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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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한번도 여기 대한민국을 벗어나 이민자의 삶을 꿈꾸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민자들, 혹은 망명자들의 삶이라는 것이 어떨지 모두 다 안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내가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던 시간들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애초에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쩔 수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 걸까. 생존을 위해서, 혹은 좀 더 나은 삶의 조건들을 위해서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의 이런 바람은 그저 한낱 바람으로만 남을 것이고, 그것이 긍적적인 선택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몹시 괴로운 감정적 고통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고향을 두고 떠나간 그곳은 낯설고 힘겹기 그지 없으리라. 그곳에서의 삶이 힘겨울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지고 돌아갈 수 없는 이민자의 삶은 상실에 따른 고통, 방황, 향수병에 시달리고 오래도록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기억을 상실한 채 현실과 유리된 삶을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제발트의 <이민자들>에는 다양한 이유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의 삶의 여정들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화자(작가 자신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이자 이 글을 기록한 작가는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기록하면서 그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어떤 식으로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등장하는 헨리 쎌윈 박사, 파울 베라이터,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막스 페르버 이 사람들을 추적한 기록들이 픽션인지 팩션인지 모호하고 의심스럽게 잘 버무려져 있어 읽는 내내 사실인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거기에 딱 맞는 사진 자료까지 제시가 되어 있으니 사실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이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암브로스 아델바르트가 이민자로서 겪는 평생의 서사가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해 노동 이민으로 우리에게도 많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만큼이나, 혹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민자로서의 삶을 선택해야했던 그의 운명은 결코 낯선 것이 될 수 없다. 



점차 쇠락해가는 그의 집의 커다란 정원만큼이나 헨리 쎌윈 박사의 삶도 그러하다. 어릴 적에 리투아니아의 흐로드나 근처 마을에 살다가 일곱 살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그곳을 떠나 이민길에 올라 미국의 뉴욕으로 가는 배를 탔지만 그들 가족이 도착한 곳은 영국의 런던이었다. 오랜 시간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했고 헤르슈 쎄베린에서 헨리 쎌윈으로 이름을 바꾸고 의사가 되었으며 전쟁에 참전하고, 젊고 부유한 아내를 만나 결혼하면서 화려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아내가 그의 유대인 혈통을 알게 되면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인생도 점차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화려하고 풍족했던 생활은 끝이 나고 부부의 사이도 틀어진다. 결국 그는 어디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는 채로 몇 년 전부터 심한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나치의 등장으로 평화로운 삶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에 비하지는 못한다. 파울 베라이터와 막스 페르버의 삶은 나치의 발흥으로 인하여 고향에서 내쳐진 것이고 스스로 원하자 않았음에도 이민자로서의 삶이 주어진다. 그럼에도 파울 베라이터는 고향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 고향에서 내쳐지는데 자꾸 돌아가려고 하는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끝내 알 수 없어서 더 애잔하고 처절하다.

파울은 4분의 1만 유대인이지만 그의 삶은 철저하게 독일인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운명을 더욱 파탄으로 몰고 갔을지 모른다.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교사의 길은 그가 종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지할 수 없었고, 사랑했던 여인 헬렌은 어머니와 함께 강제 수용소로 이송 되었다. 반半유대인이었던 아버지는 유대인에 대한 공격이 처참하게 거세지던 때에 두려움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었고, 독일인인 어머니는 남은 재산을 빼앗기고 우울증을 앓다가 몇 주 만에 죽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독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자신 스스로 독일인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맹목적인 분노"와 "도착적인 기분" 때문이었는지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4분의 3만이 아리아인이었던 그에게 징집 영장이 발부되었고 군대에서 6 년간 복무한다. 전쟁이 끝난 후 그가 자신을 몰아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교편을 잡은 것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고, 뼛 속 깊이 그곳을 혐오했지만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사실들을 조사하여 알게 된 파울 베라이터의 삶은 오히려 고향에서 더 배척당하고 무시당하며 심지어 목숨을 위협 당하기도 한다. 사랑하면서 혐오하고 배척 당하는데 떠나지 못하는 그는 대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결국 이야기의 결말처럼 그곳의 철도에 머리를 밀어넣고 스스로의 목숨을 끝내는 것 뿐이었을까.

그럼에도 "친애하는 동료 시민에 대한 애도"라는 제목의 조사의 내용은 성의도 없고 책임감도 없었다.


