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기차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간다.

철길 양편에는 널따랗게 펼쳐진 광대한 불모지ㅡ 중앙 아시아의 노란 스텝 지대, 사리-오제끼가 놓여있다.

여기서는 모든 거리가 철도로 재어진다.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으로부터 경도가 정해지듯.

그리고 기차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간다.

***위의 문장이 각 장마다 반복이 되고 있다.




그러자 우리 오빠는 화가 나서 내게 이랬어요. 〈너 이 일을두고 백년은 후회할 거다, 이 바보야! 너는 결혼을 하려는 게 아니라 네 불행을 찾고 있어.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네 애들과 그 애들에게서 난 애들의 불행까지도! 너희들은 벌써비참해지도록 선고를 받은 거야. 만일 네가 좋아한다는 그놈이 머리가 제대로 된 놈이라면가정을 꾸리려고 할 게 아니라 목을 매달았어야지! 그러는 게 그놈에게는 제일 나아!〉라고 말예요. 하지만 우리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죠.

우린 전쟁이 끝났으니까 포로로 살아남은 사람이니 전사자니 하는 걸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이 식구들이건 우리 식구들이건 모두에게서 다 멀어졌지만요. (324/1054)

이걸 생각해 보세요. 얼마 전에 우리 오빠가 내게 편지를 보냈는데 거기서 오빠는 우리가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를 했었다면서, (324/1054)

덧붙이기를 자기는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으며아부딸리쁘 꾸찌바예프처럼 유고슬라비아에서 오랜 기간을 보낸 사람하고는 더더구나 상관이 없다는 거였어요! 어쨌든 그 일이 있고 나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죠. 우린 어딜 가든거기서 쫓겨났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와 있는데 이젠 더 이상 어디로 갈 데도 없어요.」그녀가 말을 끊고 침목 밑에 낀 자갈을 난폭하게 긁어냈다. 앞쪽에서 열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삽과 밀차를 챙겨 가지고 선로에서 벗어나 물러섰다. (325/1054)

예지게이는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도와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었다. 그 곤경의 원인은 그가 살아가는 세계인 사로제끄의 경계선 밖 저 멀리에 놓여 있었다. (325/1054)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또 그가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고 도울 수 있었을까? 이 사람들은 거지가 아니라고 예지게이는 생각했다. 그들은 두 사람이 버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아무도 그들을 가두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 내일도 또 모레도.
예지게이는 그 자신에게, 그가 이 가족을 대신해서, 마치 그들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끼는 분노와 쓰라림에 놀랐다. 그들이 과연 그에게 누구였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이건 내 일이 아냐.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판단을 내리거나 편을 들려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을까?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스텝 지방의 사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속이 뒤집혀야 했을까? 
(330/1054)

어째서 그가 세상일이 옳거나 옳지 못하다는 문제로 그의 양심을 괴롭혀야 했을까? 분명히, 아부딸리쁘의 곤경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 부란니 예지게이보다 천 배는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은 사로제끄에 뚝 떨어져 있는 그보다 사리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그의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는 평온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자리빠가 가장 염려스러웠다. 그녀의 성실함, 그녀의 자제심, 역경에 맞서 싸우는 그녀의 용기가 그를 놀라게 하고 압도했는데도, 그녀는 여린 날개를 펴서 제 둥지를 폭풍우로부터 지키려는 작은 새와 같았다. (331/1054)

다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비명을 지르고 가족을 포기하고친척들의 말을 따랐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난 세월의, 그 전쟁 기간 동안의 대가를 남편과 똑같이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예지게이가 걱정스러웠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그녀
(331/1054)

와 그녀의 아이들과 그녀의 남편을 보호해 줄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예지게이에게는 그들 가족을 보란리-부란니에 정착하도록 이끈 운명을 몹시 저주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걱정을 했었을까? 그는 예전처럼 그런 일에 마음을 닫고 평온하게 살아갈 수가 있었는데도. (332/1054)

