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
조던 앨런버그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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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이야기로 가르칠 수는 없을까? 영희가 빨간공 2개를 철수가 검은공 3개를 가졌다. 철수와 영희가 가진 공은 모두 몇 개인가 수준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로 된 수학 말이다. 그러니까 MMORPG의 퀘스트 같은 걸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학습자가 단계별로 원리를 파악하고 스스로 생각해 문제를 해결한 뒤 마침내 계산을 하는 것. 세상이 이토록 많이 변했음에도 우리의 교육은 20세기 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건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아마도 효율이 문제였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배워야 할 걸 모두 가르치기 위해선 수학을 '개념화'해 상자 안에 담아야 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너무 길고 거창하다. 어떻게 평가를 해야하는지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해왔다는 건 이 업계의 근무태만도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드론이 날고, 운전자없는 자동차가 다니는 시대가 아닌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게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깊이 있는 지식보다 별거 아닌 상식이나 명언 따위에 오히려 열광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이런 분야의 지식들은 확실히 뭔가 하나를 '알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디가서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것, 결국 쓸모가 있다는 것. 결국은 이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다.


배워도 아무 쓸모가 없는 교육 중 최고를 꼽으라면 아마 수학일 것이다. 지겹도록 외웠던 근의 공식은 지금 어디에 있지? 2차원 평면에 눈이 빠져라 좌표를 찍어 기울기와 절편을 구했던 경험은? 가방 안에서 그 빌어먹을 빨간공과 검은공을 꺼내는 일은 또 어떤가? 나는 그 대목에서 거의 실신할 뻔했다! 수포자가 생기는 이유는 전적으로 교육의 문제다.


그런데 여기 메사추세츠 복권 사업에 뛰어든 MIT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매주 30만장씩 로또를 사서 구매 금액의 3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면 믿겠는가? 그들은 각 등수의 당첨금에 당첨 확률을 곱해 기대값을 계산했다. 그 기대값이 충분한 수익이라는 게 밝혀지자 이 천하의 운빨 게임은 예측이 가능한 '일'로 바뀌었다. 그들은 최초의 전업 로또 구매자가 됐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이 바로 수학이다. 곱셉만 알면 누구나 적용 가능한 평범한 이론이었다. MIT 학생이어서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수학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본질을 스스로 꿰뚫은 반면 우리는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누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기만 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 근대의 공교육은 원래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깨우치는 천재들을 위한 게 아니다. 알려주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둔재들을 일깨워 그들을 똘똘한 아이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경제 발전을 위해 튼튼한 '중산층'이 필요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틀리지 않는법 - 수학적 사고의 힘>은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수학에 '대한' 책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수학이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이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어떤 물질이 암을 일으키는 것과 무관함이 밝혀졌다는 연구 발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말이(상관관계) 왜 흡연을 하면 폐암이 생긴다(인과관계)와 다른지를 알려준다. 무려 600쪽에 달하는 책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이런 사람에게 수학을 배웠다면 우리 모두의 인생은 확실히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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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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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얘기에 앞서 우선 이 책의 저자 마스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겠다.


마스다는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이라는(CCC) 기획 회사의 사장이다. 라이프 스타일을 기획한다. 가장 유명한 기획은 츠타야일 것이다. 츠타야는 사양 산업의 대명사인 '책'을 파는 곳이다. 그가 고급 주택가가 모여 있는 다이칸야마에 츠타야를 연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우선 입지가 나빴다. 다이칸야마는 고급 주택가가 몰려 있는 한적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일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동네와 거리가 떨어져 있기도 했다. 대부분의 서점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역과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 그렇게 해도 힘든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외진 곳에? 고급 카페나 레스토랑도 아닌 서점을? 게다가 이 서점의 진열 방식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소설, 에세이, 실용서 등의 카테고리로 나눈 것이 아니다. 요리, 등산, 애견 등의 라이프 스타일로 묶인다. 예컨대 애견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분야를 막론한 각종 서적, 즉 개와 관련된 소설, 에세이, 잡지에 관련 용품까지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 이런 진열 방법은 매우 불편하다. 전시하는 사람은 책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책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전시해야할지 매번 생각해야 한다. 어느 소설가의 낚시 이야기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낚시일까? 아웃도어 라이프? 아니면 작가의 사생활?


하지만 츠타야는 대성공을 거둔다. 개점 2년 만에 수십 년간 서점의 왕으로 군림하던 도심 중의 도심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서점의 매출을 넘어섰다. 다이칸야마의 유동인구는 3배가 늘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음은 말은 안 해도 알 것이다.


