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

















7 편의 단편 중 6편을 읽고 마지막 한 편만 남겨 놓았다.

「답신」, 「 파종」, 「 이모에게」의 세 개의 단편에서는 사랑으로 기꺼이 돌봄을 자청한 행위의 소중함을 보여주었다.

언니가 나이어린 여동생을 , 혹은 이모가 조카를, 오빠가 여동생을, 삼촌이 조카를 돌보고 이별을 하고 상실을 극복해 가는 과정들이 잔잔하지만 감동적인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다른 두 단편도 가슴이 얼얼했지만, 그 중 가장 기억하고 싶은 작품은 「답신」이다.



「답신」은 수감 생활을 하게 되면서 만나지 못하게 된 어린 조카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나'의 편지는 어린 조카에게 전해지지 않을 것이지만 편지 속에서는 나와 너가 왜 만날 수 없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나의 언니인 너의 엄마와 나의 관계가 왜 이렇게 파탄에 이르렀는지를 회상하면서 담담한 필치로 그려진다. 

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엄마를 기다리는 언니와 고모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무심함으로 일관하다가 때로는 정서적, 언어적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란 사람. 가수 흉내를 내는 여덟 살 딸에게 "천박하다"고 말하고, 미스 코리아 대회 놀이를 하던 날에는 "고급 창녀"가 되고 싶은 거냐고 말하던 아버지란 사람의 존재는 차라리 재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에 들어간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해선 번 돈으로 나에게 용돈을 주고 파카를 사주었을 때 "나는 내가 추위를 심하게 타는 편이 아니라 단지 그 전에 충분히 따뜻한 옷을 입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알았"(134쪽)고 그런 언니가 학교 선생과 관계를 맺는 것을 목격하고  임신을 한 언니가 그 선생과 결혼을 하지만 불편하고 부당한 학대와 대우를 받으면서도 점점 그 관계에 순응하며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상황을 참지 못하고 형부에게 폭력을 행사한 죄로 재판을 받는 '나'를 앞에 두고도 언니가 '남편은 자신을 때리지 않았다'고, "동생에게는 증오가... 제 남편에 대한 이유모를 증오가 있었"다고 말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다는 거짓 증언을 하고, '나'는 그런 언니를 더는 바라볼 수가 없어 체념을 하게 되고, 이런 나에게 변호인은 그가 언니를 때렸다는 내 말을 믿고 있었으며 "여자 피고인들이 사실이 아닌 불리한 증언을 부정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듯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벌주려는 짓은 더는 하지 말라고" 말한다. 



담담하게 서술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읽으면서 가슴에서 불이 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한 명도 없지 않을까 싶어진다. 수감 생활을 하는 중에 어쩌면 언니가 면회를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언니는 한번도 오지 않았고 그 이후로 오랫동안 언니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런 언니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결국 나는 언니가 어린 나를 돌보고 용돈을 주고 도식락을 싸 주고, 파카를 사서 주고 나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종일 서서 일했던 그 시간들이 사랑이 아니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으로 언니를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바로 '답신'이라고 지은 제목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면회를 오지 않은 언니이지만 수감 생활 중에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당연히 언니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분노의 마음이었든 사랑, 애증의 마음이었든 언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미움, 사랑, 희망의 마음이 모두 드러나는, 그리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언니가 그렇더라도 그 시기를 잘 이겨내고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해도 사실은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 노출이 되어 있지만 이 시간도 나의 언니인 '너'의 엄마와의 시간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나'의 언니와 너의 시간들이 결국에는 보상을, 결국 행복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담은 '답신'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한편으론 보내지 못할 편지이지만 언니가 어린 나를 돌보고 사랑을 주었던 그 시간들처럼 조카를 사랑했던 '나'의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자신에게 이해시킴으로써 그 시간들과 화해의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너와 그런 식으로 대화하곤 했어. 내가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다고 말하면 너는 왜냐고 물어. 그럼 나는 내가 너희 아빠에게 심한 폭력을 저질러서 너희 가족에게 절연당했다고 답하지. 왜? 다시 묻는 너에게 나는 답해. 너희 아빠가 내 언니를 괴롭히는 걸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고, 그에게 경고하고도 싶었다고. 너는 내게 다시 왜냐고 물어. 나는 답하지. 사랑하는 언니를 보호하고 싶어서, 언니가 그렇게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그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너는 왜냐고 물어. 나는 대답해. 때때로 사랑은 사람을 견디지 못하게 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게 하니가. 왜? 너는 말간 얼굴로 내게 다시 묻지. 그럼 나는 답해.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이모는 그러니까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만날 수 없게 된 거네. 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지. 그래, 맞아. 네 말이 맞아. 어느덧 나와 너는 얼굴을 마주보고서 웃고 있어. (177 ~178쪽)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결국 찢어버릴 편지를 쓰는 마음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하는구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는 이 편지를 없애려 해.

