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 토흐 선장의 기벽
당신이 타나마사라는 작은 섬을 지도에서 찾는다면 수마트라 섬에서 살짝 서쪽으로 치우친 적도 선상에서 발견할 수있으리라. 하지만 칸동반둥호(號)의 J. 반 토흐 선장에게 그가 방금 닻을 내린 이 타나마사라는 섬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한참 욕설만 퍼붓다가 결국 순다 제도에서도 가장 더러운 시궁창이라고, 심지어 타나발라보다 더 지독하고 적어도 피니나 반야크만큼이나 한심무쌍하다고 말해 줄 것이다. - P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정의 혼란]
˝예상치 못한 순간과의 마주침, 그것을 통해 느끼는 뜨거운 심미적 체험˝, 강렬한 순간순간이 소환될 때마다 느끼는 첫 감정들... 그리고 그것과의 충돌로 충만한 소설이다!
츠바이크의 소설이 나를 또 한번 몰입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 마지막 사랑해마지 않는 교수의 인생이 롤란트의 눈 앞에 펼쳐지려 한다.
바로 그의 입을 통해서.
난 그래서 천천히 아껴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남겨두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나도 혼란스러워...

그러자 바로 그 순간, 마치 주먹으로 얼굴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현관의 어두컴컴함 속에서 아버지의 그림자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사되어 반짝이는 안경유리로 그림자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의 윤곽만으로도 미리 준비했던 무례한 말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목에 꽂혀 있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순간, 난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아버지께-얼마나 무서운 순간이었는지! - 방정리를 할 때까지 잠깐 부엌에서 기다려 달라고 공손하게 요청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내 요청을 승락하신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꾹 참으시는 태도로 보아 그것을 감지할 수 있었지요. 그는 내게 악수도 건네지 않고 불쾌한 표정으로 커튼 뒤쪽 부엌으로 물러나 계셨습니다. 뜨거운 커피와 무를 삶는철제 냄비가 놓여 있는 곳 앞에서 그는 10분이나 선 채로 기다려야 했습니다. - P29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황홀한 강의, 원초적인 연설의 정열은 예상치 못한 순간 한꺼번에 나를 끌어당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몽유병 환자 같이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빽빽하게 모여있는 학생들 사이로 다가갔습니다.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호기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에 이끌려, 부지불식간에 학생들 가운데 서 있게 된 것입니다. 교수와 나의 간격이 불과 10인치 밖에 되지 않았고, 강의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강의에 홀려 그 어떤 다른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학생들 한복판에 있게 되었습니다.
- P38

그토록 진실한 고뇌를 겪는 사람의 얼굴을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아들로 시민계급의 편안함 속에서 큰 위험을 겪지 않고 자란 나는, 걱정이란 기껏해야 일상의 우스꽝스러운 가면 속에서 질투의 누런 옷에 싸인 채 소소한 푼돈을 딸랑거리며 분개하는 것밖에는 알지 못했지요.

그러나 그의 우울한 표정에는 어떤 거룩한 요소들에서 비롯된 무엇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우울은 여러가지 어두운 비밀에서 나온 것이며, 무자비한 조각칼이 일찍 피폐해진 뺨에 주름과 생채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 P87

"자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다시 그가 물었습니다. 이미 그의 의지 속에는 마음의 준비가되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이런 말로 마무리를 했지요.
"그러면, 우리 같이 해 보세. 젊은이들이 항상 옳은 법이지. 젊은이의 말을 듣는 게 현명한거야!"

폭발할 것 같은 나의기쁨, 나의 환호성이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조급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젊은이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의기투합했지요. 즉 매일 저녁 7시, 저녁식사를 마친 직후 우리는 하루에 한 시간씩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저녁부터 우리는 받아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설명하면 좋겠습니까! 나는온 종일 그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오후가 되면 온 신경을 녹여버릴 것 같은 숨막히는 불안감이 초조한 나의 감각을 전류처럼 감전시켜 왔습니다. - P97

그것은 완전한 비언어적인 송가였습니다. 장엄하게 설계되었으나 현세에서 무한함을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는 바다에 대한 송가(頌歌) 말입니다! 먼 곳에서 먼 곳으로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 높은 곳을 향하다가 깊은 곳으로 숨어드는 바다.
그 사이에는 뜻이 없는 동시에 뜻이 충만하며, 흔들리는 인간의 나룻배를 희롱하곤 하는 바다. 그 바다와 같이 장엄한 형상의 비교를 통해 우리를 피흘리게 하고 해체시키는 원초적인 힘이 비극의 서술을 완성시켰습니다. - P99

