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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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우리나라의 사계절 날씨. 기상학자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로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거기다 계절에 어울리는 음악들도 곁들였으니 날씨 이야기만 계속인데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상쇄해준다. 바람, 구름, 안개, 비, 차가운 공기, 기압골, 산맥, 얼음, 눈, 음악이 주인공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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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밤과 꿈에 빠져드는 겨울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그리고 차가운 겨울 환호와 박수 속에 영국 사우샘프턴 항구를 떠나 미국으로 향해하던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 호는 암초를 만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뱃머리에 서서 맞바람을 향해 팔을 벌릴 때 My Heart Will Go On이 들려왔다. 겨울바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지구의 평균기온은 상승한데 우리나라 겨울은 기온이 더 낮아지는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다. 이러한 ‘온난화의 역설‘은 지구가 더워지는 기후에적응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일 뿐이란다. 온난화가 계속 진행되어 북극의 얼음이 모두녹아내리고 나면 이런 일시적 기현상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땐 멈출 수 없는 속도로 지구의 기온이 상승할 것이다. 곧 닥칠 위험인데...!




날씨 전선에 안전지대는 없다. 밤낮 없이 아무 때나 찾아오는 불청객을 맞이하느라 기상예보 본부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남서쪽 해상에서 들어온 비구름이 물러나나 싶으면,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밀려와 큰 눈을 뿌린다. 한파가 누그러든다 싶으면 황사가 날아들고 먼지 농도가 올라간다. - P208

낮이라면 잠깐 짬을 내서 구름의 모습이나 대기의 색깔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밤에는 엘이디(LED) 스크린에 찍혀 나온 관측 수치나 위성 · 레이더 영상에 담긴 날씨 상황을 추정해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밤에는 위성 영상에 잡힌 희끗희끗한 영역이 구름인지 안개인지 구별이 잘 안 된다. 안개는 지면에 바짝달라붙어 있어서 지면과 온도가 엇비슷하기 때문에 열 감지 카메라로도 식별이 잘 안 된다. 
눈구름은 낮게 깔려 있기에,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는 레이더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 황사먼지도 밤에는 열 감지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구름에 황사가 섞여 있으면 구분해내기도 어렵다.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고, 첨단장비에도 속 시원하게 잡히지 않아서 야밤에는 언제 어디서 돌발기상이 나타날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 P208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밤에는 어디서든 일손이 달린다. 신문사나 방송사에도 최소 인원이 야간 뉴스에 대응하므로, 기상상황을 소통하는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당연히 돌변하는 기상 상황을 수요자에게 즉시 전달하기는 어렵다. - P208

지자체의 대기인력도 마찬가지다. 밤에는 보통 긴급한 사고에 대비해서 소수만 당직 근무를 선다. 심각한 호우나 대설로 비상소집을 하더라도 필요 인력이 모이는 데는 몇 시간이 걸린다. 눈을 치우기 위해 제설차와 운전자를 동원하는 데는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다보면 골든타임을 놓치고는 이미 하천이 범람하여 침수가 일어나거나 눈길 사고로 도로가 막힌 후에야 현장에 출동하게 된다. - P209

기상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것 같으면 평소보다 서둘러 야간 근무지로 향한다. 낮에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깨어서인지 머리는 둔기로 얻어맞은 듯이 여전히 멍하다. 밤새 자료와 씨름하며 여기저기 기상특보를 발표하고 새벽 5시에 정규 일기예보를내보내고 나면 무거워진 눈꺼풀 사이로 졸음을 참느라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 한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애써 태연하게 일근 조와 교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다음번 야근에는 어떤 날씨가 날괴롭힐지 걱정이 앞선다. - P209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겨울철에 극지와 중위도를 갈라놓는 편서풍 띠가 느슨해지면 제트기류가 남북으로 요동친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제트기류에 극지의 차가운 냉기가 함께 몰려오며 한파가 이어진다. 
저 멀리 유럽 북단에서 극지로 뻗어나간 바렌츠해에 얼음이 많이 얼면 찬 공기가 남하한다. 이 주기가 맞아떨어지면 제트기류의 리듬을 타고 우리나라에 시베리아 한파가 찾아오는 것이다. 
지구 전체는 평균적으로 기온이 상승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는 역설적으로 더욱 추운 날씨가 찾아온다. 
이러한 온난화의 역설은 지구가 더워지는 기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시적 해프닝일 뿐이다. 온난화가 계속 진행되어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내리고 나면 이런 일시적 기현상도 자취를 감출 것이기 때문이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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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구름사이로 흘러가는 가을

