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여성들은 영어를 망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니까, 영어를 발명했다

보컬프라이, 업토크, 헤징 등의 언어 습관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다양한 일례로 설명해준다.

˝어떤 소리가 변하는 과정을 알아차린다면,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을 이끌고,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반세기 앞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재미있는 사실: 언어학자들은 가장 혁신적이지 않은 언어 사용자가 잘 움직이지 않고, 나이 많고, 시골에 사는, 기본적으로 ‘규범‘과 같은 의미의 남성들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 (155쪽)


5장. 당신의 문법을 고치려 드는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는법

남의 나라 문법이라 잘 와닿지 않아 어렵다.
특히, 영어의 대명사 관련 부분.

미국에서 이 문제는 대명사와 관련이 많다.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정체성이 가시화되면서, ˝선호하는 대명사˝가 더 많이 논의되고 있다. 여성이나 남성 정체성을 갖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단수의 ‘그들they‘을 사용한다. 그러나 모두 여기 동참한 건 아니다.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복수로 읽힐 수 있다는 이유로 저항감을 표한다. 그렇게 하면 문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186~187쪽)


젠더 중립적 대명사의 사용도 연습이 필요하다.





1920 년대에 남성 언어학자들은 물체에 인칭대명사를 붙이는 과정을 ‘업그레이딩‘이라고 불렀다. 물체를 ‘그녀‘라고 부르면 인간의 위치로 격상되었다는 뜻이다. 그 언어학자들은 이것이 여성을 장난감이나 재산으로 격하하는 행위이기도 하다고 보진 않은 것 같다. - P180

현실에서 여성을 자연, 영토, 기술에 비유하는 행위는 여성이라는 성별을 ‘타자‘ 라는 범주로  묶는다. 로메인에 따르면, 바다와 해양과 같은 자연에 여성을 비유하는 행위는 "여성은 자연과 문명간의 갈등,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유혹하고, 끌어당기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정복해야 하는 무언가"라는 뜻을 지닌다. 여성은 식민화해야 하는 대륙이고 포위해야 하는 성채이다. 
이런 감정은 그저 영어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탈리아어부터 시작해서 태국어에 이르기까지, 한 국가의정부에는 ‘건국의 아버지가 있는 반면, 땅은 ‘어머니 대지‘,‘처녀지‘라고 불리며 여성화된다. 
삶에서의 비유처럼 문법에서도, 여성은 문명화된 남성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통제되지 않는 땅이다. 우리가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비유하는 약하고여린 꽃으로 길들여져야 하는 야생적인 것이다. - P181

특히 프랑스에서는 언어가 페미니스트에게 가장
강력한 저항의 도구가 되었다.
프랑스 여성들은 남성명사 대신 그 자리에 여성명사를 쓰곤 한다. 이야기나 대화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남성인 ‘르 쉬제le sujet‘ 대신 사람이란 의미의 여성명사 ‘라 페르손la personne‘을 쓰는 식이다. "비록 이론적으로 (…)[‘주제‘라는 단어는] 남성과 여성을 모두 아우르게 되어 있지만,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의 주요한 신조 가운데 하나는 가부장제가 남성을 주제로 설정하고 여성을 효과적으로 배제한다는 것이다." 로메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모순적이게도, 여성을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문법이 여성에 대한 배제를 당연시하게 된다." - P182

문법적 젠더를 비판함으로써 여성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다. 트랜스와 젠더 비순응적인 이들에게도 이는 정치적으로 의미 있고 분명 실용적이다. 스스로를 여성 혹은 남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들은 프랑스어와 같은 언어에서 난감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꽤나 창의적인 방안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이분법적인 젠더 체계를 통해서 스스로를 이분법 바깥에 위치시킬 수 있다." 
샌타바버라의 언어학자인 랄 지먼은 이렇게 말한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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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운동 이후의 중국이 배경.
지식인 청년 라오리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부정하고 암담한 현실을 인식하지만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탓에 어떠한 일도 실행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자신을 끊임없이 탓하기만하고 무엇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 가족도 아내도 자신의 신념도... 읽는 내내 답답했다!