   나는 너를 보며 나를, 언니를 바라봤었지. 그리고 사랑했어. 네가 내 언니의 자식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껏 좋아할 수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토록 사랑했던 언니의 아이이기 때문에. 나는 네가 항상 안전하기를, 너에게 맞는 행복을 누리기를 바랐어. 비록 우리가 서로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로 스쳐지나갈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고 함께 할 수 없었던 시간조차도 마음 아프지만 고마워할 수 있었어.

   오늘은 5월의 따뜻하고 맑은 날, 너의 생일이야. 너의 스물세번째 생일을 축하해.   

   너의 이모가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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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속으로 -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진 이름. 평생을 방랑자로 산 작가 김사량의 작품집
김사량 지음, 김석희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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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량 작가의 단편집 <빛 속으로>

한때는 남과 북에서 모두 잊혀진 작가였던 김사량 작가의 <빛 속으로>를 읽었다. 4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마지막의  「노마만리 」는 김사량이 타이항산 지구의 항일근거지로 떠나는 과정을 담은 탈출기로서, 이 책에서는 망명기 도입부만 실려 있다. 그럼에도 흥미진진하여 그 전편이 궁금했다.


단편인 「빛 속으로」는 작가가 일본에서 일본어로 써서 발표였으며 아쿠타가와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 작품의 배경은 동경이며 화자인 '나'는 동경 제대에 다니는 조선인 학생으로 빈민촌의 S협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름은 '남(南)'이지만 아이들은 모두 일본어인 '미나미'라고 부른다. 이렇게 불리지만 굳이 바꾸어 부르게 만들지 못한다. 이는 식민지 조선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둘러싼 내면의 갈등을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자신이 감추고자 하는 식민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입을 통하여 폭로 되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안에 감춰진 수치심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천마」, 「풀이 깊다」의 두 단편도 일본어로 발표하는데 일본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다.

「천마」는 일제에 기생하여 경성에서 제일 가는 작가인 체 하는 '현룡'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일본 관리의 위세를 등에 업고 위세를 떨치지만 제대로 된 글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폐기되어 버림받을 위기에 처한다. 허세로 가득찬 기인 행세를 하고 여류 작가를 유혹하기 위해 감언이설을 일삼는 우스꽝스러운 현룡의 꼬락서니야 말로 일제에 빌붙어 이익을 취한 앞잡이들의 모습이 아닐런지...



