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 함정임의 유럽 묘지 기행
함정임 지음 / 현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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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분다. 살려고 해야 한다!

  거대한 바람이 내 책을 펼쳤다가 덮고

  부서지는 물결은 바위에서 용솟음친다.

    ... ...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아!

  부숴라, 파도야.

  부숴라, 내 환희의 물결로

  돛배들 쪼아대던 이 고요한 지붕을.

    ... ...

  아름다운 하늘, 진정한 하늘이여, 변해가는 나를 보라!

  (중략)

  나는 이 눈부신 공간에 나를 맡기니

  죽은 자들의 집 위로 내 그림자가 지나간다.


            ㅡ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함정임 작가의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의 부제가 '함정임의 유럽 묘지 기행'이다. 폴 발레리의 장시長詩 「해변의 묘지」를  읽고 이 시 한편에 홀려- 자그마치 8 년을 기다려 -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언덕에 펼쳐진 시인의 묘지를 찾아간다. 결과적으로 소설이 본업인 작가에게 또 하나의 길을 열어준 셈이 되었다. 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접한 원서에 찍힌 '해변의 묘지'는 흑백으로 찍혀 있었는데 흑백에다 질이 좋지 않은 종이였음에도 작가에게는 그 바다가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 죽음 너머 생명이 잉태되는 바다가 선명한 색깔로 각인되었다. 그렇게 각인된 바다,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 세트 항과 

생피에르 언덕의 해변 묘지는 무한하게 열린 푸른 하늘과 바다를 향해 열려있었다. "눈부시게 퍼져나가는 햇살에 사로잡혀 바다는 푸르름을 해저 깊숙이 가라앉히고 있었다."(352쪽) 묘지는 약도에도 없었고 숨바꼭질 하듯 헤매는 사람들에게 단지 사이프러스 나무를 찾아가라는 현지 여인의 말을 따라 다시 힘을 내본다. 과연 폴 발레리의 묘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배경으로, 그 너머로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이단 묘석의 위쪽 묘석 테두리에 '폴 발레리'라는 이름을 이고 있었다. 머나먼 동양의 한 여자를 프랑스 남서부 끝 지중해안 언덕까지 이끈 폴 발레리라는 이름 하나... 그 이름을 마주하는 짧은 몇 분의 시간이 영원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고. 그리고 환청인듯 사이프러스 울울히 서 있는 등 뒤에서 한 영혼이 빈약한 어깨를 어루만지듯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니...




  "오, 사색 뒤에 오는 보상. 신들의 고요에 던져진 그토록 오랜 시선." 