이 모든 일들은 벌써 40년 전 있었던 일입니다만, 지금도 강의에 몰입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입술을 빌린 다른 이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나는 나의 입술에 유일하게 숨결을 불어준 그의 음성, 존경하는 고인의 음성을 아직까지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열정의 날개를 타고 날아오를 때면 항상 나는 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결정지어 버렸던 것입니다. - P103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는 아주 조용히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했는데, 마치 마음이 놓인다는듯한 어조가 배어 있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네."
그는 서재에서 두 차례나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서서 경멸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걸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건가? 내 아내가 자네에게 말하지 않던가?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자유롭게 한다고,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말을... 나는 내 아내에게 무엇이든지 하지 말라고 할 권리가 ㅇㆍㅂㅅ지.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어.. - P175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가 어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억제할 필요가 있겠어? 하물며 자네에게... 자네는 젊고 밝고... 미남이지... 그리고 자네는 우리와 가까이 있지 않았는가...? 어떻게 내 아내가자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자네같이 잘생기고 젊은 친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 나는..." - P175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몸을 바싹숙이고 내게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에,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또다시 그의 눈빛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이상한 빛... 그와 나 사이에만 존재하는 기이하고 특별한 순간, 그는 내게 더 바짝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입술이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하게 속삭였습니다.

"나도... 나도 자네를 사랑하고 있네." - P175

"이리 오게 롤란트 내 곁에 앉아!... 자네가 알게 되어서, 드디어 우리 두 사람 사이가 명확해져서 마음이 가벼워졌네... 처음에는 항상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네. 내게 자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자네가 눈치챌까봐 말일세... 그러면서도 나는 또 바라곤 했어. 내가 굳이 털어놓지 않아도 자네가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말이야... 하지만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후련하네... 

이제는 그 누구한테도 못했던 이야기를 자네에게 말 할 수 있어. 최근 몇 년 동안 자네가 어느 사람보다 나와 가깝게 지냈으니까 말이야... 그 누구보다 나는 자네를 사랑했어... 그 누구보다 자네는 나의 삶의 궁극적인 성과를 만들어주었지... 그러니 작별할 때에도 나에 관해 어떤 다른 이보다 자네가 더 많이 알아야 하네. 나는 어느 순간에나 자네의 질문을, 무언의 그 질문을 아주 또렷하게 느끼고 있었다네... 당연히 오직 자네만이 나의 모든 삶을 알아야 해. 내가 자네에게하는 이야기를 들어 주겠나?"
그는 나의 눈빛에서, 혼란스러워 하면서 흔들리는 내 눈빛에서 수긍하는 내 뜻을 읽었습니다. - P1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르르, 바람이 세월을 밀어낸다. 그의 시간 한 줌이 바람속에 흩어져 흘러간다. 잣나무 가지가 쉴 새 없이 살랑이고그 사이로 갓난아이 눈망울같은 햇살이 어룽거린다. 아내가 묻힌 자리, 1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눈 밝은 사람이 아니라면 찾을길 없이 녹음 짙푸러 여기가 거긴지 거기가 여긴지 풍경 사뭇 다르다. 매일 오는데도 한재 정상 잣나무숲은 매일 모습을 바꾼다. 호르르, 바람결에 흔들리며 어룽어릉 숲 바닥에 내려앉는 햇살이 아내의 웃음처럼 수줍다.
이러고 있으니 좋은가?
ㅡ<숲의 대화> 중에서 - P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사는 해보나마나야." 내가 말했다.
"당신이 뭘 찾는지 아니까요. 마음을 나타내는 심상을 만들어낼 때으레 내가 하기 마련인 반응들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으니까. 내가보이면 되는 반응은...‘
버트는 고개를 들고 날 올려다보며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보이면 되는 반응은..."
하지만 그때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마음속에서 칠판에 적힌 것들을 보고 있는데, 그것을 읽으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일부분이 지워져서 나머지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과 같았다.
- P419