「풀이 깊다」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박인식은 농촌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방학을 맞아 농촌 활동을 하러 가는 길에 첩첩산중 오지 마을의 군수인 작은 아버지에게 들렀다가 옛 은사였던 코풀이 선생님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은 아버지가 산민(山民)을  모아 놓고 행하는 이름도 생소한 '색의 장려(색의 장려운동. 조선 총독부가 흰옷이 생산력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백의 착용을 금지했던 정책 - 옮긴이)'에 대해 연설하기 위해 연단에 서고 통역을 하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옛 은사였던 '코풀이 선생님'이다. 코풀이 선생님은 인식의 중학교 은사였는데, 인식과 친구들의 시위로 인하여 학교에서 쫓겨난 것을 인식의 작은아버지가 교화 주사로서 조선어 통역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일본어로 연설을 하는 작은 아버지 옆에서 쭈뼛쭈뼛 통역을 하며 더러운 행카치에 빨개진 코를 누르거나 닦는 모습은 인식에게 견디기 힘든 안쓰러움과 혐오를 남긴다. 아울러 "내일 아침 일용할 양식도 없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작은아버지의 모습도 참을 수 없지만 "척 봐도 여기에 흰옷을 두른 이는 하나도 없"고, "몇 년간 세탁을 하지 않았는지 그들의 낡아 빠진 복장은 마치 죄수복 같은 흙빛"인데 '색의 장려' 정책이라니 너무도 바보스러운 상황에 인식은 오히려 강한 반발심을 느낀다. 특히, '색의 장려운동'의 폭력성이라고 말할 장면은 연설이 끝난 뒤 돌아가는 산민들의 옷에 먹칠을 하는 장면에서 극명해진다. 


   그리고 갑자기 흐흐흐 웃더니 인식의 소매을 끌어당기며 창문 쪽을 가리켰다.

   "저기를 봐, 저기를 보라구.

   창 너머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아까 회당에 모였던 남자와 여자들이 놀랍게도 등짝에 검은 먹으로 O나 △나 X표시를 한 채 한 사람 두 사람 머뭇거리며 지나간다. 아무리 작은 아버지라도 조금은 뒤가 켕기는지 괜스레 한층 더 흐흐거리며 웃어댔다.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저 사람들한테... ."

   인식은 핏기가 싹 가신 창백한 얼굴로 일어나, 분노에 차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격렬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작은 아버지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154 ~ 155쪽)


   차는 낡고 작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사람이 적어서 쉽게 탈 수 있었다. 그는 가솔린 연기와 냄새 속에서 웃옷을 벗고 손수건으로 목덜미의 땀을 닦으며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그의 눈은 얼어붙은 듯 고정되었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장 입구 포플러나무 아래, 군청 직원 두세 명과 함께 먹 그릇과 붓을 든 채 서 있는 비실비실 키가 큰 코풀이 선생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뒤에는 숙부와 내무 주임이 부채질을 해 가며 벙글벙글 유쾌한 듯 지휘를 하고 있었다. 젊은 장정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장으로 들어가는 사내들과 아낙네들을 붙잡아 오면, 코풀이 선생은 그 꼬지지한 옷에 먹물로 표시를 했다. 다들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하지만 코풀이 선생은 얼굴에 맺힌 땀과 콧물을 열심히 닦을 뿐이었고, 등에 먹을 묻힌 사람들 역시 땀을 손으로 훔치면서 사라져갈 뿐이었다. 한 아낙이 손을 내저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군수를 위시한 남자들은 점점 더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인식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가슴의 분노를 억누를 길 없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그는 결국 아이처럼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171 ~ 172쪽)


먹물을 뿌리거나 낙서를 하는 행위는 결코 허구의 사실이거나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상복을 입은 여인에게 먹물을 뿌리거나 여자들의 치마를 들치고 속바지에 먹물을 뿌리는 일조차 있었다고 하니 더욱 충격적이다. 이를 행하는 조선인들의 행동을 대체 어찌 해석해야할지 도무지 말이 안나온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는 인식이 농촌 계몽 운동을 떠난 산촌 마을에서 발견한 사당에서 지금 우리가 '백백교'라고 알고 있는 사이비 종교 집단을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백교는 실제로 1920~40년대 사이에 유행했던 종교로서 백색 옷을 입어야만 구원에 이른다고 믿게 만들고 그러면서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 등의 희생자를 만들어낸 집단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색의 장려 정책에 반발하여 흰옷을 입는 것이 민족적 구원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선전했던 백백교의 교리는 색의 장려 정책 이상의 폭력이었다."(옭긴이의 말 중에서)  