화답으로 폴 발레리의 시구를 음송하며 작별을 고한 시간, 그 순간들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작가는 어쩌다가 이토록 묘지 기행에 빠져 버렸을까.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신비한 마력에 빠져 버렸으니 말이다. 30 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가정을 꾸리면서 작가들의 묘지를 찾아 다녔다. 폴 발레리의 묘지를 시작으로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 팡테옹, 몽마르트르 묘지, 페르 라세즈 묘지, 그리고 반 고흐를 찾아 암스테르담과 아를,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기 위해 찾아 간 빈치 마을과 앙부아즈 성 예배당에도 갔다. 알베르 카뮈의 영면처 루르마랭, 아일랜드의 예이츠와 이니스프리 호수, 셰익스피어의 고향과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 묘, 러시아 작가들의 묘지와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크레타 섬을 돌고 다시 돌고 돌아 프라하와 드레스덴, 음악가들의 고향 빈 중앙 묘지에도 갔다. 사진으로 만나는 작가들의 묘지는 아름답다. 삭막하고 복잡한 납골당에 안치된 우리의 묘지 문화와는 너무 다르다. 묘지이면서 쉼의 공간이고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거대한 공간들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맞닿아 있다는 것이,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이 이토록 친근한 공간으로의 이동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죽음이 결코 두려운 일만은 아닌 것 아닐까, 혹은 영원한 휴식에 드는 이 묘지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해주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누구든...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를 만난다. 그들의 묘지가 정문 초입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란다. 처음엔 사르트르(1905~1980) 혼자였지만 6년 후 보부아르(1908~1986)가  영면에 들면서 합장이 되었다. 계약 결혼 관계였지만 살아 생전 한 공간에 살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여행을 가거나 호텔에 방을 얻더라도 나란히 각자의 방을 얻고, 같은 구역의 각자의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각자의 연인들을 거느리기도 하면서 51 년 간 독특하고 자유로운 동거를 이어간 사람들인데 죽어서는 이제 하나의 묘석 아래 "꼼짝없이" , '영원히' 묶이게 된 것이다. 사후에 그들의 묘를 합장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보는 그들의 합장묘여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단순하지만 아름답게 장식된 베이지 톤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비석에 그들의 이름이 새겨졌고, 관람객들이 가져다 놓은 듯한 묘석 위에 장식된 꽃화분이 끊이지 않는, 죽어서도 사랑받는 두 사람... 죽어서도 살아서도 변함없이 영원히 함께 하길... 그 외에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묘가 있는 페르 라셰즈와 일리에콩브레의 프루스트 박물관과 그의 작품에서 발베크로 호명되는 카부르의 그랑 오텔, 프루스트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관한 박물관(일명 벨 에포크 박물관), 파리의 프루스트가 태어난 집 등도 기억에 남는다. 프루스트 투어로도 프랑스 여행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이다. 사실 함정임 작가가 30 여 년 간 열정적으로 다녀왔던 작가들의 묘지와 생가와 작품과 인생의 이야기들이 너무 방대해서 누구 한 작가를 기억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 함정임 작가가 직접 찍어서 수록된 사진들을 보는 재미도 결코 적지 않다. 여행을 한다면 여행 안내서로도 부족함이 없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 나가다보면 5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많은 작가와 작품과 인생과 묘지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묘지를 콕 찍어 말할 수 있을까??? 당연히 있다! 가서 만나고 싶은 작가의 묘지가 너무 많아서 못 고를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에서 몽파르나스, 팡테옹, 그리고 그나마 내가 다녀온 몇 안되는 곳이어서 더 기억에 남았던 토마스 만의 작품의 배경이었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반 고흐의 네덜란드와 예이츠의 아일랜드까지, 또 더 멀리 베토벤과 슈베르트, 쇤베르크의 오스트리아와 독일과 체코의 프라하와  또 내가 좋아하는 작품인 『그리스인 조르바 』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크레타 섬에서 만나는, 제대로 된 십자가도 없이 엉성한 나무 십자가와 바람에 바랜듯한 검은 대리석 - 묘지와 러시아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는 안톤 체호프와 니콜라이 고골의 묘지 등등. 참 많이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마음 상태를 알려면 그 사람의 방에 가보라. 누군가의 생애, 그 사람의 기질을 알려면 그 사람의 묘지, 영면처에 가보라. 그 동안 수차례 찾아간 프루스트, 베케트, 카뮈,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뒤라스, 보들레르, 랭보 등의 묘지 앞에서 터득한 내 나름의 진실이다."(410쪽) 이 말에 격하게 동의~~~! 사랑하는 작가의 묘지를 찾아 멀리 러시아까지 날아간 함 작가는 이렇게 글을 시작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하늘 아래 새소리뿐! ...... 내가 서 있는 곳은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 있는 톨스토이의 영지領地의 숲길. 6월 28일 아침 9시,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80킬로미터 떨어진 툴라라는 도시로 떠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툴라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톨스토이가 태어나고 묻힌 야스나야 폴랴나 마을로 향했다. ..."(417쪽) 톨스토이의 고향이자 영지가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 마을이라는 지명은 톨스토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워낙 유명한 마을이지만 막상 영지로 들어가는 길 옆의 자작나무 오솔길과 오솔길 끝 톨스토이의 하얀 집을 보는 순간 함 작가의 저 문장들이 가슴에 콕 박히면서 뭔지 모를 감동이 밀려 오고 있었다. 역시 이 작가는 죽음에 있어서도 내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소설가에서 사상가로 나아가는 과정에 무소유를 실천하였고 "슬퍼하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아무것도 세우지 말고 그저 소박하게 묻어달라던 톨스토이, 하늘을 사랑하여 하늘을 잘 보이게만 해달라고 당부했다던 톨스토이" 유언에 따라 정말 그의 묘에는 묘비명도 상석도 하나 없고 그저 하늘과 새소리, 그리고 초록의 자연뿐.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지만 함 작가도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찾아갔던 세상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무덤 중 가장 자연스럽고 숭고했다"고 적고 있다.




