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모두 정감 넘치고 기뻐하는 가운데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다. 브리그스는 피셔 부인이 고상한 노부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마법이 통했는지 부인이 고상한 노부인으로 변했다. 부인은 그에게 인자함을 발휘했고, 찬찬히 관찰해가며 차를 마시고 난 다음에는 장난기 섞인 자애로운 태도로 그를 가리켜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 P271

피셔 부인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이상한 말이었다. 부인이 평생 그런 말을 해보기는 했을까 의심스러웠다. 로즈는 경악했다. 지금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언제쯤이면 사람을 잘못 보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로즈는 피셔 부인에게 이런 면이 있으리라 의심해보지 않았기에 자기가 알고 있는 피셔 부인의 다른 면들도 어쩌면 결국은 자신의 호전적이고 짜증 나는 기분 상태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들기 시작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은 정말 몰인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난 순간, 피셔 부인의 눈 밑이 진정 환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고 로즈는 크게 뉘우쳤다. 그리고 피셔 부인이 방금 큰 소리로 웃었을 때는 부끄러워서 땅으로 꺼져버릴 것 같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 P271

이전에는 로즈도, 그리고 다른 누구도 피셔 부인이 소리 내 웃는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피셔 부인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같이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들은 모두 웃었고, 다른 사람들은 도착한 후로 적어도 한두 번은 웃었지만 피셔 부인만은 웃지 않았다. 지금 피셔 부인의 웃는 얼굴을 보면 이전까지는전혀 즐겁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 로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피셔 부인이 즐겁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로티는 신경을 썼고, 피셔 부인을 기분 좋게 해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로티는 역효과만 낳은 듯했다. 반면 로즈는 부인에게 맞서거나 도발하고 싶을 때 외에는 오 분도 부인과함께 있지 않았다. - P272

로즈는 그간 정말 못되게 굴었다.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했다. 로즈는 참회하는 뜻에서 수줍고 공손한 태도로 피셔 부인을 걱정해주었는데, 덕분에 이를 본 브리그스는 로즈를 훨씬 더 천사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기가 잠시라도노부인이 돼서 로즈 아버스넛에게 그런 대접을 받기를 소망했다. 그는 로즈의 다정함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했다. 브리그스는 로즈 아버스넛이 약을 들고 그에게 몸을 구부려줄 수만 있다면 아무리 위험한 약이어도 기꺼이 받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P272

또 생각이 뒤죽박죽 섞이더니 끊겨버렸다.
"프레더릭………." 로즈는 남편을 부르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면 소리는 나왔지만 불이 탁탁 튀는 소리에 묻혔는지도 몰랐다.
더 가까이 가야 한다. 그를 향해 천천히 천천히 기다시피다가가기 시작했다.
프레더릭은 움직이지 않았다.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로즈는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갔고, 불은 탁탁 튀었으며, 프레더릭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로즈는 숨쉬기가 어려워 잠시 걸음을 멈췄다. 두려웠다. 혹시나, 혹시나……. 그러나 왔잖아. 와 있잖아.
로즈는 다시 걸음을 떼 그의 곁으로 갔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프레더릭이 그 소리를 들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느낄 수 없거나 몰랐거나….
"프레더릭." 로즈는 심장이 뛰고 목이 막혀서 겨우 속삭였다.
프레더릭이 발꿈치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로즈!" 프레더릭이 멍하니 쳐다보며 외쳤다. - P304

프레더릭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능하면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할 프레더릭 역시 아내를 껴안았다. 아내를 껴안고 그 역시 키스했다. 지금 그는 거의 아내만큼 부드럽게 키스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아내에게 왜 부드럽게 키스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지금 그는 절대 끝내지 않을것처럼 더 부드럽게 아내에게 키스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지금... - P305

그는 얼떨떨했지만 그럼에도 키스는 할 수 있었다. 키스하는 일이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마흔 살이 아니라 다시 서른 살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로즈는 스무 살 로즈가 된 듯했다. 그가 하는 일을 자신의 기준으로 저울질하고, 저울추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했으며, 이상하고 냉담하게 변하더니 점점 더 충격을 받고, 끝내 너무나 개탄스러워지기 전에 그가 사랑해마지않았던 그 로즈였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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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는 온종일 혼자 양손으로 무릎을 껴안고 앉아서 앞만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회색 검처럼 생긴 용설란이었고 용설란의 긴 줄기 위로 핼쑥한 붓꽃이 피어 있었으며, 그 너머 회색 잎과 파란색 꽃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 P196

