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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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나폴리 4부작 중에 제 3,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이야기를 해줄게. 책이 두꺼워서 무게가 나가긴 하나 보구나. 재미에 빠져 한 손으로 들고 한참을 읽다가 팔이 아프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단다. 우리와 공간도 다르고 시대도 다른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서 잘 안 읽혀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1, 2권에 이어 3권도 잘 읽혀지더구나.

3권은 2권의 끝부분에서 예고가 된 것처럼 1968년부터 시작되어 유럽을 휩쓸었던 68혁명이 주인공의 삶에도 영향을 주는 이야기로 시작된단다. 하지만 아빠가 사실 68혁명에 대해서 자세히는 몰라. 그냥 억압된 사회에 자유를 부르짖는 젊은이들의 변화의 바람으로만 이해를 하고 있는 수준이야. 특별히 그 시대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다른 책들에서 지나가듯 본 내용들이라서 아빠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을 수도 있어.

3권의 시작은 니노와 다시 만난 레누의 이야기로 시작한단다. 어린 시절부터 레누의 마음 속 짝사랑의 상대 니노를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의 성공과 함께 우연히 다시 만났잖아. 자신의 책에 대한 대담 도중 레누를 비판한 어떤 사람에 변호해주었던 니노. 니노를 보지 못했을 때는 몰랐지만, 다시 만나니까 자신이 니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어. 릴라의 전 남자친구이고, 릴라를 버린 나쁜 남자라는 것도 알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었단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한 몸이었지. 막 대학 교수가 된 피에트로….

앞서 이야기했던 68혁명..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그 바람은 이탈리아에도 넘어왔어. 레누와 피에트로 등 젊은이들이 모이면 혁명에 관한 토론하고 고민하고 그랬어. 그런 토론 속에서 실비아라는 여인을 미혼모를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실비아 아기의 아빠가 바로 니노였어. 니노.. 이 놈은 도대체 몇 명의 여자와 사귀는 거야. 릴라도 버리고, 실비아라는 여자도 버리고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한 거야.. 앞으로 니노가 여자 편력에 있어서는 카사노바가 형님으로 모시는 수준이야. 아무튼, 레누도 혁명의 한가운데 있었고, 그의 첫 번째 소설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어. 다만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면서 양극단의 평가를 받았지만 말이야. 레누의 소설을 혹평하는 경우는 외설적인 장면을 이유가 대부분이었어. 레누의 소설은 판매 부수가 급증하였고, 인터뷰도 자주 하고 독서 강연도 자주 하게 되었단다.

 

 

1.

레누는 고향 나폴리에서도 유명하게 되었어. 고향 친구들도 양쪽으로 갈려서 평가를 했지. 레누는 늘 궁금한 게 있었어. 릴라가 자신의 책을 읽었을까? 릴라는 자신의 책을 좋게 평할 것 같지 않았고, 그래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폴리 고향집에 들렀을 때 엄마와도 잦은 갈등을 했어. 레누의 엄마는 피에트로와 결혼도 탐탐치 않게 생각했어. 그런데 피에트로가 나폴리에 방문해서 살갑게 굴고 공손한 자세를 보이자, 엄마뿐만 아니라 레누의 가족 모두가 피에트로를 좋아하게 되었어.

어느날 엔초와 파스콸레가 찾아와서 릴라가 찾는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릴라를 몇 년 만에 만났단다. 손에 상처투성이였고, 몸 상태는 안 좋아 보였어.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던 거야릴라는 지난 몇 년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했어.

브루노의 햄 공장에서 일했다고 했잖아. 그곳에서 일은 험한 일이라서 늘 손에 상처가 생겼어. 그리고 사장 브루노와 남자 직원들의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어. 2권에서 릴라는 아들 젠나로와 함께 엔초와 지낸다고 했었지당시가 60년대였는데 컴퓨터의 완전 초기 모델이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엔초는 앞으로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상을 했고, 아무도 관심이 없을 때부터 컴퓨터를 공부했는데, 릴라도 같이 했어. 그들의 고향 친구 파스콸레가 찾아오곤 했는데, 파스콸레는 열혈 공산당원이 되어 공산당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공산당 집회에 릴라와 엔초를 데리고 가기도 했어. 그곳에서 나디아와 아르만도도 만났어. 그들은 릴라를 기억할 지 모르지만, 릴라는 레누와 함께 갔던 파티에서 봤던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어. 레누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인 갈리아니 선생님의 자녀들이면서, 나디아는 니노의 전 여자친구였거든

암튼 그들과도 알게 되었는데, 그들 모임 자리에서 릴라가 심장발작이 일어났어. 의사이기도 한 아르만도가 응급조치를 해주었고, 심장이 안 좋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 집회에서 릴라는 우연히 발언기회가 있었는데, 그녀는 햄 공장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여성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며칠 후 그녀가 말한 것이 그대로 인쇄되어 공장에 배포되었단다. 그녀가 원한 것은 이에 아니었어왜냐하면 잘못해서 공장에서 짤리면 돈벌이가 없어지거든. 햄 공장 앞에서는 좌파들이 매일같이 몰려와 시위를 했고, 얼마 뒤에는 파시스트들도 몰려와서 좌파와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단다. 릴라는 양쪽 다 불만을 나타냈단다. 나디아를 찾아가 해고라도 되면 책임질 것이냐고 따지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릴라는 어쩌다가 노동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자신의 공장의 사장 브루노에게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적어서 갖다 주기도 했어. 그런데 브루노의 햄 공장은 사실 브루노의 것이 아니었어. 뒤에서 조정하는 검은 손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솔라라 형제들이었단다. 릴라와 앙숙이었던 솔라라 형제들 기억나니? 마르첼로와 미켈로릴라는 사장실에 미켈레와 브루노가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그 자리를 뛰쳐나와 곧바로 집에 왔어. 그리고 그날 몸이 좋지 않아서 레누를 불렀던 거야.

 

 

2

레누는 릴라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나서 피에트로와 미래의 시어머니에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어. 그러자 미래의 시어머니는 레누에게 신문에 글을 기고해 보라고 했어. 레누의 소설이 성공하였기 때문에 레누의 글이 충분한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 했어. 레누는 그래서 신문에 햄 공장의 실상을 고발하는 글을 썼어. 그 기사를 본 브루노는 레누에게 연락을 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했어. 하지만 결국은 릴라의 요구 사항을 대부분 들어주었단다.

