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주의, 역사기록, 그리고 공익

기록관리자에게 두 가지 제안만 하고 싶다.
 첫째, 모든 정부 문서의 공개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 특별히 공개할 수 없는 예외가 있다면,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입증해 보일 책임이 있다. 지금처럼 정보를 원하는 시민에게 그런 책임을 지워서는 안된다. - P221

둘째, 보통 사람들의 삶 • 욕구 · 필요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 기록의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쓰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 두가지 제안은 민주주의 정신과 양립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신은 국가가 하는 일을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하층계급의 조건 · 불만 · 의지가 나라 안에서 반영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 P221

-학문의 효용

※전통적인 학문에 대한 언급 뒤에 새로운 접근 방식을 언급하고 있다.
■ 규칙 5 : 학자가 되려면 ‘감정 표출을 삼가야 한다.
 한 아시아 연구 학자가 베트남에서 돌아와 비평문을 썼는데 대학 당국한테서 ‘너무 감상적‘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감정이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 역시 향상시킬 수도 있다. 학자의 역할 중 하나가 정확한 기술이라면, 전쟁을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게 기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한편 제한된 경험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지닌 특별한 능력이라면, 감정을 통해 이 능력은 더욱 강화되고 그 인식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다. 예컨대, 노예제도를 다분히 감정적으로 기술한 경우에 백인 대학생들은 흑인에게 노예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P233

-시민으로서의 역사가

역사가에게는 함정이 하나 더 있다. 과거의 자료들을 가지고 작업하면 할수록, 과거의 무게는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이미 발생한 사건들을 필연적이었던 일로 보기도 한다. 사실, 순식간에 발생해서 더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만 그 사건들은 필연적이다. 과거의 필연성은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더 나아가 행동하고자 하는 생각을 꺾어 버리기 쉽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에 상처받고, 그리하여 우리는 인간이 역사에 의해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 P256

그러나 역사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만약 현재가 돌이킬수 없는 자연의 사실이라면, 과거는 그것[과거]이 없었다면 우리가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최상의 가치를 드러낸다. 요컨대, 과거는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우리를 고취한다. 과거를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갖가지 신화에 맞설 수 있다. 과거를 통해 우리는 국민 전체가 세뇌될 수도 있음을 알게된다 - P256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집단 학살을 자행하기도 하고,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나라가 노예제를 유지하기도 하며, 겉으로 보기에 무력하게 종속돼 있던 사람들이 지배자들을 무찌르기도 하고, - P256

경제계획이 꼭 자유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고, 억압받던 사람들이 억압하는 사람들로 변모하기도 하고, ‘사회주의‘가 전제적으로 될 수도 있고, 모든 국민이 순한 양떼처럼 전쟁에 끌려갈 수도 있고, 대의를 위해서라는 명목 아래 믿기 어려운 희생이 강요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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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바랐던가, 바로 그때
온 세상이 건널목이기를.

기억에 오래 남을 문장이다.


그 일이 처음 일어난 것은 어느 따뜻한 봄날, 할리우드 근처평지에 있는 우리 집으로 서쪽 바다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와 화분에 새로 심은, 가운데가 검은 팬지 꽃잎을 흩어놓던 화요일 오후였다. - P11

그러나 바깥이 어둑해지고, 내가 베어 문 한 입의 케이크가 목구멍을 다 타고 넘어갔을 즈음, 그 첫맛이 사라져갈 즈음, 나는 예상치 못한 내 안의 미묘한 움직임을 감지했다.
 내 안에 깊숙이 묻혀 있던 센서 같은 것이 이제 막 탐지기를 곧추세우고 몸속을 돌아다니며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고 내 입에 경고하는 것 같았다. 최고급 초콜릿과 가장 신선한 레몬 같은 좋은 재료들은 더 커다랗고 어두운 무언가를 덮어버리려는 연막에 불과한 양, 그 아래 숨어 있던 것의 맛이 치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명 초콜릿 맛이었지만, 그 맛이 퍼지며 흔적을 남기는 동안 동시에 내 입안에 가득 차는 것은, 하찮음과 위축된, 화가 난 느낌의 맛, 어쨌든 엄마와 연관이 되어 있는 듯한 거리감의 맛, 엄마의 복잡한, 소용돌이 같은 생각의 맛이었다. 마치 아스피린을 여러 알 집어 먹게 만드는 두통 때문에 이를 앙다무는 엄마의 느낌까지 맛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 좀 누웠다 올게... 하던 엄마 말 속의 말줄임표처럼 침대 탁자 위에 흰 줄을 이루며 나란히 놓여 있던 아스피린의 맛... - P21


그중 어느 것도 아주 고약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맛에는 뭔가가 빠져 있는 듯한,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한 맛이 났다. 레몬과 초콜릿이 그 뚫린 구멍을 그저 감싸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엄마의 솜씨 좋은 손이 케이크를 만들었고 머릿속은 재료의 비율을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거기, 그 케이크안에, 엄마는 없었다.