••• 새해가 다가왔다. 그때쯤 꾸찌바예프 부부는 새해맞이 나무로 파티를 열 계획을 짜기 시작했는데 보란리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그것이하나의 커다란 사건이었다. 우꾸발라와 그녀의딸들은 꾸찌바예프의 바라끄 오두막으로 가서파티를 준비하고 트리를 장식하고 하면서 온종일을 보냈다. 그리고 예지게이도 일을 하러 나가기 전이나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맨 처음 하는 일이 꾸찌바예프네 집에 있는 트리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트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졌고 리본들이며 집에서 만든 갖가지 장난감들로 덮였다. 그 일을 해낸 공로는 자리빠와 우꾸발라에게 돌려야 했다.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기적을만들어 냈고 그 일에 가진 재주를 다 쏟았다.
그들로서는 그것이 단순한 트리가 아니라 새해를 맞는 그들의 희망, 즉 온 마을 사람들이 바로 (480/1054)

가까이에서 행복을 찾게 해주려는 기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아부딸리쁘는 그러나 트리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지게이는처음엔 그들이 눈 장난을 하는 것쯤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를 보고 나서는 아주 흡족해했다.
검은 눈이며 석탄을 박아 만든 눈썹, 빨간 코,
웃는 입, 거기에다 머리에는 낡아 못 쓰게 된 까잔갑의 말라까이 모자까지 얹힌 거의 어른 키는 되게 커다란 그 눈사람은 간이역 앞을 지키고 서서 기차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행복한 새해 - 1953년〉이라고 쓰인 널빤지를 들고서. 멋진 작품이었다. 그 눈사람은 1월 1일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거기에 서 있었다.
(481/1054)

참으로 즐거운 날이었다. 눈길이 닿는 한, 소리가 미치는 한, 끝없이 눈 덮인 사로제끄에는하얗고 깨어지지 않은 태초의 고요가 내려 있었다. 사방으로 스텝이 비탈과 언덕과 계곡과 하늘이 펼쳐진 사로제끄에 짧은 한낮의 온기를 주었던 부드러운 빛이 스러지자 귀를 간질이는 미풍이 불어왔다. 그들 앞쪽으로 철길에서는 나란히 연결된 두 대의 기관차들이 연기와 증기를 뿜어 대며 기다랗고 울긋불긋한열차를 끌고 들어왔다. 연기가 고리 모양으로 (487/1054)

를 지어 보였고 그들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았고 그들 모두가 자기만큼이나 그 파티를 즐거워한다고 믿었다. 
다정한 미소를 띤 그의 모습이 잘생겨 보였다 아직은 검은 눈썹에 검은 수염, 그리고 반짝이는 회색빛 눈에 희고 튼튼한 치아가 가지런한 부란니 예지게이, 상상력이 아주 풍부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그가 늙었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를 미리 알 수있었다. 그는 사람들 모두에게 마음을 써주었다.
 그리고 부께이를 보란리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통통하고 친절한 그 여인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축배를 들자면서 그녀를 위해 옛날 아무다랴의 강둑에서 살았던 모든 까라깔빠끄 사람들을 위해 건배했다. 그는 또 까잔갑이 파티에 없다고 속상해하지 말라며 그녀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난 그 사람이라면 신물이 난다우!」 부께이가 받아넘겼다. (493/1054)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아부딸리쁘와자리빠가 함께 있는 것이 기뻤다. 그들 부부는당연히 가장 돋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자리빠는 맑게 울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신속히 한 가락에서 다른 가락으로 선율을 따라가며 만돌린을 연주했다. 그리고 아부딸리쁘는 가슴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나지막한 저음으로 노래를 이끌었다. 그들은 함께 활기차게, 특히 따따르족의 민요들을 〈알마끄-깔마끄〉 스타일로, 즉 서로 화답하는 식으로 불렀는데,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도 끼어들었다. 그들은 벌써 많은 옛 노래와 새로운 노래들을 불렀지만 싫증을 내기는커녕 갈수록 더욱더 열심이었다. 
예지게이는 자리빠와 아부딸리쁘 맞은편에 앉아 계속 그들을 지켜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을 것이었다. 만일 그들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 그 쓰라린 운명만 없었더라면.... (495/1954)

