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의 유산 상속자가 남자에 대한 복수와 하잘것 없는 집념으로 배배꼬인 하비셤 아씨가 아니란 사실을 핍이 미리 알았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하... 하비셤 같은.. 정말 이런 여자들 진짜 너무 싫어! 남의 약점을 쥐고 흔들면서 반응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이런 인간들! 어린 두 아이들을 상대로 대체 뭐하는 거니?

드디어,
핍이 말하는 ‘나의 죄수‘ 프로비스 씨가 나타났다.
신대륙으로부터...




"에스텔라가 너를 어떻게 대하니, 핍? 
에스텔라가 너를 어떻게 대하니?"
하지만 밤에 불길이 깜빡이는 벽난로 옆에 셋이 나란히 앉은 다음에는 더더욱 소름 끼쳤다. 에스텔라 손을 자기 팔에 끼우고 자기 손으로 꼭 움켜잡은 채 에스텔라가 정기적으로 보낸 편지에서 알린 내용을 하나씩 언급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매혹한 사내 이름과 상태를 억지로 캐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어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사내들 이름을 천천히 언급하면서 다른 손으로 목발 지팡이를 짚고 거기에 턱을 괸 채 창백하게 번뜩이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그야말로 유령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 P119

나는 여기에서, 남에게 의존한 인생이 천박하게 보여 나 자신이 비참하고 씁쓸한 가운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여기에서, 하비셤 아씨가 에스텔라를 키운 건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한 거란 사실을, 그런 목적을 에스텔라가 충족하기 전에는 나에게 주지 않을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여기에서, 에스텔라를 나에게 미리 배정한 이유를 깨달았다. 남자를 유혹하고 고문하고 상처를 주도록 에스텔라를 파견했지만 어떤 숭배자도 에스텔라를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그래서 에스텔라에게 빠져든 남자는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확 - P119

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상을 줄 사람으로 나를 선정하긴 했어도 나 역시 천재적인 다양한 술책에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한다는 사실 역시 깨달았다.
나는 여기에, 유산상속을 이렇게 오랫동안 미루는 이유는 물론 지난번에 보호자가 이런 계획을 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길 거부한 이유도 깨달았다. 한 마디로 나는 여기에서, 당시에도 하비셤 아씨 입김이 완벽하게 작용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그랬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여기에서, 한 여인이 태양을 피하며 살아가는 저택에 어린 그늘을, 어둠에 싸여서 병들대로 병든 저택에 어린 그늘을 또렷하게 깨달았다. - P120

"그래, 핍, 친애하는 꼬마, 나는 너를 신사로 만들었어! 그렇게 한 사람이 바로 나야! 당시에 나는 맹세했어, 내가 돈을 번다면 너에게 모두 보내겠다고 그런 다음에 또 맹세했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다면 너를 부자로 만들겠다고 자네가 편하게 살도록 나는 힘들게 살았어. 자네가 일할 필요가 없도록 나는 죽으라 일했어.
왜 그랬을까, 친애하는 핍?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자네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라는 걸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비참하게 쫓기던 사람을 네가 살려주었단 사실을, 그래서 커다랗게 성공해 너를 신사로 만들었단 사실을, 그 신사가 바로 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야, 핍!" - P146

내가 사내에게 느낀 혐오감은 내가 사내에게 느낀 공포감은, 내가 움츠러들면서도 사내에게 느낀 반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상대가 아주 끔찍한 야수라도 이보다 심하진 않을 터였다.
- P146

하비셤 아씨가 나를 대상으로 계획을 세웠다는 
건 허상에 불과했다. 에스텔라를 나에게 줄 거란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새티스 저택에서 나는 편리한 도구며, 탐욕스런 친척에게 고통을 가하는 수단이며, 다른 상대가 없을 때면 연습대상으로 삼는 모델,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모델에 불과했다. 바로 이게 제일 먼저 떠오른 고통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뼈저린 고통은... 
무언지 모를 범죄를 저질러서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 때문에,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하던 집에서 당장에라도 잡혀 올드 베일리 입구에서 교수당할 수도 있는 죄수 때문에 매형을 버렸다는 사실이다. - P152

이제 나는 매형에게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 
비디에게도 절대 돌아갈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두 사람에게 너무 무가치하게 행동했다는 느낌만 강하게 떠올랐다. 세상 어떤 지혜도 두 사람이 순박하고 성실하게 보여주는 믿음 이상으로 나를 편안하게 할 순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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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로베르트 발저/배수아옮김

<프리츠>,<그거면 됐다!>, <설강화>를 읽었다.
단편이라고 하기도 힘들 정도로 짧고..
거기다 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라고 말하는게 더 어울리는 글들이다.
잠시 시간 내서 읽기에 딱 좋다.

작년 가을 끝자락에 ‘설강화‘를 알게 되었다.
작은 정원이지만 키워보고 싶은 꽃과 나무는 넘치는데 다 심을 여력이 안되니 매일 검색하고 구경하고... 그러다 마음을 접게 된 것이 ‘설강화‘였다. 겨우내 쌓인 눈 밑에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얼어버릴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강화‘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 같다. 올핸 눈이 녹는 양지에 심어보고 싶다.
설강화는 1월의 탄생화이다!

