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모든 열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2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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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

비타의 소설은 <사라진 모든 열정>이 '흄세 시즌 5: 할머니라는 세계'로 출간이 되었고, 민음사에서는 <모든 열정이 다하고>라는 제목으로 한 권이 나와 있다. 제목으로만 보면 <모든 열정이 다하고>가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 남는다. 버지니아 울프를 읽었다면 절대 비타를 피해갈 수 없다.~~^^ 요즘 말로 재혼 가정에서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낸 버지니아 울프와 대단한 귀족 가문, 가정 교사에게서 교육을 받고 자란 비타는 태생부터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에, 거기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렸겠지! "나처럼 고상한 체하는 사람에게는 500년 전의 세계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따라가는 일이 무척 낭만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마치 오래된 황금빛 와인처럼~~~."이라고 고백한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 레너드와 바네사 언니를 제외하고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비타가 유일했다고 했고, 두 사람의 인연은 열렬했던 짦은 사랑이 지나고 난 후 버지니아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니 비타 색빌웨스트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비타 색빌웨스트는 우리에게는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의 모델로 알려져 있지만, 난 아직 <올랜도>를 읽지 않았고 읽어보려 노력은 해 보겠지만 사실 자신은 없고... 그런데 비타의 책은 그에 비해 너무 너무 잘 읽힐 뿐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 멋지고 또 재밌었다. 역시 울프보다 더 인정받는 작가였다는 것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 <사라진 모든 열정>에는 비타와 울프의 그림자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 작품의 주인공인 데버라 슬레인 백작 부인은 인도의 총독이었고 수상까지 역임한 정계의 거물이었던 슬레인 백작이 94 세라는 나이로 세상을 뜨고, 자식들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견을 일거에 물리치고!!! 88 세라는 어마어마한 나이에 혼자만의 삶을 살고자 하는 꿈을 이루게 된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므로!  이미 살고 싶은 집도 무려 30년 전에 봐 둔 상태이고 집 주인의 특이한 이름도 기억하고 있다.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한 조용한 내조의 주인공이었던 백작 부인은, 처녀 시절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 본 적은 없고, 그 시절 누구나 그러하듯 떠밀리듯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하게 되고 남편을 사랑하게 되고 여러 자식들이 태어나 돌보고, 또 백작이자 인도 총독이었고 수상까지 역임한 남편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내조에 임하였다. 자신의 열정은 가슴 속에 묻어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남편 헨리의 세속적인 열정은 백작 부인을 가시밭길로 몰아댔을 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녀의 희망을 조용한 어조로 뭉개버렸다.





   세상을 바라보는 헨리의 관점은 모든 면에서 그녀의 관점과 상반되었다.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두 사람의 관점은 그렇게 표현될 수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헨리는 자신의 신조를 전혀 숨길 필요가 없는 반면 그녀는 조롱과 수치에서 자신의 신조를 지켜야 했다는 것뿐. (본문 중에서)



   그녀가 사색하는 삶을 갈망하듯이 헨리는 행동하는 삶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정말이지 하나의 세계가 두 쪽으로 분할되었다고 하겠다. (본문 중에서)



그러자 그녀는 진정 덫에 걸린 기분이었고 혼비백산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았다. 신처럼 초연한 그의 우월감, 애정이 담겼지만 어쨌든 우쭐대는 나름의 가정, 그의 손쉬운 친절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비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녀는 그가 정말 미웠다. 비난할 수가 없었다. 당연시해도 되는 것들을 당연시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런 식으로 여자들과 동조하여 그녀를 속이고 그녀가 선택한 삶을 빼앗는 전반적인 공모에 동참한 것이니까. (본문)



   그녀는 페미니스트도 아니었다. 상상의 순교 같은 사치에 빠지기엔 지혜로운 여자였다. 자신의 삶 사이의 균열은 남자와 여자의 균열이 아니라 일하는 자와 꿈꾸는 자의 균열이었다. 그녀는 여자고 헨리는 남자라는 사실은 정말이지 우연적인 문제였다. 자신이 여자라서 상황이 조금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않으려 했다. (본문 중에서)