그녀가 찾아낸 장소는 햇빛을 받은 돌에 백리향이 잔뜩핀 숨은 모퉁이였는데,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집은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길에서도 벗어났다.
곳 끝과 가까웠다. 워낙 조용히 앉아 있어서 이내 도마뱀들이로즈의 발 위로 올라왔다. 부리가 짧은 작은 새들이 처음에는놀라서 달아났지만 이내 다시 돌아와 마치 로즈가 거기 없는것처럼 주변 덤불을 돌아다녔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함께 있고 싶은 사람,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 ‘저거 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없으니 아무 소용이없었다. 보통은 이런 풍경을 보고 "자기, 저거봐"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다정하고 달콤한 단어를 써서 기쁘게 해줄 것이다. - P197

이제 로즈는 촉촉해진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종교에 매달리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매달릴 게 아예 없는것보다는 나으며, 이러한 자신의 생각이 비난받을 일이라고는 거의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아, 로즈는 뭔가 실체가 있는 것에 매달리고 싶었다. 살아 있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었다. 가슴에 기댈 수 있는 무언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불쌍한 아기가죽지만 않았어도..………. 아기는 절대 사람을 권태롭게 만들지않았다. 자라서 사람을 알아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어쩌면 아기는 절대 부모 덕을 알아주지 않을지도 몰랐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들고 수염이 자라도, 아무리 특별하고 다른 사람과는 달라도 그러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다른이유 없이는 소중함을 완벽하게 알지 못했다. - P200

흐린 눈으로 바다를 내다보며 로즈는 자기만의 어떤 것을가슴에 꼭 안고 싶은 갈망을 느꼈다. 로즈는 몸집이 작았고성격만큼이나 몸매도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어떻게 설명할까?)젓가슴으로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산 살바토레에는 젖가슴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로즈는 자기 가슴에 기댄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사랑의 속삭임을 들려주고 보호해주며 편안하게 쉬게해주고 싶었다. 프레더릭, 프레더릭의 아이여, 로즈에게 와서 기대어다오. 그들은 불행하니까, 그들은 마음을 다쳤으니까……. 아이들은 마음이 아프면 로즈가 필요할 테고, 불행하면 로즈한테 사랑받으려 할 테니까. - P201

아이는 가버렸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프레더릭이 늙고 지치면.
아버스넛 부인은 산살바토레에서의 첫날 혼자 이런 회상과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수년간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날만은 실의에 빠진 채 차를 마시러 돌아왔다. 산살바토레는 로즈가 조심스럽게 만든 행복 비슷한 것을 빼앗아 가버리고 공허함을 주었다. 아니, 갈망을 대신 주었다. 통증과 염원, 이상한 감정을 주었다. 공허함보다 오히려 더 나빴다. 그래서 집에서는 절대 짜증을 내지 않고 항상 친절했으며 균형감이 있던 로즈가 낙담하자 그날 오후 차 마시는 자리에서 안주인 자리를 꿰찬 피셔 부인을 보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 P201