레누는 릴라를 계속 도와주었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심장 검사를 받도록 했고, 다행히 정상으로 결과가 나왔고, 다만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다고만 했어. 레누는 릴라를 도와주면서 그동안 쌓였다고 생각한 빚을 갚았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느끼고 있던 열등감도 해소했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릴라는 가끔씩 던지는 막말은 여전했고, 그로 인해 레누와 릴라의 사이는 좋았다 나빴다 했단다. 그래서 사이가 좋을 때는 서로 말조심을 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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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레누와 피에트로의 결혼레누는 결혼해서 피렌체에서 살게 되었어. 결혼 후에도 피에트로는 여전히 일이 먼저인 사람이었어. 그것 때문에 서로 의견차가 생기기도 하고 때론 격렬하게 다투게도 했어. 그러다가 딸 데데가 태어났고, 육아로 인해 레누는 힘들어했어. 첫 아기를 키우는 여느 엄마의 모습과 비슷했어. 그리고 아이 때문에 사회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책 쓸 시간도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첫 번째 책이 성공하고 나서 두 번째 책을 쓰지 못하고 있어서 레누는 잊혀져 가는 작가가 되었어.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둘째의 임신으로 스트레스는 더 커졌어.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어. 엄마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망설였는데, 엄마는 흔쾌히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었어. 엄마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기는 했지만 여전히 공허함을 느꼈어.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릴라에게 전화를 했어. 거의 매일 릴라와 통화를 했어. 릴라는 엔초와 같이 공부했던 컴퓨터 관련된 일을 시작했다고 했어. 레누는 그리고 둘째를 임신을 했을 때 두 번째 소설을 썼어. 나름 괜찮은 작품이 써졌다고 생각해서 시어머니에게 보냈지. 첫 번째 소설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이 시어머니였기 때문에 이번 소설도 가장 먼저 시어머니에게 보낸 거야. 그런데 이번 답변은 부정적이었어. 출판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지 않다고 했어. 실망을 하고 혹시나 하고 릴라에게 그 원고를 보냈는데, 릴라 역시 안 좋다고 했어. 레누는 그 원고를 포기했단다.

 

 

3.

둘째도 딸이었고 이름은 엘사로 지었어. 레누는 여전히 육아와 집안일로 그냥 그런 결혼 생활을 했고, 일을 좋아하는 남편과 다른 부부들처럼 사이가 좋았다 안 좋았다를 반복했어. 릴라가 바쁘다면서 자신의 아니 젠나로를 맡겨서 자신의 아이까지 셋을 맡아 돌보다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어.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젠나로를 다시 릴라에게 돌려보내기도 했어.

당시 이탈리아 사회는 극좌와 극우의 잦은 충돌로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는구나. 그 좌우의 극심한 충돌은 레누의 고향 나폴리에서도 일어났고, 이 일로 고향 친구 지노가 살해당하기도 했고, 그에 따른 복수극도 벌어지는 등 고향 나폴리 사회는 불안감에 휩싸였단다. 한편, 릴라는 원수라고 생각했던 미켈레가 새로 지은 데이터 프로세스 센터의 센터장을 맡게 되었다고 했어. 릴라가 솔라라 형제의 일을 맡게 되다니예전 같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레누는 릴라에게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전화를 해서 심하게 말다툼도 했어.

솔라라 집안의 두 형제, 미켈레와 마르첼로.. 이 인간들은 고리대금으로 돈을 벌었고, 온갖 부정적인 일들을 많이 해서 레누는 그들을 엄청 싫어했거든. 미켈레 솔라라.. 그 녀석도 사실은 속으로 릴라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른 친구를 통해서도 레누도 알게 되었어. 릴라의 모난 성격과 말을 사납게 하는데도, 릴라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면이 있었어. 릴라를 아는 남자들은 모두 릴라를 좋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레누가 릴라에게 미켈레와 엮였다고 뭐라고 하니까. 릴라는 레누에게 여동생이나 잘 챙기라고 날 선 말을 던졌어. 레누의 여동생 엘리사가 마르첼로 솔라라와 약혼을 하고 동거를 하고 있다는 거야.

화가 난 레누는 바로 고향집으로 왔어. 엄마에게 엘리스가 마르첼로와 약혼을 했는데 가만히 있었냐며 화를 내니 엄마는 오히려, 집에 무관심한 레누를 비난했단다. 엘레사의 저녁 초대에 어쩔 수 없이 레누도 갔었는데, 그곳에서는 마르첼로의 엄마의 60세 생일 잔치였어. 솔라라 집안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모였어. 심지어 릴라까지레누는 그 자리가 불편했어. 릴라와 만남도 반갑기보다 화가 나서 말다툼도 했어. 레누는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어. 친정집하고도 멀어졌고 릴라와도 멀어진 레누. 시누이 마리아로사와 친분을 쌓았어. 마리아로사는 예술가이면서 여성 운동도 했어. 예전에 레누가 대학 때 잠시 사귀었던 프랑코 남자가 극좌 극우의 충돌로 부상을 당했는데 마리아로사가 보살펴주고 있었어.

 

 

4.

어느날 남편 피에트로가 새로 알게 된 사람이라며 한 명 데리고 왔는데 다름 아닌 니노였어. 안보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니노를 보니 레누는 옛감정이 살아났고 자신이 여전히 니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사람 사귀는데 까다로웠던 피에트로가 니노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니노를 자신의 집에서 지내라고도 했어. 이 즈음에 레누는 다시 책을 썼는데, 이번에는 시어머니도 꽤 좋은 글이라고 했고, 니노에게도 글을 보여주니 무척 좋은 글이라고 칭찬을 해주었어. 그러나 레누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니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했어.

그런데 니노는 시간이 지나면서 피에트로를 멸시하고 조롱하고는 했어. 레누는 그런 니노 때문에 오히려 집안 분위기가 안좋아져서 니노에게 충고를 하기 위해 그의 방에 갔다가 니노의 유혹에 넘어가 그만 사랑을 하게 되었단다. 그 이후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랑의 늪에 빠진 레누와 니노. 특히 니노는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원했어. 당시 니노도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는데,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어. 니노는 자신도 헤어질 테니 레누에게도 이혼하라고 했어.

레누는 결국 피에트로에게 이야기하고 이혼하자고 했어. 레누는 피에트로가 지성인이니 때문에 이 일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잘 협의할 줄 알았으나, 피에트로는 예상과 달리 격렬한 반응으로 반대를 했어. 협박까지 하게 되어 레누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어. 이혼을 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편지를 하나 남기고 니노와 함께 니노의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단다. 레누는 그동안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왔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번에 니노에게 넘어갈 수가 있는지사랑의 힘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그것도 니노가 지금까지 해온 짓을 보면, 금방 배신을 할 것 같은데레누가 과연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랑에 눈이 멀었다지만, 너무 니노를 믿는 것 같구나.

