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읽다 나오는 독서 취향들이 있길래 나의 독서 취향도 정리해봤다.
- 여러 권의 책 동시에 읽기(동시 병행 독서법), 주석읽기, 같은 분야 책도 동시에 읽기도 함, 베스트셀러에 관심 기울이지 않음, 주로 소설을 읽고 장르 소설도 좋아하지만 호러나 공포, 괴기 소설은 읽지 못함, 한번 잡은 책은 되도록 완독하고 싶어하는 편임, 읽고 있는 책에 밑줄이나 메모 등의 표시 남기는건 극도로 싫어함, 대출한 책에 밑줄, 동그라미, 메모 있으면 진짜 싫음, 대체적으로 작가의 작품에만 관심이 있고 작가의 생애에 그닥 관심이 없음. 도서관 연체는 아주아주 가끔 있음, 그리고 내 방 책상에 앉았을 때 책이 제일 잘 읽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3-08-25 23: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에 표시하는 거 질색이요!
제가 밑줄 쳐놓고도 나중에 다시 보면 짜증나요 ㅋㅋㅋㅋ

은하수 2023-08-25 23:58   좋아요 2 | URL
ㅎㅎ
저도요
제가 밑줄 긋고 메모했는데
이유를 전혀 모르겠어서 더 짜증 나구요
그래서 절대 표시 안내고 봅니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토마스 아 켐피스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서문에서 재인용. - P301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면 경이로움에 휩싸인다.
그토록 하찮은 인물들이 중얼대고 외쳐 대다니.
그토록 아름다운 언어로
D. H. 로렌스, When I Read Shakespeare」 부분 - P234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또 어디쯤 서 있는지를 살피려고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읽는다.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 아니면 이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읽는다. 우리는 뭔가를 읽지 않고는 배겨 내지 못한다."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 P3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 몇년 사이 지구촌 곳곳에서 빈발하고 있는 산불의 원인이 지구온난화라고 한다. 산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우리 지구는 어떻게 되는걸까!




그 애 옆에 웅크려 앉았다. 내가 쫓아온 걸 알고 있다는 듯덤덤하게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는 그 애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 쓰여 있어?
자료 열람실을 관리하는 경비원이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숲을 전부 벌목해 새 나무를 심었어. 오래된 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율이 낮다고 생각했거든. 나무를 심는 거니까 무조건 좋을 거라 생각한 거야. 종말 직전이 행성에서 산림이 차지하는 면적이 사십 퍼센트였는데, 삼십팔 퍼센트를 새 나무로 교체했어. 광합성이 잘 일어나는 품종으로, 십삼 년 동안‘ - P180

대화를 엿듣던 경비원은 내용이 시시하게 느껴졌던 것인지 곧 걸음을 옮겼고, 나는 경비원이 허리에 차고 있는 봉을 노려보다 그 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나를 보고 있는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 조금 전까지 책을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 나무 한그루가 병에 걸렸고, 그 병이 순식간에 산림 전체에 퍼졌어. 나무에 벌레가 들끓고, 썩고, 곪았어. 다 똑같은 품종이라 그 어떤 나무도 피해 갈 수 없었대.‘
끔찍한걸… 그래서 어떻게 했어?

‘더 퍼지는 걸 막으려고 불을 질렀대. 그런데 지구는 계속 말라가고 있었잖아. 건조한 바람이 불씨와 병을 함께 퍼뜨린거야. 전 세계에 검은 재가 끊임없이 휘몰아쳤대.‘
네가 악몽을 꾼 이유구나. 너는 꿈에서 나무였던 거야.
‘나무는 병든 게 아니야.‘
확신에 찬 표정으로 그 애가 말했다. 그 애가 나무였었기에 할 수 있는 말 같았다.
‘나무는 복수하기 위해 자살한 거야, 인간들을 몰아낸 거지. 이 행성에서 자신들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던 거야. 자신을 찾아오던 새와 다람쥐, 뱀, 그리고 나비와 벌이 더는 오지 않음에 분노를 느낀 거야.‘ - P181

그 애가 악몽을 꾸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무의 치열한 복수극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그래, 인간은 그렇게 지하로 쫓겨난 거야. - P181