   부자연스럽고 망측한 생각이 머릿 속에서 떠다녔다. '결혼만 하지 않았다면.... 아이만 낳지 않았다면.' 하지만 비통할 만큼 헨리를 사랑했고, 감상에 빠질 만큼 아이들을 사랑했다. (본문 중에서)





사실 비타는 외교관 해럴드 니컬슨과 결혼하였지만 각자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개방된 결혼생활을 영위했다. 결혼을 했지만 버지니아 울프와 연인 관계이기도 하는 등의 양성애자였고, 그 전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남성복을 입고 남편 행세를 하고 운전도 직접 하는 등의 파격적인 연애로 세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존재였다.  그래서 작품에서 보여주는 슬레인 백작 부인의 삶은 다소 의아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1931 년 발표하였는데(물론 울프와 레너드가 운영하던 호가스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 해는 비타가 40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엄격히 분리가 되어 있는 사회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아간 주체적인 여성이었던 비타가 그 젊은 나이에  죽음이라는 휘장을 두르고 있는 88 세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그리고 그 여성의 삶은 여성으로서 강요당하는 삶의 부당함을 인정하지만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것이.  그러나 한 편으론 마냥 관습적이지는 않다.  결국 슬레인 백작 부인은 '자기만의 집'을 이루어내니까! 여자가  순수하게 자신만의 의지로 '자기만의 집'을 갖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어야 하는 것일까? 여자가 '자기만의 집'을 가질 자격은 88 세쯤이나 되어야만 가능한 일인 것일까?

슬레인 백작 부인은 88 세라는 나이이지만 비로서 '자신만의 집'(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연상되는 대목이다.)에서 먼 시간 속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생각한다. 헨리와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놓인 부당한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했었는지... 어떻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부당함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타개하기보다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지혜로운 여인이었다는 것을...

비타의 정신을 내려받았지만 실제로는 비타와 너무도 다른, 그 시절 여타의 여성들의 삶과 비슷한 길을 걸어간 인물로 그려져 있다. 가슴 속에 열정은 묻어둔 채로... 두 여인이 서로 상반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비타가 그린 책의 주인공으로 부족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자식들의 제안 아닌 제안을 물리치고  런던 북부의 햄프스테드에 '자기만의 집'을 갖게 된 슬레인 백작 부인.  모든 회환과 혼돈을 뒤로 하고 백작 부인은 이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저 편안하고 조용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을 뿐이다. 주위에는 예의 특이한 이름을 가진 집 주인을 비롯한 나이 많은 친구 몇 명이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란 것이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던가!  단순하고 평온함을 찾아 떠나왔건만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도 허락되지 않는 단순함이라니... 인생의 복잡함이란 참으로 야속하기만 하다.  인도 총독으로 재임하던 때, 잠시 공관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피츠 조지 씨 - 그는 현재 부유한 은둔자로 불리며 엄청난 자산가이고 누구나 탐낼만한 아름다운 유물을 어마어마하게 수집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옛날 백작 부인의 열정을 간파한 인물이기도 하고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 로 인하여 그녀의 남은 시간은 원치 않는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다.  감당하기 힘든 숙제를 떠안기고 떠난 피츠 조지 씨로 인하여 독자는 마지막 순간 다시 비타가 마련한 자리에 원치 않는 초대를 받은 듯 백작 부인의 황망하고 황당하기만한 상황에 깊이 동화된다.  지극히 헨리의 표본과도 같은, 그러나 그녀와는 닮지 않은 자식들과의 관계에도 회오리 바람이 몰아친다. 마지막에 증손녀와의 대화도 이미 너무 늙어버린 백작 부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시련이다.