라오리는 불 옆에 앉아 물을 한 주전자 들이켰지만 마음의 갈증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머리가 쭈뼛 서고, 답답해서 가슴에 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아내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추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제일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샤오자오에게 밥을 사겠다고 나섰을까? 단지 친해 보이려고? 아니, 아내가 추해 보이는 것을 막고 싶었다. - P145

하지만 많은 돈까지 쓰고도 끝내 추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아내가 추해 보이는 게 뭐가 대수였을까? 아무리 샤오자오가 떼를 써도 밥을 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다고 제가 날 어쩌겠어?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지! 피하고 숨겨서 뭐하게? 너야말로근본적으로 부패한 사회의 화신이야. 무료하고 쓸모없는 사회에 감히 맞서지도 못하다니. 너는 사람도 아니야! 왜 샤오자오그자의 면상에 냅다 술을 뿌리지 못했지? 그게 아니면 그 자식코를 쥐고 식초라도 부었어야지! 그저 혼자 답답해하기만 했을 뿐, 감히 제 마누라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어! 항상 자신은 신세대이고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영락없는겁쟁이잖아. 별 볼 일 없는 과원들에게 틀렸다는 말도 제대로못 하고, 그들의 웃음거리가 돼도 아무 말도 못 하지! - P146

라오리는 가슴이 답답했다. 여자하나가 한 남자, 아니 어쩌면 여러 남자의 인생을 망칠 수 있어. 마찬가지로 남자들 또한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망가뜨렸을까? 이것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결혼 제도가 문제인 거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저 나 자신이나 딩얼 영감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 P180

라오리는 실망보다 창피함이 더 컸다. 실망 속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지만, 이런 종류의 자괴감은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 이상, 그저 빨리 죽어버리라고 스스로를 저주하게 될 뿐이다. 묘회에서 간신히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갔는데, 결과는 깨진 기와 조각에 얻어맞고 거름 더미에 엎어진 격이었다. 그녀를 탓하면 화를 가라앉힐 수도 있겠지만, 라오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탓했다. 자신은 너무나 평범한, 아니 너무 평범해서 남들이 희한하게 볼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어서 아무도 라오리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딩얼 영감도 나보다는 나을 것이다. 흥, 네 주제에 감히 낭만을 꿈꿔? 그렇게 오랜 시간 참고 참다가 마침내 모험을 감행했고 잠시나마 가슴이 뛰었는데 결과는 망신뿐이다! 둘을하나로 엮는다고? 누구 맘대로? 라오리는 전신주에 머리를 들이박고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 P187

장다거 일이 급했지만 쑨 선생이 가고 혼자만 남게 되자 라오리도 마지못해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쑨 선생이 한 말을 곰곰이 되씹었다. 남자는 이러면 안 된다. 그는 생각했다. 순진한 여자는 저 스스로 함정에 빠진 것이고, 예쁜 여자는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며, 못생긴 여자는 생지옥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여자는 잘될 수가 없다. 남자가 못됐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단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보다 큰 문제이다. 절대로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선 안 된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이 관청 사람들을 좀 보라. 
소장이 어떤 사람인가? 관료 겸 토비다. 샤오자오? 사기꾼 겸 과원. 장다거? 남자 중매쟁이. 우 태극? 밥통 겸 무술쟁이. 쑨 선생? 건달 겸 베이핑 속담 수집가. 추선생? 고민의 상징 겸 과원. 이런 인물들 가지고 관공서를 꾸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 P209

그 부인들을 또 어떤가? 장다사오, 떡판, 쑨부인, 추부인,
거기에 내 마누라까지. 한 명도 제대로 된 여자가 없었다. 이런 남녀들이 사회의 중견 인물이고, 다음 세대를 키우고, 민족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웃기는 소리! 틀림없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 존재할 수 있겠어? 하지만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니 그들이 쓸데없는 짓 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 P210