여기까지 3권의 이야기야..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탈리아 가정 생활과 우리나라의 가정 생활이 오묘하게 비슷한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탈리아와 우리나라가 둘 다 반도라는 지리적 환경 때문에 두 민족들의 문화와 습성이 비슷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더구나. ,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나폴리4부작 마지막 이야기만 남았는데, 이미 다 읽었으니, 조만간에 이야기해주마~~

 

PS:

책의 첫 문장 : 내가 마지막으로 릴라를 만난 것은 5년 전 2005년 겨울이었다..

책의 끝 문장 : 드높은 창공에서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유일한 표면인 비행기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22)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리가 커지는 사실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 동네는 나폴리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과, 유럽은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야 하는 생각한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 유일한 우주 또는 무수히 많은 우주가 모두 병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물의 본질을 숨길 줄 아는 능력이다.

(60)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고자 하는 노력에 집중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었고 그 안에는 내가 있었다. 책장에 꽂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보니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비단 내 책뿐만 아니라 소설에는 나를 흥분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소설에는 날 것 그대로 요동치는 심장이 있었다. 아주 먼 옛날 릴라가 내게 함께 이야기를 지어보자고 했을 때도 그런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이다.

(506)
나는 성숙이란 결국 삶의 굴곡을 호들갑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적인 삶과 이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변화를 기다리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507)
여성의 고독은 슬픈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름의 문화나 전통을 만들어낼 기회도 없이 그런 식으로 자기 인생에서 상대방을 쫓아내버리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때면 생각이 중간에서 멈추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은 매력적이지만 결함이 많아서 당장 확인이 필요하고 더 발전시켜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 생각에 자신감도 믿음도 없었다. 그럴 때면 다시 릴라에게 전화해서 내 생각을 말하고 싶다는 욕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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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듣는다 - 정재찬의 시 에세이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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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정말 재미있게 읽은 시() 에세이가 하나 있어. 한양대 정재찬 교수가 쓴 <시를 잊은 그대에게>란 책이었어. 그 책은 정재찬 교수님이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보강한 책이었어. 시와 시인들의 숨겨진 재미있는 이야기들그리고 좋은 시를 알려주었고, 아빠의 메마른 감성에 촉촉히 적셔 주는 글들감동의 도가니였다고 해도 과장은 아닌 그런 책이었어. 그 책을 읽고 나서 선물할 일이 있거나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한동안 이 책을 선물하거나 추천을 해 주었는데 이 책을 이들을 읽은 이들은 모두 너무 좋았다는 회신을 주었단다.

그야말로 시를 잊는 아빠에게 시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던 책이야. 최근에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드라마도 하더구나. 아빠가 그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과 연관이 있겠지. 그런 정재찬 교수님의 그 다음 책 <그대를 듣는다>라는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첫 번째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너무 좋아서, 두 번째 책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커서 그 기대치까지는 조금 미치지 못했지만, 다시 한번 아빠의 영혼에 촉촉한 비를 내렸단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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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사랑이란 두 개의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다. 두근거리며 안았을 때, 안긴 그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질 대 우리의 심장은 더 두근거리게 된다. 둘의 가슴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엄청난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파동은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블랙홀 한 쌍이 합쳐져 생겨난 중력파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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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소재는 무한하다는 것이 맞겠지. 그래도 그 중에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싶구나. 사랑을 하게 되면 먼저 몸에 변화가 온단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몸의 변화그 중에 가슴이 두근두근…. 이 책의 시작의 첫 번째 꼭지의 제목은두근두근”. 사람의 감정을 가장 장 표현한 단어 두근두근이 단어만으로 참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시는구나. 너희들도 앞으로 이제 이런저런 일로 가슴 설레고 두근두근 거리는 일들이 많이 생길 텐데, 그 두근거림이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래.

 

 

2.

정재찬 교수님의 책은 분명 시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시뿐만 아니라 노래이야기도 있고 영화이야기도 있고, 소설 이야기도 있단다. 그래서 더욱 그의 글이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서 소개한 노래들을 찾아서 들으면서 책을 읽기도 했어. 생각나는 노래만 적어보아도, ‘나의 기타 이야기’, ‘서른 즈음에’, ‘사랑한 후에’, ‘서울 그곳은’, ‘시인의 마을’, ‘사노라면’…. 그 밖에도 많은 곡들을 소개해주었어. 소개해준 노래들의 공통점은 가사가 좋은 노래들이었어. 노래 없이 그냥 가사만 적어놓으면 한 편의 시가 되는 그런 노래들이었어.

그 중에 아빠도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그 노래 가사 중에 그런 말이 있어.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니라는 가사그 노래를 들을 때는 그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가사인데, 정재찬 교수의 글을 보니,,, 청춘이라는 것이 나빴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를 떠나갔냐청춘아그것도 언제 떠나갔는지도 모르게 떠나간 청춘떠나간 것은 떠나간 것이고, 이제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가사정채찬 교수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는 서른에 들어도, 마흔에 들어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쉰이 되어도 또 같은 생각이 들겠지?

그런데, 아빠에게서 정말 정춘이 모두 떠나버린 걸까? 어디, 조금은 묻어 있지 않을까? 그래, 노래처럼 인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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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떠나간 사랑을 한탄하는 듯하지만, 청춘의 세월이야말로 내가 잘못해 떠나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 억울함으로 어디선가 볼멘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잠시 흥분하는가 싶더니 이내 담담해진다. 그래서 더 애절하다. 가는 세월, 가는 청춘과 더불어 조금씩 잊혀 가는 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려는 듯, 화자는 깨달음처럼 정의를 내린다. 산다는 건 매일 이별하는 거라고. 매일 하루하루와 이별하는 거라고. 이제 진짜 서른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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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같은 영화 이야기도 소개를 많이 해주었단다. ‘마이 페어 레이디’, ‘두근두근 내인생’, ‘사운드 오브 뮤직’, ‘클래식’, ‘인 타임’, ‘우아한 세계’, ‘죽은 시인의 사회’…