천천히 읽어 나가노라면 아름답고 가슴을 적시는 문장들이 자꾸 와서 콕콕 박힌다. 그 바람에 어느 새 보랏빛 밑줄이 쫙쫙~~ 하이라이트가 늘어나고 그럼에도 백작 부인이 지극히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자식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행하는 일들로 속이 시원해지기도 한다^^  

비타 색빌웨스트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인데... 그녀의 다른 소설들은 언제나 만날 수 있으려나! 다른 작품으로 또 만나고 싶다. 그리고 흄세 소장 욕구도 뿜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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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첫 단편은 [바다눈]이다.

지하도시에서 살게 된 지구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르코, 은희, 의주, 톨가, 유오, 소마, 커커스, ...
그런데 읽다보니 언뜻 어색한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짊어주었다(38쪽)*
‘짊어지다‘가 아니고 ‘짊어주다‘가 원형일텐데 검색해봐도 안나온다.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인지 이해가 될듯도 한데
어떤 낱말을 넣어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막연히 상상하려니 떠오르질 않는다.








*바다눈

노래가 들려온 건 제작실 서문 쪽에 있는 반층짜리 계단아래였다.
그날은 마르코가 제작실에서 경호를 서는 첫 근무 날이었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 깃처럼 바짝 긴장한 상태로 제작실 입구에 덩그러니 서있던 마르코는 사람이라기보다 그곳에 설치된 조형처럼 보였다. 온통 잿빛 페인트로 칠해진 공간에 마르코가 입고 있는 정장과 셔츠도 어두컴컴한 색이라, 얼핏보면 머리만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긴장 완화에 좋다며 치유키가 선물한 약도 챙겨 먹었지만, 아마 플라세보 효과를 노린 포도당 알약이었을 것이다. 품이 큰 정장 재킷을 걸치고 서 있던 마르코는 어느 면으로 보나 제작실을 지킬 만한 모양새가 덜 만들어진, 소년이었다.  - P15

톨가의 표정은 황홀한 꿈을 꾸는 듯했다. 그런 톨가의 얼굴이 마르코에게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톨가는 뭐랄까, 마르코가 갈 수 없는 차원 속에 있는 것만 같았고 그 차원은 톨가에게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짊어주었다*.

행복과 책임감은 같은 수레를 타고 있다던 의주의 말이 떠올랐다.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 수레는 레일에서 이탈하거나 뒤집혀. 책임감 없는 행복은 위험하고, 행복 없는 책임감은 고통스러운 거야‘
의주는 종종 이런 식으로, 행복 없는 책임감을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마르코는 아직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톨가의 표정은 행복과 책임감이 적절히 섞인 수레처럼 만족스러워 보였다. - P38

"너도 지금 나랑 같은 상태인 거지?"
마르코는 아닌 척 시치미를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은희를 대하는 마음이, 톨가가 그 형을 대하는 마음과 같은가. 이 질문이 계속 마르코를 파고들었다. 마르코는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톨가가 그 형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마르코의 마음은 마르코조차 처음 겪는 것이었다.
마르코가 대답을 망설이자, 톨가는 유능한 심리 상담가처럼 부담을 내려놓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마르코가 떠올리고 있는 대상의 어떤 점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지, 그것에 집중하라고도 덧붙였다. - P39

"목소리가 아름다워."
톨가의 조언을 듣자 말을 내뱉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 튀어나왔다.
마르코는 제작실에서 처음 은희의 노랫소리를 들었던 순간부터 함께 점심을 먹었던 것, 그리고 어제 잠들기 전까지 은희를, 그리고 은희의 노랫소리를 떠올렸던 것을 숨김없이 말했다. 은희의 이야기를 톨가에게 하는 동안 마르코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후련함이었고 하나는 단단해짐이었다. 은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마음에 있던 은희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은희가 들어찼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이 쪼그라들며 단단한 광물처럼 빛났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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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차에 오른다. 그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암흑으로 아니 어쩌면 빛으로.

우리에겐 아직도・・・・・ 그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직 뭐가 남았는지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갑자기 루크는 ‘우리‘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루크는 아무것도 빼앗긴게 없었다.