"라오추, 자네 보기에 이렇게 사는 게 재미없는 것 같지 않아?"
추 선생은 한참을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웃었다.  "재미없지! 삶이란 것이 울타리에 갇히게 되면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재미가 없어져. 꼭 내가 어렸을 적엔 거친 야생마였지만, 나이가 들어 장가들고, 일을 하게 되면서 아주 뺀질뺀질한 당나귀로 변한 것마냥. 나중엔 더성먼德勝門 밖으로 끌려가 큰솥에서 삶겨 고기로 팔리겠지. 이제는 울타리 밖으로 도망칠 수도없어. 누구도 못 해. 지금은 그저 순간순간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며 사는 거지. 뜨거워졌을 때에는 발끈했다가, 차가워지면 살살 비위를 맞추는 거야. 학질 걸린 삶이야. 방법이 없어. 내가 처음부터 말단 관료가 되고 얌전한 남편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어쩌겠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네가 나보다 단수가 높기는 해도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야. 그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똑같이 한 솥 안의 요리 신세인 거지. 이런 얘기 그만하고, 잡담이나 하자고. 그저 잡담할 때가 제일 즐거워."
내가 라오추를 잘못 알았구나. 그도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고 있었던 것이다. - P237

"리 선생님, 리 선생님, 다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쉽더라고요. 아주 쉬워요! 리 선생님, 일이라는 게 처음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하고보니 꼭 못 할 것도 아니더군요."
라오리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 딩얼 영감을 보니 문득 그가 입은 모시 다산이 새하얀 광채를 발하는 것 같았다. "일이라는 게 처음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 한 마디가 연신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마치 깊은 연못에 바위가 떨어지면서 튀어 오른 물방울처럼 가벼우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샤오자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당얼 영감 자체가 기적이라는 느낌만 들었다. 딩얼 영감조차 그저 밥 먹고 차 마시고 관청에 나가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수있다니! 그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찔끔 마신 술은 목구멍에 달라붙어 넘어가질 않았다. - P341

라오리는 그저 술잔을 든 채 딩얼 영감이 술을 들이켜는 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독한 술맛에 목을 추켜세우는 딩얼 영감의 표정이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 
"그 자식, 보내버렸습니다. 정말 쉽더군요. 슈전 아가씨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허우하이에서 만나자고 했지요. 그가 왔더군요. 얼마나 신나 하던지. 여자들 능력이 참 대단합니다. 제가 잘 알고말고요. 별로 어둡지는 않았는데 다행히 주위에 사람이 없더라고요. - P342

저는 미리 와서 갈대숲속에 숨어 있었는데 모기가 되게 많았어요. 온몸이 물어뜯겨서여기저기 큼지막하게 부풀어 올라도 꼼짝 않고 있었네요. 

그때 그가 오더군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휴,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꼭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더라고요. 정말로요! 제 앞을 지나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귀신이 사람 몸 가로채듯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꽉 졸랐지요. 거의 혼이 빠질 뻔했지만 그래도다른 것은 다 잊고 오직 두 손만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마치 잠자는 강아지가 가끔 낑낑대듯이 두어번 낑낑대더라고요. 그게 다였습니다요. 발도 제대로 버둥거리지 못하고 아주 얌전해지데요. 이 딩얼보다도 더 얌전하더란 말입니다요! 갈대밭 속으로 끌고 들어가 몸을 뒤졌더니 이 집문서가 나오데요. 지갑하고 시계는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일을 끝내고 나니 맥이 풀려서 나오지 못하겠더라고요. 걷지도 못하겠던걸요. 그가 반듯하게 누워 있는데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되게 무섭더군요. 갈댓잎이 한 번 흔들릴 때마다 마치 누가 뒤에서 내 목을 조를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요."
딩얼 영감은 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목덜미를 더듬었다.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 P343

라오리의 희망이 사라졌다. 
세상은 한 점 빛도 없는 암흑천지였다.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었다. 이 정원도 저 괴물 관청과 마찬가지로 무료하고 무의미했다. 라오리는 딩얼 영감을 깨웠다. 가슴속에 있는, 어렴풋하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시골의 풍경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좋지요, 리선생님과 같이 시골로 갈래요, 암요! 베이핑에서는 조만간 총에 맞아 죽을 것 같아요!"
딩얼 영감은 당장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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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바진과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꼽히는 라오서.
유머로 중국 현대문학의 영역을 확장한, 라오서 자신이 꼽은 최고의 작품.
라오서 작품으로 처음이다.