- P21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그때까지도 건널목에서 꼭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건넜다고 했다. 열 살에야 나는 누구의 손도 잡지 않고 길을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번 오빠 손을 잡고 길을 건넜지만, 오빠 손을 잡는 것은 그저 식물을 붙잡는 느낌이었고, 맞잡아주지 않는 손가락에서 오는 실망은 너무나 날카로워 어떤 때는 대신 팔뚝을 잡는 쪽을 택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처음 몇 번은 길을 건널 때 그렇게 했지만, 오크우드 애비뉴에서 모퉁이를 돌면서 나는 충동적으로 조지 오빠의 손을 잡아버렸다. 곧바로 내 손을 꽉 잡는 손가락들, 태양, 진분홍 무더기를 이루며 창문 위로드리워진 더욱 탐스러운 부겐빌레아 넝쿨. 
그의 따뜻한 손바닥.
인도에 웅크리고 앉은 오렌지색 줄무늬고양이. 낡은 검은색 티셔츠 차림으로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 활짝 열리는, 도시. - P88


우리는 인도에 도착했고, 손을 놓았다. 얼마나 바랐던가, 바로 그때, 온 세상이 건널목이기를.

- P88

아이들은 겁이 없다. 두려움도 전과 같았고 희망도 변함 없었지만, 바로 그 희망 때문에, 나는 은 포크를 집어 들었다. 작은 흰 접시 위에 놓인 엄마의 파이 한 조각을, 천장의 붙박이 이중 전구 아래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목 늘어난 버니 양말에 데이지꽃 잠옷바람으로, 맛은 너무 고약해서 입안에 물고 있기조차 힘들었다.
어떠니? 엄마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가늘게 뜬 채 맛을음미하며 물었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시작이 케이크였다면, 끝은 파이였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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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2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페이지의 문장은 제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라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

은하수 2023-03-21 19:14   좋아요 0 | URL
ㅎㅎ
사실은 저도 반가웠어요^^
다락방님 글에 등장할 때마다 궁금했거든요. 발견의 기쁨이 꽤 큽니다. 잊기 힘들거 같아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1970년 학생들의 요구로 ‘여성과 법‘ 과목을 개설한 그는 여성이 토지와 같은 재산으로 취급되던 판례집을 보면서 말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여겼다.
그래서 곧장 다른 여성 교수들과 힘을 모아 부당한 급여 체계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까지 간 끝에 승소했다 - P56

그는 자신의 싸움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1970년 미국 최초의 여성 인권법 전문 저널인 《여성 인권법리포터>를 창간한 그는 제자와 동료 변호사 들의 연구와 도움에 힘입어 젠더 차별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1972년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종신재직권을 받은 첫 여성 교수가 된 그는 같은 해 미국시민자유연맹 여성권익증진단을 창립했다.
 1970 년대초부터는 변호사로서 중요한 젠더 차별 사건 대부분을 맡게 된다. 페미니즘 제2물결을 일으킨 페미니스트들과 교유했고, 흑인여성 변호사이자 여성 시민권 운동가인 폴리 머리 등 자신에게영감을 불어넣어준 여성들을 긴즈버그는 결코 잊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소수 의견을 제출할 때도 그는 다른 여성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다. 훗날 자신은 먼저 길을 간여성들의 뒤를 따랐던 것이며 마침내 세상이 자기 말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 P56

긴즈버그는 직장 내 괴롭힘,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가족 및의료휴가법, 정부가 선거철 기업의 지출을 얼마나 규제할 것인가를 두고 다툰 사건 등에서 진보적이고도 강력한 소수 의견을냈다. 2015년 4월 연방대법원의 역사적인 동성결혼 허용 결정심의에서 결혼이란 수천 년의 유구한 전통이므로 동성 간 결합 - P57

을 결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긴즈버그는 "결혼제도는 변했고 동성 결합은 지난날의 협소한 결혼 개념을 뛰어넘는 형태"라고 반박했고 승리했다.  - P58

그는 종종 욕심 많은 여성 판사로 여겨지곤 했다. 그에게 사람들이 "미국 연방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 있어야 충분하다고 보십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긴즈버그는 "아홉 명입니다"라고 답했다. "오랫동안 대법관 아홉 명이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여성 대법관이 아홉 명이 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 P58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니라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가장 유명한 그의 명언 중 하나다. 긴즈버그는 판사가 플라톤처럼 판결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민주주의가 파괴될 수 있다고 여겼다. 스스로가 중립적이라는 착각과 오만을내려놓고, 자신조차 의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 P58

그가 물러나지 않는 것에 ‘노욕‘이라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는 보수적 대법관의 최고 어른으로서 역할을 자임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2020년 9월 18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얼마 앞둔상황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