 당직실 근처에서는 아빌로프가 왔다갔다 하면서 서성대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곤란하게 됐어요. 안 좋은 일입니다. 예지께.」 아빌로프가 겁먹은 표정으로 당직실 문을 흘끔거리면서 대답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저 사람들이 꾸찌바예프를 체포했어요.」
「뭣 때문에 ?」
「아부딸리쁘가 자기 집에서 쓰고 있던, 써서는 안 되는 글을 좀 찾아낸 모양입니다. 사실 그 사람은 매일 밤마다 뭘 쓰느라고 바빴죠. 그건 모두들 다 알고 있어요. 이제 너무 많이써버린 거죠.」
「그 사람은 단지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 그런 걸 쓰고 있던 건데요.」 (505/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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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여름은 어느 해 여름보다도 더 더웠다. 땅이 바짝 마르고 몹시 뜨거워져서 사로제끄의 도마뱀들마저도 사람을 무서워할 줄 모르고 어떻게든 땡볕으로부터 피할 곳을 찾아 입을 쩍 벌린 채 목을 발발 떨면서 문턱에 앉아있을 정도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솔개들은 맨눈으로는 거의 볼 수없을 만큼 높은 곳까지 떠올라 몸을 식히려 하면서 가끔 가다 한 번씩 짧은 울음소리를 내고는 흔들거리는 신기루가 비친 뜨거운 공기 속으로 다시 잠잠해지곤 했다.
(315/1054)

그러나 할 일은 여전히 해야만 되었다. 기차들은 계속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오갔고, 그중 많은 것들이 보란리-부란니를 거쳐 갔다. 그렇게 중요한 간선 철도에서 기차들의 운행이 중단되게 했다가는 더위
(315/1054)

에 시달리는 것보다도 더 큰 일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작업은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쇠로 된 물체는 말할 것도 없고돌이라도 만지려면 너무 뜨거워서 장갑을 껴야만 했다. 태양은 가마솥 같은 열기로 뜨겁게 내리쬐며 바로 머리 위에 떠 있었고, 탱크차로 날라져 오는 물은 햇볕을 받는 동안 거의 비등점에 이를 정도로 뜨거워졌다. 그리고 옷은 이틀만 입고 다니면 어깨 부분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사로제끄에서는 아무리 모진 추위를 겪더라도 겨울에 일을 하는 편이 그런 여름 더위 속에서 일하기보다는 더 쉬웠다.
(316/1054)

가엾게도 보란리의 아이들은 얼굴을 찡그리고서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숨 막히고정신 차릴 수 없는 더위로부터 피할 곳이라고는 아무 데도 없었고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꼭 있어야 할 것들인 나무 한 그루, 개울 한줄기 보이지 않았다. 사로제끄가 되살아나서 계곡과 정거장 주변이 한동안 푸릇푸릇했던 봄철에는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즐거웠었다. 그때 아이들은 공놀이며 숨바꼭질을 하거나 스텝으로 달려 나가 마르모트를쫓았고, 멀리서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즐거웠다.(317/1054)

그러나 여름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게다가 그해에는 유례없는 더위가 아이들의 지칠줄 모르는 정신까지도 고갈시켰고, 그 때문에 (318/1054)

아이들은 집 옆의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며 기차들이 지나갈 때나 고개를 내밀었다. 한쪽 방향으로 얼마나 많은 열차들이 지나가고 또 다른 쪽 방향으로는 몇 번이나 지나가는지, 객차가 몇 량이나 매달렸고 화차가 얼마나 되는지를 세는 것이 그들의 놀이였다. 

그리고 때때로여객 열차가 간이역을 통과하기 위해 속도를늦추기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그 열차가 설 것처럼 보이는지, 어쩌면 더위를 막아 보겠다는헛된 희망으로 팔을 들어 올려 햇빛을 가리고, 숨을 헐떡이면서 열차를 쫓아 달려갔다. 

그러나 열차는 덜컹대며 그대로 지나가 버렸고 그럴 때면 조그만 보란리 아이들의 부러움 담긴, 어린아이답지 않은 슬픔은 차마 눈 뜨고 보기가 민망했다. (319/1054)

그해 여름에는 어머니들이건 아버지들이건어른이라면 누구나 아이들을 걱정했지만 아부딸리쁘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는 예지게이와 자리빠만이 알 수 있었다. 
그 무렵 자리빠와 예지게이는 아이들 문제에 대하여 처음으로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던 중에이 두 사람의 운명에 관한 좀 더 많은 것이 드러났다. 
그날 그들은 자갈을 새로 깔고 레일이진동으로 변형되지 않도록 철둑을 보강하기 위해 침목과 철길 밑의 틈서리에다 쇄석을 뿌려고르고 하면서 선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 열차들이 지나가는 사이를 틈타 해야 되는 그 일은 정말로 지겹고 넌더리나는 노릇이었다. (320/1054)