장다거張大哥는 모든 이의 다거이다. ‘그 애비도 제 자식을 다거라고 부를 거야.‘ 보는 사람마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할 만큼 그는 딱 봐도 ‘다거‘였다. - P7

장다거에게는 일생을 바쳐 이루고 싶은 신성한 사명이 있다. 바로 중매와 이혼 퇴치다. 그는 모름지기 처녀에게는 적당한 남편이 있어야 하고, 총각 역시 그에 걸맞은 아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짝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장다거의 몸은 그 자체로 현미경이자 저울이었다. 그의 현미경은 처녀 얼굴에서 마맛자국을 발견하면 즉시 수많은 인파 속에서 말을 좀 더듬거나 보는 게 시원치 않은 남자를 찾아냈다. 저울에 올려놓고 보면 마맛자국과 근시는 피장파장이라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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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자들에게
이사벨 아옌데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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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자들에게>이사벨 할머니와 수다를 ......

이사벨 아옌데의 에세이 <사랑하는 여자들에게>를 읽는 동안 정말 이사벨 할머니와 수다를 떨고 온 듯한 경험을 했다.

그 수다를 언제까지라도 ... 그래서 다시 또 만나서(물론 직접 만난다 해도 대화가 안될테니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수다를 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글을 읽으면서도 정말 이 할머니의 수다를 듣고, 박수 치고 맞아요 맞아요 그러니까요 하면서 공감하고 있는 기분이 수시로 들었지만 -물론 더 할 수 없이 멋진 할머니인건 말할 것도 없고 - 그 수다가 끝나지 않고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 가까이 사는 분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사벨 아옌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이지만 나는 그의 소설(영혼의 집, 운명의 딸)을 접한 것 뿐이어서 내밀한 속내는 알 수가 없었는데 이 작품을 대하면서 노년의 이사벨의 속내를 조금은 알게 된 기분이었다. 좀 더 친근해진 느낌이 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줄 수 있는 작가가 같은 여자라서, 그리고 작품의 엄청난 성공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어서, 또 그리고 이런 뜻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너무너무 기분이 좋다는 것이지 암... 그렇고 말고... 내가 왜 뿌듯한 기분이 드는 건지는...  읽어보면 알게 될 거라고 마구마구 말해주고 싶다~~^^



칠레에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볼리비아로 망명을 하고 다시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이제는 미국의 작가가 되었지만 그녀는 영원히 남미 칠레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다. 자신의 조국은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칠레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노년에 만난 현재의 남편과 지내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글을 쓰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행동하는 페미니스트이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적 관점에서, 그의 나이 78세에 쓴 에세이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토대로 자신이 살아왔고 이제 자신의 딸과 아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 사랑하는 여자들이 살아갈 세상은 가부장제라는 제도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기를 염원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가부장제 아래 고통받는 여성들이 힘을 모아 연대하기를 바란다. 여성들이 연대하는 힘은 누구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남성들의 가부장제가 불과 몇 십년 사이에 여성들의 힘으로 변화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멋진 이사벨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는 글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 중에 내가 몰랐던 부분은 딸 파울라가 유전성 혈액 질환을 앓다가 이사벨의 나이 50 무렵에 엄마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파울라>라는 작품을 발표하였고(우리나라엔 출간되지 않았나봐요..ㅠ.ㅠ 엄청난 성공이었대서 너무 궁금함), 그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재단(www.isabelallende.org)을 설립하고 전 세계의 여성들을 돕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페메니스트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또는 겪은 일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는데, 여성들이 연대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 그리고 아는 것을 행동으로 실행하지 않는 것은 가부장제를 심지어 돕는 여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무거운 내용들이 많지만 그 분위기를 바꿔가면서 무겁게 이야기하지 않아서 더 좋은 이 기분을 다른 모든 여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많은 여자들이 다 읽었으면 좋겠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이 책을 구입해야겠다.  내 맘에 들어온 문장들을 남겨본다.


