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대산세계문학총서 171
라오서 지음, 김의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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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리뷰] 라오서의 <이혼離婚>
1930년대 베이징 시민들의 삶을 유머로 풀어낸 작품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부장제와 봉건적인 관습, 그리고 반봉건 근대적 인식 사이에서 위선적인 삶을 산다. 재정소라고 하는 기관의 관원들인 라오리, 장다거, 샤오자오, 추선생, 쑨선생, 우태극, 그리고 그들의 부인들, 그리고 라오리가 세들어사는 집의 마부인, 가장 중요한 딩얼 영감들의 관계가 과장이 되어 그려지는데 그 주제가 자유연애, 남녀평등, 자유이혼, 일부일처제 등이다.

중앙정부가 시행한 다소 황당한 법령이 눈에 띈다. 라오서가 작품을 발표하기 2년전 시행한 법령이라고 하는데, ˝남녀평등, 자유이혼, 일부일처제 등을 명문화하면서 동시에 첩을 두는 것은 혼인이 아니므로 중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처럼 중혼은 금지하되 축첩은 합법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논리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라는 봉건적 폐습을 청산하지 못하는 중국 사회의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옮긴이 해설 중에서 )

라오리는 등장인물들 중 그나마 사람들의 행동과 관습, 병폐 등의 불합리성을 인식한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골에서 데려온 아이를 둘이나 낳은 아내를 무시하고 푸대접하며 생활비도 제대로주지 않는 등의 만행?을 일삼는다.

거기다 셋집의 며느리인 마부인을 사모하면서 지옥같은 삶의 한줄기 시정詩情이라는 말로 포장한 일탈을 일삼기도 한다. 남의 집 부인에게 눈돌리기가 시정詩情이라니 ....
참으로 다행인건 그의 성격이 극소심하고 우유부단해서 마음 속에 품은 말을 속이 터질 정도로 뱉어내지 못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행동으로 옮기는데는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불합리함을 인지하나 행동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삶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그리고 과장된 유머로 그려냈다는 것이 이 작품을 읽는 재미라고 한다면 딱일거 같다.

읽는 내내 답답함에 가슴을 치지만 가장 결정적인 해결은 폐물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장다거네 군식구 딩얼 영감인데 그 해결방법이 살인이라는 것에 찬성할 수 없어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라오서는 영국 유학에서 보았던 근대 의식을 중국에서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식이라는 것이 인위적, 단기간에 변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라오서의 절망적이고 쓸쓸한 웃음이 이 작품 <이혼離婚>에서 고스란히 느껴져 맴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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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도스 : 고예스카스 Op.11 [180g 2LP]
그라나도스 (Enrique Granados) 작곡, 백건우 (Kun-Woo Paik) 연주 / 유니버설(Universal)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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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레퍼토리들. 그래서 턴테이블에 바늘을 자꾸 올리면서 여러번 집중해서 들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는 언제나 좋다.

늘 오케스트라 연주만 가다가 어느 날 넓은 객석 한가운데 그랜드 피아노 한 대 덩그러니 놓인 그곳에 연주자 백건우 한 사람만이 등장하고 곧 뭐라 표현하기 힘든 맑음? 청량함? 혹은 건조함? 단아함? 유려한 선율 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그의 연주를 들었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왼쪽으로 약간 비켜난 객석에 앉아 피아노 소리 외엔 숨소리조차 내쉬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해서 오로지 피아노 선율만 흐르던 그 시간 이후로 백건우의 음반을 열심히 사 모아서 들었다.

그래서 다시 여러번 더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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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여성들은 영어를 망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니까, 영어를 발명했다

보컬프라이, 업토크, 헤징 등의 언어 습관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다양한 일례로 설명해준다.

˝어떤 소리가 변하는 과정을 알아차린다면,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을 이끌고,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반세기 앞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재미있는 사실: 언어학자들은 가장 혁신적이지 않은 언어 사용자가 잘 움직이지 않고, 나이 많고, 시골에 사는, 기본적으로 ‘규범‘과 같은 의미의 남성들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 (155쪽)


5장. 당신의 문법을 고치려 드는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는법

남의 나라 문법이라 잘 와닿지 않아 어렵다.
특히, 영어의 대명사 관련 부분.