정오가 다 되어 갈 때쯤 해서아부딸리쁘가 빈 깡통을 집어 들더니 뜨거운물이라도 좀 더 가져와야겠다며 측선에 놓인 (321/1054)

탱크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로를 따라 급히 걸어갔는데 아이들을 빨리 보려고 마음이 급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을 않고 있었다. 뼈가 불거진 어깨 위에 빛바랜 윗도리를 걸친 그의 머리에는 지저분한 밀짚모자가얹혀 있었고 바지는 여윈 몸에 헐렁하게 걸려있었다. 그리고 발에는 끈 없는 작업화가 있었다. 
그는 아무것에도 주의를 돌리지 않고 침목위를 잰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의 뒤쪽에서 열차가 다가왔을 때도 그는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321/1051)

「이봐요, 아부딸리쁘, 선로에서 벗어나요!
당신 귀먹었소?」 예지게이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듣지 못했다. 기관차가 기적을 울렸을 때에야 그는 철둑 아래로 내려갔는데 그러고 (321/1054)

나서도 기관차를 돌아다보지 않았고, 기관사가그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보지 못했다.(322/1054)

전쟁 기간 동안, 포로 시절에도 그는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지지 않았었다 - 물론 그때에는나이가 더 젊었었지만, 그는 19세 때 소위로 전선에 배치되었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 그는 정말로 머리가 세었다. 사로제끄의 백발이었다.
말의 갈기처럼 헝클어지고 숱 많은 그의 머리칼 여기저기에 희끗희끗한 터럭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다음에는 그것이 관자놀이로까지 퍼져내려갔다. 형편이 좋았던 시절엔 그는 잘생기고 호감 가는 사내였을 것이다. 넓은 이마에 매부리코, 돌출한 결후(結喉), 든든한 입, 그리고거기다 큼지막한 눈....... 그래서 자리빠는 씁쓸하게 농담을 던지곤 했다. 「당신은 운이 없어요, 아부, 당신은 무대에서 오셀로 역을 했어야옳아요.」 그러면 아부딸리쁘는 웃으며 이렇게 받아넘겼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 목을 졸
(322/1054)

라야 하는데 당신은 그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뒤에서 열차가 다가오는데도 얼른 비켜서지않는 아부딸리쁘의 행동 때문에 예지게이는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바깥양반한테 뭐라고좀 해줘야 할 겁니다. 그 사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나 한번 물어봐요!」 예지게이가 반쯤은 꾸짖는 투로 자리빠에게 말했다.
「기관사에겐 책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선로위를 걷는 건 금지돼 있으니까요. 그 사람 어째서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요?」자리빠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소맷자락으로 햇볕에 검게 탄 얼굴에서 땀을 훔쳐 냈다.
「나도 저이 때문에 두려워요.」 (323/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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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우리 보란리요!」 까잔갑이 가리켰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낙타에 탄 예지게이와 서둘러 옆으로 다가오는 우꾸발라를 돌아다보았다.「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우린 곧 저기에 닿을거고, 그러면 쉴 수 있을거요. (223/1054)

앞쪽으로 철길이 약간 구부러진 텅 빈 고지대 위에 서너 채의 집들이 보였고 측선에는 지나가는 열차가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멀리로는 탁 트인 벌판과 완만한 경사지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 그 적막하고 끝없이 펼쳐진 스텝이, 그리고 또 너머로 스텝이.......
(224/1054)

예지게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바닷가의 스텝 지방 출신이어서 아랄 사막에 익숙해 있었지만 그런 사막일 줄은 예상을 못했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 해안으로부터, 그가 자라났던 바닷가의 푸름으로부터 물 한방울 보이지 않는 이 죽은 지역으로 오게 되다니! 그가 여기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곁에서 걷고 있던 우꾸발라가 그의 허벅지에 손을 얹고서 그대로 몇 걸음을 더 걸었다.(224/1054)

그는 아내의 생각을 알아차렸다.「걱정하지말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당신이 회복하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 기다리면서 알아봐도 돼요.」
그렇게 해서 그들은, 나중에 가서 알게 되었듯이, 오랜 세월 그들의 나머지 모든 생애을 보내도록 운명 지어진 곳으로 오게 되었다. 곧이어 해가 떨어졌고 어둠이 내렸다. 사로제끄의 밤하늘에서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보란리-부란니에 도착했다. (225/1054)