이 책이 시에 관한 책이다 보니 죽은 시인의 사회는 자세히 이야기해주었어. 아빠도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그 이후에도 서너 번은 더 본 것 같아. 참 재미있는 영화였거든.. 너희들도 조금 더 크면 같이 이 영화를 한번 더 보자꾸나. 이 영화에는 명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이제는 조금 식상하기까지 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라틴어란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빼먹을 수 없는 말이야. 얼마 전에 읽은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에서도 이 영화화 이 말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잖아. 정채찬 교수님은카르페 디엠(Carpe Diem)’에 대하 해석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 그 말의 어원을 설명해 주시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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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그에 이어지는 장면에서 바로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라틴어가 나온다. 중세 기독교 시대를 지배했던 언어가 지상의 명령처럼, 하나의 성스러운 주문처럼 학생들에게 던져진다. 영화 속 한글 자막은 한결같이 이 구절을현재를 즐겨라또는오늘을 즐겨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원래 영화에서는 카르페 디엠에 대해 이야기하기 직전, 키팅이 한 학생에게장미꽃 봉오리를 따려면 바로 지금이니 언제나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오늘 이렇게 활짝 핀 꽃송이도 내일이면 시들고 말지어다라는 로버트 헤릭의 시 <To the Virgins, Make Much of Time>을 읽힌다. 그러나 나서장미꽃 봉오리를 따려면 바로 지금이니의 정서를 가리키는 라틴어가 곧 카르페 디엠이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때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함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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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디지털 세계가 되고, 스마트폰이 세상을 점령하면서 점점 문학하는 사람들의 밥그릇이 작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중에 시인은 더욱 그렇다는구나. 책을 읽더라도 시집보다는 소설을 선호하잖아. , 아빠도 그러니까 말이야. 그렇다 보니 시 짓는 것은 가난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시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많은 돈을 번 정재찬 교수님이 시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그래서 이 책에서 그런 시인들의 이야기도 해준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좀더 시를 사랑해주고, 시인들을 사랑해 달라고 말이야. 아래와 같은 시를 읽으면 짠해지면서, 시에 더욱 관심 좀 가져야겠구나 싶더구나. 좋아하는 시 한두 편은 늘 외울 수 있는 그럼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어. 시인들이 대접을 많이 받아서, 좋은 시들을 많이 써서, 메마른 디지털 세계를 촉촉히 적셔주는 단비 같은 역할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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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 순산하려고 온몸 비틀다가

깜박 잊어 삶던 빨래를 까맣게 태워버렸네요

남편의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을

내 시 한 편과 바꿔버렸네요

어떤 시인은 시 한 편으로 문학상을 받고

어떤 시인은 꽤 많은 원고료를 받았다는데

나는 시 써서 벌기는커녕

어림잡아 오만 원 이상을 날려버렸네요

태워버린 것은 빨래뿐만이 아니라

빨래 삶는 대야까지 새까맣게 태워 버려

그걸 닦을 생각에 머릿속이 더 새까맣게 타네요

원고료는 잡지구독으로 대체되는

시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시의 경제는 언제나 마이너스

오늘은 빨래를 태워버렸지만

다음엔 무얼 태워버릴지

속은 속대로 타는데요

혹시 이 시 수록해주고 원고료 대신

남편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 보내줄

착한 사마리언 어디 없나요

                      - 정다혜, <시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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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누구에게나 상처 주고 상처받은 나날들이 있을 겁니다.

책의 끝 문장 : 의외로 시는, 소망은 힘이 쎄다.

(58)

무릇 욕망의 과잉은 예술적 성취에 오히려 해가 되는 법, 그러기에 대체로 아마추어가 전문 작가보다 더 감정이 풍부하고 진실하고 의욕적인 편이지만, 예술적 결과는 그에 비례하지 않는 것. 하지만 철없고 순수했던 그 시절, 열정으로만 가득 차고 미숙했던 그 시절이 그래서 아름답고 그리운 것 아니겠는가.

(70)

이야기보다 목소리를, 목소리만이 아니라 침묵까지 듣는 것이 진짜 경청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도 퍽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궁극적인 전언(傳言), 곧 메시지가 아닐 때가 많다. 어떨 땐 그냥 말하는 것 자체가 그의 목적일 수도 있다. 진짜 말하고픈 전언이 표면의 전언과 반대일 때도 있다. 그러기에 고생한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진실은 목소리에 있지, 이야기에 있지 않다는 것 아니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112)

이제는 유행어처럼 즐겨 쓰게 된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문제는 이 말을 고난의 시절에만 쓴다는 것이다. 원래 이는 구약 성서의 인물 다윗이 기쁠 때 교만하지 않게 하는 동시에,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말로 반지에 새긴 글귀가 아니었던가. 기쁜 오늘 하루도, 힘든 오늘 하루도, 이 또한 모두 지나가리라. 그러기에 전인권은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에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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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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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독서 편지가 너무 늦어져서 미안하구나~~ 나폴리 4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이야기해줄게. 1부에 이어지는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 1권을 아주 짧게 요약을 하면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같이 놀고 공부를 했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릴라는 가정형편상 학업을 중단하고, 레누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을 걸었지. 그러면서 둘 사이는 점점 거리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 정점은 릴라가 십대의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었잖아.

1권의 마지막 부분이 릴라가 결혼하는 장면으로 끝이 났었잖아. 조금 자세히 이야기하면 결혼식에서 릴라는 남편 스테파노에게 배신감을 느꼈었지. 릴라가 그렇게 증오하던 마르첼로를 비롯한 솔라라 집안의 형제들을 결혼식에 초대했기 때문에

 

 

1.

, 그럼 2권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책 표지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단다. 왜냐하면 이미 1권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한 성격하는 성격들이었거든. 서로 조금이라도 조심들 안 하면 서로 송곳 같은 말들을 쏟아냈었거든. 심지어 레누와 릴라 사이에서도 말이야.

릴라는 결혼식에서 신랑 스테파노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마르첼로 때문에릴라는 마르첼로는 아주 싫어 했거든. 스테파노는 사업상 마르첼로와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고 했어. 그러니 어떻게 결혼식에 초대를 안 할 수 있냐고.. 릴라와 스테파노의 신혼여행은 최악이었어. 릴라는 마르첼로 때문에 스테파노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고, 스테파노도 결혼식 마친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 동안 온순하고 순진한 양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릴라에게 화를 내고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얼굴을 주먹으로…. 릴라의 얼굴에는 커다란 멍이 들었어.

신혼여행을 다녀온 릴리가 한동안 레누를 찾지 않아서 레누가 섭섭해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릴라가 자신의 멍든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던 거야. 릴라의 결혼이 시작부터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저 부잣집에 앉아서 부잣집 안주인 역할만 남아 있을 뿐이야. 사랑과 배려와 행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 릴라는 레누에게 자신의 집에 와서 공부하라고 했어. 당시 레누는 마음이 복잡했단다. 레누가 어렸을 때부터 짝사랑하던 니노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니노는 레누를 마음에 두지 않았어. 릴라가 결혼한다고 해서 경쟁심에 그냥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 안토니오와 사귀었는데 아무리 안토니오와 만나도 자신의 속마음은 니노를 향했어. 그래, 사랑이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어떨 때는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한단다. 레누는 이런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릴라의 제안을 받고, 릴라의 집에 와서 공부도 하고 수다도 떨다가 스테파노가 퇴근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어. 결혼 생활을 포기한 듯한 릴라에게도 레누의 방문은 활력소가 되었어.

