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쟁과 평화

그렇다면 도대체 원폭은 왜 떨어뜨린 것일까? 미국 학자 가어 앨퍼로위츠의 연구는 정치적 동기를 지적했다. 러시아가 태평양전쟁 참전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일본을 패배시키는 데 있어 그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우리의 힘을 보여 주고자 했다는것이다. - P181

르와양에서의 내 경험은 또 다른 이유들을 암시해 주었다.
꾸준히 증강되어 에너지로 충만한 군사 기구의 강력한 추진력, 엄청난 양의 시간과 돈과 인재가 소비된 프로젝트를 ‘허비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새로운 무기를 보여 주려는 욕망,
전쟁 과정에서 확대된 인명경시, 고결한 대의에 대한 총체적인 신념을 갖고 전쟁에 착수한 이상 아무리 끔찍한 수단이라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던 태도 등등. - P181

히로시마와 르와양은 한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것-파시즘에 맞선 전쟁의 절대적 도덕성을 점차 다시생각해 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1960년대 언제쯤인가 조지프 헬러의 『캐치22』를 읽으면서, 히틀러에 맞서 싸우는 좋은 편good guys‘의 독선적인 교만에 숭숭 구멍을 내는 그의 날카로운 블랙유머에 푹 빠진 적이 있다. 헬러가 만들어 낸 광인이지만 현명한 반反영웅, 폭격수 요새리언은 ‘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료 비행사에게 "어느 편이든 너를 죽이려고 하는 게바로 적"이라고 경고한다. 이때쯤이면 나는 우리가 ‘우리 편‘
사람들-르와양의 프랑스인들만이 아니라 플제니의 체코인.
한커우漢口와 타이완의 중국인까지도-을 거듭해서 폭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70년대 초반 『전후의 미국PostuarAmerica」이란 책을 쓰면서 나는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장의 제목을 ‘최고의 전쟁‘이라고 한껏 비꼬아 붙였다.
- P183

전쟁은 폭력에 맞서, 잔인함에 맞서 선한 대의처럼 보이는것을 위해 수행될 수 있지만, 전쟁 자체는 폭력과 잔인함을 증폭시킬 뿐이다.
나는 전쟁에서 열성적인 폭격수였고 광신에 사로잡혀 아무의심도 없이 잔학한 행동에 몸을 던졌다. 전쟁이 끝난 후 나는그 ‘대의‘가 아무리 고결하다손 치더라도, 전쟁에 항상 뒤따르게 마련인 도덕 감각과 합리적 사고의 왜곡을 감안한다면, 전쟁이 과연 하나의 문제라도 해결하는가 하는 질문을 서서히 던지게 되었다. - P188

전쟁이 종지부를 찍던 당시의 세계에 관해 심사숙고해 본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사라졌고 일본은 패배했지만, 군국주의나 인종주의, 독재, 병적인 민족주의는 없어졌던가? 이제 주요 전승국들 - 미국과 소련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무색하게 만들게 될 전쟁을 획책하는 핵무기를 구축하고 있지 않았던가? - P188

전쟁은 그것이 아무리 영속적이더라도, 인류의 삶에서 그것이 얼마나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더라도,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전쟁은 어떤 본능적인 인간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그러기 위해 그들은 보통은 전쟁을 꺼리는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몰려고 엄청난노력 - 속임수, 선전, 강압을 해야만 한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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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궁금해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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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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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될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작가. 처음 읽었던 ‘쇼코의 미소‘보다 더 기억에 남을 거 같다. 한 편, 한 편 다 마음이 쓰려올 만큼... 그리고 등장인물들 서로가 겪는 상실과 관계의 어긋남, 비켜감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다음엔 어떤 작품을 들고 올지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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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3
마지막 단편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을 읽었다.
마지막까지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미루고 읽지 않았던 시간이 미안해지는 ...^^

어린 시절, 기남의 가장 달콤한 몽상은 고통 없이 단번에 죽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생각만큼 기남에게 위안을 주는건 없었다. 그런 기남의 세계에 다섯 살짜리 진경이 들어왔고, 삼년 후 우경이 태어났다. 아이들을 사랑하면 할수록 죽음이라는 관념은 위안이 아니라 두려움이 됐다. 하지만 이제 기남은 두렵지 않았다. 아이들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가눌 수 없이 쓸쓸해질 때면 자신의 죽음이 아이들에게는 자유를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P300

마이클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기남을 바라봤다.
"부끄러워요?"
기남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한동안 마이클을 가만히 바라보다 기남이 입을 열었다.
"...... 잘못 들었어. 다시 말해줘."
"부끄럽냐고 물어봤어요. 할머니, 부끄러워요?"
기남은 아무 말 없이 마이클을 품에 안았다. 아이에게서 시큼한 땀냄새가 났다.
"・・・・・・응. 그런가봐."
그렇게 대답하고 기남은 불현듯 이해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 마이클의 말이 맞았다. 기남은 부끄러웠다. 우경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그애가 오래전 자신을 멀리 떠난 일이, 진경의 알코올중독이 두 아이가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른 사실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맞서지 못하고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기남은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기남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 P318

"할머니."
기남의 품에서 나온 마이클이 기남의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부끄러워도 돼요. 부끄러운 건 귀여워요. 에밀리가 그랬어요."
"에밀리?"
"내 여자친구요."
마이클이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기남은 조심스럽게 마이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숱이 많은 곱슬머리가 우경의 어린 시절과 똑같았다.
"마이클은 다정하구나.‘
"맞아요. 엄마가 그랬어요. 마이클은 너무 다정해. 한국 할머니처럼."
"정말?"
"근데 너무 다정하면 안 된대요."
마이클이 잠시 기남을 보다 말을 이었다.
"너무 다정한 건 나쁜 거래요." - P319

마이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기남은 그애가 한 계절만 지나도 오늘의 일을 잊을 거란 걸 알았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그애에게 그저 멀고 낯선 혈육이 되리라는 것도. 하지만 그 사실이 자신을 더는 슬프게 하지 않는다고 기남은 생각했다.
"할머니."
자신을 부르는 마이클을 보며 기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고 연약한 순간이 아직은 자신을 떠나지 않았음을 바라보면서.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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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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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왔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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