‘온실을 확인하면 되겠다.‘
한참 뒤, 유오가 입을 열었다.
‘온실?‘
내가 물었다.
‘응, 온실에 식물이 가득한 걸 확인하는 거야. 그럼 숲이 있다는 거니까‘
‘숲이랑 별이랑 무슨 상관이야?‘
유오의 대답에 치유키가 물었다.
‘그렇게 다양한 개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유지되는 숲이 있는데, 별이 없겠어?‘ - P189

톨가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입을 연다.
"씨앗 저장고에 온실로 가는 승강기가 있어."
바지 뒷주머니에서 카드키를 꺼내 내민다.
"비상용 키인데, 오기 전에 혹시나 해서"
그렇게 말했다가 곧바로 말을 정정한다.
"아니, 사실 너희가 그럴 것 같았거든. 근데 나는, 나는...."
고개 숙여 말을 잇지 못하는 톨가를 끌어안아준다. 쓸데없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도록. 그리고 톨가가 착각하지 않도록 말해준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애초에 우리의 약속은 흥미진진한 삶을 살자는 것이었다. - P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모든 열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2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

비타의 소설은 <사라진 모든 열정>이 '흄세 시즌 5: 할머니라는 세계'로 출간이 되었고, 민음사에서는 <모든 열정이 다하고>라는 제목으로 한 권이 나와 있다. 제목으로만 보면 <모든 열정이 다하고>가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 남는다. 버지니아 울프를 읽었다면 절대 비타를 피해갈 수 없다.~~^^ 요즘 말로 재혼 가정에서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낸 버지니아 울프와 대단한 귀족 가문, 가정 교사에게서 교육을 받고 자란 비타는 태생부터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에, 거기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렸겠지! "나처럼 고상한 체하는 사람에게는 500년 전의 세계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따라가는 일이 무척 낭만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마치 오래된 황금빛 와인처럼~~~."이라고 고백한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 레너드와 바네사 언니를 제외하고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비타가 유일했다고 했고, 두 사람의 인연은 열렬했던 짦은 사랑이 지나고 난 후 버지니아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니 비타 색빌웨스트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비타 색빌웨스트는 우리에게는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의 모델로 알려져 있지만, 난 아직 <올랜도>를 읽지 않았고 읽어보려 노력은 해 보겠지만 사실 자신은 없고... 그런데 비타의 책은 그에 비해 너무 너무 잘 읽힐 뿐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 멋지고 또 재밌었다. 역시 울프보다 더 인정받는 작가였다는 것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 <사라진 모든 열정>에는 비타와 울프의 그림자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 작품의 주인공인 데버라 슬레인 백작 부인은 인도의 총독이었고 수상까지 역임한 정계의 거물이었던 슬레인 백작이 94 세라는 나이로 세상을 뜨고, 자식들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견을 일거에 물리치고!!! 88 세라는 어마어마한 나이에 혼자만의 삶을 살고자 하는 꿈을 이루게 된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므로!  이미 살고 싶은 집도 무려 30년 전에 봐 둔 상태이고 집 주인의 특이한 이름도 기억하고 있다.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한 조용한 내조의 주인공이었던 백작 부인은, 처녀 시절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 본 적은 없고, 그 시절 누구나 그러하듯 떠밀리듯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하게 되고 남편을 사랑하게 되고 여러 자식들이 태어나 돌보고, 또 백작이자 인도 총독이었고 수상까지 역임한 남편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내조에 임하였다. 자신의 열정은 가슴 속에 묻어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남편 헨리의 세속적인 열정은 백작 부인을 가시밭길로 몰아댔을 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녀의 희망을 조용한 어조로 뭉개버렸다.





