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 듣다 드는 생각
내일은 시엄니 7주기이다. 남편 손 위 누님(큰형님, 작은형님) 두 분 정말 몇 년 만에 오신대서 열심히 욕실 청소하면서 라디오 듣는데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가 나오는거다.
평소 이 음악 들을 땐 뭔가 거룩한 것에 둘러싸인듯 벅찬 감정을 느꼈었는데 오늘은 요즘 내가 읽는 책이 미국의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의 《하워드 진, 역사의 힘》,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이다보니 이 음악이 그냥 벅찬 감정으로 들리지 않는거다. 마침 어젯 밤 인디언들이 땅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전쟁 부분을 읽었으니 더 그랬다.
내 기억으로 드보르작은 1892년 뉴욕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인디언들의 민속음악과 흑인영가를 채집하였고 이에 자극을 받아 작곡을 하고 작품의 제목도 직접 붙였다. 1892년 쯤에는 미국이
인디언들의 땅을 ‘사유화‘라는 이름으로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땅을 훔치고 빼앗고 죽이고 좁은 구역에 몰아넣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던 시기였을텐데...
드보르작은 이런 모든 것을 다 보고 알았고 느꼈을까. 이런 거대한 슬픔의 감정을 곡에다 반영했을까? 그걸 모르겠네!
이런 심각한 글을 읽으면서도 배는 고프고
음악 틀어놓고 썬룸에 앉아 풍경보며 먹는 샌드위치도 맛있고 낫또도 맛있고. 언제나 빵과 장미는 중요한 가치이다!
1880년대에 미 의회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공유지를 해체해 사적 소유지로 만드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찬양하는 ‘사유화‘였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디언들이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법안을 입안한 상원 의원 헨리 도스는 체로키 족을 방문했을 당시 자신이 발견한 것을 이렇게 묘사했다. "개인 소유의 집을 가진 가족은 하나도 없었다. 극빈자도 없었고, 달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학교와 병원을 지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에는 명백한 단점이 있다. 이 사람들은 땅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땅을 차지할 수 있다...... 이웃집보다 자기 집을 더 번창하게 만들려는 적극성이 없다. 문명의 근저에 흐르는 이기심이 없는 것이다." - P142
1933년 발표한 자서전에서 루서 스탠딩 베어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로 백인들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백인들의 문명이 꽃피운 열매는, 때깔도 곱고 맛도 있어 보이지만, 사람을 병들게 하고 말라 죽인다. 사지를 절단하고 약탈하고 분탕질하는 것이 문명의 일부라면, 도대체 진보란 무엇이란 말인가? 감히 말하건대, 원뿔형 천막 속에 앉아서 삶 자체와 삶의 의미를 명상하고, 모든 피조물을 혈족으로 받아들이고, 우주 만물과의 합일을 인정하는 사람이아말로 자신의 존재에 문명의 진정한 정수를 불어넣는 것이다."
1. Luther Standing Bear(1868-1939). 아메리카 원주민 작가. 인디언 문화의 가치를 옹호하는 책들을썼으며, 인디언의 권리를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 P143
이렇듯 콜럼버스를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은 진보, 문명, 우리가타인들과 맺는 관계, 우리가 자연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콜럼버스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나 역시 이런 말을 꽤 자주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당신은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콜럼버스를 20세기의 눈으로 보고 있다. 500년 전의 사건들을 우리 시대의 가치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역사적인 것이다." - P144
이런 주장은 참으로 이상하다. 잔혹 행위, 착취, 탐욕, 노예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 등이 15~16세기에는 다른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는 말일까?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는 말일까? 콜럼버스 시대와 우리 시대에 공통적인 인간의 가치는 없을까? 콜럼버스 시대에나 우리 시대에나 타인을 노예로 만드는 사람과 착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권을 위해 그런 자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그런 가치의 존재를 증명해준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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