미국에서 이 문제는 대명사와 관련이 많다.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정체성이 가시화되면서, ˝선호하는 대명사˝가 더 많이 논의되고 있다. 여성이나 남성 정체성을 갖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단수의 ‘그들they‘을 사용한다. 그러나 모두 여기 동참한 건 아니다.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복수로 읽힐 수 있다는 이유로 저항감을 표한다. 그렇게 하면 문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186~187쪽)


젠더 중립적 대명사의 사용도 연습이 필요하다.





1920 년대에 남성 언어학자들은 물체에 인칭대명사를 붙이는 과정을 ‘업그레이딩‘이라고 불렀다. 물체를 ‘그녀‘라고 부르면 인간의 위치로 격상되었다는 뜻이다. 그 언어학자들은 이것이 여성을 장난감이나 재산으로 격하하는 행위이기도 하다고 보진 않은 것 같다. - P180

현실에서 여성을 자연, 영토, 기술에 비유하는 행위는 여성이라는 성별을 ‘타자‘ 라는 범주로  묶는다. 로메인에 따르면, 바다와 해양과 같은 자연에 여성을 비유하는 행위는 "여성은 자연과 문명간의 갈등,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유혹하고, 끌어당기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정복해야 하는 무언가"라는 뜻을 지닌다. 여성은 식민화해야 하는 대륙이고 포위해야 하는 성채이다. 
이런 감정은 그저 영어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탈리아어부터 시작해서 태국어에 이르기까지, 한 국가의정부에는 ‘건국의 아버지가 있는 반면, 땅은 ‘어머니 대지‘,‘처녀지‘라고 불리며 여성화된다. 
삶에서의 비유처럼 문법에서도, 여성은 문명화된 남성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통제되지 않는 땅이다. 우리가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비유하는 약하고여린 꽃으로 길들여져야 하는 야생적인 것이다. - P181

특히 프랑스에서는 언어가 페미니스트에게 가장
강력한 저항의 도구가 되었다.
프랑스 여성들은 남성명사 대신 그 자리에 여성명사를 쓰곤 한다. 이야기나 대화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남성인 ‘르 쉬제le sujet‘ 대신 사람이란 의미의 여성명사 ‘라 페르손la personne‘을 쓰는 식이다. "비록 이론적으로 (…)[‘주제‘라는 단어는] 남성과 여성을 모두 아우르게 되어 있지만,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의 주요한 신조 가운데 하나는 가부장제가 남성을 주제로 설정하고 여성을 효과적으로 배제한다는 것이다." 로메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모순적이게도, 여성을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문법이 여성에 대한 배제를 당연시하게 된다." - P182

문법적 젠더를 비판함으로써 여성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다. 트랜스와 젠더 비순응적인 이들에게도 이는 정치적으로 의미 있고 분명 실용적이다. 스스로를 여성 혹은 남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들은 프랑스어와 같은 언어에서 난감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꽤나 창의적인 방안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이분법적인 젠더 체계를 통해서 스스로를 이분법 바깥에 위치시킬 수 있다." 
샌타바버라의 언어학자인 랄 지먼은 이렇게 말한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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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운동 이후의 중국이 배경.
지식인 청년 라오리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부정하고 암담한 현실을 인식하지만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탓에 어떠한 일도 실행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자신을 끊임없이 탓하기만하고 무엇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 가족도 아내도 자신의 신념도... 읽는 내내 답답했다!

라오리는 불 옆에 앉아 물을 한 주전자 들이켰지만 마음의 갈증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머리가 쭈뼛 서고, 답답해서 가슴에 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아내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추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제일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샤오자오에게 밥을 사겠다고 나섰을까? 단지 친해 보이려고? 아니, 아내가 추해 보이는 것을 막고 싶었다. - P145