결과를 보면 매우 독특해 보이지만 사실 CCC의 기획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정보의 홍수로 넘치는 세계라는 상투어를 굳이 써야 할까? 과거엔 정보를 얻기 위해서 동네 도서관이나 서점을 들르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으로 정보는 넘쳐나고 사람들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자유의 증가는 언제나 행동의 제약을 낳는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찾아야 할지 무한한 조합이 가능한 세계는 역설적으로 어떠한 선택도 어렵게 만든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정보를 탐색했지만 이제는 정보가 사용자를 탐색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늘어난 여가에서도 변화의 흐름은 나타난다. 사람들은 더 이상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인터넷을 키거나 서점에 들르는 것이 아니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하며 '기웃거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보는 적극적 탐색과 사냥의 대상이 아닌 브라우징의 대상이다.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며 눈길을 끌만한 것들을 찾는다. 소파에 몸을 묻고 리모콘을 든 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CCC의 마스다는 츠타야가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곳이라고 했다. 콘텐츠 업계에 몸 담았던 사람들은 최근 이 업계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 하나를 기억할 것이다. 큐레이션. 수 많은 정보 중에 입맛에 맞는 걸 쏙쏙 골라 맞춤형 패키지를 내놓는 것. 이른바 '대 편집의 시대.' 마스다는 누구보다 먼저 이 변화를 파악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이 책은 마스다가 CCC를 운영하며 틈틈히 적은 블로그의 글들을 모아 놓았다. 기업가로서 가져야하는 마음가짐부터 거래 업체를 대하는 태도까지 각양의 생각들이 단편적으로 늘어서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하는 건 내 생각이 마스다와 일치한다고 해서 내 행동을 합리화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공한 사업가와 내 생각이 같다니, 역시 나는 옳았어. 더욱 정진하자.


마스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을 뿐 그 생각을 현실화 하는 과정과 방법을 세세하게 기록한 것은 아니다. 결국 차이는 생각이 아니라 행위에서 드러난다. 본디 근본적 신념이나 이상은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사업은 신뢰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고객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등등.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이상이 같다고 방심해선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철저히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끝없이 시험해 보고, 끈질기게 바꿔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책을 읽은 꼰대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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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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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였나, 아무튼 뭐 그런 류의 장르 소설을 읽으며 새롭게 깨우친 독서 기술이 있다. 한 번에 두 페이지 씩 넘기는 거. 그리고 페이지의 첫, 중간, 마지막 문장만 읽는 것. 그런 망나니 짓을해도 줄거리를 따라잡는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하루에 책을 한 권씩 읽는다는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어떻게? 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얼추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두번째 의문이다. 그렇게 읽는 게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책은 원래 꼭꼭 씹어 완전히 소화를 시켜야 정신에 이로운 게 아니냐는 것이지. 결론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왜? 


재미있기 때문이다.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맛이 있다. 흥미는 퇴색되지 않는다. 고조된다. 열매를 갈아 고농도의 압축액을 마시는 것 같다. 왜 그런게 있지 않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는 시간. 버스는 15분 뒤에 출발하고 주문한 잔치국수가 3분만에 나온다. 후루룩 국물까지 다 마셔도 시간은 남아 화장실까지 다녀온다. 버스에 앉으니 뜨거워진 뱃가죽의 열기에 노곤 노곤 행복한 기분이 든다. 모든 음식이 미슐랭 스타를 받을 필요는 없다. 휴게소의 잔치국수는 그 나름의 가치와 맛이 있는 것이다.


<비하이드 도어>는 잘생긴 싸이코패스의 완벽한 함정에 걸린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자에겐 누구보다도 소중한 여동생이 하나 있다. 다운증후군. 부모는 아이를 버리려고했지만 언니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가며 기꺼이 그 책임을 맡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무게가 느껴진다. 평생 책임져야 할 장애인 여동생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들과 헤어져야만 했다. 쌓이는 나이가 단순한 숫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그 때 조지 클루니를 닮은 마흔살의 유명 변호사가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놀라운 외모에 탄탄한 재력, 완벽한 매너까지. 여기서 팁 하나. 누군가 우리에게 제안을 했을 때 그게 사기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 가진 것에 비해, 내가 줄 수 있는 것에 비해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하는가. 그렇다면 그건 100% 함정이다. 여자도 어렴풋이 그런 의심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 개입됐을 때 주고 받음의 크기는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과도한 배려, 과도한 희생, 과도한 지원은 종종 사랑과 얽혀 숭고한 정신으로 오해된다. 인간이 가진 감정 중 가장 보안이 취약한 게 바로 사랑이다. 그 또는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것. 불행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신과 같았던 남자가 다소 허무하게 무너져버려 아쉬운 점은 있지만 꽤 재미 있게 읽은 소설이다. 특히 맥빠진 결말을 붙잡는 마지막 장은 전율이 돋기에 충분하다. 기대했던 맛은 아니지만, 충분히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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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특강으로 끝내는 수학의 기본 원리
제리 킹 지음, 박영훈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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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나는 갑자기 수학을 공부하고 싶어졌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당시 내가 초등학생을 위한 수학 과목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게 작은 계기가 됐을 수는 있지만, 거기엔 보다 큰 뭔가 근본적인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세상의 본질이 궁금했달까?