한편, 레누의 남자친구 안토니오는 군대 갈 걱정을 심하게 했어. 스테파노, 마르첼로는 돈으로 군대 면제를 해서 걱정이 없었대. 돈 많은 이들이 돈을 찔러주고 군대 안 가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구나. 안토니오가 군대 걱정을 너무 심하게 해서 레누는 릴라에게 도움을 청했고, 릴라는 마르첼로에게 도움을 달라고 했어. 이 소식을 들은 안토니오는 실망했다고 했어. 자신의 일을 자신이 경멸하는 솔라라 형제들에게 부탁을 했다고 말이야. 헤어지자고 했어. 사실 레누도 안토니오에 대한 사랑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라서 그냥 담담히 받아들였어. 그리고 안토니오가 자신이 없으면 못살거라 생각했는데 잘 살아갔단다.

스테파노는 솔라라 집안의 미르첼로와 미켈레 형제들과 구두 사업을 같이 했어. 스테파노는 구두 사업 때문에 식료품점은 릴라에게 맡겼지. 솔라라 형제는 구두 가게에 릴라의 결혼식 사진을 말도 없이 걸어놓았다가 스테파노와 티격태격했어. 릴라의 미모는 점점 뛰어나서 결혼식 사진은 그 어떤 모델 사진에 뒤지지 않았거든. 홍보용으로 걸어 두었던 거지. 릴라도 자신의 사진을 버젓이 걸어 두는 것을 싫어했어. 그러면서 레누에게 도움달라고 하면서, 가위로 뚝딱뚝딱 여기저기 자르더니 현대예술 작품 같은 분위기로 만들었어. 아무튼 릴라는 어려서부터 이것저것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

릴라는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즈음에 임신을 했는데, 10주 만에 유산을 했단다. 이 일도 스테파노 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거리가 되었어. 시작부터 틀어진 결혼 생활, 다시 제 자리로 돌이키기에는 릴라의 자존심은 무척 쎘고릴라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2.

릴라에게 행복과 사랑은 없었지만, 돈은 있었어. 고향 친구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고, 레누에게도 새학기 교과서를 사주기도 했어. 레누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공부를 잘 해서 선생님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어. 특히 갈리아니 선생님이 레누를 좋아하셨단다. 갈리아니 선생님은 이례적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파티에 레누를 초대했어. 레누는 갈리아니 선생님이 여는 축제는 지성인들이 모이는 품격 높은 파티라고 생각했어. 혼자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즈음, 릴라가 같이 가자고 했어. 레누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어. 파티에서 릴라의 행동이 너무 튀거나 아니면 자신보다 릴라가 더 관심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지.

그런데 그 파티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어. 레누가 어렸을 때부터 짝사랑을 해왔던 니노. 그런데 반가움도 잠시.. 니노가 갈리니아 선생님의 딸 나디아와 연인관계였던 거야. 그날 파티에서 레누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그들과 이런 저런 토론도 잘했지만 릴라는 전혀 그렇지 못했어. 릴라도 사실은 지루하고 흥미 잃은 결혼생활에서 돌파구가 있을까 하고 같이 갔던 것인데, 그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었던 거야. 그 파티에 다녀온 이후 레누와 릴라는 한 동안 연락을 안하고 지냈단다. 릴라가 삐쳐 있었던 거야.

릴라의 오빠 리노와 스테파노의 여동생 파누차의 결혼식이 있었어. 레누도 초대되어 갔지만 여전히 릴라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아는 척은 안 했어. 결혼도 하기 전에 피누차는 임신을 했는데, 결혼한 지 한참이 된 릴라는 여전히 임신을 하지 않았어. 그것이 스테파노와 릴라 집안의 걱정거리였어. 정작 릴라는 전혀 걱정을 안하고 있는데 말이야. 피누차는 레누에게 부탁해서 릴라를 산부인과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 피누차의 간곡한 부탁으로 레누는 다시 릴라의 세상에 들어왔단다. 레누와 릴라는 서로 화해를 했고, 레누의 설득으로 릴라가 산부인과 병원을 다녀왔고, 의사는 릴라의 건강을 위해 휴가를 떠나라고 권고를 했고, 릴라는 올케인 피누차, 엄마 그리고 레누와 함께 이스키아 섬으로 휴가를 떠났어.

레누가 함께 했던 이유는 이스키아 섬에 가면 니노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어. 니노는 이스키아 섬의 근처에 친구인 브루노의 집에 있다고 들었거든. 이스키아 섬에서 레누의 예상대로 니노와 그의 친구 브루노를 만났어. 릴라와 피누차도 같이그들은 매일 해변에서 만나면서 친하게 되었고, 오묘한 관계가 만들어졌단다. 그들은 모두 한창 젊은 때가 맞긴 했지만, 릴라와 피누차는 결혼한 몸이었으니까그런데도 사랑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잖아. 브루노와 피누차는 서로 사랑의 감정이 생겨났는데, 피누차는 자신이 그런 감정이 일어나는 것에 두려워 이스키아 섬을 떠났어. 그리고 레누는 니노와 썸씽을 만들고 싶었지만, 니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였어. 니노의 관심은 속상하게도 오직 릴라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유부녀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말이야.

어느날 릴라가 레누에게 말하길 니노가 자신에게 키스를 하려고 했다는 거야. 릴라는 결혼한 유부녀이기 때문에 거부를 했다는 거야. 하지만 그들은 이내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어. 처음에는 몰래 애정 표현을 했지만, 얼마 안가 대놓고 애정 행각을 벌였어. 레누는 심한 배신감으로 괴로워했지만, 릴라가 그들의 사랑을 위해 도움을 청할 때는 거절할 수 없었어.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이스키아 섬에 놀러 왔던 동네 친구들에 의해 릴라와 니노의 다정한 모습이 들키게 되었고, 곧 남편 스테파노의 귀에까지 들어갔어. 릴라는 스테파노에게 온갖 거짓말로 변명을 해했어. 스테파노는 릴라의 변명을 믿었는지 모르겠지만, 휴가를 중단하고 나폴리로 데리고 갔어. 휴가에서 다녀온 이후 레누와 릴라는 또다시 일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단다.