우리에겐 아직도 서로가 있잖아. 내가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그때 내 말투는, 내 귀에조차 그렇게 냉담하게 들렸을까?

그때 루크는 내게 키스했다.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이상, 이제 만사가 괜찮아질 거라는 것처럼. 하지만 뭔가가 달라졌다. 어떤 균형이 무너졌다. 나는 쪼그라든 기분이 들었고, 그가 팔을 내게 두르고 안아올렸을 때는 인형처럼 작아진 듯이 느껴졌다. 사랑이 나만 버려두고 저만치 앞으로 달려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 P313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어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 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거야.

무가치하고 부당하고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 버린 일이다. - P313

나는 내 자리에서 기도를 한다. 창가에 앉아 커튼을 치고 텅 빈 정원을 바라보면서, 눈도 감지 않는다. 바깥이든 내 머릿속이든, 캄캄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빛으로 충만하던가.
하느님, 당신은 천국에 계시죠. 천국은 제 마음속에 있고요. 당신의 이름, 진짜 이름을 말해 주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당신‘도 충분히 좋은 이름이지요.
‘당신‘께서 어떤 일을 준비하고 계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떤 일이든, 제발 제가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비록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저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당신께서 바라는 일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 P335

이제 용서를 말할 차례가 되었군요. 지금 당장 저를 용서해 주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더 중요한 일들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다른 이들이 지금 무사하다면,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세요. 지나치게 고생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들이 죽어야만 한다면, 빨리 죽여주세요. 그들에게 천국을 주실 수도 있으시죠. 그래서 우린 당신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지옥은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런 짓을 한 인간이 누군지 몰라도, 그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있는지 몰라도, 무조건 용서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네요. 노력은 해보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랍니다. - P336

우리는 빼앗은 것보다 더 많이 주었소. 사령관이 말했다. 전에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지 생각해 보시오. 독신 전용 술집이니, 품위 없는 고등학교 미팅 같은 것들을 그런 것들을 육체 시장이라고 했지.
쉽게 남자를 얻는 여자들과 그렇지 못한 여자들 사이의 괴리감 같은게 기억 나지 않나? 어떤 여자들은 절망해서, 죽도록 굶어 말라깽이가 되거나 가슴에 실리콘을 넣어서 풍만하게 만들기도 하고 코를 깎아내기도 했소. 그 비참함을 생각해보라고. - P378

...,. 누구를 막론하고 돈이 인간의 값어치를 매기는 유일한 기준이었고, 엄마로서 응당 받아야 할 존경도 받지 못했소. 아예 엄마 노릇을 안 하겠다고 두 손 두 발 든 것도 무리가 아니요.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그들은 보호받을 수 있고, 평화롭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운명을 성취할 수 있소.
전폭적인 지원과 격려를 받으면서 말이오. 자, 이제 말해 보시오. 당신은 지적인 사람이니 의견을 듣고 싶소. 우리가 간과한 게 뭐라고 생각되시오?

사랑이요. 내가 말했다.
사랑? 사령관이 말했다. 어떤 종류의 사랑 말이오?
사랑에 빠지는 것. 내가 말했다. 

사령관은 그 천진한 소년 같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그렇소. 그가 말했다. 나도 그 잡지들을 읽었소. 그 잡지들에서 추구하던 게 그런 것이지? 안 그렇소? 하지만 통계를 보시오, 아가씨.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소? 사랑에 빠질만한 가치가 중매결혼도 언제나 연애 결혼만큼이나 성과가 있었소. 적어도 나으면 나았지 못할 건 없소. - P379

나는 낯선 얼굴을 예상했지만,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조명 스위치를 켜는 사람은 닉이다. 닉도 그들과 한 패가 아니라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긴, 그럴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거니까. 닉, 잠복 근무중인 ‘눈‘. 더러운 인간들이 더러운 짓을 하는 법이니까.
나쁜 새끼. 나는 생각한다. 입을 열어 그 말을 내뱉으려고 하는데, 닉이 내게 다가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인다.
"괜찮아. 걱정 마. 오늘은 ‘메이데이‘야. 그들과 함께 가."
그는 내 진짜 이름을 부른다. 어째서 그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거지?
"그들?"
나는 말한다. 그 뒤에 두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복도 천장의 조명 때문에 그들의 머리가 해골처럼 보인다.
"당신 미쳤군요." - P502