우리는 실생활에서 다양한 현상을 마주하지만 그런것들을 만들어내고 조정하는 추상적 법칙이 어딘가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이 탄생한 이래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 본질을 찾아내려 한 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후보는 역시 '수'일 것이다. 그리고 수는 지금까지도 꽤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수는 정말로 우리 세계의 본질일까?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가진 피타고라스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와 그의 제자들에게 수는 일종의 종교였다. 그들에게 수학자는 수학이라는 종교가 만들어 놓은 법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제였고, 신은 최초의 수학자였다.


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의 거대한 체계가 무엇을 기반으로 어떻게 형성됐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 쌓고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걸 업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쌓을 땐 무엇을 조심해야하고 쌓고나면 뭘 확인해야 하는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방대한 체계를 참고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수학의 증명 과정을 보고 있으면 그걸 종교로 받아들인 피타고라스의 심경이 이해가 된다. 하나의 증명을 위해 수학은 더 이상 증명이 불가한 자명한 사실만을 이용한다. 깍아내고 깍아내고 또 깍아내어 손에 든 정수. 그래서 수학은 절대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수학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의 수학 교육이 증명없이 공식을 들이밀기 때문이다. 증명 과정을 알고 있으면 결과(공식)는 자연스럽게 도출 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만을 주입하면 그 과정을 파악하는 건 괴로운 연구 과제가 된다. 우리는 이 순서를 바꿔서 해왔기 때문에 수학을 지긋지긋해 하는 것이다.


물론 수학에서도 계명은 존재한다. 유대인들이 십계명에 어떠한 토도 달지 않듯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 명제는 존재하는 것이다. 예컨대 "0으로 나누지 말지어라" 같은. 물론 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계산을 시도한다.


x, y를 0이 아닌 유리수라고 하고 x=y라고 하자. 그러면 다음이 성립한다.




2x=x를 만족하는 유리수는 x는 0이 유일하다. x가 0이 아니라면 우리는 2x=x 의 각 항을 x로 나눌 수 있기 때문에 2=1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모순이므로 그 무엇도 0으로 나눌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증명 과정에서 우리는 증명되지 않은 어떠한 방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1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면 1과 2를 구분하는 우리의 셈 체계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는 말 아닐까? 다음은 1과 0.999...(9가 무한히 반복된다)가 같음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수학적으로 9가 무한히 반복되는 실수 0.999...는 정확하게 1이며 이는 결코 어림한 값이 아니다. 위 수식이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2=1은 모순이고 1=0.999...는 모순이 아닐까? 이는 그저 9가 무한히 반복되는 실수 0.999...를 0.999...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문자 체계의 한계로 봐야하는걸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수학의 입장에서 이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다. 수학은 수 많은 명제가 동시 다발적으로 생성되어 구성한 체계가 아니라 아주 당연한 정리부터 하나씩 차곡 차곡 쌓아 올려 만든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중 하나라도 결함이 존재한다면 그 증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후 증명들은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이 되버린다. 예컨대 1과 2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지금껏 수학이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냈고, 아무리 현실 세계의 현상과 부합한다 하더라도 송두리째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왜 모든 수학자들이 신경과민에 빠지지 않는지 신기하다.


물론 여기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꽤 즐거운 여행을 했다. 일반적으로 수학은 간결하고, 아름다우며, 우아하기까지 하다. 증명 과정을 보고 있으면 그 신묘함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려진다. 그러나 이 책은 수학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수학책에 가깝다.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말에 이끌려 덥석 집어든다면 갈수록 복잡해지는(왜 앞 단원을 놓치면 줄줄이 망하는지 알겠다) 증명과 용어에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건 각 장의 순서가 우리 수학 교육의 순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그 끔찍한 수학의 정석과 아주 흡사하다). 그러니 우리는 잘못된 내용을 배운 건 아니다. 단지 잘못된 전달 방법으로 고통받은 것 뿐. 내가 배우던 시절에도 이렇게 원리를 강조하는 교수법이 있었다면 훨씬 즐거웠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선생님들은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풀어달라는 부모들의 요구에 엄청나게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뜻이 없는 게 아니다.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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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2018-03-2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한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유한의 단계에서 무한의 단계로 확장될 때 오개념을 겪게 됩니다. 0.999...는 무한급수로 설명하여 극한 개념을 사용하는게 형식적으로 엄밀하고 제일 간단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중학생들은 아직 그러한 개념을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교수학적 변환을 통하여 무한소수라는 개념을 배우게 됩니다.