레누는 공부에만 몰두했어. 고등학교 졸업시험도 우수한 성적으로 패스를 했지. 학교 선생님이 대학 진학을 적극 추천했고, 레누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피사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단다. 레누는 나폴리는 떠나 피사로 가야했지. 태어나서 줄곧 지냈던 나폴리를 떠나면서 고향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했어. 결국 이때 릴라에게 인사차 릴라가 운영하고 있는 구두 가게에 갔었어. 그런데 그곳에서 니노를 보았어. 이스키아 섬에서의 휴가 이후 릴라와 니노는 계속 위험한 밀애를 하고 있었던 거야. 니노는 릴라를 위해 여자친구 나디아와 헤어지고 대학 공부마저 포기했다고 했어. 릴라는 니노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읽기도 하면서 지식을 쌓았고릴라는 머리도 똑똑했잖아. 그러던 중 릴라는 임신을 했어. 니노의 아이였지. 릴라는 스테파노에게 모든 진실을 이야기하고 스테파노를 떠났어. 릴라는 불행한 부자를 버리고 행복한 가난을 선택한 거야.

니노와 허름한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했어. 하지만 그들의 동거 생활은 23일만에 끝이 났단다. 릴라의 잘못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니노의 갑작스런 배신이었어. 니노는 그냥 그들의 아파트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 나쁜 놈.

 

 

3.

릴라는 혼자 아파트에서 생활하다가 고향 친구 엔초가 와서 다시 나폴리로 데리고 왔어. 엔초도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초등학교 때 릴라와 수학경합을 한 이후부터 쭉 릴라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어. 릴라는 돌아와서 니노의 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이름을 젠나로라고 지었어. 스테파노는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해서 젠나로를 잘 대해주었지만, 릴라에 대한 사랑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어. 오히려 스테파노가 이번에는 대놓고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어. 안토니오의 동생 아다였어. 아다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고, 스테파노에게 릴라와 이혼을 하라고 했지만, 스테파노는 그냥 그 상태로 지냈단다.

자존심 쎈 릴라가 그냥 있을 리 없었지. 그냥 혼자 돈 벌며 살고 싶어했어. 그런 마음을 알았던 엔초가 제안을 했어. 같이 지내자고릴라는 엔초의 제안에 따라 같이 지내기로 했지만, 사랑은 아니었어. 아예 대놓고 신체적 접촉은 없을 거라고 엔초에게 이야기했고, 엔초도 알겠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릴라는 아들 젠나로와 함께 엔초와 지내게 되었고, 브루노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햄 공장에 취직을 해서 막일을 하게 되었단다.

한편 대학에 들어간 레누는 시골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벗어내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어. 그러다가 명문가의 아들 피에트로와 사귀게 되었지. 대학 생활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금방 휙 지나갔어. 졸업 즈음에 레누는 심심풀이로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공책에 긁적였어. 그걸 피에트로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학구파 피에트로는 그 소설을 거들떠 보지 않았으나, 피에트로의 엄마가 그것을 읽고 너무 좋다고 책으로 내자고 했어. 피에트로의 엄마는 연줄을 통해 후다닥 책으로 출간을 했어. 레누의 소설은 이내 큰 성공을 거두었어. 그리고 여러 매체를 통해 인터뷰 요청도 들어왔고그런 작가의 대담 같은 행사에서 다시 니노를 만나게 되었단다. 여기까지가 2권의 이야기란다.

레누의 삶과 릴라의 삶. 그들은 순간순간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들이 늘 옳은 것만 아닌 것 같아. 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선택을 하게 돼. 그 선택들이 자신의 삶의 길은 전혀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해.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깨닫는 순간, 돌이키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것을 아는 경우도 있어. 그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레누와 릴라도 그런 상황에 닥쳤을 때 현명한 방법을 찾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어. 그래서 상대방에게 아픈 소리도 내뱉고 그러는 것 같아. 그런 것이 젊음이야. 그때는 몰랐지. 그렇다고 지났다고 해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어. 나이를 먹고도 잘못된 선택의 결과에 대해 돌이킬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몰라. 그저 순응하는 법을 배우게 될 뿐이지

, 이제 레누와 릴라… 3권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PS:

책의 첫 문장 : 1966년 봄, 릴라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내게 금속으로 만든 상자를 하나 맡겼다.

책의 끝 문장 : 그는 다름 아닌 니노 사라토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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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30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세바시 강의를 몇개 들었는데 그중에 한 강사가 자기 아버지가 죽기전까지 항상 편지를 일주일에 한번씩 딸에게 줬는데 거기보면 독서에 대한 명언과 글이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후 매일 아침 아버지의 편지중에 하나씩 꺼내서 읽고 아버지는 떠났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살아계신다고 하던 그 이야길 들으면서 북홀릭님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멋지세요 전 늘 생각만합니다

bookholic 2018-08-31 10:45   좋아요 1 | URL
저는 큰 의미없이 리뷰를 편지 형식을 빌린 것 뿐이라..^^ 그런데 애들과 편지 노트를 하나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요.. 자주 안쓰게 되더라구요.. 카알벨루치님 말씀을 보니 그 편지노트를 자주 써야겠네요~^^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30)

전력망이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강화돼 있었더라면 전력 공급이 멈추지 않아 이 재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원이 공급됐더라면 이미 구비된 기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방파제가 쓰나미보다 높았더라면 안전 설비가 침수되지 않았을 것이고, 일반 전원, 백업 전원, 백업의 백업 전원이 유지돼 재양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디젤 발전기와 케이블이 다양한 높이에 설치돼 있었거나 냉각수가 필요 없는 공기 냉각식 발전기가 있었다면 이런 장비에 의해 일부라도 재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배터리의 일부라도 쓰나미 피해를 당하지 않는 곳에 구비되거나 여덟 시간 이상 지속됐다면 재해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격납 건물 내 원자로 압력 용기 내부의 압력을 낮추는 장치가 구비돼서 디젤 구동 소화 펌프가 작동되었더라면 재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실패했을 때 필요한 명확한 계획이 있었더라면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39)

핵기술이란, 말하자면 천상의 기술을 지상에서 손에 넣은 것과 같다. 핵반응이라는 것은 천체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지상의 자연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자연현상을 지상에서 이용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심각하다. 모든 생명에게 방사능은, 그것에 대해 전혀 방어할 준비가 안 돼 있는 위협이다. 방사능은 지상의 생명이 영위하는 원리를 교란하는 이물질이다. 지상의 세계는, 생물계도 포함해 기본적으로 화학물질에 의해 구성된다. 그리고 그 순환은, 기본적으로 화학물질의 결합과 분해라고 하는 화학과정의 범위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핵문명은, 그렇게 파멸의 순간을, 언제나 시한폭탄처럼, 제몸에 품은 채 존재하고 있다. 이 위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그 시한장치의 째깍째깍하는 소리가 점점 커져 우리 귀에 들어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_다카기 진자부로, 1986