인식이 그 집단의 희생자가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코풀이 선생은 그렇지 못한 듯하여 그 인물의 됨됨이와 무관하게 비극적이 아닐 수 없다. 코풀이 선생은 인식과 만난 해 가을, 산으로 '색의 장려'차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니 말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경성에서 떨어진 촌구석에 조그만 의원 간판을 내걸고 청년 의사로 일하고 있던 인식은, 경성에서 배달된 잡지에서 지금까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무도한 백백교의 공판기록을 읽으며 오싹한 한기를 느낀다. 마교의 간부들이 가여운 백성이나 산민들을 속이고, 피땀 흘려 모은 재산과 양식을 빠앗았을 뿐만 아니라 그 처와 딸들까지 겁탈하고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314명이나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마교의 살인 현장 중 하나로 거론된 곳이 그가 일찍이 방문했던 폐사 부근 산골짜기라는 것을 발견하고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라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코풀이 선생이 생각나서 놀란 듯 다시 한번 공판기록을 끌어당겨 읽었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법이다. 어쩌면 남자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닌지, 문득 생각했다. 그렇게 억측을 하다 보니 영락없이 또 그럴 것만 같았다. 인식은 다시 잡지를 덮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흰옷의 종교인 만큼 '색의 장려' 정책과 대립하지 않았을까? 가여운 코풀이 선생은 그 깊은 산 속 폐사로 출장을 나가 어떻게든 해서 화전민들을 모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혼자 흥분하여 그 이상한 일본어로 떠들며 그걸 또 자랑스럽게 스스로 통역하다가 나중에 그 두사람에게 들켜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닐까?

   인식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끝없는 슬픔에 젖었다. (186 ~187쪽)  


한쪽에서는 색깔을 장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와 반대로 백색을 장려하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정책과 사이비 종교 사이에서 색의 권력에 희생 당하는 식민지 조선의 구조가 코풀이 선생과 같은 희생자를 만들고 백백교라는 사이비 집단이 위세를 떨치도록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식민지 종주국의 언어로 그들의 정책을 비판했던 김사량의 작품이 잊히지 않고 널리 읽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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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0-0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수 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이 책에 실린 단편 모두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실린 ‘노마만리‘는 후속 이야기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더라구요. 전 그래도 표제작이 가장 좋았었습니다 ^^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은하수 2023-10-03 16:09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단편들이 모두 다 좋았어요^^
정말 ‘노마만리‘는 아쉽게도 너무 짧게 끝나버려서 뒷부분이 자꾸 궁금해지지 뭐예요.
약간의 유머도 가미가 되고 무언지 모를 통쾌함,시원함이 느껴졌죠~~

꼬마요정 2023-11-12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았어요^^
시대의 아픔이 정말 와닿더라구요. 아고타 크리스토퍼를 읽을 때 살짝만 공감했다면, 이 책은 정말 공감했어요ㅠㅠ
저도 <노마만리> 뒷 이야기 궁금하네요^^

은하수 2023-11-13 21:52   좋아요 1 | URL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대어를 낚은 것 같았죠!
하지만 다른 작품 만나기 쉽지 않을듯하여 아쉽네요.
저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은 ... 책장이 안넘어가요
ㅠㅠ
 

여성주의 시각으로 쓰인 글이 맞다!


<감정을 젠더화하기>라는 에세이에서 우테 프레베르트Ute Frevert는 "고대로부터 분노는 강자의 자질로 여겨졌다"고 쓴다. 나는 현재 미합중국의 대법관이 된 브렛 캐버너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불미의 사태에 분노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어떻게 내가, ‘내‘가, 성유바른 법의 총아가, 저 여자 교수 크리스틴 블레이지 포드에게서 성폭행으로 기소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분노는 강자의 특권, 미국에서는 백인 남자의 특권이다. 나머지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신중하게 가두거나 꿀꺽 삼켜버려야 한다. 여자는 부드럽고 차분하고 숙녀다운 목소리로 증언하며 겸손하게 앉아서 자신을 심문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돕겠다는‘ 의향을 보여야만 한다. - P27

"나의 분노는 내게 고통이라는 의미였으나, 또한 생존이라는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나는 적어도 선명성으로 가는 길에 그만큼 강력한 것이 또 있는지 확실히 확인하고 나서, 그때 비로소 분노를 포기할 것입니다." 오드리 로드는 한 연설에서 말했다. - P27