  "파괴의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침묵하고, 모든 것을 감추고, 때로는 실제로 잊어버리기도 했는지요. 그런 것은 그들이 그전에 보여주었던 비열한 태도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것이에요. 커피가게 주인 쇠페를레가 파울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보세요. ... ... 쇠페를레는 테클라에게 반유대인과 결혼한 여자가 자신의 상점에 드나들면 다른 손님들이 싫어할 수 있으니, 아주 정중하게 부탁하건대 앞으로는 자신의 가게에 매일 드나드는 일은 삼갔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베라이터 가족이 겪어야 했던 그런 비열하고 치졸한 일들을 당신이 몰랐다는 것이 내겐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65~66쪽)



파울 베라이터와 반대로 독일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영원한 이민자의 삶을 살았던 막스 페르버도 죽는 날까지 기억에서 지우지도 다시 모두 기억해내지도 못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나치에 의해 부모님이 강제 수용소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혼자만이 영국으로 보내져 삼촌의 도움으로 학교를 졸업하지만 그는 삼촌이 있는 미국으로도 자신의 고향으로도 돌아가지 않고 그와 닮은, 쇠락한 공업도시 맨체스터에서 영원한 이민자로서의 삶을 택한다. 독일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독일 땅을 단 한번도 밟지 않았지만 잊었다고 생각했던 고향에 대한 기억은 억압할 수록 자꾸 튀어나와 그의 삶을 침잠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는 그에게 단 하나 남은 어머니의 아름다운 시절의 동화와 같은 기록을 작가에게 넘긴 것이다. "결국에는 가슴을 옥죄어 지극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동화"(244쪽)같은 고통을 끝내기 위해. 


막스 페르버의 과거를 추적하던 작가는 이렇게 썼다. 

  "... 나를 에워싸고 있는 독일인들의 정신적 빈곤과 기억상실, 그리고 과거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린 그들의 교묘함으로 인해 내 머리와 신경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또렷하게 의식할 수 있었다."(287쪽)고. 



제발트는 독일인들이 행하고 있는 추모와 참회, 반성의 행동들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아직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에겐 모범적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내 머릿 속엔 빌리 그란트 수상의 무릎꿇고 머리 숙인 그 사진이 또렷이 남아있고, 아직도 나치 협력자들을 법정에 세우고 있는 나라인데... 아니란다! 과거의 흔적을 교묘히 지우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조용히(일지 알 수 없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를 상상하면 무서워진다. 유대인 학살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사람들도, 일본에 협력했던 사람들도 그저 그 익명성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면 어떨 땐 끔찍하다. 그 익명성이... 그렇기 때문에 막스 페르버와 달리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독일 땅에 살았던 파울 베라이터는 자신의 생을 고향인 S시에서 자살로 마무리함으로써 그 비열한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일본의 현재와 비교해보면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제 <토성의 고리>를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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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10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트의 이민자들이군요! 저고 있는데, 이 양반 글이 좀 지루해서 이 작품을 읽엉야 하는지 망셜이다가 지금 커플들 행인들 읽고 있는데..그 다음 타자가 이민자들입니다. 계속 고민되고 이 리뷰를 읽으니 더 고민이 됩니다. 보토슈트라우스의 커플들은 만족하면서 읽고 있지만....제발트는...하~ 이거 이거 계속 미룰거 같아요..^^;;

은하수 2023-12-09 11:13   좋아요 0 | URL
미룰거 같은 그 마음 이해됩니다~~^^
저도 <토성의 고리> 먼저 시작했다 실패하고 이사하면서 알라딘 중고로 팔았는데... 어제 다락방 서재 올라갔다 혹시나 싶어 열심히 찾았잖아요..ㅠㅠ 없더라고요..ㅠ
지금은 후회해요. 이제 잘 읽을거 같은데..힝...하면서요
지루한감이 있긴해요 그래서 별네개... 근데 생각보다 또 재밌었단 말도 맞아요..ㅎ~~~
 

1장 또 하나의 ‘이름 없는 문제‘ 중에서...

오늘날에는 어느 집을 봐도 일과 가정, 직업 세계와 가정 생활사이에 균형을 잡느라 부부들이 이만저만 고전 중이 아니다. 이전 어느 때보다 더 그렇다. 우리 사회는 돌봄영역caregiving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갖는 중요성과 가치를 정신이 번쩍 들게 깨닫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돌봄의 부담이 개개인에게 일으키는 전체 비용도더 온전히 깨닫기 시작했다. 돌봄의 책임은 한부모 가정의 엄마나 아빠에게 특히 막대한 부담이 될 뿐 아니라, 다른 가정에도 소득의 상실, 커리어의 정체, 공평한 부부 관계를 희생해야만 하는 선택(이성커플, 동성 커플 모두 마찬가지이다)과 같은 형태로 비용을 일으킨다. 코로나 전에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너무나 극명하게체감되면서 이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의 긴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 P9