며칠 동안 그들은 까잔갑과 함께 살았다. 그러고 나서 선로 노무자들에게 배당된 바라끄가옥에 방을 하나 얻어 나갔다. 새로운 환경에서 그들의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 모든 어려움과 시련의 와중에서도 그 텅빈 사로제끄 사막이, 특히 처음에는, 예지게이에게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선물을 주었다. (225/1054)

그곳의 맑은 공기와 낙타 젖이었다. 공기는 티끌 한점 없이 맑았고 ㅡ 그런 곳을 다시 찾아내기란 어려울 것이었다 - 낙타 젖은 까잔갑이 두 마리의 젊은 암낙타들 중 그들에게 빌려준 한 마리에게서 얻었다.

「내 아내하고 나는 이러기로 했네. 우린 낙타 젖이 충분하니까, 저 하얀 머리는 자네가 쓰도록 하게. 두 배째 새끼가 딸린 저 암낙타 말일세. 저걸로 젖을 짜도록 하게. 하지만 새끼낙타에게 젖이 부족하지 않도록 해야 되네. 저놈은 자네 거니까. 내 아내하고 내가 그렇게 결정했어. 저놈은 자네 몫일세, 예지게이. 내가자네에게 기르라고 주는 선물이야. 저놈을 잘키워 보게. 그러면 자네는 곧 저놈에게서 태어난 새끼들도 갖게 될 걸세. 또 만일 자네가 여길 떠나기로 작정한다면 저놈을 팔아도 되고.
아마도 꽤 많은 돈이 되어 줄 걸세.」
(225/1054)

하얀 머리의 새끼 낙타는 열흘 전에 태어난,
머리가 검고 조그만 혹이 달린 작은 짐승이었다. 그놈은 귀여웠고 어린애 같은 상냥함과 호기심으로 빛나는 아주 커다랗고 촉촉한 눈을 갖고 있었는데 때로는 제 어미 주위를 껑충껑충 뛰어 돌아다니면서 익살맞게 달렸고 울타리가 쳐진 목초지에서 어미 뒤로 처질 때면 아기울음과도 흡사한 소리로 제 어미를 불렀다. 나중에 이놈이 조만간 때가 되면 그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낙타, 이 지칠 줄 모르는 힘센 짐승부란니 까라나르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수 있었을까? 까라나르는 예지게이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젖먹이 새끼를 끊임없이 보살펴 주어야했다. 예지게이는 그 새끼 낙타에게 마음이 몹시 끌리게 되었고 거의 모든 여가 시간을 그 짐승과 함께 보냈다. (227/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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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어긋나는 프래니와 레인의 대화.
이유가 뭘까? 프래니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건지 너무 궁금한데 모임 있어서 나가려니 발걸음이 안떨어진다.







-프래니(Franny)

햇빛이 찬연하게 비치고 있었지만 토요일 아침은 다시 두툼한 외투를 입어야 할 날씨였다. 주중에는 가벼운 코트로 충분했기에 예일 대학 경기가 있는 대망의 이번 주말에도 그 날씨가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모두의 바람과 반하는 날이었다. 역에서 열시오십이분 열차로 도착할 데이트 상대들을 기다리고 있던 스무명 남짓한 젊은 남자들 중, 예닐곱명만이 추운 실외 플랫폼에 나와 있었다. 나머지는 모자를 벗고, 난방이 된 대합실 안에서 두서넛씩 모여 서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거의 예외 없이 대학생 특유의 독단적인 말투였다.  - P11

"가방과 물건들은 숙소에 내려놓자, 그냥 문 앞에 던져놓으면 돼. 그러고 나서 점심 먹으러 가자." 레인이 말했다. 
"배고파 죽겠어." 그는 앞으로 몸을 숙여 기사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다.
"아, 당신을 만나니 정말 좋다!"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프래니가 말했다. 
"보고 싶었거든." 
그녀는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내고 얼마 되지 않아 전혀 진심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다시 한번 죄책감을 느낀 그녀는 레인의 손을 잡고, 단단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깍지를 꼈다. - P20