그동안 기온이 높아 눈이 거의 녹았었는데...
오늘 펑펑 눈이 내려 또 쌓이고 있다.
해가 닿지 않는 응달은 아직 다 녹지도 않았었는데
또 쌓이고 있다.
얼른 나가서 염화칼슘 뿌리고 왔다.






나는 설강화를 보았다. 정원에서, 그리고시장으로 가는 한 농부 아낙네의 마차에서.
그 자리에서 당장 한 다발을 사고 싶었지만,
곧 저리도 여리고 섬세한 존재를 원하기에는 나라는 인간이 너무도 우악스럽고 투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여쁜 설강화는 세상 모두가 사랑하는 것의 도래를 최초로 알려오는 수줍은 사자이다. 누구나 다 봄이 오리라는 느낌을 사랑한다.

... 설강화여, 너희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아직도 겨울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안에는 봄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당돌하고 쾌활한 새로움을 품고 있다. 그들은 추위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곧 따스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은 눈(雪)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초록과 파릇하게 돋는 새싹을 말한다. 그들은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그들은 말한다. 아직도 그늘과 높은 산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지만 양지바른 곳에는 이미 눈이 녹고 있다고. 
황량함이 다 지나가려면 한참 더 남았다. 사월은 아직 너무 멀다. 그러나 소망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따스한 온기가 세상 구석구석에 스며들 것이다.

꿋꿋하게 참고 견뎌라. 좋은 날은 그다음에 오리라. 좋은 날은 항상 우리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인내심이 장미를 피운다. 최근에 설강화를 보았을 때, 나는 이런 훌륭한 옛 격언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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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1 비꽃 세계 고전문학 1
찰스 디킨스 지음, 김옥수 옮김 / 비꽃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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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라를 향한 열망 때문에 신사가 되고 싶은 ‘핍‘은 어느날 의문의 사람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으면서 꿈을 이룰 기회를 얻는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한없이 사랑하고 믿어주었던 매형 ‘조 가저리‘를 창피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라나 괴롭다. 과연 ‘신사‘란 무엇일지 답을 찾아 2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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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한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
<젬파하 전투>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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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 A 아씨는 다른 말로 하비셤 아씨란다, 선생. 아씨는 나에게 ‘가저리 씨, 당신은 핍 군과 서신을 주고받겠지요?‘ 하고 물었지. 너에게 
편지를 한 번 받은 적이 있어서 나는 ‘네,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었지. (자네 누나랑 결혼할 때는, 선생, ‘네, 그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A 아씨에게는 ‘네,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어.) 그러니까 A 아씨가 ‘그렇다면 에스텔라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번 만나겠느냐고 물어보세요‘ 하고 말하더군." - P341

나는 매형을 쳐다보는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이유 가운데에는 매형이 찾아온 이유를 일찍 알았더라면 좀 더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조금은 있기를 나로선 지금 이 순간에도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 P341

매형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계속 말했다.
"이제 나는 자네가 앞으로 잘 지내며 계속 번창해서 훨씬 높은 자리에 오르길 바랄 뿐이네."
"설마 지금 떠나려는 건 아니죠, 매형?"
"아니, 그럴 거네."
"그럼 다시 와서 점심을 들 거죠, 매형?"
"아니, 안 그럴 거네."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사나이 마음에서는 ‘선생‘이란 용어가 모두 사라지는 가운데 매형이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 P342

"핍, 오랜 친구, 인생살이에는 다양한 구분이 있다고 말하고 싶네. 어떤 사람은 쇠를 다루고 어떤 사람은 양철을 다루고 어떤 사람은 황금을 다루고 어떤 사람은 구리를 다루지. 인생살이에는 이런 구분이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오늘 실수가 있었다면 모두 내가 잘못한 거야. 자네와 나는 런던에서 만나면 안되는 사람이야. 우리만 아는 은밀한 공간 밖에서는, 친구들이 이해하는 공간 밖에서는 만나지 말아야 할 관계. 앞으로 자네는 이런 옷차림으로 나를 두 번 다시 못 만날 텐데, 그건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서로 올바른 자리에 있길 바라기 때문이야. - P342

나는 이런 옷이 안 어울려 대장간과 주방과 습지를 벗어나는 것도 안 어울려. 내가 대장간 옷차림으로 손에 망치를 들거나 파이프를 - P342

든 모습은 지금만큼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 거야. 
가령 네가 나를 보고 싶어서 집으로 찾아와 대장간 창문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거기에서 대장장이 조가 불에 그슬린 앞치마 차림으로 오래된 모루에 망치질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본다면 지금처럼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겠지.
나는 끔찍하게 우둔하지만, 오늘 여기에서 내린 결론이 올바르길 바란다. 그러니 너에게 하느님 은총이 가득하길, 오랜 친구, 우리 핍. 하느님 은총이 가득하길!" - P343

ㅈ내가 매형에게서 티끌 하나 없는 위엄을 발견한 건 착각이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하는 동안 매형 옷차림도 더는 이상하지 않았다. 하늘이 내린 의상 같았다. 하지만 매형은 나에게 다가와서 이마를 살짝 매만지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밖으로 급히 쫓아가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매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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