나의 의혹은 그의 머리 위 허공을 떠돈다. 나를 경고해 의혹을 몰아내려는 어둠의 천사. 그래, 알 넛만 같다. 그라고 해서 ‘메이데이‘를 모르는 법이 어디 있나? ‘눈‘이라면 누구든 그 말을 알고 있을터이다. 그들은 지금쯤 숱한 육신으로부터 숱한 입에서 그 말을짜내고, 짓뭉개고, 비틀었을 터이다.
"나를 믿어."
그는 말한다. 그 자체로는 그 어떤 효력도 없고, 어떤 보장도 해줄 수 없는 한마디.
하지만 나는 그 말에, 그 제안에 허겁지겁 매달린다. 내게 남은 건 그게 전부니까. - 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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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좀 넘어서도 안되더니..
은근슬쩍 되니까 기분이 참 거시기 하다!
엊그제는 걸음수는 등록이 됐는데
어젠 걸음수 없뎃도 안됐다!
심지어 어젠 만보걷기 했구만...C

<<고객센터 문의 후기 추가>>
답변 등록된 글 확인해보니..
걸음 수 상관없이, 19/20일 독서기록 추가하면 8/24에 일괄적으로 성공으로 해준다네요!

당연히 그래야겠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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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8-2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이폰은 됐었나봐요
저도 안드로이드인데 3일동안 안되더라구요. 핑계김에 북플 쉬었는데, 오래간만에 채운 걸음수는 뭐 할수 없네요 ㅋㅋ

은하수 2023-08-21 13:24   좋아요 1 | URL
안드로이드만 안된거예요? ㅠㅠ
걸음수 상관없이 19/20. 책읽기 등록하면 성공으로 등록해준다네요.
걸음수가 나와야겠지만 그래도 쬐금 다행스럽게 생각되네요^^

dollC 2023-08-21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열심히 걸었는데, 약간 허무하네요ㅎㅎ 그래도 북플 이틀 안됐다고 불편하다 싶은게, 평소에 너무 많이 하는구나 느꼈어요.

은하수 2023-08-21 13:2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많이 한단거 알고 있지만..ㅎ~~ 안되더라구요~~!

jenny 2023-08-21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걷진 못했지만 주말동안 읽은 좋은 구절이 많아, 휴대폰스캔방식으로 남기느라 너무 불편했어요 ㅠㅠ

은하수 2023-08-21 13:27   좋아요 1 | URL
독보적이 안되는게 젤 불만이었지만...
책 읽으며 올리고 싶었던 구절들이 다 지나가버리니 그게 더 허무하네요
책 읽을 때 느낀 그 감정도 소중한데... 지나고 올리려니... 감동이 다르네요^^

그레이스 2023-08-2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글 연동되서 걸음수 등록되네요

은하수 2023-08-21 13:27   좋아요 0 | URL
어머~~ 정말요~~^^
감사합니다^^

튜울립 2023-08-2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저도 걸음수가 아쉽더라는.ㅎㅎ

은하수 2023-08-21 20:08   좋아요 0 | URL
연동이 안됐어요 ㅠㅠ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쉬워요 저두요^^

은오 2023-08-21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독보적 엄청 열심히 하시는군요!! 만보라니ㅠㅠ반성하고 갑니다..
갤럭시만 안됐던 것 같네요? 저도 아이폰인데 멀쩡했어요!