나도 모르게 센치해지는 가을밤...
이 밤과 어울리는 음악들을 들었다. 작가가 알려주는대로...
영화 <나자라노>의 주제가 <아이가 태어나면(When a Child Is Born)>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
멕시코 3인조 밴드 로스 트레스 디아만테스(Los Tres Diamantes)가 부른 <보름달(Luna Llena)>

어젯밤은 슈퍼문이라서 그런지 크고 하얀달이 동쪽하늘로부터 떠오르더니 오늘은 어쩐지 달이 노란빛이 더 강해진거 같다. 그래도 평소보다 커보인다. 크고 환한 달이 떠서 저녁 먹고 소화시킬 겸 조금 걸었는데 서늘해서 걷기 좋았다.




자연의 숨결은 감정을 자극하여 처음 그 품에 안겼던 시절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럴 때 낙엽 진 숲에서 첼로 소나타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악기의 밤색 목재는 가을의 색을 닮았다. 특히 첼로는 두터운 몸집에서 나오는 중후한 음색으로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장 밥티스트 바리에(Jean-Baptiste Barrière)의 <첼로 소나타> 4번 2악장에서 두 대의 첼로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우아하게 대화를 나눈다. 
조금 걸으면 오르막이 나오고 구부러진 내리막을 돌면 또다시 오르막이다. 그렇게 낙엽 진 숲을 걷다 보면 어느새 추억 속의 내가 음악을 통해 지금의 나에게 속삭인다. 지난 계절의 풍파를 견뎌온 삶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것 같기도 하고, 다가올 추운 겨울도 이겨내라는 따스한 격려의 말을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 P152

낙엽이 오감을 홀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단풍의 인생사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가을로 접어들면 추분이 지나면서 밤이 낮보다 길어진다. 낮에는 햇빛을 받아 기온이 오르고, 밤에는 대지가 하늘을 향해 적외선 에너지를 내보내는 만큼 땅과 주변 대기가 차갑게 식어간다. 밤이 길어질수록 이렇게 잃는 에너지가 늘어나고, 가을이 깊어갈수록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진다. - P153

나무는 생리적으로 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는 월동을 위해 이파리와 줄기 사이에 물과 양분이 흐르는 통로를 떨켜로 막아 이파리를 떼어낼 준비를 한다. 또한 광합성을 하는 클로로필도 더는 만들어내지 않는다. 남아 있는 클로로필은 분해되고 녹색 색소는 점차 사라진다. 그러면서 이파리에 남아 있던 카로티노이드나 크산토필 같은 노란 색소가 전면에 드러난다. 광합성으로 이파리에 쌓인 설탕은 떨켜층에 막혀 줄기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일부가 이파리에 남아 안토시아닌이라는 붉은 색소를 만들어낸다.
- P153

둥근 달을 바라보면 밤하늘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빛과, 밤의세계를 깨우는 인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밝은 면을 보면 추석에가족이 모여 보름달에 소원을 빌거나 달나라에 산다는 토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떠오른다. 멕시코의 3인조 밴드 로스트레스디아만테스(Los Tres Diamantes)가 부른 <보름달(Luna Llena)>에는달빛이 비치는 숲과 들판을 거닐 때의 한적함과 애달픈 정서가담겨 있다. 
"어스름한 빛과 고요함. 푸르스름한 땅거미. 부엉이가 멀리서 알린다. 오늘 밤 보름달이 뜨리라는 걸..... 그(달)의 푸른 망토를 밤에게 입힐 것이다." 남미 가수의 목소리는 악기로 치면 플루트를 닮았다. - P158

