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부터 맘에 드네!

들어가며: 신비롭지 않은 모두를 위하여
수억 마리 정자는 난자 하나를 목표로 달려간다. 정자는 도중에 산성 물질에 죽거나  대식 세포에 잡아먹히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한다. 고난의 레이스 끝에 단 하나의 정자만이 난자의 투명대를 뚫고 들어가 승자가 된다. 생명탄생은 이렇게 수억분의 일의 확률로 정자가 난자와 만났을 때 시작되는 경이로운 과정이다.

지금까지 난자와 정자의 수정 과정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묘사되어 왔다. 정자는 자체적 추진력을 가진 능동적 존재로, 수정 과정은 이 능동적인 정자가 수동적인 난자를 포획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마치 적극적인 남성이 여성을 쟁취한다는 이야기 
같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다.

거대한 정자 무리가 물결치듯 움직이며 어디론가 흘러간다. 때로는 벽에 부딪히고 때로는 끈끈한 점액 속에 허우적대면서. 무리의 일부가 난자 가까이다가가 서성대면 난자는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그중 하나를 끌어당긴다. 생명 탄생은 이렇게 까다로운 난자가 정자를 선택하며 시작되는 경이로운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과학의 이야기다. 2020년 6월 초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난자는 정자들이 경쟁해 획득하는 목표물이 아니다. 난자는 화학 신호를 보내 스스로 선택한 정자를 끌어들인다. 정자가 난자의 여포액에 포함된 화학 물질에 반응해 이동하는 수동적 존재라면 난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정에 적합한 정자를 골라내는 능동적 존재다.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경쟁적인 정자와 조신한 난자‘ 이야기는 이미 1970년대부터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퇴출되기 시작했다. 실험실 밖 세상은 인간의 두 생식 세포에게 여전히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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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섹슈얼리티 정치학˝, ˝3장 젠더들˝을 읽었다.
한번 펼치니 쭈욱 계속 읽게 된다. 일단, 재밌다.
3장의 ‘주필리아, 동물성애의 경우‘ 부분은 내가 읽지는 않았지만 <성스러운 동물성애자>와 주필리아, 그리고 어제 읽었던 정희진 선생님 다른 책 <영화가 내몸을 지나간 후>에서도 인상깊게 읽었던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를 연관지어 설명해 놓았는데, 읽고 나니 영화가 더 궁금해져서 얼른 보고 싶다.
4장과 부록은 ‘성매매‘와 관련있는 부분이어서
같이 읽으면 될 거 같아 잠시 미룬다. 이 부분도 근래에 성매매 관련으로 읽은 책들이 있어 도움이 될 거 같다. 매우 궁금하지만 잠시 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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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정희진의 글쓰기 4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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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야 할 영화와 읽어야 할 책을 잔뜩 남겨준 아주 유익한 책. 숙제를 잔뜩 받았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너무 자극적이다!!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정희진 선생님, 계속 자극적으로 남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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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타자의 목소리, 나의 목소리
-기차 밖의 타자는 희망인가? : 설국열차, 부산행,
스테이션 에이전트

이제까지 예술작품의 감상은 작가의 의도대로 혹은 감독의 의도대로 받아들인 편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였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의도대로 그냥 받아들인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작가님 글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는다.
내 안의 타자성을 존중해야 하다고, 그리고 그들이 나의 타자성을 규정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닫기를...
그러니 작가님은 오래오래 부끄럼없이 글 써주시기를...
응원하는 독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감독들은 왜 다들, 그토록 주체인가
근대성이라는 기차는 처음부터 불균등 발전을 의미했다. 이제 불균등 발전은 극단의 양극화를 넘어 지구 자체를 망하게 하고 있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고수하면 모두가 망한다는 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쓰레기 식민주의‘,  가만히 앉아서 물과 식량을 잃는 사람들, 
매일매일의 내전, 피 묻은 다이아몬드,
녹아버리는 거대한 빙하, 죽은 고래 몸속에든 8킬로그램의 비닐, 바다 위에서 사라지지 않는 스티로폼 부표, 고용 없는 성장... .... 
이제 기차는 계속 달릴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은 이제까지 근대의 주체가 아니었던 여자, 아이, 장애인, 자연
을 기차 밖에 살게 하거나 생존자로 만든다. 
그렇다면 이 타자들은 진정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여성과 아이, 동물은 오염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도 순수하지 않다. 이들이 순수하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내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감독 자신이,
예술가 자신이 스스로 타자가 될 생각은 왜하지 않는가. 그들은 왜 항상 주체이고, 주체를 구원할 수 있는 대상조차 지정할 수 있는조물주인가. 
여성이고 아이들이라고 해서 ‘착하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새로운 주체는 기차 밖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주체는 스스로 ‘꺼지면‘ 안 되는가. 
자리에서 내려오라. 
인류와 지구를 해방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방하라. 

팬데믹 시대의 구원은 우리 모두 ‘섬싱(something)‘이 되고자 했던 의지를 버리고,자연의 일부인
 ‘낫싱(nothing)‘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갈팡질팡하는 삶의 한가운데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의 의지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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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네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이곳에는 훨씬 많은 것들이 있었단다. 투명한 것, 향기로운 것, 하늘하늘한 것, 반들반들한 것・・・・・・전부 네가 상상도 못할 만큼 멋진 것들이었지."
어릴 적에 어머니는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 P5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섬 사람들은 그렇게 멋진 것들을 영원히 마음속에 간직할 수 없어. 섬에 사는 한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 조금 있으면 너도 처음으로 뭔가를 잃을 때가 올 거야."
"그거 무서운 일이야?"
걱정이 된 나는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 P5

"아니, 괜찮아.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으니까.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면 어느새 다 끝나 있거든. 가만히 눈을 감고 귀기울여 아침 공기의 흐름을 느껴보렴. 어딘가가 어제와 다를 거야. 그러면 자기가 뭘 잃었는지, 섬에서 뭐가 사라졌는지 알 수 있단다." - P6

"소멸이 일어나면 한동안 섬이 어수선해져. 다들 길거리 여기저기 모여서 사라진 것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해. 그리워하고, 서글퍼하고, 위로를 나누지. 만약 그것이 형체를 지닌 물건이라면 모두 들고 나와서 불태우거나 땅에 묻거나 강에 흘려보낸단다. 하지만 그런 동요도 이삼일이면 가라앉지. 사람들은 금방 원래의 일상을 되찾아.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거야."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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