   세상을 바라보는 헨리의 관점은 모든 면에서 그녀의 관점과 상반되었다.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두 사람의 관점은 그렇게 표현될 수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헨리는 자신의 신조를 전혀 숨길 필요가 없는 반면 그녀는 조롱과 수치에서 자신의 신조를 지켜야 했다는 것뿐. (본문 중에서)



   그녀가 사색하는 삶을 갈망하듯이 헨리는 행동하는 삶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정말이지 하나의 세계가 두 쪽으로 분할되었다고 하겠다. (본문 중에서)



그러자 그녀는 진정 덫에 걸린 기분이었고 혼비백산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았다. 신처럼 초연한 그의 우월감, 애정이 담겼지만 어쨌든 우쭐대는 나름의 가정, 그의 손쉬운 친절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비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녀는 그가 정말 미웠다. 비난할 수가 없었다. 당연시해도 되는 것들을 당연시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런 식으로 여자들과 동조하여 그녀를 속이고 그녀가 선택한 삶을 빼앗는 전반적인 공모에 동참한 것이니까. (본문)



   그녀는 페미니스트도 아니었다. 상상의 순교 같은 사치에 빠지기엔 지혜로운 여자였다. 자신의 삶 사이의 균열은 남자와 여자의 균열이 아니라 일하는 자와 꿈꾸는 자의 균열이었다. 그녀는 여자고 헨리는 남자라는 사실은 정말이지 우연적인 문제였다. 자신이 여자라서 상황이 조금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않으려 했다. (본문 중에서)



   부자연스럽고 망측한 생각이 머릿 속에서 떠다녔다. '결혼만 하지 않았다면.... 아이만 낳지 않았다면.' 하지만 비통할 만큼 헨리를 사랑했고, 감상에 빠질 만큼 아이들을 사랑했다. (본문 중에서)





사실 비타는 외교관 해럴드 니컬슨과 결혼하였지만 각자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개방된 결혼생활을 영위했다. 결혼을 했지만 버지니아 울프와 연인 관계이기도 하는 등의 양성애자였고, 그 전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남성복을 입고 남편 행세를 하고 운전도 직접 하는 등의 파격적인 연애로 세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존재였다.  그래서 작품에서 보여주는 슬레인 백작 부인의 삶은 다소 의아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1931 년 발표하였는데(물론 울프와 레너드가 운영하던 호가스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 해는 비타가 40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엄격히 분리가 되어 있는 사회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아간 주체적인 여성이었던 비타가 그 젊은 나이에  죽음이라는 휘장을 두르고 있는 88 세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그리고 그 여성의 삶은 여성으로서 강요당하는 삶의 부당함을 인정하지만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것이.  그러나 한 편으론 마냥 관습적이지는 않다.  결국 슬레인 백작 부인은 '자기만의 집'을 이루어내니까! 여자가  순수하게 자신만의 의지로 '자기만의 집'을 갖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어야 하는 것일까? 여자가 '자기만의 집'을 가질 자격은 88 세쯤이나 되어야만 가능한 일인 것일까?

슬레인 백작 부인은 88 세라는 나이이지만 비로서 '자신만의 집'(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연상되는 대목이다.)에서 먼 시간 속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생각한다. 헨리와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놓인 부당한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했었는지... 어떻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부당함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타개하기보다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지혜로운 여인이었다는 것을...

비타의 정신을 내려받았지만 실제로는 비타와 너무도 다른, 그 시절 여타의 여성들의 삶과 비슷한 길을 걸어간 인물로 그려져 있다. 가슴 속에 열정은 묻어둔 채로... 두 여인이 서로 상반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비타가 그린 책의 주인공으로 부족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자식들의 제안 아닌 제안을 물리치고  런던 북부의 햄프스테드에 '자기만의 집'을 갖게 된 슬레인 백작 부인.  모든 회환과 혼돈을 뒤로 하고 백작 부인은 이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저 편안하고 조용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을 뿐이다. 주위에는 예의 특이한 이름을 가진 집 주인을 비롯한 나이 많은 친구 몇 명이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란 것이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던가!  단순하고 평온함을 찾아 떠나왔건만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도 허락되지 않는 단순함이라니... 인생의 복잡함이란 참으로 야속하기만 하다.  인도 총독으로 재임하던 때, 잠시 공관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피츠 조지 씨 - 그는 현재 부유한 은둔자로 불리며 엄청난 자산가이고 누구나 탐낼만한 아름다운 유물을 어마어마하게 수집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옛날 백작 부인의 열정을 간파한 인물이기도 하고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 로 인하여 그녀의 남은 시간은 원치 않는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다.  감당하기 힘든 숙제를 떠안기고 떠난 피츠 조지 씨로 인하여 독자는 마지막 순간 다시 비타가 마련한 자리에 원치 않는 초대를 받은 듯 백작 부인의 황망하고 황당하기만한 상황에 깊이 동화된다.  지극히 헨리의 표본과도 같은, 그러나 그녀와는 닮지 않은 자식들과의 관계에도 회오리 바람이 몰아친다. 마지막에 증손녀와의 대화도 이미 너무 늙어버린 백작 부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시련이다.