그런가하면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은 한 폭의 인상파 그림이다. 피아노의 부드러운 선율 사이로 새어나온 달빛이밤거리로 쏟아진다. 가면을 쓴 무희들이 소란한 축제의 거리에서빠져나와 <달빛>에 맞추어 우아한 춤사위를 선보인다. 마치 달빛과 함께 잠시 꿈길을 걷는 느낌이다. - P159

반면 어두운 면을 보면 보름달의 인력에 이끌린 무언가가 무덤에서 일어난다느니 하는 기이한 서양 미신이 떠오른다. 아르헨티나의 어느 시골에는 일곱 번째로 태어난 아이가 사랑에 빠지면 보름달이 뜰 때 늑대로 변한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영화 <나자리노>에서 늑대인간은 금발 소녀 크리셀다와 사랑에 빠지고 두 연인은 결국 마을 사람들의 총에 맞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다.

주제가 <아이가 태어나면(When a Child Is Born)>은 나자리노의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다. "아이가 자라게 되면 눈물이 웃음으로, 증오가 사랑으로, 전쟁이 평화로 바뀌어 모두가 이웃이 되고, 비애와 고통은 영원히 잊히게 될 겁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꿈이고 환상이지만."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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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비 오는 날씨에 어울리는 곡은 프레데리크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맑고 더운 날씨에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태평양 해안가에서 잊힐 만하면 한 번씩 지진해일이 일어난다. 물결로 일렁이는 바다 밑에는 용암이 꿈틀댄다. 태평양을 빙 두르는 불의 고리가 관통하는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지진이 빈발하고 그중 일부는 해저에서 일어난다. 해저 암반이 맞부딪히면 바닥이 비틀리고 그 충격으로 바다가 요동치며 물결이 인다.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여객기만큼 빠른 속도로 물결이 퍼져나가지만 파고가 그다지 높지 않아 눈치채기 어렵다. - P99

하지만 이 물결이 해안에 다가서면 마찰력이 커지고 파봉의 이동 속도가 줄어드는 대신 파도가 빠르게 높아진다. 동일본 대지진 때 해안에 밀려오는 해일이 엔에이치케이(NHK) 카메라에 생중계되었다. 당시 높이 10미터가 훌쩍 넘는 파도에 차량과 시설물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세계를 경악시켰다. 국제적으로 ‘쓰나미‘라는 일본어가 관행적으로 쓰이는 것도 역사적으로 일본해안에 피해가 많았음을 추측하게 한다. 
동해안에서도 드물기는하지만 지진해일이 해안 시설을 무너뜨리거나 인명을 앗아간 기록이 있다. 지진은 예고가 안 되는 불가지의 현상인 데다 해일이 몰려오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해안에서는 그야말로 맑은하늘에 날벼락이 내리는 격으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 P99

쓰나미는 해저 지진이 원인이다. 하지만 인명 피해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면 맑은 날씨가 묘하게 끼어든 꼴이다. 휴가철이 되면 우리는 사방이 트인 벌판에 비취색 바다, 야자수 그늘, 강렬한 햇빛이 머무는 오지의 섬을 꿈꾼다. 문명 세계에서 멀리 떠나온만큼 일 때문에 전화나 문자도 오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하시라. 어디선가 지진해일이 발생해서 해일 경보가 발령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끊겼다는 것을. - P100

쓰나미만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해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갑작스러운 파도에 사람이 휩쓸리는 사고가 일어난다.
아무런 경계심도 없을 때 파도가 순간적으로 방파제를 훌쩍 넘어오기 때문에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 날씨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파도는 보통 저기압이 발달하고 날씨가 기울어져서 짙은 구름이 끼고 바람이 강한 곳에서 높게 일어난다.
그래서 바다에 풍랑이 거칠게 일어날 때는 하늘도 어두운 구름에 덮이고 사나운 폭풍우를 동반하므로 파도를 조심하게 된다. - P101

문제는 일단 만들어진 파도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폭풍우치는 지역을 벗어나 먼 곳까지 간다는 점이다. 먼바다를 지나가는 저기압 주변에 먹구름이 가득하더라도 여기서 멀리 떨어진 해안의 날씨는 맑을 수 있다. 그래서 높아진 파도는 날씨와 상관없이 해안까지 밀려올 수 있다. 맑은 날씨만 믿고 물놀이에 나섰거나 방파제 넘어 물가에 머물다가 변을 당하는 것이다. - P101

