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안부
성현주 지음 / 몽스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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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정보도 없이 생각없이 그냥 빌려왔는데... 읽는 내내 정말 펑펑 울었다.

이렇게 펑펑 울 줄 알았다면 빌려오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 콧물 짜내면서 어쩔 수 없이 욕도 나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작가이자 개그맨 성현주의 엄마로서의 시간들에 백 번 공감하게 될 거다.

감히 상상 속에서조차도 내 아이를 나보다 먼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곳으로 보낸다는 생각은 할 수조차 없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지는데...

 놓고 싶지 않지만 아이가 홀로 감당하고 있을 고통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그만 보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러한 결정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든 현실이었을지 나는 감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어떠한 치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의 변화를 나는 동생을 보내면서 보았기에 그 심정이 더 절절하게 와 닿았다.

지금은 그녀가 부디 무대에서, 평범한 생활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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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가장 빨리 간다는 말이죠." 그녀가 속담을 인용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가도 마찬가지로 더 빠르게 갈 겁니다.‘
그는 불쑥 그렇게 말해 버리고 싶었는데, 햇살이 내리쬐는 공간과 별이 총총한 허공의 무한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그 세계를 그녀와 함께, 그녀를 팔에 안고 떠다녔으며, 그녀의 옅은 금발이 그의 뺨 언저리에 휘날렸다.  - P128

 동시에 그는 언어가 비참할 정도로 부족함을 깨달았다. 
맙소사! 그가 본 것을 그녀도 볼 수 있도록 단어들을잘 직조해 낼 수만 있다면! 그는 제 마음의 거울에 불시에 비친 이 환영들을 그려 내고자 하는 욕망을, 죽음의 고통처럼 격렬하게 느꼈다. 
아, 그것이었다! 그는 비밀의 끄트머리를 잡았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작가들과 대(大)시인들이 한 일이었다. 그들이 거인이 된 이유였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본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았다.  - P128

양지에서 자는 개는 종종 낑낑대고 짖지만, 무엇을 보았기에 낑낑대고 짖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개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자신이 바로 양지에서 자는 개와 같았다. 그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환영들을 보았으나, 루스에게는 낑낑대며 짖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이제 양지에서 잠자기를 그만두리라. 일어서서 눈을 크게뜨고, 자신의 풍부한 비전을 그녀와 나눌 수 있을 때까지, 가려지지 않은 눈과 얽매이지 않은 혀로 분투하고, 노력하고, 배울 것이다. 
다른 이들은 표현의 기술을, 언어를 말 잘 듣는 머슴으로 길들이는 기술을, 단어들을 개별 의미의 합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갖게끔 조합하는 기술을 터득했던 것이다. 그는 언뜻 본 비밀에 깊이 각성했고, 햇살이 내리쬐는 공간과 별이 총총한 허공에 다시 한번 사로잡혔다. 
주위가 매우 조용하다는 생각에 깨어나니, 루스가 흐뭇한 표정으로 눈에 미소를 담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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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단을 내려가서 거리로 나갔다.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집안의 분위기에 숨이 막혔고, 견습공의 수다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예전에도 몇 번씩이나 손을 뻗어 짐의 얼굴을 죽 그릇에 처박아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집을 나와 버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견습공이 떠들어 대면 댈수록 루스는 그로부터 더욱더 멀어지는 듯했다. 그런무리와 어울리면서 어느 세월에 그녀에게 걸맞은 인간이 될 수 있겠나? 그는 그에게 닥친 문제에 간담이 서늘했고, 자신이 노동 계급이라는 악몽에 짓눌렸다. 누나, 누나의 집과 가족, 견습공 짐, 그가 아는 모든 사람, 삶의 모든 인연. 모든 것이 그를 끌어내렸다. 삶의 맛은 좋지 않았다. - P67