천천히 읽어 나가노라면 아름답고 가슴을 적시는 문장들이 자꾸 와서 콕콕 박힌다. 그 바람에 어느 새 보랏빛 밑줄이 쫙쫙~~ 하이라이트가 늘어나고 그럼에도 백작 부인이 지극히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자식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행하는 일들로 속이 시원해지기도 한다^^  

비타 색빌웨스트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인데... 그녀의 다른 소설들은 언제나 만날 수 있으려나! 다른 작품으로 또 만나고 싶다. 그리고 흄세 소장 욕구도 뿜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첫 단편은 [바다눈]이다.

지하도시에서 살게 된 지구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르코, 은희, 의주, 톨가, 유오, 소마, 커커스, ...
그런데 읽다보니 언뜻 어색한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짊어주었다(38쪽)*
‘짊어지다‘가 아니고 ‘짊어주다‘가 원형일텐데 검색해봐도 안나온다.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인지 이해가 될듯도 한데
어떤 낱말을 넣어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막연히 상상하려니 떠오르질 않는다.








*바다눈

노래가 들려온 건 제작실 서문 쪽에 있는 반층짜리 계단아래였다.
그날은 마르코가 제작실에서 경호를 서는 첫 근무 날이었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 깃처럼 바짝 긴장한 상태로 제작실 입구에 덩그러니 서있던 마르코는 사람이라기보다 그곳에 설치된 조형처럼 보였다. 온통 잿빛 페인트로 칠해진 공간에 마르코가 입고 있는 정장과 셔츠도 어두컴컴한 색이라, 얼핏보면 머리만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긴장 완화에 좋다며 치유키가 선물한 약도 챙겨 먹었지만, 아마 플라세보 효과를 노린 포도당 알약이었을 것이다. 품이 큰 정장 재킷을 걸치고 서 있던 마르코는 어느 면으로 보나 제작실을 지킬 만한 모양새가 덜 만들어진, 소년이었다.  - P15

톨가의 표정은 황홀한 꿈을 꾸는 듯했다. 그런 톨가의 얼굴이 마르코에게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톨가는 뭐랄까, 마르코가 갈 수 없는 차원 속에 있는 것만 같았고 그 차원은 톨가에게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짊어주었다*.

행복과 책임감은 같은 수레를 타고 있다던 의주의 말이 떠올랐다.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 수레는 레일에서 이탈하거나 뒤집혀. 책임감 없는 행복은 위험하고, 행복 없는 책임감은 고통스러운 거야‘
의주는 종종 이런 식으로, 행복 없는 책임감을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마르코는 아직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톨가의 표정은 행복과 책임감이 적절히 섞인 수레처럼 만족스러워 보였다. - P38

"너도 지금 나랑 같은 상태인 거지?"
마르코는 아닌 척 시치미를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은희를 대하는 마음이, 톨가가 그 형을 대하는 마음과 같은가. 이 질문이 계속 마르코를 파고들었다. 마르코는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톨가가 그 형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마르코의 마음은 마르코조차 처음 겪는 것이었다.
마르코가 대답을 망설이자, 톨가는 유능한 심리 상담가처럼 부담을 내려놓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마르코가 떠올리고 있는 대상의 어떤 점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지, 그것에 집중하라고도 덧붙였다. - P39

"목소리가 아름다워."
톨가의 조언을 듣자 말을 내뱉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 튀어나왔다.
마르코는 제작실에서 처음 은희의 노랫소리를 들었던 순간부터 함께 점심을 먹었던 것, 그리고 어제 잠들기 전까지 은희를, 그리고 은희의 노랫소리를 떠올렸던 것을 숨김없이 말했다. 은희의 이야기를 톨가에게 하는 동안 마르코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후련함이었고 하나는 단단해짐이었다. 은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마음에 있던 은희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은희가 들어찼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이 쪼그라들며 단단한 광물처럼 빛났다. - P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