수많은 작가들의 묘지를 찾아다니다 보면 묘비에 새겨넣은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나기도 한다. 작품들만큼이나 무덤의 형식이나 묘비명들이 개성적이었는데 그 중 함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묘비명으로 많고 많은 묘비명 중에서 단 두 작가를 꼽았다. 한 사람은 아일랜드의 민족시인인 예이츠이다. 예이츠의 묘지는 더블린의 북서쪽 끝 슬라이고 항 근처의 벤벌빈이라는 기이한 형태의 산 아래 드럼클리프 마을의 세인트 콜롬바즈 패리시 교회 뒤뜰에 있다. 한반도에서 아일랜드를 가기 위해서는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야 하는데 다시 예이츠의 묘지를 찾아가는 길을 설명하는 것도 이리 어렵다. 하지만 예상보다 평범했던 이니스프리 호수와 두고두고 기억할 아름다운 묘비명을 남겼으니 뜻깊은 여행이 아니었을까!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삶에도 죽음에도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가거라!)  또 한 명의 작가는 그리스 에게해 크레타 섬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문장을 읽는 즉시 『그리스인 조르바 』가 떠오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의 살아 있는 심장을 품은 채 대성곽의 기단 위에 잠들어 있었다. 『최후의 유혹 』으로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한 탓에, 그의 묘석에는 석비 대신 가로세로 길주름한 나무 십자가가 엉성하게 세워져 있었다."(462쪽) 그 모습이 마치 '키가 크고 몸이 마른' 조르바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춤을 추고 있는 형상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의 작품과 그의 생애와 너무도 꼭 맞춘 듯한 묘지이자 묘비명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벗 삼아(근데 어마무시 사진까지 수록되어 있어 이 책 진짜 무겁다 ㅠㅠ) 이 아름다운 작가들의 묘지를 찾아가는 날이 나에게도 오지 않을까... 함 작가처럼 간절히 바란다면 이루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나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지에 가고 싶다. 간절히. 가서 내 눈으로 그의 묘비명을 보고 싶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내가 다 아니까 아무 문제 없다. 윽... 생각만 해도 전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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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키가 자리에 누워 자신은 배제된 전쟁에 나가 프랑스에서싸우고 있는 데이브와 제이크를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동안 비가 캐빈 지붕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그는 어젯밤 바로 이 침대에서 잔 뒤 징집병으로 전쟁에 나간 어브 슐랭어를 생각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싸움에 끼지 않아 목숨을 보전하게 된것, 유혈을 피한 것-다른 사람 같으면 혜택이라고 생각할지도모르는 것들을 그는 고통으로 여겼다. 할아버지는 그를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로 키웠고, 언제나 튼튼한 몸으로 자신이 옳은 것을 방어하는 책임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훈련시켰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세기의 투쟁, 선과 악 사이의 세계적 갈등과 마주하여 아주 작은 역할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P176

그러나 그에게는 싸워야 할 전쟁, 놀이터라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주어졌고, 그는 그 전쟁에서 부대를 버리고 마샤에게로, 인디언 힐의 안전으로 탈영했다. 유럽이나 태평양에서 싸우지 못한다 해도 뉴어크에 남아 위험에 처한 아이들과 더불어그들의 폴리오 공포와 싸울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위험이 없는 이 피난처에 와 있었다. 뉴어크를 떠나 좁은 비포장도로의 머나먼 끝에 있어 세상으로부터 감춰져 있고, 숲으로 위장되어 공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외딴 산꼭대기의 여름 캠프로 왔다ㅡ그래서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아이들과 논다. 그것도 행복하게! 하지만 행복을 느낄수록 수치심도 강해졌다. - P176