로드의 분노는 그녀의 천재성에 에너지를 충전했고 그 에세이의 산문에 전기를 통하게 했다. 로드는 그 분노를 누구에게 왜 겨냥해야 할지 잘 알았다. 그 속에는 불편하고 추한 진실에 눈을 감은 백인 페미니스트들도 있었다. 
내 할머니는 그런 탁월한 선명성, 그런 지적 통찰력, 그런 철학적 관통으로 자신의 처지를 바라볼 수는 없었다. 결혼과 그에 수반된 가난과 수치라는 당혹스러운 현실에 종속된 백인 여성이었다. 할머니에게는 분노가 있었다. 분노가 할머니의 생존을 도왔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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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1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표제작이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은 장편이었던 <밝은 밤>도 단편들도 주인공 여성들의 삶을 되돌아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은 수록된 두개의 단편을 읽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몫‘이다. 두 단편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에세이(‘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자신들이 쓴 글(‘몫‘)을 읽는 장면이 등장한다. 읽기와 쓰기를 매개로 사회적 맥락에 다가서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변화된 시각과
행동이 짧은 글에서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삶의 한순간을 포착해내어 절묘하게 표현해 낸 문장들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표제작이기도 한 첫 수록작품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오래도록, 강렬하게 기억하게 될 것 같은 문장이 있었는데...
‘더 가보고 싶었다‘
이는 화자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다.

* * *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그 수업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시멘트에 밴 습기가 오래도록 머물던 지하 강의실의 서늘한 냄새, 천원짜리 무선 스프링 노트 위에 까만 플러스펜으로 글자를 쓸 때의 느낌,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작은 강의실에 퍼져나가던 울림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고른 에세이도 좋았고, 혼자 읽을 때는 별 뜻 없이 지나갔던 문장들을 그녀가 그녀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머릿 속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도 좋았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1쪽)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대해 쓴 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가깝게 느껴졌다고도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 주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43~44쪽)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없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몫‘ 52쪽)

당신은 아직도 그날 밤을 기억한다. 희영이 써온 긴글을 처음 읽고 받았던 충격을. 담요를 뒤집어 쓰고 앉아 차갑게 언 발의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글을 읽던, 스물에서 스물하나가 되어 가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한다.
희영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편집실은 고요했다. 낭독이 끝났는데도 편집실을 채운 팽팽한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 모두 알고 있었으리라고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희영에게는 타고난 관찰력과 자기 생각을 끝까지 끌어가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지력이 있었다. (59쪽)

희영이 정윤의 말을 끊었다.
아니요. 남편을 죽여야만 아내가 살 수 있는 사회구조의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 부분이 빠져서는 안되고요. 왜 여자들이 경찰을 불러도, 이혼을 하고 싶어도 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제가 다음 글에서 분석했으니 읽어보세요.
희영은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써온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명확한 주장과 그를 받쳐주는 논리적인 근거로 짜인 단단한 글이었다. 같이 공부하며 준비했지만, 당신은 당신 역시 오래도록 남자들의 시선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희영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67쪽)


자주 여러번 읽고 싶은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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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접하는 김사량의 <빛 속으로>에는 4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빛 속으로‘, 그리고 ‘천마‘,‘풀이 깊다‘,‘노마만리‘ 등이다.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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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구름에 짓눌린 어느 아침, 경성의 유명한 유곽 신마치(新町, 현재의 묵동, 쌍림동 일대 - 옮긴이) 뒷골목 어느 사창가에서 지저분한 골목으로 내던져지듯 밀려 나온 사람은 볼품없는 풍채의 소설가 현룡이었다. 그는 정말 난처하다는 듯 한동안 대문 앞에 서서 도대체 어디로 나가야 혼마치(本町. 현재의 충무로 일대 - 옮긴이)로 빠져나가는 길인가를 고민하더니, 갑자기 성큼성큼 앞쪽 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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