하지만 많은 돈까지 쓰고도 끝내 추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아내가 추해 보이는 게 뭐가 대수였을까? 아무리 샤오자오가 떼를 써도 밥을 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다고 제가 날 어쩌겠어?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지! 피하고 숨겨서 뭐하게? 너야말로근본적으로 부패한 사회의 화신이야. 무료하고 쓸모없는 사회에 감히 맞서지도 못하다니. 너는 사람도 아니야! 왜 샤오자오그자의 면상에 냅다 술을 뿌리지 못했지? 그게 아니면 그 자식코를 쥐고 식초라도 부었어야지! 그저 혼자 답답해하기만 했을 뿐, 감히 제 마누라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어! 항상 자신은 신세대이고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영락없는겁쟁이잖아. 별 볼 일 없는 과원들에게 틀렸다는 말도 제대로못 하고, 그들의 웃음거리가 돼도 아무 말도 못 하지! - P146

라오리는 가슴이 답답했다. 여자하나가 한 남자, 아니 어쩌면 여러 남자의 인생을 망칠 수 있어. 마찬가지로 남자들 또한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망가뜨렸을까? 이것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결혼 제도가 문제인 거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저 나 자신이나 딩얼 영감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 P180

라오리는 실망보다 창피함이 더 컸다. 실망 속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지만, 이런 종류의 자괴감은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 이상, 그저 빨리 죽어버리라고 스스로를 저주하게 될 뿐이다. 묘회에서 간신히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갔는데, 결과는 깨진 기와 조각에 얻어맞고 거름 더미에 엎어진 격이었다. 그녀를 탓하면 화를 가라앉힐 수도 있겠지만, 라오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탓했다. 자신은 너무나 평범한, 아니 너무 평범해서 남들이 희한하게 볼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어서 아무도 라오리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딩얼 영감도 나보다는 나을 것이다. 흥, 네 주제에 감히 낭만을 꿈꿔? 그렇게 오랜 시간 참고 참다가 마침내 모험을 감행했고 잠시나마 가슴이 뛰었는데 결과는 망신뿐이다! 둘을하나로 엮는다고? 누구 맘대로? 라오리는 전신주에 머리를 들이박고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 P187

장다거 일이 급했지만 쑨 선생이 가고 혼자만 남게 되자 라오리도 마지못해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쑨 선생이 한 말을 곰곰이 되씹었다. 남자는 이러면 안 된다. 그는 생각했다. 순진한 여자는 저 스스로 함정에 빠진 것이고, 예쁜 여자는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며, 못생긴 여자는 생지옥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여자는 잘될 수가 없다. 남자가 못됐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단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보다 큰 문제이다. 절대로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선 안 된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이 관청 사람들을 좀 보라. 
소장이 어떤 사람인가? 관료 겸 토비다. 샤오자오? 사기꾼 겸 과원. 장다거? 남자 중매쟁이. 우 태극? 밥통 겸 무술쟁이. 쑨 선생? 건달 겸 베이핑 속담 수집가. 추선생? 고민의 상징 겸 과원. 이런 인물들 가지고 관공서를 꾸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 P209

그 부인들을 또 어떤가? 장다사오, 떡판, 쑨부인, 추부인,
거기에 내 마누라까지. 한 명도 제대로 된 여자가 없었다. 이런 남녀들이 사회의 중견 인물이고, 다음 세대를 키우고, 민족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웃기는 소리! 틀림없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 존재할 수 있겠어? 하지만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니 그들이 쓸데없는 짓 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 P210

"라오추, 자네 보기에 이렇게 사는 게 재미없는 것 같지 않아?"
추 선생은 한참을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웃었다.  "재미없지! 삶이란 것이 울타리에 갇히게 되면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재미가 없어져. 꼭 내가 어렸을 적엔 거친 야생마였지만, 나이가 들어 장가들고, 일을 하게 되면서 아주 뺀질뺀질한 당나귀로 변한 것마냥. 나중엔 더성먼德勝門 밖으로 끌려가 큰솥에서 삶겨 고기로 팔리겠지. 이제는 울타리 밖으로 도망칠 수도없어. 누구도 못 해. 지금은 그저 순간순간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며 사는 거지. 뜨거워졌을 때에는 발끈했다가, 차가워지면 살살 비위를 맞추는 거야. 학질 걸린 삶이야. 방법이 없어. 내가 처음부터 말단 관료가 되고 얌전한 남편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어쩌겠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네가 나보다 단수가 높기는 해도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야. 그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똑같이 한 솥 안의 요리 신세인 거지. 이런 얘기 그만하고, 잡담이나 하자고. 그저 잡담할 때가 제일 즐거워."
내가 라오추를 잘못 알았구나. 그도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고 있었던 것이다. - P237