북태평양고기압은 장마철 비구름의 탄약 구실을 하는 수중기의 원천이다. 열대에서 상승한 공기는 북태평양고기압에서 하강하며 마른 공기를 뿜어댄다. 한반도에 먹구름이 끼고 장맛비가 내리는 시간에도 이곳은 맑은 하늘 아래 햇빛을 받아 쉬지 않고 해수가 증발한다. 매년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량의 60배에 이르는수증기가 북태평양에서 만들어진다. 
또 다른 대기의 물길은 인도양의 아열대 고압대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저 멀리 아라비아반도에서 인도를 거치고 남중국해와 이어진 바닷길을 따라 올라와 한반도에 머무는 비구름에 연료를 제공한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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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 들어오는 시 한 편을 남겨본다.



꽃밭의 경계


꽃밭을 일구려고 괭이로 땅의 이마를 때리다가

날 끝에 불꽃이 울던 저녁도 있었더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로 삼으려고 돌을 주우러 다닐 때

계곡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공사장을 지나갈 때면 목

빼고 기웃거리고 쓰러지는 남의 집 됫박만 한 주춧돌에도

눈독을 들였어라

물 댄 논에 로터리 치는 트랙터 지나갈 때 그 뒤를 겅중겅

중 좇는 백로의 눈처럼 눈알을 희번덕거렸어라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는 일보다 꽃밭의 경계를 먼저 

생각하고 돌의 크기와 모양새부터 가늠하는 내 심사가 한심

하였어라

하지만 좋았어라 돌을 주워들 때의 행색이야 손바닥 붉은 

장갑이지만 이 또한 꽃을 옮기는 일과도 같아서 나는 한동

안 아득하기도 하였어라

그렇다면 한낱 돌덩이가 꽃이라면 돌덩이로 가득한 이 세

상은 꽃밭인 것인데 거기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아무 욕심

이 없어졌어라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를 짓고 여기와 여기 아닌 것들

의 경계를 가르는 일을 돌로 누를 줄 모르고 살아왔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는 다 소용없는 것이기는 하

지만

경계를 그은 다음에 꽃밭 치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

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어라




시를 쓰는 과정이 꽃밭을 일구는 과정과 포개지고 "언 땅을 파내는 괭이질처럼 어렵고 고독한 노동이 시 쓰기라는 점이 강조된다."고 한다.  의미를 다 알 수도 없고 마음 속에 들어차는 느낌이 있지만 뭐라 표현할 길이 없어 아쉬웠는데 약간의 해설이 있으니 상쇄가 된다.


시를 읽다가 안도현 시인의 주위 친지들, 가족들 모두 마주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사연 많은 고모님들도 한 분, 두 분 떠나가신 듯한데 이 분들의 삶의 모습들이 시로 표현이 되어 있는 것이 못내 아름다웠다. 우리의 삶과 시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일까...



고모


...   ...

  넷째 고모 안금분(安今粉)은 1929년생 기사생이다. 우리는

논실고모라 불렀는데 고모부 이두형의 첫 부인 택호를 이

어받아 마을에서는 수곡댁이로 불렀다고 한다. 고모는 안동

풍산읍 하리 최씨 집안으로 처음 시집을 갔는데 신랑은 안

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6.25전쟁이 터지자 신랑

은 월북한 뒤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고모는 시댁에서

남편도 없이 삼년 시집살이를 하였다. 결국 친정으로 돌아

온 고모는 혼수로 가져갔던 무명 이불과 옷가지들을 풀어서

할머니와 무명베를 짜서 팔기도 했고, 길쌈을 누구보다 잘

했다고 한다. 이후 논실 동네 부자이며 이장인 고모부가 동

생을 시켜 큰아버지에게 혼인을 청했다. 고모부는 첫 부인

이 있었으나 딸만 둘을 낳아서 소박을 놓았다고 한다. 고모

는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고, 현재 치매를 앓고 있어 가끔 찾

아뵐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십만원쯤 용돈을 쥐어드

리는 일뿐이다. 논실고모네 석감주는 정말 입에 착착 달라

붙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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