은하수 2023-08-21 20:11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저도 갤럭신데..ㅠㅠ
독보적 저게 은근 중독성이 있다니까요
하다보면 욕심도 생기구요~ㅎㅎ
어차피 걷기밖에 안하니까 이거라도?? 하면서 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8-22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갤럭시...ㅜㅜ
전 제 북플이 이상이 생겨 아예 진입이 안되는 건줄 알았습니다.
어제 계정이 이상하다고 문의했더니 독보적 관련 답변을 똑같이 받았어요.
전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어서 오호...신나서 책 등록을 미리 해뒀습니다.
더운 날이라 걸음 수 채우기가 쉽지 않은데 만보를 걸었는데 걸음 수 등록이 안되면 억울하죠.ㅜㅜ
저는 한 번씩 북플 작동이 잘 안되어 앱을 자주 삭제하고 다시 설치하는데 그때 깜빡하고 구글 연동을 안해놓아 걸음 수 등록 안될 때가 종종 있거든요. 허탈하더라는...ㅜㅜ

은하수 2023-08-22 22:19   좋아요 1 | URL
저만 그런게 아녀서 참 다행이네 싶었어요~~^^
전 하필 북플 안되던 첫날 연동이 되길래 다음날도 당연히 걸음수 연동은 될줄 알았는데 하필 만보 찍은날 안되니까 너무 허탈하고 화까지 났다니까요 ㅎㅎ
북플앱이 좀 자주 불안정하긴 해요 그쵸?!
늦게서야 열심인 저 같은 사람은 불안한 부분입니다. 이러다 없어지진 않겠지 싶기도 하지만 설마, ... 그러고 있어요~~
 















모바일 앱으로 북플이 안되는게 이렇게 우울할 일인가 싶은데 역시 나는 컴보단 모바일이 익숙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굉장히 무지 상당히 기분 나쁘게 불편하다. 주말이라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별거 아닌 일일 수 있는 사소한 트러블이 나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에 화가 난다.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도 않다. 사실 얼마 전에도 북플 앱에서 독서 통계가 한동안 뜨지 않고 먹통이었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불안감을 안고 있었는데 어제와 오늘은 정말 그에 비하면 대형 사고다! 과연 알라딘은 월요일에 이 사태에 대해 뭐라고 할지...  은근슬쩍 그냥 북플이 아무일 없이 재부팅되는건 아니겠지???



그래도 책은 읽어야지...

어젯 밤 늦게 갑자기 너무 오랜만에 밀*의 서재에 들어가보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이었는데 아이디, 비번이 그대로 맞네...하핫... 알라딘에서 봐도 되는데 너무 빈정이 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곳을 기웃거리게 되더라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책을 얼마 전 흄세에서 보고 꼭 읽어보리라 했었는데 밀*의 서재에서 눈에 뜨길래 바로 한 달 무료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사라진 모든 열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인 슬레인 백작 부인은 88세의 노부인이며, 남편인 헨리 슬레인 벡작이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었다. 평생을 백작부인으로서 순종적이면서 헌신적인 내조를 했던 백작 부인은 자식들이 모시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남은 인생은 스스로 결정할 것이며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할 것이라고 자식들에게 말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이제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한다면 언제 하겠느냐면서!!! 그래서 그녀가 살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 하면 바로 런던 북부의 '햄프스테드'이다. 지금은 런던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부촌으로 통하는 곳인데 그 당시에는 외진 곳이었다고 한다. 살고 싶은 집도 이미 보아두었는데 그것이 무려 30 년 전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큰딸 캐리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 어머니는 햄프스테드에 가신 적이 없잖아요."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캐리는 적어도 지난 15년 동안 어머니의 매일매일,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았기에 어머니가 자기 모르게 햄프스테드에 간 적이 있다는 말에 발끈했다. 독립성을 내보이는 그런 암시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거의 선언이었다. 슬레인 백작 부인과 큰딸은 늘 친밀한 관계를 지속했다. 그날의 일과를 늘 함께 짰다. (92/503)



용납할 수 없다, 독립성을 내보이는 그런 암시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거의 선언이었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나는 더 충격적이다...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서두... 거기다 88 세라는 백작 부인의 나이를 생각하면 전혀 모르는 곳에서 홀로 여생을 살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자식이 과연 몇이나 될까마는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주인공인 백작 부인은 30년 전 보아두었던 햄프스테드의 그 셋집을 보러 기차를 타고 몇 개의 역을 거쳐 그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홀로... 88 세이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부인은 언뜻 보면 70세 안팎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러 작품에서 보아왔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고, 88 세여도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도 몇 개 남겨본다.  