루스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의 이런 독특한 관점들이었다. 새로우면서도 그녀의 믿음과 상반되기도 할 뿐 아니라 그녀의 신념을 밀어내거나 수정해 버릴 위험이 있는 진실의 맹아가 그 속에서 느껴졌다.
그녀가 스물네 살이 아니라 열네 살이었다면 그러한 관점에 동화되어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스물네 살이었고, 천성적으로도 보수적인 데다 그런 교육을 받았으며, 나고 자란 삶의 틈새에맞게 굳어져 있었다. 그의 기괴한 비평들이 언급된 순간에는 그녀가 난처한 것이 사실이었으나, 그녀는 그의 별난 개성과 낯선 생활방식을 탓함으로써 그 말들을 곧 잊어버릴 수 있었다.  - P10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비평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그 발언의 힘과 그 발언에 동반되는 그의 번쩍이는 눈, 진심 어린 표정에 전율했으며 마음이 끌렸다. 그녀는 자신의 지평너머에서온이 남자가, 그런 순간에, 그 지평너머로 더 넓고 깊은 인식을 비춰 주고 있다고는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한계는 그녀의 시야가 갖는 한계였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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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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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 주인공인 요한네스도 느낀 -뭔가 몽환적이고 의문스러운 감정의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마침표 없는 문체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짧고 단조로운 문장과 분위기가 글의 내용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내 취향은 아니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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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저기, 안쪽 거리에서 다가오고 있는 건 막내딸 싱네가 아닌가? 그래 그렇지, 싱네가 맞군, 나를 보러오는 길인가본데, 그래 우리 싱네,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착하기도 하지,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서서 바라본다, 싱네가 단호하고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따라 내려온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리 걱정스러운 얼굴이지? 그리고어째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그녀, 싱네는 불과 몇 미터 앞 길가에 서 있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스쳐간다, 왜 그를 보지 못하는 걸까? 막내딸 싱네가, 마주 오면서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저런, 싱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왜 나를 못 알아보지?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 P113

싱네, 싱네, 내가 안 보이는 거냐, 그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깊은 절망에 휩싸인다, 싱네가 그를 보지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그저 그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기만 한다 싱네, 싱네,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리고 싱네는 그의 코앞에서 걸음을 약간 늦춘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싱네의 눈에서 전에 없는 두려움을 본다, 그녀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보지 못하고, 그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오고 다가온다 - P114

싱네, 싱네, 내가 안 보이는 거냐.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리고 싱네는 마주 다가와 그의 몸 한가운데로 쑥 들어가더니 그대로 그를 통과해 지나친다 그리고 그는 싱네의 온기를 느낀다. 하지만 나를 통과해 지나가다니,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 P114

싱네도 생각한다. 아니 이게 뭐지, 뭔가 마주 온 것 같은데, 그녀를항해 마주 오는 그것을 분명히 보았고, 옆으로 비껴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해 다가왔고 그녀는 계속 가는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을 통과하는 순간 너무도 차가웠다. 차갑고 무력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섬뜩했는데,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을 거다. 그랬다간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할 거야, 싱네는 생각한다. 그런데 아버지한테 무슨일이 생긴 걸까? 홀로 임종을 맞이하신 건 아니겠지? 그래서는 안 되는데, 하지만 그녀가 하루종일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도 아버지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진작 아버지에게 들르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었다, - P115

싱네, 싱네, 이제 대답 좀 하려무나, 아버지가 부르잖니, 요한네스는 외친다
그리고 그의 귀에는 길을 따라 내려가는 싱네의 발소리만 들려온다, 이런 무서운 일이 있나, 이렇게 끔찍할 데가, 싱네가 그의 목소리를 듣지도 그를 보지도 못하다니, 너무나 끔찍해,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싱네를 뒤따라 집으로 가자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싱네가 나를 보러 가는 것 같으니까, - P116

그리고 그는 마치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것처럼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린다
이해하겠나? 페테르가 묻는다
잘 모르겠는걸, 요한네스가 말한다
자네도 이제 죽었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페테르를 바라본다, 그런 말을 하다니, 고약하게도, 그가 죽었다니
내가 죽었다고?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도 이제 죽은 거라네 요한네스 그래, 페테르가 말한다 - P128

그리고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였으니 자네가 저세상으로 가도록 도와야지, 그가 말한다
내가 저세상으로 가도록 도와? 요한네스가 묻는다그리고 페테르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집에 누워 있는 자네는 죽은 거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아하, 내가 그러고 있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래, 페테르가 말한다
자 이제 가게나, 요한네스, 그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페테르에게 다가가 그와 함께 길을 내려간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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