한깨짱 2018-03-21 13:43   좋아요 0 | URL
네 댓글 고맙습니다. 0.999...에 lim을 하는 걸로 설명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런데 저는 9가 계속되고 이를 극한으로 끌고가는게 왜 1이 되는지, 그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극한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저에겐 여전히 제논의 역설이 풀리지 않는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전자책]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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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계의 싸이코패스라 불리는 정유정 작가의 신작이다. <7년의 밤>에서 무시무시한 살육극을 보여줬던 악녀의 귀환. 이번에도 그녀의 관심은 인간의 근원적 악과 그 악행이 연출하는 카니발이다.


전작 <7년의 밤>이 산꼭대기에서 시작해 줄곧 내리막길을 걷는 요상한 작품이었다면(흥미 곡선이 절정, 위기보다 발단이 높은 몇 안되는 책이다) <종의 기원>은 시종일관 늪지를 헤매는 책이다. 사람은 커녕 고기도 한 번 먹어본 적 없는 척, 점잖은 악어 한마리가 물 밑에서 잠행을 한다. 그러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쓱, 물 위로. 어머, 넌 참 착한 악어구나. 반갑게 인사한다. 악어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리고는?


정유정이 이 시들한 이야기에 <종의 기원>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인 이유는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이 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것 같다. 정유정은 종의 진화 과정이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나의 생존=타자의 죽음" 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싸이코패스라는 독특한 정신적 기질이 유전자에 각인된 우리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싸이코패스의 행동과 유전자의 행동은 비슷한 점이 많다. 역사를 돌아보며 그 피비린내에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을 하는 건 우리의 의식이지 유전자가 아니다. 의식이란 무의식을(유전자의 행동)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감옥이다. 이 감옥은 윤리, 도덕, 신뢰, 공감 같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사이에서 태어난 간수들이 지킨다. 이 중 몇몇 간수가 사라졌거나, 죽었거나, 애초에 태어난적 없는 사람은 무의식이 행동으로 발현되고 우리는 그것을 싸이코패스라 부르는 것이다.


유전자가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낄까? 유전자는 오직 하나의 법만을 따른다. 생존. 이를 위해선 복잡한 작동 구조가 필요없다. 아니, 오히려 그건 치명적 약점이 된다.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후손에게 자신의 형질을 물려주기 위한 결정적 순간마다 이것이 맞는가, 이 행동이 옳은가를 따진다면 이미 늦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는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를 알지 못하고, 서로를 미워하고, 심지어 서로를 죽이고 싶어하더라도 근처에 다가오는 순간 척, 하고 붙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기회를 얻었을 때 무조건 행동하는 것이다. 유전자에게 윤리를 바라는 건 선로 위에 놓인 나뭇잎이 자기를 밟고간 기관차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기관차는 뻔뻔하거나 사악하거나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왜 잘못인지 모르기 때문에 사과를 할 수 없다.


인간의 어둠에 집착하는 작가라면 이는 평생에 걸쳐 고민해볼만한 주제이다. 하지만 이 고민을 평생의 과제로 삼는 것과 그것을 작품으로 옮기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곳은 너무나 어둡고 깊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기획이 완료됐다 하더라도 실제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적는 순간 아주 끔찍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작가는 과연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은 악한게 아니라 선과 악을 구분짓는 잣대가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는 있어도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는 없다. 설령 우리가 그걸 완벽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작가는 결코 그것을 묘사해선 안 된다. 싸이코패스의 마음을 세세히 읽게 된다면 그 불가사의한 악의 존재감을 독자가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그건 패를 다 까고 치는 포커보다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정유정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쓰는 과정이 너무나 힘겨웠으며 삼인칭으로 기술하던 주인공을 일인칭으로 바꾸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전개를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실수다. 소설은 끝까지 삼인칭으로 남았어야 한다. 심리를 드러내는 싸이코패스는 딸기를 좋아하는 지렁이만큼이나 어색하다. 정유정은 싸이코패스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만들어진 싸이코패스를 묘사하는데도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주인공은 그저 싸이코패스가 되고 싶은 중2병 풋내기처럼 보인다.


그들을 다루는 불문율은 그들의 심리를 묘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첫 일초부터 마지막까지 이 규칙을 지키는 영화 두 편을 알고 있다. 하나는 코맥 매카시의 원작을 영화화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하나는 데이비드 핀처가 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 헌터>다. 싸이코패스가 정말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다면 이 영화들을 보라.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아무런 위협도 없이, 꿈결처럼 다가와 슥, 목을 베고 가는 섬뜩한 괴물들. 그 천진난만함을 보고 나면 <종의 기원>이 낳은 갈증이 한방에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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