로티가 남편에게 편지로 산 살바토레에는 자신과 아버스넛부인 외에도 어떤 사람들이 더 있는지 말해주었고, 윌킨스 씨는 즉시 이게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기회임을 알아차렸다. 로티는 단지 ‘여기 묵고 있는 사람이 둘더있어요. 피셔 부인과레이디 캐럴라인 데스터라고 해요‘라고만 말했지만, 그거면충분했다. 그는 드로이트위치 부부에 관해 훤히 알았다. 그들의 재산, 그들의 관계, 역사상 그들의 위치, 그리고 그들이 가진 권력까지. 그들이 권력을 행사하려 들면, 그들이 이미 고용한 사람들 틈에 윌킨스 자신도 넣어주면 또 다른 변호사를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 지점 하나에 변호사 한 명을 고용하고, 다른 지점에는 또 다른 변호사를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드로이트위치 부부의 사업에는 분명 지점이 많을 것이다. 윌킨스 씨는 또한(이 역시 새겨두면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잘 기억해두었다) 그들의 외동딸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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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유혹》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럴라인처럼 사랑스럽고 모든 남자들이 빠져드는 아름다운 용모에 집안도 좋다면... 나두 한번쯤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은데? 이러면 잘못된 건가?
물론 너무 지긋지긋해져서 다만 한 달간이라도 멀리 떠나 홀로 지내는 시간을 갖고 싶을 수 있지. 캐럴라인은 과도한 관심을 받으며 사는 이런 삶에 몹시 지쳐 있으니까... 이런 집안, 이런 뛰어난 용모로 태어났으니 감당하는 것도 어쩔수 없이 본인의 몫일 것이라 생각해 버린다 해도 편안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누구의 인생을 놓고 함부로 속단하진 말자.
캐럴라인과 같은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우니 힘들 수도 있단걸 이해하기로 하자.
아무튼 코멘트를 달긴 애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했지만 그런 삶에 대한 궁금증은 남는다!
난 이런 캐럴라인과 같은 상황을 잘 감당하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피셔 부인은 앞에 있는 사람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틀림없이 예쁘고 패링퍼드에 있어도 먹힐 만한 얼굴이었다.
위대한 남자들조차 겉모습에 쉽게 마음이 동하니 참 이상한 노릇이었다. 피셔 부인은 실제로 테니슨이 모두의 눈을 피해, 그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모여든 저명한 모든 사람을 저버린 채 아무도 들어본 적 없고 우연히 그곳에 들른, 장점이 있다면 오직 예쁘다는 것밖에 없는 젊은 여자와 창가로 가는 걸 직접 본 적이 있었다. - P140

미녀는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돌아보게 할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라고까지 말할수 있다. 그 상황이 지속되는 동안 미녀는 남자들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아내가 있는 사람들조차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피셔 씨도 살면서 그런 시기가 있었다..…… - P141

캐럴라인의 목소리는 멋졌다. 그녀는 태어난 지 10년 만에 지성과 재치가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를 가지게 됐다. 덕분에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다. 가수가 돼야 했겠지만 음악에는 젬병이었다. 대신 말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마치 주문을 거는 것 같았다. 얼굴은 생기발랄했고낯빛은 아름다웠다. 캐럴라인을 보기만 하면 어떤 남자든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거기다 목소리까지 들으면 남자의 눈에불꽃이 일었다. 배웠든 안 배웠는, 늙었든 젊었든, 욕망이 있든 없든 모든 남자가 똑같았다. 캐럴라인의 세계에 있는 남자들과 버스 차장들이, 장군들과 전쟁 중에 난감한 시간을 보냈던 영국 병사들이, 교회 관리인들과 주교가 그녀의 견진성사 대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건강이 좋든 안 좋든 부자들 무일푼이든, 똑똑하는 멍청하든, 그들이 누구든 또는 얼마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했든 상관없이 캐럴라인보면 모든 남자의 눈에 불길이 활활 타올랐고, 캐럴라인의 목소리까지 들으면 타오른 불길이 꺼질 줄 몰랐다. - P142

캐럴라인은 이런 상황에 넌더리가 났다. 그건 난관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처음에는 캐럴라인도 즐겼다. 흥분했고 승리감에 도취했다. 확실히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허투루 말할 수없었고, 박수와 주목을 받았으며, 어루만져졌고, 어디에 가든 호평을 받았다. 집에서도 너그럽고 기꺼운 대접만 받았다. 퍽 기뻤고, 매우 쉬웠다. 이런 성취에는 아무 준비나 노력, 공부가 필요치 않았다. 아무 수고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나타나서 무슨 말이든 하면 됐다. - P143

