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 살인자의 성모> 페르난도 바예호
폭력의 굴레에 빠진 콜롬비아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썼다. 소설인지 실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인데 작가가 자신의 조국 콜롬비아의 상황에 대해 얼마나 비관적인지...
그가 조국을 떠나있었던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변해버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문장의 모든 비유와 조롱이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 맙소사. 그 총소리는 정말 끝내줘. 성수를 뿌리는 것처럼, 납 탄알이 비오든 쏟아져. 그러면 ‘인형‘들은 쓰러지고, 그런 동안 산토도밍고 사비오 성당과 후덥지근한 아침 위로 죽음의 여신이내뿜는 차갑고 시원한 돌풍이 불어와 산토 도밍고 사비오는 성스러운 것이라고는 성스러움을 뜻하는 ‘산토‘라는 단어밖에 없는 동네야. 그건 정말로 살인자들의 동네야. 그러고 나면 검찰청 요원들이 와서 시체를 치우고, 그런 다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 산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그러다가 다음 총격전이 벌어져야 비로소 권태에서 깨어나. - P129

그들에게 적을 남겨 두는 것 이외에도, 그들의 죽은 부모들과 형제들과 친구들은 각자 코무나에서 스스로 자기의 것을 얻어. 그리고 그가 살해되면, 그의 것과 그가 물려받은 것을 더해서 그의 아이들과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대물림 돼. 
그건 피의 유산, 즉 범람한 강이야.  - P129

코무나는 이 증오와 원한의 엉킨 실타래를 풀면서 비로소 이해될 수 있어.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며 소용도 없는 일이야. 나는 이 문제에 대한 그 어떤 해결책이나 구제책도 없다고 생각해. 알렉산드로스대왕이 단칼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렸듯이 모조리 없애버리고 처형장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  - P129

처형장은 흰 페인트를 바른 아주 긴벽인데, 거기에는 크고 까만 글씨로 ‘우로살리나(Urosalina)‘를광고하고 있어. 내가 어렸을 때 라디오는 간과 신장의 특효라는 그 기적의 약을 아주 빠른 속도로 ‘우-에레-오-에세-아-엘레-이-에네-오‘라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주었어. 우로살리나! 그벽 앞에서 범죄자들은 쓰러졌고, 그 위로 독수리들이 내려앉았어.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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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에밀리는 천사의 난폭함을 보이며 털어놓게 된다. 자신은 한번도 어머니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어머니란 ‘우리가 불안에 사로잡힐 때 의지하게 되는 분‘이 아니겠냐고. 어머니란 무엇인가에 대한 완벽한 정의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결핍보다 나은 것이 없다.˝(17쪽)

1886년 5월 15일, 아침 여섯 시가 채 안 된 시각, 정원에선 새들의 노래가 분홍빛 하늘을 흠뻑 적시고 재스민 향기가 대기를 정화하는 시각, 이틀 전부터 디킨슨가 사람들의 사고를 몽땅 마비시킨 소리가 멎는다. 힘들여 판지를 가르는 톱 소리랄지, 옹색하고 거북해도 꿋꿋한 숨소리다. 에밀리가 돌연 얼굴을 돌린 참이다. 2년 전부터 향 종이를 태우듯 그녀의 영혼을 소진시킨 보이지 않는 해를 향하여. 느닷없이 죽음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 P5

그 당시 부유한 가정에선 식구들 가운데 누가 죽으면 사진을 찍어 영원과 겨루는 게 관습이었다. 그날, 그런 사진은 없을 터였다. 임종을 지키던 이들의 안도 섞인 몇 마디, 그리고 백합꽃이 쏟아 내는 빛처럼 눈이 부시도록 흰 에밀리의 얼굴 앞에서 그들이 느끼는 놀라움이 있을 뿐.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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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인 근교에 사바네타라고 불리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어. 내가 익히 잘 알던 곳이었지. 그곳과 가까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거든. 엔비가도에서 오는 길 한쪽에 또다른 마을이 있었는데, 사바네타와 그 마을 중간에 있는 산타 아니타 농장이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었어. 엔비가도에서 오는 길 왼쪽에 있는 농장이었지. 그러니 내가 그곳을잘 아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야. 그곳은 그 길의 끝에, 그러니까 오지중의 오지에 있었어. 그 너머로는 아무것도 없었어.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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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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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 호러, 환상, 공포... 이런 이름이 붙을 10개의 단편이 책 한 권에 가득 담겨 있다. 읽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 우려와는 달리 10개의 단편들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졌다. 읽으면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특히 작년에 읽고 좋아하게 된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이 생각났다. 켄 리우의 작품이 더 따뜻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정보라 작가의 단편들의 인물은 현실보다 더 낯설고 쓸쓸하며 씁쓸하다. 결말은 하나같이 현실보다 더 무섭고 실현불가능하며 절망적이어서 오히려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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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실버 센류 모음집 1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음, 이지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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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너무 웃긴데 씁쓸..ㅠㅠ
어르신들이 지은 실버 센류 입상작들을 엮어놓았다.
센류는 5.7.5조의 정형시라는데 비슷하게 맞추려 하지만 딱히 글자수에 크게 구애를 받지는 않는 것 같고, 세태나 시대, 생활상 등의 핵심을 찔러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감탄하게도 만든다. 이 책에 실린 <실버 센류> 작품들은 실버 세대의 고민 내지는 웃어 넘길 가볍고 귀여운 푸념들처럼 들린다. 읽을 땐 너무 웃겨서 눈물 날 지경이었는데 읽고 나니 괜스레 씁쓸한 것이 어째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공감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고 아직 노인이 아닌데 이해가 넘 잘 되는건 대체 뭔지!
하나 하나 읽으면서 노인 세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면 이 책을 읽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열심히 세어 봐도 고작 글자수라곤 20 자 내외의 작품들인데 그 속엔 인생의 기쁨, 슬픔, 쓰라림, 고통, 그리고 서글픔까지 모두 녹아있다. 88 편 모두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읽게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일본 사회가 현재 초고령 사회에 진입해 있는 만큼 노인 세대에 관심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이 아닐까 싶다. 노인 세대의 리얼한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러한 실버 센류의 발굴과 권장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된다.
실버 센류 몇 작품을 감상해보자.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

2세대 주택
지었지만 아들한테
색시 안 오네

레이디 가가보다
화려하구나
우리 집 레이디 바바(일본어로 할머니)

영정 사진
너무 웃었다고
퇴짜 맞았다

요즘은
대화도 틀니도
맞물리지 않는다

빨리 감기 하고 싶다
우리 마누라
푸념과 잔소리

안약을 넣는데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린다.

자동 응답기에 대고
천천히 말하라며
고함치는 아버지

전에도 몇 번이나
분명히 말했을 터인데
˝처음 듣는다!˝

이 나이쯤 되면
재채기 한 번에도
목숨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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