1963년에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은 대학 나온 여성들이 ‘전업맘‘이 되어 느끼는 좌절을 묘사하면서 이들이 ‘이름 없는 문제‘를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6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는 대학 나온 여성 대부분이 직장에 다니지만, 똑같이 대학 나온 남자들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소득과 승진을 보면서 여전히 옆으로 밀쳐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여성들도 이름 없는 문제를 겪고 있다. - P10

우리는 남녀의 경제적 평등이 전례 없이 달성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느 면에서 우리 시대는 여전히 암흑시대다. 오늘날 노동과 돌봄의 구조는 남성만 커리어와 가정을 둘 다 가질 수 있었던 과거의유물이다. 우리의 경제 전체가 낡은 작동 양식 때문에 덫에 묶여 있고 의무를 분담하는 고릿적의 방식 때문에 훼손되고 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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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성과 지성: 아이엠 낫 유어 니그로 중에서 ...

아이엠 낫 유어 니그로 ˝나는 흑인일 뿐이다.˝
미국 문학, 민권운동의 한 축으로 평가받는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을 기억하자.
˝마주한 모든 것을 바꿀 순 없지만, 마주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각본집도 읽어봐야겠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라는 제목은 맞는 주장이지만 코언의 노래와 달리 불편한 언설이다. 다소 자기 비하의 느낌도 있다. 한국의 매체들은 이 문장을 "나는 당신들의 검둥이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로 소개했는데(물론 이 대사가 나오기는 한다), 이 작품의 의미를 최악으로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코언의 노래(I‘m your man)와 이 작품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2인칭 소유격 대명사 ‘your‘는 의미심장하다.‘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에서 ‘your‘는 
나(흑인)는 당신(백인)이라는 주체(one)가 규정한타자(the others)가 아니라는 뜻이다. 

흑인은 흑인이지 백인과의 관계에 의해 정의될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 아니다"가 아니라 "나는 흑인일 뿐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인 사회의 신문(訊問)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누가 인간이고 그것은 누가 결정하는가를 되묻는 일이다.

인간(백인,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의 기준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나도 인간이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누가 그 사회의 성원권을 갖춘 인간인가. 기준은사회마다 다르고, 매일매일 다르다. "태아는 인간이다/아니다" "짐승도 그런 짓은 안 할 것"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냐"... ... 이처럼 인간의 개념은 보편적이지 않을뿐더러, 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범주를 누가 정하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이다. 그것은 투쟁으로 정해지는 대단히 유동적인 개념이다.

인간과 인권의 개념은 선재하거나 당위적인 것이 아니라 맥락적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사유를 요구하는 개념이다. ‘인권‘은 만사형통의 언어가 아니라 그 반대다. 상황이 발생한 맥락을 논의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백인도 인간, 흑인도 인간"은 규범이지 현실이 아니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흑인의 인간 선언이 아니다. 흑인의 삶을 문제화(‘차별 고발‘)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백인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질문하는 텍스트로 읽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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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세번째는 중편정도의 분량으로,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할아버지는 미국 이민자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품위를 잃지 않았던 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마지막 문장을 남겨본다.

비망록에 적힌 할아버지의 마지막 기록은 성 스테파노의날(12월 26일)에 쓴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코즈모는 심한 열병을 앓았지만 차츰 회복되는 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그 전날 오후 늦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며,
호텔 창가에 서서 찬찬히 내려앉는 어스름 속에 하얗게 떠있는 도시를 보자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고도 적어놓았다. - P185

그는 나중에 이런 글귀를 추가했다.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간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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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분명 독일소설 장르로 분류되어 있건만 소설 같지 않고 실제 일어난 일을 쓴 에세이 같다.
제발트는 여기의 사진들을 대체 어떻게 구했을까? 사진을 구하고 거기에 맞게 스토리를 구현한걸까?
참으로 알쏭달쏭 알 수 없게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소설?이다!


내 앞에는 아델바르트 할아버지의 비망록이 놓여 있다. 내가 겨울에 씨더 글렌 웨스트를 방문했을 때 피니 이모가 준것이다. 비망록의 표지는 붉은 와인색의 부드러운 가죽으로되어 있으며, 대략 가로 8센티미터, 세로 12센티미터의 크기다. 1913년용으로 제작된 이비망록은 8월20일에 밀라노에서 시작되고 있으므로, 아델바르트 할아버지가 이 비망록을산 곳도 아마 밀라노였을 것이다.  - P161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Palace H. 3 p.m. Signora M. Abends Teatro S. Martino, CorsoV. Em. I tre Emisferi.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할아버지의 메모들은 여러 언어들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는데다 글씨가 아주작아서 해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의 팔십년 전 기록의 뜻이서서히 저절로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끝내 해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뒤로 갈수록 기록이 상세해졌는데, 아델바르트할아버지와 코즈모가 8월 말에 베네찌아를 떠나 범선을 타고그리스와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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