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 더 씨
케네스 로너건 감독, 미셸 윌리엄스 외 출연 / 콘텐츠게이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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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한 장면의 인생
˝I‘m just sorry, I love you.˝
-정희진의 공부, 6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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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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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다양한 이슈들을 다시 짚고 넘어간다. 그런 생각으로 읽으면서 성장한 나를 발견한다. 정체기의 한국 여성주의 운동이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나의 고민이 의미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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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성적 자기결정권을 넘어서
성매매가 노동인가 폭력인가에 대하여, 성폭력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논의, 그리고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담론이 담겨있다.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라는 인식이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부록으로 실린 ˝죽어야 사는 여성들의 인권:한국 기지촌 여성 운동사1986~1998˝은 ... 이보다 더 자세히 알긴 어렵다 느낄 정도! 같은 사건(윤금이, 송종순 사건)을 여러 책에서 반복적으로 대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객관성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했기 때문에 이제는 여성의 경험이 객관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객관성이 사회적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마치 여성주의가 가부장제 세계관을 대체할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성주의는 기존남성의 입장에서 구성된 객관성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객관성을 역사화하고 정치화함으로써 부분화하고 상대화하자는 것이다. 객관성은 권력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며, 권력관계에 따라 변화하고 유동하고 이동하는 정치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 P259

피해자 중심주의는 모든 피해 여성이 동일한 경험을 하며 피해자의 경험이 그 자체로 객관적인 것 같은 오해를 준다. - P259

사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 중심주의는 실현 불가능한 기획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이 대립할 때, 피해자의 목소리를 우선 경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P260

이는 성폭력뿐 아니라 모든 인권 이슈의 기본 시각이다. 유독 성폭력 문제에만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해야 하는 상황과 이 주장이 과격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조건 자체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보여줄 뿐이다. - P260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오히려 성폭력 사건의 객관성 증명 책임을 피해 여성에게 지운다는 사실이다. 피해자 진술의 객관성은 피해 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회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성폭력 사건의 객관성은 피해 여성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객관성은 ‘해방‘에 관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객관적인지 사회적 경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들이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는 문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한 구조를 드러내는 표식의 일부이다. - P260

개인의 경험과 말하기 실천은 기억들 간의 경합과 선택의 결과이다. 따라서 경험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해석이다. 성폭력 사건의 객관성(‘사실‘, ‘진실‘)은 여성의 경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특정 사회의 언어 체계에 그 책임이 있으며, 이는 성별 권력관계에 의해 구조화된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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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의 백합>
30 여년만에 다시 읽는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
펠릭스가 모르소프 백작부인을 ‘골짜기의 백합‘이라 명명한 그 문장들을 다시 읽으니 왠지 감회가 새롭다.




이 광경을 보고 지루한 황야와 고단한 행로로 지쳤던 나는 환희에 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든 여성 중의 꽃인 그 여인이 세상 어디선가 살고 있다면 바로 이곳일 테지!‘ 라고 생각하며 호두나무에 기댔다. 그날 이후 사랑하는 골짜기에 돌아올 때마다 나는 그 호두나무 밑에서 쉬어 갔다. 그 나무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매번 그 밑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그곳을 떠난 후로 겪은 변화들에 대해 성찰하곤 한다.  - P34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내 가슴은나를 속이는 법이 없었으니까. 광야의 경사면에서 내가 본 첫 번째 성이 그녀의 거처였다. 호두나무 밑에서 보니 슬레이트 기와와 유리창은 정오의 태양에 반짝거렸다. 그녀의 면 드레스가 포도밭의 살구나무 밑에 흰 점을 찍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도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녀는 이 ‘골짜기의 백합‘이었다. 
그녀는 하늘의 은총을 받고 피어나고 있었으며, 그 고결한 향기는 골짜기를 채웠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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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애자가 경험하는 섹슈얼리티가 내게는 낯설기 그지 없었고, 이십 대 중반에 이걸 깨달으면서 내 삶은 많은 부분이 새롭게 구성되었다. 남들에게는 사춘기 때 켜진 스위치가 내게는 끝까지 딸깍이지 않았다. 이 시기에 대다수는 자위를 시작하고, 야한 꿈을 꾸거나 성적 환상을 품고, 머리카락 냄새나 드러난 어깨 같은 육체성과 접촉을 극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일부에게는 이런 발달이 약간 늦게 나타난다. 다른 사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모든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  - P32

나는 키가 자라고 감수성이 예민해졌지만 어느 
날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며 여러 몸을 의식하지는 않았다. 그 몸에서 뭔가를 원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십대시절의 짝사랑은 물론 강렬했으나 더 어려서 느꼈던, 미적으로 끌려서나 상대가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생겼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환상 속에서조차 이 마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더러 연애 상대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이상으로 나아간 적이 없었다. - P32

 "성적 끌림을 아예 느껴보지 않은사람은 성적 끌림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하며 지금껏 그걸 느낀 적이 있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무성애 연구자 앤드루 C. 힌더라이터 Andrew C. Hinderliter가 2009년 학술지 《성적행동 기록Archives of Sexual Behavior》의 편집자에게 보내는 서신에 쓴 말이다. 그래, 누가 아니라니.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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