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시각으로 쓰인 글이 맞다!


<감정을 젠더화하기>라는 에세이에서 우테 프레베르트Ute Frevert는 "고대로부터 분노는 강자의 자질로 여겨졌다"고 쓴다. 나는 현재 미합중국의 대법관이 된 브렛 캐버너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불미의 사태에 분노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어떻게 내가, ‘내‘가, 성유바른 법의 총아가, 저 여자 교수 크리스틴 블레이지 포드에게서 성폭행으로 기소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분노는 강자의 특권, 미국에서는 백인 남자의 특권이다. 나머지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신중하게 가두거나 꿀꺽 삼켜버려야 한다. 여자는 부드럽고 차분하고 숙녀다운 목소리로 증언하며 겸손하게 앉아서 자신을 심문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돕겠다는‘ 의향을 보여야만 한다. - P27

"나의 분노는 내게 고통이라는 의미였으나, 또한 생존이라는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나는 적어도 선명성으로 가는 길에 그만큼 강력한 것이 또 있는지 확실히 확인하고 나서, 그때 비로소 분노를 포기할 것입니다." 오드리 로드는 한 연설에서 말했다. - P27

로드의 분노는 그녀의 천재성에 에너지를 충전했고 그 에세이의 산문에 전기를 통하게 했다. 로드는 그 분노를 누구에게 왜 겨냥해야 할지 잘 알았다. 그 속에는 불편하고 추한 진실에 눈을 감은 백인 페미니스트들도 있었다. 
내 할머니는 그런 탁월한 선명성, 그런 지적 통찰력, 그런 철학적 관통으로 자신의 처지를 바라볼 수는 없었다. 결혼과 그에 수반된 가난과 수치라는 당혹스러운 현실에 종속된 백인 여성이었다. 할머니에게는 분노가 있었다. 분노가 할머니의 생존을 도왔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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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1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표제작이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은 장편이었던 <밝은 밤>도 단편들도 주인공 여성들의 삶을 되돌아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은 수록된 두개의 단편을 읽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몫‘이다. 두 단편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에세이(‘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자신들이 쓴 글(‘몫‘)을 읽는 장면이 등장한다. 읽기와 쓰기를 매개로 사회적 맥락에 다가서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변화된 시각과
행동이 짧은 글에서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삶의 한순간을 포착해내어 절묘하게 표현해 낸 문장들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표제작이기도 한 첫 수록작품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오래도록, 강렬하게 기억하게 될 것 같은 문장이 있었는데...
‘더 가보고 싶었다‘
이는 화자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다.

* * *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그 수업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시멘트에 밴 습기가 오래도록 머물던 지하 강의실의 서늘한 냄새, 천원짜리 무선 스프링 노트 위에 까만 플러스펜으로 글자를 쓸 때의 느낌,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작은 강의실에 퍼져나가던 울림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고른 에세이도 좋았고, 혼자 읽을 때는 별 뜻 없이 지나갔던 문장들을 그녀가 그녀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머릿 속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도 좋았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1쪽)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대해 쓴 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가깝게 느껴졌다고도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 주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43~44쪽)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몫‘ 52쪽)

당신은 아직도 그날 밤을 기억한다. 희영이 써온 긴글을 처음 읽고 받았던 충격을. 담요를 뒤집어 쓰고 앉아 차갑게 언 발의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글을 읽던, 스물에서 스물하나가 되어 가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한다.
희영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편집실은 고요했다. 낭독이 끝났는데도 편집실을 채운 팽팽한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으리라고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희영에게는 타고난 관찰력과 자기 생각을 끝까지 끌어가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지력이 있었다. (59쪽)

희영이 정윤의 말을 끊었다.
아니요. 남편을 죽여야만 아내가 살 수 있는 사회구조의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 부분이 빠져서는 안되고요. 왜 여자들이 경찰을 불러도, 이혼을 하고 싶어도 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제가 다음 글에서 분석했으니 읽어보세요.
희영은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써온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명확한 주장과 그를 받쳐주는 논리적인 근거로 짜인 단단한 글이었다. 같이 공부하며 준비했지만, 당신은 당신 역시 오래도록 남자들의 시선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희영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67쪽)


자주 여러번 읽고 싶은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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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접하는 김사량의 <빛 속으로>에는 4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빛 속으로‘, 그리고 ‘천마‘,‘풀이 깊다‘,‘노마만리‘ 등이다.

천마
1
두꺼운 구름에 짓눌린 어느 아침, 경성의 유명한 유곽 신마치(新町, 현재의 묵동, 쌍림동 일대 - 옮긴이) 뒷골목 어느 사창가에서 지저분한 골목으로 내던져지듯 밀려 나온 사람은 볼품없는 풍채의 소설가 현룡이었다. 그는 정말 난처하다는 듯 한동안 대문 앞에 서서 도대체 어디로 나가야 혼마치(本町. 현재의 충무로 일대 - 옮긴이)로 빠져나가는 길인가를 고민하더니, 갑자기 성큼성큼 앞쪽 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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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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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간단 리뷰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 안에서 식민지배, 한국전쟁, 인종차별이 드러나고 젠더화된 불평등 노동과 폭력이 난무하고, 그 속에서 조현병을 않으며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키면서 서서히 무너지는 이민자이자 ‘양공주‘였던, 엄마 군자의 삶을 살아 숨쉬게 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이끌려 강박적으로 답을 찾아 써 내려간 글쓰기이다! 그 속엔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며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폭력에 맞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자 애썼던, 활력이 넘치고 매력적이었던 엄마, 그리고 한국 음식을 해 먹으며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는 엄마와 딸의 모습들이 슬프면서도 처절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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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특별판 9 Chapter 17, 18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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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특별판 9 Chapter 17, 18>
남부 독일의 평화롭던 작은 마을, 루엔 하임.
룽게 경감과 글리머는 산으로 둘러싸인 이 아름다운 마을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요한의 부탁으로, 마을의 호텔 주인으로 숨어살던 프란츠 보나파르타에 대한 감시를 하고 엽서로 정보를 보내던 노부부, 그리고 요한의 심복 로베르트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 둘 죽인다. 룽게와 글리머는 마을 사람들을 살리려 애쓰고 텐마도 마을에 들어오다 마을 사람들을 마을 밖으로 피신시킨다. 요한의 메세지를 받은 니나도 루엔 하임으로 온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모였다. 텐마, 요한, 니나, 룽게, 글리머... 요한은 괴물에 대해 아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완전한 자살을 꾀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다시 한번 머리에 총상을 입게 된다. 텐마는 다시 그를 살려낸다.
마침내 경찰이 마을에 진입하고 평화를 되찾은 마을.
니나는 법학부 수석으로, 변호사가 되기로 하고 텐마는 쌍둥이들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이름이 있단걸 알게 되고, 그가 아이들을 사랑했단 걸... 의식이 없는 채로 병원에
입원 중인 요한을 찾아간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소속되어 활동하게 된 텐마... 그에겐 잘 어울리는 결말이지만 ... 요한, 그는 자신 속의 괴물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을지 ... 사라진 요한은 어디로?
끝이라는게 믿기지 않아... 아쉬움 마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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