                 





*** 문장들


   일반적으로 언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말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가부장제에는 남녀의 구분이 유용하며, 젠더를 구분해야 통제가 훨씬 쉬워진다. 우리는 젠더와 인종, 나이 등등의 구분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왔지만 젊은 세대 다수는 이러한 구분에 반기를 든다. (86쪽)



   내 딸 파울라를 떠나보내면서,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항상 우리 곁에 잇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깨달았다.  칠십 줄에 접어든 지금 죽음은 어느덧 나의 친구가 되었다. 죽음은 낫을 든 썩은 냄새를 풍기는 해골이 아니다. 죽음은 성숙하고 우아하며 치자꽃 향기를 풍기는 상냥한 여인이다. 전에는 우리 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리더니 얼마 전에는 우리 이웃집에 와 있다가 지금은 우리집 마당에서 참을성 있게 대기하고 있다. 가끔 그녀 앞을 지나칠 때면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누리라고 일깨워준다. (146쪽)



   남성은 여성의 힘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법과 종교, 관습의 힘을 빌어 수 세기동안 여성들의 지적 계발과 예술적, 경제적 발전을 가로막는 온갖 제한을 가해왔다. 한때는 수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너무 많이 안다는 이유로,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산 채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도서관에도 갈 수 없었고, 대학에도 갈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그런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이성적인 모습은 여성을 문맹화하여 고분고분 복종하게 만들고, 쓸데없이 질문하거나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남성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너무 두드러지거나 리더의 위치에 오르려고 하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겪은 것과 같은 공격을 당하게 된다. (162쪽) (그러게나 말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안이 미치광이 백인 트럼프였다니 믿어지십니꽈!!!)



   미국의 연쇄살인범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백인에 공통적으로 여성혐오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여성 혐오는 가정 폭력, 여성에 대한 위협과 폭행의 이력을 보면 확인된다. 이런 사이코패스들 상당수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성의 거절과 무관심, 조롱을 견디지 못한다. 즉, 여성이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신들을 비웃을까봐 두려워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신들을 죽일까봐 두려워한다." 여성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이다.(163쪽)



   여성의 학대는 곧 여성의 평가 절하와 맥을 같이한다. 페미니즘은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이, 여성도 사람이라는 급진적인 개념이다. 수 세기 동안 여성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165쪽)



   이제 평화를 이야기해 보자. 전쟁은 마초이즘 표출의 극한이다. 모든 전쟁에서 희생되는 대부분의 희생자는 군인이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이다. 14세에서 44세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 가운데서도 첫 번째로 꼽히는 원인은 바로 폭력이다.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암, 말라리아, 사고사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인신매매 희생자의 70퍼센트도 여성과 아이들이다. 한 마디로, 선전포고만 없었지 여성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그러니 우리 여성들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그 무엇보다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174쪽) (으... 마초이즘 너무 싫어...ㅠ.ㅠ)



   경제적 자립 없이는 페미니즘도 없다. ...2015년에 전 세계 문맹자의 3분의 2는 여성인 것으로 추산되었고,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동의 대다수는 여자 어린이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성은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에 비해 낮은 급여를 받고 있으며, 교사나 간병인 같이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었던 직군은 급여가 낮고, 가사 노동은 아무런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건 물론 대가도 전혀 지급받지 못한다. 요즘같이 여성도 밖에서 일을 하는 시대에는 이런 사실에 훨씬 더 화가 치민다. 어차피 외벌이로서 가족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는 남자가 별로 많지 않아서 바깥일을 같이 하는데,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고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집안일을 하는 건 다 여자 몫이기 때문이다. 관습과 법이 바뀌어야 한다. ... ...누군가에 의존하는 삶은 어린시절에도 지금 느끼는 것만큼의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 스스로 내 밥벌이를 하고자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능하면 엄마도 부양하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늘 말했다. 돈을 내는 사람이 명령도 내리는 것이라고. 할아버지의 그 말이 내 초기 페미니즘 사상에 도입한 최초의 공리였다. (180 ~ 183쪽)



   나는 내 소설에 등장시킬 강인하고 결단력 있는 여주인공을 굳이 창조해낼 필요가 없다. 나 자신이 늘 그런 여성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사지에서 도망쳐 나와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모든 것을 다 잃고 심지어 자식까지 잃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그들은 단지 생존자일 뿐 아니라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몸에 난 흉터와 영혼에 생긴 상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 자신이 회복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희생자로 취급되기를 거부한다. (185쪽)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여성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빈곤 지역의 경우, 어머니들은 소득의 전부를 가족을 위해 쓰는 반면, 아버지들은 소득의 3분의 1만 가족에게 쓴다. 다시 말해, 어머니들은 돈을 버는 대로 가족의 식비와 의료비, 자녀들 학비를 충당하는 반면, 아버지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이다. 어디 가서 재미를 보느라 탕진하는 것일 수도 있고, 휴대폰이나 자전거 같은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는데 쓸 수도 있겠다. (191쪽)