"강의 조교처럼 말하네. 아주 똑같아."
"뭐?" 그는 신중하게 말을 아끼며 말했다.
"강의 조교와 아주 똑같이 말하고 있다고 미안해, 하지만 그래. 정말 똑같아."
"내가? 강의 조교는 어떻게 말하는지 물어도 될까?"
프래니는 그가 기분이 상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 P26

그러나 지금 당장은 자신에 대한 반감과 악의가 반반인 심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다고느꼈다.
 "글쎄, 여기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곳에선 강의 조교는 교수가 자리를 비우거나 신경쇠약으로 정신이 없을때, 아니면 치과에 갔거나 뭐 그럴 때 강의를 대신 해주는 사람이야. 대개는 대학원 학생이거나 그렇지. 어쨌든, 예를 들어, 러시아문학 강의라고 한다면, 조교는 버튼다운 칼라 셔츠에 줄무늬 넥타이를 하고 들어와 반 시간쯤 투르게네프를 트집잡기 시작해. 그러고 나서 할 만큼 했다 싶으면, 다시 말해 투르게네프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싶으면, 스탕달이나 그가 석사 논문을 쓴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거야. 우리 학교 영문과에는 그렇게 작가들을 훼손하고 다니는 소인배 같은 강의 조교들이 한 열 명쯤 있고, 그 사람들은 너무나도 똑똑하셔서 거의 입도 열지 않지. 모순된 표현은 미안해. 내 말은, 그들과 논쟁이라도하게 되면 그들이 하는 거라고는 그 끔찍하게 선량한 표정을 하고는ㅡ"
"당신 오늘 무슨 빌어먹을 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데, 알고 있어? 도대체 뭐가 문제야?"
프래니는 빠르게 담뱃재를 떨고는 재떨이를 조금 더 그녀 가까이 가져왔다. "미안해. 내가 고약하게 굴었네." 그녀가 말했다. - P26

"당신네 그 빌어먹을 영문과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둘이나 있어. 맨리어스 에스포지토. 아, 정말이지 난 그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시인이잖아, 젠장."
"시인 아니야." 프래니가 말했다. "그것도 내가 끔찍해하는 이유중 하나야. 내 말은 그 사람들은 진짜 시인이 아니라는 거지. 그냥 출판이 되고 온갖 선집에 실리는 시를 쓰는 사람들일 뿐, 시인은 아니야." 그녀는 의식적으로 말을 멈추고는 담배를 껐다.
몇 분 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듯했다. 갑자기, 마치 클리넥스로 닦아내기라도 한 듯. 그녀의 립스틱조차 한두 색조 옅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얘긴 이제 그만하자."  - P30

"알았어, 알았다고. 오케이. 진정해. 나는 그저
"내가 아는 건 이 정도고, 그게 다지만 말이야." 프래니가 말했다.
 "시인이라면 뭔가 아름다운 걸 해야 해. 한 페이지라도 시작했으면 뭔가 아름다운 걸 남겨야만 하는 거라고.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들은 단 한 개도, 단 하나도 아름다운 것을 남기지 않아.
아주 조금 낫다고 하는 이들은 사람들 머릿속으로 들어가 거기에 어떤 것을 남기긴 해. 그러나 그들이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어떤 것을 남기는 법을 안다고 해서, 그게 시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절대 그냥 뭔가 지독하게 매력적인, 구문 형식의 똥일 뿐이라고 이런 표현 써서 미안, 맨리어스며 에스포지토며 그 형편없는 인물들이 다 그래."
레인이 느릿느릿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당신이 맨리어스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한 달 전쯤이었나,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당신은 그를 아주 멋진 사람이라고 했어. 당신이ㅡ"
"나 그 사람 좋아해. 그런데 사람들을 그냥 좋아하는 일에는 신물이 나. 정말이지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잠깐 실례해도 될까?"  - P32

시클러스의 여자 화장실은 엄밀하게는 거의 홀만했고, 특별한 의미에서는 그 못지않게 널찍한 느낌을 주었다. 프래니가 들어갔을 때 화장실 관리인은 없었으며, 사용중인 사람도 없는 듯 보였다. 그녀는 마치 그곳이 일종의 약속 장소인 것처럼 타일이 깔린 바닥 한가운데에 잠시 서있었다. 이마엔 이제 땀방울이 맺혀있었고, 입은 힘없이 벌어져 있었으며, 홀에서보다 더 창백해진 상태였다. - P34

