덧붙은 작은 마법 같은 옵션 기능이 아닐까?
응, 어느 정도 진실을 담아낸 답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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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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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아빠가 읽은 <개인주의자 선언>이란 책은 손석희 앵커가 추천한 책으로 더욱 유명해진 책이란다. 지은이는 문유석이라는 현직 부장판사란다. 요즘 판사라고 하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해서 시민들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직업군이란다. 아빠도 요즘 이슈가 되는 재판 결과를 보면, 법에 의한 잣대라기보다 그 재판의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재판이야말로 가장 먼저 AI가 도입되어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단다.

판사들 중에 약자의 눈물에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판사들이 없지야 않겠지만, 그 수가 극히 적어 보이고, 오히려 돈에 약하고 권력에 약한 판사들이 더 많아 보이니 AI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야. 이 책의 지은이 문유석이라는 분은 어떤 판결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자신은 합리적 개인주의자라고 하니,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리고 손석희님이 추천한 글에서 보면 지은이 문유석이라는 분의 따뜻한 시선이 반가웠다고 하니, 그는 판사 중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런 판사이지 싶구나.

문유석 판사. 이 책은 아빠가 읽은 문유석 판사의 두 번째 책이야. 전에 소설 <미스 함부라비>라는 책이었잖아. 이 책도 읽기는 쉬었단다. 내용은 분명 묵직했지만….. 글 쓰는 재주도 많으신 분 같구나. 그가 이야기했듯이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쌓인 내공이 글쓰기로 나타나는 것 같더구나.

1.

개인주의자라고 하면 이기주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개인주의에는 앞에합리적이라는 말이 붙는단다. 현대사회에 오면서 혼밥, 혼술, 혼삶이라는 신조어들이 산출되는 것처럼 혼자 하는 것들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 개인적인 삶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세상이라는 것이 혼자 살 수는 없고, 둘 이상의 사회라는 것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행복이 아닐까 싶구나. 그런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개인의 행복이 예전에는 단체의 이익, 집단의 행복 등에서 우선 순위가 밀렸지만, 최근에는 그보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고 있는 분위기야.

그래서 얼마 전에 끝난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팀 동료의 승리를 위한 희생을 아름다움 희생만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도 이해가 가고, 아빠도 공감이 가더구나. 하루 중에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는 아빠도 아무래도 개인적인 시간보다 집단 생활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그리 사교적이지 못한 아빠로서는 그 시간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단다. 퇴근하고 와서 너희들이 모든 잠든 이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그런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시간이 되는 것을 보면 아빠도 개인주의자인가 보구나.

아빠가 생각하는 개인주의도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에 동의한단다. 그것을 다음처럼 정의 내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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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여기서 말하는 개인주의란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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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개성이 전부 다른데 집단에서 균일하게 요구하는 개인이 될 수는 없잖아. 각자 살아온 길이 다르고,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다르고, 그가 쌓아온 경험이 다르고, 읽은 책들이 다른데 말이야. 그런 것들이 쌓여가 만들어진 거야. 너희들도 커가면서 남들과 다른 자신을 만들어가게 될 거야.

2.

누군가 자신은 개인주의자라고 하면, 왜 그는 개인주의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일 거야. 행복이라는 것을 서인국 교수라는 분이 쓰신 책을 인용하여 설명하는데, 아빠도 그 내용이 무척 공감이 가더구나. 행복이란 것은 뇌에서 느끼는 쾌감인데, 그것은 결국 인간관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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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서교수(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돈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그룹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성이 높은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인간에게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이 핵심 과제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에 가장 필수적인 자원은 동료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활동, 즉 동료 및 이성과 어울리는 활동을 할 때 뇌에서 쾌감이라는 보상을 주어 이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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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람마다 모두 다르잖아.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많지만 성격에 따라 인간관계의 깊고 얕음이 있다고 하는구나.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른 것처럼 말이야. 어떤 사람은 맛있으면서 맛이 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인간관계에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야. 주로 내성적인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단다. 아빠가 내성적이다 보니 이 말에 공감이 많이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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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내성적인 이들도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미각이 지나치게 예민해 강한 맛의 음식에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이런 차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무조건 집단이 요구하는 술 잘 먹고 윗분 잘 모시고 분위기 잘 띄우는 씩씩한 전사로 거듭날 것을 강요하는, 그래야 어른 되었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예민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라면 이들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집단의 강요 없이,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취향이 맞는 작은 인간관계들의 고리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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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주의자들이 모여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들도 이야기를 했단다. 개인주의자들이 모여 있는 우리 시스템. 알면 알수록 답답하고 억울하지만 바꾸기는 어려운 시스템.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인데, 아빠의 개인적인 생각은 현재 제1야당만 사라지면 무엇인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

그 전에는 그들의 생트집그들에게는 그것이 생존의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생트집은 나라와 우리나리 시스템을 발전과 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여. 그저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려는 것으로만 보여. 나라와 국민이 어떻게 되든 생각하지 않고 말이야.모든 사회적인 이슈를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고 말이야.. 정말 꼴보기 싫은 집단이란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15년인데, 그때는 지금의 제1야당이 여당으로 8년째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였으니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썩을 대로 썩었을 때였어. 우리나라 시스템을 바라보고 있으면 얼마나 답답했겠니. 그런 엉망이고 답답한 시스템을 만든 이들이 바로 지금의 제1야당이란다. 나라를 믿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

그나마 위대한 촛불 혁명을 통해 대통령과 정부를 바꾸어서 숨통을 좀 트였지만, 아직 우리나라 시스템을 바꾸기에는 막강한 반대세력이 국회에 자리를 잡고 있단다. 그들마저 내쫓고 나면 더욱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구나. 그들을 촛불로 내쫓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구나. 선거로 내쫓아야 하는데, 아직도 2년이나 남았구나. 지금이라도 지난 9년 동안 잘못한 일들이 드러나면 벌이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좋겠구나.

촛불혁명 때 국민들이 깨달았던 바를 앞으로도 잊지 말고, 어떻게 선거를 해야 하는지 마음 속에 잘 간직했으면 좋겠어.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더욱 늘어나서, 비합리적인 집단주의자들을 내몰아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단다.

이 분은 학력고사 세대인데, 대학입학 시험에서 전국 수석이라는 독특하면서, 대단한 경험을 가지고 있더구나. 그러면서 오늘날 입시제도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이야기했는데, 앞으로 너희들이 가야 할 길인데, 공정하지 못한 길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단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평등한 기회의 장이 되어야 하지만,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기회의 장의 크기가 다른 것이 현실이구나. 하루 아침에 시스템을 다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이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란 쉽지 않은 것 같더구나. 이것도 조금씩 변해서 너희들이 입시를 준비할 때 쯤이면 지금보다는 공정한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고,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스트레스를 적게 받았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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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수(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돈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그룹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성이 높은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인간에게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이 핵심 과제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에 가장 필수적인 자원은 동료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활동, 즉 동료 및 이성과 어울리는 활동을 할 때 뇌에서 쾌감이라는 보상을 주어 이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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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이들도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미각이 지나치게 예민해 강한 맛의 음식에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이런 차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무조건 집단이 요구하는 술 잘 먹고 윗분 잘 모시고 분위기 잘 띄우는 씩씩한 전사로 거듭날 것을 강요하는, 그래야 어른 되었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예민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라면 이들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집단의 강요 없이,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취향이 맞는 작은 인간관계들의 고리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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