 

  1960년대에 피임약을 비롯한 다양한 피임 기구들이 대중화되면서 여성 해방의 범주도 더욱 확대되었다. 마침내 여성도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불안감 없이 온전한 성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즈음 칠레 종교계와 마초이즘의 반발이 얼마나 강력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 지금까지 이미 우리는 많은 것을 이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전쟁, 근본주의, 독재, 경제 위기, 각종 재난에 이르는 온갖 구실로 우리 여성의 인권은 짓밟히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로 인권이 있다면 말이다. 미국에서도, 그것도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린 이 시대에, 여전히 낙태권뿐만 아니라 여성의 피임 기구 사용 문제는 뜨거운 논란의 주제가 되고 있다. 남성의 정관 수술이나 콘돔 사용을 문제 삼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다. (198 ~ 199쪽) (내말이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임신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났는데... 내 몸에 생긴 일인데 왜 결정을 남자들이 해주는 거죠? 여성들이 그걸 원한건 아닌데 말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남성의 가치 그리고 단점만 부각시키고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짓눌러온, 천 년을 이어온 가부장제 문화를 종식시켜야 한다. 종교와 법률로부너 학문과 관습에 이르는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우리의 분노가 이 문화를 지탱해온 근간을 산산이 부숴버릴 수 있도록 진심으로 분노하자. 여성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는 순종의 미덕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이며, 남성에게만 유익할 뿐 우리 여성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237쪽) (맞아요~~~ 순종, 복종 이런 단어는 종교인들이나 사용하는 걸로!!!)



   이미 40여 년 전에 저명한 활동가이자 뉴욕 주 하원의원이었던 벨라 앱저그는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에 담아낸 바 있다. "21세기에는 권력이 여성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대신, 여성이 권력의 본질을 변화시킬 것이다. (238쪽)



   나는 딸(파울라)에게 아직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체념한 채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그랬듯이 그 여성들도 원래 세상이 그런 거고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페미니즠'이란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좋은 이름을 찾아보렴. 이름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정말 중요한 건 너 자신과 이 세상의 행동을 필요로 하는 숱한 자매들을 위해 일하는 거야." 파울라는 별 다른 대답 없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240쪽)



   이제 잠시 숙고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이며, 의식 있는 남녀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며, 옛이야기 속 바그다드의 칼리프가 도둑에게 물었어야 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단순히 오감을 만족시키는 그런 아름다움이 아니라 열린 마음과 맑은 생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 말이다. 우리는 모든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는 평화로운 지구를 원한다. 우리는 사람 사이의 상호 존중, 다른 종과 자연에 대한 존중에 입각한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잡힌 문명을 원한다. 우리는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 우리를 갈라 놓는 각종 구분에서 비롯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포괄적이고 평등한 문명을 원한다. 우리는 평화와 공감, 품위, 진리, 연민이 충만한 친근한 세상을 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세상을 원한다. 그것이 우리 착한 마녀들이 추구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든 여성이 함께 완성해낼 수 있는 계획이다. (249 ~ 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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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위대한 작가 이사벨 아옌데가 들려주는 그녀의 인생, 그리고 페미니즘 투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노작가의 이야기가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듯 읽힌다. 그의 어조가 그렇다. 내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힘이 담긴 목소리로 말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지금까지 쓴 소설 속 인물 중 한 명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운명의 딸》 속 여주인공 엘리사 서머스를 선택했다는 글을 읽었다. 인터뷰어는 그 책이 ‘우의적인 페미니즘의 발현‘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했는데 그 질문에 그래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런 생각을 작가 스스로는 해본 적 없었단다. 나도 그 책 읽으며 여주인공 엘리사가 시대를 앞서가는 당차고 강인한 여성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페미니즘으로까진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얍삽한 기자 하나˝ 라고 표현한 것을 보니 그 질문에 기분이 꽤 나빴던게 아닐까 싶어 살짝 웃음이 났다.