그러나 점점 경험이 쌓였다. 결국 캐널라인은 애를 써야 했고, 노력을 해야 했다. 놀라움과 분노에 차서 자기방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외모, 그 잘난 외모는늘 사람들의 집착을 낳았다. 그런 외모를 지닌 사람 중에도특히 어렸을 때는 다른 사람들보다 겸손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러나 여러 능력 덕분에 그들은 모두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캐럴라인은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유력한 사람의 전적인 신뢰를 받으며 흔쾌히 그 세계에 들어서지만 곧 불신이 싹트고, 다음에는 염증을 느꼈고, 곧 위축됐으며 끝에 가서는 분개하기에 이르렀다. 가끔 캐럴라인은 자기 자신은 없어지고 보편적인 존재가 되어버렸거나 아무 일이나 하는 한낱 미녀처럼 여겨졌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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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작가의 글에서 이제 뭔진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졌다. 원숙미라고 할까! 읽다 보면 딱 이슬아 작가의 글 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겪어온 시간들에서 자연스레 묻어 나는 평온함을 장착한 글이다.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까지는 아니어도 그만하면 잘 살았다 하는 정도면 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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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여기에 누워 얼마나 행복한지 음미해보는 것 자체가 아주 즐거웠다. 그러나 덧문 밖은 훨씬 더 좋을 터였다. 윌킨스 부인은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끌어당겼다. 돌로 된 바닥에는 작은 깔개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슬리퍼를 신고 창문으로 달려가 덧문을 열어젖혔다.
"맙소사!" 윌킨스 부인이 소리쳤다. - P75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4월의 모든 빛이 그녀의 발치에 모여 있었다. 햇빛이 방안으로 쏟아졌다. 햇빛을 받고 있는 바다는 미동도 없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만 너머에는 완전히 다른 색채의 아름다운 산맥이 역시 햇빛을 머금은 채 잠자고 있었다. 창문 밑, 성벽에서 솟아오른 경사진 꽃밭에는 꽃들이 만발했고 맨 아래쪽에는 거대한 사이프러스가 크고 검은 칼처럼 버티고 서서 바다와 연한 푸른색, 자주색, 장미색 산맥 사이를 갈라놓았다. - P75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 예뻤다. 이걸 보려고 여기 온 것 같았다. 정말 아름다웠다. 이걸 느끼려고 살아 있는 듯했다. 빛이 얼굴로 쏟아졌다. 좋은 향기가 창으로 새어 들어와 그녀를 껴안았다. 산들바람 한 자락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들어올렸다. 멀리 만에는 고깃배들이 흰 새 떼처럼 평화로운 바다 위에 미동도 없이 멈춰 있었다. ‘진짜 아름답다. 정말 아름다워. 이걸 보고 호흡하고 느끼기 위해 아직 살아 있었던 모양..….….‘ 부인은 입을 떡 벌린 채 가만히 풍경을 응시했다. 

행복? 행복이란 단어는 너무 진부하고 평범했다. 그러나 대관절 무슨 말을 할 수 있고, 어떤 단어로 묘사할 수 있을까? 그건 마치 자기 안에 머물 수 없는 것과 비슷했다. 이 엄청난 기쁨을 담아내기엔 자신이 너무 작은 것 같았고, 빛으로 말갛게 씻기는 기분이었다. 여기에서는 이타적인 행동은 단 하나도 하지 않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며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런 진정한 기쁨을 느낀다는 게 너무나 놀라웠다.  - P76

부인은 멜러시를 마음속으로 그려보려 애썼다. 남편이 아침을 먹으며 자신을 못마땅해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하, 멜러시가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장밋빛과 연한 보랏빛을 거쳐 매혹적인 파란색으로 변했고 이내 형체 없는 무지갯빛이 되었다. 그렇게 멜러시는 잠시 흔들리다가 빛속으로 사라졌다. - P77

"음." 윌킨스 부인은 남편이 앞에 있기라도 하듯 빤히 쳐다보았다. 남편의 특징과 하나까지 다 아는데 멜러시를 그려볼 수 없다는 게 정말 이상했다. 부인은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었다. 남편이 아름다운 것에 녹아서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뤄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 ‘감사 기도‘ 같은 익숙한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흘러 들어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창조와 보존과 이 생애의 모든 좋은 점에 대해 신께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헤아릴 수 없는 신의 사랑을 불현듯 깨닫고는 소리 높여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한편 그 순간 멜러시는 신발을 거칠게 당겨 신고서 비 내리는 거리로 나섰고, 아내에 관한 언짢은 것들만 생각하고 있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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