그러다 갑자기, 그리고 아주 빠르게, 그녀는 일고여덟 칸중가장 멀리 있고 가장 특색 없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ㅡ다행히 동전을 넣어야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은 아니었다ㅡ 문을 닫고는조금 힘겨워하며 문을 걸어잠갔다. 그리고 화장실이라는 환경의 본질에는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 P34

그녀는마치 자신의 몸을 더 작게, 더 빈틈없는 개체로 만들려는 것처럼두 무릎을 단단히 붙였다. 그러고 나서 두 손을 세워 눈 위로 올리고는, 시신경을 마비시켜 모든 이미지를 공동과 같은 어둠속 깊이 잠기게 하려는 듯, 눈가를 세게 눌렀다. 그녀의 펼쳐진 손가락들은 비록 떨리고 있었음에도, 아니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이하게도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는 긴장한 거의 태아와 같은 자세를 잠시 유지하다가 곧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고, 족히 오분은 울었다. 그녀는 히스테리 상태의 어린아이가 부분적으로 닫힌 후두개로 숨이 올라오려 할 때 목에서 내는 발작적인 끓는 소리로 슬픔과 혼란을 더욱 요란스럽게 드러내며 전혀 억누르지 않고 울어댔다. 

하지만 마침내 울음을 멈췄을 때, 그녀는 그대로 멈추었을 뿐, 그런 격렬한 폭발과 내적인 분출 뒤에 따르게 마련인 고통스럽고 칼날 같은 들숨은 쉬지 않았다. 마치 머릿속에 순간적인 극 변화가 일어나기라도한 것처럼, 그 변화가 그녀의 몸에 즉각적인 진정 효과라도 일으킨 것처럼 그렇게 멈추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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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진짜...
아침부터 시끌시끌 동네가 난리가 났다.
어제의 그 고요하고 상쾌한 공기는 안드로메다행?
ㅋㅋㅋ
근데 웃음난다.
저 앞 초등학교 꼬맹이들 운동회 한다.~~
마이크 소리
다음 조 준비하시고 출발~~~
선생님 목소리 넘넘 경쾌하고 신난다
거기에 더 신나는 음악 근육빵빵 난 슈퍼맨~~~
뭘하는걸까? 궁금하지만 하필 운동회날 아침인데
우리 주택단지 앞 도로 공사 중이라 집에 앉아 있어도 아스콘 냄새 때문에 머리, 코가 어질어질하다.
책도 못 읽겠고 음악도 아무 소용없는 시간이지만
이 소란스러움도 좋은 아침이다.


이런 날 읽기 좋은 책이다!


플링(fling)이란 말도 알게 되네^^
여름의 설렘, 환상.. 여름 한철 사랑하는 거,
휴가지에서 하는 짧은 연애 같은거.
말만 들어도 설렌다.


그렇게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다른 바로 옮겨 한참 더 얘기를 나눴다. 역시나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꽤 오래 배시시 웃으며 떠든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그대로 헤어지기 싫었던 것 같다. 딱히 알맹이도 없는 이야기를 주절거리면서 숙소로 가 혼자가 될 시간을 미루고 있었다. 눈꺼풀이 서서히 무거워질 즈음 그가 말했다.
"숙소까지 데려다줄게."
"뭘로?"
"오토바이로." - P23

그때까지 한 번도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직접 운전하는 것도 아닌, 만난 지 얼마안 된 사람이 타국에서 모든 오토바이라니, 당연히겁났다. 하지만 그는 결코 강요하지 않는 부드러운미소로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휴, 뭘 또 저렇게예쁘게 웃어.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뒷자리에 올라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때 내 가슴은 막 뛰고 있었는데, 무서워서 그러는건지 설레서 그러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분명 날씨는 한 여름인데 몸도 으슬으슬 떨리는 것 같고, 근데 좋고.

**푸훗... 나도 좋다.
나도 이런 연애 경험 있지! 허리를 꽉 끌어안고 오토바이 뒷 자리에 탄 경험. - P23

그날 이후로 우리의 짧은 연애가 시작되었다.
가끔은 함께 가끔은 따로 여행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서로를 그리워했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사람은 예상했겠지만, 이 에피소드의 유일한 비극이라면 그에게는 플링이었던 그것이 나에겐 사랑이었다는거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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