엘리사가 살았던 개척시대 미국도 그랬지만 사실 여성 해방을 위해 우리 여성들은 남성의 전략을 배워야했고 그들과 겨루어야 했으며 남성처럼 행동해야만 했다. 여성들이 쟁취한 자유를 더 지키고 , 저 신장시켜 나가고, 이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전파시키기 위하여 싸워나갈 것임을, 엘리사와 저녁을 함께 할 수 있다면 꼭 이야기해주고 싶단다.

<첫 문장>
한 치의 과장도 없이 말하지만, 나는 유치원 시절, 그러니까 우리식구들이 ‘페미니스트‘라는 게 도대체 뭔지도 몰랐던 그 시절부터 이미 페미니스트였다. 내가 1942년에 태어났으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내 기억에, 내가 처음 남성들의 권위주의에 반감을 갖게 된 건 엄마가 처한 상황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엄마의이름은 판치타. 내 아버지는 페루에서 살 당시, 아직도 젖먹이였던 어린 두 자녀, 그리고 갓난쟁이와 내 엄마 판치타를 버렸다. 결국 엄마는 칠레의 친정으로 돌아와 얹혀살아야 했고, 그 덕분에 나는 외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 P7

‘페미니즘‘이란 어휘는 매우 급진적인 느낌이 들고 때론 남성 혐오로 해석될 수 있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따라서 나의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앞서 독자들에게 이 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럼 우선 ‘가부장주의‘라는 말에서부터 시작해보자. - P23

내가 생각하는 ‘가부장주의‘는 어쩌면 위키피디아나 스페인 한림원이 발간하는 사전상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이 말은 여성이나 다른 그 어떤 종에 대해 남성이 갖는절대적인 권한을 의미한다.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일면서 일부 측면에서 이런 절대 권력이 손상되었다. - P23

물론 또 다른 많은 측면에서는 지난 수천 년을 이어온 남성들의 전권이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지만 말이다. 성차별적 요소가 잠재된 수많은 법률이 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는 남성만이 지배력과 특권을 누려왔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부문에서 여전히 남성에게만 억제력을 부여하는 지배적 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가부장적 체계는 여성에 대한 반감, 즉 ‘여성 혐오‘도 불러올 수 있지만, 동시에배타성과 공격성을 내포한 다양한 형태의 문제를 야기한다.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 계급 차별, 외국인 혐오,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척 등이 그 예다. 가부장주의는 타인의권리를 침해하며, 복종을 강요하고, 이에 도전하려는 자들을 응징한다. - P24

그렇다면 나의 ‘페미니즘‘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두 다리 사이에 존재하지 않고, 두 귀 사이에 존재한다. 즉 나의 페미니즘은 철학적 태도이자 남성만이 가진 권위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정의에 대한 주장이다. 또한 여성의 해방과 동성애자, 성소수자(LGTBIQ 등)‘를 비롯해 제도에 의해박해당하는 모든 이들의 해방, 그리고 나의 이 페미니즘에 동참하고자 하는 또 다른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이다. - P24

동참하고자 하는 노고자 하는 이들을 나는 언제라도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표현대로
‘격하게 환영 Avemenide‘ 한다. 다다익선이라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젊은 시절에 나는 양성평등을 위해 온몸을 다 바쳐 일했고, 남성들의 게임에 끼어보려 했다. 그러나 좀 더 어른이 되면서 그런 게임은 미친 짓이며, 세상을 파괴하고 인간의 윤리의식을좀먹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이 이세상을 망가뜨렸다고 비난하는 건 아니다. 다만 망가진 세상을 고쳐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원리주의, 파시즘, 전통 등의 강력한 저항을 받기 마련이다. 더욱이 수많은 저항 세력 속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며 확연히 다를 미래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수많은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때면 절망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 P25

이렇게 가부장주의는 거대한 바윗돌 같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바다처럼 유연하고, 강력하며, 깊고, 삶의 무한한 복잡성을 제 안에 담고 있다. 그리고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하며, 가볍게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성난 풍랑처럼 요동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그렇게 바다처럼 언제나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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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07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아옌데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잇는데 이번에 새로운 에세이가 나왔군요! 담아갑니다. 후훗.

은하수 2023-09-08 16:53   좋아요 0 | URL
후회하지 않을실 거예요
아주 기분즣은 독서 시간이 되실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