"리 선생님, 리 선생님, 다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쉽더라고요. 아주 쉬워요! 리 선생님, 일이라는 게 처음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하고보니 꼭 못 할 것도 아니더군요."
라오리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 딩얼 영감을 보니 문득 그가 입은 모시 다산이 새하얀 광채를 발하는 것 같았다. "일이라는 게 처음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 한 마디가 연신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마치 깊은 연못에 바위가 떨어지면서 튀어 오른 물방울처럼 가벼우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샤오자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당얼 영감 자체가 기적이라는 느낌만 들었다. 딩얼 영감조차 그저 밥 먹고 차 마시고 관청에 나가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수있다니! 그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찔끔 마신 술은 목구멍에 달라붙어 넘어가질 않았다. - P341

라오리는 그저 술잔을 든 채 딩얼 영감이 술을 들이켜는 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독한 술맛에 목을 추켜세우는 딩얼 영감의 표정이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 
"그 자식, 보내버렸습니다. 정말 쉽더군요. 슈전 아가씨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허우하이에서 만나자고 했지요. 그가 왔더군요. 얼마나 신나 하던지. 여자들 능력이 참 대단합니다. 제가 잘 알고말고요. 별로 어둡지는 않았는데 다행히 주위에 사람이 없더라고요. - P342

저는 미리 와서 갈대숲속에 숨어 있었는데 모기가 되게 많았어요. 온몸이 물어뜯겨서여기저기 큼지막하게 부풀어 올라도 꼼짝 않고 있었네요. 

그때 그가 오더군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휴,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꼭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더라고요. 정말로요! 제 앞을 지나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귀신이 사람 몸 가로채듯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꽉 졸랐지요. 거의 혼이 빠질 뻔했지만 그래도다른 것은 다 잊고 오직 두 손만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마치 잠자는 강아지가 가끔 낑낑대듯이 두어번 낑낑대더라고요. 그게 다였습니다요. 발도 제대로 버둥거리지 못하고 아주 얌전해지데요. 이 딩얼보다도 더 얌전하더란 말입니다요! 갈대밭 속으로 끌고 들어가 몸을 뒤졌더니 이 집문서가 나오데요. 지갑하고 시계는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일을 끝내고 나니 맥이 풀려서 나오지 못하겠더라고요. 걷지도 못하겠던걸요. 그가 반듯하게 누워 있는데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되게 무섭더군요. 갈댓잎이 한 번 흔들릴 때마다 마치 누가 뒤에서 내 목을 조를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요."
딩얼 영감은 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목덜미를 더듬었다.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 P343

라오리의 희망이 사라졌다. 
세상은 한 점 빛도 없는 암흑천지였다.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었다. 이 정원도 저 괴물 관청과 마찬가지로 무료하고 무의미했다. 라오리는 딩얼 영감을 깨웠다. 가슴속에 있는, 어렴풋하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시골의 풍경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좋지요, 리선생님과 같이 시골로 갈래요, 암요! 베이핑에서는 조만간 총에 맞아 죽을 것 같아요!"
딩얼 영감은 당장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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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바진과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꼽히는 라오서.
유머로 중국 현대문학의 영역을 확장한, 라오서 자신이 꼽은 최고의 작품.
라오서 작품으로 처음이다.

장다거張大哥는 모든 이의 다거이다. ‘그 애비도 제 자식을 다거라고 부를 거야.‘ 보는 사람마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할 만큼 그는 딱 봐도 ‘다거‘였다. - P7

장다거에게는 일생을 바쳐 이루고 싶은 신성한 사명이 있다. 바로 중매와 이혼 퇴치다. 그는 모름지기 처녀에게는 적당한 남편이 있어야 하고, 총각 역시 그에 걸맞은 아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짝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장다거의 몸은 그 자체로 현미경이자 저울이었다. 그의 현미경은 처녀 얼굴에서 마맛자국을 발견하면 즉시 수많은 인파 속에서 말을 좀 더듬거나 보는 게 시원치 않은 남자를 찾아냈다. 저울에 올려놓고 보면 마맛자국과 근시는 피장파장이라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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