 이곳에서 그는 하루가 끝나면 높은 다이빙대에 올라가 평화롭고 고요하게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이곳은 그가 집 근처 동네에서 날뛰는 살인마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였다. 이곳에는 데이브와 제이크가 가지지 못한, 챈슬러 놀이터의  아이들이 가지지 못한, 뉴어크의 모든 사람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그를 살아가게 해줄 양심이 없었다. - P177

하지만 섬에서 보낸 저녁이 행복하지 않게 끝난 터이니 마샤는 그가 뉴어크로 돌아가는 것을 공격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징벌‘을 내리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그가 내일 짐을 싸서 떠난다면 그것은 그들의 계획에 어떤 영향을 줄까?  - P178

 나는 여기 있어, 그는 생각했다. 나는 행복해-그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그의 발에 푹신푹신하게 밟히는 흠뻑 젖은 풀이 짓이겨지며 내는 절벅절벅 소리에도 기운이 솟아올랐다. 다 여기 있어! 평화! 사랑! 건강! 아름다움! 아이들! 일! 여기 그대로 남는 것 외에 달리 어쩐단 말인가? - P181

"할머니, 유진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 몇 가지 소식이 있어. 그래서 
캠프로 전화를 한거야.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네가 바로 알고 싶어할 것같아서 좋은 소식은 아니야, 유진. 그렇지 않으면 장거리전화를 하지도 않았겠지. 비극이 또 생겼어. 개런직 부인이 몇 분 전에 엘리자베스에서 전화를 했더구나. 너하고 얘기를 하려고."
"제이크로군요." 버키가 말했다.
"그래." 그녀가 말했다. "제이크가 죽었어."
"어떻게요? 어떻게?"
"프랑스에서 전투중에."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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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르베르쉬르우아즈에서 세트까지
ㅡ정오의 태양 아래 깃드는 고독 中.
‘휘몰아치는 외로움과 광휘의 여정ㅡ반 고흐를 따라
암스테르담에서 아를,파리,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긴 겨울 여행의 끝을 암스테르담으로 결정한 것은
반 고흐를 비롯해 몇몇 그곳 출신 화가들의 족적을
 밟아보기 위해서였다. 20대의 끝을 향해가던 어느 여름밤 나는 파리에서 반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1853~1890의 <해바라기>(1889)를 보기 위해 야간열차를 탔었다. 파리-암스테르담 간 열차의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나는 무엇이 나를 이토록 밤이 다하도록 열렬하게 달려가도록 만드는 것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었다. 달려가고자 결심하는 순간마다 ‘바로 그것!‘이었던, 그러나 정작 달려가면서, 또 달려가 마주서서는 ‘진정 그것!‘인가를 회의하던 청춘 시절의 일이었다.  - P264

그날 <해바라기>는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단지 나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았다는 것일 뿐, 그것 말고는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단지 그것을 위해서 거금을 들여서 야간열차를 타고 하루 이틀을 바친단 말인가. 때로 떠났던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타인들에게서 간혹 거북하게 느꼈던 지적인 허영이나 무모함이 오히려 나 자신에게서 더 크게 발휘된 결과는 아니었는지 씁쓸하게 반추하곤 했다. - P264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한때의 지적인 허영과무모함 또한 내 지난 삶의 소중한 자산이어서, 치열하고도 숭고한 순간으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를 지속적으로 그렸고, 암스테르담 이후 나는 파리, 런던, 뉴욕, 뮌헨 등 발길 닿는 데마다 그의 <해바라기>를 찾았다. 무수히 떠나기를 꿈꾸면서 겪었던 마음의 황홀한 떨림,
<해바라기>를 향해 달려가던 그 뜨거웠던 여름 이후, 나는 시간만 나면, 아니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내어 전 세계를 떠도는 이방인이 되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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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에 새긴 이름, 영원의 노래-페르 라셰즈 묘지
中 ‘공간기록자의 벽에 깃든 생生ㅡ조르주 페렉‘을 읽는다. ‘공간기록자‘ 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작가이긴 하지... 페렉의 작품을 읽고 나면 ˝그들과 함께 파리에 오래 산 것처럼 거리와 골목, 계단과 문, 벽과 창문, 창문과 창문 밖 풍경까지 세밀하게 알고 있는 듯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섭렵하고 그들의 묘를 찾아 기록한 함정임 작가도 공간 기록자이며, 한편으론 그 열정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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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캔터 선생님은 그들에게 산책을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먼저 에이번 애비뉴의 드러그스토어에 들러 소다파운틴에서아이스크림콘을 하나 샀다. 그는 회전하는 선풍기 아래 스툴을골라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일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데, 지금 그에게 요구되는 일은 놀이터의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가 그 요구를 이행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집중력 있게 다가오는 모든 요구를 이행한 완강한 식료품점 주인에 대한 기억을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샤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그의 일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포코노 산맥으로 도망가는 것보다 더 형편없는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다. - P95