(68-69)

일본이나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원전 사고가 나면 정부와 원전 업계가 나타내는 반응은 후쿠시마 이후 일본을 모방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그들은 모든 정보와 원전 부지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국가의 안보 우려를 언급할 것이다. 재해 후 사람들을 정보에서 차단하는 능력은 바람직하지 않은 특권이다. 과학 기자들에게 어떤 수준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며, 국가의 안전 보장을 위해 어떤 수준의 재량이 필요한지 정할 필요가 있다. 이 합의를 위한 틀이 필요하다. 지금은 이런 중책이 조사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재해 시 예상되는 시나리오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문제조차도 과학자와 정치인 사이에 아무런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최고의 과학자들이 연방 의회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과 접촉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충격을 받았다. 20년 전 체르노빌 사고는 이렇지 않았다. 독립적인 입장의 과학자와 언론인, 정치인 사이의 지속적이고 열린 커뮤니케이션이 새로운 원자력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86)

우리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실시한 관찰 조사는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은 관심을 가졌더라도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심사의 대상이 되는 과학 논문을 발표하는 등 끝까지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 분야에 대한 재정 지원은 없다. 과학자들도 배관공처럼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원전 사고와 관련된 정부나 규제 기구는 방사능이 야생 생물, 더 나아가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13)

체르노빌 방사선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선천성 이상 비율이 상승했다는 보고는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묵살되어왔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국제원자력기구와 세계보건기구, 유엔개발계획 등의 조직들이 단호하게 묵살한 것을 들 수 있다. IAEA이 지역의 방사능은 상대적으로 저선량이므로, 출산율을 떨어뜨린다고 볼 수 없다. (…) 사산, 비정상적인 임신, 출산 합병증의 수와 아이의 건강 전반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는 없다. (…) 선천성 기형이 완만하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 이를 제대로 보고하는 병원이 늘어난 것을 뜻한다고 생각되며, 방사능과는 관계없다고 단언했다.

(118)

정치인들은 확실한 과학적 증거가 없고 여론의 지지가 없는 상태에서도 정책을 주장하고 수행한다. 그러나 그들은 의료 전문가가 지지하는 예방 원칙에 근거할 때 그것이 시민과 환경에 무해하다고 명시할 의무가 있다. 체르노빌의 방사선이 기형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IAEA의 의견은 이 예방 원칙에 모순된다. 그뿐만 아니라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기형을 유발하는 직접 영향 또는 잠재적인 영향을 근거 없이 부정한다면, 올바른 조사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우리의 조사활동을 계기로 저선량 방사선의 기형 유발 관련 연구가 앞으로는 지속적으로 지원받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러한 연구 성과가 앞으로 진행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오염지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156)

우리는 오염 수준을 어떻게 파악할까.  1킬로그램당 1200베크렐이라는 기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두 가지를 기억하자. 방사선에는 안전한 레벨이란 없다는 것, 즉 세슘134와 세슘137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서 방출하기 전까지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이라는 것이다.

(191)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 행성의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 나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에게 우주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잠시 침묵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생명종이 우리와 같은 진화 단계에 도달하며, 스스로를 파괴할 테니까.”

(193)

우리의 권리 의식은 기이하다. 30퍼센트의 전기를 낭비하면서도, 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대부분의 사람은 짐작조차 못 했다. 이런 사람들은, 예를 들어 우리 모두가 빨래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원전에서 만들어내는 것과 거의 같은 양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고, 의사와 과학자에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설명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삶의 방식과 원전이 초래할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사람들을 계몽하는 것, 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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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8-27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안그래도 주말에 체르노빌 근처에 있는 폐허가 된 마을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를 보고 좀 많이 심난했어요.
게다가 과학자들의 불확실한 태도로 인해 고통받는 노동자에 대한 책까지 읽고나니.....
그런 주말을 보내서일까요. 이 리뷰가 남달리 평소보다 좀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bookholic 2018-08-28 09:45   좋아요 1 | URL
핵발전소 보유 세계 상위 5개 나라중 대형사고 발생하지 않은 두 나라 중에 하나... 핵발전소 밀집도 세계 1위... 그게 우리나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더 탈핵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시로 납치하다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1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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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여전히 아빠는 시읽기를 어렵다고 생각한단다. 그래도 좋은 시를 만나면, 그 시가 비록 짧더라도 소설 한 권을 읽은 것만큼 감동을 받는 경우도 있어. 시는 읽고 싶은데,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아빠 같은 사람들에게 류시화님이 가끔씩 내는 시선집은 많은 도움이 된단다. 류시화님은 자신의 시와 산문으로도 아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지만, 좋은 시를 소개해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준단다. 이번에 읽은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야.

시로 납치하다. 제목도 잘 지으셨네. 시로 사람들의 마음을 납치했다는 의미겠지? 류시화님이 페이스북을 하면서, 가끔씩 그곳에 시를 소개를 하고 자신의 생각을 남기곤 하셨는데, 그 글들을 고치고 다듬어서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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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못할 수도

   - 제인 케니언

 

건강한 다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

흠 없이 잘 익은 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개를 데리고 언덕 위 자작나무 숲으로 산책을 갔다.

오전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누웠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은촛대가 놓인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벽에 그림이 걸린 방에서 잠을 자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느 날인가는

그렇게 못하게 되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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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고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니.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렇게 좋은 시를 만나게 해준 것에 대해 류시화님한테 고마움을 느끼는 거야. 이 책이 아니라면 이런 시를 아빠가 어디서 만나겠니. 이런 것이 시의 힘이 아닌가 싶구나. 아빠가 설명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류시화님의 설명을 잠깐 읽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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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렇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얼마나 축복된 시간인가. 살아 있다는 것은 큰 기회이다. 특별한일상들이 사라질 날이 곧 올 것이기 때문이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두 발로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 삶은 수천 가지 작은 기적들의 연속이다. 그것들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행간마다늦기 전에 깨달으라라는 말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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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좋은 시들과 그 시에 살을 붙여주는 듯한 류시화님의 글들이 가득했단다. 그리고 아빠가 이 책을 읽을 때 여건이 되면 소리 내서 천천히 명상하듯 읽어보기도 했단다. 시라는 것으로 소리 내서 읽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거든.. 이 시에 소개된 많은 시들 중에서 특히 아빠의 가슴을 뛰게 한 시들은 따로 발췌해 보았단다.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너희들의 가슴을 뛰고, 너희들의 마음을 울린 시는 어떤 시를 골라보고 아빠가 고른 시들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궁금하구나.