처음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잔뜩 공포에 질려서 카드를 계속 넘겼고, 너무 빨리 넘겨서 숨이 막히고 목이 메어서 단어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잉크무늬들을 찢어서 따로따로 떼어놓아서 제 스스로 뜻이 드러나도록 하고 싶었다. 잉크무늬 어딘가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알고 있었던 대답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잉크무늬가 아니라, 내 마음의 일부가 그것들에 형태와 의미를 주어서 나의 인상이 그 무늬 위에 투영되었을 것이다. - P419

나는 탁자 위에 있는 카드들을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테스트는 하지 않겠어요. 더이상 테스트는 받고 싶지 않아요."
"좋아, 찰리. 오늘은 그만해요."
"오늘만이 아니에요. 이젠 여기에 그만 올 거예요. 내게 남은 것 중에서 당신이 필요한 게 있다면 그게 뭐든지 경과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미로를 다 달렸어요. 이젠 더 이상 실험용 돼지가 아니라고요.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젠 혼자 있고 싶어요." 
"찰리, 알았어요. 이해해요." - P420

보고서를 다시 쓰려고 용기를 낸 지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나는 모르겠다.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길을 건너 교회에 가는 모습이 보이는 걸로 봐서 오늘은 일요일이다. 한 주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던 것 같고, 무니 부인이 내게 여러 번 음식을 가져다주고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묻던 게 생각난다.
이런 몸으로 이제 뭘 해야 할까? 여기서 혼자 빈둥거리며 마냥 창밖만 내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뭔가 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하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아마도 내가 하겠다고 말한 것을 안 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일지도 모르다. - P441

키니언 선생님과 스트라우스 박사와 머두들... 안녕히 계세요.

추신. 니머 교수에게 사랑들이 비웃을 때 화를 내지 않으면 더 많은 칭구들을 사귀게 될 거라고 꼭 말해주세요. 사람들이 웃도록 내버려두면 치구를 사귀기가 시워요. 워렌에 가서 저는 친구들을 많이 사귈거예요.

추신. 혹시 기해가 있으면 뒷마당에 있는 앨저넌의 무덤에 꼿을 좀 놓아주세요. - P4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짓 없는 감정과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나 눈이 없는 사람은 이용해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태어날 때부터 지능이 낮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학대하다니 정말 이상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 소년처럼 멍청하게 광대 노릇을 했던것이 생각나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 P295

거의 잊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그들 틈에 끼어서 나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그게 무엇보다도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 P296

초기에 쓴 경과보고서들을 자주 다시 읽어보면, 틀리게 쓴 글자들사이로 아이처럼 순진하고 지능이 낮은 내가 어두컴컴한 방에서 열쇠구멍으로 몰래 바깥세상의 눈부신 빛을 훔쳐볼 때의 마음이 느껴진다.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지만 행복하게 웃는 찰리의 모습을 꿈에서 보거나 생각날 때가 있다. 멍청하기는 해도 내가 저능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는 없는 것을,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을 지니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암흑에 놓여있을 때에도 나는 그것이 어쨌든 읽고 쓸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되어있다고 믿었고, 저런 기술들을 익힐 수만 있다면 나도 지능을 가지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 P296

지적장애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지내기를 바란다. 어린아이는 혼자 밥 먹을 줄도 모르고, 뭘 먹어야 할지도 모를 수있지만, 그래도 배고픔이 무엇인지는 안다.

"오늘은 내게 좋은 날이다. 어린아이들처럼 나 자신을 ㅡ 나 자신의 과거와 나 자신의 미래만을 ㅡ걱정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내게 있는 뭔가를 나눠주자. 내가 지닌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서 인간지능을 향상시키는 분야에서 일해야 한다. 누가 나보다 더 적합할까? 나 말고 누가 두 세계에서 살았을까? - P296

"물론, 자네를 이 실험에 끌어들이는 것은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었어.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때 자네가 얼마나 많이 기억하는지를, 또 조각들을 얼마나 맞추었는지를 나는 모른다네. 하지만 우리는 지능이 일시적으로만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자네에게 분명히 해두려고 노력했어."
"그 당시에 경과보고서에 제가 그렇게 적었죠." 나도 동의했다. "비록 그때는 당신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요. 하지만 제가 말하려고 한 점은 그게 아니에요. 지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죠." - P3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