"천천히 스러지기 위해서... 가만히 존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였으니..." 

문장이 너무 아름다운 거 아닙니까......!



   그 집은 사실 수년 동안 그곳에 거주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년 전 슬레인 백작 부인이 처음 집을 본 이후 평범한(당사자들의 눈에는 충분히 파란만장했겠지만 별다른 기록 없이 보편적인 생애의 바닷속으로 합쳐 들어갈 만큼 평범한) 인간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조용한 노부부가 딱 한 번 세를 들었을 뿐이었다. 


   나름의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한 채 떠난 조용한 노부부. 그곳에 온 이유는 천천히 스러지기 위해서, 가만히 존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였으니 그렇게 스러졌고, 그렇게 빠져나갔다. (130/503)


















<4월의 유혹>은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의 작품으로 이 책도 얼마 전에 읽었다.  이 작품에서도 햄프스테드가 처음부터 등장한다. 물론 주인공들이 햇살이 찬란하고 꽃들이 화려한 이탈리아 제노바 근처 산 살바토레의 작은 성에서 한 달의 시간 동안 어떤 아름다운 변화를 맞는지가 주된 줄거리이지만, 영국 런던의 햄프스테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 언뜻 기억이 난 것이다. 



   그 일은 2월 어느 오후 런던의 한 여성 클럽에서 시작됐다. 불편한 모임이었고 끔찍한 오후였다. 윌킨스 부인은 햄프스테드에서 쇼핑하러 왔다가 클럽에서 점심을 먹은 뒤 우연히 흡연실 테이블 위에 놓인 <타임스>를 보았고, 아무 생각없이 '고민 상담 코너'를 훑어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7쪽) 



윌킨스 부인이 사는 곳이 햄프스테드이고 이 책이 출간된 1922년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불과 4년이 지난 시점이라 지금의 햄프스테드와는 달리 외지고 런던 북부이지만 런던이라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그녀의 궁핍하고 곤궁한 삶과는 다른 시간을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탈리아의 작은 성에서 살아보기 할 수 있다는 유혹은 얼마나 짜릿하고 황홀했을까!



아무튼 이 두 작품의 배경이 되는 햄프스테드는 작품 속에서는 외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이 두 작품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은... 이 지역이 무려 런던 북부의 부자 동네라는 것과 우리의 손흥민 선수의 집이 있는 곳이라는 점인데... 손흥민 선수의 옆 집에 살아보려면 월세가 무려 6,700만 원이라니... 실화냐구욧!!!

햄프스테드 히쓰라는 공원이 둘러싸고 있는데 차라리 울창한 숲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어울리고 런던 시민들이 공원을 거닐고 연못에서 수영도 즐기고 피크닉을 오는 곳이라고 하니 사랑받는 지역임은 분명하다. 

아, 그러고보니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영화 <노팅 힐>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내 자신이 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지만 - 왜냐하면 나와의 갭이 너무 크고..., 지금 우리 동네도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이름도 만만치 않다. '양지'니까^^ - 영국 런던을 여행한다면 굳이 찾아가 볼 거 같다.


















프라하와 비엔나... 다시 가보고 싶다.

나머지 네 도시는 언젠가 갈 수 있겠지만 사진과 글로도 이미 멋진 도시일 것이다. 

조성관 작가의 책에서 궁금한 햄프스테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도서관에 가서 빌려봐야겠다!

햄프스테드... 가보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익숙한 장소가 되어간다.  그래도 좋다~~~^^

어느 책엔가에서 또 만날 거 같다. 기분 좋은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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