 

 

2.

아빠가 정말 존경하는 정치인인 노회찬 의원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구나. 평생을 청백리처럼 깨끗하게 살아왔고 자신은 풍족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애만 쓰시다가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작은 흠집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할 만큼 그에게는 치명적인 것으로 생각하셨나 봐. 다른 사람들에게 누구나 있는 흠이었는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이었단다. 그가 흠이 있더라도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일과 그의 철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용서하고 앞으로 더욱 잘 하면 된다고, 아니 그냥 지금까지 해온 만큼만 하셔도 된다고 격려를 해주셨을 텐데 말이야.

그가 세상을 떠난 날, 아빠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단다. 그가 떠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구나. 아빠가 노회찬 의원님 이야기를 불쑥 하는 이유는 이 책에 그를 떠오르게 하는 시 한 편이 있어서야. 숨지 말 것. 이 짧은 시는 마치 그를 노래하는 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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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지 말 것

 

  - 에리히 프리트

 

시대의

일들 앞에서

사랑 속으로

숨지 말 것

 

또한

사랑 앞에서

시대의 일들 속으로

숨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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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하겠다고 하면 그곳에 온 힘을 쏟으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짧게 시로 표현하는 것이 더 강렬한 것 같구나. 그 일이 시대를 위한 일이든, 사랑이든 말이야. 노회찬 의원님이야말로 시대의 일들 앞에서 숨지 않고 맨 앞에서 서셨던 분이었거든. 다시 한번 그의 영면을 기원하며, 그가 남긴 꿈과 못다한 숙제를 그와 뜻을 같이 했던 이들이 이루어낼 수 있기를 바래본단다.

 

 

2.

시를 영어로 poem이라고 하는데, 그냥 그런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 시의 어원이 있다고 하는구나. 시의 그리스 어원은 poiein으로 뜻은창조하다라는 뜻이라고 하는구나. ()는 창조해 내는 것이야.  무엇을? 너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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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poem)의 그리스 어원은창조하다(poiein)’이다. 시는 우리에게너의 삶을 창조하라고 말한다. 삶에는 특별한 순간들이 있다. 비가 내리는 순간, 꽃이 피는 순간, 사랑과 고독의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 시는 그 특별한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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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첫째가 시를 한편 썼다면서 보여주었잖아. 자리에 앉아서 화이트보드에 그럴싸한 동시 한 편 뚝딱. 또 조금 있다가 아까 쓴 시는 지우고, 또 다른 동시 한 편을그래 시라는 것이 읽기는 어려워도 잘 생각해보면 그나마 쉽게 접해볼 수 있는 문학 장르가 아닐까 싶구나. 소설을 써 본 사람은 드물어도 시를 써 본 사람은 많을 테니까 말이야. 너희들도 형식과 소재에 구애 받지 말고, 너희들의 삶과 생각과 일상을 시로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일기를 시로 쓰는 것은 어떨까?

 

 


(46)

필요한 것은 ‘사랑받지 않을 용기’이다. 사랑을 구걸하지 않으려면 고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군중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강둑에서 자신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사람들이 당신을 곁눈질로 쳐다보면 당신도 곁눈질로 보며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모순 덩어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모순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머리만으로는 멋진 춤과 음악을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이 나를 추방하기 전에 나 스스로 추방자가 되어야 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신이 준 선물이다.

(153)

한번은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가서, 이제 자식들도 다 컸으니 어머니 자신의 삶을 살라고 하면서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오늘처럼 음식을 만들어 네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음식이 너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하시면서 얼른 또 다른 접시를 내오셨다. 내가 갖고 있는 ‘행복’의 개념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 나는 아직도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그 음식들이 아니면 맛을 잘 모른다.

(171)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이 크다. 그러나 내면의 포기가 주는 고통은 더 크다. 대시인의 시가 감동을 줄지라도, 자신이 쓴 시만큼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는 시는 없다. 시를 써서 바람에 읽어 주면 바람이 머릿결을 쓰다듬어 줄 것이다. 겨울강에게 읽어 주면 강물이 얼음장 밑에서 화답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178)

결국 우리가 후회하는 것은 시도한 일보다 시도하지 않은 일들이다. 인생의 광물을 끝없이 캐내지 않은 광부에서 남는 것은 불만뿐이다. 행복 여부는 우리가 외부에 행사하는 통제력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시도에 달려 있다. 잘랄루딘 루미는 "너는 자신이 문의 자물쇠라고 생각하지만 너야말로 그 자물쇠를 여는 열쇠이다."라고 썼다. 자신이라는 열쇠로 어떤 자물쇠를 열려고 시도해 보았는가? 산골짜기 모래를 파헤쳐 사막을 만들려고 해 본 적이 있는가? 금을 발견하든 발견하지 못하든 쇳조각이라도 캐내 한번 깨물어 보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니고 무엇인가?

(181)

내일(5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이다. 정치인을 떠나 인간적으로 내가 좋아한 사람이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오래전, 그가 종로구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였다. 저녁 무렵이었는데, 선거 유세를 하기 위해 내가 사는 동네에 왔다. 그의 연설을 듣는 이는 선거 운동원을 제외하면 나를 포함해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열정을 다해 말을 했고, 끝난 뒤 내가 인사를 하자 반가워하며 내 시집과 내가 번역한 <성자가 된 청소부>를 잘 읽었다고 말했다. 깨달음과 진리 추구는 결국 인간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라는 데 우리는 동의했다. 나에게 각인된 그의 인상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순수한 열혈청년의 모습이었다. 아름답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그가 세상을 떠나고, 우리는 아직도 많은 문제들을 힘겹게 헤쳐 나가고 있다.

(202)

우리가 하려는 일에 대해 세상은 언제나 ‘왜’냐고 묻는다. 마치 자신들은 인생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인도를 가려고 하면 왜 위험한 그런 곳을 가려느냐고 묻는다. 핀란드에 오로라를 보러 가려고 하면 왜 자격증부처 따지 않느냐고 묻는다. 채식을 실천하려고 하면 채소에는 생명이 없느냐고 묻고, 무정부주의자라고 하면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런 질문들에는 일일이 답할 필요가 없다. 어떤 대답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해시키느라 자신 안의 불을 다 태울 필요는 없다. 외롭고 쓸쓸할 때, 눈을 멀리 돌리고 산을 바라보라. 훨씬 더 외롭고 굳건한 산이 거기 말없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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