긴즈버그의 후임 대법관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성향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지명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여성의 임신중단을 강력하게 반대해온 후임자는 판사 시절 관련 판결에서 모두 낙태를 제한하는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1993년 대법관 인준청문회에서 긴즈버그가 임신중단권의 현실적인 필요성을 밝히며 "정부가 여성의 자율적 결정을 통제한다면, 여성은 자기 선택을 책임지는 온전한 성인으로 대접받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 것과 대비된다." ‘악명 높은‘ 긴즈버그의 빈자리가 과연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알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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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세상을 활보한 여자들, 그 용기에 대하여


지적인 파도 속에 몸을 던지기 전이니 워밍업하는 기분으로 읽어보겠다^^


-나혜석, 하야시 후미코, 버지니아 울프

거의 동시대에 살다 간 이들 세 여성이 유럽 한가운데에서 옷깃을 스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서구에서 근대가 막을올리고 여성들이 참정권 보장을 외치며 스커트 자락을 걷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직후, 내로라하는 당대 여성 작가였던 이들또한 보행의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 여성들의 물결 속에 스스로몸을 던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 때였으니 이른바 역사의 대전환을 코앞에 둔 시기였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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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 듣다 드는 생각

내일은 시엄니 7주기이다. 남편 손 위 누님(큰형님, 작은형님) 두 분 정말 몇 년 만에 오신대서 열심히 욕실 청소하면서 라디오 듣는데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가 나오는거다.
평소 이 음악 들을 땐 뭔가 거룩한 것에 둘러싸인듯 벅찬 감정을 느꼈었는데 오늘은 요즘 내가 읽는 책이 미국의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의 《하워드 진, 역사의 힘》,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이다보니 이 음악이 그냥 벅찬 감정으로 들리지 않는거다. 마침 어젯 밤 인디언들이 땅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전쟁 부분을 읽었으니 더 그랬다.

내 기억으로 드보르작은 1892년 뉴욕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인디언들의 민속음악과 흑인영가를 채집하였고 이에 자극을 받아 작곡을 하고 작품의 제목도 직접 붙였다. 1892년 쯤에는 미국이
인디언들의 땅을 ‘사유화‘라는 이름으로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땅을 훔치고 빼앗고 죽이고 좁은 구역에 몰아넣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던 시기였을텐데...
드보르작은 이런 모든 것을 다 보고 알았고 느꼈을까. 이런 거대한 슬픔의 감정을 곡에다 반영했을까? 그걸 모르겠네!

이런 심각한 글을 읽으면서도 배는 고프고
음악 틀어놓고 썬룸에 앉아 풍경보며 먹는 샌드위치도 맛있고 낫또도 맛있고. 언제나 빵과 장미는 중요한 가치이다!




1880년대에 미 의회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공유지를 해체해 사적 소유지로 만드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찬양하는 ‘사유화‘였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디언들이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법안을 입안한 상원 의원 헨리 도스는 체로키 족을 방문했을 당시 자신이 발견한 것을 이렇게 묘사했다.

"개인 소유의 집을 가진 가족은 하나도 없었다. 극빈자도 없었고, 달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학교와 병원을 지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에는 명백한 단점이 있다. 이 사람들은 땅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땅을 차지할 수 있다...... 이웃집보다 자기 집을 더 번창하게 만들려는 적극성이 없다. 문명의 근저에 흐르는 이기심이 없는 것이다."
- P142

1933년 발표한 자서전에서 루서 스탠딩 베어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로 백인들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백인들의 문명이 꽃피운 열매는, 때깔도 곱고 맛도 있어 보이지만, 사람을 병들게 하고 말라 죽인다. 사지를 절단하고 약탈하고 분탕질하는 것이 문명의 일부라면, 도대체 진보란 무엇이란 말인가? 감히 말하건대, 원뿔형 천막 속에 앉아서 삶 자체와 삶의 의미를 명상하고, 모든 피조물을 혈족으로 받아들이고, 우주 만물과의 합일을 인정하는 사람이아말로 자신의 존재에 문명의 진정한 정수를 불어넣는 것이다."


1. Luther Standing Bear(1868-1939). 아메리카 원주민 작가. 인디언 문화의 가치를 옹호하는 책들을썼으며, 인디언의 권리를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 P143

이렇듯 콜럼버스를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은 진보, 문명, 우리가타인들과 맺는 관계, 우리가 자연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콜럼버스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나 역시 이런 말을 꽤 자주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당신은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콜럼버스를 20세기의 눈으로 보고 있다. 500년 전의 사건들을 우리 시대의 가치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역사적인 것이다." - P144

이런 주장은 참으로 이상하다. 잔혹 행위, 착취, 탐욕, 노예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 등이 15~16세기에는 다른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는 말일까?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는 말일까? 콜럼버스 시대와 우리 시대에 공통적인 인간의 가치는 없을까? 콜럼버스 시대에나 우리 시대에나 타인을 노예로 만드는 사람과 착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권을 위해 그런 자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그런 가치의 존재를 증명해준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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