"문제는 계속 애들이 공놀이를 하게 하는 게 옳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자네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나?"
"네. 폴리오에 걸린 두 아이. 두 형제의 어머니가 그랬지요. 저도 그 어머니가 히스테리 상태였다는 건 압니다. 절망감 때문에저를 비난했다는 건 알지만, 그걸 아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의사도 그런 일을 만나게 되지. 자네 말이 맞아.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고, 질병이라는 불의와 마주치면 누군가를 몰아세우려고 하지. 하지만 애들이 공놀이를 한 것때문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바이러스 때문에 걸리는 거지. 우리가 폴리오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알아. 어디 가나 애들은 여름 내내 밖에서 열심히 놀지만 유행병이 돌 때도 병에 걸리는 애들 비율은 아주 낮아. 또 그것 때문에 심하게 아픈 애들 비율도 아주 낮고, 또 죽는 애들 비율도 아주 낮지. 사망 원인은 호흡기 마비인데, 이건 상대적으로 아주 드문 거야. 두통을 앓는 아이들이 모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 P106

 그래서 위험을 과장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하던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거지. 자네는 죄책감을 느낄 게 전혀 없어. 가끔은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자네의 경우에는 그럴 이유가 없어." 그는 파이프설대로 의미심장하게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아무 근거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네." - P107

... 자네보다 나이도 많고 질병에 관한 경험도 훨씬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자네는 알아야 하네. 의사로서 이 무시무시한 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 채 가만히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일세. 주로 애들만 공격해서 그 가운데 일부는 죽이기까지 하는 이 위력적인 병, 이건 어떤 어른도 받아들이기 힘든 거야. 자네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고 양심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자네가 자네의 책임 영역을 넘어선 것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시작한다면 그건 귀한 게 아니게 되네."
그는 물어보고 싶었다. 하느님에게는 양심이 없나요? 하느님의 책임은 어디 있지요? 또는, 하느님은 한계를 모르시나요?  - P109

... 이것은 라디오에서 흔히 듣거나 신문에서 흔히 읽는 비인격적인 수, 집을 찾거나 사람의 나이를 기록하거나 신발 가격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가 아니었다. 이것은 잔혹한 병의 진전을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수, 뉴어크의 열여섯 개 병동에서는 그 충격이라는 면에서 진짜 전쟁의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수에 상응하는 무시무시한 수였다.
이 또한 진짜 전쟁, 살육과 폐허와 파괴와 저주의 전쟁, 전쟁 고유의 파괴력을 가진 전쟁-뉴어크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 P135

"뭐?" 오개러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응? 당연히 선택할 수 있지.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걸 바로 선택하는 거라고 해. 자네는 지금 폴리오한테서 도망치는 거야. 일을 하겠다고 계약을 했는데 폴리오가 발생하니까 일 같은 건 난모르겠다. 약속 같은 건 난 모르겠다,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미친듯이 달아나는 거야. 자네가 하는 건 그저 달아나는 것일 뿐이라고, 캔서, 자네 같은 세계 챔피언급 근육질의 사나이가 말이야.
자네는 기회주의자야, 캔서,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지만, 그거면 될 듯하네." 그러더니 마치 그 말이 한 남자에게 오명을 씌울 수있는 모든 불명예스러운 본능을 싸잡아 가리키는 말인 것처럼 혐오감을 담아 되풀이했다. "기회주의자." - P141

...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 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것이 너무 많았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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